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2 장

  

2

 

 

이튿날부터 연출실의 연출가들과 부연출들이 차례로 당위원회로 불리워가 주영도비서와 담화하고 돌아왔다. 

연출실의 공기는 긴장되였다. 

담화는 오후 부업경리작업에 사람들이 동원된 시간에 주로 하였다. 

로영무는 이러한 때 속된 호기심이 발동되여 무엇인가 알아내자고 가볍게 돌아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담화를 하고 나온 부연출들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았으나 그들의 심각하고 불안해진 낯색이며 자기들끼리 짤막하게 주고받는 말들을 통하여 주영도비서가 몹시 안타까와하면서 연출가들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을 찾아내고있으며 최승진을 진심으로 건져주기 위하여 그의 사업과 생활을 전면적으로 료해하고있음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한기석은 웬일인지 불리워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불안해하였으며 담화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였다. 

그는 퇴근할 때에는 최승진의 곁에서 가지런히 걸으며 요즘 수도의 실내경기장들에서 벌어지는 롱구와 배구경기소식을 이야기해주는가 하면 문학계의 소식이며 백화점과 상점들에 새로 나타난 상품들의 질과 형태미에 대하여도 말하였다. 그의 이런 행동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생사운명을 같이하여야 하는 연출가와 부연출의 의리를 생각케 하였다. 

왜서인지 강철룡은 담화에 부르지 않았다. 그는 몹시 의아해하며 여러가지 의혹을 품기도 하였다. 그래서 질통에 묵묵히 흙을 담아주는 로영무에게 내놓고 이런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어째 나는 부르지 않을가요? 나한테서는 들을 소리가 없다고 보는게지요?》 

《무얼 복잡하게 생각하나. 이제 부르겠지.》 

《나하구 담화하면 나는 다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다 털어놓겠습니다.》 

《뭘 털어놓겠다는건가?》 

《뭔가구요? 연출가동지는 보지 않았습니까? 시사회때 그처럼 박수를 치며 환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단 한순간의 자책이나 번민도 없이 방향을 홱 돌려 이번에는 작품과 연출가한테 별별 사상감투를 다 뒤집어씌우자고 접어든다면 이거야말로 비인간적인, 비량심적인 행위가 아닙니까. 낡은 사상이야 폭로비판해야 하지만 과장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사람이 없을것 같습니까. 모두 담화에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정말 불안합니다.》 

그는 입안까지 쓰거워나는듯 눈우에 침을 탁 뱉었다. 

《이번 일은 최승진연출가 혼자서 책임질 문제가 아닙니다. 박수갈채를 보낸 사람들이 다 책임져야 합니다. 물론 저도 례외가 아닙니다. 다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는 누구도 책임 안진다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승진연출가 혼자 책임질 문제가 아닙니다. 응당 가책을 느끼고 책임을 누구보다도 더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가운데 그 책임에서 슬그머니 발을 뽑고 자기는 벌써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걸 짐작했다는듯이 가장해나서는 작자들이 있다면 이거야말로 슬픈 일이 아닙니까? 모두 자기 비판해야 됩니다.》  

《동무는 누굴 념두에 두고 그런 소릴 하오?》 

《누구누구라고 짚을순 없지만 돌아가는 공기속에서 그런걸 느낍니다. 승진연출가는 오늘 점심에도 몇숟갈 뜨지 못했습니다. 입술이 말라터졌습니다. 에-참 교훈입니다. 심각한 교훈입니다.》 

얼마후 로영무가 부업작업에서 돌아와 쉬는데 무슨 볼일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철룡이 배우단에서 누가 찾아왔노라고 일러주었다.

오후의 해빛이 부드럽게 흘러드는 복도의 창문가에 리명선이 서있었다. 

젊은 시절의 미모가 느껴지는 그 녀자의 얼굴에는 상심과 좌절의 그늘이 비껴있었다. 

리명선은 고운 눈을 크게 치뜨며 곁에 온 로영무를 쳐다보았다. 

