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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생의 언덕
□ 애국렬사릉에 나란히
평양시 교외의 경치좋은 어느 한 곳에는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 모두에게 잘 알려진 애국렬사릉이 있다. 애국렬사릉은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건설,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우다 희생된 렬사들의 위훈과 업적을 후대들에게 길이 전하며 빛내이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그 건축규모로 보나 지성의 뜨거움으로 보나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애국렬사릉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주체73(1984)년 4월에 건설을 발기하시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여 주체75(1986)년 9월에 완공되였다. 애국렬사릉에는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건설, 나라의 통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희생된 렬사들과 당 및 군대, 국가의 간부들과 과학, 교육, 보건, 문학예술, 출판보도부문 등 여러 부문의 공로있는 일군들의 유해가 안치되여있다. 웅장한 릉대문을 지나 넓은 층계를 거쳐 묘비구역에 들어서면 거대한 추모비에 새겨져있는 글발이 안겨온다.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건설, 나라의 통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희생된 애국렬사들의 위훈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1986년 9월 17일》 애국렬사릉을 찾는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은 각이한 정당, 단체를 대표하는 정계인사들과 오랜 지식인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을 비롯하여 남에서 북으로 들어온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성스러운 이곳에 영생의 모습으로 안치되여있는것을 보며 놀라움과 격정을 금치 못해한다. 하다면 인생의 출발점이 서로 다르고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그들이 어떻게 되여 애국렬사릉이라는 영생의 언덕에 오르게 되였는가. 여기에는 비록 사상과 정견,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의 길에서 살다가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애국인사로 내세워주고 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고결한 의리심이 깃들어있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렬사릉에는 항일투쟁시기와 해방후에 애국적인 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민족주의자들을 다 안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런 사람들로서는 김규식, 최동오, 조소앙과 같은 사람들을 들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오하영, 윤기섭, 조완구 등 민족주의자들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들도 렬사릉에 안치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록 주의주장과 활동경로가 서로 다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미스러운 과거도 없지 않으나 조국을 생각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생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도 빼놓지 않고 다 안치해주시고저 흘러간 력사의 갈피를 몇번이고 거듭 더듬으시며 마음쓰시였다. 그 사랑, 그 마음에 떠받들려 항일투사들, 저명한 당 및 국가활동가들과 나란히 남에서 북으로 들어온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애국지사, 애국렬사의 고귀한 칭호와 더불어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 영생의 모습으로 겨레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였다. 그들속에는 해방직후 누구보다도 먼저 북으로 들어온 강영창, 김두삼, 리재업선생들과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38°선을 넘어왔던 계응상, 김석형, 도상록, 김종희, 김병제, 홍기문선생들을 비롯한 과학자, 기술자들이 있다. 그리고 홍명희, 백남운, 리용, 리병남, 리극로선생들과 같이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다가 북반부에 남아서 공화국의 첫 내각부수상, 상들을 지낸 애국인사들도 있으며 로태석, 리호림, 최성세, 최응석과 같은 오랜 지식인출신의 일군들도 있고 김규식, 최동오, 조소앙, 오하영, 윤기섭, 조완구선생과 같은 민족주의자들, 김창준선생과 같은 애국적인 종교인들도 있다. 어찌 이들뿐이랴. 박세영, 조령출, 송영, 황철, 박태원, 석윤기, 태을민, 김세영선생들과 같은 문학예술인들도 있고 송대관, 리종만과 같은 어제날의 개인기업가, 민족자본가들 그리고 최덕신, 최홍희, 홍동근선생들과 같이 오래동안 남조선과 해외에서 살다가 인생말년에 공화국에 삶의 닻을 내리였던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리현상, 김삼룡, 강규찬, 고진히, 김달삼, 방준표, 박영발선생들과 같이 나라의 통일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수십년전에 희생된 통일애국렬사들도 있다. 애국렬사릉을 찾는 사람들은 인생말년까지 해외에서 산것으로 알려져있는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였던 최홍희선생과 홍동근목사가 어떻게 되여 이곳에 안치되였는가 하는데 대한 의아심을 금치 못해한다. 해방전 일본군대에 강제징집되였던 최홍희선생은 1944년 평양주둔 일본군 제30사단에 비밀리에 조직되였던 《반일학도병무장대》의 한 지도성원으로서 《목표 백두산, 김일성장군님 부대에로!》라는 구호를 들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가려고 시도하다가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였다.
