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8 장

9

 

그후 제작단성원들은 전에없던 놀라운 열정으로 창조사업을 벌리였는데 그들이 회성에서 돌아오자 친애하는 그이께서는 예술영화 《피바다》를 창조한 젊고 쟁쟁한 연출가를 로영무한테 협조연출로 보내여 연출진영을 보강하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리하여 영화촬영이 속도있게 진척되였으며 다섯달이 지나서는 촬영이 끝나고 뒤따라 인차 작업필림이 나왔다. 

로영무는 작업필림을 편집기에 걸어 한번 돌려보고 마음이 여간 흐뭇하지 않았다. 영화형상이 전반적으로 수준있게 된것같고 이제 음악과 효과음만 합성하면 그 형상효과가 완전히 나타나리라는 확신이 들었기때문이다. 

작업필림이 나오기를 손꼽아기다린 총장과 예술부총장, 촬영소의 모든 예술부문 일군들은 즉시 시사실에 모여 그것을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모두 숨을 죽이고 화면을 보며 대사를 들었다. 영사막에 마지막 화면이 흘러지나가고 불이 켜졌을 때 장내가 갑자기 술렁거리더니 구석쪽에서 박수소리까지 터져올랐다. 그것은 무슨 경축행사날의 소고의 경쾌한 울림소리처럼 연출가의 가슴을 흔들었다. 

옆에 앉은 총장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로영무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였다. 

《수고했습니다. 연출가동무, 잘됐습니다. 아주 좋소!… 오늘 점심엔 특식을 차리라고 해야겠소. 헛허… 아니… 아니 시간을 봐서 내가 옥류관에서 한상 낼테요.》 

로영무는 롱말이 섞인 그 생활적인 찬사에 기분도 좋았지만 너무 과분하게 여겨져 젊은이들처럼 뒤덜미를 쓸어만지며 어줍게 웃었다. 

총장은 좌중을 둘러보며 오후에 의견들을 종합하겠다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연출가옆을 지나가며 수고했다는 눈인사도 뜻있게 하고 어느 장면이 괜찮다는 말도 몇마디씩 던졌다. 

로영무는 완전히 명절기분이였다. 오후에 종합된 의견에도 특별한것이 없었다. 

그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작업필림을 보아주실수 있지 않을가싶어 저녁녘 강철룡에게 편집원 윤희와 함께 작업필림을 다시 검사해보라고 일렀다. 

로영무는 조용한 연출실에 앉아 두시간남짓 연출대본을 뒤적이며 놓친점이 없는가 깐깐히 따져보고 편집실로 향하였다. 영화의 전반적흐름을 새롭게 검토해보기 위해서였다. 

대사소리, 효과소리, 음악소리, 편집기 돌아가는 소리로 언제나 떠들썩한 편집실은 필림검사가 완전히 끝났는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고 그 바깥 복도에도 괴괴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어찌나 고요한지 발자국소리까지 복도에 저벅저벅 울렸다. 

편집실문쪽으로 다가가던 로영무는 옆쪽에서 미심쩍은 인기척이 나 걸음을 멈추었다. 불이 꺼진 복도 저쪽의 어스름속에서 꿈속에서처럼 한 그림자가 소리없이 걸어나왔다. 한기석이였다.

《들어가지 마십시오. 아까 철룡동무도 곁에 앉아있다가 같이 볼수 없다면서 나왔습니다.》 

《음?》 

《혼자 보며 맘껏 울라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밖에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한데 동문 여기서 뭘하오?》 

《생각이 많아져 그저 앉아있었습니다. 저 윤희아주머니야 병원에서 내내 대본을 필사했댔는데 낯익은 장면이 지나갈 때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로영무는 가슴이 저려들었다. 

《연출가동지, 필림편집을 시작하는 날에 저 아주머니가 다른 옷을 갈아입고 나온걸 느꼈댔습니까?》 

《그랬소?…》 

《승진연출가가 좋아한 옷입니다. 이건…이건… 정말 저만 압니다.》 

로영무는 그 녀자가 어떤 옷을 입고 나왔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전혀 인상에 없는 수수한, 우유빛에 가까운 미색옷이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만 어렴풋이 들었다. 

《연출가동지, 좀 있다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그는 돌아서 다시 어스름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졌다. 

