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군의 원칙에서

   전후복구건설을

 1

국방공업발전을 담보하는

전후경제건설로선 제시

전후 조성된 정세는 인민군대와 인민들로 하여금 적들의 전쟁기도를 제때에 때려부실수 있도록 항상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며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계속 힘을 넣으면서 전후복구건설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여기에다 전후복구건설의 앞길에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있었다.

전쟁피해정형을 종합한 자료만 보아도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한 인민경제의 피해액은 당시 화페로 약 4 200억원에 이르렀다. 미제의 야만적폭격으로 말미암아 8 700여개의 공장과 기업소가 재더미로 되고 37만정보의 농토가 피해를 입었으며 농경지가 9만정보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60여만채의 살림집과 5 000여개의 학교, 1 000여개의 병원과 진료소, 260여개의 극장과 영화관을 비롯한 수많은 시설들이 파괴되였다.

이러한 형편을 두고 미제는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뇌까렸고 세계 진보적인류는 조선에서의 전후복구건설전망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이 있고 령토가 있으며 당이 있고 인민정권이 있는 한 또다시 새 생활을 건설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밑에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에로 전체 군대와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당시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지만 복구건설을 무엇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때문에 복구건설의 선후차를 어떻게 정하며 어느 고리를 틀어쥐고 어디에 력량을 집중하는가 하는것은 재더미우에서 제힘으로 빨리 일떠서는가 못 서는가 하는것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조국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이러한 요구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엄혹한 전쟁의 나날 포화속에서 구상하시고 준비하신 전후복구건설의 설계도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7월 28일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평양시군중대회의 주석단을 내리시는 길로 강남요업공장(당시)을 찾으시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여 평양방직공장과 황해제철소(당시) 등 여러 공장과 농촌, 건설장들을 끊임없이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초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참히 파괴된 제강소구내를 돌아보신 다음 제강소마당에 서있는 백양나무아래 무너진 벽체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로동자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에게 《나는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문제를 토의할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준비하다가 강선의 로동계급과 복구건설문제를 의논해보려고 오늘 이곳에 찾아왔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방향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전후 인민경제를 복구건설하는데서 공업화의 기초로 되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켜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철공업을 복구발전시키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그리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경공업과 농업도 동시에 복구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강철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은 매우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를 맡고있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혹심하게 파괴된 강선제강소를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훌륭히 복구건설함으로써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이는 원쑤들의 궤변을 짓부시고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영웅적인 조선로동계급의 위력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시위하여야 한다고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신 끝없는 기쁨과 함께 강선로동계급을 복구건설의 앞장에 세워주시는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며 로동자들은 제강소복구를 다그쳐 강철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고 로동자들을 둘러보시며 엊그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토론한 전후복구건설의 총적방향이 전적으로 옳았다, 그 로선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하든지 우리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은 추호의 동요없이 그 정당성을 믿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이라고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전후의 현실과 인민대중의 지향, 각오를 통하여 자신께서 이미 구상하신 전후경제건설의 방향이 정당하다는것을 확신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회의에서 《모든것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전후경제건설에서 중공업의 선차적복구발전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나라의 경제토대를 튼튼히 할수 있고 인민생활을 빨리 개선할수 있습니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전후경제건설로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총대로 시작되고 총대로 전진하여온 조선혁명의 요구와 미제와 직접 맞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하시여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굳게 믿으시고 내놓으신 혁명적이며 독창적인 로선이였다.

그때까지 경제건설력사에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와 같이 경공업을 먼저 건설하여 자금을 확보해가지고 중공업을 건설하는 길과 이전 쏘련에서와 같이 일정한 기간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뒤로 미루고 중공업을 강행적으로 건설하는 두 길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경제건설리론과 경험들은 우리 인민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인정하시였다.

중공업건설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확대재생산의 근본요구이며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기본요구이기도 하지만 중공업에만 치우치면서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뒤로 미룬다면 전쟁으로 령락된 인민생활을 빨리 안정향상시킬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우리 나라에서 자립적인 경제토대를 쌓는 문제와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수 있는 방향에서 전후경제건설로선을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경제건설로선은 특히 미제와 직접 맞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조건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국방공업의 발전을 확고히 담보할수 있게 하는 독창적인 로선이였다.

