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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남관계에서의 획기적인 변화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과 남은 선언에서 강조된것처럼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이 과정에 지난날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돌이켜보면 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관심과 기대가 나날이 높아가는 속에서 6. 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인 10. 4선언이 채택되고 북남관계를 확대발전시켜나가기로 한것은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다.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이러한 획기적인 사변들은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겨레의 가슴을 크나큰 환희와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6. 15공동선언에서 제시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온 지난 8년간은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지향과 의지를 내외에 널리 과시한 격동적인 나날이였다. 이 나날 북과 남이 공존공영의 립장에서 출발하여 적대적인 대결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각방의 노력을 기울여온것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커다란 성과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존공영의 립장이라고 할 때 그것은 북과 남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기초우에서 공동의 번영과 리익을 다같이 추구해나가는 립장을 의미한다. 물론 수십년동안 갈라져 살아온 북과 남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번영과 리익을 위한 길에서 보조를 맞추어나간다는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은 수십년동안의 분렬과정에 외세와 그 추종세력들이 남조선사람들속에 동족에 대한 대결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의도적인 외곡선전을 악랄하게 하여왔기때문이다. 사실상 외세와 그 추종세력들은 공화국에 대한 외곡선전으로 남조선사람들속에 동족에 대한 불신과 대결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조장하였으며 그것을 저들의 《두개 조선》정책의 사상적도구로 악용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시급히 극복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를 개선할수 없으며 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도 할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6. 15공동선언에 명기되고 10. 4선언에서 재확인된대로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서로 힘을 합쳐나가는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고 할 때 그것은 말그대로 통일을 위한 길에서 우리 민족이 서로 불신할것이 아니라 신뢰하고 서로 대결할것이 아니라 화합하여 민족의 통일념원을 실현해나가자는 의도에서 제안된 통속적이고도 명쾌한 통일리념이다. 바로 이러한 애국애족의 통일리념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제시하신것으로 하여 보다 더 의의있고 뜻깊은것으로 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북남관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수뇌상봉이 조국통일과 북남관계발전에 참답게 기여하는 력사적인 계기로 되게 하실 원대한 구상을 지니시고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여오신 끝에 북과 남의 우리 민족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장 평범하고 친근감을 자아내는 말이면서도 애국애족에 불타는 우리 민족의 마음을 순간에 감화시킬수 있는 포괄적인 통일리념으로서의 《우리 민족끼리》를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앞으로 … 조선문제는 어디까지나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어떤 국제렬강이나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실 강한 의지를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통일의 앞날을 내다보시며 내놓으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상봉의 나날에도 《우리 민족끼리》를 종자로 하여 대화를 진행하시였으며 그것이 훌륭한 결실을 이룰수 있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처럼 마련된 남측당국자와의 상봉에서 우리의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민족끼리》는 6. 15공동선언의 첫 조항에 명기되게 되였으며 통일시대를 선도하는 리념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지난날의 불미스러운 북남관계를 일신시키고 외세에 의하여 갈라진 조국을 기어이 통일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강의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오늘의 《우리 민족끼리》에 대하여 결코 생각할수 없다.