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정일장군님의 령군체계 전면적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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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71. 6. 12-

력사적인 삼지연회의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적인 사업인것만큼 혁명무력의 강화발전도 세대와 세대를 이어 진행되게 된다.

혁명의 세대가 바뀌는 시기에 혁명무력에 대한 후계자의 령도체계확립문제를 옳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총대가 흔들리게 되며 나아가서는 사회주의위업이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실패를 면치 못하게 된다.

선군혁명령도의 계승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주체혁명위업에 대한 수령님의 선군령도를 대를 이어 철저히 구현하는 문제이며 그것은 당과 군대에 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계승할 후계자를 내세우고 후계자의 령도체계를 세우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있다.

일찍부터 군건설위업을 령도하시는 길에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계시며 인민군대에 대한 장군님의 령도체계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군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안에 당의 령군체계,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대안에서의 당의 령도체계와 령군체계는 서로 병립되는 별개의 체계가 아니라 다같이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유일적령도를 철저히 실현하기 위한 사업체계이다.

전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것은 선군혁명령도를 대를 이어 전면적으로 실현해나가며 그 주력군인 인민군대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의 혁명적성격을 고수하고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의 승리적전진을 군사적으로 확고히 담보하기 위한 근본문제였다. 이것은 조선혁명의 절실한 요구이고 전체 군대와 인민의 한결같은 지향이였다.

전체 군대와 인민의 지향을 반영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로동당의 수위에 추대하도록 하시고 당의 령도자,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시여 당의 령도계승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전기간 일관하게 견지하신 선군령도가 빛나게 계승될수 있게 장군님께 군대를 넘겨주는 사업을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하시였다.

그 력사적계기의 하나가 바로 주체71(1982)년 6월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이다.

회의가 소집되기 며칠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사업을 맡아보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삼지연에서 하게 된다고 알려주시고 지금까지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사업을 지도하여온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자신께서 최고사령관으로 있다나니 그가 군사사업을 지도하고있는데 대하여 세상에 선포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이제는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직접 지도하고있다는것을 세상에 선포하고 그의 령도체계를 군대안에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 강조할 때가 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오늘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고 전쟁준비를 완성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김정일동지에게 인민군대의 모든 사업을 집중시키고 군건설에 대한 김정일동지의 령도체계를 정연하게 세우는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며칠후인 주체71(1982)년 6월 12일 백두산기슭의 삼지연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소집되였다.

회의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과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군들 그리고 군종, 병종사령관들과 정치위원들, 각급 부대의 지휘성원들이 참가하였다. 그들가운데는 혁명의 1세, 2세들과 함께 새 세대 군정간부들도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인민군대가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잘 받들어나가도록 체계를 바로세우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당적으로만 지도하고있는데 군사적으로도 지도하도록 하여야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군대를 직접 지도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직접 령도하는것은 혁명무력건설의 합법칙적과정이라고 하시면서 오늘의 시대는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1930년대나 미제와 싸우던 1950년대와는 달리 군사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시대인것만큼 현시대의 발전추세와 군사사업에 정통하고 무비의 담력과 천재적예지, 세련된 령군술을 겸비한 김정일동지의 령도체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세우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 말씀은 인민군대에 있어서 령도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되고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였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력사의 장엄한 선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회의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민군대안의 모든 군사사업을 집중시키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유일적결론에 따라 움직이는 혁명적사업체계와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여 전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새로운 조치들은 전군주체사상화를 실현해야 할 인민군대의 숭고한 사명과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군건설의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한 과학적이며 정당한 조치였다.

백두산의 아들이신 김정일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진두에 모신것을 축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기념사진은 김정일동지를 혁명무력의 진두에 높이 모신것을 축하하여 찍는 사진인것만큼 김정일동지를 중심으로 모여 찍자고, 앞으로 김정일동지와 함께 총대를 틀어쥐고 군건설을 벌려나갈 젊은 간부들이 앞줄에 서고 우리는 뒤에 서서 찍자고 하시며 자리배치까지 해주시였다.

백두산을 배경으로 찍은 그날의 기념사진, 그 사진은 총대에 의하여 계승된 조선혁명의 영원한 승리를 상징하는 위대한 화폭이였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모든 군정간부들은 1920년대에 위대한 수령님을 한별동지라 부르며 단결의 중심에 높이 받들어모시였던 청년공산주의자들처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그이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나갈 불타는 결의를 엄숙히 다지였다.

