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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자위적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시여
1. 군력강화에 선차적인 힘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조국의 륭성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휘황한 설계도인 7개년계획의 웅대한 강령을 펼쳐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힘차게 불러일으키시였다. 7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승리한 사회주의제도에 의거하여 전면적기술개건과 문화혁명을 수행하며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것이였다. 온 나라 전체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이 벅찬 투쟁에 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열의는 주체50(1961)년 9월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를 계기로 비상히 높아졌으며 도처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이 련이어 창조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미제와 그 주구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정세는 매우 복잡해지고있었다. 당시 미제는 《평화전략》을 내걸고 큰 나라들과는 될수록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대결을 피하면서 작고 분렬된 나라들과 자주적으로 나아가려는 나라들을 무력으로 압살하려고 획책하고있었다. 그 대표적실례가 바로 꾸바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간섭이였다. 꾸바혁명이 승리한 첫 시기부터 집요하게 반꾸바책동을 벌려온 미제는 1962년 10월 22일 꾸바인민이 자위적무장력을 강화해나가는것을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걸고들면서 《일체 공격용군사장비》들이 꾸바로 수송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꾸바로 가는 모든 종류의 선박들을 엄격히 검색》할것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5개 사단의 무력과 183척의 군함이 동원되고 1 190대의 비행기가 출동태세를 갖추었으며 세계 여러 지역에 주둔하고있는 미륙해공군부대들도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갔다. 미제의 이러한 로골적이며 강도적인 반꾸바봉쇄책동으로 하여 세계를 뒤흔든 까리브해위기가 조성되게 되였으며 꾸바의 정세는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시각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비겁하게도 미제의 압력에 뒤걸음치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였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미제의 요구대로 꾸바땅에 있던 군사장비들을 황급히 철수하고 공해상에서 선박들을 검사하겠다는 미제의 오만한 요구까지 허용하였을뿐아니라 지어 꾸바의 령토와 령해, 령공에 대한 미국의 감시를 《허용》함으로써 이 나라의 자주권까지 침해하였다. 이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은 국방에서 기본은 어디까지나 자체의 힘이라는것을 명백히 깨닫게 되였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대미투항주의로 하여 기고만장해진 미제는 그후 침략전쟁의 예봉을 아시아에 돌리였다. 그 주되는 공격대상은 우리 공화국이였다. 미제는 신형무기로 장비된 4개의 전투집단을 새로 남조선에 투입하여 군사분계선가까이에 배치하였으며 매일과 같이 대규모적인 군사연습소동을 벌려놓았다. 한편 미제의 지시에 따라 남조선괴뢰들은 40여만명의 청장년들을 괴뢰군에 강제징집하고 수백만명의 예비군을 편성하려고 책동하였다. 하여 우리 나라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주체51(1962)년 12월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경제건설을 다그치면서 나라의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혁명적인 대책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회의에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이 바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까리브해위기가 있은 다음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킨다는것은 말그대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어느 하나도 약화시키지 않고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하여 국방건설의 비중을 경제건설에 못지 않게 높이고 두 분야에 다같이 힘을 돌림으로써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여 조국을 완벽하게 보위하며 이와 동시에 경제건설도 계속 높은 속도로 밀고나간다는것이다. 사실상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다같이 틀어쥐고 병진시켜나간다는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였다. 더우기 령토나 인구수로 볼 때 그리 크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두 전선을 다같이 전진시킨다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으며 보통의 상식으로써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을 건드리는자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며 무장한 원쑤와는 무장으로 맞서싸워야 한다는 불변의 신념과 의지, 억센 담력과 배짱을 지니시고 국사중의 제일국사인 군사를 강화하여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과 위협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고수발전시키기 위하여 경제와 국방건설병진방침을 제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선군사상을 구현하시여 제시하신 경제와 국방건설병진방침은 사회주의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결합문제를 국방중시의 원칙에서 완벽하게 해결한 독창적인 방침이였다. 오랜 기간의 투쟁과정에 일관하게 선군의 원칙을 견지해오신 수령님께서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옳게 결합시키는것을 사회주의건설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본문제의 하나로 보시였다. 이로부터 그이께서는 1960년대초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국방중시의 원칙을 더욱 철저히 구현하시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키는것을 전략적방침으로 제시하심으로써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결합시키는 문제를 가장 완벽하게 해결하신것이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은 또한 혁명의 근본리익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국방력을 마련하여 혁명의 전취물을 굳건히 보위하는 문제와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적으로 추진시키는 문제를 선군의 기치밑에 다같이 풀어나갈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1960년대초 미제의 핵공갈과 군사적위협에 공포를 느끼고 투항의 길로 줄달음치고있던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조선로동당의 자위적국방건설을 한사코 반대하여나섰다. 사회주의나라들에서 국방력을 강화하면 국제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제국주의자들에게 전쟁도발의 구실을 준다는것이였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대국주의적압력에 겁을 먹은 일부 나라 지도자들은 자위의 원칙을 내세우면 유사시에 대국의 방조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국방에서 자위라는 말조차 쓰기를 꺼려하고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대수정주의자들과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압력과 방해책동을 단호히 배격하고 국사중의 국사인 군사를 중시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시면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두 전선을 다같이 전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여 사회주의조국의 수호문제와 사회주의건설의 승리적전진문제를 선군의 기치밑에 다같이 풀어나갈수 있게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총대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을 구현하시여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주요내용들을 밝히시였으며 그후 전군간부화, 전군현대화,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를 조선로동당의 군사로선으로 정립하시였다. 