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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이 팔을 벌려 바다를 안은것 같은 광량만 하늘가에서 뿌옇게 색이 바랜 저녁해가 마지막빛을 뿌리고있다. 수평선을 기준으로 순간에도 한뽐씩 처져내리는 백광의 불덩이… 마침내 일몰이 시작된다. 바다의 일몰은 대지의 그것처럼 장쾌한 멋은 없다. 그저 아름답고 황홀할뿐이다. 바다가 끓어번진다. 끓는 바다우에서 하늘이 불붙는다. 미구에 해는 수평선너머로 사라지고 대기가 알리게 차진다. 마치도 창공에서 맵짜고 쌀쌀한 찬 공기를 지상에 쫙 내려 뿌리는것 같다. 송철만소장은 기차방통과 수송차들이 흙을 싣고 분주히 드나드는 토취장어귀에서 102부대 참모장을 상대로 상차능력을 높일 방도를 토론하고있었다. 여전한 차림새로 누비솜옷우에 장령반외투를 덧입고 암회색양털모자를 쓴 그는 대좌인 부대참모장의 대책안을 듣다 말고 고개를 저으며 자기 주견을 내놓았다. 《그 상차대 만드는 방법은 틀렸소, 상차대 하나에 80%씩 밀어넣고야 무슨 수로 통나무를 당하오. 함형부재생산도 겨우 하는 판에…》 끈을 목에 걸어 가슴앞에 드리운 대공전화기에서 호출신호가 울리는 바람에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송신단추를 누르고 응답하였다. 《1번 듣는다.》 《나 2번이다. 국지휘부로 들어와주기 바란다.》 2번은 부국장의 대호였다. 송철만은 리유를 물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왔다. 방금 륙로로 도착하였다.》 《?!…》 하도 뜻밖의 소식이여서 기쁨보다도 놀라움이 컸다. 이전에 몇해씩 평원도로건설 같은데 나가있어도 언제 한번 찾아온 일이 없는 안해였다. 그만큼 군관의 안해로서 도리를 지켜오는터였다. (혹시 집안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 일종의 위구 비슷한것이 가슴을 죄였지만 그는 애써 누르며 말했다. 《알겠다.》 대공전화기의 전원을 꺼서 가슴앞에 드리운 그는 본래의 화제로 되돌아갔다. 《… 좌우간 상차대는 통나무가 들어오는 형편을 봐서 만들기로 하고 당장은 굴착기바가지를 개조하오. 바가지당 0.25㎥ 더 얻는다는게 어디요.》 《먼저 두석대가량 시험해봐야 하지 않을가요?》 참모장은 바가지를 개조함으로써 굴착기에 생기는 기계적부하를 우려하였다. 《부하야 좀 커지겠지. 하지만 굴착기운전공들도 타산이 있어서 개조하자고 했을테니 이삼일내로 끝내치우오.》 《알겠습니다.》 그는 참모장과 헤여져 국지휘부를 향해 걸었다. 해가 진 이맘때면 기온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날씨가 푸근한걸 보니 눈이 오려는 모양이였다. 지휘부정문에서 그는 보고하러나온 직일관에게 회의차로 총정치국에 올라간 정치부장이 돌아왔는가를 알아보았다. 직일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저건 뭘 저기다 저렇게 쌓아놨소?》 점심식사후 지휘부를 떠날 때만 해도 반반하던 현관옆에 배가 뚱뚱 부른 가마니며 마대짝들이 둥그렇게 쌓여있었다. 《지원물잔데… 다 아주머니가 가져온것들입니다.》 직일관은 자루감이 몇개요, 어깨받치개는 또 몇개요 하고 품종별 개수를 렬거하였는데 어느것이나 수자가 천단위를 넘었다. 송철만은 뒤짐을 지고 짐무지를 한바퀴 돌았다. 그러니 집안에 별일은 없고 안해가 건설장에 지원삼아 온게 분명하였다. 그때 현관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아들 경호가 뛰여나왔다. 《오, 네가 왔구나. 어머니도 왔다며?》 그새 키가 한뽐이나 더 큰것 같은 아들은 인사를 굽석 하고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돌아본 현관에서 부국장이 나오고 뒤따라 새까만 외투차림에 희고 긴 털수건을 목에 걸어 가슴앞에 드리운 안해가 나타났다. 《제가 이렇게 나타날줄은 몰랐지요?》 그리움에 젖은 눈길로 올려다보는 안해의 얼굴에는 큰일을 해낸 기쁨과 만족감이 어려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몰랐소. 