자립적인 경제토대를 쌓기 위하여서도 그렇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기 위하여서도 군력이 강해야 하는데 이 군력강화의 기본요인의 하나인 국방공업의 발전은 중공업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있다. 결국 중공업을 빨리 추켜세우고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국방공업의 발전을 확고히 보장할수 있으며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인민생활도 높일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로선은 비단 전후복구건설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건설 전기간에 걸쳐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로선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사업을 3개의 기본단계로 구분하여 첫 단계에서는 반년 내지 1년동안 파괴된 경제를 전반적으로 복구할수 있는 준비사업과 정리사업을 하며 둘째 단계에서는 3개년계획을 수행하여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 수준을 회복하며 셋째 단계에서는 5개년계획을 수행하여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쌓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인민경제부문별 복구건설방향과 로력, 기술,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방도들도 밝혀주시면서 기계제작공업의 발전은 우리 나라의 장래공업화를 위한 기본조건으로 되며 국방상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기계제작공업의 발전에 특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국방공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은 전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한 투쟁에 뚜렷한 전망과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나설수 있게 힘있게 추동하였다. 2

 

복구건설의 앞장에

인민군대를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힘을 넣으시면서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적극 다그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에 인민군대를 적극 동원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를 전후복구건설에 동원하도록 하신것은 부족되는 로력문제를 풀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인민군대의 높은 전투력에 의거하여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전반을 힘있게 밀고나가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끝난지 3일째 되는 날인 주체42(1953)년 7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총참모부 국장들과 군종, 병종사령관들의 회의에서 인민군부대들이 조국의 방선을 튼튼히 지키면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에 동원될데 대한 혁명적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러므로 인민군부대들은 조국의 방선을 튼튼히 지키면서 인민경제복구건설에 동원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는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을 족치던 그 기세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에서도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이 조국의 방선을 튼튼히 지키면서 전후복구건설에 동원되여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발휘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단위를 약화시키지 않는 원칙에서 군인들이 일정한 기간 교대로 동원되여 복구건설을 전문적으로 담당수행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전투정치훈련을 하거나 군사적임무를 수행하는 인민군군인들은 여가시간을 리용하여 공장, 기업소, 철도, 농촌복구와 도시건설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복구건설에 동원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은 선군사상의 기치밑에 군사를 앞세우고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높여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면서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게 한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이 방침은 또한 3년간의 전쟁행정에서 사상의지적으로, 육체적으로 단련되고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각종 군사시설물들의 건설경험과 기술기능을 체득한 인민군대의 전투력에 대한 전면적분석에 기초한 가장 과학적이며 현명한 방침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반년 내지 1년으로 하는 인민경제복구를 위한 준비단계의 과업은 파괴된 인민경제를 전반적으로 복구건설할수 있는 준비사업과 정리사업을 진행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초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인민경제 여러 부문과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복구건설의 중요대상들을 인민군대에 맡겨주시고 같은 해 8월 중순에는 전후복구건설에 참가하는 군인들속에서 당정치사업을 잘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시여 전후복구건설사업에서 인민군군인들의 정치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높이 발양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많은 인민군부대들을 강선제강소와 황해제철소, 흥남비료공장(당시)을 비롯한 중요공장, 기업소들과 철도운수, 농촌경리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들과 중요도시복구건설장에 파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인민군부대들은 피로써 지킨 조국을 땀으로 건설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재더미를 헤치면서 복구건설의 돌파구를 열어나갔다.

전후복구건설에서 인민군대가 앞장서나가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할 드높은 결의를 안고 인민군대에서는 군인들이 인민경제복구건설사업에 20일씩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운동을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피로써 지킨 조국을 복구건설하는데 군인들이 동원되는것은 복구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고무추동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에서 높이 발휘되고있는 이 운동을 온 사회에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경제복구건설사업에 20일씩 참가하는 운동을 인민군대에서만 할것이 아니라 내무성에서도 하고 모든 국가기관들에서 다 하여야 한다고 그리고 이 운동을 평양시뿐아니라 원산, 함흥, 남포를 비롯한 지방도시들에서도 벌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하여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영웅적투쟁기풍과 애국적로력동원운동은 전사회적으로 일반화되였으며 복구건설장마다에서는 인민군대의 전투적기백이 차넘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전후복구건설의 앞장에 내세워주시였을뿐아니라 복구건설의 마치소리 울리는 건설장들을 찾으시여 인민군군인들의 투쟁을 고무해주시였다.

