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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서해안지역에서는 태풍이 불었다. 그리 강한 태풍은 아니여서 끝살부리 가물막이공사장에서 대기중의 철배가 고정삭을 끊은 소소한 사고가 있었을뿐이였다. 16해상돌격대 대장 정대철과 함께 그 표류한 철배를 구조하느라고 사고현장에서 꼬박 새우고 새벽녘이 다 되여서야 국지휘부로 돌아 온 송철만은 반외투만 벗어 걸상에 던져놓고 침대에 눕자 곧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누군가 마구 흔들어 깨우기에 눈을 간신히 떠올려다보니 부국장이였다.

《빨리 일어나십시오. 보돕니다. 최고사령부 보도를 방송하고있습니다.》

그제야 송철만은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최고사령부 보도라니?… 전쟁이요?》

《아닙니다.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답니다.》

준전시상태면 전쟁이나 같고 같은 소리다.

《빨리 저 고성기를 트오.》

부국장이 고성기가 매달려있는 구석으로 달려가는 사이에 송철만은 급히 일어서려다가 피곤이 몰리면 의례 그러기 마련인 뜨끔거리는 허리의 부상처를 손으로 눌러잡으며 침대를 내려 걸상에 가앉았다. 고성기에서는 벌써 《유격대행진곡》의 힘찬 선률이 흐르고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방송원의 격동된 목소리가 최고사령부 보도를 다시 반복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준전시상태에
들어갈데 대한 명령을 하달

 

미제국주의자들은 2윌 1일부터 4월 중순까지 남조선괴뢰도당과 함께 남조선전역을 중심무대로 하여 《팀 스피리트 83》이란 력사상 최대규모의 합동군사연습을 진행한다.

미제침략자들이 미친듯이 감행하는 《팀 스피리트 83》 합동군사연습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범죄적전쟁책동의 계단식확대이며 조선의 평화를 유린하고 우리 나라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이끌어가는 공공연한 군사적도발행위이다.

미제의 무모한 군사적도발책동으로 하여 지금 우리 조국에는 새 전쟁의 엄중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 나라는 어느때라도 전쟁이 터질수 있는 긴박한 정세하에 놓이게 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미제국주의자들의 무모한 군사적도발책동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전쟁의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는 오늘의 엄중한 정세하에서 조선인민군 전체 부대들과 조선인민경비대,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전체 대원들에게 적들이 합동군사연습을 진행하는 2월 1일부터 4월 중순까지의 기간 준전시상태에 들어갈데 대한 1983년 2월 1일부 명령 001호를 하달하였다.

조선인민군 전체 부대들, 조선인민경비대, 로농적위대, 붉은청년위대 대원들과 전체 인민들은 적들의 그 어떤 전쟁도발책동도 제때에 짓부셔버릴수 있는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 그리고 자기의 초소를 철옹성같이 지킬것이며 적들이 끝내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킨다면 즉시 맞받아나가 단호한 징벌을 가할것이다.…
 

송철만은 틀어쥔 주먹으로 책상을 탕- 내리쳤다. 치고는 우르르 떠는 주먹에 지그시 힘을 주며 격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내 이럴줄 알았소. 덜된 놈들… 달리될수 없는 현실이요!》

《그런데 총참모부에서 왜 여태 아무 지시도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리응천이 하는 소리였다.

《경황이 없겠지. 지금 같은 정황에서 누가 갑문건설장 같은걸 생각하겠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고 가방안에 필요한 보고자료들을 골라넣으며 말했다.

《내 총참모부에 갔다오겠소. 그새 각 단위들에 동원준비를 갖추도록 하고 부국장동무와 토론해서 최고사령부명령관철을 위한 군무자총회를 포치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언제쯤 돌아오시겠습니까?》

《가봐야 알겠소. 시간이 급하면 전화를 걸겠소.》

그로부터 한시간 채 못된 열시반경에 그는 벌써 총참모부정문 접수실에 서있었다. 긴박한 정세의 반영인듯 접수실은 여느때없이 붐비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거나 문으로 바삐 드나드는 군관들과 장령들의 얼굴에는 근엄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런속에서 출입증을 받아쥐고 접수실을 나온 그는 전투복장에 철갑모까지 쓴 보초병들앞을 지나 강충일중장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중장은 책상에 마주앉아 글을 쓰고있었다. 그는 퍼그나 바쁜듯 인사도 없이 안경너머로 얼핏 쳐다보더니 앉으라는 뜻으로 걸상을 가리키고 다시 글줄에 눈을 가져가며 말하였다.

《<아바이>가 자료를 요구해서 그러는데 5분이면 되오.》

《아바이》란 총참모부안에서 통용되는 인민무력부장에 대한 별칭이였다. 송철만은 중장의 그 별치 않은 언행에서조차 총참모부의 바쁘고 긴장된 분위기를 실감하며 장탁끝에 가방을 놓고 앉아 신문을 당겨 읽기 시작하였다.

5분이면 된다던 자료를 중장은 10분이나 썼다. 그리고는 자료를 봉투에 넣어가지고 바삐 나가더니 한참 지나 돌아왔다. 담배와 재털이를 가져다놓고 장탁 건너편에 앉으며 강충일은 물었다.

《그래 무슨 일때문에 올라왔소?》

《… 뢰관에 불을 달 때가 된것 같은데 아무 소식도 없길래 답답해서 왔습니다.》

《뢰관에 불을 단다는건?》

한생 군복을 입고있어도 전문분야가 건설이고보니 (그는 항만건설전문가로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중장은 군사지휘관들이 쓰는 경구나 말을 얼른 리해못할 때가 있었다. 건설분야에서는 대단한 박식가이지만 군사실무에 들어선 부대장급이나 될지 말지한 이 중장을 어떻게 깨우쳐야 할지 몰라 송철만은 내심 혀를 차다가 가장 단순한 방법을 선택하여 물었다.

