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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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지령에서 고성쪽으로 나가는 무인지경의 산협길로 풍을 씌운 군용승용차 한대가 전조등을 켠채 안개속을 달리고있었다. 초여름의 흐리고 안개 낀 날 새벽이였다.

길이 나빠 자주 꽁무니를 들까부는 승용차 앞좌석에는 애어린 운전사와 몸이 틀지고 용모가 준수한 50대의 장령이 앉아있었다. 선이 굵은 철색 얼굴, 붓으로 찍어놓은듯 숱진 눈섭,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눈빛, 큼직한 주먹코와 약간 빠를사한 턱… 사나이의 표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은 이 장령으로 말하면 최근에 조성된 긴장한 정세와 관련하여 벌써 며칠째 대련합부대관하부대들의 전투동원태세를 검열하느라고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는 대련합부대 부사령관 송철만소장이였다.

간밤 전선배비를 가상한 어느 보병부대의 기동준비상태를 판정하고 지금껏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한 그는 이제라도 좀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는 좌석등받이에 목을 기대며 군모를 당겨 눈덕을 덮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피곤하고 자지 못한데 비해서는 정작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야 한다고 자신을 강박하여 겨우 어설픈 잠이 들었는데 급제동이 걸리며 승용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도로 깨여났다.

《왜 세웠나?》

짐작에 아직 남강계선에 도착하지 못했을것 같았다.

《저, 저게 뭡니까?》 운전사의 공포어린 목소리였다.

그제야 송철만은 눈덕에 덮었던 군모를 밀어올리며 몸을 당겨 바로앉았다. 그새 안개발은 좀 엷어졌으나 아직도 주변의 지형지물은 분간하기 힘든데 승용차 전조등빛이 간신히 가닿은 바로 거기 십여m 전방에 바위돌 같은 두개의 시꺼먼 형체가 길을 가로막고있었다.

처음 송철만은 그것을 산에서 굴러내린 바위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위돌》이 움직이면서 형체를 바꾸기도 하는것이였다. 그러니 짐승이란 말인가?… 벌써부터 수렵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며 그는 급히 사냥총을 찾았다. 그러나 총이 없었다. 사냥계절도 아니지만 이번 길에는 그럴 겨를도 없겠기에 애당초 가지고 떠나지 않았던것이다.

《원 저걸 살려보내다니…》

눈앞에 짐승을 보면서도 쏘지 못하는 통분함에 그는 주먹으로 무릎을 지그시 누르며 입만 쩝쩝 다셨다.

《그런데 저건 무슨 짐승들이 저렇게 큽니까? 길까지 떡 막구서…》

아직도 공포감을 다 가시지 못한 운전사의 물음에 송철만은 인차 대답을 주지 못했다. 전혀 예견못한 《조우》이고 짙은 안개속에 묻혀 형체조차 분명치 않아서 그도 아직 짐승에 대한 파악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이 지대에 흔한 노루나 여우는 저렇게 크지 못하다. 크기나 앉아있는 모양새를 보면 꼭 곰같은데 곰은 이 지대에 없다. 메돼지는 깊은 밤에만 활동하는것이고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혹시 범?… 사냥을 많이 해보았지만 아직 범과 맞다들어본적이 없었으므로 확신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꼭 범일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운전사가 그의 이런 예감을 사실로 증명해주었다.

《부사령관동지, 전 저게 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보구?》

《듣지 못하셨습니까? 요새 도하대대의 어떤 하사관이 산에서 새끼범을 한마리 안아왔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도하대대 정치지도원이 군부대정치부에 회의를 가다가 숲속에서 엄지범을 만나 죽을번 했답니다.》

운전사가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도 정체불명의 짐승들은 의연 길을 가로막은채 버티고앉아 이쪽을 노려보는 형국이였다.

이제 와서 송철만은 그것이 새끼를 잃은 한쌍의 성난 범이라는데 대하여 더는 의심치 않았다. 하긴 범이 아니고야 어떤 짐승이 저토록 무엄하게 길을 가로막고앉아 사람과 대결하자고 하겠는가.