주체42(1953)년 8월초 강선제강소를 찾으신 그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인민군군인들이 강선제강소의 복구건설을 지원하고있는데 이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인민군군인들은 어제날 전선에서 미제와 용감하게 싸워이긴 그 기세로 전후복구건설사업을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후복구건설사업도 전투이다, 군인들은 전쟁시기 적과의 싸움에서 그러하였던것처럼 전후복구건설에서도 무비의 용맹을 떨쳐야 한다고 그들의 투쟁을 뜨겁게 격려해주시였다.

전후복구건설은 단순한 원상복구가 아니라 개건과 신설을 동반하고 자금과 자재, 로력과 기술 등 모든것이 부족한 조건에서 진행하는 사업인것만큼 이 과정에는 복잡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진두에서 이끄시면서 제기되는 애로들을 선군의 원칙에서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5년이상 걸린다는 평양방직공장복구건설이 두달로 앞당겨 진행된것도 군인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적극 발양시키시여 전후복구건설을 현명하게 이끌어나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보여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정전이 된지 며칠 안되여 평양방직공장을 찾으시고 공장을 복구건설하자면 5년은 걸려야 한다는 일군들에게 미제를 굴복시킨 그런 본때로 일하면 2개월동안이면 끝낼수 있다는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어느날 또다시 방직공장복구건설장에 나오시여 공장복구에서 걸린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시였다.

일군들은 당장 40만장의 벽돌이 요구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방직공장복구건설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되여 복구사업이 통이 크게 벌어지고있었는데 벽돌이 미처 보장되지 못하여 건설이 빠른 속도로 진척되지 못하고있었다.

벽돌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일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안타까이 다녔지만 도저히 해결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직 벽돌공장확장공사가 끝나지 않은 때였고 또 도처에서 벽돌을 요구하기때문이였다.

벽돌만 있으면 복구건설을 앞당겨 끝낼수 있었다.

《벽돌이라…》

이렇게 되뇌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 말씀이 없이 건설장을 둘러보시였다.

군인건설자들이 정리하고있는 마사진 건물이며 무너진 벽체들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부대지휘관을 부르시여 몇마디 물음을 주고받으시였다.

《지금 건설에 동원되고있는 군인들이 몇명이나 되오?》

《옛, 2만명입니다.》

《군인 한명이 낡은 벽돌을 다섯장씩 모으면 몇장이 되겠소?》

《10만장입니다.》

《그래 열장씩 모으면 얼마나 되오?》

《옛, 20만…》 지휘관은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세번째만에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으시는 의도를 깨달은 그는 자세를 바로하고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최고사령관동지, 부족되는 벽돌은 매 군인이 낡은 벽돌을 20장이상 수집하여 자체로 해결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게 세마디의 질문으로 평양방직공장복구건설에 필요한 40만장의 벽돌을 인민군군인들이 순간에 해결하도록 이끌어주심으로써 이 공장은 수령님의 의도대로 두달동안에 성과적으로 복구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인민경제복구발전 3개년계획수행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인민경제복구발전 3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발전시키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 생산수준을 회복하는것이였다.