《승진동무가 방에 있어요?》 

《있소…》 

《로선생은 곁에서 뭘 했어요?》 

《뭘 말이요?》 

《뭐라니요? 시사회가 있은 날 승진동무네 집에 모여서 무슨 소릴 했어요? 모두 정신들이 있어요? 승진동문 왜정때… 그 사회에서 무슨 덕을 입은게 있다고 일본이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그런 소릴 했어요?》 

로영무는 술좌석에서 최승진이 한 말이 어렴풋이 떠올라 가슴이 선뜩 얼어들었으나 말은 다르게 나갔다. 

《그건 무슨 소리요?》 

《우리 배우단에서 두 동무가 당위원회에 불리워갔는데 비서동지가 확인해보더래요. 그런 발언을 한게 사실인가 아닌가…》 

로영무는 얼굴빛이 컴컴해져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 소리를 한것 같소.》 

《참 한심해요.》 

《그때는 술기운에 스쳐버렸댔는데 그걸 누가 문제시해서 반영했군.》 

《모두 각성됐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수 있어요. 곁에 있으면서 그런 소릴 하는걸 어째 쥐여박지 못했어요. 정말 한심해요.》 

《그때는 분위기가 그렇게 안됐지.》 

《문화성에선 서영림부상이 호되게 비판을 받았대요. 우리 영화때문에…》

《서부상이?》 

《해임될것 같다는 소리도 있어요.》 

그리고 리명선은 괴롭게 눈을 내리깔며 보일듯말듯 머리를 저었다. 

《아이참… 영화… 영화… 우리 영화계처럼 일이 안되는 동네가 어디 있겠어요. 이제는 영화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요. 료양소에서 돌아와 다시 기운을 내여 배우생활을 계속할가 했댔는데 이렇게 되니 아주 정이 떨어졌어요. 깨끗이 그만두고 나가겠어요.》 

《나가다니?》 

《년로보장에 넘겠어요.》 

《뭐요?… 이런때 그러면 그거야 도피가… 도피가 아니요.!》 

《도피고 뭐고 난 견디지 못하겠어요. 몸이 약한데다가 신경이… 신경이 견디지 못하겠어요.》 

그 녀자의 속눈섭에 이슬기가 어렸다. 

《진정하오!》 

《승진동무한테 자기비판을 잘하라고 이르세요. 우리야 해방직후부터 영화예술을 같이 해오지 않았나요.》 

로영무는 우애에 넘친 그 간절한 부탁에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리명선은 목도리자락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말없이 돌아서 복도가녁을 따라 총총히 걸어갔다. 

강철룡은 그 이튿날 오후에 당위원회로 불리워갔는데 방에서 나가는 그의 눈에 열기가 이글거렸다. 그는 두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로영무는 몹시 불안해졌다. 흥분이 지나쳐 격해지면 어떻게 탈선할지 알수 없는 철룡이였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그를 기다리다가 옆방의 최승진을 찾아갔다. 자기 마음이 이럴진대 일을 저질러놓은 그는 지금 심경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을가 하는 생각이 들며 위로도 해주고 말동무라도 해주고싶었다.

최승진은 방에 없었다. 읽던 책과 연출대본이 펼쳐진채로 책상우에 놓여있었다. 옷걸개에 외투가 걸려있는것을 보니 잠간 자리를 뜬것 같았다. 담배연기가 서린 탁한 방안공기에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로영무가 환기를 시켜주려고 소창문을 여는데 복도쪽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강철룡이 뛰여들었다.  

그는 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로영무를 지켜보았다. 

《솔직히 말하시오!》 거의 명령조의 거치른 소리였다. 

로영무는 그 험한 기상에 가슴이 떨렸다.  

《왜 이러나?》 

《저 작품을 맡았다가 도로 내놓을 때… 그때 어째 내놓았습니까?》 

《뭐라구?》 

《내 기억에 의하면 그때 개성에 맞지 않는다고 내놓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인가 아닌가 그것만 말하시오!》  

그 부르짖음소리는 창끝이 되여 량심을 사정없이 찌르는듯하였다. 로영무는 곁에 놓인 의자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누가 뭐라던가?》 그는 당황해진 눈으로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사실인가 아닌가 그것만 말하십시오. 난 이때까지 연출가동지를 량심적인 예술가로 존경해왔습니다.》 

