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삶을 꽃피워준 은혜로운 품         2) 희망과 재능을 꽃피워준 다심한 손길

 

 

□ 《<리조실록>은 아주 귀중한 책입니다》

 

지난날 남조선에서 재능은 있어도 그것을 꽃피워줄 품이 없어 방황하다가 북반부로 들어와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고 어머니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한 사람들가운데는 언어학자이며 력사학자였던 홍기문선생도 있다.

 

홍기문(1903. 9. 23-1992. 7. 3) 언어학자, 력사학자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사회과학원 부원장으로 사업.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김일성훈장》수훈자(1973년), 로력영웅(1981년), 원사(1962년), 교수(1961년), 박사(1961년), 조국통일상수상자.

 

장편소설 《림꺽정》의 저자이며 공화국의 초대 내각부수상을 지낸 홍명희선생의 아들로 20세기초에 태여난 홍기문선생은 아버지의 영향밑에 일찍부터 민족어를 사랑하고 고수발전시키려는 지향이 강하였다. 조선의 력사를 귀중히 여겼던 그는 해방전에 벌써 론문 《리두연구》를 발표하였고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소개하는 글 《조선력사》를 《서울신문》에 련재하였었다.

그러나 인재도 때를 만나야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수 있는것이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는 물론 해방후 미제의 식민지통치로 민족의 얼이 말살되여가는 남조선에서 그의 재능은 꽃펴날수 없었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다가 북반부에 삶의 닻을 내린 아버지 홍명희선생의 뒤를 따라 북반부로 들어온 때부터 그에게는 넓은 과학탐구와 사회활동의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홍기문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사회과학원 부원장으로 사업하면서 민족어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조선어문법연구》, 《정음발달사》, 《조선어사연구》, 《조선사화연구》 등 가치있는 과학연구론문들과 력사일화 《락랑벌의 사냥》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는 《대동야승》(1권)을 비롯한 민족고전도서들도 여러권 번역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언어학자이며 력사학자인 홍기문선생의 재능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리조실록》을 번역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민족사에 삶의 자욱을 뚜렷이 남기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59(1970)년 10월 어느날이였다.

당시 사회과학원에서 사업하고있던 홍기문선생은 한 일군으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조실록》번역사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이 사업을 그가 책임지고 수행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리조실록》에 깃들어있는 절세의 위인의 뜨거운 은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던 그는 자신을 그토록 믿어주시는 그이의 크나큰 믿음에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리조봉건국가의 500여년간의 정부일지라고 말할수 있는 《리조실록》에는 당대의 정책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민간에서 일어난 사실,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회정치적문제로부터 개별적인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봉건국가의 관심으로 되였거나 주목을 끌었던 모든 문제들이 매일 일기형식으로 빠짐없이 기록되여있다.

1413년에 처음으로 편찬되여 매 왕대가 바뀔 때마다 편찬출판된 《리조실록》은 임진조국전쟁이전에는 4부를 인쇄하여 1부는 춘추관(봉건사회에서 나라의 력사편찬사업을 맡아하는 관청)에, 다른 3부는 충청도 충주사고, 경상도 성주사고, 전라도 전주사고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었다. 그러나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 3부는 임진조국전쟁시기에 일본침략자들의 방화로 불타버렸다. 1부밖에 없는 전주사고본만이 조선서해의 배길로 해주에, 다음에는 묘향산으로 옮겨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인 1601년에 강화도로 옮겨졌었다.

리조봉건정부는 1부밖에 남지 않은 이 실록을 저본으로 하여 1606년에 다시 4부를 인쇄하였다. 저본으로 한 본래의 전주사고본은 강화도 마니산사고에, 4부는 춘추관, 경상도 안동 태백산, 평안도 향산 묘향산, 강원도 평창 오대산사고들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후 춘추관사고본은 불타버리고 묘향산사고본은 전라도 무주 적상산사고로 옮겨졌으며 강화도 마니산사고본은 1660년에 강화도 정족산사고로 옮겨졌다.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사고들에 보관된 실록은 리조말에 이르기까지 손색없이 보관되였다. 리조봉건정부는 실록을 매우 귀중히 취급하면서 보관하였는데 각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관원을 두고 보관관리하게 하였으며 일단 사고에 들어간 실록은 국왕을 포함한 어떠한 사람도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듯 엄격한 제도하에서 소중히 보관되여오던 《리조실록》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면서 적상산사고본을 리왕직도서실로 옮기고 태백산사고본과 정족산사고본은 서울대학도서관에 이관되였다. 오대산사고본은 일제가 도꾜대학으로 략탈하여갔다가 1923년 간또대지진때 불타버렸다.

이처럼 귀중한 《리조실록》이였지만 미제에 의하여 강요되였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에 의해 언제 불타 없어질지 모를 위험속에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조실록》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몸소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어느날 교육상에게 준 지시 《<리조실록>을 구출할데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리조실록>을 구출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리조실록>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재보입니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지금 미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이 도발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국은 시련을 겪고있으며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적들에 의하여 파괴소각되거나 도난당하고있다고, 《리조실록》도 피해를 입거나 없어질수 있다고, 우리는 이에 대하여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리조실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리조실록>을 반드시 구출하여야 합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조실록》구출사업을 책임적으로 할수 있는 우수한 일군들을 선발하여 시급히 서울에 파견할데 대하여서와 그들에게 자신의 명의로 된 신임장을 주며 《리조실록》의 운반을 위해 군용자동차를 동원시키는 문제, 인민군부대가 《리조실록》운반을 적극 도와줄데 대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민족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호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에 감격한 일군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리조실록》을 구출해올 결심을 굳게 다지며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신임장을 가슴에 품고 서울로 나갔다.