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전기간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커다란 성과를 거둘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있었기때문이다. 온 겨레는 6. 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마자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민족공동의 통일애국리념으로, 민족운명개척의 기치로 받아들이고 전폭적으로 지지환영하였으며 그 구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 땅에 자주통일운동의 열풍을 몰아왔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조국통일운동을 북과 남, 해외를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사상과 정견, 소속의 차이를 초월하여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켰다. 2001년 6월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 1돐을 맞으며 금강산에서 진행된 민족통일대토론회, 그해 8월 15일 북, 남, 해외 3자가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한 민족통일대축전, 2002년 8월 15일 북과 남의 참가하에 서울에서 열린 민족통일대회를 비롯하여 6. 15와 8.15 등 주요계기들에 북과 남, 해외의 여러 단체와 인사들이 모여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진행한 대규모의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는 수없이 많다. 2005년 6월 15일과 8월 15일 그리고 2006년 6월 15일 평양과 서울, 광주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과 함께 북과 남의 당국대표단이 참가한것은 《우리 민족끼리》리념밑에 조국통일운동이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005년 6월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당국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한 《통일부 장관》을 만나주시고 북남관계개선에서 나서는 일련의 문제에 대하여 명철한 결론을 주시였으며 중요하게는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대화에서 고질적인 병페로 남아있던 체면유지놀음, 체면주의를 없앨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것은 일시 정체상태에 빠져있던 북남관계에 다시금 활기를 부어준 획기적인 사변이였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북과 남은 종래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담문화를 창조하게 되였으며 민족공동의 립장에서 실리를 추구하고 보조를 맞추어나갈수 있게 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에 서울에서 진행된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은 체면주의에서 벗어나면 짧은 시간동안에 그 어떤 말싸움도 없이 커다란 성과를 낼수 있다는것을 보여준 회담이였다.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북과 남, 해외의 부문별, 계층별통일운동도 활발히 진행되였다. 2001년 5월과 2004년 5월, 2007년 5월 금강산과 평양, 남조선의 창원에서 진행된 로동자들의 통일대회를 비롯하여 북남로동자들의 대토론회, 상봉모임, 통일수련회가 진행된것만 해도 수십차에 달한다. 또한 2001년 7월과 2004년 6월의 북남농민통일대회, 2002년 10월과 2005년 5월의 북, 남, 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와 북남대학생상봉모임, 2002년 10월의 북남녀성통일대회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학자, 언론인, 문학인, 종교인들의 계층별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도 광범히 벌어졌다. 이 모든 통일행사들에서는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천하기 위한 선언문, 호소문, 성명 등 공동문건들을 채택함으로써 겨레의 통일의지를 만방에 과시하였다. 특히 2005년 3월 북과 남, 해외의 정당, 단체, 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한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 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6. 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된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6. 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결합시킬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조직적추진체를 가지게 되였으며 북과 남, 해외의 조직적련대하에 자주통일의 새 력사를 개척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6. 15공동선언발표후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커다란 또 하나의 변화는 반미자주화기운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전쟁의 화근으로, 조국통일의 주되는 방해자로 인정하고 그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이 도처에서 힘있게 벌어진것이다. 이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의 커다란 전진이다. 조선반도에서의 통일이 민족문제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배제하고 전국적범위에서의 민족적자주권확립을 중요한 본질적내용으로 하고있는것만큼 남조선 전지역에서 반미자주화의 기운이 높아진것은 통일문제해결에서 매우 민감하고 의의있는 사변임이 분명하다. 