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군길에 꽃펴난 사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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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혁명전우라 하시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길은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 헌신의 자욱으로 수놓아진 길이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시절의 혁명전우들인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믿음은 각별한것이였다.

주체52(196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조종의 산으로 일러온 백두산, 그 웅장함과 장엄함으로 하여 보는 사람마다 숭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백두산은 항일혁명의 영웅적인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혁명의 성산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에 오르시여 소백산, 포태산, 베개봉을 비롯하여 백두산주변일대를 부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제와의 혈전을 벌리시던 나날들과 백두산시절의 전우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백두산시절의 전우들, 그들은 항일전의 나날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총대로 받들어온 총대동지들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전의 그때처럼 변함없이 선군혁명대오의 맨 앞장에 서있는 항일혁명투사들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자신의 오랜 혁명전우로 내세우시며 그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주체50(1961)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외국대표단 성원들과 함께 어느 한 공군부대를 돌아보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수령님을 모신 일행이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수령님을 식당에 안내해드린 공군사령관은 식당안으로 들어가시는 그이께 방해될가봐 슬그머니 한쪽옆으로 물러섰다.

그런데 식당안으로 들어가시려던 수령님께서 뒤에 서있는 그에게 다정하신 음성으로 《공군사령관동무는 다른데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머뭇거리는 그를 어서 들어가자고 하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끄시였다.

외국손님들의 눈길은 한결같이 수령님의 손길에 이끌려 식당안으로 들어서는 그에게로 집중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외국손님들에게 그를 가리키시며 《공군사령관동무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싸운 혁명전우입니다.》라고 감회깊은 어조로 소개하시였다.

오래전부터 함께 싸운 혁명전우!

순간 그 군사지휘관은 항일혁명투사들에 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가를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돌이켜보면 망국노의 아들로 이역땅에서 태여난 그가 처음 혁명의 길에 나섰을 때 그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지어 총을 쏘면 총알이 깍지채로 나가는것으로 알 정도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혁명의 원리와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시고 기묘한 전법과 전술도 하나하나 배워주시여 그를 견결한 혁명가로,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키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성장한 그에게 해방후 보안간부훈련소의 책임적인 사업을,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조선인민군 사단장, 군단장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또 전후에는 어느 한 군사학교의 교장, 공군사령관의 중요한 직책도 맡아 수행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던 무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이러한 투사였기에 그는 항일전의 자세그대로 혁명의 군복을 입고 나라의 군력강화를 위한 사업에 자신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바쳐오고있었다.

그럴수록 전사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더해만졌다.

수령님께서는 이날도 사랑하는 전사를 더욱 내세우고 위해주고싶으시여 모처럼 마련된 점심식사시간에 그렇듯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또다시 부어주시는것이였다.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 몸둘바를 모르고 서있는 투사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주신 수령님께서는 둘러앉는 외국손님들에게 그가 항일무장투쟁시기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물론 전후에도 계속 군대에서 일하다보니 언제 한번 마음놓고 식사하지 못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웅심깊으신 그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있는 말씀이였다.

사실 한평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수령님께서는 어느 하루도 편히 쉬신적이 없으시였으며 때식마저 잊고 일하신적이 수없이 많으시였다. 하건만 그이께서는 오히려 투사의 사업과 생활에서 있을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념려하시면서 점심식사라도 함께 나누시려 마음쓰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밥상우의 맛있는 음식들을 손수 골라집으시여 앞그릇에 놓아주시면서 《오늘은 사양하지 말고 많이 드시오.》라고 사랑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한없이 자애롭고 따사로운 사랑에 수많은 격전장을 헤쳐오며 산전수전 다 겪은 투사는 감격에 목이 메였고 그자리에 참석한 외국손님들은 한동안 음식을 들지 못한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감동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님들은 그날 자기들이 목격한것이 투사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는 하많은 사실들중의 하나에 불과한것이라고는 알지 못하였다.

이날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그 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사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였으며 그가 한생을 군복을 입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가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인민군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52(1963)년 8월 어느날 민족보위성(당시)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던 한 항일혁명투사는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수령님을 만나뵈올 때마다 주로 군사사업과 관련된 말씀을 받군 하던 그는 이날도 그이께서 인민군대의 전투준비와 전투력강화에서 급히 풀어야 할 무슨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찾으실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이날 전연에서 만나보신 한 지휘관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의 건강문제를 두고 몹시 걱정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의 뜻밖의 말씀에 책임일군은 몸둘바를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걱정하시는 그 지휘관으로 말하면 어제날 수령님을 따라서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어왔고 전쟁시기에는 련합부대를 이끌고 미제를 무찌르는 싸움에서 위훈을 세워 수령님으로부터 당과 혁명에 충실한 동무라는 높은 평가를 받은 항일투사였다.

