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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으로 만든 질통을 등에 진 윤건호는 삽으로 뜬 세멘트혼합물이 잔등을 울려주는 수자를 속으로 세고있었다. (셋… 다섯… 여덟.) 건호는 돌아보지 않은채 소리쳤다. 《한삽 더 !》 《됐습니다.》 《빨리 하나 더!》 건호는 숨을 크게 들이그으며 타입장을 향해 내달렸다. 혼합장에서 타입장까지 200m… 1중대가 담아주고 나머지 대대전체가 질통, 맞들이, 목고 하는것들을 지고 들고 멘채로 바삐 뛰여다닌다. 모두들 벌겋게 달아올라 헐떡거리고 흰 면내의들이 땀에 푹젖어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도 그들의 땀에 젖은 얼굴을 식혀주지 못한다. 선동원이 힘찬 구호를 웨쳤다. 《동무들, 조국이 우리를 지켜보고있다. 힘을 내여 더 빨리 달리자!》 그에 화답하여 《달리자!》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달음질이 더욱 빨라지는것이였다. 윤건호는 앞서가는 질통군들을 따라잡으려고 입술을 사려 물었다. 그러나 타입장에 다 이르도록 종시 따라잡지 못한채 달리던 속도로 질통의 혼합물을 쏟아던지고는 다시 돌따서 혼합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헐떡거리며 연방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르 훑어내려서는 땅에 뿌려던졌다. 목에서 겨불내가 일고 심장이 금시 목구멍으로 튀여나오는것 같았다. 부대와 떨어져 철길공사를 할 때만 해도 철길공사를 대단히 힘든 일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철길공사를 끝내고 돌아와 부재장타입작업을 해보니 철길공사는 또 아무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힘든것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것은 더 추워지기전에 빨리 바닥공사를 끝내고 함형부재시험생산에 들어가는것이다. 바닥공사는 아직도 일주일가량 해야 결판이 난다. 함형부재의 대형화… 어버이수령님께서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중시하시는 새 공법의 실현을 당장 눈앞에 보고싶었다. 뒤에서 누가 찾는 소리에 돌아보니 정치지도원 리종각이였다. 그도 질통을 졌는데 헐떡거리며 뛰여오더니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의 땀부터 씻으며 물었다. 《부대에서 총화모임이 있다던데 아직도 여기 있습니까?》 《지금 몇시게?》 혁띠에 달아맨 시계를 꺼내보니 벌써 네시반이 넘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회의시작전까지 부대지휘부에 닿기 힘들것 같았다. (젠장, 부대장한테서 추궁을 받게 됐군.) 부대장은 회의시간을 지키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여 만장앞에 세워놓고 질책하는것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였다. 혼합장에 도착하여 질통을 벗어놓기 바쁘게 그는 물통에 엎드려 세수를 대충 하고 전투가방을 찾아쥐자 부대지휘부를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서둔 보람도 없이 도착하여보니 회의는 이미 시작되고 부대참모장이 한창 총화보고를 하는중이였다. 다행스러운것은 회의장소인 부대장의 방이 비좁아 여러 사람이 출입문밖 복도에까지 걸상을 놓고 앉은것인데 맨뒤쪽 걸상에 마침 2대대장이 앉아있었다. 그가 내주는대로 걸상 반쪽에 엉뎅이를 붙인 건호는 이제는 거의 마감고비에 이른듯 싶은 참모장의 총화보고를 듣다 말고 귀속말로 2대대장에게 물었다. 《부대장이 야단하지 않습데?》 《안할리가 있소? 하지만 걱정 마오. 꿩 잡는게 매라고 1대대의 성과가 높이 평가되였으니 이젠 욕을 안할게요.》 《보고에서 메랍데?》 