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삶을 꽃피워준 은혜로운 품


   

2) 희망과 재능을 꽃피워준 다심한 손길

 

□ 그 품속에 세계적인 과학자로

 

흔히 사람들은 조국을 어머니에 비겨 이른다. 그것은 조국이 사람들에게 생을 주는 젖줄기이고 행복한 삶을 꽃피워주는 은혜로운 품이기때문이다.

바로 이런 은혜로운 품, 절세의 위인들이 세워주시고 빛내여주시는 참된 삶과 행복의 요람인 어머니조국이 있음으로 하여 저주로운 남조선을 떠나 공화국의 품에 안긴 사람들모두가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참된 삶을 누릴수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가운데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리승기선생도 있다.

 

리승기(1905. 10. 1-1996. 2. 8) 화학자

주체50(1961)년 2월부터 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으로 사업. 원사(1952년), 교수(1961년), 박사(1959년). 다른 나라의 과학원 명예원사, 명예교수칭호 받았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2기-9기) 대의원으로 사업. 《김일성상》계관인(1980년), 로력영웅(1961년), 인민과학자(1986년).

 

리승기선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비날론섬유를 먼저 생각한다. 그만큼 리승기선생의 한생은 비날론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청춘시절에 자연과학에 뜻을 두고 현해탄을 건너간 그가 산설고 물설은 일본땅에서 고학의 고달픈 나날을 이어가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것은 1930년대초였다.

일제의 학정밑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겨레의 참혹한 정상은 리승기선생으로 하여금 값눅은 화학섬유를 연구하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하였다.

애국의 뜨거운 마음과 고심어린 탐구와 사색, 피타는 노력은 마침내 훌륭한 결실을 맺어 근 10년만에 새로운 화학섬유(비날론섬유)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연구가 학계에 던진 파문은 대단하였다. 젊은 과학자의 이름은 일약 세계 일류급학자들의 이름과 나란히 놓이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사람은 지성도 두뇌도 일본사람을 앞설수 없고 앞서서도 안된다는 일제의 강도적인 《론리》는 식민지과학자의 연구성과를 순간에 강탈하였다.

일제는 그의 연구성과가 나오기 바쁘게 세상에 대고 이렇게 광고한것이다.

- 대일본섬유화학이 세계섬유과학사에 세운 금자탑!

- 대일본섬유과학이 단연 세계의 첨단을 걷고있다!

이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일제에게 고용된 한갖 지성의 머슴군에 불과했다는것을 절감한 리승기선생은 자기 아들의 과학연구성과 하나 지켜줄 나라없는 울분에 몸부림쳤다.

그후 그는 일제의 군수생산관련연구과제를 거부한것이 《죄》로 되여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식민지과학자의 운명은 이처럼 비참하였다.

조국이 해방되자 그는 제 나라에서 연구사업을 마음껏 해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남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는 그에게 연구조건을 보장해주지 않았을뿐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량심적이며 애국적인 학자라고 하여 오히려 그를 박해하였다.

민족을 위한 과학탐구에 한몸 바치려는 일생의 소원을 풀어줄 진정한 조국의 품을 찾아 헤매이는 그의 애국의 마음을 헤아려주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남조선의 애국적인 혁명조직들을 통하여 리승기박사가 남조선에서 버림을 받고있다는것을 알고 그를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해방후부터 리승기선생에 대하여 깊이 마음써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땅에 전쟁의 포성이 울부짖던 주체39(1950)년 7월 어느날에도 그를 생각하시며 해방된 서울에 파견되여가는 한 일군에게 이번 기회에 꼭 리승기선생을 찾아서 데려오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 구체적인 방도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을 찾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매우 반가와하시며 그의 신상에 다른 일은 없었는가, 그의 건강상태와 그동안의 생활, 가정형편 등에 대하여 알아보시고나서 그를 속히 북반부에로 들여보내되 가족들과 함께 출발시킬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그가 몸이 불편한 안해와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올랐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자동차를 타고 큰길을 오기보다 가족들을 달구지에 태워가지고 산골길로 오는것이 안전상으로나 편리상 더 나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손수 달구지를 마련하여 보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리승기선생은 가족들까지 데리고 준엄한 전화의 나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며 진정한 삶의 품,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에서 그가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활짝 꽃피워나가도록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의 어려운 조건이였지만 비날론연구집단을 무어주시고 그들이 안착되여 연구사업을 하도록 연구기지를 잡아주시였다.

