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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민군대를 경제건설의 돌파구마다에
적사회주의건설을 떠밀어나가는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방식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제시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방대한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80년대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면서 그 앞장에 인민군대를 내세워주시였다. 《80년대속도》창조투쟁, 그것은 천리마대고조시기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속도전의 원칙을 전면적으로 구현하여 1980년대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높은 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대중적진군운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년대속도》창조에로 군대와 인민을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주체71(1982)년 10월에는 전국청년열성자회의를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80년대속도》창조에 떨쳐나선 천리마운동선구자대회를 진행하도록 하시였으며 검덕광업종합기업소 제3선광장건설에 인민군부대들을 파견하시여 그 돌파구를 열어제끼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대의 핵심적역할과 근로자들의 헌신적투쟁에 의하여 2년이 걸릴것으로 계획되였던 제3선광장건설은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공되였으며 온 나라에 《80년대속도》창조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번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년대속도》창조운동의 불길속에서 인민군대가 건설하는 굴지의 서해갑문(건설당시 남포갑문)을 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세우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밀물과 썰물이 심하게 오르내리고 수심이 수십m나 되는 20리 날바다를 가로막아 언제를 쌓고 거기에 수만t급까지의 각종 배들이 통과할수 있는 여러개의 갑실과 수십개의 수문을 건설하며 무넘이언제와 보조무넘이언제, 수십리 언제우에 자동차길과 철길을 놓아야 하는 서해갑문건설은 세계적으로 볼 때 그 어느 언제공사나 갑문공사에도 비길수 없는 매우 어렵고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이였다. 서해갑문이 건설되면 오랜 세월 서해로 흘러들던 대동강물을 잡아두고 곡창지대인 평안남도와 황해남도의 농경지들과 새로 개간할 간석지들에 물을 충분히 대주어 알곡생산을 늘이며 대동강하류의 공업용수와 음료수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교통운수발전에 큰 도움을 줄수 있었다. 이처럼 방대한 건설을 인민군군인들이 맡아안았다. 서해갑문건설이 시작되던 그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방대한 공사를 담당할 건설력량문제를 놓고 생각이 깊으시였다. 서해갑문건설이 자연을 정복하는 거창하고 어려운 전투인것만큼 이 건설전투에 어느 력량을 돌리는가 하는것은 그 성과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서해갑문건설을 맡길것을 결심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오랜 건설경험과 기술을 소유한 로동자들과 기술자들, 현대적인 건설설비들을 가지고있는 건설기업소들이 적지 않지만 총대로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가장 조직되고 단련된 부대, 전투력이 강한 인민군대의 위력을 크게 믿으시였던것이다. 주체70(1981)년 5월 13일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에게 서해갑문건설위치와 관련한 말씀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2일에는 현지에 몸소 나오시여 서해갑문건설시공주는 인민무력부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이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남포갑문건설이 아무리 방대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인민군군인들이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해낼수 있을것입니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인민군총정치국에서는 공사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서해갑문건설은 우리 인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며 후대들에게 물려줄 만년대계의 재부를 창조하는 보람찬 사업이라는것을 똑똑히 인식시켜 그들이 공사에서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을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인민군군인들이 서해갑문을 건설하여 평안남도, 황해남도일대의 물문제를 완전히 풀게 되면 그곳 인민들은 《하느님》도 풀지 못한것을 로동당시대에 와서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풀어주었다고 두고두고 이야기할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인민군대에 대한 최상최대의 믿음과 기대가 어린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해갑문건설에 동원될 부대들을 친히 찍어주시였다. 그 부대들중에는 수령님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신 부대도 있었다. 