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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전후 나라의 방위력 강화, 독창적인 선군령도로 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에로
1.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관철을 위하여
전쟁의 포화가 멎음으로 하여 거리와 마을, 공장과 농촌 그 어디에서나 전승의 환희로 들끓었다. 온 나라 인민들이 정전협정의 체결을 두고 승리의 희열에 넘쳐있고 전세계자유애호인민들이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었다고 기뻐하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미제에 의하여 조선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위험성을 꿰뚫어보고계시였다. 정전협정체결을 전후로 하여 미제와 리승만괴뢰들속에서는 조선에서 다시금 새로운 전쟁을 도발하려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있었던것이다. 미제는 정전협정이 조인되기도 전에 전쟁이후에도 남조선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군사적지배권장악을 노린 이른바 남조선미국사이의 《호상방위조약》의 《체결》을 리승만괴뢰와 약속하였으며 당시 미8군사령관 테일러는 정화도 되기 전에 다음계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있으라는 지시문을 관하부대들에 내려보냈다. 또한 미제는 전쟁시기 조선의 도시와 농촌을 재더미로 만든 미공군기지들이 있고 저들의 병기창, 후방기지로 된 일본을 앞으로도 아시아에서 침략정책실현의 도구로 리용하기 위해 재무장시키고있었다. 한편 리승만매국역도는 일본의 요시다반동정부와 이른바 남조선일본《협정》의 체결을 목적한 회담들을 벌려놓고 《유사시》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책동에 미쳐날뛰고있었으며 공공연히 정전을 반대하고 전쟁의 계속과 《북벌》을 주장하면서 미제와의 공모밑에 북측포로들을 《석방》하여 강제억류시키는 놀음을 벌려놓고있었다. 정전과 관련하여 적들이 벌려놓고있는 이 모든 사태들은 미제가 남조선을 계속 강점하고 남반부를 자기들의 군사기지로, 식민지로 영원히 전변시키며 남조선괴뢰군을 군사분계선상에 계속 고착시켜 아무때든 정전을 파기하고 새로운 북침전쟁을 도발하려고 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현실적으로 미제는 7월 27일 22시부터 교전쌍방간에 모든 전투행동을 중지할데 대한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27일 22시 20분부터 분계선 여러곳에서 북측지역에 대한 무장도발과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나라와 인민의 력량을 총동원하여 전후복구건설을 밀고나가기 위해서는 인민군대가 전승에 도취되여 완전한 평화가 도래한것처럼 생각하면서 긴장성을 늦추어서는 절대로 안되며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적들의 사소한 도발책동도 일격에 짓부시면서 전후복구건설의 평화적환경을 무력으로 담보하여야 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정전이 곧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는 옳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문제를 특별히 중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7월 28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 《정전협정체결에 즈음하여》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에서 달성한 위대한 승리와 그 요인에 대하여 밝혀주신데 이어 미제가 정전협정을 유린하고 또다시 침략전쟁을 일으킬수 있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우리는 항상 준비되고 동원된 태세를 갖추고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전선에서 군사행동의 중지는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조국에 대한 침략계획을 완전히 포기하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고, 정전협정의 체결은 정화를 의미하며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발자국을 뗀것이지 결코 완전한 평화를 쟁취하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조국 남반부에는 미제침략군이 계속 남아있으며 《북벌》을 고창하고있는 반인민적리승만괴뢰통치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시면서 그로하여 전쟁이 다시 일어날 위험성이 엄연히 존재하고있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적들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다시 전쟁을 도발할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다시 일어날수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 정전은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과 조선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첫 출발로, 조선전쟁으로 하여 초래된 국제정세의 긴장성을 완화시키는 첫걸음으로 되여야 했다. 그런데 미제는 오히려 정전을 디딤돌로 삼아 아시아대륙침략이라는 당초의 저들의 침략적목적을 기어이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큰 전쟁을 도발하려고 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한다고, 혁명적경각성을 더욱 높여야 하며 적들이 다시 평화를 유린하고 군사적모험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항상 준비되여있어야 한다고 연설에서 강조하시였다. 력사에는 교전상대방을 사상정신적으로 안일해이시켜놓고 무력침공을 감행한 사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 더우기 총을 잡은 군인이 평화적기분에 들떠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에 있지 못하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후과는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는 엄중한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7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총참모부 국장들과 군종, 병종사령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정전이 실현된 새로운 환경에서 인민군대가 수행하여야 할 당면과업을 다시금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은 정전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정전은 어디까지나 적아간의 전투행동의 정지를 의미하는것이지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는것은 아닙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공화국남반부를 계속 강점하고있으며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대고있는 한 우리 나라에서 전쟁의 위험은 결코 사라질수 없습니다.》 