전군을 간부화한다는것은 인민군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일단 유사시에 그들모두가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게 한다는것이며 전군을 현대화한다는것은 우리 나라의 실정과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로 무장시키고 모든 군인들이 최신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현대적인 군사과학과 기술을 충분히 소유하도록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군을 간부화하고 현대화할데 대하여 밝혀주심으로써 선군혁명의 핵심력량이며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대오로 더욱 강화하고 그 위력을 더 높이 발휘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전민무장화를 실현한다는것은 전체 인민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킨 기초우에서 그들을 총대로 무장시키고 군사훈련을 강화하며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조국을 보위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하며 일단 유사시에는 생산도 계속하고 전투도 잘할수 있도록 준비시킨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국을 요새화한다는것은 나라의 모든 지역에 철벽같은 방위시설을 구축하고 적들의 어떠한 형태의 불의의 타격으로부터도 군대와 인민, 전투기술기재와 생산시설들을 믿음직하게 보호하며 침략자들이 어느때 어디로 쳐들어와도 일격에 쳐물리칠수 있도록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것을 의미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민무장화와 전국의 요새화를 실현할데 대하여 밝혀주심으로써 전체 인민을 무장시켜 일단 유사시에 생산을 계속하면서 전투도 할수 있도록 준비시킬수 있게 되였으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나갈수 있게 되였다. 또한 적들의 타격으로부터 나라의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믿음직하게 보위하며 온 나라를 적들의 그 어떤 침략에도 끄떡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변시켜나갈수 있는 지도적지침이 마련되게 되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당의 군사로선은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사회주의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보위하고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성과적으로 관철해나갈수 있게 하는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자위적군사로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군사로선의 주요내용을 밝히시였을뿐아니라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전투적구호도 제시하시였다. 이 구호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 선군의 기치밑에 총대를 더욱 튼튼히 틀어쥐고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게 한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구호였으며 그들을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추동한 전투적호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있는 미제의 침략책동과 세계평화교란책동에 대처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키는것을 조선로동당의 로선으로 선포하시였다. 1960년대 중엽에 이르러 미제는 사회주의나라들을 반대하는 침략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였으며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고 세계도처에서 평화를 교란하고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수정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사회주의나라들은 단합된 력량으로 제국주의자들과 맞서싸우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시기인 주체55(1966)년 10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키는것을 조선로동당의 전략적로선으로 제시하시였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제시하신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의 정당성을 확증하신데 기초하여 그것을 구체화하여 재천명하신 혁명적로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을 선포하시면서 그것을 틀어쥐고나가는데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립장에 대하여서도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쟁이 일어날 위험성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경제건설을 계속 힘있게 전개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며 사회주의에로의 전진을 촉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경험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설사 전쟁이 일어나 혹심한 파괴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당이 있고 정권이 있고 인민이 있고 령토가 있는 이상 또다시 새 생활을 창조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전쟁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제건설을 적극 추진시키는 한편 국방력을 계속 강화하여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며 조국과 인민을 보위할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여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고 우리가 준비된 태세에 있을 때에만 원쑤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며 설사 적들이 분별없이 모험을 감행한다고 하더라도 제때에 섬멸적인 타격을 주어 침략자들을 격파할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이 원칙적립장은 전쟁이 일어나면 다 파괴될것이라고 하여 국방건설에만 치우치고 경제건설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거나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혀 경제건설에만 치우치고 국방건설을 강화하지 않는 경향을 다같이 극복하고 정세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건설을 계속 추진시키면서 이와 병행하여 국방건설을 더욱 강력히 진행할수 있게 한 혁명적립장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을 제시하심으로써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면서 자위적국방력을 더욱 강화하여 선군의 위력으로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조국과 민족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할수 있는 가장 옳바른 길이 밝혀지게 되였다. 2
