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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반제련대성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쓸어버리기 위한 반제자주화의 열풍이 휘몰아쳤다. 알제리와 남부예멘을 비롯한 여러 나라 인민들은 영웅적인 항전으로 민족해방위업을 이룩하였으며 말레이시아, 앙골라, 베네수엘라 등 수많은 나라 인민들이 손에 무장을 들고 수세기동안 대륙을 휘감고있던 식민지철쇄의 토막들을 끊어버리기 시작하였다. 오랜 세월 자본의 예속과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의 압제밑에서 신음하던 인민들은 거대한 힘으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식민주의자들에게 단호한 징벌을 내리며 력사의 수레바퀴를 힘있게 떠밀고나갔다. 이러한 현실은 제국주의자들을 극도로 당황망조케 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내면서 살쪄왔던것이다. 지구륙지면적의 71%를 차지하고있고 세계인구의 3분의 2이상이 살고있으며 무진장한 자원이 있는 이 지역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생명선과도 같은것이였다. 만일 여기에서마저 쫓겨난다면 제국주의는 존재자체를 상실하게 될것이였다. 불안과 공포에 직면한 세계제국주의는 멸망해가는 저들의 운명을 어떻게 하나 건져보려고 단말마적으로 책동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하여 세계도처에서 까리브해위기, 바크보만사건, 아랍인민을 반대하는 중근동전쟁, 라오스에서 《특수전쟁》개시, 꽁고에 대한 무력간섭과 같은 사건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그 모든 사건들에서 주되는 세력으로 나선것은 역시 침략과 전쟁의 원흉 미제국주의였다. 미제의 침략과 전쟁정책으로 하여 국제정세는 극도로 긴장해졌으며 반제자주위업의 앞길에는 많은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이게 되였다. 게다가 이 시기 제국주의자들의 위협공갈에 겁을 먹은 기회주의자들의 해독적책동의 후과로 적지 않은 나라들이 반제반미투쟁, 민족해방투쟁을 소극적으로 진행하거나 지어 포기하는데까지 이르게 되였다.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계속하느냐 마느냐, 민족적독립과 자주냐, 아니면 식민지적예속과 노예적굴종이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갈길을 찾지 못하고있을 때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 풍부한 반제투쟁경험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과 대외활동으로 반제반미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까리브해위기를 일으킨 미제의 반동적공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되여가고있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주의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민족해방혁명의 앞길에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고있음을 지적하시면서 아무래도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 관한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을 밝히는 글을 써서 발표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글을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써야 하겠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글에 대한 초고집필이 끝났을 때에는 글을 친히 보아주시고 글에서 놓친 문제와 강조해야 할 문제,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이 글은 주체53(1964)년 1월 《로동신문》과 중앙방송을 통하여 《민족해방의 혁명적기치를 높이 들자》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발표되게 되였으며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 민족해방혁명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을뿐아니라 몸소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으로 반제자주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침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사상리론적무기를 마련해주시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수많은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은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평화와 진보를 위해 떨쳐나선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앞길을 밝혀주는 투쟁의 기치로, 필승의 무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55(1966)년 10월에 진행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도 그 수많은 로작들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에서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다음 미제를 침략과 전쟁의 주되는 세력, 국제헌병으로, 현대식민주의의 아성, 전세계인민들의 가장 흉악한 원쑤로 락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현정세에서는 아세아와 구라파,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큰 나라와 작은 나라 할것없이 세계의 모든 지역, 모든 전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에게 타격을 주어 그들의 력량을 최대한으로 분산시켜야 하며 미제가 발붙이고있는 모든 곳에서 그들이 함부로 날뛸수 없게 손발을 얽어매놓아야 합니다. 