그런데 이걸 다 당신이 가져왔다는게 사실이요?》 《아니예요. 우리 군부대사령부 군관가족들이 마련한거예요. 제가 갑문건설장에 간다는걸 알고 사령부에서 차까지 내주어서 전 싣고오기만 했을뿐이예요.》 안해의 말끝에 아들 경호가 끼여들었다. 《그래도 어머니, 처음 생각해내고 시작을 뗀거야 어머니가 아니나요. 정치위원아저씨가 가족회의를 열고 도와주자고 호소한건 그 담이구…》 《얘, 무슨 소리 하니. 이걸 그렇게 보아선 안된다. 난 아버지한테 맨손으로 올수 없어 <벙어리장갑>을 깁구 산에가 물푸레를 몇대 찍어왔을뿐이다.》 《중요한건 바로 그거예요. 그 물푸레나무와 벙어리장갑…》 여러사람의 수고에 어머니의 공로가 묻힐가봐선지 아들은 한사코 주견을 굽히지 않았다. 안해가 눈을 흘기며 아들을 꾸중하려 드는것을 보고 부국장이 중재를 맡아나섰다. 《하-아, 그만두십시오. 이러다간 모자간에 <분쟁>이 일어나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옳고 경호는 경호대로 옳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각자는 다 제나름으로 옳다.> 허허, 우리로서는 그저 감사할뿐입니다.》 딸 경옥의 생각이 나서 물으니 안해는 따라오겠다는걸 겨우 떼놓고 왔노라고 하였다. 송철만은 웃기만 하고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는 커다란 기쁨이 밀물처럼 차올라 출렁이고있었다. 어쨌든 5년후에야 다시 만나게 되리라 생각했던 안해를 보게 된것이 기뻤고 옛 군부대사령부 군관가족들이 지원물자를 마련해 보내온것도 그렇고 지어 아들 경호와 안해가 서로 주견을 세우며 다투는것조차 더없는 기쁨으로 여겨졌다. 마침 저녁식사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서 부국장도 포함하여 일행은 식당으로 갔다. 식사후에는 송철만의 방에 돌아와 세 식구가 난로를 둘러싸고앉아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자동차로 먼길을 오느라고 피곤한지 경호는 하품을 몇번 하더니 걸상에 앉은채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그러는 아들을 침대에 데려다 눕히고 돌아오니 안해는 집에서 가져온 아구리를 싸동인 사기단지며 배가 부른 종이봉지들을 장탁우에 펼쳐놓고있었다. 《이안에 들어있는건 뭐요?》 송철만은 종이봉지를 하나 집어들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돌꽃뿌리예요. 술에 우려 마시면 신경통에도 좋고 부상처가 도지는것도 막고… 좋은데가 많다 해서 만들어왔는데 한번 잡숴보세요.》 고뿌를 가져다 안해가 단지에서 떠주는것을 마셔보니 술이라기보다 씁쓰레한 맛이 강한 약물이였다. 그런대로 알콜기운도 약하지 않아 한고뿌 더 달라고 하자 안해는 안된다고 딱 잡아떼며 단지 아구리를 싸맸다. 하루 세번 꺾어 꼭 한고뿌씩 마셔야지 극약이나 같아서 량을 넘기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것이였다. 안해는 매 종이봉지속에 들어있는 돌꽃뿌리의 사용에 대해서도 시시콜콜이 설명하였다. 송철만은 듣기만 하다 말고 동문서답격으로 물었다. 《부대에선 어떻게들 지내오. 전연에서 적들과 맞불질을 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데?》 《그런 소린 듣지 못했는데 팀스피리튼지 뭔지 하는것때문에 여간 볶이우지 않아요. 자동차에 위장을 씌우고 군관들이 모두 전투복차림으로 다녀요. 가족들도 소개훈련을 하고… 금방 전쟁이 일어나는것 같아요.》 그런 말을 하면서 안해는 단지며 돌꽃뿌리가 들어있는 종이봉지들을 서랍밑에 가져다놓고 돌아와 난로앞에 마주앉았다. 《형편이 그 정도면 여긴 오지 않아도 되는걸 그랬소. 군인가족들은 정세가 긴장할수록 집에 있으면서 부대와 떨어지지 말아야 하오.》 《저도 그러자곤 했는데… 애가 갑문이라는걸 어떻게 건설하는지 보고싶다 하고 아버지와 토론할 문제도 있고 해서…》 《토론할 문제라는건?》 