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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렬사들을 영생의 언덕에
하여 스스로 생을 마친 투사들도, 적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투사들도 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항일전에 선혈을 뿌렸으며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한목숨 기꺼이 바치였다. 그러나 이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적의리에 의하여 대성산혁명렬사릉의 높은 언덕에서 그날의 모습으로 영생하고있으며 오늘도 선군혁명대오의 힘찬 발걸음을 추동하고있다.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이 건설된것은 1970년대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뜨거운 사랑과 숭고한 혁명적의리를 지니시고 곁을 떠난 전사들을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4월 어느날 대성산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오르내리시며 몸소 주작봉마루에 혁명렬사릉의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리고 그후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을 건설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고 곁을 떠난 혁명전사들의 반신조각상을 만들어 세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을 꾸리는 공사가 벌어지게 되였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주체62(197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혁명렬사릉건설장을 찾으시여 렬사릉에 안치할 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였다. 그후 렬사들의 반신조각상제작이 시작되자 수령님께서는 한장의 사진마저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혁명렬사들의 모습을 진실하게 형상하도록 손수 그들의 얼굴생김과 성격상특징들을 기록하신 자료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일군들에게 어느 동무는 지금의 누구와 비슷하고 또 어느 동무는 그의 딸모습과 같으며 어느 동무에 대해서는 누가 더 잘 회상할수 있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주체63(1974)년 9월 3일이였다. 이날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범적으로 세운 5상의 반신조각상을 보아주시였다. 종합비문 왼쪽길을 따라 동상앞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우들을 감회깊이 추억하고계시는듯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한없이 자애로운 사랑의 눈길로 반신상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이건 류경수동무, 이건 강건동무로구만!》 사랑하는 전사들의 모습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살아있는 혁명전우들을 만나신듯 무척 반가와하시며 렬사들의 이름을 부르시였다. 다음반신상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한참이나 살펴보시다가 누구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안길동지라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얼굴에 그늘을 지으시며 서운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어디 안길동무 같습니까?》 하시더니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아쉬우신듯 이렇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안길동무의 동상은 입술이 너무 두텁고 전혀 안길동무 같지 않습니다.》 옛 전사의 모습을 그리시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안길동무는 원래 위가 나빠 몸이 좋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상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 몇걸음 옮기시여 다섯번째 반신상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김경석동지라는 말을 들으시고 김경석동무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모색에서 특징적인 점들을 일일이 지적해주시였다.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을 잘 만들어 세워야 하겠습니다. 동상의 얼굴모습이 실지인물과 달라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4(1975)년 2월 어느날에도 렬사들의 반신조각상제작현장을 찾으시여 그들의 용모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시였다. 세월과 망각은 정비례하는 법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기억력도 희미해지는것은 어쩔수 없는 생리현상이다. 그러나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전사들의 모습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간직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하는 모든 항일혁명투사들의 생김새며 출생날자, 희생된 날자와 장소까지 모두 회고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것을 어찌 단순히 기억력으로만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것은 수령님의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과 함께 희생된 전우들을 잊지 못해 한평생 가슴속에 간직하고계시는 고결한 혁명적의리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투사들의 조각상은 옛 모습그대로 재현되고 대성산혁명렬사릉은 마침내 주체64(1975)년에 완공되게 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혁명렬사릉은 개건확장되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완공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절날이나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날을 비롯하여 자주 혁명렬사릉에 들리군 하시였는데 그때마다 아쉽게 생각되시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여서 마음이 가볍지 못하시였다. 종합비문이 분묘들의 앞을 가리워 반신조각상들이 시원하게 잘 보이지 않았으며 렬사릉으로 통하는 길도 번듯하지 못하고 릉이 비좁아보이시였다. 