공화국은 랭전종식이후에도 그러하였지만 미국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부쉬행정부가 선임정부가 한 모든 약속을 뒤집어엎고 강도높은 대북정책을 실시할 때에도 자기의 반제자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며 맞받아나가는 전략으로 그에 대응해나섰다. 공화국의 전체 인민들은 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을 휘두르고 원쑤들이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댄다는 배짱과 필승의 신념으로 반제군사전선을 튼튼히 다졌으며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나갔다. 령토의 크기에 있어서나 인구수에 있어서 대비도 안되는 공화국과 미국과의 치렬한 대결은 남조선인민들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한피줄을 지닌 북녘의 동포들은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자기의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고 제 할소리, 제 할바를 다하는데 대하여 경탄을 금치 못해하면서 자기들도 용기를 가지고 나서면 능히 미국의 지배하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반미투쟁에 과감하게 떨쳐나서게 되였다. 특히 남조선인민들은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대중적인 반미투쟁을 벌려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처럼 여기고 온갖 범죄적만행을 저지르던 남조선강점 미군과 미국지배층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2002년 6월 남조선강점 미군에 의하여 감행된 두 녀학생살인사건을 계기로 남조선 전지역에서 폭발한 대중적인 반미투쟁은 그 하나의 실례이다. 남조선강점 미군에 의한 두 녀학생들의 참혹한 죽음은 삽시에 온 남조선인민들속에 전해졌으며 각계각층 남조선인민들의 반미감정을 폭발시킨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이 지난 수십년간 저질러온 수많은 만행들과 마찬가지로 남조선사람들의 생명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미국의 야만성에 의해 감행된 살인사건이라고 규탄하면서 살인자들과 함께 사건에 책임있는자들을 처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들로부터 시민, 나어린 중학교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수백만의 광범한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대규모적인 투쟁에서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며 그런 식으로 취급되기 싫다.》, 《평화와 인권을 중시하고 미국의 자존심과 대등한 한미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관계의 새 틀을 만들자.》라는 반미구호들이 련이어 울려나옴으로써 미국의 지배체제에 심각한 정치적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반미투쟁을 두고 남조선신문들은 《두 어린 생명의 불꽃이 지금 전국의 대지를 불사르고있다. 한점의 불씨가 메마른 대지를 불태우며 급속히 번져가고있다.》고 전하였으며 외신들도 《1980년대에는 한국에서 격렬한 반미시위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분노의 폭이 넓은것은 처음 있는 일》, 《미군에 대한 분노로 들끓는 한국》 등으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다. 두 녀학생의 살인사건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대중적인 시위는 점차 통일운동과 결부되면서 목적의식적인 반미자주화투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6. 15공동선언발표 5돐이 되는 2005년은 반미자주화투쟁에서 전환적국면이 열린 의의깊은 해였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미군강점 60년이 되는 2005년을 자주통일, 미군철수의 원년으로 만들자!》라는 구호를 들고 남조선강점미군철수투쟁을 전면화, 전지역화, 대중화하기 위한 총공세를 벌릴것을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2005년 5월에는 광주 송정리에 있는 미군미싸일기지의 철조망을 해체하기 위한 투쟁이, 9월에는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시키기 위한 투쟁이, 11월에는 10만여명의 참가밑에 서울과 부산에서 대규모적인 반부쉬투쟁이 전개되였다. 특히 인천시 자유공원에 자리잡고있는 맥아더동상에 대한 철거투쟁으로 말하면 남조선에서 지난 시기의 대미관에 대한 재평가문제가 떠오른 속에서 벌어진 새로운 반미투쟁형태로서 그것이 남조선사회전반에 준 충격은 대단히 컸다. 남조선인민들은 맥아더가 전쟁당시 핵무기사용을 계획하였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한 미군의 최고책임자였다고 하면서 식민지통치의 상징인 맥아더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완강히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조선언론들은 《지금까지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으로 강요당해왔던 민중진영이 분단 60년, 미군주둔 60년이 되는 오늘에 와서는 맥아더동상철거를 요구할 정도로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평가하였다.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도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투쟁이라고 말할수 있다. 