연구를 시작하자고 하니 책과 실험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수송이 긴장하여 한대의 자동차가 귀중한 때였지만 군용화물자동차들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이미 소개해놓았던 수많은 도서들과 실험기구, 설비들을 그곳까지 모두 실어다주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도 과학자들을 위하여 지하에 실험실을 꾸려주시고 화선에서 총을 잡고 싸우던 전투원들까지 소환하여 연구사업에 인입하도록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연구사업이 진척되고 범위가 커짐에 따라 더 많은 실험기구와 시약이 요구된다는것을 아시고는 해당 부문 일군들을 외국에까지 보내여 많은 실험기구와 시약을 구해다가 연구현장에까지 실어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리승기선생이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도록 온갖 조건을 다 마련해주시고도 몸소 여러차례 만나주시며 그가 건강한 몸으로 과학탐구에 전심할수 있도록 해주시였다.

리승기선생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보내주신 보약재와 친서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1960년 가을 리승기선생은 얼마간 병원생활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건강을 걱정하시며 귀중한 보약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친서를 보내주시였다.

《리승기선생에게

며칠전에 나는 선생이 병환으로 인하여 입원중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의 병치료에 도움이 될가 하여 방금 강원도내 농민들이 나에게 보내온 산삼 두뿌리를 송정합니다. 병치료에 도움이 될것을 희망합니다.

                      김 일 성

                   1960년 10월 25일》

사연깊은 보약재와 사랑의 친서!

이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에서 애국의 꽃을 계속 피워가기를 바라시며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무이고 격려였으며 애국의 길에 나선 사람이라면 그의 건강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보살펴주시는 그이의 뜨거운 사랑의 정화였다.

이처럼 희망과 재능을 꽃피워줄뿐아니라 건강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어버이의 품에 안겼기에 리승기선생은 과학연구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둘수 있었고 그 과정에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상》계관인, 로력영웅, 인민과학자, 원사, 교수, 박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닐수 있었다.

리승기선생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졌다.

주체59(1970)년 5월 어느날 현지지도의 길에서 치료를 받고있던 리승기선생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원장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치료받고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시고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이미 한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교시하시였다고, 그러니 수령님의 교시를 집행하자면 건강하셔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와 헤여지기에 앞서 건강에 주의하여야 한다고,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 그의 건강을 하루속히 추세워주기 위하여 치료조건과 휴식조건을 보다 개선해주시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리승기선생의 사업과 생활에 조금이라도 불편이 있을세라 따뜻이 보살펴주시였으며 그가 생일 80돐을 맞을 때에는 생일상과 함께 귀중한 선물까지 안겨주시였다.

조선지식인대회가 준비되고있던 1990년대 초엽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이 본인은 열망하지만 년로한 관계로 대회에 참가하기 어려울것 같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선생을 희망대로 대회에 참가하도록 하라고 이르시고 그가 불편이 없이 활동할수 있게 사륜차를 만들어 타게 하자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자리를 주석단에 정해주시면서 휴계실에서 그리로 가는 통로의 계단이 고령의 몸으로 오르기 불편할것을 헤아려 사륜차를 타고 오를수 있도록 정리하게 하시였다.

이런 뜨거운 사랑에 떠받들려 조선지식인대회가 개막하는 날 90나이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모신 대회주석단에 오른 리승기선생은 흘러간 자기의 한생을 돌이켜보았다.

지난날 식민지과학자로서 자기가 던져졌던 일제의 그 감방과 조선의 과학자로서 오늘 자신이 오른 영광의 단상, 이것은 조국이 없는 과학자와 조국이 있는 과학자의 운명에서의 차이의 두 극단으로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해도 과학자에게는 자기의 진정한 조국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확신하게 해주었다.

진정 리승기선생의 한생은 아무리 뛰여난 재능과 자질을 가진 세계적인 과학자라도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진정한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길 때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희망과 재능을 참답게 빛내일수 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잠업계에서, 나아가서는 생물학분야에서 권위있는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계응상선생도 참다운 삶과 행복을 꽃피워주는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겼기에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다.

한생을 잠업연구에 바쳐온 계응상선생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꽃피워주는 어머니조국의 품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절감한 과학자였다.

그는 력사가 오래고 이름높은 조선의 잠업, 하지만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통치로 하여 농촌초가집 골방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있는 조선의 잠업을 다시 추켜세워 헐벗고 굶주리는 인민들에게 비단옷을 해입히려는 청운의 뜻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가 전문학교와 대학을 거쳐 학사원을 마치였다.

