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군조선의 신념과 의지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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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의 핵소동을

초강경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선군으로 다져진 나라의 방위력에 의거하여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광란적인 핵소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제는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것을 기화로 사회주의의 보루인 공화국을 기어이 고립압살하며 남조선에 저들의 핵무기와 침략군대를 그대로 둘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핵소동을 일으켰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사실상 미제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로서 미국이 남조선에 핵무기를 끌어들임으로써 발생한 문제였다. 미제는 정전후 남조선에 대한 핵무기배비를 정책화하고 1958년부터 1990년초까지 무려 1 720여개나 되는 각종 전술핵무기를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에 배비된 핵무기는 1990년에 나토지역의 4배, 그 폭발력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1 000배이상에 달하였으며 남조선은 100㎢당 1개이상의 핵무기가 전개된 세계 제1위의 핵기지로 전변되였다.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시키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목적으로부터 주체74(1985)년 12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핵위협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조약가입후 1년 6개월내에 국제원자력기구와 체결하게 되여있는 핵담보협정에 서명할수 없었다.

그후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남조선당국의 《핵무기부재선언》이 발표되고 이어 미국이 핵무기로 공화국을 위협하지 않으며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도 중지하겠다고 한 조건에서 공화국정부는 주체81(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와 핵담보협정을 체결하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였다.

여러차례에 걸친 핵사찰과정에 공화국의 핵시설이 핵무기개발과는 인연이 없으며 평화적목적에만 리용되고있다는것이 명확히 확증되였다.

그러나 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부 계층들을 사촉하여 우리가 제출한 핵물질재고량초기보고서내용과 사찰시 측정결과사이에 《불일치》가 있다고 하면서 2개의 일반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하여나섰으며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공갈하였다. 그들이 《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검은 속심은 공화국의 핵활동을 사찰한다는것을 구실로 군사비밀을 내탐하려는데 있었다.

이것은 이라크실태가 여실히 보여주고있었다. 미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1990년대초까지 52차례에 걸쳐 《특별사찰》을 받은 이라크는 그 결과 5 000t의 화약, 7만발의 화학탄, 20여개의 화학공장, 800여기의 미싸일을 파괴당하였다. 이것은 원쑤들에게 한걸음 양보하면 열, 백걸음을 양보하게 된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위협공갈의 검은 속심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시고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군사대상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요구를 단호히 거부해버리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1993년 1월 이미 중지하였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를 공포하고 여기에 20여만의 침략무력과 방대한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지어 핵무기사용시의 지휘체계까지 발동하면서 군사적위협을 가해나섰다.

만전쟁의 결과로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가 공화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해온것이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고 국가의 최고리익이 엄중한 위협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미제는 공화국을 잘못 보았다. 령토가 비록 작고 군사비와 병력수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군사적대결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기본조건이 아니라는것을 미제는 모르고있었다.

세계는 대결이냐 타협이냐 이렇게 문제를 세우고 공화국이 과연 어느쪽을 선택할것인가를 주시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에서 백두의 뢰성이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령도밑에 불패로 다져진 공화국의 군력이 경고망동하는 침략자들에게 드센 철추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사회주의조국의 안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시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2(1993)년 3월 8일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34호를 하달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령에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새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피로써 쟁취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침략자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영웅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다시한번 떨칠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원쑤들은 우리 공화국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도 함부로 건드릴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시였다.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들어 전체 군대와 인민이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격멸하기 위하여 산악같이 일떠섰다.

적들의 《팀 스피리트93》합동군사연습이 실동단계에 들어간데 대처하여 조선인민군의 일부 땅크, 장갑차, 포병부대들이 기동하고 강력한 타격집단들의 기동훈련이 맞받아 진행되였다. 이것은 적들이 감히 우리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이라도 건드린다면 강력한 선군의 위력으로 짓뭉개버리고야말겠다는 군사적대응조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이 하달된 후 10일남짓한 기간에 전국적으로 150만여명의 청년학생들과 제대군인, 전쟁로병들이 인민군대입대와 복대를 탄원하여나섰다. 평양시에서만도 20만여명의 로농청년들과 42만여명의 청년학생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울 불타는 신념을 안고 조선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였다.

전군, 전민이 이렇듯 산악같이 일떠선 현실앞에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미제와 그 추종세력이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있을 때 예상도 못하였던 더 강력한 타격이 가해졌다.