오직 이렇게 하여야만 이러저러한 지역과 나라들에 힘을 집중하여 사회주의나라들을 비롯한 국제혁명력량을 각개격파하려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을 성과적으로 분쇄할수 있습니다.》 세계혁명의 첫째가는 대상인 미제에게 주되는 창끝을 돌릴데 대하여 가르쳐주신데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동시에 그 동맹자들을 반대하는 투쟁도 벌릴데 대한 문제, 반제공동행동과 반제통일전선을 이룩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반제반미투쟁과 민족해방투쟁에서 나서는 전략전술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국제무대에서 미제의 전횡이 란무하고 온갖 기회주의자들이 머리를 쳐들고있던 복잡다단한 정세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에 접한 세계의 수많은 출판물들과 통신, 방송들은 앞을 다투어 그이의 로작을 소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을 출판하는것과 관련하여 어느 한 나라 공산당기관지는 《먼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수령님을 흠모하여 쓴 글을 무려 다섯차례에 걸쳐 련재하였다. 이 하나의 사실만 보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가 얼마나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는가를 잘 알수 있다. 그만큼 세계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더없이 귀중한 진리로, 승리와 영광만을 가져다주는 필승의 보검으로 받아안은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정력적인 사색과 탐구활동으로 1960년대에 《반제반미투쟁을 강화하자》, 《아세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위대한 반제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다》, 《5대륙의 진보적기자들은 혁명의 필봉을 높이 들고 미제를 준렬히 단죄하자》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련이어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들에서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시고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서 확고히 견지해야 할 근본원칙과 립장, 전략과 전술, 투쟁과업 등 세계자주화위업을 추진시켜나가는데서 나서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계 진보적인민들에게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한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는 한편 여러 나라의 각계 인사들과의 대외활동도 정력적으로 진행하시였다. 이 시기 우리 공화국으로는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대표단들과 개별적인사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있었다. 그들중 대부분은 민족해방투쟁과 새 사회건설에 나선 나라의 사람들이였다. 그들이 조선을 찾은 목적은 한세대에 미일 두 제국주의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시였고 반제반미투쟁을 진두에서 이끌고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으로부터 자기들의 투쟁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느라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였지만 이들을 일일이 만나시여 그들의 투쟁도 고무해주시고 난관에 부닥친 사람들에게는 뚫고나갈 방도도 밝혀주시였으며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힘과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나라의 대통령과 담화를 나누실 때였다. 그 나라로 말하면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오래동안 강요되여오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독립을 이룩한지 몇년밖에 되지 않는 나라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통령에게 작은 나라들이 또다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하여서는 서로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나라들은 일치한 행동으로 미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반제반미투쟁에서 우리 당의 전략은 미제가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있는 모든 곳에서 미제의 각을 하나씩 떼내자는것입니다. 미제의 각을 아프리카에서 하나 떼내고 라틴아메리카에서 하나 떼내고 또 아세아에서도 하나 떼낸다면 미제는 멸망하고야말것입니다. 투쟁하는 나라들은 미제를 반대하는 투쟁을 누가 해줄것을 바라지 말고 단결하여 달라붙어 미제의 각을 하나씩 떼내야 합니다.》 순간 대통령은 금시 눈앞이 환해지는것만 같았다. 수령님께서 하나의 형상적인 표현으로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투쟁전략에 대하여 일깨워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새로 독립한 나라들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대통령이 받아안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반제반미투쟁과 새 사회건설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으로서 천만금에도 비할수 없는 가장 고귀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강령적지침을 받아안은 사람은 이 대통령 한사람뿐이 아니였다. 탄자니아련합공화국 정부친선대표단, 캄보쟈왕국 국민의회대표단, 아랍련합공화국 민족회의대표단, 이라크통신사 부사장을 비롯한 수많은 개별적인사들과 대표단들이 수령님을 만나뵙고 투쟁의 진리를 깨달았다. 위대한 사상은 위대한 현실을 낳기마련이다. 미제에게 주되는 창끝을 돌릴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사상은 세계 진보적인류를 반제반미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뜨기 위한 힘찬 투쟁이 벌어졌다. 반미투쟁은 지어 제국주의의 아성인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이 장엄한 투쟁의 불길속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체계는 걷잡을수 없이 무너져갔다. 2