해방후 본의아니게 남조선으로 나가게 된 최홍희선생은 괴뢰륙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괴뢰군에 들어간 후 사단장, 군단장으로 있었다. 최홍희선생은 1955년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발전시킨 민족무술을 《태권도》라고 이름짓고 이를 세계적범위로 보급시키기 위하여 1966년에 국제태권도련맹을 창설하였다. 그후 그는 남조선군사독재《정권》이 태권도를 불순한 정치적목적에 악용하면서 그것을 반대해나서는 자기에 대한 암살책동을 집요하게 벌리는데 항거하여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자기딴에는 희망을 안고 찾아간 남조선땅에서 인생의 쓰디쓴 고배만 마시고 나중에는 당국의 눈을 피해 해외에로의 정치적망명의 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던 최홍희선생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그럴수록 그의 가슴속깊이에서는 자기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줄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솟구쳐올랐다. 망명생활과정에 최홍희선생은 자기가 남조선에서 듣던바와는 다른 공화국의 소식들을 접하게 되였다. 그러나 지난날의 죄의식으로 하여 공화국방문의 걸음을 선뜻 내짚을수 없었다. 바로 이러하던 그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대단결의 숭고한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조국방문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다. 주체68(1979)년 5월 12일, 이날은 온갖 세파에 부대끼며 인생의 험한 길을 걸어온 최홍희선생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바로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최홍희선생을 몸소 만나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리 해외에서 사회주의조국을 찾아온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와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건강은 어떤가, 조국에 있는 친척들은 다 만나보았는가고 따뜻이 물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해외의 민주인사들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서와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을 실현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민족대단결을 이룩하여 우리 나라가 《두개 조선》으로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애국적민주인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사업을 더 잘하여 모든 해외동포들이 다같이 손잡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겨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불미한 과거를 탓할 대신 자신을 한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깊이 탄복한 그는 가슴속에 넘쳐나는 재생의 활력과 참다운 삶의 희열을 뜨겁게 느낄수 있었으며 그이의 품이야말로 자기의 운명을 지켜주고 참된 삶을 꽃펴주는 진정한 삶의 보금자리이라는 생각을 더욱 가다듬게 되였다. 최홍희선생은 그후 해외에서 자기가 발행하고있던 신문의 편집내용에 조국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통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그의 이러한 노력들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해방전 《반일학도병무장대》에 참가하였던 그의 자그마한 공적도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애국지사의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민족고유의 무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애쓰는것을 두고 애국애족의 소행으로 높이 평가해주시며 전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태권도백과사전》도 성과적으로 출판하도록 해주시였으며 태권도의 모국답게 웅장화려한 태권도전당을 일떠세워주시여 그의 평생의 소원도 다 풀어주시였다. 주체81(1992)년 4월 어느날 최홍희선생을 처음으로 만나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최홍희선생을 만나서 대단히 기쁘다고 하시면서 민족의 자랑인 태권도를 더욱 발전시키고 여러 나라들에 널리 보급할데 대하여서와 태권도를 가지고 조국통일성업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최홍희선생은 조국에 올 때마다 그이의 비범한 령도력과 뜨거운 인정미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지만 정작 만나뵈옵고보니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는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는 그이에 대한 열렬한 숭배의 감정을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홍희선생을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차홍기편)을 세상에 내놓도록 하시여 그의 삶을 조국과 민족앞에 빛내여주시고 최홍희선생과 부인의 80돐생일상과 70돐생일상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89(2000)년 조선로동당창건 55돐경축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성대하게 진행되던 김일성광장의 주석단에서 최홍희선생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먼길에 오시느라고 수고했다고, 정말 해외에서 수고가 많다고 뜨거운 은정의 말씀을 하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인 10월 20일 그를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현관에까지 나오시여 그를 마중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국제태권도련맹 총재 최홍희선생이 태권도를 세계적으로 보급하느라고 로고가 크다고 하시며 선생이 고령이지만 왕성한 투지와 패기를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분투하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계속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홍희선생이랑 우리 수령님을 찾아 평양에 오게 되였는데 그때 그렇게 하기를 정말 잘하였다고, 그렇게 하였기때문에 선생의 운명과 태권도가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고, 남조선에서 뜻이 있는 사람들은 다 우리 수령님의 품을 찾아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를 위하여 뜻깊은 오찬까지 마련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와 헤여지실 때에는 나이 많은분이라고 선생을 먼저 내세워주시며 문앞에까지 나오시여 오래오래 장수하라고 당부하시면서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해주시였다. 