이 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체질화하고 억센 체력, 험한 산악과 사품치는 강도 단숨에 넘나드는 슬기와 용맹을 지닌 군인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부대뿐아니라 안주계선에서 청천강제방공사를 하고있던 부대를 찍으시며 이 부대는 건설경험이 있는 부대이므로 흙언제공사를 맡아하면 잘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서해갑문건설장으로 파견하도록 하시였으며 대형함형부재와 골재생산을 맡아할수 있는 부대들, 여러가지 해상작업들을 전문으로 담당수행할수 있는 부대, 굴착기와 불도젤을 비롯한 중기계들을 잘 관리리용하여 방대한 공사용물자수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는 기계화부대, 수송부대도 조직해주시였다. 날바다를 막아 갑문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은 이렇게 지상과 해상, 수중에서 립체전, 전면전으로 힘차게 벌릴수 있게 준비되였으며 마침내 인민군대의 강력한 력량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아안은 인민군군인들이 날바다를 정복하기 위한 장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세상사람들은 조선에서 20리 날바다를 막아 갑문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와하면서 과연 조선과 같은 자그마한 나라에서 그것도 전문가들이 아니라 총을 다루는 군인들이 그처럼 방대한 건설공사를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의혹은 점차 경탄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갈대만 무성하던 서해바다기슭에 배낭을 풀어놓고 공사를 시작한지 몇달도 안되여 흙언제가 뻗어나갈 령남지구에서 6만산대발파의 장엄한 포성으로 인민의 행복의 창조자로서의 위용을 과시한 인민군군인들은 착공후 반년남짓한 기간에 철길과 도로건설, 숙소건설, 설계작성 등 준비작업을 끝내고 1982년 정초에 일제히 기본공사에 돌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사정형을 수시로 알아보시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주시였으며 여러차례 건설장을 찾으시여 군인건설자들에게 우리 식의 주체적인 흙언제공법, 가물막이공법, 지수공법 등 새로운 건설공법들을 밝혀주시여 공사를 빠른 속도로 진척시킬수 있게 지도하여주시였다. 주체73(1984)년 4월 1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서해갑문건설장을 찾으시였다. 현지에 도착하신 수령님께서는 령남리로부터 뻗어나온 흙언제에서 배를 타시고 기본구조물공사가 진행되고있는 맞은켠으로 향하시였다. 거기에는 날바다 한가운데 가물막이언제에 둘러막혀 수수천년 바다물에 잠겨있던 감탕과 조개껍질, 바위들이 드러난 커다란 륙지가 생겨났으며 기중기들이 일떠서고 혼합물장이 설치된 1호갑실자리에서는 벌써 기초공사가 한창이였다. 배에서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호갑실 전망대에서 공사진행정형을 료해하시고 갑문건설을 시작한지 2년반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가물막이공사를 끝냈으며 갑실기초공사에 착수하고 4 000여m의 흙언제를 쌓은것은 큰 성과이다, 이제는 이 큰 공사를 절반가량 해제낀것이나 다름없다고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군인건설자들에게 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시였다.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로 건설 전과정을 승리적으로 이끄시여 이룩된 성과를 모두 자기들에게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군인건설자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공사장을 돌아보시면서 갑문건설을 힘있게 추진할수 있는 혁신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때 가물막이 체내공사는 어려운 작업조건에 부딪치고있었다. 가물막이안의 물을 퍼내고보니 바닥은 여러m 두께의 감탕과 조개껍질로 덮여있었고 지금껏 바다물속에만 잠겨있던 바위들이 공기와 접촉하자 인차 부식되여 썩바위로 변하였는데 처리해야 할 감탕과 버럭만 하여도 무려 100여만㎥에 달했다. 자동차나 굴착기를 더 들이밀자고 해도 감탕때문에 도무지 은을 내지 못하였고 언제우로 올라가는 도로도 제한되여있었다. 하는수없이 《인해전술》로 공사를 밀고나가자니 좀처럼 일자리가 나지 않아 참으로 난감하였다. 건설장에 숱한 일군들과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군인들의 수고를 어쩔수 없는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갑실전망대에서 가물막이언제우로 걸음을 옮기시며 가물막이안의 작업실태를 주의깊게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사를 기계화하여 일을 쉽게 하면서도 빨리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동차와 같은 륜전기재들이 은을 내지 못하는 이런 감탕판에서는 벨트콘베아가 은을 낼것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벨트콘베아를 갑실기초공사장 량쪽에 놓고 감탕과 버럭을 륙지와 피도쪽으로 실어내며 벨트콘베아를 한곳에서만 쓸수 있게 고정시키지 말고 한곳에서 토량을 다 처리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면서 쓸수 있게 만들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방대한 량의 감탕과 버럭을 빨리 처리하고 전반적공사를 적극 다그쳐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능률적인 방안이였다. 군인건설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소극적이며 근시안적인 작업방법을 극복하고 여러가지 기계들을 작업에 도입하여 일판을 통이 크게 벌려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날의 현지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더욱 고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건설자들이 갑문건설의 기계화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 장마철전으로 갑실과 무넘이언제, 보조무넘이언제의 기초공사를 끝낼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건설장에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기계설비들이 보장되게 되였고 총연장길이가 1만여m에 달하는 벨트콘베아가 설치되여 공사가 힘있게 