《뭐 말은 많이 했는데… 쥐여짜면 어려운 조건에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철길공사를 앞당겨 끝내 부대의 영예를 빛내고 함형부재생산을 공정대로 밀고나갈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았다는건데… 하여튼 굉장히 평가했소.》 이번 총화회의에서 철길공사를 공정계획보다 거의 한달 앞당겨 끝낸 대대의 성과가 일정하게 론의되리라는것은 예견한바이지만 그처럼 높은 평가를 받게 될줄은 몰랐던 윤건호는 기쁜김에 얼굴마저 화끈 달아올랐다. 이윽고 참모장이 총화보고를 끝내고 앉자 부대장은 보고에 대한 의견여부를 물었다. 대위인 3대대장이 자기 단위의 작업실적이 보고에 지적된것보다 높다는것을 해명한 뒤로 더는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내가 좀 몇마디 합시다.》 부대장은 우선 1대대 즉 윤건호의 대대가 철길공사에서 거둔 성과를 다시금 높이 평가한뒤 매 구분대별로 작업실태를 분석하면서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고 교훈을 찾아주거나 경고도 하였다. 그것이 끝나자 참모장이 다시 일어나 부대앞에 나선 새로운 전투과업인 함형부재시험생산과 관련한 공정표를 제시하고 매 대대의 전투임무들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윤건호에게는 대대에 분담된 전투임무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대대는 타입을 맡은 3대대에 콩크리트혼합물을 대주는것이였다. 말하자면 일선 돌격조가 아닌 보장조였다. 반년가까이 부대와 떨어져 부차적인 임무를 수행했는데 또 그런 시시한 일을 시킬셈인가? 적어도 1대대를 말이다. 감정 같아서는 당장 일어나 사유를 밝히고 임무를 바꾸어줄것을 요구하고싶었지만 따로 조용히 해결하는 편이 옳은 방법일것 같아 참았다. 총화회의가 끝나고 구분대장들이 몰려나가자 건호는 부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부대장의 책상앞에 바투 다가가 뻗치고선 그는 누르고있던 감정을 터쳤다. 《부대장동지, 부대에선 왜 우리 대대를 이렇게 이붓자식처럼 취급합니까?》 담배를 피우며 참모장에게 무슨 지시를 주고있던 부대장은 눈이 어웅해서 마주 쳐다보더니 이쪽의 감정에 말려들지 않고 실무적으로 되물었다. 《말하자는게 뭐요?》 《우리 대대는 근 반년동안이나 부대와 떨어져 철길공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혼합물보장이나 하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혼합물보장이 어째서?》 《우린 타입을 하겠습니다. l대대야 어쨌든 앞에 서는게 원칙이지요.》 부대장은 의미있는 눈길로 참모장을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1대대장이 일은 잘하는것 같은데 눈치는 무디구만.》 《?…》 건호는 부대장이 말하려는 취지를 가늠할수 없었다. 역습을 당한 기분이였다. 《이보라구, 대대장동무는 대대에 독립적인 임무가 제기되면 전투력이 약한 중대를 고르나? 건설에선 보장이 힘들지 일 자체가 힘들어서 못하는건 아니야. 철길공사에서 보인 실력도 있겠다. 그래서 우정 보장에 배치했는데 이붓자식으로 취급하다니…》 《…》 부대장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적당히 얼려넘기자는것인지 몰라 건호로서는 할 말이 없고 또 듣기에 나쁘지도 않았다. 거기에 참모장이 설명을 달았다. 《여보 대대장동무, 부대장동무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건 부재생산이 시작되면 인차 알게 될거요. 한두달 해보고 성차지 않으면 제기하오. 타입에 돌려줄테니…》 그것은 귀맛이 당기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두달로 약속합시다.》 거수경례와 함께 부대장의 방을 나온 건호는 대대를 향해 걸었다. 날은 이미 어둡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 겨울에 잡히면서 벌써 두번째로 오는 눈이다. 