이처럼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1월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를 하루속히 조국에 데려와 병을 치료하도록 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그의 생명을 연장할수 있는 최상의 구급대책까지 취해주시였을뿐아니라 치료정형을 매일같이 알아보시며 병치료에 필요한 귀한 약재들과 그의 입맛을 돋구어줄수 있도록 산삼과 많은 과일까지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토록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안겨주시였건만 최홍희선생은 그 성의를 다 받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홍희총재는 태권도를 가지고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수십년동안 해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태권도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오다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고는 조국의 품에 안겨 생을 마쳤다고 하시며 《최홍희총재는 결국 인생의 마무리를 잘한셈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장의를 사회장으로 하고 령구를 서장회관에 안치하도록 하시였으며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하시는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이처럼 최홍희선생은 자기의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소행을 알아주고 귀중히 여겨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겼기에 애국애족의 참된 삶을 빛내일수 있었으며 조국의 유명렬사들과 함께 영생의 언덕에 오르게 된것이다. 2001년 11월 어느날 재미동포전국련합회 고문인 홍동근선생이 조국에 체류하던중 75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하였다. 1926년 5월 평안북도 피현군의 어느 한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해방후 남조선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목사로 있다가 1970년대에 남조선《정부》의 파쑈적폭압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으로 간 후 재미동포전국련합회를 비롯한 애국적인 동포조직결성사업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홍동근선생은 1980년대에 시작된 북과 해외동포와의 대화에 참가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의 해외동포의 역할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시는 조국통일방안의 정당성을 깊이 확신하게 되였다. 그는 여러차례에 걸치는 조국방문과정에 조국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였으며 해외에서의 《이북바로알기운동》의 개척자의 한사람이 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으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경모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으며 그러한 사상감정을 담은 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를 집필하여 남조선출판물에 내기도 하였다. 그뿐아니라 애국적인 그리스도교인의 립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찬미한 정치도서 《백두산의 노래》를 집필하여 공화국의 사회과학부문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사회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치도서 《주체사상과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다수의 도서들과 글들을 집필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기여하였다. 홍동근선생은 인생말년에 이를수록 공화국에 대한 애정을 더욱 두터이 가지였으며 특히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경모심을 깊이 간직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0돐을 계기로 위대한 수령님의 덕성일화를 묶은 도서 《김일성주석 덕성일화 100》을 집필완성하기 위하여 무한한 열정을 바치였으며 당시 조국에 와서 도서의 완성을 마무리하던중 갑자기 쓰러졌던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애국심의 발현을 높이 평가하시여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잘해주며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고 미국의 로스안젤스에서 그의 미망인과 가족이 도착한 다음 장례를 치르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기까지 하시였다. 이렇듯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해외에로 한생을 방황해온 그는 절세의 위인을 숭배하고 따르는 길에서 죽어서도 조국의 품에 안겨 영생의 높은 언덕에 오르는 행운을 지닌것이다. 해외에 사는 사람일수록 고뇌스러운것은 죽어서 이국땅에 묻혀버릴수 있다는 불안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으로 베개잇을 적시며 한줌의 재가 되여서라도 고국땅에 묻히는것을 가장 크게 소원한다고 한다. 정녕 홍동근선생이 조국의 품에 안겨 인생마무리를 값지게 하고 애국지사로 영생의 언덕에 오른것은 평소에 그가 마음속으로 바라고바랐던 행운의 성취이였으리라. 나라의 통일독립과 민족의 부강발전을 위해 애써온 각이한 운명의 체험자들을 영생의 모습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국렬사릉의 묘비마다에 돌사진을 만들어붙여 그들의 삶과 넋을 더욱 빛내여주시였다. 주체87(1998)년 9월 1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국렬사릉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렬사릉에 오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감회속에 한동안 입구에 서계시였다. 묘비마다에 붙어있는 돌사진속의 렬사들의 모습들을 바라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눈빛은 뜨겁게 빛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갈리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여기에 오니 잊을수 없는 사람들을 다 만나보게 되는구만! 모두가 살아있는것만 같소.》 오랜 시간에 걸쳐 마지막렬사의 돌사진까지 빠짐없이 보아주시며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추억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오늘 애국렬사릉을 돌아보니 빠진 사람들이 더러 있는것 같다고 하시며 누구누구도 기억에 있는데 그들도 다 여기에 데려다 안치하고 돌사진을 해주자고 하시면서 조국의 통일독립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세운 그들의 위훈을 우리 당과 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혈육들과 친지들의 기억속에서조차 멀어져가고있던 먼저 간 렬사들을 한사람이라도 놓칠세라 다 찾아내여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정녕 그 폭과 깊이, 열도를 쉽게 가늠할수 없는 한없이 위대하고 무한한 사랑이고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은정이다. 애국렬사릉, 이 영생의 언덕에 조국과 민족을 위한 헌신이 없이 오른 사람은 없다. 힘이 있으면 힘을 다 바치고 지식이 있으면 지식을 다 바치고 돈이 있으면 돈을 다 바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분투한 사람, 겨레의 고통과 불행을 가시기 위하여 자기 한몸을 생각지 않고 더운 피와 땀을 아낌없이 뿌린 사람, 외세를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민족공동의 리익, 후손들의 행복을 위하여 시대앞에 지닌 사명에 죽음도 두려움없이 충실한 사람들이 바로 이 영생의 언덕에 서있다. 애국렬사릉은 절세의 위인들의 품에 안겨 나라와 민족을 위한 참된 삶의 길을 걸은 사람들, 통일되고 번영할 삼천리강산을 후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한생을 바친 사람들이야말로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한다는 진리를 온 겨레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우리 인민의 애국정신의 상징으로, 혁명전사들에게 돌려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과 높은 은덕의 기념비로 빛나고있는 애국렬사릉! 정녕 숭고한 사랑과 의리속에 솟아난 애국렬사릉이야말로 이 땅의 애국렬사들이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나 높이 선 영생의 언덕이고 영광의 최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