안해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병색이 약간 있는 창백한 얼굴에 신중한 표정을 담고 한창 달아서 불그레한 빛이 도는 난로허리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경호가 올여름에 졸업이예요. 학교에선 벌써부터 매 학생들의 지망을 장악하는 모양인데…》 《허, 그애가 벌써 중학교를 마치게 되였는가?》 아들이 그런 나이에 이르렀다는것을 감감 잊고있던 송철만은 세월의 무정함과 한가정의 가장된 책임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 내 결심을 모르고있었소?》 《그래두 한번 당신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지 않아요.》 안해는 젊었을 때처럼 살짝 눈을 할기였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고도 남는다는것이였다. 《당신은 아직도 대학에 미련을 가지고있는것 같은데 안되오. 경호는 내 뒤를 이을 애요. 그러니 반드시 군대복무를 시켜야 하오. 활동적인 성격으로 봐도 그래 분렬된 조국의 현실을 생각해도 그래 그 애는 군인으로 키워야 하오. 요새 미국놈들이 하는짓을 보오. 저놈들이 이번 군사연습에 인원을 얼마나 동원하는지 아오? 거의 20만이요. 20만… 그런 력량이면 하나의 전쟁도 할수 있소. 이런 자들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문제를 푼단 말이요.》 바로 그때문에만도 경호를 군인으로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철만은 력설하였다. 안해는 아무 대꾸없이 난로허리만 이윽히 바라보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갑자기 웃었다. 웃다 말고 또 이런 우스운것을 묻는것이였다. 《이봐요, 경호아버지, 경호를 낳았을 때 병원에 와서 하신 말 생각나세요?》 《내가 뭐랬게?》 《아들이라는데도 그냥 기저귀를 헤치더니 <옳긴 옳구만, 됐소. 이런 아들을 한개 분대만 더 낳소. 알겠소? 그럼 내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이 군공메달을 받게 하겠소.> 이랬지요.》 《허허, 내가 그랬던가?》 경호가 태여났을적이면 17년전 일이겠는데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대신 전혀 다른 생생한 기억으로 처녀시절의 안해를 처음 만나던 일이 생각났다. 전쟁이 끝난지 이태째 되던 여름이였다. 당시 부대는 강원도 창도군에 주둔하고있었다. 29살의 로총각으로 대대장이던 철만은 그날 부대에서 소집한 군관회의에 참가하려고 아침 일찌기 대대를 떠났다. 부대지휘부까지는 40리가 잘되였는데 날이 무더운데다 시간이 그리 넉넉치 못하여 빨리 걷다나니 20리도 채 못미쳐 벌써 잔등이 땀에 화락하니 젖고 목이 말라들었다. 마침 그때 길에서 얼마쯤 들어가 산밑에 외따로 있는 초가집에서 감장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녀인이 옆구리에 물동이를 끼고나오는것이 보이길래 철만은 무작정 그쪽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녀인은 거기에 우물이라도 있는듯 곧장 집앞의 둔덕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정작 가보니 우물은 아니고 작은 샘터였는데 녀인은 이미 샘물가에 앉아 바가지로 동이에 물을 채우고있었다. 처녀였다. 검고 윤기흐르는 치렁치렁한 머리태, 저고리에 감싸인 동그란 어깨와 끈오리로 둘러맨 가는 허리… 앉아있는 뒤맵시가 꽤 곱다 했는데 바가지로 물을 떠주며 고개를 외로 비트는 처녀의 얼굴은 더욱 어여뻤다. (아니, 이 산골에서 이런 고운 처녀가 살고있었는가?…) 첫눈에 처녀에게 반해버린 철만은 물을 먹고 바가지를 돌려주자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동무, 몇살이요?》 처녀가 대답할리 없었다. 그래도 또 물었다. 《동무 이름이 뭐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처녀는 물동이를 이고 일어나더니 총총히 집쪽으로 가버리고 마는것이였다. 