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1 장

  

7

 

정원에 덮인 눈이 오후의 따스한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였다. 겨우내 검푸른 빛이 더 싱싱해진듯한 정원수들에서 새들이 우짖고 그 우듬지들과 가지들에서 눅눅해진 눈덩이들이 부슬부슬 날아떨어지며 청신한 기운을 풍겼다. 

현관앞에 서있는 칠흑색의 승용차곁에서 나이지숙한 부관장이 초조한 낯빛으로 팔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정원길을 걷고계시는 두분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며칠전 서부지구의 탄전들을 현지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수도의 지하철도건설장들을 돌아보실 계획이였다. 지하철도건설은 수령님께서 매우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 건설대상이였다. 그이께서는 일찌기 수도의 교통문제를 풀기 위하여 지하철도건설을 발기하고 그 건설과정을 친히 지도해오시였는데 이 겨울에는 귀가 얼어드는 추운 날씨에 뻐스정류소에 줄을 선 시민들을 띄여보면 여느때없이 가슴아파하시며 지하철도건설을 다그쳐야 하겠다고 거듭 간곡히 강조하시였던것이다.

년세가 드실수록 인민들에 대한 사랑이 더 지극해지고 인민들의 불편을 보고 참지 못하며 그것을 풀기 위해 점점 왕성해지는 정력으로 사업하는 그이시였다. 그런데 계획한 날자에 지하철도건설장으로 나가지 못하였으며 오늘도 떠났으나 깊은 심려에 잠겨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신다. 

이 모든것이 광폭예술영화 《광풍》때문이였다. 

방한모를 쓰시고 외투를 입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시였으며 반솜외투를 입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심각한 얼굴로 곁에서 걸음을 옮기시였다. 

《오늘 아침 다시 봤는데 영화가 아주 잘못되였습니다!》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정원공기를 흔들었다. 

《좀 너그럽게 봐주자고 여러모로 생각해봤지만 별수 없습니다. 원칙적인 문제가 다 잘못되였거든. 원칙적인 문제가… 주인공이 로동계급인데 어째 저렇게 형상했는지. 처음부터 마감까지 왈패, 싸움군이요, 주먹깨나 쓰고 완력이 센 사람이 혁명가로 되는것처럼 그렸거든, 중산층에 속하는 인테리녀성을 터무니없이 변절시켜 타락의 시궁창에 구겨박은것도 잘못입니다. 영화에서는 공산주의사조가 일본에서 건너와 보급된것처럼 그렸는데 우리 혁명력사에 대한 이런 외곡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 생각에는 로동계급의 형상… 로동계급이 이끌어나가야 하는 중산층문제… 혁명사상의 보급문제… 이런 원칙적문제들이 잘못 설정되고 잘못 처리되였습니다. 원작과 영화문학의 결함때문이겠지만 연출가가 우리 인민들의 사상감정에 맞지 않게 영화형상을 했기때문에 작품이 더 망쳐졌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서양영화를 보는것 같습니다… 촬영소동무들은 다 좋다고 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런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상해서 지난밤 알아보니 근본적인 결함은 짚어내지 못했지만 주인공의 연기형상 등 여러가지 문제에서 의견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출가를 잘 도와서 영화를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최승진동무는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든 동무가 아닙니까. 얼마전에도 그가 만든 예술영화를 보고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었는데… 참 아쉽게 되였거든…》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크다고 할수 있는 연출가입니다. 공로있는 동무입니다.》 

《그런 동무가 왜 갑자기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였습니까? 문화성에서 잘 도와주지 못한것같습니다. 문화성에서 누가 이 영화제작에 관계했습니까?》 

《서영림부상이라고 합니다.》 

《서영림부상이?》 

《당중앙위원회에서 영화부문을 맡은 박경섭동무는 그때 중앙당학교 재직반에 가있었지만 대본을 보고 서부상에게 의견을 줬는데 서부상이 그 의견을 소홀히 대한것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뒤짐을 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가시였다. 

《지난밤에는 해방직후의 일들이 생각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작가, 예술인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문학예술인대오를 꾸렸댔습니다. 그때 그들의 처지란 참 기막혔지, 그들에게 옷도 해입히고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워 우리는 잡곡밥을 먹으면서도 예술인들에게는 백미 한가마니 혹은 두가마니씩 보내주었소. 우리가 어떻게 키워온 예술인들이요. 비록 창작에서 엄중한 과오를 범했지만 그들을 아껴야 하오. 빨리 과오를 시정하도록 당에서 잘 보살펴줘야 하겠습니다.》 

《수령님!》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타는듯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시였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현관앞을 떠나 정원길로 서서히 미끄러져나갔다. 

