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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사적도발책동에 단호한 징벌을
그러나 투철한 자주정신과 강철의 의지,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도발행위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였다. 하여 침략자들의 모든 도발책동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높이 추켜드신 선군의 총대앞에서 여지없이 분쇄되였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1960년대에 벌어진 반미대결전에서도 련전련승의 개가를 올리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푸에블로》호사건은 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중의 하나였다. 주체57(1968)년 1월 21일 조국의 바다를 경각성있게 지키고있던 인민군해군전파탐지기초소들에서는 조선동해의 마양도해상에서 정체불명의 선박을 발견하였다. 이 정체모를 선박은 22일과 23일 새벽에도 려도근방에서 발견되였다. 곧 정체불명의 배를 나포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명령이 해군사령부에 하달되고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있던 해군어뢰정과 경비함들이 비행대의 엄호하에 긴급출동하였다. 영용한 인민군해군함선들은 쏜살같이 접근해들어가면서 배의 국적을 밝히라고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배는 《수로측량선》이라고 하면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인민군해군함선들의 맹렬한 추격에 바빠맞은 침범자들은 기관총까지 쏘아대면서 발악하였다. 선군령장의 품속에서 일당백의 용사들로 자라난 인민군해병들은 강력한 화력으로 침범자들의 저항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단호한 행동으로 배에 뛰여올라 저항하는자들을 제끼고 80여명을 포로하였다. 《수로측량선》이라고 하던 배는 현대적인 전파탐지기구와 각종 감시기구를 비롯한 최신기술기재로 장비된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였다. 정탐과 적대행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1 000여t급의 무장간첩선에는 함장을 비롯하여 총 80여명이 타고있었다. 간첩무리들은 미제의 전쟁괴수들로부터 정탐명령을 받고 공화국령해깊이 들어와 인민군대의 레이다망배치상태와 해군함정들의 기동상태, 항구수용능력 등을 정탐하면서 원산앞바다에까지 기여들었다가 결국 포로의 신세가 되였던것이다. 나포된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는 원산항에 끌려오게 되였다. 《푸에블로》호의 나포는 주권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응당한 자주권의 행사였으며 민족적존엄과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의 자위적조치였다. 이것이 《푸에블로》호사건의 진상이다.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하여 나포되였다는 소식은 세계를 충격과 경탄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꾸바와 중국, 윁남과 캄보쟈, 알제리와 레바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통신, 신문, 방송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미제의 오만무례한 날강도적인 행위를 준렬히 규탄하였으며 조선인민군의 자위적조치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그러나 조선반도를 불안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 대양을 제 집마냥 돌아쳐도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미국의 함선을 자그마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나포하였으니 《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과연 가만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세계의 이목이 조선으로 집중되였다. 아니나다를가 미제는 강도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미제는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무장간첩선과 그 승무원들을 석방하도록 모든 《외교적경로》를 통하여 《압력》을 가하되 그것이 실패하면 《군사적압력》을 가할데 대한 모의를 벌려놓았다. 미제는 파렴치하게도 《푸에블로》호가 공해에 있었다고 허위보도를 날리고 그에 대한 나포는 《국제법위반》이기때문에 조선측이 《사죄》하고 승무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떠벌이였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내세워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압력을 가하도록 청탁외교도 벌려놓았다. 이와 함께 《사건》을 유엔에 《제소》하는 연극까지 놀면서 어떻게 하나 저들이 감행한 죄행을 가리우고 합리화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을 지니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미제의 기도와 사태발전의 전도를 환히 꿰뚫어보시고 새 전쟁도발에 미쳐날뛰는 미제에게 다시한번 된매를 안기기 위한 방략을 짜시면서 먼저 《푸에블로》호사건의 진상을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일대 정치공세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공화국의 해당 기관에서는 간첩들에 대한 심문자료와 그들의 자백서, 《푸에블로》호에서 압수한 함선위치 일일기록부와 감시기록부, 항해보고, 항해도 등 간첩활동을 실증하는 일련의 물질적증거자료들과 극비 또는 비밀문건들, 각종 기록들과 사진들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푸에블로》호사건의 진상은 그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였다. 