로영무는 잠시 서있다가 한숨을 후- 내쉬고는 발소리를 죽여 며 복도를 왔다갔다 거닐었다. 편집기앞에 엎드려 눈물짓는 윤희의 모습이 눈앞에 언뜻언뜻 비껴들었다. 그리고 이 끝없는 정적속에서 자기의 우정과 의리와 량심이 검열받는듯싶으면서 마음이 불안해지고 조바심까지 들었다. 그 무슨 흠이나 죄라도 드러난듯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산산 박산이 되는듯한 굉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분명히 편집실에서 울려나온 소리였다. 

로영무는 화닥 놀랐다. 그는 불길한 예감에 떠밀려 방문을 황급히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형광등불빛에 대낮처럼 환하고 아늑한데 편집기앞에서 윤희가 천천히 일어나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마에 흘러내린 몇오리 머리칼, 이슬기에 젖은 속눈섭, 불빛이 미끄러지는 해쓱한 얼굴에 어른거리는 그늘… 

로영무는 그 녀자한테로 다가갔다. 

《일없소?》 

《…》 

《이자 무슨 소리가 났는데…》 

《예?》 

《내가 잘못 들었나…》 

다음 순간 그 녀자의 발밑에서 은빛을 반짝 발산하는것이 눈에 띄였다. 편집가위였다. 그것이 팔굽이나 어디에 밀려 편집기에서 떨어진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어찌하여 그토록 과장되여 가슴에 메아리쳤는지… 어쨌든 안도의 숨이 나갔다. 

《저…필림에는 손상이 간데가 없소?》 

《예… 깨끗해요.》 

《다시 보니 어떻소? 좀 감동이 오오?》 그는 거의 비굴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예… 선생님, 수고했어요.》 

윤희는 편집기우에 널려진 필림쪼박지며 아세톤병을 대충 치우고 의자를 뒤로 밀어놓더니 무엇을 잃었는지 방바닥을 살펴보았다. 편집가위를 띄여보고는 좀 놀란 기색으로 그것을 얼른 쥐여 편집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릴념도 안하고 무슨 용무가 있는지 황황히 방에서 나갔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무슨 말을 더 물을가봐 두려운듯이…

이튿날 아침 작업필림을 당에 올려보내였고 사흘후에는 박경섭으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왔다. 친애하는 그이께서 서해안지방으로 현지지도나가시였기때문에 더 기다리라는것이였다.  

로영무는 속이 달아올라 그이께로 따라나가 지도받게 해달라고 거듭 제기하였다.

 

× 

 

지나간 해빛에 얼룩진 포장도로가 물결치며 달려와 차체밑으로 날아들고 가로수들이 차창밖으로 휙휙 날아지나갔으나 로영무한테는 차가 굼뜨게만 달리는것 같았다. 

곁에 앉은 박경섭이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작업필림을 두번 보시고도 조선소로 현지지도나가시면서 그것을 차에 싣고 가시였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로영무의 마음은 걷잡지 못하게 뒤설레였다. 

(어떻게 되여 두번씩이나 보시고도 아무 말씀도 없으신가? 혹 어떤 때엔 너무 기뻐 거듭 보신 경우도 있었는데… 아니… 조선소로 가지고가신걸 보면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게 아닌가…) 

몇달동안 고생한 결과가 이제 한시간후이면 판가리될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불안과 긴장으로 가슴에 재만 쌓이는듯싶었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어서 그이를 만나뵙고싶었다. 곁에 앉아있는 박경섭은 아무 말도 안하지만 벌써 무슨 기미를 느꼈는지 불안의 빛이란 전혀 없었다. 로영무는 그가 예술에 아무리 리해가 깊다 해도 창작가로 있어본적이 없기때문에 작품을 내놓은 작자의 불안이랑 어떤것인지 잘 모르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유한 표정에 슬그머니 반감까지 들었다. 

그는 재빛이 도는 숱진 눈섭을 찌프릴사하고 침울한 눈으로 차창밖만 내다보았다. 

바다가의 조선소는 20 000t급 대형화물선조립에 들끓고있었다. 

바다가에 서있는 다층아빠트만 한 크기의 선체에는 사람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었는데 그 곁에서는 문형기중기들이 위혁적인 동음을 울리면 조립품들을 쉬임없이 들어올리고 배의 선수와 선미, 현측 그 어디에서나 파란 용접불꽃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안전모를 쓰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선박공업부문의 여러 일군들과 함께 선체곁에 붙은 쇠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와 로영무와 박경섭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현지촬영에서 흙빛으로 탄 로영무의 얼굴을 다시 여겨보시였는데 언제나 여전하신 그이의 밝은 안색으로는 작품에 대한 평가정도를 전혀 가늠할수 없었다. 