키높이 자란 정원수들의 우듬지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눈가루들이 폭포수의 비발처럼 뽀얗게 흩어지면서 날아내렸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눈가루들의 장막저쪽에 승용차의 자태가 사라지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심각한 안색으로 팔목시계를 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아침에도 영화때문에 계획된 시간에 지하철도건설장으로 떠나시지 못하고 45분 남짓 지체하게 되시였다. 45분! 잃어진 이 45분을 무엇으로 보상한단말인가! 이 지체된 시간때문에 이제는 빈틈없이 맞물린 하루사업들이 일정보다 45분씩 혹은 조금씩 드티여지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각한 의혹이 가슴에 엄습해들어 고요가 깃든 정원길에 그냥 서계시였다. 어떻게 당정책에 심히 어긋나는 그런 문제들이 작품에 설정되였고 그것들이 누구한테도 걸리지 않고 무난히 통과되여 영화로 형상될수 있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나오자 모두 희세의 걸작이 나온것처럼 그토록 떠들게 되였는지… 이것은 한 연출가, 한편의 영화작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것 같았다. 영화예술, 더 나아가서 문학예술전반에 좋지 못한 바람이 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문제를 두고 그날 생각을 거듭하시다가 깊은 밤중에 촬영소로 나가시였다. 당직을 서던 한 일군이 황황히 달려나와 인사를 드리고 총장동지랑 무슨 소식이 있겠는가 속을 태우며 기다리다가 방금전에 퇴근하였다고 말씀드렸다. 

눈이 내렸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누구도 불러내지 말며 동무도 들어가 근무를 서라고 이르시고는 정적이 고즈넉이 깃든 촬영소뜨락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시였다. 날아내리는 함박눈송이들이 그이의 얼굴을 산뜻산뜻 스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여기 양말공장자리에 촬영소를 꾸려주신 일이며 힘들게 시간을 내여 영화예술인들을 만나주신 일, 친히 정치위원들을 거느리시고 촬영소에 나와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영화예술발전의 앞길을 밝혀주신 일들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그날밤 김정일동지께서는 끝없는 생각에 잠겨 회의가 열렸던 건물앞을 오래도록 거니시였다. 눈속에 찍히는 그이의 발자국마다에 무거운 마음이 가득가득 고이는듯하였다.

  

X

 

이튿날 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로 박경섭을 부르시였다. 

이윽고 출입문이 열리며 박경섭이 아니라 며칠전에 방한모를 부탁한 재정경리부의 젊은 일군이 들어왔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그리며 다가와 손에 들고 온 로인용털모자를 응접탁모서리에 올려놓았다. 

《일전에 부탁하신건데 아무리 골라봐야 이것이 제일 나은것 같습니다.》  

그것은 재빛이 연하게 도는 양털모자였다.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털모자를 들어올려 부드러운 귀덮개털을 쓸어만져보시였다. 

《로인들이 쓰면 풍채도 있어보이고 아주 뜨뜻하겠습니다.》 

《그런데 맵시가 좀…》 

《추위속에서 맵시를 보겠습니까. 수고했습니다.》 

그 일군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에서 나갔다. 

그이께서는 올겨울 여느때없이 백두산의 장엄한 설경이 그리워나고 백두밀림의 사적지들도 돌아보고싶어 어떻게나 여가를 내여 그쪽으로 가시려고 은근히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차비를 하시였던것이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대한 그이의 그리움은 때없이 찾아드는 뜨거운 감정이였다. 털모자는 일찌기 그이와 가까와진 청봉숙영지의 사적지관리원아바이한테 선물로 가져갈것이다.

그 관리원아바이는 옛날 리명수목재소 로동자였는데 한때 항일유격대의 로획물자를 지고 깊은 후방밀영에까지 갔다온 일이 있는 로인이였다. 몇해전 로인은 청봉을 찾으신 그이의 손을 잡고 자기는 이 사적지를 지키다가 여기 가까이에 묻히는것이 소원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인상에 남아 잊지 못하시는 백두밀림의 이름없는 초병이였다. 

(영화때문에 또 미루게 됐군…) 

그이께서는 아쉬운 마음으로 털모자를 서류장속에 넣어두시였다. 

박경섭이 들어왔다. 

키가 보기 좋게 크고 용모가 준수한 그는 부르신 까닭을 벌써 짐작한듯 긴장된 얼굴로 인사를 드렸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여러해 사업한 그의 행동거지에는 나무랄데가 없고 세련된 당일군의 단정한 기품이 느껴졌다. 

박경섭은 지난 세월 가난탓에 문학예술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해방후 군대에서 군중문화사업을 한 일도 있고 사회예술단체들에서 조연출을 걸쳐 연출가, 예술지도일군으로 성장하여 다년간 사업했으며 진지한 독학으로 영화는 물론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에 조예가 있는 일군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찍부터 그를 깊이 믿으시였으며 그도 또한 그이께 충성다하려고 애써왔었다. 