《범이라는것은 달리는 운수차적재함에 막 뛰여오른다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범이 확실해지자 운전사는 겁이 나는 모양 되돌아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범이 아니라 천길 함정이 기다리고있다 해도 갈 길을 마다하고 돌아설 송철만이 아니였다. 그는 냅다 밟아서 범이던 뭐던 바퀴로 깔아뭉개라고 하며 권총을 꺼내 장탄하였다. 뭇짐승들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만났다가 그냥 헤여진다는것은 두고두고 후회될 일이여서 정황을 보아 권총으로라도 한번 《접전》해볼 심산이였다. 드디여 차가 움직이였다. 운전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얼마동안 조심스레 차를 전진시키더니 갑자기 변속지레대를 나꾸채며 가속답판을 힘껏 밟았다. 그바람에 놀란 말처럼 껑충 뛰여오른 차는 이어 차체를 부르르 떨며 무서운 속도로 안개속을 내닫기 시작하였다. 송철만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채 권총쥔 손을 창턱에 의지하고 앞을 주시하였다. 거리가 줄어드는데 따라 길을 가로막고앉은 두개의 시꺼먼 형체가 점점 뚜렷이 다가왔다. 하여 이제는 두 짐승이 형체로가 아니라 실물로 확연히 분간되자 그는 옆창으로 상체를 내밀며 권총으로 오른쪽 짐승의 미간을 겨누었다. 찰나 목표물이 갑자기 《따-웅》 하는 소리를 쌍으로 지르며 바람처럼 가볍게 머리우로 날아넘어갔다. 뒤따라 옆창으로 확 풍겨들여오는 역스러운 노린내… 어망중에 발사순간을 놓친 송철만은 다시 기회를 얻으려고 날쌔게 돌아앉으며 뒤창을 내다보았다. 승용차우로 날아넘어간 두마리의 범은 벌써 저만치 길우에 내려 차가 질주하는데 따라 형체가 점점 작아지며 안개속에 묻히였다. 따라오는것 같지 않았다. 아마 혼이 났던가 아니면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복수》의 목적을 포기해버린 모양이였다.

(골통은 아니더라도 방아쇠는 당겨야 하는걸…) 권총인것을 고려하여 미간만 노리다가 발사순간을 놓친것이 아쉬워 송철만은 입을 쩝쩝 다시였다.

승용차가 목적지인 남강계선에 도착한것은 그로부터 한시간가량 지난 아침 다섯시경이였다. 안개가 끼기는 거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추지령쪽보다는 그리 짙지 않아 차가 전조등을 끄고도 달릴수 있었다. 송철만은 운전사에게 먼저 도하대대에 들어가자고 하였다. 도하대대는 남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지막한 야산밑에 위치하고있었다. 승용차는 곧바로 직일관실앞에 가서 멈춰섰다.

차소리를 듣고 대대직일관이 급히 뛰여나왔다. 직일관의 보고를 받고 난 송철만은 직일관실에 들어가 우선 전화로 군부대참모부에 자신의 행처부터 알리였다. 그리고 송수화기를 놓자 상위인 대대직일관과 시간을 맞춘 다음 드디여 명령을 내렸다.

《폭풍!》

마른 하늘의 벼락과도 같은 그 한마디에 고요속에 잠자던 대대병영은 순식간에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전투경보를 알리는 신호나팔과 수동싸이렌이 다급히 울리는 속에 철갑모에 배낭을 메고 총을 쥔 군인들이 병실문이 메게 쏟아져나오고 멀지 않은 사택마을들에서는 대대장이하 군관들이 헐떡거리며 달려나왔다. 안개속에서 장구들이 절칵절칵 부딪치고 사방에서 이름과 분대 혹은 소대를 부르거나 정렬하라는 구령들이 끊임없이 울렸다. 한 이십분가량 계속되던 그런 소란이 잦아들무렵 대대장이 달려와 머리에 쓴 철갑모를 바로잡고 전투비상소집이 완료되였음을 보고하였다. 송철만은 대대장에게 가상적정을 주고 전선진출을 위한 군부대의 남강도하를 보장할데 대한 임무를 하달하였다. 그리하여 정황에 따르는 전투임무가 수립되고 대대병영이 다시 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배떼니 부통이니 극복판이니 하는 중량물과 수중작업기재들이 차에 실리고 끌려서 정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좀 산만하기는 해도 신속성만은 흠잡을데 없군.…)

바줄퉁구리며 통나무를 실은 마지막수송차가 정문밖으로 사라지자 1차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 송철만은 직일관실에 들어가 전화로 주둔지가 그리 멀지 않은 땅크부대와 평사포부대를 찾아 한시간안으로 각각 한개 중대의 땅크와 포를 도하지점에 도착시키라고 지시한후 도하장이 전개될 남강으로 나갔다.