결국 《공해상에 있었다.》느니, 《어떠한 범죄행위도 감행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미제의 생억지와 기만적인 궤변은 여지없이 짓부셔지고말았다. 한편 공화국정부는 주체57(1968)년 1월 27일 성명을 발표하여 감히 그 누구를 위협해보려는 미제의 책동을 강력히 규탄하고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우리의 원칙적이고도 단호한 립장을 엄숙히 천명하였다. 막다른 궁지에 빠진 미제는 침략자, 전쟁광신자로서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으면서 최후발악하기 시작하였다. 미제는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조치》로 우리의 항구를 《포격》하고 《봉쇄》하겠다느니, 원산을 공격하고 그 배를 빼앗아가겠다느니 하면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요크타운》호, 《레인져》호를 비롯한 20여척의 대기동함선집단을 조선동해에로 내몰았으며 일본에 있던 2개의 비행대대를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본국에서 1만 4 600명의 예비역공군과 해군항공대, 지원부대의 소집을 명령하고 해군예비대의 퇴역을 중지시켰으며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 일본《자위대》에는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하였다. 방수포를 벗긴 미제침략군의 포들이 공화국을 향하여 포신을 쳐들고 비행기, 땅크들이 발동을 걸었으며 대기동함대가 조선동해로 점점 조여들고있었다. 조선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초긴장상태가 조성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에서는 세계를 진감시키는 폭탄선언이 울려나왔다. 백두의 천출명장이시며 희세의 선군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단호하고도 견결한 립장을 엄숙히 천명하시였던것이다. 주체57(1968)년 2월 8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정규적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강화발전된 때로부터 2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을 경축하는 성대한 연회가 있었다. 나라의 정세가 그토록 긴장한 속에서 이날을 성대히 기념할수 있게 된데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사실 해당 부문 일군들은 미제가 수많은 침략무력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발광적으로 책동하고있는데 대처하여 초긴장상태에서 사업하다보니 기념행사준비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어느날 일군들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그들에게 정세가 긴장한것만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번 기념일을 뜻깊게 맞이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이 지금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보복》이요, 전면전쟁이요 하면서 요란스럽게 떠들고있지만 적들의 책동에 대한 우리의 립장은 단호합니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은 제국주의아성이며 침략과 략탈의 원흉인 미제의 위협공갈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것이며 놈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입니다, 우리의 혁명무력을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 때로부터 20돐이 되는 날을 축포를 쏘면서 성대히 경축하는것은 바로 이런 혁명적인 자세와 립장을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 보여주는것으로 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무력이 몰려들고있는 때에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기념행사를 예정대로, 그것도 성대히 진행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는 수령님의 강인담대한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커다란 흥분과 환희에 휩싸였다. 미제가 제아무리 기고만장해서 날치여도 승리는 우리의것이구나 하는 신심과 용기가 저도 모르게 솟구쳐올랐다. 이렇게 되여 뜻깊은 이날을 맞으며 여러가지의 경축행사들이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던것이다. 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시며 연회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지난 기간 조선인민군이 이룩한 찬란한 업적과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기 위한 투쟁에서 거둔 자랑찬 성과를 개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침범사건의 침략적본성을 까밝히시고나서 이렇게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입니다.》 자신만만한 투지와 단호한 결심이 담긴 이 말씀, 그것은 언제나 군사를 국사중의 국사로 내세우시고 나라의 국방력을 백방으로 다져오신 위대한 선군령장만이 내리실수 있는 엄숙한 선언이였다.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면서 연회참가자들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경제국방의 병진로선이 얼마나 정당한 로선인가 하는것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돌이켜보면 경제국방의 병진로선을 관철하는 과정에 나라의 국방력은 비할바없이 장성강화되였다. 