그이께서는 박경섭이와 응접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촬영소에서는 요새 무엇을 하고있습니까?》 

박경섭은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대답하였다. 

《두개 제작단이 전쟁물과 반간첩물 영화를 찍고있습니다. <광풍>을 만든 제작단은… 그 동무들뿐만아니라 총장, 부총장들, 온 촬영소가 수령님의 교시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영화예술인들속에서 요새 그 영화에 대한 다른 반영은 없습니까?》 

《주인공의 형상이 과장돼서 진실하지 못하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처음에는 어째 모두 그처럼 환성을 올렸습니까?》 

《형상수법에서 보지 못하던것들이 있고 또… 연출가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한것 같습니다.》 

《음…》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시였다. 

《수령님께서 영화를 보셨습니다.》 

《보셨습니까?》 

박경섭은 순간에 얼굴빛이 밝아지며 몸을 움쭉 앞으로 내밀기까지 하였다. 

《수령님 의견도 우리하고 같습니다.》 

그이께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하시였다.  

박경섭은 사업수첩을 펼치고 속필로 받아썼다. 그의 이마와 코등에 어느덧 식은 땀이 내배였다. 

교시의 구절구절들은 영화의 본질적인 결함을 밝혀내며 준절한 경종의 울림처럼 그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박경섭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에 물기가 떨었다. 

《제가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예술인들이 아니라 마치도 자신이 실책을 범하신듯 괴로운 안색으로 앉으라고 손짓하시였다. 

《눈물을 흘리며 참회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경섭동무도 아다싶이 우리 수령님께서야 언제나 예술인들이 만든 작품들을 얼마나 너그럽게 보아주시였습니까. 좀 잘되여도 크게 치하해주시며…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결함이 엄중하기때문에 이렇게 지적하시며 깊이 우려하셨습니다. 이 영화의 결함들이 시사하는 문제들은 모두 보통것이 아닙니다. 심상치 않은 정치적, 사상적, 예술조류상의 배경이 엿보이기때문에 우려되는것입니다.》

박경섭은 심각한 눈빛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나올수 있었는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혀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병집을 수술하고 영화예술을 구원할수 있습니다. 동무는 우선 촬영소에 나가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해야 하겠습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료해사업은 촬영소당조직에 철저히 의거해서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예…》 

박경섭은 목안에 재가 찬듯하여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촬영소로 정신없이 달려나간 박경섭은 시사실에 총장, 부총장들, 예술부서와 기술부서들의 책임자들과 《광풍》제작단 창조성원들을 모아놓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하였다.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교시전달이 끝나고 박경섭이 교시사본을 서류봉투에 넣는데도 사람들은 자리에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하고 그만을 지켜보았다. 난감해진 눈, 자책의 빛이 어린 눈, 의혹에 찬 눈, 의문이 타오르는 눈, 눈, 눈… 

객석복판쯤에 로영무와 나란히 앉아있는 최승진이만은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박경섭은 연탁을 떠나 통로를 따라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승진동무!》 

최승진은 얼굴을 들고 흐려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관자노리로 한가닥의 땀발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총장실로 갑시다.》 

《예?》 

《총장실에 가서 좀 이야기합시다.》 

최승진은 그 말이 마치도 구원의 소리이기도 한듯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박경섭이 그를 데리고 통로를 따라 걸어나오자 갑자기 사람들이 의자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일어나서 통로쪽으로 우르르 밀려나왔다. 수군거리는 소리, 핀잔의 소리, 짜증내는 소리… 박경섭에게는 그 소리들이 모두 언짢게 들렸고 고개를 수굿하고 따라나오는 최승진에게 동정이 갔다. 

총장실로는 총장과 당비서만 따라들어왔다. 

모두 응접탁둘레에 자리를 잡자 박경섭은 곁에 앉은 최승진에게 부드럽게 일렀다. 

《이런 때일수록 의지를 가져야 하오. 창조사업에서 엄중한 과오를 범했지만… 과오야 고치면 되지 않겠소. 고치자면 우선 과오의 원인을 똑똑히 찾아야겠소.》 

최승진은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었다. 

《용기를 내야 하오. 용기를 내서 과오의 원인을 찾아내고 대담하게 고쳐야 하오.》 

최승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응접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주영도비서가 눈을 쪼프릴사하고 그를 지켜보며 한손으로 억세게 생긴 턱을 슬슬 쓸어만지고있었다. 그러다가 갑갑증이 나는듯 몸을 뒤로 젖힐사하며 주먹으로 응접탁가녁을 조용히 다독이였다. 

박경섭은 그를 흘깃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몹시 심려하고계시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최승진은 갈린 목소리로 겨우 말하였다. 