《존경해왔다니 고맙긴 하지만 그건 공연한 존경이였어… 사실을 말하겠네. 개성에 맞지 않는다고 한건 구실이였어.》 

《예?》 

《작품이 마음에 안들었어. 정치적으로 까리까리하고 불안한데가 여러군데 있었지. 자신없어 내놓았네.》 

《그렇다면 승진연출가가 작품을 맡은다음 그걸 솔직히 말해줬습니까?》 

《말해주지 못했네. 이렇게 엄중한 과오가 빚어질줄은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내 말을 믿어달라구. 그 시사회때도 불만이 있었는데 말해주지 못했네. 터져오르는 박수갈채에 눌리구 또 남의 성과를 깎는것 같아 그랬어. 지금에 와서는 고의적으로 그랬다구 해도 할소리가 없게 됐네. 아, 철룡이, 난 그래서 괴로웠네…》 

《당신들은 모두 어떤 인간들입니까?》 

철룡은 절망적으로 부르짖고는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였다.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연출가동지, 당비서동지한테 가서 죄다 고백하십시오. 불러야 찾아가겠습니까?》 

《가지… 가겠네.》 

《지금 연출가동지한테 어떤 문제가 제기됐는지 압니까? 최승진연출가를 한평생 시기해와서 자기 벗을 함정에 빠뜨려넣자고 작품의 결함을 느꼈지만 침묵을 지켜왔는지도 모른다는것입니다! 그런 여론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줘 고맙네.》 

로영무는 울분과 노여움에 우들우들 떨며 일어나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려다가 기겁하여 주춤 뒤로 물러섰다. 문밖에 최승진이 서있었던것이다. 그는 이미전에 문밖에 와서 안에서 하는 소리들을 죄다 엿들었는지 피기가 가신 얼굴로 그들을 들여다보다가 차겁게 웃어보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댔소?》 하고 로영무가 창황중에 물었다. 

《밖에 좀 …》 

그리고는 말없이 방구석에 가서 책상우의 책과 연출대본을 접어 겨드랑이에 끼였다가 도로 놓고 외투를 입었다. 

로영무와 강철룡은 입이 얼어붙어 무슨 말도 건넬수 없었다. 

최승진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돌아서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계속하라는듯 문까지 조용히 닫아주었다.  

그의 발자국이 멀어지자 강철룡이 휘파람같은 소리로 속삭였다.  

《다 들은게 아닙니까?》 

《…》 

《어디로 저렇게 갈가요?》

《…》 

로영무는 아연해져 그냥 서있고 강철룡이 창문쪽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게 아닙니까? 왜… 왜 걸음이 저렇습니까?》 

로영무는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촬영소마당에 나선 최승진이 어디로 가는지 허둥허둥 발걸음을 옮겨가고있었다. 외투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는 눈먼사람처럼 한팔을 앞으로 내뻗치고 더듬더듬 걸어나가다가 비칠거렸다.  

로영무와 강철룡이 밖으로 달려나갔을 때 어디서 뛰여왔는지 리명선이 눈판에 쓰러진 최승진을 안아일으키고있었다.  

《승진동무, 승진동무- 안보여요? 전혀 안보여요?-》 

《아… 캄캄하오.》 

《언제부터 이랬어요?》 

《며칠전부터 좀 이상했는데 이자 갑자기…》 

리명선은 눈이 휘둥그래져 황황히 다가오는 로영무와 강철룡을 향해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는걸 모두 몰랐어요? 정말 한심해요!》 

강철룡이 최승진을 업고 진료소쪽으로 뛰여갔다. 

리명선은 비감에 젖은 얼굴로 눈물이 그렁하여 그들쪽을 바라보다가 외투호주머니에서 털실장갑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았다. 장갑에 묻어나왔는지 웬 종이장이 로영무의 발치쪽으로 날아왔다. 

로영무가 그것을 얼른 쥐여들어보니 공인과 명판도장이 찍힌 퇴직서였다. 

《아니, 이게 뭐요?》 그는 놀라서 물었다. 

《년로보장에 …》 

《정말 그만두려오?》 

《떠나겠어요. 아주 떠나겠어요!》 

《아니 한생을 영화예술에 바쳤는데 이렇게 훌 떠난단 말이요?》 

《제 말년은 실패예요.》

그리고는 장갑으로 입을 막았는데 늙었으나 아직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눈에 눈물이 끓어올랐다. 