강변 뚝우에서 차를 멈춰세우고 내린 그는 몸에 칭칭 감겨도는 안개발을 끌고 도하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는 이미 배떼무이가 시작되여 뚝딱거리는 망치질소리에 강변의 고요가 산산쪼각나고 안개속에서 일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얼른거렸다. 놀라운것은 벌써 배다리와 련결되는 기본도로가 백사장까지 거의 나가고 도하장으로 들어오는 대피도로들도 뽑혀있는것이였다.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배떼무이였다. 이제 겨우 기슭을 떠났을것이라고 생각했던 부교가 안개에 묻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복판에 멀리 나가있었다. 도하와 무관계하게 기동시간을 판단하기 위해 포와 땅크의 도하장 도착시간을 바싹 당겨주었는데 이제 보니 서로의 임무완료시간이 리상적으로 맞아 떨어질것 같았다. 예견이 틀리지 않아서 배다리가 강건너 대안에 거의 닿을무렵 땅크의 발동소리가 울리고 뒤따라 평사포중대가 도착하였다.

마침내 부교가 건너편 기슭에 이어지고 도하준비도 완료되였다. 먼저 땅크중대의 도하를 지시한 송철만은 선두땅크에 올라 강을 건너갔다. 그리고 거기 건너편 대안의 부교앞에 서서 긴장한 시선으로 강을 건너오는 땅크며 포차들을 주시하였다. 마지막포차가 무사히 강을 건너오자 시계를 보았다. 전투비상소집을 명령한 때로부터 꼭 한시간 오십분이 되였다. 부분적으로 결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도하대대는 물론 땅크와 평사포중대의 동원태세도 원만한것으로 평가할수 있었다.

철수는 전개보다 곱절이나 빨랐다. 하여 대대가 도하장비를 걷어싣고 병영으로 들어와 식사까지 하고난것은 안개도 거의나 걷히고 해가 중천에 떠오른 열시반경이였다.

대대장과 함께 식당에서 나오던 송철만은 그제야 생각나서 누가 호랑이새끼를 잡아왔다는게 사실인가고 물었다.

대대장은 사실이라고 하며 그를 정문보초소로 안내했다. 보초소옆에 토끼우리 같은것이 천막쪼각을 들쓰고있었다. 대대장이 천막자락을 걷어올리자 쇠살창안에서 뼈다귀를 뜯고있는 범새끼가 보였다. 생김새는 흡사 고양이를 닮았는데 머리와 발이 좀 크고 미간이 넓은것이 다른 점이였다. 송철만은 꺾고앉았던 오금을 펴며 범새끼를 보초옆에 두는 까닭을 물었다. 그런데 대대장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사택마을 개들이 병영에 들어오는것을 단속하기 위해서라는것이였다.

《이게 여기 있으면 개들이 못들어오나?》

《못들어옵니다. 저놈이 저렇게 작고 순한것 같지만 개만 보면 독을 쓰는데 커다란 개들이 당장 기가 죽어 오줌을 질질 갈기면서 내빼군 합니다.》

《허허, 과시 범은 범이로군!》

그는 보초소를 떠나 대대지휘부로 올라가면서 대대정치지도원이 (그는 군부대병원에 입원중이였다.) 호환을 당하던 이야기를 들었다.

《어슬녘인데》 하고 대대장은 마치 자신이 당한 일처럼 말하였다.

《범이란 놈이 묵은 묘잔등뒤에 엎데있다가 획 달려드는데 언제 총을 꺼낼새도 없더랍니다. 그래 이젠 꼼짝 못하고 죽었구나 하면서도 정찰병출신이라 날쌔게 옆으로 뻗으면서 발로 범의 불두덩을 힘껏 올리찼다는겁니다. 그게 아마 바로 찬 모양입니다. 범이란 놈이 갑자기 낑- 소리를 지르며 저만치 나가 몇고패 딩굴더니 정신없이 거기를 핥더라지 않습니까. 이때다! 하고 정치지도원은 권총을 뽑아 냅다 갈겼답니다.》 그러나 당황한 김에 맞히지는 못했는데 마침 가까이 있던 군부대 통신결속소 통신병들이 총소리를 듣고 달려오는바람에 범이란 놈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지 숲속으로 들어가더라는것이였다.