또다시 지배하기 위한 미제의 침략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비법적으로 윁남을 분렬시킨 미제는 남부윁남을 저들의 침략적인 《동남아시아조약기구》(쎄아토)의 《보호권》안에 포함시켰으며 남부윁남에 괴뢰정부를 조작하였다. 분노한 남부윁남인민들은 미제의 식민지지배와 괴뢰정부의 매국배족적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섰으며 남부윁남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한데 이어 남부윁남인민해방무장력을 창건하여 대규모적인 공격작전으로 넘어갔다. 작전결과 남부윁남인민해방무장력은 1963년 당시 1 00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남부윁남령토의 4분의 3을 해방하고 여기에 해방지구를 창설하는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에 질겁한 미제는 1964년 8월 바크보만사건을 도발하여 침략전쟁을 북부윁남에로 확대하였다. 윁남민주공화국에 대한 공개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한 미제는 하노이와 하이퐁을 비롯한 이 나라의 전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면서 여러 침략군 지상군부대들을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 하여 윁남인민들의 반미구국항전은 1960년대 중엽에 이르러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전쟁과 평화, 진보와 반동사이의 투쟁에서 초점을 이루는 치렬한 군사적대결전으로 되였다. 윁남의 당과 정부는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여러 나라들에 긴급지원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미제의 책동에 대처할 옳바른 방안이나 로선을 내놓지 못하였다. 일부 나라들은 미제의 위협공갈에 기가 꺾이여 미제와 타협하는데로 나아갔으며 어떤 나라들은 제국주의를 반대한다고 큰소리만 쳤지 실지 행동에서는 몸을 사리고있었다. 이러한 때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에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시고 가장 강력하고도 사심없는 지원을 주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일찌기 항일대전의 나날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고 해방후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와 마찬가지로 중국혁명을 피로써 도와주시여 국제주의적의리의 숭고한 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우는 윁남인민에게 군사적지원을 포함한 아낌없는 지원과 련대성을 보내시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윁남인민에게 주신 군사적지원은 한전호에서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만이 줄수 있는 가장 진실하면서도 값높은것이였다. 사실 미제와 항시적으로 맞서고있는 우리 나라의 형편에서 다른 나라에 군사적지원을 준다는것은 간단한것이 아니였다. 더우기 1960년대로 말하면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의 정세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에로 치닫고있던 때였다. 경제국방의 병진로선에 따라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고있던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때문에 다른 나라에 군사적지원을 주는것은 비상한 각오를 가지지 않고서는 쉽게 결심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을 단순히 그들자신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주의진영의 안전과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그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는것을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로, 의무로 여기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걸쳐 윁남인민의 투쟁을 군사적으로 지원할데 대한 당과 공화국정부의 확고한 립장을 명백히 밝히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성명을 통하여 윁남인민의 투쟁을 견결히 지지하고 무기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물질적 및 정신적원조를 주며 그들이 요구하는 경우 어느때든지 지원병을 파견하겠다는것을 표명하였으며 그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확대회의와 최고인민회의 결정을 통하여 이 립장을 다시금 천명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은 윁남에 대한 미제의 침략을 자신에 대한 침략으로 인정하며 윁남인민의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인정하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공동의 원쑤 미제를 반대하여 더욱 견결히 투쟁할것이며 윁남인민을 지원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할것입니다. 