정전은 전쟁을 한 쌍방이 전투행동의 정지를 약속한것일뿐 완전한 평화체제구축이 아닌것이다. 이것은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정전협정을 《휴전협정》으로 말하고있는 사실에서도 잘 알수 있다. 미제와 리승만역도가 정전협정을 의도적으로 《휴전협정》으로 말하고있는 그자체에 군사행동의 중지는 휴식기나 같은것으로서 저들이 아무때건 다시 군사행동을 재개할수 있다는 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보인것이였다. 여기에는 《강대성》의 신화를 자랑해온 미제가 패배의 수치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악의가 칼날처럼 드러나있기도 하였다. 정전은 전투행동의 정지를 의미하는것이지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정전협정체결을 전후로 하여 복잡하게 번져지는 조선반도주변정세와 미제의 변하지 않는 침략적본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한 현명한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미제침략자들과 그 추종국가군대들을 남조선에서 완전히 철거시키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며 우리 나라에서의 공고한 평화를 쟁취하기 위하여 완강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장병들에게 정전은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것을 옳게 인식시킴으로써 그들이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히지 않고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도록 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대의 모든 병사, 하사관, 군관, 장령들은 한순간도 해이함이 없이 혁명적경각성을 높여 원쑤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적들의 흉악한 침략기도를 제때에 파탄시킬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여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회의에서 각 군종, 병종부대들이 무기와 전투기술기재의 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출데 대한 문제와 방어공사를 잘하여 전연과 해안의 방어진지들을 철벽의 요새로 만들데 대한 문제,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인민군부대들이 정전기간을 최대한으로 리용하여 언제나 적과 싸울수 있도록 전투준비를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였다. 정전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립장을 밝혀주시고 정전이 실현된 새로운 환경에서 인민군대앞에 나선 과업들을 제시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이 땅에 제국주의가 있는 한 혁명의 총대는 언제나 만장약되여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그리고 전쟁의 포화는 멎었어도 마음의 긴장성을 더욱 바싹 조이고 전투준비강화에 박차를 가할 결의들을 굳게 다졌다. 그리하여 만세의 환호성이 메아리치던 방선초소마다에서 인민군군인들은 무너진 전호와 포진지들을 쌓아올리고 전연과 해안의 방어진지들을 철벽의 요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적들의 공중침해로부터 인민의 재산을 믿음직하게 보호할 임무를 지니고있는 공군부대들과 고사포병부대들은 비행기의 출동준비와 고사포의 대공사격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 조국의 령공에 한대의 적기도 얼씬 못하게 하였다. 전시생활로부터 정규생활로 넘어간 인민군군인들이 빠른 시일안에 정규적면모를 훌륭히 갖추고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력은 비상히 높아졌다. 이처럼 전쟁의 포화는 멎었어도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조선에서는 인민군대가 전화의 나날에 달아오른 혁명의 총대를 더욱 굳건히 틀어쥐고 조국수호자의 사명을 책임적으로 수행하게 되였다. 2
서》를 강압적으로 채택한데 이어 리승만괴뢰도당과 《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언제든지 저들의 추종국가군대와 군사기술기재를 마음대로 동원하며 미군이 남조선에 장기주둔할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놓았다. 한편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정전은 휴식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다.》라고 하면서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며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측에 대한 군사적도발을 끊임없이 감행함으로써 정전협정은 임의의 순간에 파기될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저지시키고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군사적으로 담보할수 있도록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할것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와 혁명무력건설의 합법칙적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는것을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인민군대를 량적으로만아니라 질적으로 강화하는것은 군건설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일뿐아니라 정전직후 미제의 계속되는 새 전쟁도발책동으로부터 조국의 방선을 철벽으로 지키면서 동시에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건설하여야 했던 당시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관련되여있었다. 혁명의 총대우에 나라의 평화와 안전이 있고 총대에 의하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 나라의 부강발전이 담보된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첫날부터 국사중의 국사인 군사를 앞세우는 원칙에서 군력강화에 선차적의의를 부여하시고 인민군대의 질적강화를 위한 구상을 무르익히신데 기초하여 주체42(1953)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선인민군 대대장, 정치부대대장회의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전후 군건설에서 견지하여야 할 전략적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여 간부군대로 만들데 대한 전략적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경험은 인민군대를 강력한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는것을 가르쳐주고있습니다.