《흠, 거 통신병들이 아니였으면 큰일 날번 했구만. 정치지도원도 담이 큰 사람이지만…》

송철만은 간밤 로상에서 당한 일이 생각나면서 범새끼를 그냥 끼고있다가 또 무슨 화를 당하지 않을가 걱정하였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라 대대장은 배포가 유했다. 정치지도원을 병원에 입원하게 만든 리유만으로도 그놈의 엄지범을 쏘아잡겠다는것이였다.

《… 아무튼 저 새끼를 잘 리용하면 쉽게 잡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대대장의 자신만만한 계획에 송철만은 고개를 저으며 그러지 말고 새끼범을 엄지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대대장의 눈이 둥그래지는것을 보고 송철만은 왜 범새끼를 놔주어야 하는가를 설명했다.

《범을 잡는다는게 그리 쉽지 않아. 그리구 새끼를 리용해서 어미를 잡는다는건 사나이들이 할짓이 못돼》

적어도 범을 그런 식으로 잡는다는건 등뒤에 대고 총을 쏘는것보다 더 졸렬한 처사라고 하였다. 대대장은 그제야 리해가 되는지 얼굴에 열적은 웃음을 띄우며 알겠다고, 오후에 무장호위를 붙여 새끼범을 안아온 자리에 도로 가져다놓겠노라고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산탁을 깎아내고 들여앉힌 대대지휘부마당에 들어섰다. 송철만은 마당끝에 있는 흡연장에 가앉으며 대대장더러 장기판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수도 높지만 공간시간만 생기면 어디 가서든 장기를 두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였다. 그러나 장기판을 내왔지만 대대장은 수가 변변치 못한 사람이여서 감히 마주앉지 못했다. 송철만 역시 그런 풋장기군과 마주앉을 생각이 없어서 대대적으로 장기수가 제일 높은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대대장은 얼마후 초기군무사관을 한명 달고 나타났다. 사관은 키꼴이나 있고 어딘가 좀 싱거워보이는 친구였는데 깨끗한 정복차림에 규정대로 거수경례를 붙이고 저만치부터 힘찬 정보로 걸어오더니 갑자기 못박히며 큰 소리로 보고하였다.

《소장동지, 초기군무 상사 박선봉 장기시합을 위해 왔습니다.》

군관이 아니라 초기군무사관이 나타난것때문에 속으로 (이놈의 대대엔 장기군이 정 없긴 없는가보다.) 하고 생각하였는데 제법 장기시합을 왔다는 소리도 어이 없거니와 다림발이 선 새 군복에 새 군화를 신고 면도까지 깨끗이 한 사관의 차림새가 류달라서 철만은 동문서답격으로 물었다.

《동무는 도하훈련에 참가하지 않은것 같구만?》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초기군무사관의 대답이였다.

《왜?》

그에 대해서는 대대장이 대답하였다.

《이 동무는 남포갑문건설에 추천되였는데 오늘 떠납니다.》

그래서 훈련에 참가시키지 않았다는것이였다. 리해되는 일이기도 하고 요새 총참모부명령으로 관하 구분대들에서 군무생활에서 모범적인 군인들로 남포갑문건설에 참가할 인원들을 추가로 선발하고있음을 아는터여서 철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관에게 말했다.

《남포갑문건설은 당에서 아주 중시하는 건설이야. 그래서 건설도 우리 군대가 맡은거구… 그러니 부대의 명예를 위해서도 일을 잘하라구.》

《알겠습니다.》 사관은 가슴을 쭉 펴며 힘차게 대답하였다.

그제야 송철만은 장령복바지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며 화제를 돌려 절반 롱담으로 사관더러 장기를 배운지 몇해나 되는가고 물었다. 그런데 사관의 대답이 걸작이였다. 짜개바지를 입고 밥상밑으로 기여다니던 때부터 배웠다는것이였다. 머슴방에서 아홉살때 배운 장기라고 력사를 자랑하는 송철만으로서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사관은 히죽 웃더니 할아버지가 린근 아홉동네에서 이기는 사람이 없는 소문난 장기군이였는데 손자들에게 물려줄것이 장기수밖에 없다면서 버들회초리로 종아리를 갈기며 배워주는바람에 재간없이 명수급이 되였노라고 하였다.