그러한 그가 건강때문에 애를 먹고있다는것은 책임일군도 모르는바가 아니였지만 군의국에만 방임하다보니 그의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전연부대를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그를 잠간 만나보시고도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대뜸 헤아리시고 이처럼 걱정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일군에게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던 사람들가운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 같다고 하시면서 항일투사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일상적으로 알아보고 건강관리를 잘하도록 통제도 하고 해당한 대책도 세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는듯 말씀을 멈추시고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그 지휘관의 건강이 원만하지 못한것만큼 그를 기본부대에 그냥 있게 하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기 힘들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를 평양에 있는 군관학교 교장으로 올려오는것이 좋겠다고, 그러면 자신께서도 자주 나가볼수 있고 그가 치료받기에도 편리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동지에 대한 한없이 고결하고 뜨거운 사랑이 어린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면서 일군은 그이의 품속에 안겨 혁명하는 전사된 긍지와 행복을 다시한번 뜨겁게 절감하였다.

이렇게 되여 전연에서 사업하던 그 투사는 평양으로 올라오게 되였으며 수령님의 다심하신 보살피심속에 병치료를 받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건강관리를 잘할데 대하여 말씀을 주시였을뿐아니라 경치좋은 휴양소들에도 그를 매해 선참으로 보내주시였다.

투사의 건강은 점차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투사는 병이 갑자기 악화되여 생사기로에 놓이게 되였다. 세월따라 더해만 가는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고저 일에 무리하다보니 호전되여가던 병세가 심해졌던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선뜻 믿어지지 않으시여 다시한번 그의 병상태를 물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밤알처럼 딴딴하고 팔팔하던 동무가 어떻게 되여 그렇게 허약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2∼3년전에도 그 동무의 건강이 념려되여 휴식하라고 하였는데 그는 그냥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국가적으로 유능한 의사들을 불러 치료대를 뭇고 그 동무를 꼭 살려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곧 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전투가 낮과 밤이 따로없이 계속되였다.

치료전투가 벌어지던 나날 수령님께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병원에 전화를 거시여 환자의 치료정형을 료해하시고 그를 어떻게 해서든지 꼭 살려낼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 사랑, 그 은정속에 치료전투의 나날이 흘러 열하루되는 날 아침 환자는 드디여 의식을 회복하였다.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그가 다시 소생하여 새날의 아침해빛을 받게 된것은 결코 현대의학이 가져다준 혜택이 아니였다.

그것은 한 전사의 생명을 위해 국가적인 조치를 취해주시고 끊임없이 보살펴주신 수령님의 열화와 같은 사랑이 그대로 불사약이 되여 가져온 기적이였다.

수령님께서 투사의 건강을 위해 베푸신 사랑은 이뿐이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회복을 위해 귀중한 약재도 보내주시였으며 치료사업을 더 잘해서 하루빨리 그를 본래의 상태대로 회복시킬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실로 그이의 사랑은 한량없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투사의 건강을 수시로 알아보시고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는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집중치료를 진행하게 하시고는 그 경과가 좋아진데 대하여 기뻐하시면서 치료사업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제대문제가 상정되였을 때에는 비록 그가 몸이 불편하지만 쉽게 군복을 벗지 않을것이라고, 그는 우리가 그처럼 념원하는 조국통일위업도 수행하지 못하고 군복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본인의 제의대로 군복을 벗기지 말고 병치료를 계속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하여 그는 70고령의 나이에까지 군복을 입고 영광스러운 선군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푸신 이 사랑은 비단 그만이 아닌 항일혁명투사모두가 받아안은 사랑이였으며 믿음이였다.

정녕 그 사랑, 그 믿음은 항일혁명투사들로 하여금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동지의 영원한 모습으로 억세게 서있게 한 힘의 원천이고 자양분이였다. 2

 

병사들을 위해

바치신 하루

최전연고지들과 산중의 외진초소, 바람세찬 바다가초소들과 비행구분대들로 끊임없이 이어진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령도의 길에는 군인들에 대한 그이의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화원마냥 피여났다. 그 이야기들은 그대로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였다.

이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에는 병사들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들도 아름답게 수놓아져있다.