남조선인민들은 북남관계가 개선되여가고 조선반도평화보장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있는 시기에 미군기지가 축소되고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확장되면서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인민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자 이를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투쟁을 벌렸다. 그들은 남조선공안당국이 미국의 부추김으로 어마어마한 무력을 동원하여 시위투쟁을 탄압할 때에도 《지금 여기 평택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피바다가 재현되고있는것은 미군때문이다. 광주렬사들의 뜻을 이어 사생결단의 의지로 싸울것이다.》, 《오늘의 원한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 더이상 우리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올해에는 반드시 농사짓자!》라고 웨치면서 적극적인 반미투쟁을 벌려 미국을 아연케 만들었다. 남조선에서 나날이 높아가는 반미감정에 대하여 남조선잡지 《월간조선》 2005년 9월호는 남조선의 청소년들속에서 북은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대상이지 우리의 발전을 제약하거나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대적인 대상이 아니며 미국과 북간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같은 민족인 북의 편에 서겠다는 사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기사를 실은바 있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2007년에도 치렬하게 벌어졌다. 《어둠을 불사르며 타오르는 수천수만의 초불들, 하늘을 찌를듯 높이 추켜든 분노의 주먹들, 반미를 부르는 힘있는 투쟁구호들, 아빠, 엄마의 손목잡고 따라나온 철부지어린애며 학교에 서 달려나온듯 한 학생들, <미군 나가라>고 쓴 띠를 머리에 동여맨 중년의 가정주부의 모습도 보인다. 누구라 할것없이 모두의 얼굴에는 엄숙하고도 비장한 각오가 비껴흐른다.》 이것은 새해벽두에 남조선에서 벌어진 반미투쟁의 광경이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한겨울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새해벽두부터 초불로 어둠을 밝히며 반미를 부르짖었다. 《반미는 우리의 생활이다.》 《양키는 제 집으로 돌아가라!》 《미국없이 우리 민족끼리 잘 살테니 미군 물러가라!》 지난해에 남조선에서 울려나온 이러한 반미구호들에는 미국의 침략적정체를 꿰뚫어보고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남조선인민들의 견결한 의지가 그대로 맥박치고있다.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를 비롯한 남조선의 수많은 진보적단체들은 2007년의 반미투쟁에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하고 자주, 민주, 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놓을것을 각계각층에게 호소하면서 반미자주화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었다. 남조선각계의 커다란 관심속에 진행된 반미반전 전지역일군전진대회에서는 조선반도에서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조선강점 미군철수투쟁을 전면화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세차게 울려나왔다. 미국대사관과 미군기지들앞에서는 《미국이야말로 조선반도평화의 적이다!》, 《범국민적인 미군철수를 위한 항쟁의 포문을 열자!》라는 구호가 그칠새없이 울려나왔고 주요도시의 건물들에는 《미국은 조선반도평화 위협하는 전쟁훈련 철회하라!》, 《조선반도평화와 통일의 최대장애물, 범죄집단 미군 즉시 철수하라!》는 글이 씌여진 선전물들이 나붙었다. 반미반전, 미군철수를 위한 롱성, 시위현장들에서는 미국기발이 증오의 표적이 되여 련속 불타고 《남조선강점 미군철거명령서》가 미군의 요충지들마다에 배포되였다. 지난해에 남조선에서는 반미실천단과 자주통일선봉대가 각지에서 반미선전활동을 전례없는 규모로 광범히 전개하였다. 부산《미국문화원》방화투쟁 25돐, 미군장갑차에 의한 두 녀학생살해사건 5년이 되는 계기 등 주요계기들마다 남조선의 각계 시민사회단체 성원들과 청년학생들은 거리에 떨쳐나와 반미투쟁을 힘차게 전개하였다. 분노의 초불을 추켜든 그들은 한결같이 이 땅에서는 여전히 미군장갑차가 질주하고 녀성들이 미군에게 롱락당하고있으며 농토가 미군의 환경파괴와 전쟁연습에 의해 불모지로 변하고있다고 단죄하면서 불행과 고통만을 강요하는 미군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남조선의 《진보련대》준비위원회는 미군에 의한 두 녀학생살해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5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서울에서 반미주제의 선전물전시회를 가지였다. 대형초불모형이 세워진 전시회장에는 《그리운 얼굴들》, 《미군없는 조선반도》 등 두 녀학생을 추모하고 불평등한 남조선미국관계를 끝장낼것을 주장하는 선전화들, 조국통일념원을 반영한 선전물들이 전시되였다. 전시회장을 돌아보며 남조선인민들은 백주에 두 녀학생을 살해하고도 응당한 사죄와 배상도 하지 않고있는 미군의 오만하고 파렴치한 행위에 분노를 터뜨렸다.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거리문화제》행사에 참가한 남조선의 학생, 시민사회단체성원들은 미국이 남조선호전세력들과 야합하여 대규모적인 《을지 포커스 렌즈》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한다고 단죄하면서 불평등하고 굴종적인 남조선미국《동맹》을 깨버리고 반드시 미군없는 서울을 만들어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강력한 반미시위투쟁은 미군유지비분담금증액과 이라크파병기간연장, 미군의 파렴치한 유지비람용행위, 남조선녀성들에 대한 미군의 성폭행사건 등을 계기로 더욱 과감히 전개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감정은 인터네트를 통해서도 분출되였다. 