우리는 윁남민주공화국정부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나 지원병을 파견하여 윁남형제들과 함께 싸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윁남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과 립장은 확고부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국제주의적립장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윁남인민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련이어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병부대를 파견하시여 이 나라의 반항공갱도공사를 해주도록 하신것도 그러한 조치들중의 하나였다. 그때 북부윁남에는 전쟁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나도록 당중앙위원회와 국방부가 들어갈만 한 갱도가 없었다. 당장 갱도를 건설하자고 하여도 기술자가 없었고 공사에 필요한 기계설비와 자재도 부족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윁남의 호지명주석은 해당 부문 일군들을 우리 나라에 파견하여 갱도를 건설하여줄것을 요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요청을 즉시에 수락하시고 윁남에 반항공갱도를 건설해주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윁남에 선발대를 파견하시여 현지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으며 공사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들을 전량 보장해주시였다. 또한 갱도건설을 맡아할 지휘부편성문제와 수송문제, 통신보장문제와 생활조직문제를 비롯하여 갱도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고 현지에 도착한 우리 공병부대 군인들은 남방의 무더위속에서 굳은 암질을 까내야 하는 불리한 작업조건에서도 공사를 힘있게 추진시켜 짧은 기간에 견고한 지하갱도들을 건설해주었다. 이 지하갱도들은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공군부대를 윁남전선에 파견하는 강력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당시 윁남은 고사화력은 강하였지만 공군무력은 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공중우세를 떠들며 돌아치는 미제의 공중비적들때문에 몹시 애를 먹고있었다. 그러던중 윁남정부는 위대한 수령님께 비행사들을 보내주실것을 정식으로 제기하여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윁남에 공군지원병을 보낼데 대한 문제를 론의하여오신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제기를 기꺼이 받아들이시였다. 그리하여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조선인민군 어느 한 비행부대 군인들을 윁남에 공군지원병으로 보낼데 대한 조치를 취하게 되였다. 이렇듯 윁남인민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적지원조치를 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어느날 몸소 윁남전선에 파견되는 군인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에게 윁남인민을 지원하러 가는것이 가지는 정치군사적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나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과 싸워이긴 영웅적조선인민군답게 싸움에서 누구보다도 용감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전술연구를 잘하며 비행기에 숙련하기 위한 훈련을 빨리 할데 대한 문제, 비행기정비를 잘하며 윁남인민들과의 관계를 잘 가질데 대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앞으로 제기될수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어 열대지방의 날씨에 군인들의 입맛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걱정하시며 식량과 부식물문제에 이르기까지 헤아려주시였다.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를 다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어버이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윁남전선에 파견된 영용한 인민군비행사들은 그이께서 제시하여주신 주체전법과 대담하고 기묘한 전술로 수적, 기술적우세를 자랑하는 미제의 공중비적들을 수세에 몰아넣었다. 적비행사들은 자기들을 수세에 몰아넣은 비행사들이 다름아닌 조선인민군 비행사들이라는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비행기확성기에서 조선말만 나오면 황급히 꽁무니를 빼군 하였다고 한다. 1967년 5월 20일에 윁남의 수도 하노이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은 그 대표적전투들중의 하나였다. 이날 미제는 은밀한 방법으로 32대의 비행기를 증원하여 하노이에 달려들려고 하였다. 그 시각 하노이에서 약 80km 떨어진 비행장에 있던 인민군공군부대에서는 8대의 비행기를 출격시켰다. 이렇게 되여 하노이의 서쪽상공에서는 32대의 적기와 8대의 인민군비행기사이에 치렬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력량상대비는 4 : 1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용감한 비행사들은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적들에게 드세찬 불벼락을 안겨 적기 12대를 격추하고 1대를 격상시키는 커다란 전과를 이룩하였다. 이 전과를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축하문을 보내주시고 그들을 새로운 위훈에로 고무추동하시였다. 후날 윁남의 호지명주석은 인민군비행사들을 찾아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조선의 비행사들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미국놈들 비행기때문에 기를 펴지 못했을것이다. 당신들이 온 다음부터 마음이 놓인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윁남인민에게 주신 군사적지원은 이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기간 수많은 군수물자들을 무상으로 보내주시였으며 우리 나라를 찾아온 윁남군사대표단을 여러차례나 만나시여 그들에게 윁남전선에서 적용하여야 할 전략전술과 전법도 가르쳐주시였다. 또 어느해인가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윁남의 대표단을 접견하시여 적들과의 싸움에서 위훈을 세웠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훈장을 수여하도록 하시였으며 대표단성원들에게 은정어린 선물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윁남인민에게 주신 지원의 손길은 이처럼 뜨겁고도 진실한것이였다. 3