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드는것, 이것이 현시기 인민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나서는 제일차적과업입니다.》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든다는것은 군관으로부터 전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인들이 한등급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도록 그들의 수준을 높인다는것을 의미한다.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면 유사시에 그들을 골간으로 하여 짧은 기간에 새 부대들을 많이 편성할수 있다. 이것은 인민군대를 보다 질적으로 강화하며 일단 유사시에 우리의 무장력을 급속히 확대할수 있게 하는 가장 과학적인 군건설방침이며 조국해방전쟁의 경험과 교훈으로부터 나서는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의 하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대가 일시적으로 후퇴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바로 군사간부가 부족한데 있었다. 그때 로동자, 농민, 청년들을 비롯하여 모든 인민들이 총동원되였지만 그들을 지휘할 군사간부가 부족하다보니 짧은 기간에 부대들을 많이 편성하여가지고 적들과 싸울수 없었다. 조국해방전쟁의 이러한 교훈에 비추어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며 유사시에 필요한 군사간부를 많이 준비하는데서 가장 좋은 방도는 인민군대의 모든 군관, 하사관, 병사들이 한등급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도록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군인들의 정치사상의식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속에 당의 로선과 정책,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깊이 해설침투시키며 군인들이 우리 혁명위업의 정당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필승의 신념을 가지도록 교양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군인들이 정전에 대한 옳은 태도를 가지고 미제침략자들을 끝까지 소멸할 각오를 가지며 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고상한 애국주의정신, 당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지니도록 교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또한 모든 군인들이 한등급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게 전투훈련을 강화하여 그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투훈련을 철저히 항일혁명전쟁과 조국해방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부대의 전투임무에 맞게 그리고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할데 대한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데 대한 방침은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원리를 국방분야에 구현한 군건설방침으로서 인민군대가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데 대한 전략적과업을 제시하심으로써 선군혁명의 주력부대, 핵심부대인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고 그에 의거하여 나라와 인민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지켜내며 전후 인민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군사적으로 확고히 담보할수 있는 과학적인 길이 밝혀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는것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의 하나로 제시하시고 그 성과적수행을 위한 사업에도 커다란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는것은 당시 미제의 침략책동과 현대군사과학기술발전추세와 관련하여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였다. 전후 미제는 남조선에 원자탄을 비롯한 대량살륙무기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군사기술적《우세》로 저들의 침략적목적을 달성하려고 책동하고있었다. 또한 이 시기 세계적범위에서 군사과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이 개발되여 새로운 전쟁수단으로 리용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에 맞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10월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군부대관하 장병들앞에서 하신 연설 《조국해방전쟁의 력사적승리와 인민군대의 과업에 대하여》와 그 이듬해에 있은 인민군대의 주요회의들 그리고 군사학교들에 대한 현지지도에서 인민군대를 현대적최신무기와 위력한 화력기재들로 장비할데 대한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한다는것은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로 무장시키고 최신군사과학과 군사기술에 토대하여 그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경험과 교훈, 우리 나라 군사행동지대의 자연지리적특성과 나라의 경제발전정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현대적무기와 재래식무기를 배합하면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는데 따라 점차적으로 위력한 현대적무기를 갖추는 방향에서 인민군대의 무장장비의 현대화를 실현할데 대하여 밝히시였다. 