로영무는 그를 붙잡으려는듯 한손을 내밀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명선동무!》 

그 녀자는 대답없이 홱 돌아서 경리부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촬영소마당을 휩쓰는 눈보라의 뽀얀 안개가 그 녀자에게 휘감기며 아츠럽게 울부짖었다. 

로영무는 눈물이 그렁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바람이 얼굴을 후려쳐 헉 느끼였다.

 

 x

 

주영도의 방은 예술단체 당비서의 방치고는 너무나 검소하게 꾸려졌다. 책상과 전화기, 탁상일력, 응접탁, 그 량옆에 놓인 낡은 포의자 여러개, 좌우벽에 붙여놓은 둔탁한 구식안락의자 두개, 구석쪽의 원탁, 그우에 놓은 보온병과 고뿌 두개… 창턱에 화분도 놓이지 않았고 벽에는 풍경화 한점 걸려있지 않았다. 사업에 필요한것만 있고 사업에 필요없는것은 방주인의 요구에 의하여 치워버린듯하였다. 단지 탁상일력곁에 놓인 주먹만한 크기의 황동잉크단지만은 사치와 담을 쌓은 이 방에서 좀 유난스러운 존재였다. 그것은 물동이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만든것인데 꼭지가 달린 뚜껑까지 덮여있었다. 언제나 퇴색함이 없이 윤이 번쩍이는것으로 보아 방주인의 애용품임에 틀림없었다. 

박경섭은 그것을 한번 만져본적도 없지만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밑굽에 《주물세포 1963》이라고 새겨져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주영도가 여기로 배치되여왔을 때 그의 고향 제강소의 주물직장세포에서는 자기네가 손을 들어 입당시킨 당원이 나라의 이름있는 한 촬영소당비서로 된것을 주물로동자들의 경사로 받아들였으며 그 잉크단지를 만들어보내는것으로 축하의 인사를 표시했던것이다.

주영도비서가 인차 온다는 기요원의 말을 듣고 주인이 없는 방에 들어온 박경섭은 손님용 안락의자에 앉아서 가슴속에서 사품치는 격정을 지그시 누르며 방안의 비품들을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어디에서나 만만치 않은 당일군인 주영도의 체취가 느껴졌다. 

오늘 박경섭은 주영도가 올려보낸 지난 시기 예술인들의 사상상태에 대한 자료를 김정일동지께 보고드리기전에 자신이 다시 확인해보고싶어 촬영소에 내려왔다. 주영도가 보고한 자료들은 최승진을 비롯한 영화예술인들이 사상사업부문에 불어친 좋지 못한 바람에 마지 못해 말려든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호응해나서 《광풍》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것을 론박할 여지없이 증명하고있었으며 사상사업부문의 일부 사람들이 그 영화의 보급을 통하여 문학예술부문에서 180˚ 방향전환의 선풍을 일으키려고 시도한것 같다는 암시까지 던지고있었다. 

박경섭은 그 보고에 공감하면서도 최승진과 로영무를 비롯한 개별적예술인들의 자료들은 너무 과장된것 같으면서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그는 자료의 일부 실례들이 부정되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오전과 오후 여러 예술인들을 만나 담화해보았는데 결과는 모든 자료들이 사실에 기초하고있으며 과장되였거나 외곡된 실례들이 거의 없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게다가 연출가들에게 영화창작에서 범한 과오의 원인을 검토한다든지 그 시정대책을 토론하게 할 대신 그들을 부업경리작업에 동원시키고있으며 최승진이 쓰러진것, 오랜 녀배우인 리명선을 해임시켜 내보낸 사실까지 알게 되니 분노로 가슴이 끓어번졌다. 그는 주영도를 만나기만 하면 좋지 못한 소리가 터져나올것 같아 자신을 다잡고있었다. 

박경섭은 지난날에도 이 방에서 주영도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재작년 리명선의 해임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주고받은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박경섭은 지방에 출장갔다와서 촬영소에 나왔다가 리명선의 문제를 알게 되였었다. 

주영도는 리명선이 이제는 늙어 연기력을 완전히 상실했기때문에 벌써 10여년간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년로보장에 넘기겠다고 했다. 박경섭은 그가 보통배우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녀배우이고 또 남반부에서 우리를 찾아온 녀성인것만큼 그냥 둬두고 신인배우양성사업 같은것을 맡기자고 설복하였다. 

