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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위의 원칙을 지켜
국감독시찰소조성원들을 비법적으로 철거시켰으며 1957년 7월에는 일본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까지 남조선에 옮겨놓고 각종 신형무기들을 넘겨주면서 괴뢰군의 무장장비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와 함께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괴뢰군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남조선에서 군사기지와 군사시설물들을 대량적으로 확장하면서 괴뢰들이 《북진》나발을 더욱 요란스럽게 불어대도록 부추겼다. 여기에다 이 시기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대국주의자들의 리용물로 전락된 《쎄브》(《경제호상원조리사회》의 략칭)에 들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우리가 정치적독립과 경제적자립의 길로 나가는데 장애를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자체의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이 없이는 나라와 인민의 자주권을 지킬수 없고 민족의 자주독립도 조국의 번영도 이룩할수 없다는 철의 의지를 지니시고 튼튼한 국방공업에 의거하여 자위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해나가시였다.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관철한다는것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 나라를 보위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관철하여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나라의 정치적독립과 경제적자립을 고수할수 있으며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수 있다. 여기에서 국방공업은 자위적군사력의 물질적담보이다. 조선은 지난날 자기를 지켜줄 군력이 약하였던탓으로 하여 장기간의 식민지노예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피눈물나는 력사를 가지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전후시기에도 인민무력을 강화하고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수 있는 자체의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 한편 국방공업발전에 힘을 넣어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더욱 현대화하도록 하시였다. 현대적무기를 더 많이 생산하려면 무엇보다도 나라의 중공업토대를 튼튼히 닦아야 하며 그에 기초하여 국방공업을 빨리 발전시켜야 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로선을 제시하시면서 국방공업발전에 힘을 넣을데 대한 과업을 내세우시였다. 그리하여 전후 그 어려운 속에서도 국방공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중공업의 우선적발전에 관한 경제건설로선이 철저히 관철되여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국방공업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갖추게 되였다. 이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방공업부문에서 나타나고있는 교조주의적편향들도 바로잡아주시고 군수공장 로동계급이 만든 새로운 포의 위력과 명중률도 보아주시면서 우리 식 국방공업의 발전을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전후 그 어려운 속에서도 짧은 기간에 자위적국방력을 담보하는 국방공업의 물질기술적토대가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천리마를 타고 경제건설을 힘차게 밀고나가는 시대적환경에 맞게 자체의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커다란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시였다. 당시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우리가 자위라는 말을 하면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당의 자위적군사로선관철을 달가와하지 않는 편향이 나타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현대화에 요구되는 군수품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필요한 모든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자체로 생산보장할수 있는 국방공업의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자립적인 현대적국방공업을 창설할데 대한 방침은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훌륭히 관철할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조선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자위의 군사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재와 자금이 몹시 긴장하였지만 국방공업의 발전에 큰 힘을 돌리였다. 그리하여 이미 있던 군수공장들이 새로운 기술에 토대하여 개건확장되고 현대적군수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사업들이 자체의 힘, 자체의 기술과 자재로 믿음직하게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위적군사로선을 철저히 견지하기 위하여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고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수 있도록 병기생산을 빨리 늘일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는 한편 이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계기로 된것이 바로 주체50(1961)년 5월에 소집된 전국병기공업부문 당열성자회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병기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지난날 우리 인민이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지 못하였기때문에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기고만데 대하여, 제국주의는 있어도 전쟁의 위험은 없다고 떠드는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궤변에 대하여 하나하나 까밝혀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오늘 병기공업부문 당열성자회의를 계기로 병기공업부문의 전체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 혁명적경각성을 높이고 더욱 긴장하게 일하며 병기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것을 다시한번 호소합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병기공장들에서 짧은 기간에 생산을 2∼3배 또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무기생산을 늘이는것과 함께 그 질을 높일데 대하여, 새로운 품종의 병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데 대하여 등 병기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는 당의 무력이고 병기공장일군들은 당의 무력을 물질기술적으로 보장해주는 사람들이라는 값높고 영예로운 칭호를 안겨주시였다. 