그리고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군사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이미 마련된 군수공장들을 더욱 확대하고 현대적기술로 장비하는 한편 새로운 군수공장들을 건설하고 현대적무장장비들을 자체의 힘으로 생산보장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제시하심으로써 인민군대를 강력한 타격수단과 현대적인 전투기술기재들을 갖춘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인민군대의 총대위력, 선군의 위력을 더욱 힘있게 과시해나갈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성된 정세와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을 제시해주심으로써 인민군대는 짧은 기간에 자기의 면모를 일신하고 질적으로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군사학교들을 강화하고 교육사업을 개선하여 우수한 군사정치간부들을 수많이 키워내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대의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키워내는것은 전군간부화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며 그것은 군사학교들을 강화하고 군사교육사업을 개선함으로써만 해결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교육체계를 개편하고 군사학교들을 더욱 확대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교육체계를 개편하시여 군사학교들의 학제를 늘이도록 하시였다. 주체42(1953)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정치군관학교(당시)의 교육실태를 료해하시고 정전이 된 새로운 환경에 맞게 학제를 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학제를 새 교육년도부터 2년제로 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최고사령관명령으로 민족보위성(당시)에 군사교육을 맡아보는 기구를 내오게 하시고 군관학교들의 교육년한을 늘이도록 대책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군사교육기관들을 더욱 확대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건군관학교를 종합군관학교로 승격시키고 보병을 비롯한 여러 병종, 전문병지휘관들을 키워낼수 있게 하시였으며 일부 군관학교들을 새로 내오거나 확대하는 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급 군사학교들의 교원대렬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되고 전쟁경험이 풍부하며 부대관리를 해본 현직군관들로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였으며 전후 어렵고 부족한것이 많았지만 군사교육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갖추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아낌없이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다. 교육강령은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그런데 당시 일부 군사교육기관들의 교육강령은 다른 나라의것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조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주체43(1954)년 5월 고급군사학교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 군사대학의것을 모방하여 만든 교육강령을 보시고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놈들과 싸워이긴 우리의 고귀한 전쟁경험을 종합체계화하여 교육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으며 그후 또다시 고급군사학교에서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경험을 학생들에게 깊이 체득시킬수 있게 교육강령을 작성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당의 군사로선과 정책, 군사전략전술사상으로 일관되고 우리 나라의 실정과 우리의 전쟁경험에 기초한 교육강령이 작성되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교육내용에서 주체를 세우고 군사교육을 우리 식대로 진행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내용과 함께 교육방법을 개선하여 군사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원들이 강의를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깨우쳐주는 방법으로 하도록 하시였다. 특히 교육방법을 개선하는데서 직관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학교들에서 군사연구실들을 잘 꾸리고 교육하도록 하시였으며 군사교육영화를 만들어 교육의 효과성을 높이도록 하는 새로운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교육사업을 정규화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10월말 조선인민군 대대장, 정치부대대장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조국해방전쟁경험과 교훈으로부터 부대관리를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으며 주체49(1960)년 11월 인민군대안의 책임일군들에게 하신 교시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우리의 구체적실정에 맞는 군사규정들을 잘 만들며 군인들이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생활하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군사교육기관들에서는 학생들속에서 군사규정학습과 규률생활을 강화하였으며 이 과정에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는 군사교육사업을 정규화하는데서 훌륭한 본보기가 창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각급 군사학교들의 군사교육사업이 개선강화됨으로써 정치사상적으로, 군사실무적으로 준비된 군사정치간부들을 수많이 키워낼수 있게 되였다. 이것은 전군간부화를 더욱 힘있게 추진시켜나갈수 있는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을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게 준비시키도록 하시였다.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는것은 전군간부화를 위한 기본방도의 하나이다.