다그쳐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시는 길에서도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군에게 장마철전으로 갑실과 무넘이언제의 기초공사를 끝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심장으로 받아안은 군인건설자들은 불과 몇달동안에 수십만㎥의 기초콩크리트를 타입하였으며 다음해 9월에 이르러서는 3개의 갑실과 무넘이언제, 보조무넘이언제의 기본공사를 거의다 완성하고 언제도 5 000여m 계선까지 쌓아 갑문의 완공을 가까이 내다볼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대로만 한다면 광란하는 날바다속에서도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할수 있다는 진리를 온 넋으로 다시금 새겨안은 군인건설자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4(1985)년 9월 19일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갑문건설장을 또다시 찾으시여 물흐름이 언제마감막이의 좁은 여울목에 집중되여 공사를 진척시키는데서 애를 먹고있는 실태를 료해하시고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묘안도 가르쳐주시였으며 갑문건설에서 로력적위훈을 세운 군인건설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갑문건설을 군인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맡아하면 몇배의 시일이 걸려야 할것이라고 하시며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고 그들의 투쟁을 진두에서 지휘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군인건설자들은 주체75(1986)년 4월 18일 기본언제 마지막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내였다. 언제의 마감막이공사의 완공과 함께 서해갑문건설은 전반적으로 끝나게 되였다. 드디여 수수천년 바다로 흐르던 대동강이 흐름을 멈추고 대인공호수로 전변되였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던 남포시와 은률군이 대언제로 련결되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서해갑문건설완공소식에 대한 보도가 나가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민군군인들이 서해의 날바다기슭에 착공의 첫삽을 박던 그때로부터 지난 5년간 세계는 서해갑문건설을 지켜보고있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면서 과연 조선이 해낼수 있겠는가고 의문을 가지였으며 지어 어떤 사람들은 조선에서 서해갑문을 건설하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군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서해갑문을 건설하여 그들의 의문과 거만성에 실천으로 대답하였다. 서해갑문의 완공! 이것은 조선인민군의 영웅성을 온 세상에 과시한 위대한 사변이였다. 감탕밭에 첫삽을 박고 얼음장을 헤치며 가물막이뚝을 쌓아가던 때로부터 완공의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군인건설자들은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온갖 시련과 난관을 영웅적으로 이겨내면서 헌신적으로 싸워왔다. 이 헌신적인 투쟁속에서 군인건설자들은 《80년대속도》, 새로운 《서해갑문건설속도》를 창조하는 영웅적위훈을 세웠으며 선군혁명의 주력군으로서의 인민군대의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20리 날바다우에 대언제를 단 5년동안에 축성한 경이적인 사변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 군인건설자들에 대한 한없이 넓은 믿음과 사랑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해갑문을 일떠세운 군인건설자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여 다음과 같은 뜻깊은 친필로 서해갑문건설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운 군인건설자들의 공적을 력사에 길이 빛내여주시였다. 서해갑문은 우리 인민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이룩한 위대한 창조물이다. 갑문건설자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김일성 1986. 5. 22. 위대한 수령님의 이 력사적인 친필은 천연화강석에 새겨진 불멸의 기념비가 되여 피도기슭에 세워졌다. 주체75(1986)년 6월 24일 서해갑문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당과 정부의 간부들, 수많은 외국손님들과 함께 준공식장에 나오시였다. 갑문입구에 드리운 붉은 천을 끊으시여 서해갑문의 준공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갑문기념비들과 시설물들을 돌아보시고 전망대에 오르시여 오래도록 갑문전경과 그 첫 운영정형을 부감하시였다. 바다를 가로막고 아득히 뻗은 20리 언제우의 철길로는 첫 려객렬차가 기적소리 높이 울리며 달려가고 육중한 회전다리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수천t, 수만t급의 대형선박들이 배고동소리 울리며 3개의 갑실을 통과하였다. 이 광경을 더없이 기쁜 심정으로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해빛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축포가 터져오르고 환호성이 고조되였다. 이는 서해갑문건설구상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 드리는 군인건설자들과 온 나라 전체 인민의 최대의 영광과 열렬한 축하의 환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결정지시에 대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지니고 무비의 용감성과 헌신성, 불굴의 투지를 남김없이 발휘함으로써 20리 날바다우에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인 서해갑문을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훌륭히 일떠세우는 세기적인 기적을 창조한 군인건설자들에게 답례를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일떠선 서해갑문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과학성을 확증하여 주는 력사의 증거물이며 그것은 또한 선군의 위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가는 영웅조선의 위용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떨친 위대한 기념비이다. 