회의이후 병기공업부문의 전체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고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투적과업관철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새 전쟁도발을 위한 미제의 무력증강책동을 자위의 총대로 짓부셔버리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는 이렇게 튼튼한 국방공업에 의거하여 빛나게 관철되게 되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나라 대통령을 접견하시면서 나라를 방위하자면 군대를 잘 꾸리는것과 함께 자위적국방력의 물질적담보인 자체의 군수공업을 창설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군사장비를 생산하지 않고 그대신 인민생활필수품을 대량적으로 생산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로 될것이다, 모든것을 자체로 생산하자니 곤난은 많다, 그러나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마음대로 살수 있어 좋다, 우리는 누가 이래라저래라하여도 절대로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아간다고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선군의 기치를 높이 추켜드시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실현을 위하여 투쟁하여오시는 과정에 체득하신 이 철리는 나라의 자주적존엄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은 오직 강위력한 총대에 의하여 담보된다는것을 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겼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강력한 국방공업이 튼튼히 마련되였기에 조선은 그 누가 위협과 제재를 가하고 《원조》를 주지 않아도 언제나 조국과 민족의 자주성과 존엄을 철옹성같이 지켜낼수 있었고 인민의 안녕과 혁명의 전취물을 굳건히 수호할수 있었다. 2
인민군장병들과 나란히 현대적무장장비를 갖추고 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해가는 로농적위대의 자랑찬 모습은 정규적혁명무력을 핵심으로 하는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수립의 새로운 장을 펼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가 안아온 결실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전민무장화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항일의 나날에 쌓으신 민간무력건설의 풍부한 경험과 귀중한 업적을 토대로 하여 지체없이 민간군사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였다. 당시에 꾸려진 민간군사조직들은 정규적혁명무력과 함께 조선인민의 새 사회건설과 전후복구건설을 힘있게 추동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보위하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50년대말에 이르러 조선반도에 조성된 복잡한 정세는 민간군사조직을 발전적으로 개편확대하여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것을 요구하고있었다. 그 시기 미제는 《조선에서 60년대까지 정전을 지속시킬수 없다.》, 《오랜 정전의 결과는 북조선에 막강한 힘을 저축할수 있는 조건을 지어준다.》고 하면서 매일과 같이 위험한 전쟁모의판을 벌려놓았다. 이와 함께 그 무슨 《종합훈련》이라는것을 광란적으로 벌리면서 매일과 같이 충격적인 총격사건들을 의도적으로 련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오래전부터 구상하여오신 전민무장화를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내세우시였다. 주체48(1959)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간무력건설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중대한 문제를 채택하시기에 앞서 전민무장화에 대한 인민들의 의사를 알아보시기 위하여 한 농업협동조합을 찾으시였다. 그날 민주선전실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누신 다음 결산분배정형과 새해영농준비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나서 조합일군에게 이곳에 자위대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이 조직되여있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중 당원은 몇명인가, 이제라도 긴급소집하면 다 모일수 있는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책동을 알려주시면서 놈들의 기도를 저지파탄시키자면 많은 사람들을 망라한 새로운 자위대를 조직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적들이 그 무슨 무기를 끌어들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자위대를 조직하여야 합니다, 어느것이 더 실속있는가 봅시다라고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는 조합원들의 가슴은 실로 후련하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적들이 누구를 놀래워보려고 책동하고있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우리는 전체가 무장함으로써 인민의 단합된 힘으로 적들의 책동을 단호히 꺾어버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전민이 무장하면 무서울것이 하나도 없다고, 인민들이 무장한 곳에는 적들이 함부로 기여들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신심에 넘쳐있는 조합일군에게 앞으로 자신께서 이야기한대로 자위대를 조직할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조직할수 있다고 힘차게 대답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의도를 절대찬성하는 이곳 조합원들의 모습에서 로농적위대를 전국적범위에서 조직할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였음을 확신하시였다. 새해벽두에 숫눈길을 헤치시며 조합을 찾아오시여 새형의 민간군사조직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무랍없는 의향을 들어주시며 전민무장화의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조합원들의 심장을 높뛰게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인 주체48(1959)년 1월 14일 위대한 수령님의 참석밑에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는 종전의 인민자위대를 개편하여 로농적위대를 조직하는 회의가 진행되였다. 