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받은 작가, 예술인으로
흔히 사람들은 재능은 천성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재능은 타고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저절로 꽃펴나지 못한다. 좋은 씨앗도 나쁜 땅에 떨어지면 훌륭한 소출을 거둘수 없듯이 아무리 타고난 재능도 그것을 가꾸어주고 꽃피워주는 품이 없다면 빛도 못보고 사라지게 되는 법이다. 총서 《불멸의 력사》에 속하는 여러편의 장편소설들과 함께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작가 석윤기선생의 한생은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손길에 떠받들려 자기의 삶과 행복을 마음껏 꽃피우게 되였는가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대답으로 된다.
해방전 경상북도 달성군(당시)의 어느 한 농촌마을에서 태여난 그는 조국이 해방되자 새 조선의 앞날을 그리며 환희에 넘쳐 시 《출항》을 썼다. 그러나 남조선땅에 펼쳐진 현실은 봄날의 새싹처럼 움터나던 그의 희망에 찬서리를 들씌웠으며 열혈의 그를 항쟁의 거리에 내세웠다. 그는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부르짖었다 하여 악형을 당하고 피를 토하는 몸으로 경찰서마당에 내던져지기도 하였다. 그때 그에게는 그 누군가가 했다는 《조국은 훌륭하기때문에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제땅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이 되새겨졌다. 조국을 제땅이기에 사랑한다면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했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끌려가고 분렬된 조국의 통일을 웨쳤다고 하여 사람들이 마구 처형당하는 이 땅을 과연 제땅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제땅이라고 말할수 없다면 이 땅은 누구의 땅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막막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황하던 그는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의 해방과 함께 남먼저 의용군에 입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그는 참으로 존엄높고 위대한 인민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나라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여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떨쳐나선 영웅적인민의 새 모습이였다. 그와 한전호에서 싸운 평범한 로동자, 농민출신의 인민군병사들속에서 피여나던 해방후 인민정권의 혜택으로 누린 보람차고 행복했던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들, 자기의 땅, 자기의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정의의 싸움에서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영웅전사들, 이런 영웅적인민앞에서 만신창이 된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 이 모든것은 석윤기선생을 무한히 격동시켰으며 그의 가슴을 한없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으로 부풀게 하였다. 그후 그는 미제를 때려눕힌 기세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세인을 경탄시키는 기적과 위훈을 창조해나가는 위대한 인민의 모습, 새 생활창조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장엄한 진군을 목격하면서 강렬한 창작적욕구를 느끼였다. 그리하여 그는 1964년 오랜 세월 착취받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력사의 새시대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펼쳐보인 장편소설 《시대의 탄생》의 첫부를 세상에 내놓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장편소설의 제2부를 쓰고 추고하던 나날에 시대와 력사가 요구하는 그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예술적으로 해명함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를 옳게 반영했는가 하는 생각에 때없이 잠기군 하였다. 그러면서 시대와 력사발전의 요구를 반영한 우리의 문학은 과연 어떤 문학으로 되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앞에서 모대기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것은 당시 그 한사람만이 겪는 고충이 아니였다. 바로 이러한 때 문학예술의 대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 로동계급의 수령형상창조문제를 주체문학건설의 근본문제로 전면에 제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에 문학예술부문을 추켜세우실 웅지를 지니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고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문학예술의 사명과 역할을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로동계급의 수령형상문제를 주체문학건설의 근본적인 고리로 밝혀주시였다. 그러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를 소설화할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혁명소설창작사업을 미룰수 없는 력사적인 과제로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로운 혁명소설들을 창작하기 위하여 작가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그이의 혁명력사를 직접 들을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시는 한편 주체56(1967)년 6월에는 4. 15문학창작단을 몸소 무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로동계급의 수령의 형상을 창조하는 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사업은 당과 혁명앞에, 시대와 력사앞에 책임지는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사업이며 만대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작품을 창작하는 보람차고 영광스러운 사업입니다. 이 사업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자면 준비된 창작력량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힘있게 떠밀어주고 이끌어줄 지도방조력량이 있어야 합니다. 로동계급의 수령을 형상하는 새로운 혁명문학을 성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수령형상창조를 기본으로 하는 창작집단을 따로 내오는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수령형상문학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창작집단을 무어주시고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속에 4. 15문학창작단에 망라된 작가들속에는 석윤기선생도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수령형상문학창작이야말로 석윤기선생이 그렇듯 고심하며 찾던 시대가 요구하는 문학의 길이였다. 그의 막혔던 가슴은 환히 열리고 마음속으로는 펜이 줄달음치고있었다. 자신을 수령형상문학창작집단의 한 성원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믿음을 누구보다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석윤기선생은 개척자된 심정에서, 문학의 초학도가 된 심정에서 창작의 펜을 힘껏 틀어잡았다. 그리하여 그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장편소설로 옮기는 사업을 짧은 기간에 훌륭히 해낸데 이어 총서 《불멸의 력사》에 속하는 장편소설들인 《고난의 행군》과 《두만강지구》를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로 완성하였다. 그후 련이어 장편소설들인 《대지는 푸르다》와 《봄우뢰》를 내놓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하나하나의 소설들을 다 보아주시면서 여러 기회에 작가가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력사적사실들을 가지고 작품을 정책적으로 소설맛이 나게 감동적으로 쓴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석윤기선생이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것은 그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만이 아니였다. 그는 자기의 어느 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불의 발견으로 인간의 생활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난것과 같은 그러한 사변이 나의 창작생활에서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그때부터였다.》 