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맡겨주어도 원만히 수행할수 있는 능력과 자질은 부단한 전투정치훈련과정을 통하여 습득되고 키워지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군간부화의 기본열쇠를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는데서 찾으시고 전후 인민군대에서 전투정치훈련을 힘있게 벌리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고 인민군대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에 커다란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정치상학을 질적으로 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정치학습반을 합리적으로 편성하고 정치상학을 어김없이 정상적으로 조직진행하게 하시였으며 학습강사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인민군군인들의 정치상학정형을 료해하시고 정치상학에서 취급할 내용들에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고 필요한 조건들도 보장해주시면서 상학의 질을 높이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42(1953)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를 찾으시여 전사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정치상학에서 어떤 문제들을 취급하는가, 토론은 어떻게 하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고 상학내용을 리해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그후 인민군대안의 정치상학수준은 개선되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군인들의 정치사상적각오와 준비정도는 더욱더 높아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5월 조선인민군 제4차 선동원대회와 주체46(1957)년 11월 조선인민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하신 연설 등에서 전후 인민군대의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당정책교양과 혁명전통교양, 계급교양,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는데 모를 박고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도록 하시였으며 선전일군들과 선동원들의 대렬을 튼튼히 꾸리고 군인들속에서 선전선동사업을 힘있게 벌릴수 있는 정연한 체계를 확립해주시였다. 또한 인민군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사상교양사업정형을 알아보시고 필요한 대책들을 세워주시였으며 나라사정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영사기와 라지오, 고성기, 신문과 잡지를 비롯하여 군인들의 사상교양사업에 요구되는 모든것을 다 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모든 군인들이 당의 로선과 정책으로 무장하고 당과 수령에게 충실하며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는 참된 혁명전사로 자라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훈련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모든 지휘성원들과 군인들이 높은 군사기술적자질과 전투기능을 소유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이 전투훈련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10월 어느 한 군부대장병들앞에서 하신 연설을 비롯하여 여러 교시들에서 전투훈련을 조국해방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매개 부대들이 맡고있는 전투임무의 특성에 맞게 그리고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지휘관, 참모부훈련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 참모부훈련에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투조직과 지휘에서 나타난 부족점들을 바로잡는데 힘을 넣으면서 특히 군종, 병종부대들사이의 협동동작을 원만히 조직하고 유지할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기본을 두도록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지휘성원들의 지휘능력과 수준을 높여주기 위한 시범상학, 방식상학 등을 광범히 조직진행하며 지휘참모훈련, 부대전술훈련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훈련방침에 따라 인민군대에서는 지휘참모훈련을 비롯한 지휘관, 참모부훈련들을 보다 줄기차게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6월 어느 한 전술훈련을 보아주시고 훈련이 잘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훈련에 참가한 전체 군인들에게 감사를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큰 규모의 전술훈련을 조직진행하여 지휘관들의 전투지휘능력을 높일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성원들이 발전하는 군사과학과 기술을 빨리 소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일반기술수준을 높이도록 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군인대중의 교육교양자인 지휘성원들의 군사기술적자질을 높이는것은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한 사업의 선결조건으로 나섰지만 당시 인민군대안의 적지 않은 군관들은 학교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다보니 일반기술수준이 그리 높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2월 조선인민군 련대장 및 정치부련대장회의에서 지휘관들이 현대적군사과학과 기술로 무장하는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제시하시고 그 구체적인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들이 현대적군사과학과 기술로 튼튼히 무장하려면 무엇보다도 일반지식을 소유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안에서 군관들의 일반지식수준을 높일수 있는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시여 군인들의 전투훈련을 보아주시면서 그들이 간부군대로 자라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주체43(1954)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분계선가까이에 있는 어느 한 초소를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이곳 군인들의 전투훈련을 보아주시면서 몸소 여러가지 정황을 주시였는데 그때 분대장과 대원들은 수령님께서 주시는 정황을 재빨리 처리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군인들이 훈련을 아주 잘한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고 모든 병사들이 어떠한 때나 능란하게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리하여 우리는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분대장이 저만큼 했지만 래일은 전체 대원들이 그만큼 하게 해야 하오. 말하자면 모든 군인들이 한등급씩 높은 직무를 능히 감당할수 있게 해야 한단 말이요. 그리하여 모든 대원들이 어떠한 정황에 부닥치더라도 능란하게 처리할줄 알아야 하오. 그래야 원쑤놈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며 또 놈들이 분별없이 어떤 모험을 감행한다고 해도 그것을 일격에 좌절시킬수 있소.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의 생활도 료해하시고 그들이 맡은 임무의 중요성도 이야기해주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들은 당과 인민의 기대에 보답해야 하오. 