그런데 오늘 그 오랜 녀배우를 끝내 내보내고 말았다. 본인이 사직을 청원했다지만 이처럼 깊은 고려없이 제꺽 내보낸데는 무엇인가 미심쩍은데가 있는듯했다. 

박경섭이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채 눈을 내리뜨고있는데 출입문쪽에서 손기척소리가 났다. 

《예- 들어오시오.》 

장미혜가 들어왔다. 방금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생각하던 박경섭은 생활의 우연한 일치에 놀라 처녀를 빤히 지켜보았다. 

미혜는 이쁘장하면서도 시원하게 생긴 얼굴에 수집은 미소를 담고 문설주곁에서 머뭇거렸다. 

《오, 미혜동무구만…》 

《비서동지가 계신가 해서…》 

《인차 들어올게요. 자 여기 앉아 나하구 이야기랑 하면서 기다리자구, 어머니는 집에서 뭘하오?》 

미혜는 눈을 내리뜨고 몇순간 말이 없다가 나직이 속삭이였다. 

《그저 있어요.》 

《그저?…》 

《보기 딱해서 병원에 다니든지 마을돌이라도 다니라니까 왈칵 성을 내지 않겠어요. 경로동직장에 나갈테니 걱정말라고…》 

《어머니 스스로가 나가고싶어 사직을 신청했다면서?》 

《…》

《사전에 동무하고는 토론이 있었나?》 

《전 반대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본인이 제기한다고 촬영소에서 이렇게 훌 내보낼줄은 몰랐어요.》 

미혜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 눈물에서 집단에 대한 갸륵한 믿음을 읽을수 있어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그는 미간을 찌프릴사하고 손끝으로 안락의자팔걸이를 조용히 다독이였다. 

《엄마야… 엄마야… 오래동안 출연 못해서 미안한 생각도 있고 또 신경도 약해져서 그런 제기를 할수도 있지 않아요. 죄다… 저한테 죄다 말씀해줘요. 어째 이렇게 꺼리낌없이 내보내요?》 

《…?》 

《엄마한테 다른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어요?》 

《무슨 문제?…》 

《엄마가 나간다음 이상한 여론이 돌아요. 지난 생활에서 애매한 점들이 많아 내보낸것 같다는 말까지 있어요.》 

해방후 미군정이나 그 괴뢰놈들은 왜정때부터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리명선을 회유하려고 공연이나 초대연같은데 자주 초청했지만 그는 미군정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편에 서서 예술활동을 힘차게 벌렸으며 체포령이 내리자 북반부로 넘어왔다. 

때문에 당에서는 처음부터 그를 굳게 믿었으며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갑자기 촬영소에서 나갔으니까 그런 소리도 생긴것 같은데 공연한 신경을 쓰지 말라구. 내 비서동무한테 다시 알아는 보겠지만…》 

《저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는데…》 

미혜는 약간 응석기를 풍기며 말했다.  

이때 주영도가 들어와서 이야기는 중단되고 미혜는 얼굴이 붉어져 황황히 물러갔다. 

주영도가 미혜더러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했으나 처녀는 이따가 오겠다고 하면서 문밖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문제때문에 왔을겁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너무 민감해서 야단이거든요. 허허… 어제는 건설위원회 강세룡부위원장까지 저한테 직접 전화로 문의해왔습니다. 그런 유명한 녀배우를 왜 내보냈는가구…》 

《아니, 그 량반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게?》 

《모릅니까?》 

《…?》 

《우리 부연출 강철룡동무 형입니다.》 

《그런데?》 

《철룡동무하구 저 처녀가 남다른 사이지요. 언제 그렇게 됐는지…》 

《그렇소?》 

박경섭은 얼굴빛이 신중해졌다. 