인민경제복구발전 3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5월 고급군사학교(당시) 교직원, 학생들앞에서 하신 연설에서 인민군장병들을 3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동원할데 대하여 가르치시고 공장, 기업소와 철도복구건설장을 비롯한 여러 건설장들을 찾으시여 복구건설에 동원된 인민군군인들을 적극 고무해주시면서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요공장, 기업소복구건설에서 인민군대의 핵심적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6월말 흥남비료공장복구건설장을 찾으시여 인민경제복구건설에서 중공업부터 먼저 복구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방향과 선후차를 명확히 밝혀주시였으며 흥남비료공장복구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복구건설에서 로력적위훈을 세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후 공장, 기업소복구건설에서 인민군군인들은 무한한 헌신성과 창조적적극성을 높이 발휘하여 황해제철소의 1호, 2호평로복구확장공사를 완공하고 강선제강소의 전기로들과 분괴압연직장, 조강설비들을 더욱 웅장하고 현대적으로 복구건설한것을 비롯하여 흥남비료공장과 승호리세멘트공장(당시) 등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의 복구, 신설확장공사를 앞당기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또한 철도복구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은 대동강철교복구공사를 계획보다 40일이나 앞당겨 완공하여 주체43(1954)년 6월 중순부터 렬차운행을 보장한데 이어 함흥-고원간 선로복구공사와 사리원-하성간 철도복구공사 그리고 청천강과 대령강철교를 비롯한 많은 철교복구공사를 맡아 그 완공을 앞당겨 보장하였다. 특히 고산-평강사이 철길공사에 동원된 인민군군인들은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하여 주체43(1954)년 9월 개통식을 보장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축하문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철도공사가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전기철도건설사업소를 따로 내오도록 하시고 이 사업소에 양덕-천성사이의 전기철도복구공사를 맡겨주시면서 조선인민군 한개 구분대를 이 공사에 파견하여주시였다. 그리고 주체45(1956)년 5월 중순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공사전반을 다그칠데 대하여 가르치시고 군인건설자들을 적극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높이 받들고 인민군군인들은 전쟁시기 원쑤를 족치던 그 기세로 공사를 빠른 속도로 다그쳐 완공하고 주체45(1956)년 5월말 양덕-천성사이의 전기철도를 개통함으로써 평양-원산간 철도수송의 긴장성을 풀고 나라의 전반적수송능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농촌경리의 복구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은 강남과 승호, 룡성지구의 관개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내고 금탄2단양수장과 영진양수장건설을 제때에 완공하였으며 청천강, 순화강제방공사를 비롯한 여러 제방공사를 앞당겨 끝냄으로써 평남관개공사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복구건설의 중요대상들과 수도복구건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대동교복구건설공사를 인민군대에 맡겨주시고 도시복구건설에서 군인들이 모범이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2월초 대동교복구건설문제를 토의하는 일군들의 협의회에서 그의 정치경제적의의에 대하여 밝히시고 대동교복구건설을 단 몇달동안에 끝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 공사를 인민군대가 맡아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인민군대는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맡겨진 임무를 끝까지 관철하고야마는 전투적기백과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기술력량과 전쟁시기에 쌓은 다리복구경험이 있다고 하시면서 민족보위성의 한 일군을 대동교복구건설의 총책임자로 임명하시고 대동교를 원상대로 복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제시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주체43(1954)년 3월과 5월 대동교복구건설장을 찾으시여 인민군군인들이 새로운 작업방법을 적극 받아들이고 대동교복구건설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높이 치하하시고 건설에서 인민군대의 본때를 보이라고 힘있게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현명한 령도밑에 인민군군인들은 무비의 애국적헌신성과 창조적지혜를 적극 발휘하여 모든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고 약 5개월만에 대동교복구건설을 완공하여 주체43(1954)년 6월 준공식을 보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동교준공과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공사에 참가하여 로력적위훈을 세운 인민군장병들을 축하해주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은 살림집건설과 공공건물건설을 비롯한 도시복구건설장마다에서 새로운 혁신적성과를 이룩하였다.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도시복구건설이 힘있게 추진된 결과 평양시에서만도 모란봉극장과 중앙전화국, 중앙방송국, 과학도서관을 비롯한 수십개 대상건설이 완공되였으며 주체43(1954)년 8월에는 중앙광장(오늘의 김일성광장)개통식에 이어 조국해방전쟁기념관(당시)이 개관되였다. 도시건설을 위한 인민군군인들의 투쟁은 신의주와 남포를 비롯한 전국각지에서도 힘있게 벌어져 살림집과 각급 학교들, 문화시설들이 복구건설되였으며 온 나라는 전쟁의 피해를 가시고 급속히 변모되여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기초건설의 5개년계획수행을 위한 중요대상건설을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5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를 끝내고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튼튼히 닦으며 인민들의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는것이였다.

새 전망계획기간에 건재공업부문앞에는 세멘트를 비롯한 건재생산을 건설에 앞세워 건재의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킬데 대한 중요한 과업이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호리와 천내리, 해주세멘트공장을 비롯한 중요건재공장들을 개건확장하도록 하시는 한편 새로운 설비로 장비된 세멘트공장을 신설할데 대하여 발기하시고 이 공장건설에 인민군대를 동원시키는 조치를 취하시였다. 이미 3개년계획수행시기 새로운 세멘트공장부지를 정해주시고 착공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 6월 이 세멘트공장건설장을 찾으시여 건설에 력량을 집중하여 준공기일을 1년 반 앞당길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건설력량문제로부터 군인건설자들의 후방보장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공장건설에 동원된 인민군군인들은 세멘트공장건설을 앞당기기 위한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켜 1년이상 걸린다던 2개의 굴뚝을 56일동안에 훌륭히 일떠세웠으며 8만여명이 해야 할 중요대상공사들을 더 맡아 수행하면서 수많은 자재들을 수집리용하고 수십건의 창의고안을 받아들여 전반적공사기일을 앞당길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9월 또다시 공장건설장을 찾으시여 공장건설에 참가한 지도일군 및 로력혁신자협의회에서 우리 나라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세멘트공장건설에 헌신하고있는 인민군군인들과 건설자들에게 당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건설에 동원된 인민군군인들의 식생활을 높이도록 하시고 기계설비의 조립을 비롯한 공장건설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세멘트공장건설이 빠른 속도로 추진된 결과 주체47(1958)년 11월 2기의 소성로에 첫 불을 지피고 시운전을 거친 다음 주체48(1959)년 2월 준공식이 거행되였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완성하며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보다 전면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건재공업기지가 튼튼히 꾸려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축성시기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인 비날론공장건설에서도 인민군군인들을 주공전선에 내세우시였다.