그러는 뒤모습은 또 얼마나 고운가.… 철만은 손목을 돌려 시계를 보았다. 빠듯한대로 시간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 무작정 처녀를 따라 산밑의 초가집마당으로 들어갔다. 그새 벌써 부엌으로 들어갔는지 처녀는 보이지 않고 집주인인듯한 허우대 큰 령감이 토방그늘에 앉아 새끼를 꼬다가 의심쩍은 눈길로 맞아주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철만은 토방끝에 걸터앉으며 밑도끝도 없이 물었다. 《아바이, 이자 들어온 처녀 아바이 딸입니까, 손녑니까?》 령감은 마뜩지 않은 눈길로 힐끔 보았을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꼬던 새끼를 초리까지 다 비벼올리고 엉뎅이를 들어 새끼를 당겨 놓고서야 거칠게 내뱉는것이였다. 《아무게면 어쩔텐가?》 《난 대대장이구 총각입니다. 이 집 처녀가 마음드는데 주겠습니까? 어찌겠습니까?》 빙빙 에돌거나 군소리를 싫어하는 성미라 철만은 곧은목으로 내밀었다. 령감은 어이 없는지 잠시 멍하니 쳐다만 보더니 《허-엇 참.》 하고 한마디 김빠진 소리를 하고는 짚을 뽑아 썩 썩 새끼를 꼬기 시작하였다. 철만은 속이 달았다. 령감이 너무 꿋꿋해서 휘기도 힘들거니와 부대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바짝바짝 다가오는것이 더욱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보이지 않고 재차 들이댔다. 《지나가던 헌놈한테 처녀를 맡기는것 같아 겁이 나시우? 그런 걱정은 말고 주시오. 곱게만 놀면 포대기에 싸업구라두 다니겠으니…》 포대기에 싸업구 다니진 못한다 해도 그때 철만은 맘드는 처녀만 얻으면 그렇게 사랑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들었는지 말았는지 령감은 그냥 한본새로 새끼만 꼬더니 문득 입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말투가 순하였다. 《쟌 내 손녈세. 애비, 에민 미국놈폭격에 다 죽구… 동생들서껀…》 《하니 그건 손녀를 주겠다는겁니까?》 《좋두룩 하게나. 이 곰같은 사람…》 령감이 너무도 선선히 승낙하는 바람에 철만은 일순 어리둥절해있다가 움쭉 일어나 토방밑에 넙적 엎드렸다. 《고맙습니다. 할아부님…》 그는 일어나 처녀를 한번 더 보고갈 생각으로 부엌문앞에 다가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처녀가 토방에서 오가는 말을 다 듣고 문을 닫아 걸었던것이다. 《동무, 그래야 필요 없소. 내 지금은 바빠서 그냥 가겠지만 기다리고있소. 오다 들리겠으니…》 철만은 저녁때 부대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들렸다. 그리고 사흘후에는 벌써 부대장도 포함한 대대군관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다. 한집에서 같이 살다가 팔순에 세상을 뜬 안해의 할아버지는 손녀사위가 부대장이 되였어도 그냥 《곰대대장》이라고 불렀는데 그날 철만이 오다 들리겠노라하고 바삐 떠나간 뒤 손녀를 불러다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난것 같다. 사내란 저래야 한다. 게다가 얼마나 의젓하게 생겼느냐?… 이제 두고봐라만 큰사람이 될게다.》 … 잠시 추억속에 빠졌던 철만은 별로 말이 없다 싶어보니 안해는 걸상등받이에 포개얹은 손등에 볼을 놓은채 웃는 모습으로 잠들어있었다. 연약한 몸으로 수백리길을 왔으니 왜 피곤하지 않으랴. 그는 일어나 안해옆에 가서 허리와 오금밑에 손을 넣어 조심히 들어 안았다. 몸이 어찌나 약한지 어린애처럼 가벼웠다. 안해는 그제야 잠을 깨며 미안하다고, 못다 들은 이야기는 아침에 마저 듣겠노라고 하면서 순순히 몸을 맡겨 아들곁에 누웠다. 《경호 아버지는요?》 《난 이제부터 일을 좀 해야겠소.》
그는 모포를 당겨 안해의 섬약한 몸에 덮어주었다. 안해는 애정에 찬 눈길로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피곤에