이무렵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었다. 인민군대에서는 불패의 전투력을 다지기 위한 전투정치훈련이 더한층 강화되고있었고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은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경제, 국방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있었다. 군대와 인민의 앙양된 열의를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키고 나라의 국방력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자면 무엇보다도 선군혁명의 주력군이며 핵심적력량인 인민군대를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대덕산초소를 찾으신것은 인민군군인들에게 전투준비와 전투력강화를 위한 투쟁에서 높이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강령과 지도적지침을 안겨주시기 위해서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한 초소의 군인들은 너무도 크나큰 기쁨과 감격에 넘쳐 모두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과 이야기도 나누시고 병실과 식당을 잘 꾸린데 대한 과분한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였으며 군인들이 만든 음식도 몸소 보아주시고 식찬의 보장문제에 대하여서까지 일일이 헤아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군인들이 정치상학을 받고있는 교양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전사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신 수령님께서는 한 분대장에게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을 어떻게 관철할 결심인가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음에 분대장은 전투정치훈련을 잘해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 어떤 어려운 정황속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전투임무뿐아니라 한등급이상 높은 직무도 담당할수 있게 준비될 결심이라고 대답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훈련이 기본이라고 하시면서 군사기능과 기술을 련마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특히 각종 조건에서도 명중할수 있는 높은 사격술을 소유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이날 감시소에 오르시여 적정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중기좌지에 이르시여 친히 기관총을 잡으시고 사격자세도 취해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진지벽에 뿌리내린 한포기의 잔디도, 주위에 서있는 한그루의 나무도 무심히 스쳐보내지 않으시고 사수의 사격동작에 지장이 없겠는가, 사격할 때 앞에 장애되는것은 없겠는가 하는것들을 세심히 살펴보시고나서 진지를 잘 꾸린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 진지위장을 잘하며 나무를 심을 때 고려하여야 할 점들과 현대전에 적응한 전투조직에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군인들에게 무적필승의 날개를 달아주시려 불면불휴의 심혈을 바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날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과업들에 대하여 언급하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대에서 들고나가야 할 구호는 일당백입니다. 옛날부터 싸움 잘하는 장수를 <일당백>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하나가 백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군인들이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전투훈련과 방어공사를 잘하면 일당백이 될수 있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순간 지휘관들은 격동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의 전투준비와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높이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강령을 제시하신것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지휘관들은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병력수를 늘여야만 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고 또 그것을 당연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적중한 방도가 아니였다. 그것은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새로운 로선에 따라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동시에 밀고나가야 하는 조건에서 무작정 병력수를 늘이는 방법으로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사업을 진행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 방도를 모색하고있던중이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당백》이라는 한마디의 표현으로 그 뚜렷한 목표와 방도를 제시하여주시였으니 지휘관들은 마치 막혔던 물목이 일시에 터져나가는것과 같은 심정들이였다. 지휘관들의 눈앞에는 항일대전의 나날 항일유격대원들을 무적필승의 용사들로 키워주시던 수령님의 숭엄한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께서는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혹은 행군길에서 대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시였다. …옛날 전설에는 장수가 되려면 깊은 명산에 가서 투지와 군사지식을 소유하는 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군사기술을 심오하게 연구함과 동시에 자기 신체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엄동설한에 눈우에서 자며 투지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무인지경 산림속에서 혼자 살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이겨내면 그는 훌륭한 장수가 된다는것입니다. 이와 같이 옛날 장수들이 도를 닦는것과 같은 일이 우리에게는 그리 신비스러운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항일유격대원들은 옛날 장수들이 도를 닦는것과는 비할수도 없는 매우 간고한 환경속에서 수령님의 탁월한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몸과 의지를 단련하였으며 전투기능과 군사기술을 련마하였다. 그리하여 언제나 정치사상적, 전략전술적우세로써 수적, 기술적우세를 떠들던 일제를 타승하였다. 《일당백》, 들을수록 천백배의 힘이 용솟음치게 하는 이 전투적구호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시기 얻으신 이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내놓으신 구호였다. 여기에는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모든 군인들을 하나가 백을 당할수 있는 무적의 싸움군으로 키우고 인민군대의 간부화와 현대화를 훌륭히 실현함으로써 나라의 자위적방위력을 굳건히 다져나갈데 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이며 독창적인 군사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연초소를 찾으시여 인민군대앞에 새로운 전투적구호를 제시해주신 소식은 조국방선을 지켜선 전체 인민군장병들을 전투력강화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전군이 전투력강화를 위한 투쟁으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가운데 《일당백》구호의 거대한 생활력은 모든 인민군부대들에서 힘있게 과시되였으며 전군의 전투준비와 전투력강화에서는 일대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여 《일당백》의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신것은 조선인민군의 강화발전력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질 획기적인 사변이였다. 3