여기에서 주목되는것은 온갖 민족적불행과 재난의 화근인 남조선강점 미군의 범죄행위를 단죄규탄하면서 그 철수를 반미투쟁의 기본구호로 내들고 거기에 화력을 집중한것이다. 남조선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에 실린 《미군주둔애걸은 죽여달라고 애걸하는짓》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군이 로근리를 비롯하여 남조선도처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대량학살한 범죄적만행에 대한 력사적사실들이 적라라하게 씌여있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건은 미국이 우리 민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인디안들처럼 멸종시켜도 무방한 존재로 여겼다는것이라고 하면서 더이상 이런 수모와 울분을 참을수 없다는 립장을 표시하였다. 남조선의 인터네트신문 《참말로》와 인터네트방송 《민중의 소리》도 《총체적범죄집단 남조선주둔 미군은 이 땅을 떠나라》 등의 표제밑에 지난해 4월에 미군에 의한 성폭행사건이 사회적물의를 일으킨데 이어 동두천에서 침략군에 의한 방화사건이 터지는 등 세기를 이은 미군범죄행위가 꼬리를 물었지만 불평등한 《행정협정》으로 그것이 오히려 정당화되였다고 개탄한 각계층 인민들의 항거의 목소리들로 가득찼다. 남조선의 《민족정기구현회》의 성원들은 인터네트에 《…친미매국노들 때려잡고 양키짐승 모조리 내몰자!》, 《악마를 구세주로 여기는자들에게》라는 제목으로 글들을 싣고 치욕스러운 식민지력사가 민족에게 불행만을 가져다주고있다고 울분을 토로하였으며 자주독립을 위하여 미군철수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예속으로 수치스럽고 무권리로 비참하였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며 세기를 두고 쌓인 울분을 폭발시키고있다. 남조선《민권연구소》의 한 녀성상임연구원은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에 실은 글에서 인민들에게서 빨아낸 혈세를 침략군유지비용으로 섬겨바치면서도 언제 핵전쟁의 희생물이 될지 모르는 공포속에 사는것은 오직 남조선뿐이라고 폭로하고 미군철수만이 민족이 살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연구소의 다른 한 연구원은 남조선강점 미군이 정전협정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세계최대규모의 전쟁연습들을 해마다 발광적으로 벌리면서 조선반도에 군사적긴장을 항시적으로 조성시켜온 사실들을 폭로단죄하면서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수야말로 통일의 전제조건이며 민족번영의 지름길이라고 말하였다. 지난해에 남조선인민들은 인터네트상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장하고 대결과 전쟁의 근원인 미군을 남조선에서 몰아낼데 대한 공화국의 정당한 립장을 지지하는 활동도 적극 벌리였다. 그들은 확고한 신심과 락관을 안고 총궐기함으로써 반미자주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 정책위원은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에 실은 《민족사의 전환기와 미군철수투쟁》이라는 글에서 2007년 공화국의 의지는 매우 단호하였고 급변하는 조선반도정세는 《력사의 주도세력은 북이라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고 하면서 그 의지에 받들려 이 땅에 민족사의 대전환기가 도래하고있다고 격조높이 피력하였다. 그는 《조선반도질서의 대지각변동과 미군없는 평화체제》, 《민족사의 대전환기 미군철수투쟁의 전면화를 더이상 미룰수 없다》 등의 소제목들을 달고 민족의 최전성기가 눈앞에 펼쳐지고있는 오늘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모두가 반미투쟁의 발파공, 자주통일시대의 실천가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6. 15통일시대의 승리자가 되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바로 이와 같이 오늘 남조선인민들속에서는 민족재난의 화근이며 평화통일의 암적존재인 남조선강점 미군을 몰아내고 미국의 대조선지배정책을 끝장내며 자주적이며 평화로운 통일국가를 하루빨리 건설하려는 기운이 나날이 높아가고있다. 북과 남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의 대단합을 이룩하고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왔으며 이 과정에 다방면적인 접촉과 래왕의 길을 열어제끼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날 극소수의 인원들에 한정되였던 접촉의 낡은 틀이 허물어지고 그것이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예술인, 체육인, 지식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범위로 확대됨으로써 서로를 리해할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6. 15공동선언이 채택되던 해에만도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조선로동당창건 55돐을 계기로 남조선의 14개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의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온 겨레를 감격과 흥분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북과 남은 체육, 문화교류를 통하여서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체육이 불신과 대결의 관계에 있던 사람들사이의 관계를 평화로운 관계로 일신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것은 이미 고대그리스에서 있은 올림픽경기를 통하여 널리 알려진바이다. 