그들이 현지에 가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리조실록》은 창덕궁의 규장각에 있었는데 먼지속에 파묻혀있었다.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이 참혹한 광경앞에서 일군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며 《리조실록》을 몽땅 찾아내여 자동차에 정성껏 실었다.

승리의 진격을 다그치며 모두가 오직 남으로, 남으로만 달리던 그 시각, 《리조실록》을 실은 차는 북으로, 평양으로 달리였다.

이렇게 되여 오래동안 버림받던 《리조실록》은 비로소 자기의 진정한 주인을 만나게 되였고 구원의 해발을 받게 되였다.

《리조실록》을 싣고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이제는 그것이 주인의 손에 들어왔으니 보관관리를 잘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부에다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시였다.

주체47(1958)년 9월 어느날 공화국창건 10돐기념 과학전람회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고전전시관에 전시된 《리조실록》원본을 감회깊이 펼쳐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리조실록>은 아주 귀중한 책입니다. 전문가들을 위해서는 복각하고 일반대중을 위해서는 번역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리조실록》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였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예술, 민속과 풍습을 깊이 알자고 해도 그렇고 리조 500여년에 달하는 기간의 과학과 교육실태, 가물과 장마, 추위와 더위 등 기상기후현상이나 또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현상을 알자고 하여도 우리 인민의 민족사에서 5세기를 거쳐온 이 책은 비단 사회과학자, 교육자, 작가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도 보아야 하고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전문가나 일군들도 읽으면 자기 부문에 필요한 지식을 적지 않게 얻을수 있는 책인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리조실록》은 보관이나 되여있었을뿐 리용되지 못하고있었다.

일반독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학자들도 그 내용을 자유로이 읽고 리해하기가 어려웠던탓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리조실록》을 보려고 찾아왔다가는 안타까이 책장만 뒤지다가 자리를 뜨군 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리조실록》을 그대로 보존하는데만 그친다면 그것은 한갖 력사의 퇴적물로 영영 빛을 잃고말 우려가 컸다.

나라의 문화유산에 언제나 각별한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조실록》번역사업을 더는 미룰수 없는 일로 보시고 홍기문선생이 이 사업을 책임지고 밀고나가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홍기문선생의 사업정형을 알아보시고 걸린것이 있을세라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으며 번역사업의 자그마한 성과에 대하여서도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번역집단에서 실록의 량이 방대하고 시간이 무한정 걸릴것이라고 하면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부분만 추려서 번역하자는 견해와 번역하는 경우라 하여도 일부 과학성과 문화성이 결여된 부분과 또 외곡과장된 표현들을 빼거나 다듬자는 주장들이 제기되였을 때에는 원문대로 번역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번역집단을 위해서 수많은 참고서들을 갖춘 훌륭한 도서실을 꾸려주시였으며 만능전자복사기를 비롯한 수많은 기자재들도 보내주시였다.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3(1974)년 10월 어느 한 기회에 《리조실록》번역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이 사업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홍기문선생이 없으면 《리조실록》을 번역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내가 홍기문선생을 보배덩어리라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가 《리조실록》을 다 번역하면 영웅칭호를 주어야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보약도 쓰게 하며 일하다가 휴식할수 있는 방도 따로 꾸려주고 승용차도 좋은것으로 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리조실록》번역사업에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손길이 또한 어려있다.

주체66(1977)년 겨울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리조실록》번역사업은 수령님께서 직접 조직하신 사업인것만큼 번역집단을 다른 사업에 동원시키지 말고 번역사업을 집중적으로 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홍기문선생이 이제는 나이도 많은것만큼 이 사업을 빨리 다그칠수 있도록 조건을 잘 보장해줄데 대하여 당부하시면서 실록번역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에도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홍기문선생에게 최대의 관심과 은정을 돌리고계신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수령님께서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는 학자들의 건강을 일상적으로 돌봐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리조실록》의 첫 번역본(1∼5권)이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게 출판하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면서 갖가지 사전류를 포함한 50여종에 근 800권의 참고도서들과 기자재들을 보내주시였다.

참으로 《리조실록》을 번역하기 위한 10여년간의 하루하루는 절세의 위인들의 위대한 령도,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진 나날이였다.

그 사랑, 그 믿음에 떠받들려 홍기문선생은 《리조실록》번역사업을 힘있게 내밀어 10년남짓한 기간에 그 사업을 결속할수 있었으며 《김일성훈장》수훈자, 로력영웅, 원사, 교수, 박사의 영예를 지닐수 있었다. 또한 그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성원으로서 나라의 통일과 공화국의 대외적권위를 높이는데 적으나마 이바지할수 있었다.

공화국의 품에 안겨 자기의 재능을 활짝 꽃피워 나라와 민족앞에 지워지지 않는 삶의 자욱을 뚜렷이 새긴 홍기문선생에 대하여 잊지 않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후날 그를 추억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의 그 어려운 일시적후퇴시기에 남조선에 있던 리조실록을 실어다 묘향산에 보관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는데 홍기문선생이 수령님으로부터 리조실록을 번역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집행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홍기문선생이 리조실록번역사업을 아주 잘하였습니다, 홍기문선생이 리조실록을 번역하면서 한문을 잘 아는 제자들을 키웠습니다라고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정녕 절세의 위인들을 모신 공화국은 지난날 재능을 꽃피워줄 품이 없어 여기저기를 헤매이던 수많은 사람들을 안아 그들의 희망과 재능을 활짝 꽃피워주는 어버이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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