전군간부화, 전군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속에 전군은 일당백강군으로 자라났으며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방침이 훌륭히 관철되여 전연이나 후방 할것없이 온 나라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변되였다. 이 경이적인 현실마다에 국방력강화를 위해 바치신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심혈이 력력히 어리여있었다. 흘러온 나날을 되새겨보는 참가자들의 가슴마다에 숭엄한 감정이 차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모든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언제나 동원된 태세에서 자기 초소를 굳건히 지키며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나라의 군사적위력을 더욱 강화하고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출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수령님께서 《푸에블로》호사건이 일어난 후 열리였던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당중앙위원회 부장, 내각 상, 도당책임비서협의회에서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저지시킬데 대하여 가르쳐주신데 이어 또다시 전체 군대와 인민을 미제와의 대결전에로 불러일으키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연회에서 《푸에블로》호를 나포할 때 선참으로 적함에 뛰여올라 함장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대여 그자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해병도 만나주시였다. 해군복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일당백해병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 장하오! 수고했소.》라고 몇번이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해군이 바다를 잘 지켜야 하오! 조국의 바다를 부탁하오!》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축배까지 부어주시였다. 크나큰 격정의 분위기속에서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연회가 끝나게 되였을 때 밤하늘가로는 가지각색의 축포가 터져올랐다. 이 시각 축포를 바라보는 군인들과 인민들의 가슴마다에는 전승의 축포가 오르던 그날 밤처럼 승리의 기쁨과 환희가 한껏 넘치고있었으니 그것은 미제와의 새로운 대결전에서도 영예의 승리자가 될 무적필승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호소에 군대와 인민은 산악같이 일떠섰다. 인민군군인들은 서리발총창을 비껴들고 진지를 차지하였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근로자들은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더욱 튼튼히 틀어쥐고 생산과 건설에서 날에날마다 새로운 기적과 혁신을 이룩하였다. 이무렵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국청년총동원대회와 조선인민군 붉은기중대 군인열성자대회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을 소집하시고 인민군부대들과 로농적위대구분대들을 현지지도하시며 인민군군인들과 청년들, 전체 인민을 반미대결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 나날 인민군대의 전투준비상태를 료해하시면서 유사시 각 군종, 병종부대들이 자기의 전투임무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대상들을 어떻게 타격해야 하는가 등 실지 전투에서 필요한 문제들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가 무모하게 전쟁을 도발한다면 무자비하게 징벌할 만단의 군사정치적준비를 갖추었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당장 전쟁을 일으킬것처럼 미쳐날뛰던 미제의 기세는 서리맞은 풀잎처럼 한풀 숙어들었다. 미제를 완전히 피동에 몰아넣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당백으로 준비된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에 의거하여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사죄문을 받아냄으로써 세계의 면전에서 놈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한 새로운 작전을 펴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놈들을 또다시 조선인민앞에 무릎꿇게 하고 사죄문을 받아낼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수세에 빠진 놈들은 하는수없이 회담장에 끌려나올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미제가 당시 형편에서는 도저히 전쟁을 일으킬수 없을뿐아니라 범의 꼬리를 쥔 격이 되여 코를 꿰여 끌면 끄는대로 움직이리라는것을 명철하게 내다보시고 놈들을 회담장에 끌어내다가 포탄보다 더 강한 타격을 안길것을 결심하신것이였다. 