인들의 전투기능과 자질을 높이는것으로 보고 전투훈련만을 중시하였다. 특히 현대수정주의자들은 군대의 위력과 특성을 현대적무장장비의 수준에서만 찾으면서 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것을 홀시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계건군사에서 굳어진 이 관례와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그릇된 견해를 단호히 배격하시고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사업을 전군을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내세우시였다. 인민군대는 우리 민족의 완전한 해방을 위하여, 근로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을 자신의 본신임무로 삼고있는 혁명군대이다. 인민군대가 이러한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자면 정치사상사업을 강화하여 군인들을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그들이 높은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지니도록 하여야 하였다. 인민군대의 불패의 위력 역시 정치사상사업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는것이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인민군대의 불패의 위력은 바로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되고 근로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조직된 진정한 인민의 군대라는데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사상의식의 결정적역할에 관한 주체의 혁명원리와 인민군대의 사명과 임무, 그 불패의 위력의 원천에 대한 가장 옳바른 견해로부터 출발하시여 정치사상사업을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내세우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하여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백절불굴의 정신을 소유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군인들의 계급적각성을 높이는데 커다란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그무렵 인민군대의 구성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있었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도 어느덧 세월은 10년가까이 흘러 착취와 압박도 받아보지 못하고 전쟁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또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지휘관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환경은 그에 맞게 정치사상사업에서 전환을 가져올것을 요구하고있었다. 그러나 당시 인민군대내 정치사상사업에서는 적지 않은 결함들과 편향들이 나타나고있었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젊은 병사들이 자기의 부모들이 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고있었고 짚신이 무엇인지, 머슴군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있었다. 그때 인민군대에서는 어떤 소대장이 정치상학제강에 있는 소작료라는 말을 몰라서 군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중대장에게 물어서야 대답을 준 일도 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내 정치사상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52(1963)년 2월 인민군부대 정치부련대장이상 간부들 및 현지 당, 정권기관 일군들앞에서 하신 연설 《우리의 인민군대는 로동계급의 군대, 혁명의 군대이다. 계급적정치교양사업을 계속 강화하여야 한다》에서 군사훈련도 중요하고 방어공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군인들속에서 정치사업을 강화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만일 군인들의 계급적각성이 무디여 그들이 지주도 모르고 자본가도 모르고 제국주의가 얼마나 악독한지도 모르게 된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혁명군대로서 적을 반대하여 잘 싸울수 없습니다. 동무들은 그저 방선이나 지키고 특별한 사고나 없으면 된다고 생각할것이 아니라 모든 군인들을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하며 모두가 다 적을 알고 그를 증오하며 높은 계급적각성을 가지고 적과 싸울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군인들과 근로자들속에서 계급교양을 더욱 강화할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시고나서 계급교양사업의 본질과 기본목적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군인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제국주의와 지주, 자본가를 미워하는 사상을 키우고 자본주의사회의 부패성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철저히 인식시키며 그들을 사회주의적애국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등 계급교양의 기본내용과 계급교양에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원칙, 계급교양에서 문학예술의 역할을 높일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 군대내에서 당사업을 강화하며 주민들과의 련계를 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상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 강령적지침을 제시해주시고도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과 관련한 여러차례의 교시를 거듭 주시였다. 김일성군사대학(당시) 제7기 졸업식에 참석하시여서는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것을 인민군대를 혁명군대로 만드는데서 나서는 선차적인 과업으로 제시하시였으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에서는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우월성에 대하여 밝혀주시면서 군인들을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들로 육성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3(1964)년 4월 민족보위성, 집단군, 군단, 군종, 병종사령부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와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회의에서 발표하신 정부정강 등에서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여 그 실효성을 높이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출판물들의 질을 높이고 그 발행과 보급사업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개선하도록 하시였으며 군인들을 위한 출판물부수를 대폭 늘이고 인민군신문에 군인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간지를 새로 내오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군인들에 대한 영화보급체계도 바로세워주시고 군인들속에서 혁명적노래창작보급사업과 문학예술활동을 통한 교양사업도 활발히 벌리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군사물주제의 새로운 문예작품이 나오면 그것을 일일이 보아주시고 지도해주시였으며 인민군대안의 전문예술단체공연과 인민군군무자예술축전, 군무자예술공연도 몸소 보아주시면서 예술활동과 군중문화사업이 군인교양에 실질적으로 이바지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이 부르는 노래 《조선인민군가》도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지도속에서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원래 인민군대에는 《인민군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런데 해방후 창작된 이 노래는 깊이가 없고 곡이 잘 되지 못한 노래였다. 그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전에 작가, 예술인들을 부르시여 《조선인민군가》를 새롭게 창작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군가의 창작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였었다. 그에 따라 곧 군가를 창작하기 위한 군중적운동이 벌어졌으며 가요창작단에서는 창작된 노래들을 완성시켜나가고있었다. 그러던 주체55(1966)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작곡가들과 관계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혁명적이며 통속적인 노래를 많이 창작하여야 할 필요성과 가요창작에서 지켜야 할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혁명가요를 왜 좋다고 합니까? 그것은 혁명가요를 부르면 모든 곤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막 달려나갈 용기가 생기기때문입니다. 인민군가도 바로 그렇게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창작중에 있는 몇개의 곡을 록음한것을 들어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이윽고 방안에는 여러편의 군가가 차례로 울려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창문밖을 내다보시며 생각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는 인민군가의 곡은 무대용곡과 구별되여야 한다, 방금 우리가 들은 곡들은 반주와 연주형상이 무대에서 하는 식으로 되여서 그런지 모두 무대용곡같고 부르기가 힘들것 같다고 부족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작곡가들이 인민군부대에 가서 군인들과 몇달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작곡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그래야 좋은 인민군가가 나올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군인들이 부르기 쉬우면서도 무적의 힘과 멸적의 투지를 얻을수 있는 좋은 군가를 마련해주시기 위해 그처럼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바쳐가시는 그이의 숭엄한 모습을 우러르는 작곡가들과 일군들의 가슴에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세심한 지도를 주시여 마침내 멸적의 투지를 안겨주는 노래 《조선인민군가》가 훌륭히 완성되도록 하시였다. 