2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해갑문건설이 끝나는데 맞게 이미 무르익혀오신 사회주의경제건설의 5개전선을 펴시고 인민군대에서 간석지와 여러 대상건설을 맡아하도록 하시였다. 또한 나라의 철도망완비에 큰 의의를 가지는 북부철길건설의 가장 어려운 과제인 기차굴뚫기공사의 전반과 여러 철길공사를 인민군대에 맡겨주시여 철도운수를 개선강화하여 늘어나는 수송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로건설, 평양-향산관광도로건설을 비롯한 나라의 면모를 보여주는 주요도로건설도 인민군대가 전적으로 맡아하도록 하시여 사회주의건설을 보다 힘있게 추진시켜나갈수 있는 담보를 튼튼히 마련하게 하시였다. 전력공업을 앞세워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전력문제를 푸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태천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끝내도록 하시였다. 태천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는 새로운 수력자원개발방식으로 건설하는 수력발전소들로서 물길굴을 뚫고 대규모의 언제를 쌓아야 하는 매우 방대한 대자연개조사업이였다. 일찌기 산업의 기본동력인 전력공업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도처에 수력발전소들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0(1981)년 5월 태천발전소를 우리 식으로 건설할데 대하여 발기하시였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수력자원개발방식으로 건설하는 첫 발전소인 태천발전소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간곡한 교시를 주시였다. 태천발전소건설은 충만강물을 대령강으로 돌리는 물길굴을 뚫으며 송원언제(당시 판평언제)를 쌓고 발전소만 하여도 5개씩이나 건설하여야 하는 방대한 투자를 예견한 매우 아름찬 공사였다.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공사는 물길굴을 뚫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에 끝없이 충실하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평양지하철도를 훌륭히 건설한 군인들에게 공사의 주공전선인 방대한 물길굴뚫기공사를 맡겨주시고 그들이 건설을 통이 크게 벌려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영예로운 과업은 군인건설자들의 심장을 끓게 하였다. 그들은 험산준령에 물길굴을 관통시키기 위해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나가며 날에날마다 놀라운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여 주체73(1984)년에 이르러서는 공사량의 많은 몫을 해제끼게 되였다. 주체75(1986)년 3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천발전소건설과 관련한 협의회에서 공사의 중심고리인 송원언제건설도 물길굴을 뚫던 군인건설자들에게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송원언제건설을 맡은 부대장에게 이제부터 준비를 해가지고 백사지나 다름없는 곳에다 짧은 기간에 가물막이공사와 기초공사를 하고 언제를 쌓는것이 간단하진 않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해제낄수 있다고 하시며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혁명투쟁이 식은 죽 먹듯이 쉽게 되는 법은 없다고, 혁명투쟁을 하자면 간고분투하여야 하며 간고분투하여야 승리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투쟁을 하는 과정에 난관이 조성되면 목숨을 내대고 돌격하는 방법으로 난관을 뚫고나가야 합니다. 간고한 투쟁을 벌려 난관을 뚫고 승리하여야 혁명하는 보람도 있습니다. 나는 혁명투쟁을 하는 과정에 고생도 많이 하고 어려운 고비도 많이 넘기였지만 그때마다 난관을 맞받아나가는 혁명정신을 가지고 조성된 난국을 뚫고나가군 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정전직후에도 우리 나라 형편이 몹시 어려웠지만 나는 절대로 실망하지 않았다, 당이 있고 정권이 있으며 령토가 있고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적인민이 있는 한 그들을 믿고 전후복구건설을 하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건설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나는 지금도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면 그때의 혁명정신을 가지고 풀어나가군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일군들이 이런 혁명정신을 가지고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송원언제를 빨리 쌓을수 있다고, 아무것도 없는 백사지나 다름없는 곳에다 짧은 기간에 언제를 높이 쌓아놓으면 세계적인 기적을 창조하는것으로 될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의 년대기마다에 승리만을 아로새기게 한 백두의 혁명정신을 철저히 구현하여 인민군대가 사회주의건설의 전초선마다에서 새로운 비약과 혁신의 창조자가 될것을 바라시는 크나큰 믿음이 담긴 말씀이였다. 다음날에도 계속된 협의회에서 공사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판평언제건설은 자신께서 직접 지휘하겠다고 하시며 물길공사에서 이룩한 군인건설자들의 로력적성과를 높이 치하하여 자신의 감사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군인건설자들은 한밤중에 비상소집을 하여 강행군으로 수백리 떨어진 언제건설장에 배낭을 풀어놓은 그 시각부터 설비, 자재가 도착할 때까지 맨손으로 수백리의 도로를 닦는 한편 충만강의 얼음을 까고 언제기초를 파서 등짐으로 버럭들을 날랐다.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의 불길은 분초를 다투며 세차게 타올랐다. 