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고령에 다시 입은 장령복
천만군민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고난의 행군》의 엄혹한 시련을 헤쳐나가던 주체85(1996)년 여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70고령의 두 조선인민군 장령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1949년 5월초 각각 1개 대대씩 이끌고 공화국의 품을 찾아온 어제날의 괴뢰군 장교들이였던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이였다. 과연 어떤 사연으로 하여 70고령의 그들이 장령의 군복입은 모습으로 사람들앞에 다시 나섰는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이 동족에게 겨누었던 매국의 총대를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참된 길을 찾아서 집단적으로 공화국의 품으로 찾아왔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소망을 깊이 헤아리시여 조선인민군에 입대시켜주시였다. 그리고 전화의 그날에는 그들이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성스러운 투쟁에서 자기의 임무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였을뿐아니라 그들의 가정생활에 대하여서도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 강태무선생이 부대를 이끌고 공화국으로 의거하자 악에 받친 미제와 그 주구들은 그의 처와 자식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은 변성명을 하고 숨어지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서울이 해방된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날이였다. 전선지구 경비사령부의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전선지구 경비사령부의 임무와 사업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나서 뜻밖에도 강태무선생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를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이 알고있다고 대답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아직 가족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요즈음 알아본데 의하면 그의 가족이 서울에 있을수 있다고 하니 동무들이 그의 가족을 꼭 찾아내도록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미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침략자들을 소탕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면서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이 이끄는 부대들이 그들이 의거해온 방향으로 진출하도록 하시고 그곳에서 며칠간 머무르도록 해주시였었다. 그것은 부대의 대원들속에 그곳에 고향을 둔 대원들이 많다는것을 헤아리시여 취해주신 다심한 조치였다. 이처럼 전례없는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시고도 가족의 소식을 몰라 남몰래 고민하는 한 전사의 심정을 헤아려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에 감동을 금치 못하며 그 일군은 꼭 찾아내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동무의 가족을 꼭 찾아내라고 그리고 그 결과를 나에게 보고하라고 거듭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있던 그 준엄한 때에 서울에서는 강태무선생의 가족을 찾기 위한 작전이 벌어지게 되였다. 20여일만에 그의 가족을 끝내 찾아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가족이 살아있다니 참 기쁘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의 가족을 잘 돌봐주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안전한 곳에 집을 정해주고 아무리 전선정황이 긴급하다 하더라도 전선에 나가있는 강태무동무에게 련락하여 그가 서울에 들어와 가족들과 며칠간 즐겁게 휴식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태무선생의 가족의 안전에 대하여 념려하시여 그 동무의 가족을 인차 안전한 지대인 평양에 들어와 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 동무의 안해는 적들의 눈을 피해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한 녀성인데 자동차와 사람을 보내여 사고없이 평양에 데려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적기의 폭격을 피하면서 안전하게 오려면 마차 같은것이 좋을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은 호송군관이 몰고온 마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였으며 그후 보다 안전한 후방에 옮겨앉아 아무런 불편없이 생활하게 되였다. 이렇듯 자신들뿐아니라 가족들의 안전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그대로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여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련대들을 이끌고 온갖 시련을 헤치며 끝끝내 그이의 품을 찾아올수 있었고 조국해방전쟁의 전기간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진정한 애국의 총대의 위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베풀어주시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그들이 자기의 본분을 다해나가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43(1954)년 7월 어느날이였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태무선생의 부대가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해있다는것을 아시고 장령복을 입은 그 동무가 보고싶다고, 아무리 바빠도 우리 그 동무를 한번 만나보고 가자고 하시며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히 달려와 인사를 올리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동무로구만, 이렇게 만나니 참 반갑소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가슴에 주런이 달린 략장들이며 어깨우의 금빛장령견장을 쓰다듬어주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어린시절 동네 사랑방에서 마을어른들이 펼치던 《백두산호랑이》전설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감격으로 하여 그의 두볼로는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가볍게 껴안아주시며 이 기쁜 날에 울기는 왜 우는가고, 장령복을 입은 동무를 보니 정말 기쁘다고 뜨거운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전쟁시기 그의 건강이 좋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사람인데 건강에 특별히 류의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러신 다음 가족들도 잘 있는가, 아이들은 몇인가도 물어주시며 친어버이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수령님께서는 며칠후 그에게 자신께서 현지지도의 나날에 리용하시던 승용차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로부터 몇년후에는 그를 군대에서 제대시켜 정권기관사업도 배우고 경제관리운영방법도 배우며 다방면적으로 사업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어느 한 군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게 되자 중앙의 일군들을 파견하여 사업방법을 하나하나 배워주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여 그를 학교에도 보내주시였으며 그가 자기 사업을 자립적으로 해나가게 되였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면서 이번에는 도의 책임적인 직무를 맡겨주시였다. 그 사랑과 믿음의 세계속에서 표무원선생도 자기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다.
1950년대 말엽 표무원선생은 전쟁시기에 얻은 병이 도지여 더는 군사복무를 할수 없게 되였다. 그때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입혀주신 군복을 입고 그이께서 안겨주신 총대를 잡고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군인으로 살려던 희망을 실현할수 없게 되였다는 생각에 허전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던 주체48(1959)년 7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표무원선생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건강상태며 그간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고나시여 언제 제대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두달전에 제대되였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동무가 군대에서 제대된것을 몹시 아수해한다는데 그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고, 물론 동무를 군대에 다시 복무시킬수도 있다고, 그러나 이왕 제대되였으니 사회사업능력을 키워 앞으로 더 큰일을 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해방후 괴뢰군 한개 대대를 인솔하고 의거입북하였으며 전쟁시기에는 인민군련대장으로 용감히 잘 싸웠고 전후에도 당을 따라 성실하게 일한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이런 사랑과 믿음에 떠받들려 표무원선생은 어느 한 군의 책임일군을 하다가 70이 넘은 나이에도 한개 도의 책임일군으로 사업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주시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대를 이어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애국애족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그들을 높이 평가하시여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여러 대회들과 국가적행사들에 대표로 불러주시였으며 70돐, 80돐생일상과 귀중한 선물들도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바쁘신 가운데서도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몸소 료해하시고 그들의 희망대로 다시 군복을 입도록 해주시였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내세워주시는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은 70고령에 조선인민군 중장의 장령복을 입고 사람들앞에 나서게 된것이다. 그들이 입은 장령복, 정녕 이것은 애국의 길에 나선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시고 그 길에서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활짝 꽃피우도록 끝까지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베푸실수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의 전설이다. 《김일성훈장》수훈자들이며 조국통일상수상자들인 강태무, 표무원선생들이 절세의 위인들의 품에서 받아안고 누려온 사랑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우리 겨레를 조국통일위업실현에 적극 고무추동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