군인들의 정치사상적준비를 위해 기울이신 수령님의 심혈은 이렇게 군가 하나에도 뜨겁게 어리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군인들의 대중적사상개조운동인 붉은기중대운동의 봉화가 전군에 타번지게 하심으로써 일당백의 군건설방침이 실속있게 관철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붉은기중대운동이 전군적인 범위에서 힘있게 벌어지는 속에서 이 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끄시기 위하여 주체57(1968)년 6월 조선인민군 붉은기중대 군인열성자대회를 소집하시고 이를 계기로 붉은기중대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도록 하시였다. 하여 붉은기중대운동은 2중, 3중붉은기중대쟁취운동으로 보다 높은 수준에서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붉은기중대운동은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서 커다란 생활력을 발휘하게 되였다. 이 운동의 불길속에서 군대안의 정치사상사업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군인들의 정치사상수준은 비상히 높아졌으며 모든 군인들이 당과 수령을 목숨으로 사수할 결사의 각오를 가진 투사들로 자라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당정치사상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끄시면서 인민군대를 당의 유일적령도에 충실한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인민군대의 사상교양사업과 당정치사업정형을 환히 꿰뚫어보신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인민군대내 사상사업에서부터 근본적전환을 가져오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이 군인들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첫째가는 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8(1969)년 10월 조선인민군 대대장, 정치부대대장, 대대사로청위원장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결론과 주체58(1969)년 11월 7일 조선인민군 집단군, 군단정치부 조직부장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을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모든 군인들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데서 나서는 사상교양의 내용과 방법, 당의 유일사상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으며 인민군대안의 모든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이 이 사업을 잘해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유일사상교양을 더욱 강화할수 있는 조건들도 충분히 보장해주도록 하시였다. 군인들의 정치상학시간도 늘이도록 하시고 인민군대안의 출판물발행 및 보급기관들과 예술단체들의 역할을 더욱 높이기 위한 대책들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사상교양사업은 정치일군들만 하고 군사지휘관들은 명령만 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하던 일군들의 그릇된 관점과 태도도 바로잡아주시고 일군들의 정치리론수준과 실무수준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강화하는 기본열쇠를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정치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강화하는데서 찾으시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이를 위하여 수령님께서는 각급 당위원회들을 튼튼히 꾸리고 집체적지도를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군대내 모든 사업에 대한 당적지도, 정치적지도를 잘할수 있게 정치기관들의 기구체계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군대안에 정연한 당정치사업체계를 세우고 정치일군대렬을 잘 꾸리며 그들의 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도록 하시였다. 정녕 군인들의 정치사상적준비를 위해 기울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혈은 끝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밑에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상사업에서는 새로운 혁명적전환이 일어나게 되였고 모든 군인들이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소유한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들로 자라나게 되였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로부터 군인들이 높은 군사기술적자질과 튼튼한 체력을 갖추는것을 《일당백》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중요한 과업의 하나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인민군대안의 모든 지휘관들을 높은 조직지휘자적능력과 자질을 소유한 유능한 군사일군들로 준비시키시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대포, 땅크, 비행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혁명적골간입니다. 전쟁에서 물론 기술의 의의를 무시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을 옳게 적용하는가 못하는가, 전쟁에서 승리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무엇보다도 의지가 강한 혁명투사들, 지휘관들에게 많이 달려있습니다. 혁명적의지가 강한 혁명투사들, 능숙한 지휘관들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소용없습니다.》 일찌기 군력강화에서 지휘관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의 중요성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인민군위원회 제2기 제2차전원회의 확대회의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지휘관들의 지휘능력을 높일데 대하여 늘 강조하군 하시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가신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의 사업정형과 그들의 군사실무적자질을 하나하나 료해하시고 그들이 높은 조직지휘자적능력과 자질을 소유하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언제인가는 한 지휘관을 자신과 함께 동행하도록 하시여 견문도 넓혀주시고 유능한 군사일군으로서의 자질과 풍모를 갖추도록 일일이 일깨워주기도 하시고 어느 한 해군부대를 찾으시여서는 필요되는 간부를 자체로 해결할수 있는 방도에 대하여 가르쳐주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들이 높은 군사기술적자질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지휘관훈련을 강화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훈련이 주체적인 전투훈련원칙에 기초하여 진행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인민군대에서는 시범상학과 방식상학, 지휘참모연습과 부대전술연습이 정상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지휘관들의 지휘능력과 수준이 현저히 높아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육성사업에도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혁명무력이 창건된 첫날부터 지휘관육성사업에 커다란 힘을 넣어오신 수령님께서는 지휘관육성사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것을 전군간부화를 성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기본방도의 하나로 보시고 군사교육기관의 사업을 개선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전군간부화가 힘있게 추진되고있는 현실은 현대전을 능숙히 지휘할수 있는 높은 능력을 가진 지휘성원들과 기술일군들을 더 