일군들은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인 통찰력, 림기응변의 지략에 다시금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미제는 우리가 요구하는 담판장에 끌려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강력한 군사적대응조치에 기가 죽어 담판장에 끌려나온 미제와의 회담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적립장도 뚜렷이 밝혀주시였을뿐아니라 포로된 함장을 비롯한 장교들의 자백서를 받아내여 세계에 공개할데 대한 문제, 기자회견을 잘 조직하여 놈들의 범죄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까밝히면서 대적언론전에서 련속공격, 집중포화를 들이댈데 대한 문제,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과 그 과정을 촬영한 기록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공개하여 미국대통령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도록 할데 대한 문제 등 미제로부터 사죄문을 받아내기 위한 방도들도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필승의 무기를 받아안은 우리의 해당 부문 일군들은 그이께서 안겨주신 담력과 배짱으로 회담장에 끌려나온 미제를 드세게 다불러대였다. 회담장은 말그대로 침략과 전쟁의 원흉인 미제를 단죄규탄하는 심판장과도 같았다. 어떤 군사적위협과 간교한 술책으로써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인민을 놀래울수도 건드릴수도 없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견결한 립장과 태도를 변경시킬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미제는 끝내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리도 기존관례에 구애됨이 없이 완전히 새롭게 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까지 그 어느 나라도 받아보지 못한 미제의 공식적인 사죄문을 그것도 몇몇 개별적인 범죄자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미국정부의 이름으로 된것을 받아내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함선은 몰수하고 선원들은 인계인수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추방의 방법으로 처리하도록 하시였다. 드디여 《푸에블로》호사건이 일어난지 11달만인 주체57(1968)년 12월 23일 오전 9시 판문점에서는 또 하나의 력사적장면이 펼쳐지게 되였다. 미제가 력사에서 처음으로 조선인민앞에 무릎꿇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판문점회의장의 심판대에 다시 올라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문건에 서명하게 된것이였다. 위풍당당한 공화국정부대표들의 위엄있는 시선과 국내외에서 모여온 수많은 기자들의 사진기렌즈앞에서 울상을 하고 사죄문건에 서명하는 미국정부대표의 손끝은 경련이 인듯 떨리고있었다. 그 몰골은 15년전 침략전쟁에서 참패하고 항복문건에 서명하던 패전장군 클라크의 가련한 모습을 그대로 련상케 하였다. 미제가 서명한 사죄문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앞 … 미국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할것을 확고히 담보하는바입니다.…》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무장간첩선의 선원들을 공화국경외로 추방할것을 결정하고 《푸에블로》호나포당시 조선인민군 해군의 명령에 불복하고 어리석게도 무모한 반항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선원의 시체를 미국측에 넘겨주었으며 뒤이어 82명의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추방하였다. 이로써 근 1년간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푸에블로》호사건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되였다. 미제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다시한번 보기 좋게 깨뜨려버린 이 자랑찬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위로선과 견결한 반제적립장, 탁월한 령도예술이 가져온 자랑찬 결실이였다. 력사의 그날 조선동해앞바다에서 나포된 《푸에블로》호는 지금 평양의 대동강가, 백수십년전 이 땅에 기여들었다가 물속에 수장된 미제침략선 《셔먼》호격침비가 서있는 곳에 못박혀있다. 2
이날에도 집무실에서 일을 보시다가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저택에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축원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온 몇몇 일군들과 함께 소박한 점심식사를 나누실 때였다. 잠시 옆방에 나갔던 민족보위성(당시)의 책임일군이 들어오더니 수령님께 영용한 인민군비행대가 미제의 대형정찰기 《EC-121》을 격추하여 동해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는 보고를 드리는것이였다. 이 통쾌한 소식에 일군들은 속이 다 시원해지는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미제는 그 전해에 있은 《푸에블로》호사건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새해벽두부터 《종합연습》이요, 《상륙훈련》이요 하는 전쟁연습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정세를 더욱 긴장시켰으며 동해상공과 최전연일대에서 공화국에 대한 공중정탐행위를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고있었던것이다. 여기서 《주역》을 노는것이 바로 정찰기 《EC-121》이였다. 《EC-121》기로 말하면 전파탐지기들과 각종 수신기, 자료송신기 등 현대적인 전자정탐설비들을 종합적으로 갖추고있는 미제의 대형정찰기로서 조종사들외에 기재조종과 정탐자료의 종합분석, 자료전송 등 정탐활동에 종사하는 탑승인원이 30여명이나 되는 전문간첩비행기였다. 일본에 기지를 두고있는 이 간첩비행기는 조선동해상에서 정탐비행을 하면서 공화국의 령공을 침범하는 범죄행위를 무시로 감행하군 하였다. 그래서 벼르고있었는데 뜻깊은 날에 인민군비행대가 통쾌한 명중타격으로 단숨에 소멸해버렸던것이다. 최신전자기술을 믿고 정탐행위를 일삼고있던 미제의 대형정찰기를 즉시 포착하고 단숨에 격추소멸한것은 참으로 가슴후련한 쾌거였다. 