두 장기군은 흡연장 걸상우에 장기판을 펴놓고 마주앉았다. 로련한 장기군들은 수를 쓰기전에 장기쪽을 쥐는 솜씨만 보고도 상대방이 장기를 얼마나 두었는지 그리고 수가 어느 정도겠는가를 판단한다. 사관의 장기쪽을 다루는 솜씨가 과연 서툴지 않았다. 장기쪽이 손끝에 척척 들어붙는것이 두기도 많이 두었지만 만만한 자신심까지 느껴졌다. 그렇다고 송철만은 별로 위구를 느끼지 않았다. 적어도 군부대에서는 자기를 이길 장기군이 없다고 단정하는 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불과 몇수 써보지 못하고 장기판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대대직일관실로 군부대참모부에서 전화가 왔던것이다.

송수화기틀 드니 작전부장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 저녁 열여덟시까지 총참모부에 도착해야겠습니다. 륙로로는 시간을 보장하기 힘드니 군부대사령부에 들리지 말고 현지에서 곧장 비행장으로 가십시오. 거기서 직승기가 대기하고있을겁니다 》

송철만은 알겠다고 하고나서 물었다.

《그런데 총참모부에선 왜 부르는것 같소?》

《그건 모르겠습니다. 정세가 정세인만치 전연부대들의 전투준비상태를 직접 료해하자는것이 아닌지… 여기서는 그렇게들 추측하고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대대지휘부로 가면서 철만은 총참모부에서 부르는 리유를 따져보았다.

(… 작전부장의 말대로 과연 정세와 관련된 전투준비상태의 료해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 왜 참모장이나 작전부장을 부르지 않고 나를 부르는것인가? 내가 전투준비검열을 다니기때문에 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수 있다고 보아선가? 아마 그때문일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전쟁이 림박했다는 의미는 아닐가?)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자 엊그제 군부대사령부를 떠날 때 읽어본 총참모부 적정통보가 떠올랐다.

통보에 의하면 미제와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의 새 전쟁도발책동은 최근보다 현실적인 성격을 띠면서 각일각 실전에로 접근해오고있었다. 신년벽두부터 이해를 《결전의 해》로 선포하고 2월에 미국대통령 레간의 호출로 백악관에 가서 남조선강점 미군철수계획을 백지화한데 맞도장을 찍고 남조선군《전력증강계획》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이른바 《방위공약》리행을 담보받은 전두환역도는 백악관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경주지역《유지》들앞에서 80년대의《승공》통일을 위해 집권 전기간 오직 《국력강화에만 전력하겠다》고 뇌까리였다. 그런가 하면 포항제철에 가서는 《무력증강과 군수산업을 위해서 철강생산이 중요》하다고 떠벌이였다. 역도는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4월 공군사관학교 제29회 졸업식과 해군사관학교 제35기 졸업식에 련이어 나타나 이전 독재자 박정희가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고 웨치던 버릇을 본따 《비상사태에 대처하여 실제적이며 능동적인 태세》를 갖추어 북과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전두환의 이와 같은 전쟁열에 초점을 맞춘 미국상전의 움직임은 오히려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있었다. 이해 상반년에 들어와 미국은 그 어느때보다 많은 군사요원들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전쟁모의를 하였다. 송사리들은 그만두고라도 1월에는 태평양미공군 총사령관이, 3월에는 미륙군참모차장, 미공군참모총장, 미제7함대사령관, 미상원군사위원회 자문위원, 4월에는 미륙군 물자전개준비태세사령관, 미국방부 동아시아 및 태평양담당부차관보 그리고 5월에는 전략공군사령관이 각각 남조선에 날아들었다. 이들 고위군사요원들이 참가한 전쟁모의들에서는 《북침》을 예상한 이른바 《5일전쟁계획》 《9일 단기 맹타격전략》 《핵전쟁비상계획》 등 이미 짜놓은 전쟁계획들이 재검토되고 수정보충되였으며 《한미련합군사령부》의 작전지휘체계를 강화할데 대한 문제들이 더욱 구체화되였다.

(… 그렇다면 이젠 포성을 울리겠다는것인가? 울릴테면 울리라. 우리도 필요한 준비를 갖추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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