몰려 잠이 들었다. 책상에 마주앉은 송철만은 어째선지 요새 자주 둔한 아픔이 느껴지는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일보를 들여다보았다. 예상한대로 종합된 공사실적은 높지 못하였다. 그런대로 현상을 유지하는것은 함형부재생산뿐이고 가물막이나 기본언제공사는 어제보다도 실적이 또 떨어졌다. 더 볼 필요가 없어 그는 일보철을 접어 밀어놓고 생각에 잠겼다. 안타까운것은 공사전반이 침체에 빠지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잃는것이였다. 추위가 물러가면 실적이 좀 오르겠지만 이미 잃어버린 시간은 어디서도 보상할 길이 없었다. 특히 문제인것은 가물막이공사였다. 년전에 있은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결정에 의하면 가물막이공사는 원래 작년(1982) 장마철전까지 끝내기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예정기일 보다 반년이 더 지난 오늘까지도 공사를 끝내지 못한것은 물론 장차 시일을 얼마나 더 끌어야 결속할수 있겠는가 하는 예측조차 똑바로 할수없는 형편이였다. 송철만은 30여년간의 군사복무기간 오늘처럼 난감한 처지에 빠져보기는 처음인것 같았다. 다른 공사들은 뒤로 미루거나 잠시 묵이면서까지 세개의 기본공사대상에 력량을 집중하여 초기에는 눈에 보이게 성과가 나타나더니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기본언제공사, 가물막이, 함형부재장… 3개 대상건설이 모두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하였다. 수송문제는 여전히 긴장되였고 철근이며 수천수만장에 달하는 마대 등 자재가 떨어졌다는 소리가 때없이 튀여나왔다. 더욱 가늠하기 어려운것은 바다날씨였다. 춘하추동 한해치고 겨울계절이 제일 어렵다고 하지만 그 랑만적인 여름계절도 바다날씨는 심술사나운 계집애처럼 아침한겻은 미소를 머금은듯 잠풍하다가는 갑자기 폭풍을 몰아오거나 폭우를 내리퍼부음으로써 공사일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는것이였다. 더구나 지금은 《동장군》이 활개치는 겨울이다. 일이 안될수록 송철만은 병사들속에 들어가 살았고 어떻게든 세개 기본대상건설을 내밀려고 안깐힘을 썼다. 그런속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라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드리는게 옳지 않겠는가? 나라는 사람은 지도자동지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할만큼 준비가 되지 못하였다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며 앉은채로 아픈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다가 깜빡 잠들었다. 자면서 꿈을 꾸었다. 무슨 전투인가를 잘못 지휘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어떤 회의에서 추궁을 받는 꿈이였다. 주석단에는 강충일중장과 윤상설의 얼굴도 보였다. 자신은 무어라고 소리를 치느라고 하였는데 말이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흔드는 감촉에 그는 악몽에서 깨며 눈을 떴다. 옆에 안해가 와 있었다. 《무슨 꿈을 꾸셨어요? 그냥 <아니요, 아니요.> 하시니…》 《허, 내가 그럽데?》 철만은 별생각없이 꿈이야기를 했다. 안해는 듣더니 표정이 심중해졌다. 《일이 몹시 힘드신가 보군요.》 안해가 벌써 다 짐작한 눈치기도 하고 구태여 감출 필요도 없어서 철만은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아닌게 아니라 힘이 드오. 당으로부터 직접 받은 과업이니 목을 내대고라도 해제껴야겠는데 이 갑문건설이라는게 정말 군사와는 다르구만. 작전을 짜면 작전대로 되나 그렇다고 돌격전 같은거라도 할수 있나… 날은 자꾸 가는데 일자리는 시원히 나지 않지… 정말 골치 아프오. 