주체82(1993)년 3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정부성명이 발표되였던것이다.

준전시상태의 선포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조치는 언제나 맞받아나가는 전술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변함없는 원칙적립장, 무비의 담력과 배짱, 의지의 발현이였으며 강위력한 군사적대응이였다.

이것은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공갈책동과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특별사찰》강요에 대처하여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응당한 자위적조치였다.

준전시상태의 선포에 뒤이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선언은 세계를 들었다놓았다. 그야말로 수백수천의 Mt급에 대비조차 할수 없는 강위력한 《핵탄》, 《폭탄선언》이였다.

이에 대하여 오스트리아의 한 방송은 《이날은 지구가 깨여지기 시작한 날》이라고 평하였으며 세계는 《지구상의 핵폭탄을 다 터쳐도 북조선의 이번 성명보다 위력하지 못하다.》, 《북조선의 정치사상적, 군사적힘의 과시》, 《조선의 결정은 미행정부를 쇼크상태에 빠지게 하였다.》고 하면서 미국이 어떠한 제재방법도 가지고있지 못한데 대하여 야유하였다.

공화국의 《폭탄선언》에 강타를 받은 미국은 아연실색하였다.

하여 미국은 《팀 스피리트93》합동군사연습을 기일을 앞당겨 중지한다는것을 공포하였으며 국제원자력기구는 《특별사찰》소동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백두의 선군령장들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철의 의지, 세련된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이룩된 미제와의 정치군사적대결전에서의 승리였다.

그러나 미제의 침략적본성이 변한것은 아니였다. 공화국의 선군의 위력앞에 겁을 먹은 미제는 교활하게도 조선반도의 핵문제를 《국제화》하려고 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력한 군사력에 의거하여 미국을 회담장에 끌어내여 조미핵대결전을 벌림으로써 미제의 핵소동을 짓부셔버리게 하시였다.

주체82(1993)년 4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브라질10월8일혁명운동대표단과 하신 담화석상에서 《핵문제》를 가지고 공화국을 걸고드는 미국의 책동의 본질을 밝히시면서 미국사람들이 압력의 방법으로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인들처럼 한쪽뺨을 때리면 다른쪽 뺨을 마저 때리라고 내대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 나라를 폭격하면 즉시에 강력한 대응타격을 가할것이다, 적들이 때리면 맞받아 때리는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원칙적립장이라고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하여 미국의 핵소동을 폭로규탄하고 조선에서의 핵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조미회담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으며 우리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강한 자위적조치를 취하겠다는 단호한 립장을 표명하였다.

공화국의 단호한 립장앞에, 강력한 선군의 위력앞에 굴복하여 조미회담장에 끌려나오기는 했어도 미국은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기도를 조금도 버리지 않았으며 외교적방법으로 그것을 기어이 실현해보려고 하였다. 미국은 의연히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버리지 않고 회담장에서까지 우리가 조약탈퇴를 취소하고 전면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난관을 조성하여 다음단계의 회담을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후 국제원자력기구의 불순세력들을 발동하여 반공화국압살소동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진행되는 조미회담은 순수 말씨름이나 하는 마당이 아니라 그야말로 누가 누구를 하는 총포성없는 치렬한 결전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이러한 압력소동에 초강경으로 단호히 맞서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미회담에 참가하는 우리 대표단을 여러차례 만나시여 회담진행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도록 이끄시여 회담을 군사적으로 적극 뒤받침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11월 3일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담화를 통하여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답하는것이 우리의 립장이며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여있다는것을 천명하고 선불질을 하는자들은 불벼락을 맞기마련이며 남을 해치고 자기는 살아남을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짓은 없을것이라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굳센 신념과 의지를 다시한번 강조하도록 하시여 미제를 수세에 몰아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1994년 6월 10일 국제원자력기구가 미국에 추종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기구협조를 중단》한다는 부당한 《제재결의》를 채택한것과 관련하여 6월 13일 외교부 대변인성명으로 우리 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즉시 탈퇴한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하시였다.

이어 조선인민군과 해당 기관들은 공화국에 대한 그 어떤 《제재》이든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자주권을 해치는자들은 지구상의 어디에 있건 단호히 대응한다는것, 《제재》는 곧 전쟁을 의미하며 전쟁에는 자비가 없다는것, 불을 즐기는자들은 불속에서 타죽고말것이라는 선군조선의 군대와 인민의 강경한 의지와 립장을 반영한 성명, 담화들을 련속 발표하였다.