바로 이러한 체육이 북과 남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적뉴대를 공고히 하는데서도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002년 9월 부산에서의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은 공동으로 개페막행사를 장식하고 응원도 다같이 함께 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열기를 만천하에 시위하였다. 그 이듬해 2003년 대구에서의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에서도 북과 남은 부산에서의 경험을 살려 공동응원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구었으며 우리 민족은 갈라져사는 둘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로 합쳐지고야말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가진 혈연적인 관계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그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북남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에서도 북과 남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제주도의 한나산에서 각기 채화한 성화봉들을 가지고 입장하여 봉화대에 함께 불을 지피는것으로 축전개막을 알리고 《평화》와 《통일》팀으로 나뉘여 축구, 씨름, 태권도, 탁구, 마라손 등 각이한 경기들과 평양미술 및 수공예품전시회를 성대하게 진행하여 우리 민족은 피줄과 언어, 력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통일애국의 마음과 뜻도 하나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하였으며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민족의 힘찬 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뚜렷이 과시하였다. 2005년 인천에서 진행된 제16차 아시아륙상선수권대회에서도 북과 남의 선수단과 응원단은 하나로 어우러져 체육행사를 성과적으로 치름으로써 민족의 통일열기를 한껏 고조시키였다. 이 과정에 우리 민족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에게 있어서 최대의 애국은 통일이고 가장 큰 소원도 통일이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데 대한 6. 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갈 때 조국통일의 그날은 더욱 앞당겨지게 된다는것을 깊이 확신하게 되였다. 북과 남은 이외에도 북측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과 남측《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의 평양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 등 통일음악무대들도 펼쳐놓았다. 또한 북과 남은 북남단청자료전시회 및 학술토론회,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의 범죄성에 대한 북남공동학술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국호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남토론회, 북남방송인토론회, 국내외동포들의 평양의학과학토론회,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공동학술토론회,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평양토론회,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등 수많은 문화, 학술교류들을 통하여 민족의 지혜와 힘을 합쳐 반만년 단일민족의 찬란한 문화와 력사를 빛내이고 겨레의 존엄을 빛내이기 위한 련대련합을 보다 강화해나갔다. 특히 2005년 7월에 열린 민족작가대회는 해방후 나라의 분렬과 더불어 갈라졌던 북과 남의 문학인들과 해외동포문학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분렬시대를 통일시대로 전환시킨 6. 15공동선언을 문학으로 실천해 통일을 앞당기자.》고 한목소리를 낸 의의깊은 대회였다. 그들은 민족을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운 항일혁명선렬들의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백두산에서 사상과 리념을 뛰여넘어 화해와 단합의 립장에서 출발한 시들을 읊으면서 통일을 기원하고 통일에 모든것을 다 바칠것을 결의하여 내외의 주목을 끌었다. 2003년 10월 유서깊은 평양의 보통강기슭에 류경정주영체육관이 일떠섰는가 하면 2005년에는 남녘의 동포들이 평양에서 성대히 개최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수천명이나 공화국을 다녀갔고 남조선의 한 녀성이 평양산원에서 통일옥동녀를 낳은 기쁜 소식도 전해졌다. 북남사이에 하늘길, 바다길이 열리고 수십년간 끊어졌던 도로와 철도가 이어지는 꿈같은 현실도 펼쳐졌다. 동서해선철도와 도로련결사업이 성과적으로 진척되여 2003년 개성과 금강산에서 북남도로가 개통되였으며 2007년 5월에는 동서해의 철도련결구간에 대한 북남렬차시험운행이 있었다. 또한 금강산관광사업이 진행되여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민족의 명산을 보고싶은 자기들의 소원을 풀고 통일의지를 가다듬었다. 지난 8년간 북남상급회담과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북남군사당국자회담을 비롯하여 수많은 회담들도 진행하였다. 이러한 회담들에서는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제반 문제들, 다시말하여 북남관계를 적대적인 대결관계로부터 《우리 민족끼리》의 관계로 전환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이 수많이 론의되였다. 