내가 이러다 무슨 패전장군의 감투라도 쓰는게 아닌지 모르겠소.》 《형편이 그렇게두 나쁘세요?》 철만은 말이 아니라고 하며 말끝에 꺼지게 한숨까지 내불었다. 안해의 얼굴에 당장 걱정이 떠올랐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러다 혹시 이 갑문을 당에서 바라는 기한내에 완공하지 못하는게 아니세요?》 《글쎄, 그게 문제요. 기한이… 벌써 두해가 지나갔소. 지금 같아서는 남은 세해동안도 그저 이러다 말것 같은데 정말 야단났소. 여보, 차라리 일이 더 찌부러지기전에 이제라도 스스로 국장자리를 내놓는게 옳지 않을가?》 전에 없던 일로 철만은 이 밤 어째선지 안해앞에서 자신의 번뇌를 감추고싶지 않았다. 안해는 해쑥해진 낯색으로 생각에 잠겨 이윽히 달아오른 난로허리만 바라보더니 뜻밖에도 담담하게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저도 들었어요. 이 남포갑문이라는게 세상에서 제일 크구 그래서 건설하는것두 전쟁을 하는것처럼 어렵다는 소리를… 그러니 무슨 일인들 없겠어요. 제 생각에도 먼저 자리를 내놓는게 옳을것 같애요. 자신의 체면보다 갑문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당앞에서 면목은 잃는다 해도 갑문건설을 망쳐놓는 일이야 없어야지 않겠어요? 경호아버진 건강도 좋지 못해요. 일이 잘되지 않는것도 그렇지만 몸이 우선 견디지 못할거예요.》 한순간 철만은 전류 같은것이 찌르르 가슴 한복판을 꿰고 어디론가 줄달음쳐가는 느낌을 체험하였다. 천성이 몹시 순해빠진 사람이여서 시집온 이래 오늘까지 언제 한번 남편을 《당신》이나 《여보》라고 부르지 못하는 섬약하고 어질기만 하던 안해였다. 그런데 그 안해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리해와 대범하고 꿋꿋한 정신력이 깃들어있는것인가! 《당신말이 옳소. 중요한건 내가 아니라 갑문이요. 이 송철만이는 실패해도 일없지만 갑문건설이야 실패하면 안되지.》 그는 안해에게 할수 있는껏 해보다가 그래도 일이 여의치 않으면 주동적으로 사임을 제기하겠다고 하였다. 그들 부부는 깊어가는 겨울밤과 더불어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날이 샐녘까지 난로가에 앉아있었다. 정치부장 리응천은 아침에 돌아왔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그는 외투도 없이 시퍼렇게 얼어가지고 방에 뛰여들어서는 가방도 놓기 전에 난로부터 끌어안으며 《엇 춥다》 소리만 련발하는것이였다. 《외투는 어떡하고 그렇게 얼면서 다니오?》 송철만의 물음에 리응천은 진담인지 함형부재장에 희사했노라고 하였다. 《… 오다보니 전사들이 저마끔 모포를 걷어안고 부재장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새벽기온이 예견보다 내려가서 어제 타입한 구간이 얼수 있다고 보온대책을 세우러 간다는겁니다. 따라가보니 부대장이하 온 부대가 덮고자던 모포며 외투며 천막을 몽땅 걷어내다 부재에 씌우고있습디다. 그래 나도 벗었지요.…》 송철만은 급히 전화기를 끌어당겨 피도에 있는 서해기상연구소에 일기상황을 알아보았다. 직일연구사의 대답이 씨비리에서 발생한 찬전선의 영향으로 금일 새벽부터 앞으로 10여일간 기온이 평년보다 4~5℃가량 떨어질 예견이라는것이였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기온이 그렇게 떨어진다는것은 그만큼 공사실적이 떨어진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참, 국장동무.》 얼었던 몸이 좀 녹았는지 리응천은 걸상을 뒤로 떠밀며 비로소 생각난듯 물었다. 《부인이 지원물자를 한 자동차나 마련해가지고 왔다면서요?》 《그건 어디서 벌써 들었소?》 《나야 소식통이 아닙니까. 아무튼 대단합니다. 건강도 그리 좋지 못하다는데 한 차가 어딥니까.》 남편으로서 안해가 칭찬을 받는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면구스러운 점도 없지 않아서 철만은 지원물자가 마련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래도 리응천이 한본새로 안해에 대한 치사만 하기에 철만은 우정 화제를 돌려 총정치국에서 진행한 회의에 대해 물었다. 