우리 공화국의 강경한 대응태세로 하여 일대 혼란과 수세에 빠진 미국은 그 출로를 찾으려고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를 우리 나라에 보내여 조미사이관계문제, 핵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를 타개해보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16일과 17일 평양을 찾아온 카터일행을 두차례나 접견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날 카터에게 미국이 들고나오는 《핵의혹》문제의 주요한 원인과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기본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이튿날 카터는 미국대통령과 전화련계를 가진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제재조치를 취하자고 하던것을 취소시키기로 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재조치를 취소시키겠다고 한다니 감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제재조치를 취소시켜도 좋고 안시켜도 좋다, 우리가 미국을 반대하는것은 당신들

의탓이지 우리탓이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우리도 당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 대하여 자꾸 못살게 구는데 아무리 압력을 가하고 못살게 놀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전쟁도 제재도 할수 없게 된 미국은 1994년 8월에 제3단계 1차조미회담에 나오게 되였다. 그리고 1994년 9월 23일부터 10월 21일까지 진행된 조미회담에서는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라는 존칭까지 정중히 붙여 조미기본합의문의 리행을 담보하는 서한을 보내여왔다.

이것은 미국과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공화국이 거둔 성과였으며 강력한 군사력에 의하여 그 승리가 철저히 담보된 외교공방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신 강철의 신념과 의지, 무비의 담력과 지략 그리고 무적필승의 군력에 의하여 극도에 달하였던 미제의 광란적인 핵소동과 고립압살책동은 좌절되고 공화국은 사회주의의 강력한 보루로 높이 솟아오르게 되였으며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 커다란 고무적힘을 안겨주었다. 2

 

종군기자 리인모를

조국의 품으로

20세기 90년대는 혁명적신념과 의지가 더욱 높이 발휘되여야 하던 때였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 현실앞에서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지향하던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난파속에 헤매이고있었다. 혁명선렬들이 피로써 고수해온 신념을 버리고 그 신념의 창조물인 사회주의를 버린것으로 하여 사회주의가 붕괴된 나라들에서는 온갖 사회악과 패륜패덕이 란무하고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공화국의 전체 군대와 인민이 혁명적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선군의 위력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집요한 봉쇄정책과 반동적인 사상공세를 짓부시고 주체의 사회주의제도를 고수하며 조성된 난관을 뚫고나갈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이러한 때인 1989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였던 리인모가 쓴 글이 남조선출판물에 실리였다. 34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여 부산의 어느 한 농가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있던 리인모가 글을 써냈던것이였다.

리인모는 풍산태생으로서 백두산에서 울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성을 들으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열렬히 흠모하고 따랐으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지도밑에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인 조국광복회조직을 국내와 일본에까지 늘이기 위한 사업에도 참가하여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조국이 해방된 다음에는 당일군으로 일했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종군기자로 전선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지리산유격대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된 후 3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혁명적지조를 지켜 싸웠다.

그는 신념과 의지로 량심과 의리와 지조를 지켜낸 인간이였다. 그의 신념과 의지의 원천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과 충실성이였고 나서자란 고향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였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였다. 그를 세계적으로 이름난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만들어준것은 조국광복회조직이였고 그는 그 조직의 씨앗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뿌리기 위해 천신만고를 다한 백두산의 투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지도밑에 혁명을 하고 해방후 조선로동당의 당일군으로 사업한 그였기에 총대와 같이 변심을 모르고 오로지 신념을 지켜 수십년세월 독감방에서 원쑤들의 사상전향공작과 살점을 뜯고 뼈를 부수는 온갖 폭행도 다 이겨냈다.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조선에서 수십년간 옥고를 치르며 얻은 병환으로 하여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던 리인모에게 재생의 은덕을 베풀어주시였다.