그러나 일제가 그에게 연구조건을 보장해줄리 만무하였다. 그는 식민지과학자의 처지를 뼈아프게 느끼며 여러 나라들에로의 고달픈 길을 걸어도 보았다. 이 과정에 그는 손잡고 일할 동료들을 찾아 여러 나라 국경도 넘나들었고 실험기구와 시약들도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고심참담하게 수집정리하였던 연구자료를 《학자》의 탈을 쓴 사기군들에게 도난당하기까지 하는 아픔과 모욕도 당해야 하였다.

《방랑하는 누에학자》가 되여 여러 나라를 떠돌던 그는 일제가 패망하자 경기도 수원에 있는 농사시험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남조선은 그의 희망을 꽃피울 곳이 못되였다. 얼마 안되는 시험장의 뽕밭은 미군용차량의 주차장으로 짓밟혔고 잠실들은 군수창고로 변하였다. 잠실을 하나 내고 누에알을 하나 옮겨도 미《군정》에서 파견한 고문의 승인이 있어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이 미제의 박해로 과학연구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 가슴아파하시며 그를 평양으로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주체35(1946)년 10월 평양에 온 계응상선생을 몸소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오랜 시간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의 의견도 허물없이 들어주시며 담화를 하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오래동안 착취와 압박을 받으며 헐벗고 못살아온 우리 인민들에게 좋은 비단옷을 입혀주기 위하여서는 력사가 깊고 전망이 큰 우리 나라의 잠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방도에 대하여서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계응상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조선의 기후조건에 맞는 생산성이 높은 새 누에품종을 얻어내기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자기의 열정과 재능을 다 바쳤다. 그 과정에 현대생물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할수 있는 연구성과를 거두었고 그에 토대하여 새로운 우수한 누에품종들을 얻어낼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의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며 그가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한때 계응상선생은 일명 《환경절대주의》라고 하는 비과학적인 환경론의 출현으로 고충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수십여년간 탐구해온 그의 유전학에도 하루아침에 《반동학설》이라는 감투를 씌우고 그를 반동학자로 몰려고 하였다.

이런 실태를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몇십년간 누에연구사업을 하여 자기의 과학적신념을 세웠고 그에 기초하여 좋은 누에품종을 많이 만들어낸 성과있는 과학자라고 하시며 오늘 우리가 자체로 만들어낸 누에품종으로 고치를 생산하고있는데 이것을 해결한 과학리론을 어떻게 《반동학설》이라고 하겠는가고 가슴아프시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과학자가 자신이 연구하여 얻은 신념을 주장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학자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거기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에 맞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킬수 있다고, 그가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것은 과학적신념이 있기때문이라고 하시며 그가 마음놓고 강의도 하고 연구사업도 하도록 모든 조건을 다 보장해줄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실로 지식인들의 과학적신념을 지켜주시고 고충이 있을세라 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 있기에 계응상선생은 그후 유럽의 한 학술보고회에서 유전학을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누에품종을 얻어낸 과학연구성과를 발표하여 세계과학계를 놀래울수 있었다.

계응상선생을 위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은정은 이에 그치지 않으시였다.

어느해인가 농업과학원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생일 70돐이 얼마 멀지 않았다는것을 아시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과학발전에 공로가 있는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이고 원사, 교수, 박사이고 《인민상》계관인이니 우리 나라 최고영예는 거의다 받은셈이라고 하시며 그러니 생일 70돐에는 로력영웅칭호를 주는것이 좋겠다고, 여기에 정치위원동무들이 다 참가했으니 이동정치위원회를 열고 여기서 결정하자고 하시면서 그를 위하여 류례없는 당중앙위원회 이동정치위원회까지 소집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의 과학연구업적을 신문에 널리 소개하고 《계응상선집》도 발행하도록 하시였다.

절세의 위인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거듭 받아안을 때마다 계응상선생은 당기발에 마치와 낫과 함께 붓을 새겨넣도록 하시고 그 붓을 아껴주고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을 금할수 없었으며 조선의 모든 지식인들과 함께 자기 또한 과학도 운명도 부럼없이 꽃피워주는 진정한 조국을 가지게 된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뿌듯이 느끼였다.

진정 생을 주는 젖줄기이고 행복한 삶을 꽃피워주는 은혜로운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기에 리승기, 계응상선생들과 같은 오랜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과학자로 명성을 날리며 희망과 재능을 더욱 활짝 꽃피울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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