주체47(1958)년 10월 비날론공장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고 공장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3월 비날론공장건설장을 찾으시여 공장건설을 위한 설비와 자재의 생산보장대책을 세워주시고 위력한 건설집단을 무어주시면서 공장건설에 인민군대를 파견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평남관개공사에 동원되였던 3 000여명의 제대군인들과 인민군대의 한 군부대군인들을 주력으로 하여 주체49(1960)년 6월부터 비날론공장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9(1960)년 8월 비날론공장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비날론공장건설을 전국가적인 사업으로 조직전개하도록 당적, 국가적조치를 취하시는 한편 건설공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로 인민군군인들을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에서 주공전선을 담당하고있는 인민군군인들의 건설투쟁현장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인민군대는 못하는 일이 없다는 크나큰 믿음도 안겨주시고 군인들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공장건설을 앞당겨 끝내도록 고무도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인민군군인들은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들에게 질좋고 아름다운 옷감을 풍족히 공급하기 위하여 비날론공장건설을 더욱 촉진하자!》는 구호를 들고 공사장마다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다. 인민군군인들의 혁신적투쟁에 의하여 비날론공장건설은 기한전에 끝나게 되였으며 마침내 주체50(1961)년 5월 주체적인 화학공업기지의 하나인 비날론공장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공장준공식과 경축행사들에 참석하시여 인민군군인들을 비롯한 공장건설자들을 축하하시였으며 그들을 위하여 연회도 베풀어주시였다.

인민군대를 복구건설의 앞장에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후 우리 나라에는 인민군대와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우는 공장, 기업소들을 비롯한 기념비적창조물들이 수많이 일떠섰다.

전쟁의 피해를 가시며 이 땅우에 펼쳐진 자랑찬 현실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현명성을 힘있게 실증하였으며 미제를 쳐부신 영웅조선의 기개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떨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밑에 인민군대가 총대로 조국의 방선을 철벽으로 지키고 나라와 인민의 안전을 담보하면서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에 적극 참가하여 세운 영웅적위훈은 우리 나라에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일떠세우고 우리 나라를 자립적민족경제토대를 가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3

 

제대군인들을 사회주의

건설의  앞장에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초소마다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투쟁의 앞장에는 언제나 조국보위의 제일선에 서있던 제대군인들도 있었다. 어제날 혁명의 총대를 잡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을 위훈으로 새겨온 제대군인들이 색날은 군복을 그대로 입고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창조와 혁신으로 삶의 자욱을 빛내인것이다.

이들의 자랑찬 모습은 제대군인들을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초소에서 모범이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앞장에 인민군대를 내세워주시는것과 함께 이 장엄한 투쟁에서 제대군인들이 언제나 핵심이 되고 모범이 되도록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3년간의 전쟁으로 재더미밖에 남지 않은 빈터우에서 조선인민은 복구건설을 진행하고 사회주의기초건설을 해야 하는 초행길에 들어섰다. 자기 수령, 자기 당의 사상과 로선을 받들어나가는 투쟁대오의 기수, 핵심으로 누구를 내세우는가에 따라 이 력사적진군길에서의 승패가 결정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 투쟁의 기수, 핵심의 하나로 바로 제대군인들을 내세워주시였다.