《그렇군… 그러니 물어볼수 있지… 그래 뭐라고 대답해줬소?》 

《사실대로 말해줬습니다.》 

《다른 원인은 없었소?》 

《예?》 

《미혜동무는 어머니의 지나간 생할에서 믿을수 없는 문제들이 있어 내보내지 않았는가 알아보자구 찾아왔더군. 여론이 좀 있는것 같소. 나도 말해줬지만 한번 담화해보는게 좋겠소.》 

《제편에서 소원해서 내보냈는데 모두 이런단말입니다. 철룡동무 형도 곱씹어 묻길래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문화성에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덩지가 큰 사람이 원…》 

《내보내지 말걸 그랬소. 본인이야 병때문에 오래동안 배역도 맡지 못하니까 죄송스러워 그럴수 있지 않소.》 

《좀 설복해봤는데 그것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제는 면목도 없고 영화를 계속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가겠다고 그냥 고집했습니다.》 

《좀더 설복해볼걸 그랬소. 사람문제인데 신중해야지…》 

《우리가 오랜 예술인들을 적게 보살펴줬습니까. 그랬더니 이제는… 최승진동무를 보십시오. 이번에 알게 됐는데 <광풍>의 영화문학을 보고 배우단에서 제일 지지해나선건 저 명선동무입니다. 이제부터는 낡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자라난 깨끗하고 젊은 예술인들한테 관심을 더 돌리고 그들을 앞에 내세워야겠습니다. 좋은 동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영도는 응접탁곁의 의자에 앉더니 윤기오른 얼굴로 화제를 바꾸었다. 

《병원에 알아봤는데 승진동무는 시신경위축이 왔답니다. 체질이 다혈질이거나 신경이 약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긴장되면 그런 증상이 생길수 있는데 며칠 푹 쉬면 인차 나을수 있답니다. 약골이지요.》 

박경섭은 몸을 뒤로 젖혀 안락의자등받이에 기대며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였다. 

《가책이 클테니까.… 그런데 어째 연출실이 몽땅 부업경리작업에 동원되였소? 잘못된 작품을 고칠 대책이랑 연구하고 토론해야 될게 아니요.》 

《오후 한두시간씩 동원됩니다.》 

《한두시간이라도 그렇지. 누가 그렇게 지시했소. 동무가 그랬소?》 

《그 동무들이 자발적으로 나왔습니다.》 

《자발적으로?》 

《예… 영화를 잘 만들자면 연출가들부터 로동계급화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했기때문에 로동계급을 모독하는 작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박경섭은 그의 소박한 견해에 다소 아연해졌다. 

《로동계급화시키는데 이런 방법밖에 없소? 진짜 로동계급화시키자면 어느 큰 공장에 보내든가 해야지 이게 뭐요. 동무는 그래 예술인들이 거름을 메고 다니는게 보기 좋소? 잘된 일같지 않소. 누가 보면 뭐라고 하겠소.?》 

《여기 자주 참관오는 외국인들이 뭐라고 할가봐 그게 걱정이 돼서 그럽니까?》

《아니요. 그건 부차적인 문제요. 그 동무들이 작업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것같소? 과연 그래서 로동계급화되겠는가 하는거요.》 

주영도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앉음새를 바로가지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예술인들한테 궂은일을 좀 시키는게 그렇게 가슴아픕니까? 당과 정부의 간부들도 농촌에 나가면 농민들과 한데 어울려 퇴비도 내고 밭김도 매지 않습니까. 실무능력이 높다고 누구누구가 없으면 영화를 못만들것처럼 생각하면서 무원칙하게 비호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원칙하게 비호하다니… 그건 무슨 소리요?》 

주영도는 눈을 내리떴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의 결함을 고치도록 연출가를 따뜻하게 도와주자고, 수령님께서 해방직후부터 키워오신 예술인들을 아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소. 그런데 동문 여기서 어떻게 하고있소. 촬영소공기가 왜 이렇소?》 

《당에서 그냥 아껴주고 사랑해주니 응석이 들었는지 저 사람들이 아주 배은망덕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어자어자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제말을 마감까지 들어주십시오. 요 며칠사이에 연출실동무들과 담화해봤습니다. 제가 이미 보고했지만 최승진동무는 해방직후에 청산했어야 할 일제사상잔재를 그대로 가지고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한심합니까. 왜놈들의 대학에서 부르죠아교육을 받던때를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쩍하면 술판을 벌려놓고 젊은 부연출들에게 자본주의문화와 생활양식을 선전했겠습니까. 그런 영화를 만든게 우연치 않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를 은근히 동정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폭로된걸 보면 아주 능동적이고 의식적입니다.》 