꾸바인민의 승리에서 고무를 얻은 베네수엘라와 꼴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졌으며 이것은 미제의 《고요한 뒤동산》으로, 《세습령지》로 알려져있던 이 지역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꾸바혁명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불안을 느낀 미제는 꾸바공화국을 요람기에 교살하려고 악랄하게 날뛰였다. 1961년 4월 수천여명의 고용병들을 쁠라야히론에 상륙시켜 이 나라에 대한 무력간섭을 감행한 미제는 이듬해 10월에는 꾸바에 설치하고있던 로케트기지가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고 걸고들면서 꾸바공화국의 해상을 봉쇄하는 까리브해위기를 조성하였다. 미제는 꾸바의 주변과 까리브해지역에 대규모의 무력을 집결시키고 꾸바령토상에 있는 관따나모해군기지에 새로운 증원부대를 파견하였으며 미국본토와 세계 여러 지역에 주둔하고있는 미륙해공군부대들에도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갈것을 명령하였다. 꾸바인민앞에는 일대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으며 꾸바혁명을 보위하는것은 1960년대 반제반미투쟁의 초점의 하나로 되였다. 이러한 때 일찌기 꾸바혁명의 첫 시기부터 이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여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미제와 직접 맞서 어려운 싸움을 벌리고있는 꾸바인민들에게 사심없는 정치군사적지원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꾸바혁명을 보위하는것은 사회주의진영나라들과 라틴아메리카인민들의 신성한 국제주의적의무입니다. 사회주의나라들은 형제적꾸바인민의 혁명위업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꾸바혁명을 보위하며 꾸바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을 적극 지원하여야 할것입니다.》 까리브해위기가 조성되자 미제의 군사적압력에 겁을 먹은 현대수정주의자들은 꾸바에서 로케트무기를 철수한다는 결정을 채택하였으며 꾸바땅에 들어와 그 결과를 검색하겠다는 미제의 파렴치한 요구도 제멋대로 승인하는 비굴한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미제를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게 하였으며 정세의 긴장성을 더욱 격화시켰다. 계급적원칙과 의리도, 체면마저 다 줴버린 현대수정주의자들의 행위는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무렵 조선에서는 꾸바혁명을 보위하는 국제적인 투쟁을 광범히 벌릴것을 호소하는 공화국정부성명이 울려나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꾸바혁명을 보위하고 꾸바인민의 반미투쟁을 적극 지원할 우리 인민의 원칙적립장을 밝히도록 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여러 계기를 통하여 꾸바인민의 투쟁을 지지성원하는 우리 인민의 확고한 립장을 거듭 천명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공화국의 각종 출판물들에 《싸우는 꾸바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꾸바에 대한 미제의 야만적침략행위를 규탄한다》, 《미제침략자들은 꾸바에서 피묻은 손을 떼라》 등의 제목으로 꾸바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조선인민의 원칙적립장을 밝힌 글들이 집중편집되였다. 한편 꾸바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평양시군중대회를 비롯한 각종 집회들도 련이어 열리였다. 이러한 현실들을 목격하면서 꾸바인민을 비롯한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진정한 국제주의적의리란 과연 어떤것인가에 대하여 심장으로 절감하였다. 우리 인민의 변함없는 국제주의적립장에 대하여 천명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꾸바인민의 반미투쟁을 피로써 도와주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견결한 립장을 실천적행동으로 보여주도록 하시였다. 미제의 오만무례한 책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꾸바정부는 사회주의나라들에 군사적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꾸바의 요청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나라들에서는 핵전쟁공포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당장 전쟁이 터질것만 같이 생각하면서 식량을 저축한다, 전략물자를 준비한다 하면서 소동을 벌리였고 꾸바에 주재하고있던 많은 외교관들은 슬금슬금 보따리를 싸가지고 《고향방문》이요, 《병치료》요 하면서 가족들을 본국으로 빼돌리고있었다. 그러나 꾸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부성원들은 류다른 전보지시를 받았다. 전보지시의 내용인즉 이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표부의 대사관원들이 전투에 참가할 준비가 되여있다는 의사를 주재국 당 및 해당 기관에 표명하고 유사시에 동원될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며 류학생들은 민병대전투준비에 직접 참가할데 대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가 깃들어있는 전보지시를 받아안고 우리 나라 대표부성원들과 가정부인들은 물론 꾸바에 가서 공부하고있던 류학생들까지도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갔다. 