바로 그날 회의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농적위대창건을 위하여 얼마나 깊은 사색을 기울이시고 회의장에 나오시였는가를 다는 알지 못하였다. 전날 깊은 밤이였다. 전민무장화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시느라 현지지도의 피로도 풀지 못하시고 집무에 여념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그에게 동무는 이제 새로 조직될 민간무력의 명칭을 어떻게 달았으면 좋을것 같은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자기의 생각을 말씀올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그렇게 표현하기보다는 함축하여 《적위대》라고 하면 더 좋을것 같다고, 그러되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을 포괄하는 무장조직이라는 의미에서 《로농》이라는 문자를 더 넣어 《로농적위대》라고 부르면 어떻겠는가고 하시며 그 명칭을 조용히 되뇌여보시였다. 새로 조직되는 민간무력의 성격이 그대로 비껴있는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일군은 그이께서 전민무장화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였으면 새로 조직될 민간무력의 명칭에 대해서까지 그토록 사색을 기울이시랴 하는 생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새로 조직할 민간무력의 명칭까지 최종적으로 확정하신 후에야 력사적인 회의장소로 나오시였던것이다. 그날 회의장은 숭엄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참가한 일군들을 뜨겁게 일별하시며 격조높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조성된 국내정세로 보아 종전의 자위대를 개편하여 보다 강력한 로농적위대를 유일적으로 조직하고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이의 연설은 《로농적위대》라는 새로운 의미로 하여 처음부터 참가자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보장하며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것과 함께 전체 인민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종전의 인민자위대를 발전적으로 개편하여 하루속히 로농적위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참으로 이것은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발기였고 담대한 결심이였다. 새롭게 조직되는 로농적위대는 이전의 인민자위대와는 비할바없이 범위가 크고 강위력한 민간무장조직이였다. 인민자위대가 몇몇 사람들로 꾸려진 무장조직이라면 로농적위대는 전체 인민을 무장시켜 그들로써 인민군대와 함께 나라를 방위하고 자기의 고향땅을 보위하는 전인민적인 무장조직이였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였거나 당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던 나라들에서는 제기되지 않았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다. 회의를 결속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다시금 참가자들의 가슴을 세찬 격정으로 부풀게 하였다. 회의장에서는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이것은 조국과 인민이 절실히 바라고 현실이 요구하는 로농적위대라는 새로운 민간무력의 탄생을 가져오시고 전민무장화의 성과적실현을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의 다함없는 고마움의 분출이였으며 강위력한 자위의 성새를 마련해주신 절세의 위인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따를 불같은 맹세의 메아리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농적위대를 창건하신것은 민간무력건설의 새로운 장을 펼친 력사적인 사변이였으며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를 세우고 그 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데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공적이였다. 그후 로농적위대는 짧은 기간에 전국적범위에서 인민자위대의 개편과정을 통하여 새형의 혁명적민간무력으로 장성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로농적위대대오가 급격히 늘어난 조건에 맞게 갓 창건된 로농적위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는 사업에도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농적위대가 우리 당의 위력한 무장력으로 되자면 정치사상적으로 잘 준비시키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였으며 주체48(1959)년 12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결정을 각급 당위원회들에 내려보내도록 하시여 로농적위대교양사업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과업들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또한 주체49(1960)년 3월 각 지방에 내려갈 로농적위대 지도일군들을 부르시여 로농적위대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먼저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의 빛나는 혁명전통과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대와 인민들의 투쟁경험, 주체적인 전쟁관점으로 교양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로농적위대를 군사기술적으로 준비시키는것은 그의 전투력을 높이고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조직된 로농적위대의 첫 훈련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인민군부대들에서 능력있는 훈련일군들을 보내주도록 하시였으며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로농적위대의 훈련실태를 알아보시고 훈련을 강화하여 적들의 도발책동에 단호히 대처할수 있게 하시였다. 