주체54(1965)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벽이슬내린 길을 헤치시여 어느 한 산골초소를 찾아주시였다.

군인들의 근무수행정형을 일일이 료해하신 수령님께서는 이날 부업포전실태에 대해서도 알아보시였다.

그 과정에 강건너편 돌각담밭에 심은 강냉이가 잘되지 않는다는것과 거기에 남새를 심어도 잘 안된다는것을 헤아리신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군인들이 철따라 싱싱한 남새를 못 먹지 않겠느냐고 심려어린 말씀을 하시면서 남새농사를 잘 지을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밭에 있는 돌을 다 추어내다가 뚝을 쌓고 물도랑도 모가 나게 잘 쳐놓으며 밭에 개바닥흙이나 부식토를 듬뿍이 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다락밭을 만들고 거름을 주는 방법까지 세세히 일깨워주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집짐승기르기와 산을 효과적으로 리용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좌우편에 있는 골짜기들을 유심히 살펴보시며 그이께서는 골안의 깊이에 대하여 자세히 물으시고나서 소를 놓아기르기 좋은 곳이라고, 봄에 송아지를 가져다가 저 골안에 넣으면 가을에 살이 찐 소를 내올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지형지세 하나를 보시고도 전사들의 식생활을 풍족하게 할수 있는 방도를 생각하신것이였다.

이른새벽 두메산골초소에 찾아오시여 군인들의 생활에 대하여 그토록 마음쓰시는 수령님의 사랑에 군인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가신 후 초소로는 자동차, 양수기를 비롯한 설비들이 도착하였다. 그이께서 초소군인들의 부업농사를 위해 보내주신 설비들이였다.

이렇듯 뜨거운 사랑이 있어 그 이듬해 초소의 부업농사에서는 례년에 없었던 풍작이 이룩되였다. 수령님의 말씀대로 심은 갖가지 남새들이 철따라 싱싱하게 자랐으며 골안에서는 피둥피둥 살찐 소들이 풀을 뜯었다. 농사가 얼마나 잘 되였는지 그전엔 산너머 먼곳에서 배추 한포기라도 날라와야 먹을수 있었던 초소군인들이 먹고도 남아서 갖가지 남새와 고기를 듬뿍듬뿍 실어 다른 단위에 보낼 정도였다.

후날 또다시 이곳 초소를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남새농사와 축산에서 풍작을 이루었다는것을 아시고는 못내 기뻐하시며 군인들을 치하하시였다.

초소군인들의 살림살이 구석구석까지 하나하나 헤아려주시고 그 개선방향과 필요한 대책까지 다 세워주시고도 모든 성과를 군인들에게 돌려주시는 수령님, 정녕 그이는 군인들의 친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을 위해서라면 천금과도 같은 시간도 아낌이 없이 바치시였다.

주체52(1963)년 2월에 있은 일이다.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덮인 산과 골짜기들을 바라보시다가 구분대정치일군에게 산에 노루랑 많다는데 군인들에게 노루고기를 먹여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노루고기를 먹여보지 못하였다는 지휘관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노루를 보내줄테니 군인들에게 먹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떠나신 다음날, 구분대에는 여러마리의 노루가 도착하였다.

수령님께서 군인들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 다음날로 노루를 보내주시였던것이다. 그 노루들이 그이께서 몸소 흰눈덮인 수림속을 헤치시며 사냥하신것들이라는것을 알게 된 군인들은 모두가 눈시울이 뜨거워와 감격에 목이 메였다.

사랑의 노루고기를 받아안은 온 구분대는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그런데 구분대에서는 노루고기료리가 처음 해보는것인지라 노루고기를 푹 삶아 국을 끓여먹게 되였다. 구수한 국물에 고기를 듬뿍듬뿍 놓아주고 양념장까지 곁들이니 그것은 그것대로 별맛이여서 모든 군인들이 곱배기를 하였다.

하지만 군인들은 이로 하여 수령님께서 또다시 마음쓰게 되실줄은 미처 몰랐다.

이틀후 또다시 구분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루고기국을 끓여먹었다는것을 아시고는 웃으시며 구분대 정치일군에게 말씀하시였다.

《노루고기를 돼지고기처럼 국을 끓여먹었단 말입니까. 노루고기를 그렇게 가공해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습니다. 불고기를 해먹어야 제격입니다.》

그러시면서 노루고기를 칼로 잘게잘게 저며서 사탕가루, 식초, 기타 양념감에 재웠다가 잉걸불에 구워먹든가 볶아먹어야 한다고 료리방법까지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지휘관들이 어머니다운 심정으로 군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식생활을 높일데 대한 뜨거운 당부의 말씀을 하시고나서 구분대를 떠나시였다.