《의견을 인차 주지 못해 안됐습니다. 왔던김에 이 배에도 올라가 돌아보십시오. 굉장합니다. 하나의 큰 공장맞잡입니다. 우리 로동계급이 자체의 기술과 자재로 만드는것입니다. 세계 여러 대륙으로 다닐 무역선입니다.》 

《예…》

《배를 한바퀴 돌아본 다음 영화를 같이 보고 토론해봅시다.》 

로영무는 조선소 기사장의 안내로 배를 돌아보았는데 걸음마다 로동계급의 비상한 창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그 과정에 배무이와 영화창조를 슬그머니 비교해보게도 되였다. 배에 골조가 있다면 영화에는 이야기줄거리가 있었다. 배에 형태적양상이 있다면 영화에는 형상적양상이 있었다. 배가 기계공업, 전기공업, 화학공업, 전자공업, 건축기술의 종합적인 창조물이라면 영화는 모든 예술종류들의 종합적인 창조물이였다. 

영화창조… 고분자화학의 기적인 36mm 필림에 인간생활을 반영하는 일에 한평생 골몰해온 그는 대형원양화물선이라는 이 거대한 구조물을 돌아보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넓어지고 담이 커지는듯했다. 

땅바닥에 내려섰을 때 로영무는 그이께서 느끼는바가 있으라고 배구경까지 시켜주지 않았는가싶으면서 가슴이 후더워졌다. 

그날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소에서 가까운 한 초대소에서 로영무와 박경섭을 량옆에 앉히고 영화를 다시 보아주시였다. 

영사막에 화면이 흐르기 시작하자 로영무는 마음이 긴장되여 숨도 편안히 쉬지 못하였다. 지주집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고역에 시달리는 꽃분이 어머니… 몸져눕는 어머니… 어머니의 약값을 구하려고 꽃을 파는 꽃분이… 꽃을 판 돈으로 약을 사가지고 집으로 오다가 비를 맞는 꽃분이와 순희… 그들을 동정하는 마을사람들… 어머니의 죽음… 장면이 바뀔 때마다 로영무는 그이의 안색에 마음을 썼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내내 팔짱을 낀채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댈사하고 화면을 바라보시였는데 언제봐야 심중한 안색이였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한마디 말씀도 건네시지 않았다. 

불이 켜졌을 때 그이께서는 명상적인 눈빛으로 연출가를 돌아보시였다. 

《영화가 괜찮게 됐습니다. 이만큼 만들기가 헐치 않을것입니다. 촬영소에서는 어떤 의견들이 제기됐습니까?》 

뒤좌석에 앉은 박경섭이 미소어린 얼굴로 그이께 말씀드렸다. 

《별다른 의견들이 없습니다. 모두 성과작이 되겠다고 기뻐한것 같습니다. 특히 총장동무는 아주 만족해서… 롱담이겠지만… 자기가 옥류관에서 연출가한테 한상 내겠다고까지 했답니다. 허허…》 

그이의 눈가에 알릴듯말듯한 미소가 어리였다. 

《총장이 그랬답니까?》 

《예…》 

《그러니까… 의견을 낸 동무가 한명도 없었습니까? 한명도…》 

로영무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씀드렸다. 

《내놓고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 우리 편집원 윤희동무가 좀 불만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승진동무 안해가요?》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무슨 불만입니까?》 

《아직 구체적인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영화가 잘되기를 제일 간절히 바라는건 아마 그 녀성일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의견을 들어봤더라면 진심이 밴 목소리를 들었을게 아닙니까. 비록 말단단위에 있는 편집자이지만 … 행정직위가 높다고 다 옳게 판단하는건 아닙니다. 개성적요인이 많이 작용하는 예술작품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소홀했습니다.》 로영무는 자책감에 잠겼다. 

《그 녀성이 어떤 불만인지 모르겠지만 불만이 있다는 그 자체를 나는 좋게 생각합니다. 불만은 요구성이 높기때문에 생기는게 아닙니까… 물론 영화는 괜찮게 만들었습니다. 미끈하게… 수준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더 잘 만들수 없었겠는가, 원작의 심오한 사상감정이 다 표현됐는가?》 

그이께서 얼마나 격조높이 말씀하시는지 말이 아니라 열을 그냥 내뿜는것 같으시였다. 