또한 어느 한 군수공장의 로동계급들을 만나시여 로농적위대원들에게도 인민군대와 같은 총을 메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전민무장화를 위하여 군수공장들에서 더 많은 무기를 생산보장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농적위대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선행시키고 그 전투능력을 높이기 위한 군사훈련을 강화하도록 현명하게 령도하심으로써 로농적위대는 자체의 힘으로 원쑤들을 물리치면서 자기의 고향과 일터를 믿음직하게 지킬수 있는 불패의 혁명적민간무력으로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강화발전된 로농적위대의 씩씩한 모습을 통하여 사회에 혁명적분위기가 차넘치게 하는 사업에도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49(1960)년 9월 어느날 아직 해가 뜨기 전 이른아침에 서해안의 어느 한 도소재지를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책임일군들에게 아침에 보니 도시가 잠잠하다고, 도시의 분위기가 흥성거려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시면서 《적과 대치하고있는 지대에서 흥성거리는 기세가 높을수록 적들에게 위압을 줄수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로농적위대원들에게 무기를 메워 시내를 행진하게 하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에는 무장을 잡은 로농적위대원들의 행진으로 사회에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분위기를 세우고 전체 인민이 총을 잡고 조국과 민족의 안녕을 지켜나가는 장엄한 모습을 과시하게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깃들어있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평양시를 비롯한 각 도소재지들에서는 로농적위대의 무장행진이 진행되였다. 무장시위에 참가한 로농적위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속에 창작된 《로농적위대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며 시내의 거리들을 행진하였다.
우리는 공화국의 로농적위대 로동당이 키워낸 억센 아들딸 당과 수령을 목숨으로 보위해가며 사회주의전취물을 지켜나간다 나가자 적위대 항일의 전통 이어 나가자 적위대 굳게 뭉쳐나가자 …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행진하며 힘있게 부르는 로농적위대원들의 이 노래는 인민군대와 함께 사회주의전취물을 철옹성같이 지켜나갈 불타는 맹세를 안고 끝없이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로농적위대를 정치군사적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는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다. 주체51(1962)년 4월 25일 평양과 각 도소재지들에서는 조선인민군창건 30돐경축 열병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열병식에는 조선인민군 군부대들과 함께 로농적위대종대들이 참가하였다. 창건후 3년만에 처음으로 열병식에 참가한 로농적위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밑에 창건되고 강화발전된 조선로동당의 민간무력으로서의 불패의 위력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로농적위대는 창건후 짧은 기간에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조선로동당의 민간무력으로 장성강화될수 있었다. 3
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북과 남에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협정의 요구대로 전후시기 조선반도의 남과 북에 남아있는 미제침략군과 중국인민지원군무력을 철수시키는것을 자주권확립의 선차적문제로 보시고 여기에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중국정부는 조선정전협정의 요구와 공화국정부의 의사를 받아들여 이미전부터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의사를 표명하여왔다. 그러나 미제는 남조선영구주둔을 노리며 막대한 군사장비의 납입, 군사기지축성 등으로 철군을 회피하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1954년 4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제네바에서는 조선문제의 평화적조정을 위한 국제회의가 진행되였다. 이 회의는 1954년초에 베를린에서 있은 4개국 외상들의 회의에서 공화국정부의 주장대로 4월 26일부터 제네바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의 참가밑에 조선문제를 포함한 긴절한 국제적문제들을 토의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소집된 회의였다. 제네바회의에서는 공화국정부대표가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 방안에서 중요한것은 미군을 비롯한 모든 외국군대가 나가고 경찰의 폭압과 테로행위가 없으며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에서 민주주의적으로 총선거를 실시하고 민주주의적통일정부를 세우는 방식으로 조선의 민족적통일을 이룩하자는것이였다. 이 방안은 중요하게 미제침략군을 철거하는것이 조선문제해결의 핵이라는 의미를 담고있었다. 이 방안에 당황한 미국무장관 덜레스는 자기가 발언하게 된 날에 발언하지 못하고 그 다음날에야 발언하였는데 그는 미군은 남조선에서 나갈수 없다, 중국군대만 북조선에서 나가라, 남조선에는 《합법적정부》가 있으니 북조선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라는따위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였다. 남조선괴뢰대표란자도 그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 미군철수를 전제로 한 공화국의 방안에 대해 이전 쏘련과 중국대표는 찬성하고 영국과 프랑스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하여 회의참가국들가운데 미국은 고립되였으며 외토리가 된 덜레스는 회의가 시작되여 며칠되지 않아서 도망치고말았다. 당시 스위스의 한 신문은 이를 조소하여 덜레스는 제네바에서 대단히 고독한감을 가지고 떠났다고 야유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가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대의 철거를 위한 투쟁을 벌리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서 하신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와 주체46(1957)년 12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확대전원회의에서 하신 보고, 주체47(1958)년 2월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관하 장병들앞에서 하신 연설 등에서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이 해결하기 위하여 미제침략군대와 중국인민지원군을 포함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우리 나라 내정에 대한 다른 나라의 간섭이 없도록 할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마침내 공화국정부는 주체47(1958)년 2월 성명을 발표하여 조선에서 일체 외국군대의 철거와 조선의 평화적통일은 이미 성숙되였으며 지체없이 해결되여야 할 문제라는것을 강조하면서 중국인민지원군을 포함한 모든 외국군대들이 조선으로부터 동시에 철거할것 등을 엄숙히 천명하였다. 이것은 한마디로 중국인민지원군과 미군을 조선에서 철거시키고 북과 남이 서로 협상하여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의 손으로 해결하자는것이였다. 