그 다음날 수령님께서는 구분대에 또다시 여러 마리의 노루를 보내주시였다. 이 노루들 역시 그이께서 눈덮인 산발을 타시면서 손수 잡으신것이1였다.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에게 노루고기를 제맛이 나게 먹이시기 위해 다시금 그토록 귀중한 시간을 일부러 내시여 노루사냥을 하시였던것이다.

력사에 알려진 위인들의 생애를 더듬어보면 그들이 휴식이나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하였다는 기록은 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산발을 타며 짐승들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다.

노루고기에 대한 이 이야기는 군인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진 수령님의 선군길에 피여난 또 하나의 사랑의 전설로 오늘도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속에 널리 전하여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군인들에게 기울이신 사랑의 이야기들가운데는 주체55(1966)년 3월 어느 일요일에 있은 잊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이날 일요일의 휴식도 미루시고 한 고사포병중대를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전투근무수행정형과 살림살이실태, 군인들의 가정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병실과 식당, 지어 길옆에 세운 구호판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살펴보시였으며 생활을 잘 꾸리였다고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병실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더니 《경사가 너무 급하구만. 중대장동무, 전사들이 여기를 하루에 몇번이나 오르내리오?》라고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중대장은 인츰 말씀을 드리지 못하였다. 구분대의 식당, 세면장, 창고 그리고 남새밭이 다 그 아래에 있어 전사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그 급한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하였던것이다. 경사가 급하다보니 중대장도 《전투》경보를 받고 여기를 단숨에 올리뛰자면 숨이 턱에 닿군 했었다. 그렇지만 중대장은 그것을 고쳐볼 생각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늘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군인들도, 그들의 생활을 책임진 지휘관도 생각지 못한것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번에 알아보시고 그것을 고치도록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좁고 경사가 급한 계단은 넓고 완만한 계단으로 고쳐지게 되였다.

새로 고쳐진 계단, 그것은 단순한 계단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의 결정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의 생활뿐아니라 그들의 가정에 대하여서도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초소에 내세운 인민군후방가족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내세워주고싶으신것이 어버이수령님의 심정이였다.

주체58(1969)년 가을 어느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가정을 찾으시였을 때는 하늘중천에 떠있던 가을해가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 저녁무렵이였다.

천만뜻밖에도 수령님을 뵈옵게 된 그 집 어머니는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러는 어머니의 어깨를 다정히 잡아일으키신 수령님께서는 집식구는 몇이며 누구누구 있는가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어머니의 대답에서 아들 셋을 군대에 내보낸 후방가족이라는것을 아신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가 이 집에 들리기를 잘하였습니다. 인민군후방가족의 집에 와서 후방가족어머니를 만나보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하시면서 정겨운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어찌나 정답고 허물없이 대해주시는지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아버지앞에서 이야기하는 딸자식처럼 아들들이 모두 군사복무를 잘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올리였다.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장한 아들들을 두어 정말 기쁘겠다고, 예로부터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들들을 키워 전장에 내보내는것을 큰 자랑으로 여겨왔고 그 아들들이 전장에서 잘 싸우고있다는 소식을 받을 때 제일 기뻐했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우리 어머니들이 지니고있는 고상한 미덕입니다.》라는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우리는 아들들을 잘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보낸 이런 어머니들을 사회적으로 존경하고 내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후방가족의 살림살이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비가 새지 않는가, 불이 잘 드는가, 이부자리는 다 있는가에 대하여서도 일일이 알아보시였으며 집울타리와 집짐승기르기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마치 세간난 딸네 집을 처음 찾아온 친정부모처럼 그이의 한없이 다심하고 살뜰한 사랑은 끝이 있을상싶지 않았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후방가족들의 살림이 넉넉해야 조국방선이 든든해집니다.》라고 하시며 앞으로 인민군대후방가족들을 잘 도와주는 사회적기풍을 세워 후방가족들이 사소한 불편도 없이 살아나가게 하여야 한다고 거듭 이르신 다음에야 다시금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길은 이렇듯 병사들을 위해 바치신 사랑과 헌신의 련속이였으니 그이께서는 선군령도의 전기간을 하루와 같이 병사들을 위한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가시였다. 3

 

혁명가유자녀들을

선군위업의 계승자로

총대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였다. 그 길은 온갖 도전과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준엄하고도 가렬한 투쟁의 길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선군혁명투사들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격전장에도 주저없이 뛰여들었으며 자신의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였다.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의리와 뜨거운 인간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떠나간 전사들이 남긴 후대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그들을 선군위업의 계승자들로 억세게 키워주시였다.