《뢰관에 불이 당기면 총탄이나 포탄이 어떻게 됩니까?》

《그야 발사되지.》

《총포탄은 언제 발사됩니까?》

《그야 실탄사격때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는 때지.》

중장이 산수를 배우는 어린애처럼 곰상곰상 대답하는것이 재미도 있고 어이도 없어 송철만은 시뭇이 웃었다.

《내 말은 바로 그 전쟁이 눈앞에 박두한것 같다 그 소립니다.》

중장은 아주 심오한 리치라도 깨달은듯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두했지. 그래서 준전시상태도 선포된거구…작전부에선 4월 중순으로 보는것 같소.》

모든것이 예견한 그대로라고 생각하며 송철만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젠 임무를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까?》

《임무를 바꾼다는건?》

송철만은 중장이 완곡된 표현을 도무지 리해못하는것이 은근히 화가 났지만 참고 다시 한번 인내성을 발휘하여 임무를 바꾼다는 말의 의미를 풀이해주었다. 그런데 아주 신중하게 듣고 총참모부에서 예견하고있거나 이미 결심된 방향을 알려주리라 생각했던 중장은 뜻밖에도 허허… 하고 헤식은 웃음을 웃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는 서로 다른 머리를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려고 했구만. 결국… 하긴 총참모장동무나 <아바이>도 같고 같소만…》

(이 령감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것인가? 두 머리로 한가지를 생각했다는건 또 무슨 소린가?…)

송철만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강충일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표정이 아주 심각해졌다.

그는 이마로 받을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더니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진지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보 소장, 갑문건설장에서 빠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소. 중지가 뭐요? 더 와짝 추진시켜야 하오.

송철만은 중장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아니, 전쟁이 당장 일어나겠는데 갑문건설을 그냥 한단 말입니까?》

《그냥 해야 하오. 이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제의에 따라 엊그제 있은 정치국비상회의에서 토의결정된 문제요.》

《?!

놀라움이 하도 커서 송철만은 할 말을 찾지 못한채 중장의 안경 낀 얼굴만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제의한 문제라면… 그럼 전쟁은 아니란 말인가? 아니라면 준전시상태는 왜 선포했겠는가?… 어느 한쪽에서 돌멩이만 집어던져도 당장 전쟁이 터질 상황이던 《푸에블로》호사건당시에도 준전시상태는 선포되지 않았었다. 조선이 새 세계대전의 발화점으로 되는가 아니면 미국에 사죄각서를 내게 될것인가 하고 온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EC-121》 격추사건때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포되였다. 그것은 지금의 정세가 《푸에불로》호사건이나 《EC-121》격추사건당시에 비할수 없이 긴장하며 그 만큼 무력충돌의 위험이 크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사민도 아니고 군대가 그것도 갑문건설장의 군집단만이 아니라 10여만 장병들을 소환하지 않고 그냥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남겨둔다니 정녕 놀랍기 그지 없었다.

《… 동무로선 아마 놀라울거요. 하긴 나도 처음엔 그랬소. 리해도 잘 안되구. 사실말이지 지금 같은 환경에서 10만장병을 국방과 관계없는 일에 남겨둔다는게 어디 상상이나 할수 있는 일이요? 그러니 딴 생각 말고 건설을 와짝 내미오.

설사 래일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오늘밤까지 건설을 한다는게 바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이고 결심이시오.》

《!…》

송철만은 마음속에서 산악 같은것이 솟아오르는것을 체험하였다. 그는 더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는 움쭉 일어나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거기 문옆에 서있는 옷걸이에서 군모를 벗겨쓴 그는 작별인사를 할 생각도 잊어버린채 문을 밀고나갔다. 강충일중장은 바삐 일어나며 소리쳤다.

《여보, 이 가방은 두고 갈셈이요?》

《참 그렇지.》 철만은 돌아섰다. 그러지 않아 가지고온 보고자료두 거기 있는데.

그는 되돌아와 선채로 서류가방에서 몇가지 문건을 꺼내놓았다.

《가만, 좀 진정하고 앉소. 10분만.》

강충일의 권고에 송철만은 자기가 지나치게 흥분하고있다는것을 깨달으며 걸상에 앉았다.

중장은 숫제 정세따위는 잊은 사람처럼 갑문건설에서 제기되는 몇몇 문제들을 묻다가 이렇게 말했다.

《참 개작설계 있지 않소.》

《개작설계라니요?》

송철만은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였다.

《사간이 없는데 간단히 말하기요.》

강충일은 무엇인가를 부정하듯 손을 홱 내저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런 정세속에서도 기본언제개작설계문제를 알아보시고 다시 검토해보라는 지시가 계셨소… 리영선부부장이 아무 소리 없습데?… 아니 왜 사람을 뻔히 보기만 하오? 개작설계문제는 처음 듣는 소리두 아니겠는데… 그 개작설계를 정무원지휘부에 다시 넘겨줘야 하겠소.》

《그건 왜 그럽니까? 문제가 생겼습니까?》

《문제가 생긴게 아니라 완벽한 검토를 해보라는 지시요.》

강충일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듯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지금 같은 정세속에서도 그 개작설계를 관심하시여 건설위원회 윤상설부위원장에게 그걸 검토시키 의견을 받아보도록 조처하소. 그러니 두말 말구 가면 설계를 정무원지휘부에 도루 넘기오.》

《알겠습니다.》

송철만은 한꺼번에 너무나 벅찬 느낌을 받아안아서인지 여느때없이 묵묵히 작별인사를 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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