많이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이 시기 인민군대에는 이미 군종, 병종, 전문병지휘관, 기술일군들을 키워내기 위한 군사교육기관들이 신설, 확장, 보강되여 정규적인 군사교육체계가 정연히 서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조건에서 교육의 질적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성군사대학(당시) 제7기 졸업식과 주체54(1965)년 1월에 소집하신 각급 군사학교교원대회를 비롯한 여러 계기에 인민군대안의 교육사업을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을 뚜렷이 밝혀주시였으며 당성이 강하고 정치리론수준이 높으며 특히 조국해방전쟁경험을 풍부히 체득하고있는 우수한 지휘관, 정치일군들을 선발하여 각급 군사학교교원대렬을 튼튼히 꾸리도록 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인민군대의 지휘관양성사업은 새로운 전환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으며 그에 따라 전군간부화를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휘관들의 군사기술적자질을 높이는것과 함께 군인들속에서 전투훈련을 강화하여 그들이 한등급 높은 전투능력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현대적군사과학과 군사기술, 강한 육체적능력은 일당백군인이 지녀야 할 필수적자질이였다. 이러한 자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오직 부단한 군사훈련과정을 통해서만 갖추어질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인민군대에서는 군사훈련이 응당한 수준에서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어떤 부대들에서는 군인들의 훈련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형식주의를 범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부대들에서는 군사복무년한이 오랜 일부 군인들이 해마다 같은 훈련이 반복된다고 하면서 훈련에 잘 참가하지 않는 편향들도 나타나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군사훈련을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과 인민군대의 무장장비에 맞게 조직진행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전법과 전술에 맞추어 진행하는 현상들도 나타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수많은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시여 군인들의 훈련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였다. 때로는 험한 비탈길을 오르내리시며 구분대의 전술훈련도 지도하시고 때로는 배에 오르시여 파도사나운 바다를 달리시며 해병들의 항해술도 보아주시였다. 그리고 어느날에는 뙤약볕아래서 포병들의 사격훈련을 지도해주시였는가 하면 또 어느날에는 아침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며 해안초소를 찾으시기도 하시였다. 주체50(1961)년 10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바다가초소를 몸소 찾으시였다. 구분대진지를 돌아보시면서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할 방도들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고 전사들과 따뜻한 담화도 나누시며 친부모도 줄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신 수령님께서는 이날 군인들의 전투준비동작도 친히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전투훈련모습을 보여드리게 된 병사들은 억제할수 없는 기쁨을 느끼면서 재빨리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여느때보다도 포의 전투준비기준시간을 3분의 1이나 앞당겨 빨리 끝냈다. 지휘관이 즉시 목표를 제시하고 사격구령을 내린 다음 련이어 복잡한 정황을 제시해주자 병사들은 번개같이 빠르면서도 기계처럼 정확하게 동작하였다. 군인들의 훈련모습을 찬찬히 눈여겨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하신 표정을 지으시며 훈련성과를 높이 치하하여주시고나서 구분대의 전투임무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포병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명중률을 높이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포탄 한발에 적함 하나씩 마사야 하오. 한발에 하나씩 말이요.》라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면서 병사들은 총탄 한발에 원쑤 한놈씩 꼭꼭 쓰러뜨린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백발백중의 명포수가 되리라는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날 밤 군인들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그이께서 서계시던 포진지의 벽에 자신들의 철석의 의지를 담아 《포탄 한발에 적함 하나씩 마사야 하오.》라고 하신 그이의 말씀을 한자한자 새겨넣었다. 그후 이곳 군인들은 수령님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고 모든 훈련을 실전과 같이 진행하여 백발백중의 명포수로, 일당백의 혁명전사들로 자라났으며 주체56(1967)년 1월 우리측 령해에 기여들었던 적《경호함 56》호를 바다깊이 수장시키는 위훈을 세웠다. 군력강화를 위한 길에 남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의 발자취는 어느 한 산중초소에도 깃들어있다. 주체51(1962)년 6월 어느날 이른새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찬이슬을 밟으시며 어느 한 초소를 찾으시였다. 경비근무를 수행하던 초병은 수령님께서 오신데 대하여 미처 중대부에 알릴 사이도 없이 초소에 다가오신 그이께 인사를 드리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초병의 인사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전투정치훈련정형에 대하여 담화하시며 내리사격, 올리사격도 해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 중대에서는 산지사격훈련을 강화하지 못하고있었다. 초병은 그이의 따뜻한 물으심에 또릿또릿한 목소리로 사실을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마지막까지 다 들으시고나서 사격훈련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극복하고 내리사격, 올리사격훈련을 강화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높은 산과 넓은 강이 있는 초소의 지리적환경에 맞게 수영훈련과 스키훈련을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의 초소를 찾아주셨다는 소식에 접한 이곳 중대군인들의 가슴은 감격과 흥분으로 들끓었다. 군력발전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군사분야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극복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 강조해오신 수령님께서 오늘은 깊은 산골초소에까지 찾아오시여 그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신것이였다. 중대의 전투정치훈련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다. 지휘관으로부터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이곳 초소의 모든 군인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전투경험을 적극 연구하고 훈련에 적용하였다. 강행군도 하였으며 험한 산악과 강, 진펄을 돌파하는 등 각이한 지형조건과 정황속에서 전투훈련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수영훈련, 스키훈련도 줄기차게 진행하였다. 이렇듯 전투력강화를 위한 혁신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을 때인 주체54(1965)년 7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이곳 초소를 찾으시여 경비근무수행정형과 군인들의 생활을 료해하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산중의 초소를 찾으신 때도 역시 이른새벽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1년후인 주체55(1966)년 8월 또다시 이곳 초소를 찾으시여 전투정치훈련상태를 료해하시고 군인들의 생활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를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던 나날 여러 병종, 전문병구분대들이 참가하는 전술연습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였다. 