한동안 기쁨에 넘쳐 흥성이던 일군들은 문득 《푸에블로》호사건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벌어진 간첩비행기격추사건으로 또다시 첨예화될 정세로 하여 마음이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그때였다. 수령님께서 방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왜 갑자기 말들이 없는가, 제 집에 들어온 도적을 때려잡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자위적조치인데 놀라울것이 있는가, 내가 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우리는 한평생 맞받아나가는 전술을 써왔다고 하시면서 미친개에게는 몽둥이찜질이 제일이다, 침략자들에게는 불벼락을 안겨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찜질이 제일! 침략자들에게는 불벼락을! 무비의 담력과 불같은 복수의 선언에 천하가 드르릉 울리는듯 하였다.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지니신 철석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에 다시금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수령님의 철석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은 대형정찰기를 단방에 쏴떨군 인민군장병들에게 보내주신 축하문에도 력력히 어려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축하문에서 신성한 우리 조국의 령공에 침입한 도발자들을 단호히 징벌한 인민군군인들의 영웅적위훈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앞으로도 원쑤들의 그 어떠한 침략책동과 도발행동에 대하여서도 무자비하게 짓부심으로써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며 자기들에게 맡겨진 혁명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 구절구절마다 백두령장의 기상과 담력이 뜨겁게 맥박치는 축하문이였다. 미제의 대형정찰기를 쏴떨군 비행사에게는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거듭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 뜨거운 은정을 받아안은 인민군군인들의 가슴은 미제와의 또 한차례의 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수령님에 대한 경모의 정으로 차넘치였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전부터 공화국의 자주권을 심히 유린하며 오만하게도 정탐행위를 일삼고있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단호히 징벌할것을 결심하고계시였다. 그러던 주체58(1969)년 3월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한 일군에게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를 격추할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 《EC-121》대형간첩비행기를 비행기로 잡을데 대한 방도를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작전전술적방침과 전투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시였다. 그이의 명령을 받은 인민군비행기들은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의 정찰비행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1969년 4월 15일 인민군대가 명절기분에 해이되여있으리라고 타산한 미제는 이날 점심때를 리용하여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공화국령공에 침입시켜 정탐행위를 감행하게 하였다. 출격태세에 있던 인민군비행사들은 즉시에 리륙하여 오후 1시 40분에 적기를 포착하였다. 영용한 인민군비행사들은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법대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은 단방에 박산났으며 거기에 타고있던 30여명의 간첩들은 황천객이 되였다. 이것은 현대공중전에서 우리 식 공중전법의 위대한 승리였으며 선군으로 다져진 인민군대의 위력을 과시한 통쾌한 승리였다. 이처럼 미제의 대형정찰비행기를 단방에 쏴떨굴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님께서는 그 공로와 영예를 고스란히 인민군군인들에게 돌려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고무된 인민군비행사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군군인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원쑤들의 그 어떠한 침략책동과 도발행동에 대하여서도 무자비하게 짓부셔버릴 결의에 충만되였다. 미제의 대형정찰기 《EC-121》이 격추되였다는 소식에 세계는 죽가마 끓어번지듯 하였다. 세계의 통신보도수단들은 《조선중앙통신 미군대형정찰기격추에 관해 보도하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군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언명》, 《날아가는 <푸에블로>호가 격추되였다.》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전파를 날렸으며 AFP통신은 《미해군정보수집선 <푸에블로>호가 북조선에 나포된지 불과 15개월만에 미대형정찰기 1대가 북조선의 포화에 격추되였다고 알려져 닉슨행정부는 중대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였다.》고 보도하였다. 세계면전에서 또다시 참패를 당한 미제는 늘 써오던 상투적수법대로 저들의 간첩비행기가 《공해상》에서 《합법적인 정찰활동》에 종사하다가 격추당하였다고 하면서 오히려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인민군대의 자위적조치를 두고 《침략행위》라고 떠들어댔다. 