중국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공화국정부의 성명에서 천명된 제안들을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면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선으로부터 철거하는 문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것을 표명하였다. 그후 평양에서 진행된 조중 두 나라 정부대표단사이의 회담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을 1958년말까지 계단별로 완전히 철거시킬데 대한 문제를 합의하고 그를 확인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그리하여 1958년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조선으로부터의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거는 그해 10월말까지 완전히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3월과 10월 귀국하는 중국인민지원군을 환송하는 행사들에 참석하시여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밑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인민의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여 불멸의 공훈을 세웠으며 전후 우리 인민의 복구건설사업을 적극 도와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거가 우리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더욱 촉진시키는 중요한 조치로 된다는데 대하여서와 조중친선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연설하시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조선에서의 철거는 북과 남의 전체 조선민족뿐아니라 세계인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는 미군의 영구주둔목적은 일제에 이어 남조선을 또다시 식민지로 틀어쥐기 위한데 있다는 목소리가 울려나오면서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대중투쟁기운이 급격히 높아갔다.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중국인민지원군철수를 계기로 남조선에서 반미투쟁기운이 고조되고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긍정적국면이 열려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철거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새 전쟁도발에 미쳐날뛰는 미제와 남조선괴뢰군의 그 어떤 침략행위도 일격에 소탕하도록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2월 인민군대의 한 군부대관하 장병들에게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의 손으로 해결할것을 주장하는 공화국정부의 성명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면서 이러한 조건에 맞게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이 철거한다 하여도 인민군대는 자기 조국과 민족을 자체로 보위해나갈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능히 조국보위의 임무를 수행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인민군대는 기술적으로 적보다 못하지 않으며 사상적으로 강한 혁명군대라는것과 리승만괴뢰군대는 정치사상적으로 암매한 고용군대라는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우리는 자체로 능히 적들의 어떠한 침공이라도 막아낼수 있다, 중국인민지원군이 나가는것은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에서 적들에게 큰 타격으로 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이 나가는것을 전제로 하고 우리는 사상적으로 준비하며 모든 사업을 포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가 자기의 힘으로 사회주의전취물을 보위하고 인민주권을 옹호하며 적의 침해를 물리치고 우리의 방어선을 철옹성같이 지키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군인들속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서와 군대에서 훈련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 등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리하여 인민군대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철거한 다음에도 자기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려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임무를 다해나감으로써 조국의 안전과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나갈수 있는 튼튼한 담보를 마련하였다.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의 손으로 해결할데 대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자주적인 로선과 정책은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되였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전직후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고 어떠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이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조국해방전쟁에서 력사적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조국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였지만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민족분렬영구화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의 정세는 의연히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조선정전협정 제4조 60항에는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하여 교전쌍방이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와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에 관한 문제 등을 협의할것이 규정되여있었다. 하지만 미제는 조선정치회의소집을 파탄시키기 위한 비렬한 모략책동에 매달렸다. 1954년 4월에 소집된 제네바회의에서 미국대표 덜레스는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선사람끼리 선거를 실시하여 조선의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우리의 제의에 대하여 《우리가 조선에 와서 몇십만명의 희생을 냈는데 어찌 조선을 거저 내놓겠는가? 우리는 조선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떠벌이면서 《항복하면 평화는 속히 올것이며 항거하면 평화의 실현은 곤난하다.》