《정세와 관련한 토의가 있었습니다.》 리응천은 총정치국에서 있은 회의정신과 받아온 통보서의 내용 그리고 당면한 정치사업방향을 추려 이야기하더니 이렇게 꼬리를 달았다. 《… 한마디로 정세가 매우 긴강합니다. 총참모부에서는 적들의 <팀 스피리트>전쟁연습이 십중팔구 실전으로 번질수 있다고 보는것 같습니다.》 철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들의 이번 군사연습이 례년에 없이 큰 규모로 진행되는 조건에서 정세가 매우 긴장해지리라는 예견은 했지만 그것이 실전으로 번질수 있다고까지는 생각지 못한 그였다. 《형편이 그 정도면 혹시 우리도 건설을 중지하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게 아니요? 그런 말을 듣지 못했소?》 《뭐 딱히 들은 소리는 없는데 총정치국의 분위기를 봐선 그런 문제가 나설것 같기도 합니다.》 총정치국의 분위기가 그렇다면 총참모부에서는 벌써 명령서를 작성하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충일부총참모장은 왜 이런 때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것인가? 하기는 바쁠것이다. 그렇다면 귀띔이라도 한마디 해주면 될게 아닌가?… 이제 와서 그는 남포갑문건설을 중지하고 현지에서 부대를 재편성하던가 필요한 기동을 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였다. 마음이 급해났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앞질러 예견하고 결심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강충일중장을 만나려고 전화기를 끌어당기다가 그런 신중한 문제를 전화로 말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도로 밀어놓고 일어나 부국장을 찾았다. 무슨 통계맞추기를 하고있었던 모양 황석전은 손에 전자수판을 쥔채로 나타났다. 《오늘저녁 정무원지휘부와 공정계획을 토론하자고 했던것말이요. 》 책상에 마주앉아 서랍에서 백지를 꺼내놓고 글쓸 차비를 하며 철만은 명령조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그건 취소하고 독립부대장들과 군부대참모장이상급 지휘관들을 불러야겠소.》 그는 리응천이 하던 소리를 되풀이하고는 정세의 요구에 따르는 준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런데 흥분이 빠른 사람이라 눈이 둥그래지며 어지간히 놀라리라고 생각했던 황석전이 뜻밖으로 태연하였다. 그는 갑문건설을 중지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는것은 너무도 지당하여 놀랄 여지도 없다는듯한 인상이였다. 《아직 공식지시가 없는데… 너무 서두르는게 아닙니까?》 리응천의 말이였다. 불씨는 제가 가져왔지만 정작 불길이 일어나게 되니 좀 불안해지는 모양이였다. 그러나 철만은 이미 결심이 확고하였다. 《서둘러서 잘못될건 없을것 같소. 20만이요. 만사를 돈으로 해결하는 놈들인데 20만을 동원했다가 그냥 물러나겠소? 본전이라도 뽑자고 하겠지.…》 판단과 결심이 그러했던만큼 그는 아침식사후 아들도 듣는데서 안해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정세가 아주 좋지 못하오. 차를 내줄테니 오늘중으로 돌아가도록 하오.》 아들은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고 안해는 밤새 성에가 허옇게 불린 창가에 눈길을 준채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가겠어요. 하지만 가기전에 건설장을 돌아보도록 해주어요. 가면 모두 물어볼거예요.》 《그건 걱정마오.》 철만은 안해가 그렇게 선선히 응해주는것이 내심 고마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