그날 저녁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인민군대를 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자면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잘 받드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하시며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는 세련된 령도적수완과 뛰여난 군사적재능을 겸비하고있으며 일단 결심하면 끝장을 보는 강의한 성품을 지닌 혁명의 지도자이다, 김정일동지는 무슨 일이든지 통이 크게 작전하고 전격전으로 내밀며 아무리 큰 고난이 앞을 막아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정일동지는 비상한 전개력과 한다면 하는 배짱을 가지고있을뿐아니라 중요하게는 혁명에 대한 충실성이 높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김정일동지가 당과 인민군대를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고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성취하리라고 믿는다고 크나큰 기대를 표명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회의에서 김정일동지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연설내용에는 그가 최고사령관의 사업을 하게 된다는것이 다 밝혀져있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의 모든 지휘간부들이 응당 김정일동지를 높이 모시고 잘 받들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말씀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받들어나가는 그 길에서 전체 군대와 인민이 언제나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고귀한 지침이였다.

주체71(1982)년 6월 12일 백두산기슭의 삼지연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도하신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회의였다.

조선인민군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주체의 선군위업의 참다운 계승의 력사를 굳건히 이어나가며 자기 발전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2

 

백두밀영고향집에서

삼지연에서 열린 력사적인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전면

적으로 확립해나가기 위한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교양을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이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나가도록 하시는 한편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한 백두산일대에 대한 조사발굴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백두산밀영을 발굴하여 꾸리는것은 주체의 선군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순결하게 계승발전시키며 인민군대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밑에 주체의 혈통을 이어받은 혁명군대로 계속 승승장구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높이 모신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백두산밀영을 발굴하지 못한것을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밀영을 발굴하는 문제가 김정일동지를 높이 받들어나가도록 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김정일동지의 생가를 하루빨리 발굴하여 꾸리는것은 후대들앞에 지닌 자신의 의무라고 하시며 백두산밀영발굴에 늘 마음쓰시고 이 사업에 큰 힘을 넣으시였다.

백두산밀영은 주체25(1936)년 가을부터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조선혁명의 본거지, 중심적령도거점으로서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 불멸의 자욱을 아로새긴 선군혁명의 성지였다. 백두산밀영에는 사령부귀틀집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유서깊은 고향집이 있었다.

기묘한 자연지리적조건과 울창한 수림으로 잘 위장된 백두산밀영은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와 경위중대를 비롯한 주력부대 성원들만 드나들고 일체 외부와는 철저히 봉쇄되여있었다. 그리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적들에게 로출되지 않고 조선혁명의 령도거점으로서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수 있었다.

백두산밀영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여왔으나 천험의 원시림속에 세월의 풍상에 묻혀버린 옛 자취를 찾지 못하여 1980년대 중엽까지 발굴하지 못하고있었다. 세월은 흘러 수십년전에 백두산밀영을 드나들던 항일혁명투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80년대 중엽 백두산밀영을 발굴하는것을 더는 미룰수 없는 력사적과제로 보시고 이 일은 꼭 자신께서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주체74(1985)년 7월 22일 백두산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산은 미래의 태양이 밝아온 혁명의 성산으로 오늘 세계에 찬연히 빛을 뿌리고있다고, 조선혁명의 시원은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되고 주체혁명위업은 백두산에서부터 개척되였다고, 백두산 줄기마다 압록강 굽이굽이마다 혁명선렬들의 피의 자욱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백두산을 내리기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백두산밀영을 찾지 못한것을 두고 못내 서운해하시면서 우리는 백두산밀영을 꼭 찾아내야 합니다, 백두산밀영을 찾는 문제는 후대들에게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게 하는데도 중요하지만 김정일동지를 더 잘 받들어모시도록 하는데 보다 큰 의의가 있습니다, 김정일동지의 생가를 하루빨리 찾아내는것은 후대들앞에 지닌 나의 숭고한 의무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긴장한 일정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년로하신 몸으로 백두산에 몸소 오르신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어떻게 해서나 백두산밀영을 찾아내기 위하여 여러모로 마음쓰시였다.

주체75(1986)년 8월 백두산지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사적이 깃든 혁명전적지들과 숙영지들, 밀영들을 돌아보시였다.

어느날 곰산등판에 오르시였던 수령님께서는 돌아오시는 길에 소백수다리를 건느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추억을 더듬으시며 안쪽골짜기를 유심히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골안이 어쩐지 낯이 익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백두산밀영을 꾸렸던 곳 같으니 한번 조사해보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겉으로 보기에는 골짜기가 첫어구에서 끝나는것 같지만 모퉁이를 에돌아 들어가면 더 깊은 골짜기가 나질것이라고 하시며 그 주변을 살펴보면 반드시 밀영자리가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소백수골에 대한 발굴조사사업이 진행되였다. 답사성원들이 소백수의 다리목에서부터 골짜기를 따라 톺아 올라가니 밖에서 볼 때는 서쪽과 북쪽산발이 맞붙은듯 하더니 골어구에서 모퉁이를 에돌아 들어가니 깊은 골짜기가 나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 그대로였다.