그동안 조선반도에는 이러한 북남관계개선을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세력, 호전세력들의 전쟁도발책동으로 하여 예상치 않았던 긴박한 정세들이 여러번 조성되였지만 북과 남은 이러한 사건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 진지한 대화를 진행하여 위기를 수습할수 있게 되였다. 그리하여 북과 남은 개성공업지구를 건설하고 림진강수해방지문제, 해운협력문제, 경제협력의 제도적담보를 마련하기 위한 문제, 금강산관광문제, 동해 및 서해선철도, 도로련결문제를 비롯한 많은 경제협력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협의하고 일련의 전진을 가져왔다. 뿐만아니라 북과 남은 북남사이의 투자보장,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합의서발효통지문을 정식 교환한것을 비롯하여 경제협력과정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합의를 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성과는 북과 남의 서로 다른 사회제도와 경제제도가 경제협력사업을 순조롭게 할수 없게 한다고 하던 일부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시킨것이다. 그동안에 진행된 경제협력경험은 북과 남의 서로 다른 사회제도가 경제협력을 방해하는것이 아니며 사실상 방해로 된것은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압력이였다는 사실이다. 털어놓고 말하여 북과 남이 그동안 경제협력사업을 더 폭넓고 통이 크게 할수 있는것도 하지 못한것은 《속도조절》이요, 《퍼주기》요 하면서 한사코 방해책동만을 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때문이라는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북남경제협력은 크게 두가지 여운을 남기고있다. 하나는 그 주요한 방해세력이 외세이지 민족내부의 그 어떤 모순에 의한것이 아니라는것, 다른 하나는 남조선이 《동맹국》이라고 하는 미국과의 경제협력보다 공화국과의 경제협력이 어느모로 보나 더 좋고 유리하다는것이다. 《동맹국》과의 경제협력이라면 마땅히 서로를 도와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을 위해 자기의것을 희생하는것까지 감수할 각오가 되여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남조선미국간 경제협력관계는 어떤가. 자기의 리익을 위해 상대의 리익을 희생시키는 그러한것이다. 남조선인민들이 그처럼 반대하였지만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에 의하여 끝내 체결된 남조선미국간 《자유무역협정》이 그 대표적실례로 될것이다. 과연 이것을 《동맹국》과의 경제협력이라는 말로 분칠할수 있겠는가. 이런것이 《동맹국》이라면 동맹국이라는 말자체에 대한 해석을 다시하여야 할것이다. 이에 비해볼 때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비록 일련의 조건상제약으로 북남경제협력이 폭넓게 진행되지 못한 측면에서 유감스러운 점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공리공영,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진행되였다는 의미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것은 북남관계의 래일을 락관하게 하는 좋은 징조가 아닐수 없다. 북남사이의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군사령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북과 남의 정치인들끼리 협의하여 동해선과 서해선의 철도, 도로를 개통한다고 하였지만 그에 뒤따르는 후속조치들은 결코 간단한것이 아니다. 북과 남을 가로지른 군사분계선상의 철조망과 지뢰제거, 군사기지들과 군인원들의 철수문제 등은 량측의 군부를 거치지 않고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북과 남의 군부는 서로 무릎을 마주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론의를 벌렸으며 부분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2000년 9월 공화국인민무력부장과 남조선의 《국방부 장관》사이의 첫 군사회담에서는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길을 이으며 도로를 열어놓기 위한 사업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할데 대하여 합의를 보았으며 2004년 5월부터 지난해 2007년 7월까지의 6차례에 걸치는 북남장령급군사회담에서는 서해에서의 우발적충돌을 방지할데 대한 문제, 서해해상에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문제, 상대방에 대한 비난방송을 중지할데 대한 문제,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보장조치문제, 다른 나라들의 불법어로행위를 막는데서 공동으로 대처할데 대한 문제 등을 가지고 심중한 론의를 벌렸으며 그 리행에서 일정한 전진을 이룩하였다. 또한 2007년 11월 공화국인민무력부장과 남조선《국방부 장관》과의 두번째로 되는 회담에서는 군사적적대관계를 끝장내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 위한 군사적조치들을 취해나갈데 대한 문제, 서해해상에서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우며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 위하여 호상 협력할데 대한 문제 등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합의를 이룩하였다. 조선반도에서 대결시대에 볼수 없었던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것은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린 결과이다. 그러므로 온 겨레는 지금까지 그러했던것처럼 앞으로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하여 대담하게 손을 잡고 협력해나감으로써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