사지판에 홀로 있으면서도 혁명적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있는 리인모의 영웅적인 투쟁을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가족, 친척도 없는 남조선에서 병든 몸으로 누워있다가 생명이 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시여 그를 하루빨리 데려다 병치료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누리지 못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주시려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력한 여론전을 벌려 내외에서 리인모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도록 하시는 한편 1990년대에 북과 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리고 민족사적인 중요문제들이 론의되는 협상마당에서도 리인모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문제를 강하게 들고나가도록 하시고 그 성과적실현을 위한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어떤 경우에도 혁명적원칙을 양보할수 없다고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건부없이 리인모를 데려올 결심을 하시고 적들의 부당한 주장을 단호히 배격하도록 하시였다.

리인모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공화국의 정당한 요구는 온 겨레와 세계 진보적인류의 광범한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으로 련대성운동이 힘있게 벌어지자 그것을 거부할수 없게 된 남조선괴뢰들은 마치도 저들이 인도주의적립장에 서있는듯이 여론을 기만하는 한편 부당한 조건부를 내걸면서 리인모를 돌려보내기 위한 문제해결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이 부당한 조건을 내걸면서 리인모를 공화국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비렬한 속심은 본인의 의사에도 배치되며 인도주의적견지에서도 그렇게 될수 없는것이였다.

저들의 비인도주의적책동에 대한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규탄과 압력뿐아니라 《동맹국》들의 비난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남조선당국은 하는수없이 북남고위급회담에서 리인모를 데려오기 위한 공화국의 제의에 응해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부당한 조건을 내대고 어떻게 하나 리인모를 돌려보내기를 거부하면서 종당에는 그를 보내는 경우 공화국으로부터 커다란 양보를 받아내려는 종전의 립장을 고집해나섰다.

남조선당국의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로 하여 리인모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일이 지연되고있는 가운데 1993년에 들어서면서 리인모의 건강이 최대로 악화되여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놓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급한 상태에 있는 리인모를 하루빨리 데려다 치료를 받을수 있게 긴급조치를 취할것을 남조선적십자사에 강력히 요구하며 그를 계속 억류해두어 끝내 그의 신상에 돌이킬수 없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면 그 후과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것이라고 엄숙히 경고하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혁명전사들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커다란 심혈속에 마침내 리인모는 조국의 품, 은혜로운 어버이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온 나라가 들썩하게 국가적규모의 큰 행사가 벌어지고 그를 개선장군으로 맞이하였다.

주체82(1993)년 3월 19일, 삼륜차에 몸을 싣고 리인모가 판문점회의실 남쪽문으로 들어왔다. 긴긴 세월 감옥살이와 사상전향을 강요한 악착한 고문과 폭행속에서도 혁명전사의 신념을 지키고 돌아오는 조국의 장한 아들이였다.

그러나 리인모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혹하였다.

극도로 쇠약한 심장기능상태와 렬악한 영양상태, 령에 가까운 전신운동기능상태와 심한 언어장애 및 호흡장애, 그야말로 그는 살아있는 《화석》, 《죽은자》였다. 그를 검진한 조국의 유능한 의료집단도 그의 병상태를 놓고 난감해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품,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은 죽은자가 산자로 되는 기적을 낳는 태양의 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인모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온갖 효과적인 치료대책을 다 취해주시였다. 의술이 제일 높은 해당 전문과 의료진을 붙이고 귀중한 약재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리인모를 회복시키도록 대책을 세워주시고 그의 치료상태와 육체적기능의 회복상태를 매일, 매 시각 놓치지 않고 헤아려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의료일군들에게 의학은 리인모동지에게 너무도 명백한 종말을 선고하고있지만 우리에게는 주체적인 인간학이 있지 않는가, 지금 형편에서 그를 구원할수 있는 출로는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인간애에 기초한 결단성이다, 리인모동지를 살려내는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절대적인 의무이며 그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진지하게 성원해준 해내외의 모든 동포들에 대한 응당한 도리이다, 리인모동지를 위해서는 그 어떤 타산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전문의료일군만 하여도 20여명을 더 보내주시여 각 장기별로 전문치료를 하게 하고 의약품을 비롯한 치료물자들도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주시였다.

백두산위인들의 이렇듯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에 떠받들려 리인모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여갔다.