는 등 위협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편 미제는 《무력만이 조선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하면서 정전협정을 란폭하게 짓밟고 남조선에 각종 전략물자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며 괴뢰군을 정전당시 16개 사단으로부터 30여개 사단으로 확장하기에 광분하였다. 미제의 이러한 무력증강책동에 추종하여 전후 리승만괴뢰도당은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한 우리의 주장과 《조선문제는 조선사람끼리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무조건 반대하였다. 전후 미제의 끊임없는 무력증강책동으로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전망은 더욱 어두워졌을뿐아니라 조선반도에 전쟁의 검은구름이 무겁게 실리게 됨으로써 조선민족뿐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우려를 자아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말미암아 민족이 당하고있는 온갖 고통과 재난을 끝장내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련이어 내놓으시였다. 전쟁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조선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북과 남이 협상의 방법으로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시종일관하게 견지하신 조국통일방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만 하여도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8차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조선에서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통일방안들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주주의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조선로동당의 방침을 다시금 밝히시고 조국통일위업수행에 북과 남의 모든 애국력량을 조직동원하는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였다. 그리고 8. 15해방 10돐 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와 주체46(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며 북과 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아래로 줄이고 서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데 대한 협정을 맺으며 북과 남사이의 자유로운 래왕과 통신거래, 경제와 문화교류, 정당, 사회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의 접촉을 이룩하며 통일문제를 토의할 실제적인 대책을 취할수 있는 상설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적극적인 방안들을 내놓으시였다. 정전의 공고한 평화에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조선의 평화적통일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는 이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은 조선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조치들과 그 실현을 저지시키려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방해책동을 통해 과연 누가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고 누가 악랄하게 반대하는가 하는것이 여실히 증명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탁월한 선군혁명령도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물리치고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인 주체42(1953)년 10월에만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과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관하 장병들앞에서 하신 연설, 조선인민군 대대장, 정치부대대장회의에서 하신 연설 등에서 인민군대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적들의 온갖 침략책동을 분쇄할수 없고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도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없으며 조국의 평화적통일도 기대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인민군대를 강화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튼튼한 담보를 마련해놓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는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 11월 조선인민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하신 연설 《조국통일문제와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몇가지 과업》에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방침들을 알려주시면서 그 실현을 위해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구호를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고 하여도 인민군대의 전투력이 강해야 합니다. 만약 인민군대의 전투력이 약하면 적들은 우리를 먹자고 덤벼들것입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전투력과 전투준비를 강화하기 위한 과업으로서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데 대한 문제,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 등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해주시였을뿐아니라 몸소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시여 그것을 군인들에게 깊이 심어주시였다. 주체47(1958)년 2월 어느 한 인민군군부대를 찾으시여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하장병들에게 오직 인민군대가 강화되는 조건에서만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며 평화적통일을 달성할수 있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강해야만 적들이 덤벼들지 못할것이며 평화적통일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또 설사 놈들이 달려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때려눕힐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평화적통일을 주장한다고 하여 우리가 전투훈련을 약화시킬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안일해지고 해이해져서는 결코 안됩니다. 