주체56(1967)년 6월초 어느 한 곳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보병, 포병, 전문병구분대들과 비행구분대들이 참가하는 전투사격을 배합한 구분대공격전술연습과 항공륙전대의 전술연습이 진행되였다. 인민군군인들은 오매에도 그립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연습에 참가한다는 무한한 영광을 안고 불리한 일기조건에서도 평시에 땀흘리며 련마해온 자기들의 기술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훈련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하였다. 훈련전반을 다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훈련이 교육적가치가 있게 아주 잘되였다고, 날씨가 불리하지만 군종, 병종간 협동동작이 잘되였으며 모든 훈련이 규정의 요구대로 진행되였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의 훈련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리고 경기대회형식으로 훈련을 내미는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하시면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서는 군사훈련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군들은 가슴이 후더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군사훈련을 조국해방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진행하며 그 질을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산악훈련, 야간훈련, 해안방어훈련, 대공사격훈련, 반장갑훈련 등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훈련내용과 방법도 일일이 일깨워주시였다. 뿐만아니라 그이께서는 천리방선을 지켜선 인민군군인들을 찾으시여 그들의 훈련도 보아주시고 세심한 지도도 주시였다. 이날에 있은 훈련도 그이께서 취해주신 현명한 조치에 의하여 마련된것이였다. 그런데도 수령님께서는 그 모든 성과를 군인들에게 돌려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그후 인민군대에서는 군사훈련경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전투정치훈련을 조직진행함으로써 군인들의 훈련열의는 비상히 고조되고 부대, 구분대들의 전투력은 백방으로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도록 하시는 한편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이 차지하고있는 군사진지들을 적들의 그 어떤 침공에도 끄떡없는 철벽의 요새로 꾸리도록 하기 위한 사업도 적극 다그치게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인민군대는 일단 유사시에는 전사로부터 장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는 간부군대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모든 군인들이 현대적군사과학과 군사기술을 충분히 소유하고 무쇠같은 체력을 소유한 일당백의 싸움군들로 준비되게 되였다. 5
요구로 보나 한시도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였다. 이 시기 세계적으로 군사과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새로운 현대적인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이 출현하여 전쟁수단으로 적극 리용되고있었다. 더우기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대량살륙무기와 유도무기들을 비롯한 새로운 군사작전장비들을 남조선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새 전쟁도발책동을 더욱 미친듯이 벌리고있었다.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은 각종 원자포와 반항공미싸일, 중거리미싸일, 야전로케트, 반땅크핵무기 등을 갖추고있었으며 공군도 전술원자탄을 적재한 초음속전투폭격기로 무장하고있었다. 천재적인 예지와 비범한 안목으로 현대군사과학기술발전추세와 조성된 정세를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군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발톱까지 무장한 원쑤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우리 인민군대를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하겠습니다.》 전군을 현대화하는데서 기본은 무장장비의 현대화였다. 이로부터 전군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자면 무엇보다도 무장장비의 현대화방향을 명확히 규정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미 주체50(1961)년 12월에 있은 조선로동당 인민군위원회 제2기 제2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와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는데서 혁신을 일으켜 무장장비를 기계화,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나갈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여기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무장장비현대화의 기본방향과 원칙이 뚜렷이 밝혀지게 됨으로써 인민군대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주체적립장에서 성과적으로 다그쳐나갈수 있는 지름길이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무장장비현대화의 기본방향과 원칙을 제시하신데 기초하여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현대적군사과학과 기술을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발전시키는 사업을 선행시키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현대적군사과학과 기술을 주체적립장에서 발전시키기 위하여 해당 연구기관들을 내오도록 하시고 여기에 유능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파견하도록 하시였으며 이 연구기관들에서 자기 분야의 군사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하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인민군대의 현대화를 다그쳐나갈수 있는 과학기술적담보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을 몸소 조직지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병무장장비의 현대화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교훈에 비추어 정전직후에 곡사포와 박격포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신 수령님께서는 몸소 여러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성능이 높고 보다 위력한 곡사포와 박격포, 평사포를 더 많이 생산하여 인민군대를 무장시키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친히 보병사단들의 포화력실태를 료해하시고 해당한 대책들을 세워주시였으며 해안지대의 지형적특성에 맞게 포들의 화력을 강화하고 고사포병 및 해안포병부대들의 무장장비수준을 높이기 위한 현명한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또 언제인가는 우리 로동계급의 힘과 기술로 만든 포를 일일이 료해하시고 포의 위력을 더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인민군대의 포병무장장비에서는 량적으로나 질적으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으며 인민군대의 포병은 각종 방사포와 성능이 높고 자행화된 포, 빠른 기동수단을 갖춘 위력한 타격수단으로 튼튼히 무장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병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는 사업에도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병무장장비의 현대화를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그 실천적방도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으며 군인들의 무장장비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필요한 대책들도 세워주시였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긴장한 정세가 계속되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해당 부문 일군들과 함께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자동보총을 보아주시였다. 그 총으로 말하면 무기와 전투장구류를 경량화할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군수공업부문 로동계급이 만든것으로서 가벼우면서도 명중률도 좋았다. 