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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건대장은 북부지대의 야전숙소마당에서 서성거리며
마가을은 산천에 자기의 마지막흔적을 남기고있었다. 메마르고도 차거운 바람속에서도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자태를 잃지 않고있지만 단풍나무, 밤나무, 참나무들은 울긋불긋 차려입었던 화려한 단장을 어느새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보이고있었다.
박진건은 미구에 닥쳐오고야말 겨울을 예감하며 이제 곧
최근 미제는 현대전에 관하여 새롭게 세운 전략을 공공연히 떠들고있다. 지난 시기 전쟁은 수백수천만의 쌍방군사인원이 피를 흘리며 벌린
대결이였다면 지금 전쟁에서는 상대측의
엄중한것은 적들이
조성된 정세는 혁명의
담화가 끝났는지 김철만이 밖으로 나오고있었다.
박진건은 투사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김철만은 박진건을 알아보며 반기였다.
《참, 총정치국에서
박진건은 군수공업을 맡아보는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바람에 어리둥절하였다.
투사는 짐짓 웃음을 지었다.
《거 근위418련대에 있다는 사관 말이요, 어머니가 내가 아는 공장에 있더구만!》
박진건은 그제야 짐작되여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런걸 난! …》
《어서 들어가보오.》
김철만은 곧 자기 승용차가 있는데로 걸어갔다.
박진건은 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조심히 열어주는 문을 지나 집무실로 들어섰다.
《동무들이 올려보낸 정기휴가를 갔다온 군인들의 반영자료입니다.
일부 일군들이 그처럼 우려하였지만 우리 군인들은 후방의 엄혹한 현실에 비관한것이 아니라 더욱 큰 신심과 적들에 대한 적개심을 안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박진건도 가벼운 마음으로
《
《옳습니다. …》
《여기 강계에 고향을 둔 한 군인의 반영자료도 있습니다. 그 군인은 고향의 현실과 가정사정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일의 유격구정신으로 일떠선 그곳 공장 로동계급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휴가도중 부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박진건은 문건을 종합하며 이미 느꼈던 자기의 소감에 대해 말씀드렸다.
《병사도 병사이지만 어머니가 훌륭한 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찌기 남편을 잃은 외로운 몸이고 또 현재 건강도 좋지 못하지만 자기가 다루는 기대앞을 떠나지 않고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자 김철만투사동지를 만난 자리에서 그 녀인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도 관심해줄데 대해 부탁했습니다. 그런 성실한 로동계급이 있어 우리 군수공업이 억세게 전진하고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총정치국사업을 들어봅시다.》
《
《그러니 공연준비가 다되였다는겁니까?》
《예, 합창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를 포함하여 여러 종목들로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창작가들과 배우들은 한시바삐
《안변청년발전소건설중간총화에서 제기된 문제와 여기 군수공장들의 생산문제를 처리하고는 곧 평양에 올라가겠습니다.
참, 일전에 가사를 고쳐주었는데 선률과 밀착이 잘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영순동무와 배우들의 반응은 어떤지…》
박진건은 잠시 창조현장에서 박영순을 만났던 때를 돌이켜보며 말씀드리였다.
《박영순동무는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무엇을 그려보시는듯 하는
우리와 우호적이며 쁠럭불가담운동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던 알제리에 가서 공연할 때였다.
우리의 예술단이 파문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나라 국가수반이 공연을 볼 결심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오자 박영순은 국가수반인 후아리 부메디엔에 대한 노래를 창작하여 공연무대에 올릴것을 제의하였다.
일부 지휘성원들이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시간은 하루저녁밖에 없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박영순은 단숨에 《후아리 부메디엔의장에게 영광을 드리네》라는 가사를 훌륭히 창작하였다.
여기에 힘을 얻은 작곡가가 곡을 붙여 노래는 하루밤사이에 나무랄데없이 형상되여 그 이튿날 공연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성공적이였다는것은 더 말할나위 없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것이다.
이처럼 박영순은
《형상도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였다니 됐습니다. 최근에 나온 노래들중에서 가장 큰 성과작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박영순동무가 오늘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였습니다. 현실체험을 떠나보내길 잘했습니다.》
박진건은 비로소 박영순의 노래창작동기와 함께 김화준중장과 련결된 현실체험경위를 말씀드렸다.
《…그때 박영순동무가 현실체험지를 418련대로 택한데도 리유가 있었습니다. 418련대 정치위원이 김화준중장동무의 아들이였습니다.》
《중장동무에게 그런 아들이 있습니까?》
박진건은 마음이 즐거워져 덧붙여 말씀올렸다.
《예, 최전연에 시집간 딸도 한명 있습니다. 바로 언젠가 보고드렸던 대성요업공장의 세명의 처녀들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저도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음! …》
《오늘날 새 세대들의 지향과 소행은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로명욱동무한테서도 보고받았지만 418련대에서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는 사업이 그 어디보다 활발히 진행된데는 중장동무가 자식들에게 준 영향도 있었을것입니다.》
《이렇게 합시다. 이번 공훈합창단공연에 김화준중장동무와 그의 아들인 418련대 정치위원을 초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응당 초대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박진건은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박진건은 초조히
인민군대에서 오중흡7련대의 사령부보위정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지도서였다.
《이 지도서가 1970년대에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해 만들었던 문건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어떤 혁신적인것이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박진건은 한순간 당황하였다. 이런 질문은 전혀 예견 못했던것이다.
《내용상
박진건은 침착히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
때문에 총정치국은 모든 장병들을
《그래서 그랬다? …》
《바로 되자면 동무는 우리의 투쟁사에서 전형으로 될수 있는 오중흡7련대를 두고 어느 한 국면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민군대사업을 추켜세울수 있는 하나의 시대정신을 창조하는데로 문제를 끌고갔어야 했을것입니다. 더우기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 사회의 본보기로 내세우고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시대정신을 창조하는 문제는 혁명의 중요한 요구로 나서고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건을 보면 인민군대의 전반적현실을 떠나 사상사업을 국면적인 문제에 인위적으로 복종시킨듯 한감을 금할수 없게 합니다. 실무화되였다고 할가? 방법론도 없고…》
박진건은 더 말씀드릴수 없었다. 자인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요구는 크게 내세웠지만 사상사업의 견지에서 볼 때 방법상 혁신적이 못되는것이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우리의 투쟁사에서 전형으로 내세울수 있는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을 실무화하였다는것이다.
《박진건동무는 이젠 나와 함께 일한지도 퍼그나 되였는데 사상사업에서 형식주의… 언제면 그 틀에서 벗어나겠습니까?
동무들은 쩍하면 옹위요 사수요 하며 만세를 부르고 구호를 웨치기를 곧잘 하는데 이렇게 하는것이 사상사업이라면 박진건동무의 사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것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동무는 이미 잘 알고있기때문입니다.
오중흡7련대에 대해서는 이미 102련대시찰때 이야기된바 있으니 일을 전개하겠으면 그 방향에서 더 연구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안에서 박진건은 홀로 한숨을 쉬였다.
돌이켜보면 나이 60고개를 넘어선 오늘까지 줄곧 인민군대 정치일군으로 일해왔다. 자기에게 사상사업에 대한 남다른 기질이 있었던가?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