세월이 흘러도 먼저 간 전사들을 잊지 못하시고 그들을 내세워주시려 마음쓰시는 수령님이시였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의 깊은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전화대화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박눈이 쏟아지니 산에서 싸우던 때가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적후공작에 나갔던 전사들이 돌아오지 않아 밀영밖에서 눈을 맞으며 그들을 기다리던 일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모두가 잠에 든 이밤에 누구에게 전화를 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전화로 항일의 나날들을 회고하시며 한시간나마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이 력사의 밤과 더불어 먼저 간 전사들을 잊지 못하시여 수많은 날과 날을 새우시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을 혁명전사들에 대한 당과 수령의 위대한 사랑의 기념비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상징으로 더욱 의의있고 품위있게 완성하실 구상을 무르익혀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1(1982)년 10월 대성산혁명렬사릉을 개건확장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해도 다 저물어가던 12월 30일 혁명렬사릉개작사판을 친히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의 혁명렬사릉은 종심이 깊지 못하여 협소한감이 나고 혁명렬사들의 반신상들도 앞뒤간격이 좁아 대렬을 세워놓은것처럼 답답한감이 난다고 하시면서 지대를 대폭 정리하여 교양마당과 반신상구역을 더 확장하며 릉대문을 조선식으로 잘 세우고 릉으로 올라가는 길도 넓혀야 한다고 하나하나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릉대문의 높이를 가까이에서 보는 효과만 타산하지 말고 먼곳에서 볼 때 릉이 가리우지 않겠는가를 잘 토론해보고 정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혁명렬사릉을 고칠바에는 잘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앞두고 개건확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혁명렬사릉에 안치할 혁명렬사들을 한사람한사람 꼽아보기도 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고증해주기도 하시면서 혁명렬사릉을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도록 끊임없는 심혈을 기울이시였으며 공사가 마감단계에 들어선 주체74(1985)년 9월에는 몸소 친필비문을 써주시였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김일성 1985. 10. 10.》 동지애로 개척되고 전진해온 조선혁명,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승리해온 조선혁명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하나의 명맥으로 이어주는 불멸의 친필이였다. 혁명렬사들을 영생의 모습으로 빛내여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마침내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수령님의 친필비와 더불어 시대의 기념비로 최상의 수준에서 숭엄하게 꾸려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성산혁명렬사릉 개작공사를 하자면 품이 많이 들것이라고, 그렇지만 대성산혁명렬사릉 개작공사는 우리 대에 반드시 해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의도에 맞게 공사가 진척될수 있도록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와 민족적형식의 크고 넓은 릉대문이며 헌시비,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와 조각군상들, 생전의 모습그대로 세워진 혁명렬사들의 동상과 그 배경에 휘날리는 붉은 기발 등 혁명렬사릉의 모든것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와 충정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념원이 실현된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주체74(1985)년 9월 29일과 10월 4일 새로 개건확장된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력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화강석조각군상들과 추모군상들,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 항일혁명렬사들의 동반신상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며 시종 만족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을 동으로 만들기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동이 많이 들었다고 해도 아까울것이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혁명이 승리할수 있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반신상구역의 제일 웃단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붉은 돌로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기발을 형상한 혁명렬사릉의 배경을 바라보시며 아주 멋있다고, 김정일동지가 혁명렬사들이 푸른 소나무에 안장되여있게 하는것보다 붉은 기폭에 싸여있게 하는것이 더 좋다고 하면서 붉은 기발을 만들어 세우도록 한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하시며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붉은기앞에 계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반신상앞에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혁명렬사들이 그리울 때마다 주작봉마루에 오르시였고 금수산의사당 집무실에 포대경을 놓으시고 대성산혁명렬사릉의 혁명전사들을 한사람한사람 바라보시며 끝없는 심중의 대화를 나누시였다.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개척기와 항일전의 불길속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자랑찬 전통을 창조한 혁명선렬들은 붉은기에 휩싸안겨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호위하듯 성벽을 이루고있다. 희생된 나이와 고장은 서로 달라도 돌아와 안긴 품은 하나인 대성산혁명렬사릉,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항일혁명렬사들에게 돌려주신 크나큰 신임의 표시이고 한없는 은정의 선물이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싸운 그들의 투쟁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의 상징이다. 