인민군대는 하나의 혁명대학과 같다. 인민군대에서는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려는 사상정신적각오를 체득하게 되고 최고사령관의 명령지시에 절대복종하고 그것을 결사관철하려는 난관극복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혁명대학과정을 통해 사상정신적으로, 기술육체적으로 단련된 제대군인들이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마땅히 투쟁대오의 기수가 되고 핵심으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것이라고 보시였다.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단순히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로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 력사적진군길의 앞장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의 현명성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에 따라 전후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금속, 전력, 채취, 림업, 농업, 수산업, 철도운수를 비롯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들에 배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에 진행된 내각 제18차전원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제대군인들의 배치를 중요한 토의문제의 하나로 제기하시고 그 해결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전후 인민경제의 주공전선마다에 제대군인들을 파견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에는 대담하게 인민군대병력을 8만명 축소하여 평화적건설에 돌릴데 대한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미제의 무력증강책동이 날로 우심해지고있는 긴장한 때에 8만명이나 되는 많은 군대를 우리만 일방적으로 한꺼번에 축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위구심을 가지고있었다.

이러한 속에 주체45(1956)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만명의 군대를 제대시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배치하는 사업을 잘하도록 하기 위하여 협의회를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남조선괴뢰도당이 괴뢰군증강소동을 미친듯이 벌리고있는 때에 우리 당이 대담하게 인민군대병력을 8만명 축소하는것은 정치군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는 거대한 사변으로 된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1956년 5월 공화국정부는 그해 8월말까지 인민군대병력중에서 8만명을 축소할데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공화국정부의 이 조치에 따라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각 병종부대들에서 병력축소사업은 그해 6월 하순부터 시작하여 제정된 기일을 훨씬 앞당겨 끝내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제대군인들을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배치하는 조치를 취해주시는 한편 그들이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 모범이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제대군인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미제침략자들과 피흘리며 용감히 싸운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이라고 하시면서 각급 당단체들은 조국보위초소에서 돌아오는 제대군인들을 따뜻이 맞이하고 제때에 직장에 배치하며 그들이 안착되여 일하고 생활할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돌봐주어야 한다고, 제대군인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잘 싸운것처럼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에서도 로력적위훈을 세우도록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주체44(1955)년 11월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시여서는 제대군인들을 비롯한 로동자들의 살림집문제를 빨리 해결해줄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또한 주체48(1959)년 9월 황해제철소(당시) 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제대군인동무들이 지난날에는 전선에서 적을 때려부시기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우는것이 가장 영예로운 일이였다면 오늘에 와서는 제철, 제강부문에서 일하며 선철과 강철생산을 높이기 위하여 투쟁하는것이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큰 복무이며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제대군인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세심한 보살피심은 그대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을 창조하는 열정이 되고 위훈을 낳는 원천이 되였다.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대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신 가슴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주체46(1957)년 2월 어느날 이른새벽 황해남도 신천군 새날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아오시여 조합형편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의 한 집에서 잔치를 한다는것을 아시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그 집 살림을 구경하고 가자고, 경사날에 왔다가 그냥 가겠는가고 하시며 잔치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날 잔치를 하게 되는 신랑은 인민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제대된 제대군인이였다.

잔치집의 살림살이도 알아보시고 신랑신부의 결혼도 축하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량옆에 세우고 신랑에게 물으시였다.

《군대에서 언제 제대됐소?》

《1956년 8월에 제대됐습니다.》

《잘 싸웠군. 훈장도 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랑의 가슴에 달려있는 훈장들에 시선을 돌리시며 싸움을 많이 했는가, 어느 전투에 참가했는가고 물으시였다.

1211고지에서도 싸웠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수고했다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부상당한데가 없는가도 알아보시였다.

동무들이 그렇게 전선에서 원쑤들과 잘 싸웠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행복이 돌아온것이요. 자, 얼마나 좋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신랑신부를 량옆에 꽉 껴안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받치는 감격에 목이 메여 들먹이는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전선에서 적과 용감히 싸운것처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되여야 합니다.》

이름없는 농촌마을에 찾아오시여 제대군인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고 그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

미제와 싸워이긴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온 나라 제대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이였고 믿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은 제대군인들은 사회주의건설장마다에서 언제나 핵심이 되고 돌격대가 되여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천리마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고 6만t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낸 강선제강소(당시) 로동계급의 앞장에도, 살림집건설에서 14분에 1세대 조립이라는 《평양속도》를 창조한 수도건설자들의 앞장에도 언제나 제대군인들이 서있었다.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힘찬 진군길에서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로력혁신자로, 영웅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되였다.

이 자랑찬 현실은 언제나 투쟁대오의 기수가 되고 핵심이 되며 모범이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마련된 빛나는 결실이였다. 4

 

전국전투영웅대회

주체42(1953)년 8월 중순 평양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국전투영웅대회가 진행되였다.