훈련을 잘해서 모두가 간부군대가 되여야 하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으로 생활조직을 잘하고 모두가 몸을 단련하여 앓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이어 한 포병구분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장으로부터 마지막번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원들이 목표를 정확히 조준하는것을 보시고 이것이 간부군대라고 하시면서 포사격술을 부단히 높여 보이지 않는 목표도 단방에 명중하는 명포수가 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그곳 구분대군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민군장병들이 한등급이상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게 준비하기 위한 투쟁에서 힘있는 고무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인민군대에서 군종, 병종, 전문병들의 훈련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행부대훈련에서는 조국해방전쟁경험과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특성, 비행대의 기종과 임무에 맞게 비행사들의 훈련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기에 기술근무성원들의 훈련도 병행하여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해군훈련에서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전투훈련을 주체적으로 진행하며 조국해방전쟁시기 해상전투경험을 살려 그에 맞는 전투방법에 숙련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함선들이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로 장비되는데 맞게 누구나 그것을 다룰수 있는 만능해병으로 준비하도록 하시였다. 또한 해상에서 전투를 진행하는 해군의 특성으로부터 항해훈련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몸소 시험항해도 같이하시면서 해병들의 전투훈련을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술병종, 전문병훈련을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술병종, 전문병구분대들의 임무상특성에 맞게 전투훈련의 중심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주시였으며 몸소 현지에서 훈련을 지도해주시였다. 주체43(1954)년 6월 어느날에는 땅크병들의 산지극복훈련을 보아주시고 앞으로 이런 훈련을 많이 하여 우수한 땅크운전수들을 키워내며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땅크들을 효과적으로 리용하기 위한 전투방법을 연구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로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인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 세차게 벌어짐으로써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에서는 커다란 질적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4
해있는 인민생활을 안정시켜야 할 바쁘신 가운데서도 어찌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급군사학교에 나오시였는지 아직 그 깊은 뜻을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문밖에 나와서 기다리고있던 학교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그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한창 복구중에 있는 청사건물앞에 이르시였다. 청사는 본래 3층으로 된 건물과 2층으로 된 건물이 산기슭을 따라 나란히 서있었는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에 의하여 무참히 폭격을 당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복구중에 있는 청사건물을 빨리 복구할수 있는 방도도 밝혀주시고 학교복구건설에 필요한 로력과 자재를 우선적으로 충분히 보장해줄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학교책임일군으로부터 학교실태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학교를 갓 이동하다보니 애로가 많았겠는데 그것을 극복하면서 복구건설도 하고 늘어난 교육강령에 근거하여 교수준비도 하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았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우리는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고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앞으로 고급군사학교를 군사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러자면 지금부터 군사대학으로 발전할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장으로 꾸린 식당에 림시로 만든 주석단에 앉으시여 학생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제기되고있는 애로조건부터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소탈한 품성과 인품에 끌려 학과학습에서뿐아니라 생활에서 제기되고있던 모든 문제들을 스스럼없이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시고 그 해결대책도 세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연탁앞으로 나오시여 오늘 학교에 온 기회를 리용하여 동무들에게 몇가지 문제를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고급군사학교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지휘관들의 군사리론수준을 높이며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과학을 발전시켜야 할 사명을 지니고있다고, 우리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고귀한 경험을 쌓았기때문에 고급군사학교를 창설할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우리는 3년간의 전쟁경험을 가지고있으나 준비된 군사리론간부가 부족하고 간부들의 현대적군사리론수준이 낮기때문에 그 경험을 리론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앞에는 고귀한 전쟁경험을 선진국가들의 전쟁경험과 결부하여 깊이 연구일반화하며 보다 훌륭한 군사과학을 창조하여야 할 과업이 절실하게 나서고있습니다. 