1960년대로 말하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사변들이 많이 일어난 시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복잡다단한 정세속에서 정치와 군사, 경제와 외교 등 나라일의 전반사업을 지도하시면서 그야말로 불철주야로 사업하고계시였다. 그러다보니 그이께 있어서 시간은 천금과도 같이 귀중한것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가유자녀들을 위해서라면 그토록 귀중한 시간도 아낌없이 내시여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부어주시였으며 그들이 부모들처럼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선군혁명투사로 자라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49(1960)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아이들이 생활하는 강당과 침실들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새벽녘에 찬 기운이 돌 때 증기를 더 잘 보내주라고 이르시였다.

수령님께서 식당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학생들의 밥상을 살피시던 수령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식사를 하던 초급반학생들중 한 학생이 고기를 먹지 않는것을 알아보시였던것이다. 그 학생인즉 고기를 먹지 못하는 학생이였다.

사연을 아시게 되신 수령님께서는 잠시 서운하신 표정을 지으시며 서계시다가 곁에 있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에게 고추장을 주도록 합시다. 그러면 고기를 못 먹는 학생들에게도 좋을게요. 조선사람들은 옛날부터 고추장을 먹는 습관이 있어서 그것을 먹으면 밥맛도 나고 아이들의 영양도 좋아질거요. 아이들이 먹기 좋게 달게 만들어서 줍시다.

그러시면서 학생들의 식생활을 다양하게 해줄데 대하여 타일러주시였다.

자기 자식을 키우는 친어머니인들 어찌 이처럼 살뜰하고 세심할수 있으랴.

원아들의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세심히 보살펴주시는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마다에는 저도모르게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주체51(1962)년 1월 3일, 이날도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원아들을 만나보시려 만경대혁명학원을 또다시 찾아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름름하게 자라난 학생들의 대견한 모습에서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학원책임일군들에게 학생들을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킬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학생들이 학원을 졸업한 다음 인민군대에 복무하겠다고 하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치하하시면서 학생들이 학원을 졸업하고 인민군대의 어떤 병종에도 복무할수 있게 군사기초지식을 잘 배워줄데 대하여,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정치과목과 군사과목을 잘 배합하여 배워주어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킬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교육강령을 잘 작성하며 필요되는 군사교원들은 인민군대에서 선발하는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실로 혁명가유자녀들에 대한 그이의 웅심깊은 사랑이 어린 말씀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학원에서 진행해야 할 훈련의 내용들과 훈련에서 지켜야 할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뿐만아니라 그이께서는 학생들이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는 문제, 1211고지와 매봉, 351고지와 월비산, 금강산을 돌아보게 하는 문제, 학생들이 야외훈련이나 혁명전적지답사를 하면서 항일유격대원들처럼 생활하게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참으로 이날에 하신 수령님의 말씀은 혁명가유자녀들을 쇠소리나는 쟁쟁한 선군투사들로 준비시키는데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학원에 나오시여 유자녀들의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창립 20돐을 맞이할 때인 주체56(1967)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몸소 학원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직원, 학생들과 졸업생들을 만나주시였다.

수령님께서 해방직후와 전쟁시기, 전후시기에 만경대혁명학원에 데려다 공부시키시여 나라의 역군으로 키워주신 유자녀들이 모두 그이의 부르심을 받고 한자리에 모이였다.

온 장내가 끓어넘치는 흥분과 감격에 휩싸인 가운데 참가자들을 축하해주신 수령님께서는 학원을 졸업하고 당 및 정권기관과 인민경제 각 부문, 특히 인민군대에서 사업하고있는 동무들과 만나니 흥분된 감정을 금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유자녀들이 대를 이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갈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뜻을 잊지 말고 인민군대를 비롯하여 당 및 정권기관, 경제기관과 근로단체들에서 골간이 되고 핵심이 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하겠습니다.》

혁명가유자녀들이 선군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핵심이 되고 기둥이 되길 바라시는 숭고한 뜻이 담긴 말씀이였다.