불의 발견과도 같은 사변에 비긴 그의 창작생활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 김정일장군님! 그가 처음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것은 주체59(1970)년 가을이였다. 그때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영웅으로서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 한 간호원을 원형으로 하는 영화문학을 쓰면서 작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대김과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바로 이러하던 어느날 그는 뜻밖에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처음 만나주시는 한 평범한 작가를 반겨 맞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작에서 제기된 문제가 있으면 함께 토론해보자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영화문학의 창작과 수정과정에 대하여 허물없이 다 들어주시고 고생을 했다고 창작가의 수고도 깊이 헤아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영화문학이 잘 안된 원인을 단번에 명철하게 밝혀주시면서 실재한 인물을 원형으로 한 작품창작에서 지켜야 할 근본문제와 미학상문제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점심식사까지 뒤로 미루시고 그가 읽어드리는 수정대본을 끝까지 들어주시였으며 예술영화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때에는 그를 다시 가까이 불러주시여 뜨거운 은정을 부어주시면서 수령님께서 동무가 쓴 장편소설 《무성하는 해바라기들》을 다 읽으시였다고, 앞으로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써내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바로 이처럼 뜨겁고도 숭고한 위대한 스승의 사랑과 믿음이 그대로 자양분이 되여 그는 짧은 기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높이 평가해주신 장편소설들을 련이어 창작할수 있었고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작가로 자라날수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의 영예를 지니고 4. 15문학창작단 단장,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업할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석윤기선생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워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을뿐아니라 고향을 남반부에 둔 그가 가까이에 한명의 혈육도 없다는것을 헤아리시여 그의 생활을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되여 나왔을 때 그를 가까이 부르시여 앞으로 중요한 창작사업을 수행해야 하겠는데 건강에 각별히 류의하라고 재삼 당부하시였으며 그가 건강이 좋지 않은것이 좀처럼 마음놓이지 않으시여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장편소설로 옮기던 때에는 손수 귀중한 약재를 보내주시고 그후 거듭하여 효험높은 보약재들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일군들을 만나실 때면 그의 건강에 대하여 따뜻이 헤아려주시고 병원에서 정상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치료받도록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불치의 병에 걸리였을 때에는 그의 생명을 어떻게 하나 소생시키시려고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의 이름있는 의사까지 부르도록 하시고 치료에 요구되는것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다 해결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을 다 받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몹시 애석해하시며 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고 그의 사망에 대한 부고를 여러 신문에 내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와 문학예술부문의 일군들, 작가, 예술인들이 수많이 참가한 가운데 엄숙히 장례를 치르도록 해주시였으며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들과 나란히 안치하도록 해주시였다. 지난날 남조선에서 갖은 악형을 당하고 경찰서마당에 내던져졌던 불우한 모습과 절세의 선군령장의 사랑과 은정속에 온 나라가 다 아는 복받은 작가로 자라난 석윤기선생의 판이한 두 모습. 이 대조적인 모습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재능이 있고 애국의 피가 끓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품어주고 이끌어주는 절세의 위인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면 그의 운명은 한갖 무의미한것에 불과하다는것을 다시한번 깊이 새겨주고있다. 지난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정한 예술활동의 길을 찾아 헤매이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겨서야 참된 삶과 행복을 꽃피운 복받은 예술인들속에는 성악가였던 인민배우 최창은선생도 있다. 그는 해방전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도 민족의 넋과 얼을 지켜갈 애국의 마음을 안고 1936년 뜻을 같이하는 예술인들과 함께 서울가극단을 조직하고 가극 《춘향전》을 창작공연하였다. 그러나 그의 창작활동은 일제의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 하여 실패를 면치 못하였다. 그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과 재정적운영난으로 하여 가극단이 해산된 후에도 서울음악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민족예술의 넋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후 서울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조선의 음악을 부흥발전시키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음악동맹을 조직하는 등 무진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제와 그 주구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남조선에서 그의 소망은 도저히 실현될수 없었다. 그의 희망은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해방한 조선인민군에 탄원입대하여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마음껏 예술활동을 벌리면서 성취될수 있었다. 그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호속의 나의 노래》, 《포위섬멸의 노래》 등 수많은 전시가요들을 불러 전선의 인민군군인들과 후방의 인민들을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참다운 예술활동을 벌려나가기 위해 모든 열정을 다 바쳐가는 그의 애국의 마음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를 조선인민군협주단 예술부단장, 단장으로 내세워주시는 뜨거운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그후에는 조선인민군배우양성소 소장, 인민군예술학원 원장, 조선인민군협주단 고문으로 사업하도록 하는 크나큰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최창은선생은 자신에게 성악가로서의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준 공화국을 온 세상에 자랑하고싶은 마음에서 음악예술활동을 정열적으로 벌려나갔다. 그는 독창가수로서 1 500여회의 공연에 참가하였고 여러 나라들에서 200여회의 공연을 진행하여 공화국의 품속에서 활짝 꽃펴난 자기의 재능을 잘 보여주었다. 이 나날 그는 성악후비양성사업에도 열정을 다 바쳐 수십명의 가수들을 인민배우, 공훈배우들로 키워냈으며 우리 식의 발성법을 연구하여 음악도서 《발성법》과 《성악기초리론》을 집필하였다. 또한 여러차례의 개인독창회에도 출연하였으며 특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속에 생일 70돐을 맞으며 진행된 독창회에서 자신에게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준 어머니조국의 고마움을 소리높이 구가한것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의 커다란 사랑과 절찬을 받았다. 참으로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안아주고 조국과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서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도록 보살펴주는 공화국의 품이 있어 그 품에 운명을 맡긴 사람들의 삶이 어제도 오늘도 빛나고있는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