《모욕으로…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래 한생을 예술에 바친 로영무연출가가 형상의 질을 이 수준으로밖에 올리지 못한단말입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나는 총장의 그 무사태평한 락천주의에 분개합니다. 오작이냐, 성과작이야 나한테 묻는다면 성과작이라고 소리치지 못하겠습니다!》 

뒤좌석의 박경섭이 사태가 이렇게 뒤집히자 눈이 휘둥그래져 그이를 쳐다보았다. 

《지금 우리한테서 작품평가의 기준이 어떻게 돼있습니까. 이전에 나온것들에 비해 한미리, 한걸음이라도 전진했으면, 기여했다고 만세!… 성과작이라는것입니다. 이런 인이 배긴 관습, 이 낡은 기준을 결정적으로 타파하지 않고는 솟아오를수 없습니다! 성과작을 많이 만들고싶어하는 일군들의 공명심때문에 이런 기준이 깨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짓부셔버려야 합니다!》 

로영무는 눈앞이 핑 돌아 눈을 감으며 한손으로 식은땀이 내밴 이마를 쓸어만졌다.  

《지금 이 영화의 형상… 그 질을 금속에 비겨 말하면 연이나 은정도입니다. 백금은 아닙니다. 금은 더욱 아니고… 금강석도 못되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그이께서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의자들사이의 통로로 왔다갔다 거니시다가 로영무앞으로 다시 돌아와 두손을 격렬하게 흔드시였다. 

《우리것은 … 조선것은 어째 오늘도… 우리 시대에 와서도 예나 다름없는 수준에서 앉아뭉개야 합니까? 어째 황금이… 금강석이 못됩니까? 우리가 렬등한 민족인가? 우리한테 무엇이 모자랍니까!》 

박경섭은 그이의 음성이 높아지자 긴장된 낯빛으로 창문쪽을 돌아보았다. 

《로영무연출가는 어째 세계적인 연출가로 못됩니까? 사실 나는 승진동무가 간 다음 기대를 걸었댔습니다. 크게… 그런데 이 수준이란 말입니까? 밤낮 후줄근해져서… 소심성에 빠져서… 총장의 눅거리 찬사에나 만족하는 졸부가 돼서는 안됩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영화의 형상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갔습니까!》 

로영무는 눈앞이 그냥 어지럽게 돌아갔다. 총장과 윤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가 어딘가 침침한 뒤골목의 움속에 있다가 해빛 밝은 세상에 나선듯싶으면서 이름할수 없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난생처음 자신의 개성과 인격과 무능에 대한 환멸감이 밀물처럼 밀려들며 자존심이 꺾인듯한 의분이 가슴밑창으로부터 솟구쳐올랐다. 

그는 어금이를 모질게 악물고 그것을 삼키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다시… 다시… 해보겠습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끓어번졌다. 

그 눈물이며 피타는 목소리가 그이의 흥분을 진정시킨듯했다. 

《결심하고 고쳐봅시다!》 

그이께서는 부드럽게 말하며 로영무곁에 나란히 앉으시였다. 로영무는 고개를 수굿하고 험한 령마루로 치달아오른 사람처럼 단숨을 몰아쉬였다. 

그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담담해졌다.

《연출가의 로숙한 형상수완이 흠집을 많이 감춰버렸더군요. 영화가 처음에 대본을 보고 기대했던것보다는 감동이 훨씬 적습니다. 왜 이렇게 되였는가. 여러모로 생각해봤습니다. 도저히 마음놓을수 없어 필림통을 여기까지 싣고왔습니다.》 

이때까지의 흥분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그이의 얼굴에 침착하고 인자하신 빛이 어리였다. 

《오늘까지 세번 보니 감동이 적은 원인이 뚜렷이 알립니다… 어떤 대예술가도 창작실천에서는 흔히 가장 초보적인 문제를 망각하기 일쑤라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왜 감동이 적은가?… 》 

그이께서는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시였다. 

《어머니의 죽음장면부터 해부해들어가면 작품의 전반적인 병집을 들어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로영무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였다. 그 순간 자기가 창조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와 심혼이 번듯이 드러누워 수술칼을 기다리는듯한 긴장과 불안과 공포를 느껴서였다. 