그는 입원실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를 의식하는 순간 조국의 품에서 되찾은 생의 희열로 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온갖 폭행속에서도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던 절세의 위인송가를 그는 생을 준 은인에게 드리는 감사의 터침으로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불렀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이제는 됐다고, 리인모동지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렀다는것은 그에게 소생의 원천이 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이것은 그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옥중고초를 이겨냈듯이 병을 털고 일어날수 있다고, 조국앞에 다지는 신념의 맹세라고, 그에게 록음기와 록음테프들을 보내주어 해방직후와 전시에 부르던 노래들을 들으며 의식을 되살리고 용기를 얻게 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인모가 너무 대견하시여 일군들을 만나시여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나시여서도 그를 자랑하시였고 온 나라 전체 인민과 세계 모든 혁명가들이 그의 정신적풍모를 따라배울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한없이 따사로운 사랑으로 리인모를 살려내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4월 15일 자신의 탄생 81돐을 맞으시는 뜻깊은 날에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몸소 그의 병문안을 하시였다.

리인모가 감격과 기쁨에 휩싸여 몸둘바를 몰라하며 불구의 몸을 일으켜 인사를 올리려 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냥 앉아있으라고 하시며 자신께서 그에게로 다가가시여 허리를 굽히시고 그를 뜨겁게 포옹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건강상태가 좋아진 리인모동무를 보니 매우 기쁘다고, 다 죽게 되였던 리인모동무가 다시 살아나게 된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사회주의조국이 있고 한없이 깊고 따사로운 당의 사랑이 있었기때문이라고, 리인모동무의 병상태가 좋아진데는 김정일동지의 로고가 깃들어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리인모동무는 견결한 공산주의자입니다. 리인모동무는 40여년간 원쑤들의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적지조와 절개를 지켜 용감하게 싸워이겼으며 조선의 공산주의자, 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강의한 의지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습니다.》

리인모는 너무도 과분한 평가의 말씀에 높뛰는 심장을 억제하지 못하여 감사의 인사마저 올리지 못하고 눈굽만 적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리인모동무는 원쑤와 싸워이긴 강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병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고, 강한 의지와 굳은 신념을 가지면 병과의 싸움에서도 이길수 있다고,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기념 열병식장에 꼭 나서야 한다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일동지를 받들고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 한몫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인모동무는 해방직후 입당한 로당원이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입당당시의 당원증번호와 자신의 수표가 새겨진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수여하시였으며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그의 손목에 손수 채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가슴에 영예의 《김일성훈장》과 공화국영웅메달, 국기훈장 제1급을 번쩍이며 삼륜차에 앉아있는 리인모의 곁에 서시여 력사에 길이 전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최상최대의 믿음과 사랑속에 리인모의 건강은 현저히 회복되였고 마침내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러주신 전승 40돐 경축행사장에 나서게 되였다.

주체82(1993)년 7월 23일 전국로병대회에 리인모를 불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그를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의 로병들이 모여온 뜻깊은 대회에 참가하게 된 그를 열렬히 축하해주시며 그의 건강이 좋아진데 대하여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한동안 미더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원쑤들과의 신념의 대결에서 승리한 리인모영웅이야말로 신념이 투철하고 의지가 강한 불굴의 조선로동당원의 전형이라고 하시면서 건강을 빨리 회복하여 조국의 통일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성업에 여생을 바쳐가라는 크나큰 믿음과 고무의 말씀을 주시였다.

남녘의 철창속에 갇혀있을 때에는 신념과 의지의 기둥으로 마음속에 계셨고 오늘은 다 죽었던 몸을 따뜻한 품에 안아 소생시켜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는 로병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회주석단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리인모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주시고 그의 두손을 쓰다듬어주시며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승 40돐경축 열병식과 100만군중시위, 경축야회를 비롯하여 전승행사 전기간 자신의 가까이에 그를 앉혀주시고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리인모영웅을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내세워주시고 그에게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안겨주시였다.

  태양의 품에 안겨 리인모영웅은 영광과 행복의 최절정에 올라서게 되였다.

그의 모습에서 공화국의 천만군민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도전을 짓뭉개며 전진하는 선군혁명위업의 불패의 힘의 원천을 또다시 확신하였고 절해고도에서도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혁명적신념과 의지로 주체의 사회주의제도를 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나갈 굳은 신념과 의지를 다시금 가다듬었다. 3

 

조국해방전쟁

승리 40돐 경축

주체82(1993)년은 공화국의 군대와 인민이 미국과 그 련합세력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커다란 승리를 기록한 승리의 해였다.

이해 공화국에서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을 맞이하게 되였다.