박경섭은 당장 그에게 무엇을 더 캐여묻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교시를 깊이 연구하라고 이르고는 방에서 내보내였다. 

최승진이 밖에 나오니 현관앞에서 로영무와 마주서서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던 리명선이 어깨에 걸친 밤빛 머리수건자락을 날리며 달려와 손을 꼭 잡아쥐였다. 

《승진동무, 너무 상심 말아요.》 

최승진이 고맙다고 머리를 숙여보이고 발걸음을 떼려는데 리명선은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영화예술에 한생을 바친 녀배우의 파리한 얼굴에 경련이 이는듯하였다.

《총장실에 들어가니 뭐라고 그래요?》 

《…》 

《료양소에서 돌아오니 미혜가 명작이라고 떠들어 이제야 우리 동네에 볕이 드는가 했는데 아이 참 기막혀… 곁에선 모두 눈들이 멀었던가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 작품을 봐줬더라면 이렇게야 뒤집히겠어요? 》 

로영무를 빗대놓고 하는 소리같았다. 

로영무는 얼굴이 벌개져서 먼 하늘가만 덤덤히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아닙니다. 다 제탓입니다.》 

그 녀자의 눈에 물기가 핑 돌았다. 

그날도 최승진은 로영무와 나란히 퇴근하였다. 정문을 벗어나자 최승진은 무서운 의혹에 사로잡혔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시사회때 모두가 영화가 좋다고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았는가. 나는 그렇다치고 사람들이 모두 도깨비한테 홀렸거나 무슨 열병에라도 걸려 미친사람처럼 건전한 리성을 다 잃고 판단력도 죄다 마비되였단말인가. 총장은?… 부총장들은?… 시사회때 터져올랐던 박수갈채소리가 먼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바람의 울부짖음소리처럼 아리숭하게 들려오고 괴로움에 뛰노는 심장의 박동소리가 머리속에 쿵쿵 메아리쳤다. 막연한 수치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기 집에서 차렸던 주연, 행복감에 도취되였던 안해, 성공자의 의젓한 자세로 늘어놓았던 추억담… 아,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나는 어리석어 그랬다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몰랐는가고 묻고싶었다. 절찬의 상상봉에서 참패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그는 이 모든것이 꿈만같기도 했다. 

로영무는 외투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그림자처럼 말없이 따라오고있었다. 

《시사회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소?》

최승진이 문득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 

로영무는 슬픔에 젖은듯한 음울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다가 어딘가 다른데로 눈길을 돌렸다.  

《전혀 결함을 느끼지 못했댔소?》 

《…》 

로영무는 대답을 못했다. 대답을 못하는지 회피하는지 알수 없었다. 

최승진은 그 누구에게 향한것인지도 알수 없는 원망과 울분으로 가슴이 끓어번졌다. 

그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어째서… 어째 이 작품을 내놓았댔소? 그때 무엇인가 느낀게 아니요? 로형이 그때 몇마디만 일러줬다면… 내가 아무리 교만한 놈팽이라도 그 의견이야 소홀히 대했겠소.》 

《이모저모로 죄송하네.》 

그 소리가 야멸차게 들렸다. 한생의 우정을 배신한 비량심의 넉두리처럼 들렸다. 

《좋소!》 

그는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고는 어디라없이 결패스럽게 걸어나갔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눈앞에 흩날렸다. 

뒤에서 동지도, 벗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다급히 울렸다. 

《여보게! 승진이… 승진이!》 

그는 자기 마음에 휘감겨드는 그 부르짖음소리를 뿌리쳐버리듯 활개를 세차게 저으며 어둠속으로 걸어나갔다. 걷다가 뛰였다. 눈에 덮인 들판이 바다처럼 설레이며 달려오는듯했다. 귀전에 울리는 바람의 비명소리… 기겁하여 비켜서는듯한 나무와 전주… 발길에 채워 날아오른 눈가루들이 가슴노리를 적시였다. 낮에 시사실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시사회때 그처럼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던 그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듯 랭랭한 얼굴로 그를 외면했다. 분명히 그랬다. 기술부문의 어떤 일군은 수첩을 옆에 끼고 온화한 얼굴로 옆을 지나갔는데 그 표정은 자기네가 예술인들의 뒤전으로 밀려나 늘 빛없이 지내지만 이런 경란이 없어 살기는 괜찮다고 말하는듯했다. 

최승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허허벌판에 한동안 말뚝처럼 서있던 그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며 소리없이 흐느꼈다. 

(아, 나는 이렇게 고독한 인간이였던가…) 

그는 눈우에 쓰러져 가슴을 쥐여뜯으며 뒤채기였다. 그러다가 얼마후 번듯하게 누워 멍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하늘도 그 하늘이고 별들도 예나 다름없는 그 별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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