답사성원들이 흥분된 마음으로 한치한치 조심스럽게 살피며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가니 푸르싱싱한 새초밭도 나졌다. 면밀한 조사과정에 껍질벗긴 나무들을 찾아냈으며 그것을 분석해보니 구호나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구호나무에 이어 락엽이 덮인 샘터와 함께 집자리흔적들을 발견하였다. 썩은 진대나무며 락엽과 삭정이에 묻히고 눈비에 고삭아 내려앉은 서까래들이 그대로 있는 집터자리에서는 다 삭아 구멍이 숭숭 난 부엌세간들이 나타났다. 집터자리와 함께 천막자리도 발견되였는데 거기에서도 탄피와 군용밥통, 작은 법랑소랭이와 신발바닥, 통졸임통, 유리병 등 많은 유적유물들이 나타났다.

발굴사업과 항일혁명투사들의 현지고증을 통하여 이곳 밀영이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백두산밀영이라는것이 확증되였다.

사람들에게 크나큰 기쁨과 감격을 준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귀틀집자리를 찾아낸것이였다.

발굴정형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백두산밀영의 사령부귀틀집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향집을 원상대로 복구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따라 그해 10월부터 밀영복구사업이 진행되고 주체76(1987)년 2월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일을 계기로 백두산밀영개영식이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주체77(1988)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발굴된 백두산밀영을 찾으시였다.

40여년만에 이곳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감회는 참으로 깊으시였다. 소백수골에서 사령부귀틀집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향집이 있는 백두산밀영을 발굴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순간부터 마음이 앞서시던 곳이였다.

사령부귀틀집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향집, 경위대원실을 비롯한 밀영의 여러 귀틀집들을 차례로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을 좀더 일찌기 찾지 못한것이 아수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해방직후부터 백두산밀영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그때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해방직후에는 건당, 건국, 건군사업을 하느라고 시간이 없었고 그후에는 미제를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령도하다보니 짬을 내지 못하여 백두산밀영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벌써 오래전에 몇몇 일군들에게 과업을 주어 찾아보도록 하였지만 밀영을 직접 건설했던 동지들은 일찌기 곁을 떠난데다 세월이 너무도 흐른 뒤여서 지금껏 찾아내지 못하다가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뜻을 이루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백두산밀영을 훌륭히 발굴하여 복구한것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백두산일대에 있는 사적지들을 모두 원상대로 복구하고 혁명사적들을 잘 정리하여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꾸리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산밀영을 찾아내지 못하여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노루발쪽문손잡이가 달린 옛 모습그대로 원상복구된 백두산밀영생가를 보니 무겁던 어깨가 가벼워진것 같다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벌써 40여년의 긴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김정일동지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면서 백두산의 눈보라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다고,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에서 태여나 고생하며 자랐기때문에 혁명성이 강하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아들입니다.

나는 오늘 수십년만에 다시 그의 생가를 찾아보면서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 혁명위업은 김정일동지의 령도밑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더 굳게 가지였습니다.

백두산고향집에 와보면 누구나 이것을 알수 있을것입니다.》

백두산의 아들,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져있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십년세월 그리도 마음써오시며 누구도 찾지 못하였던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아주시여 선군혁명의 력사와 전통을 더욱 튼튼히 다져놓으심으로써 군대와 인민이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도록 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생가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혁명의 재보라고 하시면서 고향집을 더 잘 꾸리고 영원히 보존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을 돌아보신 후 백두산지구에 있는 밀영들을 원상복구하고 혁명사적을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관심속에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하여 백두산지구에 꾸려졌던 비밀근거지를 원상대로 복구하는 사업이 큰 규모에서 벌어졌으며 짧은 기간에 백두산밀영의 위성밀영들인 사자봉밀영, 간백산밀영, 곰산밀영, 소연지봉밀영, 선오산밀영, 무두봉밀영, 압록강안밀영, 대각봉밀영, 쌍두봉밀영이 원상대로 꾸려져 개영되게 되였다.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정연한 밀영망을 이룬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가 발굴됨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의 일대 앙양기와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이하기 위한 력사적전환기에 혁명의 책원지가 국내에 있으면서 전반적조선혁명을 승리적으로 조직령도하였다는것이 뚜렷이 확증되였다.

이것은 항일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따라 주체의 건군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수하는데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다.

1980년대 후반기 백두산지구를 비롯한 전국각지에 수많은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이 원상대로 꾸려져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됨으로써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 백두산총대혈통이 대를 이어 굳건히 이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 백두산밀영을 찾아주시고 원상대로 길이 전하도록 하여주신것은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끄떡하지 않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령도따라 주체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수 있는 만년초석을 더욱 튼튼히 다져놓으신 력사적공적이다. 3

 

새로운 령군체계의

전면적확립을 위하여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당과 인민군대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신 새로운 현실은 모든 지휘성원들과 군인들이 김정일장군님을 잘 받들어 전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할것을 요구하였다.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세우는 목적은 인민군장병들이 장군님을 높이 우러러모시고 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도록 하자는데 있다.