자본주의가 복귀된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 선행세대들이 이룩한 전승업적이 먹칠을 당하고있을 때 조선에서는 미제를 타승한 전승절을 승리자의 커다란 긍지속에 맞이하게 되였으니 선군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군대와 인민의 감격과 환호는 강산에 차넘쳤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환경속에서 맞게 되는 전승 40돐을 그 어느때보다도 더 크고 성대하게 기념하도록 하시였다.

그것은 전승 40돐을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와 함께 사회주의건설에서의 승리 그리고 제국주의자들과 배신자들의 온갖 압살책동을 물리치며 사회주의위업을 옹호고수한 승리를 경축하는 정치축전으로 치르어 사회주의위업완성의 도약대를 더 튼튼히 다지는 력사적인 계기로 되게 하시려는 의도에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 경축행사의 주제는 반미대결전에서의 승리에 대한 신념이고 지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전승 40돐 기념일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건설하고 전국로병대회를 소집하며 전승절에는 열병식과 군중시위를 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전승 40돐에 즈음한 당중앙위원회 구호를 발표하였다.

온 나라 전체 군대와 인민이 전승 40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투쟁으로 들끓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건설이 힘있게 추진되였다.

총 15만㎡의 부지면적을 정리하고 중심주제조각상과 10개의 부주제군상들을 앉힐 기념탑건설장은 건설자들뿐아니라 지원을 나온 전쟁로병들과 각계층 근로자들로 낮과 밤이 따로없이 부글부글 끓었다. 온 나라에 준전시상태의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였던 그때에도 공사는 중단없이 계속되였다.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전례없는 기적과 혁신이 창조되였다.

조선인민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꺾어보려고 제국주의자들이 핵소동과 새 전쟁도발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렸으나 천만군민은 전화의 그날 락동강을 건느던 정신, 진펄길을 헤치던 그 영웅적기백으로 난국을 뚫고 축전장을 향하여 기세높이 전진하였다.

그 투쟁속에 수많은 대상건설이 끝났으며 청소년학생들은 《전승 40돐기념소년호》비행기와 함선, 포들을 인민군대에 증정하였다.

온 나라에 경축분위기가 짙어가는 속에 전승절기념행사들이 진행되였다.

주체82(1993)년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4. 25문화회관에서는 전승 40돐을 기념하는 첫 행사로서 전국로병대회가 성대히 개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함께 전국로병대회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순간 《만세!》의 환호성이 온 대회장을 진감하였다. 전쟁로병들이 터치는 그 환호성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전승의 7. 27을 안아온 그 영광을 오늘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밑에 반미대결전에서 그대로 이어가고있는 긍지와 환희, 행복의 분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월은 흘렀어도 전화의 그날의 모습으로 대회장에 모여온 전쟁로병들을 기쁨에 넘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열렬히 축하해주시였다. 로병들의 열기띤 토론도 다 들어주시고 조선인민군축하단과 소년단축하단의 축하도 함께 들어주시며 로병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들에서 전쟁로병들이 사회적으로 버림을 받고있을 때 공화국에서 성황리에 진행된 로병대회는 혁명선렬들의 투쟁정신과 위훈을 빛내이며 새 세대들로 하여금 그것을 계승하여 제국주의자들과 온갖 원쑤들의 책동을 물리치고 주체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끝까지 완성해나갈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게 한 승리자의 대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의 전쟁로병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대회에 참석할수 있도록 로병대회를 중앙에서만 할것이 아니라 이 기간에 각 도, 시, 군, 련합기업소들에서도 로병대회를 진행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82(1993)년 7월 26일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준공식이 진행되였다.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시며 준공식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병들이 받쳐든 붉은 천을 끊으시여 전승기념탑의 준공을 선포하시였다.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축포의 꽃바다가 펼쳐졌다. 수천개의 고무풍선이 창공높이 날아올라 준공의 경사를 노래하였다.

풍치수려한 보통강반의 넓은 부지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다리로 잇닿아있는 전승기념탑은 교양적의의가 클뿐아니라 그 사상주제적내용과 형식에서도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기념탑에도 찾아볼수 없는 기념비적걸작으로, 영원한 선군승리의 상징으로 건설되였다.

당기와 군기앞에 총을 멘 인민군군인의 조각상이 형상된 문주를 지나 더 들어가면 대문과 마주한 중심축끝에 전쟁에서 미제를 타승한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공화국기발을 힘차게 휘날리며 만세를 부르는 인민군병사를 형상한 중심주제 《승리》조각상이 솟아있다.