고급군사학교는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창설된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고급군사학교는 지휘관들이 부대지휘와 관리를 능숙하게 할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도 지니고있다고, 당과 정부는 고급군사학교에 큰 기대를 가지고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군대는 현대전을 능숙히 치를수 있게 최신군사과학과 기술을 부단히 창조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더우기 인민군대앞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군사사상과 군사전법대로 싸워이긴 풍부한 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우리의 군사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문제가 중요하게 나서고있었다. 이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이 한창 가렬하게 진행되고있던 주체41(1952)년 10월말 인민군대에 고급군사학교를 내오도록 하시고 거기에 전선에서 싸우고있던 우수한 군관들을 선발하여 교직원으로 파견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전쟁을 하고있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학생들이 불편없이 최신군사과학과 기술을 마음껏 배울수 있도록 교육기간도 충분히 정해주시고 생활조건도 다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고급군사학교사업에 이렇듯 커다란 관심을 돌려주시고도 전후복구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 몸소 학교에 나오시여 건설정형을 료해하시고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교직원, 학생들에게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나타난 결함들과 그를 극복할수 있는 방도적문제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밝혀주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피로써 쟁취한 정전기간에 공부한다는것을 명심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선진군사과학과 군사리론을 습득하기 위하여 더욱 힘쓸것을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깊이 새겨안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해방직후 석달만에 새 조국건설과 혁명적정규무력건설에 이바지할 핵심골간육성을 위하여 잡초무성한 산언덕을 오르내리시며 평양학원의 터전을 잡아주시던 그 모습으로 정전이 된지 석달도 못되여 흙먼지길을 헤치시고 고급군사학교를 찾아오시여 학교가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수령님의 선군령도의 로고와 심혈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전쟁의 상처를 가시기 위한 복구건설이 세차게 벌어지고있던 그때 어찌하여 수령님께서 고급군사학교를 찾으시였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였다. 그것은 학교가 현대군사과학의 최고전당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나갈수 있게 하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인 지침을 안겨주시기 위해서였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강령적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자신들의 불같은 맹세를 담아 모두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치면서 만세를 불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5월에도 고급군사학교를 또다시 찾아주시고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준비된 군사지휘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군사교육기관들을 신설, 확장, 보강하기 위해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조치에 따라 고급군사학교는 그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고급군사학교에 대한 현지지도는 각급 군사학교교육의 질적수준을 한계단 높이도록 하여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5
당시 우리 나라의 형편에서 인민군대를 현대화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우리에게는 군대의 현대화를 맡아 수행할수 있는 기술력량이 적었고 자금도 부족하였으며 국방공업의 물질기술적토대도 빈약하고 현대화를 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인민군대무장장비의 현대화에 필요한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다른 나라에 의거하여 해결할수도 없었고 또 그 누가 우리를 도와줄 형편도 못되였다. 조건은 어렵지만 자체의 힘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현대적무장장비를 생산하는 길밖에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 그처럼 어려운 형편에서도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면서 인민군대의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장비현대화의 기본방향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12월 당중앙군사위원회와 주체50(1961)년 5월 전국병기공업부문 당열성자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인민군대에서 무기와 전투기술기재의 현대화방향과 그 생산을 늘이기 위한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무장장비현대화의 과업과 기본방향은 인민군대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주체적립장에서 성과적으로 다그쳐나갈수 있게 한 확고한 담보로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더욱 개선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우리 나라의 지리적특성과 조선사람의 체질에 맞게 만들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체로 만든 자동보총으로 모든 군인들을 무장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에게 가볍고 위력한 자동무기를 만들어 장비시킬것을 구상하시고 정전직후부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당시 인민군군인들이 휴대하고있던 길이가 긴 보병총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게 만든것이여서 산이 많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았고 우리 군인들의 행동에 불편을 주었을뿐아니라 육체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있었다. 