전국전투영웅대회, 이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공화국영웅들이 미제와 싸워이긴 그 기세, 그 기백으로 전후 인민군대강화와 복구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 모범적역할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계속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에서 마련하신 대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국전투영웅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공화국영웅들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세운 불멸의 위훈을 계속 빛내여나가야 한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애국적헌신성과 영웅성, 대담성을 발휘하여 특출한 공훈을 세운 영웅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열렬한 축하를 보내시고 전선과 후방에서 조국과 인민,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안고 미제침략자들을 무찌르는 전투에서 생명을 아끼지 않았으며 있는 힘과 용기를 다하여 영웅적으로 싸운 공화국영웅들과 로력영웅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오늘 인민군대는 인민들의 평화적로동을 수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적리익을 보위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있다고,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서 동무들이 중요한 역할을 놀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공화국영웅들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우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영웅들이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영웅들은 인민군대의 륙군, 해군, 공군을 불패의 전투대오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경험과 교훈을 옳게 총화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전쟁경험을 총화하고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전개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들이 앞장설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영웅들은 인민경제를 복구하고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며 나라의 경제적토대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전투적과업을 수행하는데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이 투쟁에서도 빛나는 공훈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연설에서 영웅들과 모범군인들은 자기를 영웅으로, 모범군인으로 키워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 전체 군인들과 한덩어리가 되여나감으로써만 보다 훌륭한 공훈을 세울수 있고 인민들속에서 대중적영웅주의를 배양할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가 맡겨준 영광스러운 임무를 영웅적으로 완수하며 우리 나라의 통일과 자주독립, 조국의 번영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공화국영웅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전국전투영웅대회 참가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정에도 뜨겁게 어리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 참가하는 영웅들이 회의가 열리기 10여일전에 평양에 올라와 공장과 학교들을 견학하면서 휴식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고 그들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의사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다음에는 대회참가자들의 한결같은 념원을 헤아리시여 영웅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또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에서 잘 싸운 공화국영웅 12명을 친히 부르시여 담화를 하시였으며 대회참가자들을 위하여 성대한 연회까지 베풀어주시였다.

전국전투영웅대회이후 인민군대는 임의의 시각에 원쑤들이 덤벼들어도 철저히 소멸할수 있는 전투동원준비가 갖추어지고 조국의 방선은 더욱 굳건히 다져지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재더미를 헤치고 부강조국의 새 터전을 다지는 복구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는 날마다 영웅적위훈과 기적이 창조되는 자랑찬 화폭들이 펼치여졌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전국전투영웅대회는 인민군대의 강화와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전화의 영웅들이 언제나 앞장에 서고 그들의 모범을 따라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모두가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영웅조선의 기상을 떨치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5

 

《꽃은 계속

피여야 합니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총대를 잡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된 사람들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들을 영예군인으로 내세워주고 보살펴주는 새로운 전설이 창조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영용하게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영예군인들을 따사로운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시던 은정으로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렵던 전후시기에도 영예군인들을 따뜻이 돌보아주시고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독창적인 선군혁명령도로 전후복구건설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영예군인들에게 친어버이사랑을 다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3월 영예군인학교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내각지시를 하달하시여 영예군인들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돌봐주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원래 영예군인학교들은 조국수호의 제일선에 서서 총을 잡고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혁명전사들을 보살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도덕의리심에 의하여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4월에 영예군인들에게 공업과 농업, 통계부기를 전문으로 교육하는 1∼2년제학교들로 창설되였다.

영예군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의 변화된 환경에 맞게 학교들을 계획통계, 설계, 체신, 농업 등을 교육하는 4년제학교들로 개편하시고 학생들에게 의수, 의족, 기타 교정기구와 학습에 필요한 학용품, 교복, 생활필수품들을 무상으로 공급해줄뿐아니라 매달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예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신 가슴뜨거운 사랑은 길주영예군인생산작업소에도 깃들어있다.

주체47(1958)년 5월 어느날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인사를 나누시다가 차렷자세를 취하고있는 한 영예군인앞에 이르시여 걸음을 멈추시였다.

딱딱한 의수를 차마 위대한 수령님앞에 내밀수 없어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의수를 꽉 잡아주시더니 두팔이 없는 그의 량소매를 걷어올리시고 한참이나 그것을 어루만지시였다.