혁명가유자녀들에 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기대는 이렇듯 큰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유자녀들과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원아들이 준비한 예술공연도 보아주시였으며 친히 유자녀들과 뜻깊은 저녁식사도 나누시였다.

정녕 혁명가유자녀들의 마음속에 그늘 한점 있을세라 그토록 마음쓰시는 수령님의 사랑은 한량없는것이였다.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모든 혁명가유자녀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골간으로 키워준 자양분이였다.

주체51(1962)년 4월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창건 30돐기념 열병식훈련이 진행되고있었다. 여기에는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과 함께 다른 혁명학원원아들도 참가하고있었다.

어느날 저녁 훈련에 참가한 원아들은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게 되였다.

수령님께서 원아들이 입은 새옷을 보아주시기 위해 친히 그들을 부르신것이였다. 그 옷으로 말하면 그이께서 군복처럼 만들어 원아들에게 입히도록 하신 옷이였다.

도착한 원아들을 반가이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옷차림을 일일이 살펴보시였다.

그런데 문득 한 원아가 어려움도 잊고 모자를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의 모자와 같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허물없이 말씀드리는것이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모자를 몸소 써보시더니 여기에다 쇠줄만 넣으면 되겠다고 다정히 말씀하시고나서 원아들의 옷에 묻은 실밥도 뜯어주시고 혁띠도 바로잡아주시고 뒤에 생긴 주름도 곱게 잡아주시였다.

한 일군에게 원아들이 옷입는 법을 알도록 배워줄데 대하여 가르치시고나서 수령님께서는 식생활은 어떠한가, 배고프지 않는가, 앓는 원아들은 없는가, 찬물을 먹는 원아들이 없는가 등 원아들의 가정과 생활형편에 대해서도 세심히 알아보시였다.

친부모의 심정인들 이보다 더 다심할수 있으랴.

더해만지는 사랑속에 시간은 퍼그나 흘렀건만 원아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들이 떠나갈 시각이 되자 수령님께서는 원아들에게 훈련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라고 다시금 고무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원아들에게 돌려주시는 수령님의 사랑은 이뿐이 아니였다.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혁명학원을 찾으시여서는 원아들의 식탁우에 놓여있는 수저와 간장병에 대해서도 마음쓰시고 월중 식사계획표도 보아주시였으며 원아들이 준비한 소박한 예술공연도 보아주시고 일군들에게 원아들을 부모있는 아이들보다 더 잘 키울데 대한 사랑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혁명가유자녀들을 선군혁명위업의 계승자로 키우시기 위해 기울이신 사랑은 끝이 없었다.

주체56(1967)년 10월에 하신 연설 《혁명가유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뜻을 이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와 주체57(1968)년 9월에 하신 연설을 비롯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혁명가유자녀들을 혁명의 골간, 핵심으로 키울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그 방향과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혁명가유자녀들을 한사람한사람 품을 들이시여 유능한 일군들로 키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속에 유능한 해군지휘관으로 성장한 한 유자녀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주체58(1969)년 12월말 인민군대의 한 해군지휘관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로 말하면 수령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시키시여 어엿한 해군지휘관으로 키워주신 혁명가유자녀였다.

수령님께서 그를 부르신것은 해군무력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게 된 그에게 강령적지침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며칠전 그가 새로운 직무에서 사업하게 되였을 때에는 전화로 앞으로의 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교시를 주시더니 오늘은 그를 만나시여 세심한 지도를 주시려는것이였다.

그를 만나시여 사업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신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59(1970)년 2월말 그를 또다시 만나시여 해군의 중요성과 해군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면서 언제나 당을 믿고 확고한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그 어떤 난관도 뚫고나갈데 대하여, 혁명가유자녀답게 일을 잘할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다.

주체59(1970)년 5월 중순 수령님께서는 동해안에 위치하고있는 해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였는데 이때도 그를 데리고다니시면서 그가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자질과 풍모를 갖추도록 하나하나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고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에는 친히 그를 자신곁에 앉히시고 군항건설과 함선건조, 훈련방향과 훈련전법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은 그가 일을 잘하도록 시야를 틔워주고 키워주시기 위해 그 바쁘신 속에서도 여러날동안이나 그를 데리고다니신것이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사업을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가유자녀들에게 기울이신 사랑과 심혈은 이렇듯 뜨겁고도 숭고한것이였다.

그 사랑속에서 혁명가유자녀들모두는 선군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억세게 자라났으며 그들은 오늘 당과 군대, 국가의 핵심골간이 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령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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