조선사람의 체질에 맞는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인민군군인들에게 안겨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새겨안고 군수공업부문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어렵고 복잡한 기술문제들을 자체로 풀어나가면서 이악하게 투쟁하여 마침내 가볍고 성능이 좋은 자동보총을 만들었다. 우리 로동계급이 자동보총을 만들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몸소 그것을 보아주시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군인들에게 자동보총을 빨리 만들어줄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군수공업부문의 로동계급은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현대적인 자동보총을 대량생산하여 전체 인민군군인들을 무장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우리 나라의 지리적특성과 조선사람의 체질에 맞게 만들기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병기부문 일군들이 새형의 박격포를 만들어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게 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이 메고있는 박격포의 포신을 유심히 살펴보시다가 한 전사에게 포신이 무겁지 않은가고 물어보시였다. 전사는 이전것보다 훨씬 가볍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하신듯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좀 메보자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사의 어깨로 손을 가져가시였다. 전사는 당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곁에 있는 일군들만 애타게 바라보는데 그이께서는 《일없소, 메보자구.》라고 하시며 포신을 자신의 어깨우에 올려놓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먼지가 풀썩이는 황토길을 걸으시며 포신을 추스르기도 하시고 약간씩 돌려보기도 하시면서 무게도 가늠하시고 메고다니는데 불편하지는 않겠는가를 몸소 가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한동안 포신을 메고 걸어보신 다음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만하면 우리도 왕왕 메고갈수 있겠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제서야 포신을 전사에게 넘겨주시였다. 병기일군들은 자기들이 만든 포신이 가볍다고 그리도 만족해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가볍게 하라고 이르시면서 포신이 아직도 무겁다고 하시였다. 이렇듯 군인들에게 위력하면서도 다루기 편리한 무장장비들을 안겨주시려고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은정에 의하여 인민군대는 전후 짧은 기간에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현대적무기들로 무장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병무장장비의 현대화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조국해방전쟁의 교훈에 비추어 곡사포와 박격포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몸소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성능이 높고 보다 위력한 곡사포와 박격포, 평사포들을 더 많이 생산하여 인민군대를 무장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보다 구경이 크고 사거리가 긴 포들로 장비하며 인민군대의 포문수를 더 늘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군의 무장장비를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언제인가 한 해군구분대를 찾으시고 친히 포정에 오르시여 전투장비들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정들의 무장장비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군부대들에 여러가지 사명을 수행하는 함정들을 수많이 보내주시였다. 결과 우리의 해군은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현대적인 함선들로 그 장비를 일신하게 되였으며 함선의 화력밀도가 높아지고 해군의 전반적인 타격력이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군의 현대화는 그의 타격력과 기동력을 높이고 비행대의 전투활동범위를 훨씬 넓히는데 기본을 두고 비행대들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날수 있는 최신형비행기들로 장비하는 방향에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당의 군사전략사상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인 공군전법을 활용할수 있도록 최신식비행기와 재래식비행기들을 옳게 배합하여 장비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공군은 전후 짧은 기간에 여러가지 사명을 수행하는 비행기들을 종합적으로 갖추게 되였으며 위력한 타격력과 기동력을 가진 군종으로 장성강화되게 되였다. 전후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현명성은 8. 15해방 10돐경축 열병식을 통하여 뚜렷이 증시되였다. 주체44(1955)년 8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인민군의 장엄한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열병식에서 인민군장병들은 전후 전투정치훈련을 통하여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되고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강화된 조선인민군의 름름한 모습을 자랑스럽게 시위하였다. 보무당당한 보병행진과 함께 공군, 해군, 포병, 땅크병들의 열병행진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사상과 주체적인 군사리론, 전법으로 무장되고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갖춘 조선인민군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이날의 열병행진은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가 있는 한 인민군대는 어떠한 침략자도 쳐물리치고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할수 있다는 신심을 굳게 안겨주었다. 인민군열병대오의 힘찬 발걸음에 맞추어 조선인민은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이기 위한 새로운 진군길을 다그쳐나감으로써 이 땅우에는 세계를 놀래우는 위대한 창조와 변혁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