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1 장

 

6

 

 

이튿날 아침, 수령님께 《광풍》을 올렸다는 소문이 온 촬영소안에 쫙 퍼졌으며 모든 사람들이  당중앙위원회로부터 기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그 이튿날도 소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촬영소의 공기는 긴장되여갔다. 사흘째 되는날에도 감감 소식이 없자 마음이 누긋하지 못한 사람들은 벌써 불안감을 드러내놓고 여러가지 억측들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른 중대한 사업때문에 아직 영화를 보시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기까지 하였다. 

총장과 당비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영화부문을 맡아보고있는 박경섭의 방에 자주 전화하였는데 그는 방에 없고 지도원이 나와 좀 기다리라는 한가지 대답만 되풀이하였다. 

그래서 총장, 당비서를 비롯한 촬영소의 적지 않은 일군들과 예술인들은 모두 번열이라도 나는듯 목단추를 끄르는가 하면 넥타이끈을 늦추고 담배를 피우며 방안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자동차소리만 나도 긴장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군하였다.

연출실의 공기는 부연출 한기석이 부산을 피우는 바람에 더욱 긴장해졌다. 그는 진정을 못하고 교환실에 당중앙위원회에나 문화성으로부터 전화가 온것이 없는가 알아보기도 하고 부총장실에 뛰여갔다와서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는것 같다고 전하였다. 

최승진은 자기 부연출이 그러거나말거나 개의치 않고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앉아 연출대본을 펼쳐들고 한장면한장면 검토해나갔다. 그는 때로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재간있게 생긴 두툼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무슨 생각을 집요하게 쫓기도 하고 때로는 허공의 한점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소리없는 한숨을 조용히 내쉬기도 하였다. 

로영무는 로숙한 예술가의 감각과 관록있는 경험자의 촉감으로 벌써 모든것을 짐작하고있는듯 안정이 깃든 침착한 얼굴로 자기일을 묵묵히 해나갔는데 어떤 때는 그것이 집단에 대한 랭담성으로 보여지기까지 하였다. 한기석에게는 물론 강철룡에게까지 그의 침착성이 언짢아졌다. 

로영무도 마음속으로는 불안하지 않을수 없었으나 작품이 나간뒤의 이와 같은 불안감을 작가나 예술집단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있는것이였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이런 불안감은 작품에 쏟아부은 작자의 열정과 노력, 그의 책임감, 량심, 나아가서는 재능에 상당히 정비례되는것이였다. 참된 재능을 지니지 못한 작자는 이런 불안감의 남모르는 고뇌를 모르고 살며 예술창조를 자기 공명이나 립신양명, 치부의 수단으로 리용하는 자본사회의 돈벌이예술가들한테는 매소부의 철면피성만 있을뿐 불안감이란 있을수 없는것이였다. 그는 성실한 예술가의 이런 불안감은 그의 인격을 형성시켜준다고도 생각했다. 지금 로영무는 그래서 참고 기다리면서 이 긴장된 시간에 침착하게 앉아 연출대본을 검토하고있는 최승진에게 격려와 동정의 눈길을 이따금 보내는것이였다. 

최승진에게는 연출대본의 글줄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촬영과정에 있었던 이러저러한 일들만 착잡하게 눈앞에 어른거리였다. 창조의 열정으로 충만된 배우들과 찬조출연자들이 추위에 우들우들 떨며 바다물로 뛰여들어가 《시체》들로 되여 파도우에 떠오르던 일, 항구의 창고들을 휩쓰는 불길… 촬영가가 실감있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연기와 불길속으로 뛰여다니던 일, 군마에서 날아떨어진 《기마경찰》이 다리를 상하여 병원에 실려가던 일, 촬영을 위하여 렬차의 차량들을 밀어오던 일… 거리로 물결쳐나오던 수천명의 군중들… 문득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치위원들을 데리고 촬영소에 나와 정치위원회를 여시여 영화문제를 토의하시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최승진은 난생처음으로 정치위원회에 방청으로 참가하였는데 회의가 끝난 다음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좋은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고무하여주시였다. 만약 수령님께서 영화를 보시였다면 자막에서 연출자가 누구이라는것을 인차 알아보시였을지도 모른다. 눈굽이 저려났다.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촬영소의 예술부서들에서 영화의 성공에 대한 아리숭한 의혹과 함께 개별적인 형상세부들을 두고 이런저런 불만의 소리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성격이 너무 왈패처럼 그려졌다느니 로동청년인 주인공이 일본에서 건너온 인테리출신 공산주의자한테서 교양받는것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느니… 의견은 구구했다. 

무슨 볼일로인가 미술실에 갔다온 강철룡이 흥분된 얼굴로 방에 들어와 몇몇 미술가들이 영화가 총체적인 인상에서 조선맛이 적게 난다고 했다는 소리를 전했다. 

《화면구도와 촬영각도! 편집기교에서 조선식이 아닌것이 많다는거요.》 

한기석이 의자를 소리나게 밀어놓으며 뛰쳐일어나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 

《누가 그러던가?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릴 해? 무얼 좀 새롭게 시도하면 인차 저렇게 나오니 어떻게 전진하겠는가? 동문 그런 소리를 듣고도 가만있었소?》

강철룡이 그가 밀어놓은 의자에 앉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미감문제요. 그렇게 느껴진다고 우려하는데 내가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조선사람이 연출하고 조선사람이 촬영하고 조선사람들이 연기를 했는데 뭐가 조선식이 아니란 말인가. 내 미술실의 그 사이비 민족주의자들하구 좀 론쟁해봐야겠소.》 

한기석은 미술실로 떠나려고 했다. 

《기석이!》 

최승진이 미소어린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뭘 흥분해서 그러는가. 다 들어두라구.》 

그는 매우 여유있는 몸가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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