피도에 기지를 둔 서해해양기상대의 일기예보에 의하면 올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추위가 일찍 들이닥쳐 12월 하순경부터 바다가 얼것이 예견된다더니 틀리지 않는것 같았다. 대대지휘부에 들어서니 정치지도원 리종각은 책상에 붙어앉아 글을 쓰고있었다. 월 정기당총회보고서와 결정서를 써야겠다고 며칠전부터 벼르더니 오늘 저녁에야 시작한 모양이였다. 《회의에 가서 뭐 비판이나 받지 않았습니까?》 글은 글대로 쓰며 하는 리종각의 말이였다. 눈이 녹으며 털이 젖어 이리저리 나눕은 군모를 벗어 걸고 걸상에 앉으며 윤건호는 좀 희떠울사한 어조로 대꾸했다. 《비판이 뭐요. 철길공사를 잘했다구 칭찬만 받다 왔는데…》 그는 총화회의과정을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시험부재생산과 관련하여 대대가 콩크리트혼합물보장을 하게 된데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아하, 그렇다면 이 결정서도 내용이 좀 달라져야겠는데요?》 《달라져야지. 기본사상이 <철길공사에서 발휘한 대대의 전투력을 함형부재생산에서 다시 한번 떨치자!> 뭐 이런 식으로 되야 할것 같소.》 《옳습니다. 거기에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안고> 하는 사상을 앞에 붙여주면 결정서의 종자가 아주 뚜렷해집니다. 허허허…》 결정서를 다시 써야 하는 수고보다 종자가 뚜렷해진것이 더 기쁜듯 리종각은 너털웃음을 터쳤다. 그는 만년필을 놓고 아주 돌아앉았다. 앉자마자 《아 내가 중요한걸 잊었구만.》 하며 도로 일어나 걸상을 치우고 책상밑에서 지함을 끌어냈다. 높이도 그래 사방으로 두어뽐정도 될 아담하게 생긴 지함인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책상우에 올려놓는걸 보니 꽤 무거워보였다. 《자, 받으시오. 대대장동무가 학수고대하던것입니다.》 지함을 앞에 밀어놓아주며 하는 리종각의 말에 건호는 눈이 덩둘해졌다. 《이게 뭐인데?》 《이런겁니다.》 리종각은 제손으로 지함뚜껑을 이리저리 제껴주었다. 지함을 들여다본 윤건호는 얼결에 벌떡 일어나며 발꿈치로 걸상다리를 걷어찼다. 지함속에 들어있는것은 그야말로 학수고대하던 수리대학교재였다. 손에 잡히는대로 꺼내보니 《구조물시공》이고 다른것을 꺼내보니 《수리구조물》이였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났소?》 《집에서 보내왔지요. 어머니가 보내더랍니다.》 《가져오기는?》 《왜 생각나지 않습니까? 유정이라는 녀성연구사… 만나면 인사나 잘하십시오. 내가 초벌은 했지만…》 윤건호는 그새 철길공사를 마감하느라고 감감 잊고있던 그 녀자의 모습이 눈앞에 방불히 떠올랐다. 다툼질로 시작된 사이였다. 한데 이제는 수고를 해준 고마운 녀자로 되지 않았는가. 《만나면》이 아니라 우정 찾아가서라도 인사를 하고싶었다. 건호는 앉은 자리에서 책상우에 널린 책들을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우선 함형부재의 대형화에 대한 서술부터 찾고싶었다. 그러다가 그는 중얼거렸다. 《이거 어데도 함형부재를 구체적으로 전개한건 없구만.》 리종각은 없기야 왜 없겠는가고 하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없을수도 있다고 제가 한 말을 부정하였다. 《… 왜 없을수 있는가? 교과서라는건 실천속에 검열된 진리들만 골라넣는게지요. 그런데 함형부재공법이야 남포갑문건설에서 우리가 처음 해보는 새 공법이 아닙니까? 그러니 아직 실천의 검열을 받지 못한 셈이지요.》 《하긴 그렇구만.》 《그러나 실망할건 없다고 봅니다. 있으면 좋구 없으면 우리가 검열해서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젠장, 그러니 함형부재공법은 교과서를 위해서두 반드시 성공시켜야겠구만.》 윤건호는 새삼스럽게 어깨가 무거워지는것을 느끼며 먼저 공부할 책을 몇권 골라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