《영화에서는 꽃분이와 순희가 숨진 어머니한테 매달려 목청껏 통곡하며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물이 나지 않고 고아로 된 두 딸한테 강한 동정심도 가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가 없어 안됐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이 장면부터 해부해들어가야 합니다.》 

로영무는 놀란 눈으로 그이를 돌아보았다. 그이의 눈에 미소같은것이 빛나고있었다. 

《어머니가 죽었으니 딸들이 그렇게 우는것은 리해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론리적인… 리성적인 인식이고 판단이지 감성적으로는 그 울음이 가슴을 크게 울려주지 못하고있습니다. 바로 여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앙상한 론리만으로는 예술이 안됩니다. 감정에 안받침될 때, 감정적인 론리로 될 때 형상은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며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들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 장면이 왜 이렇게 되였겠습니까. 이 장면자체의 결함인가? 이 장면자체는 나무랄데 없이 형상되였습니다. 전제가… 감정적인 전제가 약하기때문입니다. 감정축적이 약합니다. 병은 썩 앞장면들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친애하는 그이께서는 그 앞장면들을 더듬어보시는듯 영사막쪽을 내다보시였는데 쪼프릴사한 눈에서 그윽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이께서는 전 생활에서 오가는 정이 깊어야 어머니가 숨진 다음 딸들이 그렇게 우는것이 감성적으로 울려올것이라고 하면서 가난속에서 자식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더 잘 그려줘야 한다고 하시였다. 

《병약한 자기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가는 어머니, 자식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노력과 사랑에 의지하여 자라나는 어린 자식들… 이런 전제가 강해야 어머니의 죽음이 산 모성의 죽음으로 되며 진실한 슬픔을 자아낼것이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온 심장으로 그 슬픔을 체험하시는듯 안색이 흐려졌다가 다시 환히 밝아졌다. 

《어째 이런 문제를 소홀히 하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주일가와의 갈등에 치중하다나니 그렇게 된게 아닙니까?》 

로영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단재를 들쓴듯이… 전류같은것이 그의 뇌리를 찌르르 꿰지르며 지나갔다. 

《둘째로 영화에 마을사람들이 꽃분이네를 동정하는 설정이 많은데 그 동정선을 거의다 잘라버려야 할것 같습니다.》 

《예?》 로영무는 얼결에 이런 소리가 나갔다. 

《동정자가 많으면 그만큼 관중들의 동정이 덜 가게 됩니다. 가혹한 착취와 압박으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이 남을 돌봐주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형편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마음이 있어도 그렇게 할수 없었을것입니다. 이것이 생활의 엄혹한 진실입니다. 물론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죽지 못해 살아가는 마을사람들로서는 꽃분이일가에 대한 동정이 한갖 마음뿐일것입니다. 꽃분이네와 주위사람들의 관계가 이렇게 그려져야 진실하고 또 어머니를 잃은 자매에게 동정심이 더 가며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지 우려되여 극적인 기대도 생기게 됩니다. 주인공이 의지할데가 많으면 불쌍한 생각이 덜 나지 않겠습니까. 동정선들을 대답하게 쳐버립시다.》 

《옳습니다.…》 박경섭이 한숨섞인 소리로 속삭이였다. 로영무는 략자를 섞어가며 그이의 말씀을 놓칠세라 수첩에 적어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계속하시였다. 

《불행이란 예고없이 불의에 닥치는 수가 많습니다. 영화에서도 이렇게 돼야 비극적인 감정이 강하게 폭발될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꽃분이와 순희가 약을 사가지고 오다가 비를 맞아 나무밑에서 오돌오돌 떠는 장면이 어머니의 죽음앞에 있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것들의 운명을 보여주자고 한것 같은데 이 장면을 결정적으로 반대로 가져가야 합니다.》 

《…?》 

《비를 맞아 나무밑에서 오돌오돌 떠는 장면이나 어머니의 죽음장면을 감정의 색조로 보면 다 같은 류의것입니다. 앞장면이 좀 어두운 색조라면 뒤장면은 아주 어두운, 캄캄한 색조입니다. 좀 어두운데서 아주 어두운데로 넘어가서는 강한 극적감정이 폭발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앞장면의 색조를 반대로 아주 밝게 해야 합니다. 