수령님께서는 일군들로부터 자동보총을 경량화한 정형과 명중률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나서 보다 가벼우면서도 명중률도 좋은 자동보총을 받아안게 될 군인들을 그려보시는듯 더없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은 조선사람의 체질과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는 보다 가벼우면서도 성능이 좋은 현대화된 무기를 군인들에게 안겨주시려는 그이의 심중이 깊이 헤아려져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는 일군들의 가슴속에는 몇해전 수령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 삼삼히 안겨왔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이 무기와 장구류를 다 메면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가, 무겁지 않은가에 대하여 알아보신 다음 방독면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방독면을 손에 받쳐드시고 구체적으로 살펴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무겁다고 하시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윽고 무기와 장구류들을 경량화할데 대하여 가르치시고나서 장구류들을 다 메고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천연요새로 꾸려진 장엄한 성벽도 살펴보면 그것은 잘 다듬어진 하나하나의 성돌들에 의해 쌓아지고 굳건해진다. 성벽을 이루고있는 수천수만개의 성돌들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빗놓이거나 잘못되여도 그 요새는 벌써 엄중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군인 한사람한사람의 전투준비를 떠나서 인민군대의 전반적싸움준비와 위력한 자위적국방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는것이였다. 인민군대의 전반적전투력강화에서 군인 한사람한사람의 전투준비는 이렇듯 중요한것이였다. 때문에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전투력준비에 대하여 생각하실 때마다 언제나 그 직접적담당자들인 전사들부터 찾으시는것이였다. 잠시후 그이앞에 장구류를 다 휴대한 전사가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차림새에서 장구류들이 무겁다는것을 료해하시고는 저으기 심려어린 안색을 지으시며 앞으로 무기와 장구류를 더 위력하면서도 가볍고 간편하게 그리고 보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줄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그이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앞에서 지휘관들도, 전사들도 뜨거운 격정의 눈물을 삼키였다. 이렇듯 군인들의 무장장비현대화를 위해 마음써오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기에 그때로부터 몇해가 지난 이날 경량화된 자동보총을 보시고 그토록 만족해하시는것이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무기 하나를 만들어도 우리 군인들의 체질과 그들이 싸우게 될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조건에서 그 리용의 효과성과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수 있도록 만들데 대한 내용의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수령님의 말씀에는 주체적립장에 서서 우리의 구체적실정에 맞으면서도 그 어디에도 짝지지 않는 우리 식의 현대적무기를 만들어내시려는 높으신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교시를 뜨거운 심장마다에 깊이 간직한 해당 부문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혁신의 불꽃을 세차게 지펴올려 경량화되고 성능이 좋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련이어 생산하였다. 결과 인민군대의 전투력은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대전에서 땅크 및 기계화부대들이 노는 역할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땅크 및 기계화부대들을 보다 현대화된 위력한 땅크와 장갑차들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도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륙군과 함께 기본군종들인 해군과 공군의 무장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도 적극 밀고나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해군의 현대화를 다그치기 위하여 강력한 함선건조기지들을 꾸리고 함선들을 많이 생산하도록 하시였으며 함선의 속도를 높이도록 하시였다. 또한 현대해전의 특성에 맞게 함선의 무기, 전투기술기재들과 항해기재, 통신기재들을 보다 현대적인것으로 무장시키시였다. 이 나날 수령님께서는 동서해의 해군부대들을 여러차례 찾으시여 해군무력의 현대화를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으며 적극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주체49(1960)년 4월 어느날에는 한 해군구분대의 함선에 친히 오르시여 전투준비상태를 료해하시고 위력하고 현대적인 함선들로 장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주체53(1964)년 5월에는 서해기슭의 한 해군부대를 찾으시여 함선들의 무장장비를 더 잘 갖추기 위한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기도 하시였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함선을 보아주시려고 한 군항을 찾으시였다. 이무렵 수령님께서는 동해안일대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고계시였다. 낮에 밤을 이어가시며 불철주야로 사업하시는 수령님께 있어서 한초한초의 시간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것이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군력강화를 위한 사업이 그리도 중요하기에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군항을 찾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몸소 함선에 오르시여 함선의 구조물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도 하시고 생산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기도 하시였으며 배기관을 생산하는 공장에도 들리시여 제기되는 문제들도 깊이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길로 또다시 부두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함선들의 해상기동을 보아주시려는것이였다. 이윽고 함선들의 해상기동이 시작되였다. 선수를 쳐들고 쏜살같이 달리는 함선들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상전투에서의 전술적문제들에 대한 강령적지침을 주시고나시여 기동력이 높은 함선들을 많이 만들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처럼 군항을 찾으시여 해군무력발전의 구체적인 방도와 휘황한 전망을 환히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나서 그길로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이렇듯 해군무력발전의 길에 새겨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의 자욱이 있어 우리 해군은 짧은 기간에 그 어떤 적함선도 일격에 타격소멸할수 있는 강위력한 해군함선들을 가지고 조국의 바다를 금성철벽으로 지켜나갈수 있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공군의 현대화를 비행대들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날수 있는 최신비행기들로 장비하는 방향에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당의 군사전략사상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인 공군전법을 활용할수 있도록 비행대를 편성하게 하시였으며 여러가지 기종의 비행기들로 장비하여 공군을 종합적으로 발전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비행기에 장비된 무기들도 보다 현대적인것으로 개조하고 새로운 전자장비도 널리 도입하여 효과적으로 리용하도록 하시였다. 결과 공군은 짧은 기간에 여러가지 사명을 가진 비행기들을 종합적으로 갖추게 되였으며 그 어떤 작전전술적임무도 훌륭히 수행할수 있는 강유력한 군종으로 장성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처럼 주체적인 전군현대화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심으로써 인민군대는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로 장비된 현대적무장력으로 자기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