륜환선형성을 위한 다리공사는 3일동안에, 가물막이공사는 1주일동안에, 준비공사는 한달 반동안에 끝냈다. 군인건설자들은 2년이상 걸려야 할 건설준비작업을 짧은 기간에 끝내고 공사에 착공한데 만족하지 않고 힘찬 투쟁을 벌려 하루 1만여㎥의 콩크리트타입능력의 골재선별 및 혼합장건설을 비롯한 생산가설공사를 불과 45일만에 결속하였으며 1년남짓한 기간에 수십만㎥의 굴착공사와 콩크리트치기공사를 진행하여 초기저수를 할수 있는 높이에까지 언제를 쌓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인민군군인들의 불굴의 투쟁속에 주체77(1988)년 8월 태천1호, 2호발전소가 성과적으로 조업됨으로써 오랜 세월 나라의 서북부로 흐르던 충만강이 서남부로 흐름을 바꾸어 물길굴로 흘러들어 대령강의 물과 함께 전력을 생산하는 전변의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 선군시대의 위대한 추동력인 혁명적군인정신이 높이 발휘된 안변청년발전소(당시 금강산발전소)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심혈이 슴배여있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은 대형물길굴을 뚫고 여러개의 언제를 쌓아 전력을 생산하는 큰 공사로서 물길굴뚫기와 조정지언제, 취수구를 비롯한 구조물건설량만 하여도 서해갑문건설의 2배에 달하는 어려운 공사였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을 놓고 적들은 《종이장우의 발전소》라고 하면서 갖은 비방중상을 다하였고 세계의 벗들도 머리를 기웃거리며 위구의 눈길을 모으고있었다. 지어 공화국의 일부 과학자들까지도 난감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해갑문건설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운 군인건설자들을 비롯한 인민군군인들을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또다시 불러주시고 건설을 통채로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변청년발전소는 김정일시대에 넘겨주는 기념비적창조물인것만큼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군인건설자들이 건설의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도록 하시였으며 발전소건설과 관련하여 수십여차의 강령적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속에 서해갑문건설에 이어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은 무비의 헌신성과 대담성, 희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군인건설자들은 공사기간 수백개소의 붕락구간과 수천여개소의 사고위험이 앞을 막아나서고 물이 허리를 넘는 속에서도 공사를 중단함이 없이 벌려나갔다. 붕락으로 하여 며칠간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굴속에 갇혀있던 어느 한 구분대의 군인들은 압축공기관으로 밥덩이를 들여보내주자 밥대신 압축공기를 보내달라고 절절하게 웨쳤다. 어느 한 작업장에서 굉장한 물주머니가 터졌을 때 전우들을 한명한명 갱밖으로 떠밀던 한 사관은 갱천정에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자기만은 빠져나갈수 없음을 알자 마지막힘을 모아 웨치였다. 《동무들, 명령을 끝까지 수행해달라.》 불사조와 같은 이런 군인건설자들의 불굴의 투쟁에 의하여 발전소건설은 힘있게 추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치신 태천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1990년대에 더욱 힘있게 추진되였다. 주체85(1996)년 6월 10일 완공단계에 이른 안변청년발전소를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금강산발전소건설을 발기하시고 발전소건설의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신지 1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라고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군인들과 건설자들이 긴 물길굴과 대기념비적언제를 하늘높이 쌓아올리고 금강산발전소 1계단공사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으면 얼마나 기뻐하시였겠는가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금강산발전소는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과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관철하려는 군인들과 건설자들의 혁명적군인정신과 고귀한 땀이 깃들어있는 로동당시대의 위대한 창조물입니다.》 참으로 안변청년발전소는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 크나큰 사랑에 의하여 그리고 인민군군인들의 결사관철의 정신과 고귀한 땀으로 일떠선 위대한 선군시대의 기념비이다. 참으로 인민군군인들이 맡아나선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전투장들마다에서는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는 자랑찬 창조물들이 수많이 태여나게 되였다.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조국이여, 마음껏 설계하라!》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애국의 마음이 맥박치는 이 신념의 웨침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전초선을 지켜선 인민군군인들의 심장속깊이에서 울려나온 구호들이다. 이 구호높이 인민군군인들은 오늘도 조국보위도 하고 사회주의건설도 다 맡아하며 전진하는 조국의 맨 앞장에서 붉은기를 높이 휘날리며 혁명의 주력군으로 보무당당히 나아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과업들을 인민군대에 맡겨주시고 돌격대, 기수가 되도록 이끌어주심으로써 인민군대의 핵심적역할에 의하여 사회주의건설이 힘있게 추진되고 선군의 총대를 틀어쥔 군인들이 있는 한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이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다는 진리를 웅변적으로 실증하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