박경섭은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게 사실이요?》

《사실입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며칠전에 서영림부상이 차를 타고 부랴부랴 내려와서 교시에서 지적된 한두가지 설정을 바꾸라고 했는데 전혀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모욕적인 언사로 부상동지 의견을 일축해버렸답니다. 틀에 박힌 낡은 사고방법이라고, …이렇게 나오는데야 어쩌는수 있습니까. 더구나 성품이 유순한 부상동지야… 노여움이 들어 올라가고말았답니다. 무슨 배심으로 무엇을 믿고 그랬는가는 불을 보듯이 명백합니다. 당일군한테 감정이 금물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동정이 안갑니다. 좀 거름도 내면서 땀을 흘려봐야 합니다. 입에 들어가는 낟알이 어떻게 생기는가도 알아야 될거 아닙니까.》 

《여보, 너무 이러지 마오. 우리한테도 책임이 있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마음 무던한 부상동지를 모욕한걸 생각하면… 공훈예술가요 뭐요 하면서 아껴주고 춰줬더니 잔뜩 코대만 살아서…》 

주영도는 분격에 눈을 사납게 번뜩이였다. 

《지금 그 사람이 집에 들어가 누운데 대해서도 반영이 아주 좋지 못합니다. 일을 잔뜩 저질러놓고는 반성할대신 도피해서 나자빠졌다구…》 

박경섭은 너무 아연해져 할말을 찾지 못했다. 

《저 로영무란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최승진을 시기해서 그 작품의 결함을 벌써부터 느끼고있었지만 한마디 말해주지 않아 그를 함정에 빠뜨려놓은것만 보십시오. 어떤 인간들입니까.》 

…들판을 휩쓰는 눈보라의 갈기가 차창을 후려칠 때마다 승용차가 안개속에 묻히는듯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군하였다. 박경섭은 암담한 얼굴로 앞쪽만 내다보고있었다. 차바퀴들에 패워 들쑹날쑹해진 험한 눈길이 넘실넘실 파도치며 차체밑으로 흘러들었다. 

주영도의 방에서 마감으로 오간 날카로운 말들이 뇌리에 그냥 메아리쳤다. 

《비판을 잘하지 않으면 그땐 용단을 내려야 합니다. 젊은 동무들을 다 못쓰게 만들수 있습니다.》

《용단을 내릴 땐 내리더라도 연출가들한테 거름생산을 시키는 저 놀음은 그만두오. 당장 그만두오.!》 

《예…?》 

《내가 책임지겠소.!》 

박경섭은 목안이 칼칼하게 말라들어 마른침을 거듭 삼키였다. 최승진과 로영무한테 제기된 문제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가슴이 분격과 울분으로 설설 끓어번졌다. 

박경섭은 그들을 해방직후부터 알고있었다. 한때 그들밑에서 배우로 생활한적도 있었다. 전쟁시기에는 정치공작대로 함께 서울로 나가 문화인들과의 사업을 한적도 있었으며 어려운 후퇴의 길도 함께 걸었었다. 그의 집 사진첩에는 각이한 시기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여러장 붙어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오랜 지우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고있는것을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는것 같았으며 억울한 일이 생겼거나 창작상의 난문제가 생기면 스스럼없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흉금을 터놓고 말하고 조언을 청하였다. 박경섭은 누구보다도 그들을 믿어왔으며 은근히 왼심도 써주었다. 주영도한테 종합된 문제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은 이때까지 앞에서는 당과 외교를 하며 살았고 뒤에서는 당을 속이고 딴 사상감정을 가지고 살아온것이 아닌가. 

박경섭은 우선 자기 자신이 속아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아,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제기된 문제들이 모두 사실인 이상 주영도동무가 용단을 내려 무슨 조치를 취하자고 주장하면 나는 반대할수 없게 되였다. 그는 끝까지 파보자고 할것이다. 이제 또 무슨 문제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김정일동지께 무엇이라고 보고드리는가… 아무리 립장이 난처해도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보고드려야 한다. 무엇을 감춘다는건 크나큰 죄악이다…) 

박경섭은 등골에 식은 땀이 내배는것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교외의 눈길을 힘겨웁게 굴러가던 낡은 승용차는 휩쓸어드는 눈보라의 뽀얀 안개속에 잠겨들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