그리고 문주에서 《승리》조각상에 이르는 넓은 기념비구역 량켠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와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격조높이 노래한 헌시비 그리고 《대전해방전투》, 《락동강도하전투》, 《조국의 하늘을 지켜》, 《해방된 남녘땅에서》, 《조국의 바다를 지켜》, 《적후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 《후방인민들의 전선원호》, 《1211고지 방위자들》, 《직사포를 고지에로》, 《월미도의 영웅들》이라고 이름지은 10개의 부주제군상들이 자리잡고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기념탑전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며 기념탑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을 금치 못하시여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한몸바쳐 싸운 영웅전사들의 위훈을 보여주는 로천박물관입니다. 영웅전사들의 위훈을 보여주는 이러한 로천박물관은 우리 나라밖에 없을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전쟁과 관련하여 개별적작전이나 전투기념비를 세운것이 있는데 그것도 추모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쟁승리의 전과정을 주제로 하여 세운 기념비는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전승기념탑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제국주의무력을 타승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한 우리의 영웅적인민군대와 인민들의 불멸의 투쟁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근로자들과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애국주의사상과 불굴의 혁명정신으로 교양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대기념비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들의 영웅적투쟁모습을 중심주제상과 여러개의 부주제군상들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잘 형상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불멸의 위훈을 세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모두를 한품에 안아주시는 심정으로 중심주제상이 다 들어오는 위치를 잡으시고 뜻깊은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주체82(1993)년 7월 27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각급 군사학교,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열병식 및 100만군중시위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축하연설에 이어 열병행진이 시작되였다.

열병식대오의 앞장에는 조선인민군 군기종대가 섰다. 백두밀림에서 자기의 탄생을 선포한 때로부터 승리만을 아로새긴 군기들,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전에 한몸바친 유명무명의 영웅전사들의 불멸의 위훈이 깃든 군기들이 주석단앞을 지나갔다. 뒤이어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울해방전투, 대전해방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에서 빛나는 군공을 세운 근위보병종대들, 륙해공군의 여러 종대들이 위훈으로 빛나는 군기를 휘날리며 나아갔고 조선인민군 군사 및 정치대학종대,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종대들이 지축을 울리며 행진해나갔다.

열병종대들은 주석단앞을 지나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만세의 환호를 올리며 최대의 경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그들에게 답례를 보내시였다.

련이어 100만군중시위가 진행되였다.

전승 40돐을 경축하는 장엄한 열병식과 100만군중시위는 수령, 당, 군대, 인민의 철통같은 일심단결로 필승의 위력을 떨쳐가는 주체혁명대오의 자랑찬 모습을 과시한 력사적인 화폭이였다.

이날 밤 릉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경축야회 《우리는 승리하였다》가 진행되였다.

야회장 상공에는 전승의 축포가 련이어 터져오르고 경기장 봉화대에는 전승을 상징하는 봉화가 활활 타올랐다.

8만여명의 청년학생들과 인민군군인들, 학생소년들, 체육인, 예술인들이 배경대의 변화무쌍한 화폭들에 맞추어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이 땅우에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를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기상을 시와 노래, 무용과 교예, 예술체조 등에 담아 서사시적화폭으로 훌륭히 펼쳐보였다.

《우리는 승리하였다》, 참으로 승리만을 아로새겨온 조선혁명의 장엄한 어제와 오늘이 이 한마디에 응축되여있었다.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위대한 선군으로 군대와 인민을 이끄신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여 항일대전에서 승리하였고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의 《최강》의 신화를 깨뜨리고 승리의 7. 27을 안아왔다. 미제의 거듭되는 침략책동속에서도 새 조국건설의 승리적전진을 가져왔고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에서 력사에 류례없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군대와 인민은 장장 수십년세월 반미대결전에서 승리만을 이룩하였으며 선군의 위력으로 앞으로도 승리할것이다.

참으로 1990년대 전반기의 준엄한 정세하에서 진행된 전승 40돐 경축행사들은 총대로 개척되고 총대로 승리하여온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을 총대로 굳건히 이어나가며 반미대결전에서 승리를 이룩하려는 선군조선의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과시한 정치축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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