고향은 어딘가, 부대는 어느 부대였으며 부상은 어디서 당했는가 등을 하나하나 알아보시다가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손으로 글도 쓸수 있소?》라고 물으시였다.

빨리는 쓸수 없어도 쓸수 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 그럼 한번 써보오.》라고 반가와하시며 친히 자신의 웃주머니에서 만년필을 뽑아 그에게 주시였다.

너무나 흥분하여서인지 그 영예군인의 의수가 제대로 만년필을 받아쥐지 못하게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소, 그럼 글쓰는 동작만이라도 해보오.》 하시며 만년필을 몸소 그의 의수에 꼭 끼워주시였다.

그는 흥분된 자신을 억제하느라고 애를 썼으나 끝내 흐느끼고야말았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과 그 안해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수수한 긴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다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시였다.

정녕 영예군인들을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은 항일전의 나날 자신의 신변을 걱정하는 대원들의 만류도 뒤로 미루시고 미혼진밀영에 있던 열병환자들을 찾으시던 그걸음으로 전화의 나날 전상자병원까지 찾아가시여 부상자들의 어깨를 다정히 껴안아주시며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던 친어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온몸으로 받아안은 이곳 영예군인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 영예군인모두가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하늘같은 은정에 감격의 눈물로 격정을 터뜨렸다.

영예군인들을 내세워주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은정과 크나큰 믿음에 의하여 주체48(1959)년 11월에는 전상자영예휘장수여사업을 조직진행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발표되고 주체49(1960)년 4월에는 영예군인들에 대한 국가적방조와 사회적원호사업을 일층 개선할데 관한 내각명령이 하달되였다. 그리하여 《영예군인》이라는 값높은 칭호로 불리우며 그들은 당과 국가의 관심속에, 인민들의 사랑속에 부러움없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영예군인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전화의 나날에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피를 흘린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영예군인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에서 미국놈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잘 싸운것처럼 오늘도 인민들을 교양하는데 앞장서며 일상생활에서 모범이 되여 그들이 세운 위훈과 업적이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의도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4월에는 어느 한 기계공장의 한 청년작업반장이 전쟁시기에 한팔을 잃은 영예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획을 매일 평균 170∼250%로 넘쳐 수행하고있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동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주체47(1958)년 6월에는 신의주영예군인생산작업소 룡천분공장 영예군인들과 담화하시면서도 영예군인들은 지금까지 당과 조국에 충실하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일을 잘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10월 전국지방산업부문 및 생산협동조합열성자대회에 참가하였던 영예군인들앞에서 하신 연설에서도 영예군인들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는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애가 아주 강하고 우리 당중앙위원회를 보위하려는 사상이 강한 영예군인동무들은 전시에는 피로써 조국을 지켰으며 오늘은 보람찬 로동으로써 조국의 번영과 사회주의건설에 이바지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오늘 이 기회에 먼저 동무들에게 부탁하고싶은것은 이러한 혁명적기개를 늦추지 말고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하겠다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조국을 피로써 지킨것만큼 오늘 그 누구보다도 조국을 더 사랑하며 우리 당중앙위원회를 튼튼히 보위하며 그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는데서와 우리 당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쟁취한 사회주의전취물을 보위하는데서 언제나 모범이 되고 계급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당성을 더욱 단련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꽃은 계속 피여야 한다고, 어제 꽃이 피였다고 하면 오늘도 계속 꽃이 피여있어야 한다고, 어제는 혁명투쟁을 잘했는데 오늘은 투쟁하지 않는다면 어제까지는 좋은 꽃이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꽃이 시든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영예군인동무들도 지난날 자기가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렸고 혁명의 꽃을 피웠다면 지금도 꽃을 피우고 앞으로도 조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게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항상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영예군인들에게 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에서 무비의 영웅성을 발휘하였으며 피로써 조국의 영예와 우리 혁명의 전취물을 지킨 동무들은 오늘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되여 당의 두터운 신임과 인민들의 높은 기대에 보답하여야 할것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다시금 안겨주시였다.

그후 영예군인들은 자기들을 따뜻이 안아주고 극진히 보살펴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에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는것으로 보답하기 위해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는데서 언제나 앞장에 섰으며 사회주의건설에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려고 생산에서 로력적성과를 이룩하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은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총대, 애국의 총대를 틀어잡았던 어제날의 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혁명적의리의 최고체현자이시였고 선군혁명의 한길에서 그들의 삶을 영원히 빛내여주시는 사랑과 믿음의 최고화신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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