이 사실에 접한 꾸바인민들은 《가장 어려울 때 생사고락을 함께 하자고 하는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고 하면서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격히 변화되는 꾸바정세에 대처하여 군사적지원을 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선에서 싸우든 꾸바에서 싸우든 미제와 싸우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시면서 지원군을 준비시킬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고 필요한 전략물자들을 마련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해당 부문에서는 필요한 대책들이 세워지고 일단 유사시 꾸바인민을 지원할 만단의 준비가 갖추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까리브해위기의 준엄한 시기 전기간 꾸바인민과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 그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꾸바대사를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이때의 일을 회고하시면서 그때 우리는 며칠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였다고, 그것은 미제의 침략책동에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미제가 너무 증오스러워 격분을 참을수 없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꾸바대사는 국제주의적의무를 그토록 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풍모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면서 그이께 《귀국인민들은 사실상 우리 인민에게 로케트무기만큼 위력한 원조를 주었습니다. 우리 인민들에 대한 귀국인민들의 지지성원은 정신적인 <로케트무기>와 같습니다.》라고 진정에 넘쳐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꾸바인민에게 주신 지원과 련대성은 까리브해위기때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까리브해위기이후에도 악랄하게 감행되는 미제의 반꾸바책동으로부터 꾸바혁명을 보위하기 위한 원칙적립장을 계속 철저히 견지하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체52(1963)년 10월 어느날에는 해당 부문 책임일군들에게 꾸바가 혁명의 기치를 계속 높이 들고나가는 이상 무조건 그들을 지지할데 대한 변함없는 립장에 대하여 언명하시였고 주체55(1966)년 여름에는 꾸바에 대사로 파견되여가는 일군에게 꾸바에서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대사이하 류학생들까지 다 총을 메고 지원병으로 싸울 각오를 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꾸바주재 우리 나라 대사가 조국에 왔을 때에도 대표부성원들이 꾸바의 해당 기관과의 련계밑에 군사훈련을 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아주 훌륭하다고, 일단 전쟁이 터지면 꾸바인민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대표부 전체 가족들에게도 훈련을 잘 주는것이 좋겠다고, 그들을 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잘 준비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또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에 남아있는 꾸바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가족들로부터 꾸바에 가서 싸우게 해달라는 요구가 제기되였을 때에는 그들을 꾸바에 전부 보내도록 하시여 미제를 반대하여 일떠선 꾸바인민들을 크게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와 직접 맞서싸우는 꾸바인민에게 막대한 량의 군사적원조도 주시였다. 미국의 코앞에서 항시적인 침략의 위협을 받고있는 꾸바에 있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것은 군사적원조였다. 그러나 그때 그 어느 나라도 이 나라에 군사적원조를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주는 경우에도 여러가지 부대조건을 내걸면서 진정으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꾸바인민의 이러한 고충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꾸바혁명이 승리한 직후부터 수많은 군사적원조를 주시였으며 그들이 요구하는것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다 해결해주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 꾸바당과 정부가 민병대조직에 필요한 무기를 보내줄것을 요청하였을 때에는 수많은 무기를 보내주시여 민간무력강화를 위한 사업도 적극 도와주시였다. 하기에 꾸바혁명의 지도자 피델 까스뜨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기회에 진행된 평양시군중대회에서 한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 나라에 사심없는 군사적지원을 주신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시하였다. 이것은 가장 엄혹했던 시기 멀리 대양건너 조선에서 와닿았던 련대성의 손길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정의 분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심없는 지지와 성원은 비단 윁남과 꾸바인민만이 받아안은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미니까, 캄보쟈, 탄자니아를 비롯하여 제국주의의 지배와 예속, 침략과 략탈을 반대하여 싸우는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의 투쟁도 적극 지지성원해주심으로써 반제자주위업수행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은 숭고한 국제주의자의 귀감이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