령도자에 대한 충실성은 진짜혁명가와 가짜혁명가를 가르는 기준이며 령도자에 대한 군인들의 충실성은 혁명무력의 수위에 모신 자기 령도자의 위대성에 대한 깊은 인식에 기초할 때 높이 발휘되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위인이 위인을 안다는 말이 있다.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분은 절세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비롯한 당과 군대, 국가의 지도일군들앞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천출위인상에 대하여 말씀하군 하시였다.

주체73(1984)년 4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잘 받드는것이 오랜 혁명가들앞에 나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하시면서 김정일동지에 대한 충실성은 결국 나에 대한 충실성이라고, 나에게 충실한것은 곧 김정일동지에게 충실한것으로 된다고, 김일성김정일은 사상도 같고 목표도 같으며 뜻도 같다고, 김일성의 사상이자 김정일의 사상이며 김일성의 뜻이자 김정일의 뜻이라고, 나와 김정일동지는 모든것이 다 같다고, 사상도 같고 마음도 같으며 생각도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기상과 기질을 지닌 백두산형의 장군이다, 김정일동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 나와 같이 있으면서 작전대에서 군사를 많이 배운 전법에 능한 전략전술가이다,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무력으로, 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것을 보면 그의 기질과 조직적수완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김정일동지는 정세가 아무리 긴장하고 어떤 강적이 덤벼들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유작작하고 령활한 전법으로 적들을 전률케 한다, 김정일동지는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다운 불굴의 의지와 담력, 뛰여난 지략과 령군술을 지니고있으며 여기에 우리 혁명무력의 끝없는 강화발전과 백전백승의 담보가 있다, 나는 우리 나라에 또 한사람의 장군, 김정일장군이 있는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모든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이 군인들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에 대한 교양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당정치사업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면서 인민군장병들이 장군님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실성을 깊이 간직하고 당과 수령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워나갈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또한 군인들속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상의 위대성, 령도의 위대성, 덕성의 위대성을 깊이 인식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실속있게 진행하도록 하시였으며 군사임무수행을 통하여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을 높이 발휘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인민군대안의 책임일군들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잘 받들어나가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전군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군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던 주체72(1983)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을 비롯한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에게 우리 일군들은 나이가 많은 간부이건 젊은 간부이건 할것없이 모두가 다 김정일동지를 진심으로 받들고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주체77(1988)년 2월 어느날에는 인민무력부 책임일군으로 임명된 한 항일혁명투사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무엇보다도 김정일동지를 잘 받들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김정일동지의 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정세가 조성되고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사회주의운동이 겪고있는 진통, 세계자주화위업수행앞에 가로놓인 난관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지금 정세는 1956년도에 조성되였던 정세와 비슷하다고, 오늘의 복잡한 정세속에서 우리가 추호의 동요도 없이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나가자면 김정일동지의 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전당, 전군, 전민을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인민군대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김정일동지에게 보고하고 그의 결론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인민무력부 일군들은 숨을 쉬여도 같은 숨을 쉬고 말을 하여도 같은 말을 하며 꿈을 꾸어도 같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9(1990)년 2월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소집하시고 인민군대를 당의 군대로 더욱 강화발전시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모든 군관들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만을 믿고 장군님께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장군님을 진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따르는 혁명적군관으로 키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령도체계확립에서 장군님께 충실한 후비간부들을 키우는 문제를 매우 중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1(1982)년 6월 어느날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군에게 김정일동지와 생사운명을 같이할수 있는 충실한 일군들을 간부후비로 키울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간부의 기본표징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다, 본인의 충실성을 기본으로 보고 실천행동을 통하여 검열된 일군들을 선발배치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는 비록 무뚝뚝하여도 대가 바르고 원칙이 있는 지휘관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혁명적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있는 지휘성원들을 전망성있게 키워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날의 가르치심은 인민군대의 간부대렬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끝없이 충실한 일군들로 꾸리는데서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령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철저히 관철하는 혁명적군풍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혁명군대의 군풍은 당풍에 기초한 군풍으로서 전군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며 모든 군인들이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가지고 그 어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장군님의 명령지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나가는 투쟁기풍, 생활기풍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6(1987)년 2월 11일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인민군대에 명령지휘체계가 바로서있지 않으면 싸움을 제대로 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군대에서 명령은 곧 법이며 군인은 명령을 받으면 무조건 집행할 의무밖에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군인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령지시를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는 혁명적군풍을 확립하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모든 군사사업을 장군님의 유일적령도밑에 진행해나가도록 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가 전면적으로 확립되였다. 그리하여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이 꿋꿋이 이어지고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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