미국의 전쟁광신자들은 미국본토에 있는 륙해공군과 극동에 있는 저들의 침략무력에 《경계태세》를 갖출것을 명령하였으며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 전체 부대들에 《비상경계령》을 내리였다. 또한 미제7함대소속 항공모함들과 숱한 함선들로 《기동함대》를 편성하여 조선동해에 들이밀었다. 조선반도의 정세는 극도로 긴장해졌다. 전쟁의 위험이 더욱더 짙어가는 가운데 또다시 세계의 이목은 조선으로 집중되였다. 《EC-121》기격추사건이 있은 다음날인 주체58(1969)년 4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내각, 조선인민군 책임일군들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을 철저히 섬멸할것이라고 단호히 언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광란적인 전쟁소동에 대처하여 군사지휘관회의를 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참가한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이나 위협공갈에도 절대로 무릎을 꿇을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태여날 때부터 자유를 가지는데 무엇때문에 우리가 적들의 위협공갈앞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뿐아니라 적들이 위협공갈하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것입니다. 만일 적들이 우리를 건드리며 접어든다면 우리는 용감히 맞받아나가 싸울것입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적과는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요인을 천명하고나시여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조국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혁명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울 각오를 굳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회의참가자들로 하여금 드높은 투쟁결의로 피가 끓게 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싸우겠습니다!》라는 웨침과 장내가 떠나갈듯 한 만세의 환호로 수령님의 말씀에 화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세충천한 군사지휘관들의 결의에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적들이 덤벼들면 단매에 쳐부실수 있도록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출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한편 공화국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전쟁소동에 매달리는 미제의 침략성을 세계앞에 고발하고 조선인민의 철저한 반미립장을 엄숙히 선언하였다. 전체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부대, 구분대들에서는 모든 군인들이 미제와 결사전을 벌릴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며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한손에는 낫과 마치, 펜을, 다른 한손에는 총을 들고 산악처럼 일떠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정치외교적공세도 단호히 짓부셔버리시였다. 이 시기 미제는 어느 한 나라에 우리 공화국이 《사과》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며 격추된 저들 비행기의 수색작전에 협조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미제의 사촉을 받은 이 나라의 고위인물이 우리 나라에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 나라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보내는 편지를 내놓으면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즉석에서 이 황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리시고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사건을 구실로 《보복》으로 나오거나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도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고 엄숙히 언명하시였다. 그 어떤 군사적위협이나 정치외교적공세앞에서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는 수령님의 강인담대한 기상과 드센 배짱, 그이의 선군령도따라 한사람같이 일떠선 천만군민의 기상앞에 미제는 전률하였다. 결국 앞으로의 사태발전은 우리 공화국의 《반응여하》에 달려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던 미제는 슬그머니 저들의 침략무력을 걷어가지고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이렇듯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을 계기로 《강대국》으로 자처하던 미제의 취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제는 여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아야 하겠으나 《EC-121》기격추사건이후인 1969년 8월에도 군용비행기 《OH-23G》를 군사분계선너머 우리측 지역에 침입시키는 등 군사적도발을 계속 감행하였다. 하지만 도발자들의 운명이 달리는 될수 없었다. 선군령장의 슬하에서 무적의 일당백용사들로 자라난 인민군군인들이 도발자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안기였던것이다. 그 타격은 가장 무자비하고도 단호한 그리고 가장 철저한 타격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