약을 사가지고 돌아오며 이제는 어머니를 살릴수 있게 되였다고 기뻐하는 순진하고 천진란만한 어린것들의 랑만적세계를 펼쳐보이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더 깊은 진실입니다. 기쁨에 떠서 웃고 노래하면서 그들만이 주고받을수 있는 랑만적인 꿈을 이야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어머니의 죽음… 이렇게 돌변해야 강한 극적감정이 폭발됩니다. 어린것들의 기쁨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판이한 감정세계를 대조시켜야 그 애들에게 타격이 더 세게 가해지고 따라서 관중의 동정심도 백배로 더해질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인정심리극이기때문에 감정조직을 잘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감정조직이 잘되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기본결함인것 같습니다. 감정조직은 감정세계의 긴장과 완화, 축적과 폭발… 이런 식으로 돼야 사람들이 심금을 틀어잡을수 있습니다!》 

맥없이 처졌던 영화의 감정선이 갑자기 팽팽히 조여지며 탄력성을 띠는것이 온 신경으로 느껴졌다. 로영무는 순간에 그 어떤 탄성체의 떨림이 밀려드는듯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리고 기운차게 파도치는 영화의 흐름이 눈앞에 넘실거리고 연출방향이 환히 내다보였다. 숨이 차오르고 환성을 터뜨리고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침착하고 심중한 안색으로 휘갈겨쓴 글줄들이 엇비스듬히 비껴올라간 로영무의 수첩장을 건너다보시고는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 생각에는 어머니와 자식들간에 오가는 정을 강조하는 문제, 동정선들을 대담하게 자르는 문제, 약을 사가지고 오는 장면을 반대로 설정하는 문제… 이 세가지… 감정조직만 잘하면 영화가 훌륭하게 완성될것 같습니다. 연출가동무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로영무는 저도 모르게 제 무릎을 꽉 움켜잡으며 전률했다. 

《고치겠습니다. 이젠 되겠습니다!》 

《연출가가 흥분하니 됐소!》 뒤좌석의 박경섭이 웃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지 않으시였다. 

연출가의 이른 흥분이 무슨 실책을 빚어내지 않을가 오히려 우려되시는듯 매우 진중한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가서 잘 생각해보고 깊이 타산해봐야 합니다. 큰 결심을 품고 정말 손색이 없는 명작을 만듭시다!》 

그이께 인사를 드리고 먼저 밖으로 나온 로영무는 가슴이 불에 덴듯 얼얼해져 한동안 현관 층계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씻었다. 저 멀리에 바라보이는 원양화물선선체에서 쇠메로 무슨 강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쾅-쾅- 울려오며 대기를 흔들었다. 선체가 통채로 하나의 북처럼 울리며 로동계급의 담력을 시위하는듯했다. 로영무는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저 원양선의 선체처럼 자기도 하늘땅에 넘치도록 무엇이라고 함성을 터뜨리고싶은 충격에 떠밀려 바다가로 걸어나갔다. 그는 활개를 훨훨 저었다. 서쪽 하늘에 떠있는 은회색 구름장들이 흩어지며 여러가닥의 해빛이 부채살처럼 쏟아져내리고 그밑에 펼쳐진 바다는 별안간 눈부시게 반짝이며 거창하게 숨쉬였다. 

(됐구나!… 되겠어! 윤희… 윤희동무 이제는 되겠소! 좀 기다리오!) 

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걸어가는 연출가의 가슴에 그이의 말씀들이 환희의 메아리를 일으키며 금언처럼 울려오고 그이께 이끌려온 지난날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 저 열정과 지혜! 참으로… 참으로 놀라운 지혜다.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얼마나 깊이 아시는가, 정치가들이 모두 저렇게 인간감정을 깊이 리해한다면 세상은 한결 살기 좋아지고 평온해질게다. 아, 김정일, 저이야말로 예술의 천재, 예술적인 정치가가 아닌가!) 

뒤쪽에서 누구인가 목청껏 부르는 소리가 났다. 로영무는 놀라서 돌아봤다. 

박경섭이 이쪽으로 달려오며 머리우에 검은 판대기같은것을 쳐들어 흔든다. 

《로영무- 이거- 이걸-》 

로영무는 그제야 자기가 자리에 삼면쟈크가방을 두고 나왔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웬일인지 목이 꺽 메여올라 웃음도 나가지 않는다. 그의 머리우에서 흰 갈매기들만 청높이 탄성을 지르며 날아돌았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