혁명의 붉은 기폭에 항일혁명의 전위투사들을 정히 감싸안고 오늘도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수령결사옹위의 진리를 삶의 참뜻으로 새겨주는 기념비-대성산혁명렬사릉, 바로 여기에서 세상사람들은 선군혁명의 자랑찬 력사와 그 승리의 찬란한 미래를 본다. 2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당과 수령의 위업에 끝없이 충실하였던 수많은 렬사들의 위훈도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렬사들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도 영생의 언덕에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주체73(1984)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성산혁명렬사릉을 개건확장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새로 안치할 항일혁명렬사들을 꼽으시다가 이밖에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잊지 못할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대성산혁명렬사릉과 같이 렬사릉을 하나 더 잘 꾸리고 그들을 거기에 안치해주자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이 한창이던 때에 또 하나의 렬사릉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이 진척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렬사릉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정형을 자주 료해하시고 릉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으며 렬사릉에 안치할 대상을 확정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이와 관련해서만도 여러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렬사릉에 안치할 대상범위를 이미 규정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4(1985)년 7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 김규식, 최동오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유해도 렬사릉에 안치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한사람이라도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시려고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두달후인 10월 어느날 대성산혁명렬사릉을 돌아보시면서도 이와 관련하여 또다시 말씀을 주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신미리에 건설하는 렬사릉을 구색에 맞게 잘 꾸리고 거기에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하지 못한 항일혁명렬사들과 해방후 당과 국가의 중요한 직책에서 충실히 일하다가 사망한 일군들, 지난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 민족주의자들도 안치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미리에 건설하는 렬사릉에 항일혁명렬사들이라고 하여 따로 잘 안치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을 다 차별없이 안치하여야 한다고, 신미리에 렬사릉을 건설하는것은 항일혁명투쟁시기와 해방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잘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설하는것만큼 차이를 두지 말고 꼭같이 해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애국렬사릉건설이 한창 진척되고있던 주체75(1986)년 8월 어느날에는 항일혁명투사들과 반일애국지사들,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충실히 일하던 일군들, 통일애국렬사들과 함께 과학, 문학예술부문의 이름있는 일군들을 비롯하여 지난날 공로를 세운 일군들을 렬사릉에 안치해주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숭고한 동지적사랑의 세계를 대화폭으로 펼쳐놓게 될 애국렬사릉건설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애국렬사릉은 주체74(1985)년 10월에 착공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불과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훌륭히 꾸려져 주체75(1986)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공식이 있은 다음날인 9월 18일 오전과 밤에 두차례에 걸쳐 애국렬사릉준공행사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일군들로부터 애국렬사들의 안치정형을 일일이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릉에 안치할 대상이 더 없겠는가 하는것을 전반적으로 다시 장악해야겠다고 하시며 사회주의건설에 헌신하다가 사망한 사람들도 다 장악하여 안치하여야겠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고결한 의리에 의하여 선군혁명의 각이한 년대들마다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들의 모든것을 다 바친 수많은 사람들이 렬사릉에 안치되게 되였다. 애국렬사릉을 훌륭히 꾸리도록 세심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6(1987)년 3월 새로 일떠선 애국렬사릉을 찾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릉을 좋은 곳에 잘 꾸렸다고 하시면서 《애국렬사릉의 위치가 참 좋습니다. 정말 명당자리입니다. 이만한 명당자리를 얻기 힘들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릉의 정점에 오르시여 현대적미감에 맞게 건설된 릉대문과 시원하게 뻗은 입구도로를 내려다보시면서 애국렬사릉을 내려다보는 위치가 참 좋다고 매우 만족해하시며 앞으로 애국렬사릉을 더 잘 꾸려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애국렬사릉에 안치하여야 할 대상이 한사람이라도 빠질세라 깊이 마음쓰시였다. 주체78(1989)년 10월 어느날에는 쑥섬혁명사적지를 돌아보시고 4월남북련석회의 참가자들에 대하여 회상하시면서 통일성업에 기여한 인사들을 한사람도 놓치지 말고 애국렬사릉에 안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숭고한 사랑과 의리의 세계를 그대로 체현하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후날 애국렬사릉의 묘비에 돌사진을 만들어 붙이도록 하심으로써 그들이 생전의 모습으로 영생하는 삶을 더욱 빛내일수 있게 하시였다. 또한 리수복, 안영애를 비롯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영웅전사들, 길영조, 김광철을 비롯한 수령결사옹위의 자폭용사, 육탄용사들도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여 선군혁명의 길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그들에게 영생의 삶을 빛내여주시였다. 참으로 애국렬사릉은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건설, 나라의 통일위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우다 희생된 렬사들의 위훈과 업적을 후대들에게 길이 전하며 빛내여주는 기념비이다. 애국렬사릉은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떠나간 렬사들을 조국과 인민앞에 애국렬사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와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을 다시금 새겨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 결의를 더 굳게 가다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