인민군 전체 장병들은 이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민군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과업관철을 위한 전투정치훈련이 더욱 맹렬히 진행되였다. 인민군대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되고 미제가 전쟁의 불길을 일으킨다면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는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게 됨으로써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상태의 완화와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군력으로 튼튼히 담보되고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은 걸음마다 분쇄되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여 지난날 뒤떨어진 식민지농업국가였으며 전쟁으로 말미암아 재더미로 되였던 우리 나라는 자립적경제토대를 가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되게 되였다. 공화국의 이 눈부신 발전은 미제의 새 전쟁준비와 군사기지화책동으로 인해 1950년대 후반기 《4천년래의 민생고》라고 불리울만치 심각하고 극심한 처지에서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고있던 남조선인민들속에 공화국에 대한 동경심과 새 정치, 새 생활을 요구하는 기운이 더욱 높아가게 하였다. 안팎의 정세가 저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조성되고 식민지파쑈통치의 지반이 밑뿌리채 뒤흔들리게 되자 미제는 리승만역도로 하여금 남조선에서 급격히 높아가는 평화적조국통일기운을 총칼로 억누르기 위한 무시무시한 사회적공포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는 한편 《북진》소동에 더욱 매여달리도록 부추겼다. 이에 따라 리승만역도는 1959년 6월에 《우리가 앞으로 더 기다린다면 공산주의자들은 보다 더 강해질것이니 남조선을 살리기 위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그렇기때문에 《무력으로 이 나라를 통일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뇌까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식민지파쑈독재를 유지강화해보려는 미제의 발악은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투쟁으로 여지없이 분쇄되게 되였다. 1960년 3월 리승만괴뢰도당의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마산의 청년학생, 시민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항쟁의 불길이 4월 중순에 들어와 반《정부》폭동과 무장충돌에로까지 발전하여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를 비롯한 온 남녘땅을 휩쓸었다.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사에 4월인민봉기로 기록된 이 대중적투쟁으로 하여 마침내 리승만괴뢰정부는 거꾸러졌다. 이것은 강위력한 군력의 담보밑에 조국통일위업을 평화적으로 성취하려는 공화국의 정당한 투쟁에 고무된 남조선인민들이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이룩한 커다란 첫 승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월인민봉기이후 남조선에서의 사태발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새 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사업도 불패의 혁명무력에 의거하여 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유로운 남북총선거와 북남조선의 련방제실시 등 적극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시는 한편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위업실현을 무력으로 담보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주체49(1960)년 9월 조선로동당 인민군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서도 우리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평화적통일이기때문에 군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시면서 우리의 힘이 약해가지고서는 평화적통일을 절대로 실현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싸움을 하고 안하고는 별문제로 하고 우리가 평화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하며 우리의 힘을 더욱 축적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평화적통일은 더욱 빨리 실현될것입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만은 없어졌으나 장승만이 북진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평화적통일을 주장하기때문에 전쟁은 안하겠소 하고 가만히 앉아있겠는가, 그럴수 없다, 침략에 대항하지 않을바에는 인민군대는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침략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용서없이 단호한 반격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날의 연설은 인민군장병들에게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한 전쟁의 근원은 계속 남아있으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은 인민군대의 강위력한 총대에 의거할 때에만 성과적으로 실현될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었다.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해서는 혁명의 총대가 굳건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의 정당성은 4월인민봉기이후 변화된 정세속에서 뚜렷이 확증되였다. 4월인민봉기이후 남조선에서 공화국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조국통일기운이 전례없이 높아지자 궁지에 몰리게 된 미제는 1961년 5월 보다 극악한 군사파쑈도당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조작하고 군사파쑈독재로써 민족분렬의 영구화와 새 전쟁도발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도록 부추겼다. 미제의 집요한 모략책동으로 하여 조선인민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보다 험난한 시련의 고비들을 헤쳐나가게 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가 있는 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은 반드시 이룩되고야 만다는 승리의 신심을 안고 우리 인민은 선군혁명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