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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7
자정이 훨씬 지나 촬영소에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숙이 깃든 집무실에서 보아야 할 문건들을 다 보고 처리하여 하루일을 매듭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심한 피로를 느꼈으나 하루동안에 토의하고 지시하고 결론하고 처리한 문제들을 다시 돌이켜보며 낱낱이 검토해보신 다음에야 탁상등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퇴근하려고 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시던 그이께서는 웬일인지 마음이 홀가분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잊은듯한 느낌에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언제나 이런 느낌을 소홀히 스쳐버리지 않았으며 그 까닭을 안다음에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왜 이런가… 어디서 오는 느낌인가?…) 그 까닭을 알수 없어 몹시 불안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고요한 집무실안을 대각선으로 왔다갔다 거니시다가 창가에 멎어서시였다. 어둠에 덮여 깊이 잠든 수도의 어슴푸레한 야경이 바라보였다. 기관건물들과 주택지구들에 불빛이 다 꺼졌고 거리들에만 가로등이 외줄로 켜져있었다. 그이께서는 모두숨을 조용히 내쉬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수백수천갈래 사업선의 어느 고리에서인가 불길한 일이 생긴듯하고 오늘 처리한 문제들중에 분명히 미흡한점이 숨어있는것 같은데 무엇인지 짚어내실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창가에서 돌아서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한손을 허리에 올리시였다.… 착잡한 의혹의 안개속에서 문득 한 청년예술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촬영현지에 올라온 부연출 강철룡이다. 그는 꽃분이역을 맡은 배우의 어머니가 감기인지 앓는것 같다고 하였다. 주의를 집중하여 영화흐름을 보며 수정안을 생각하느라고 그 문제를 미처 밝혀보지 못했던것이다. (그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이 좀 놓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촬영소 총장이나 누구를 전화로 찾으려다가 그들이 이제는 깊은 잠에 들었으리라 생각하고 그만두시였다. 그것은 래일 알아봐도 될 일인데 어째서인지 또다시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며 조바심까지 들어 그냥 퇴근하실수 없었다. 감기가 맞는가… 혹시 감기가 아니고 다른 중병이라면… 그이께서는 탁상등을 켜고 여러 사업수첩을 펼쳐보고 배우의 고향주소를 간신히 알아내신 다음 그곳 군당책임비서를 전화로 찾아보시였다. 군당책임비서도 무슨 시름때문인지 퇴근하지 못하고있었으며 그 군에 이러이러한 배우의 어머니가 살고있는것을 아는가고 물으니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안다고 대답하였다. 목소리만 들어봐도 억척스러운 모습이며 걸걸한 성미가 가늠되였다. 책임비서는 옛날에는 개천에서 룡이 날아오른다는 속담이 있었는데 우리 군에서 영화배우가 났으니 산골에서 선녀가 날아오른셈이라고 군사람들이 자랑한다면서 앞으로 그의 가족을 잘 돌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의 어머니가 앓고있는것 같은데 좀 알아봐주십시오. 무슨 병인지…》 《예?… 앓는건 모르겠습니다. 어제도 제가 만났습니다.》 《아는 사이입니까?》 《군당에 몇번 찾아와서 알게 됐습니다. 요새 그 집에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시기 전사하고 삼촌이 그집 살림을 떠메고 나갔댔는데 전후에 그만 행방불명이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책임비서의 이야기는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를 상기시키면서 한 가정의 사연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하였다. 손영실의 어머니는 전쟁시기 서해바다가 영진포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받았으나 비감에 쓰러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아이들을 키워왔는데 시동생이 제대되여 집으로 돌아왔다. 기운이 장사같고 성미가 쾌활한 그는 어렵지 않게 집을 번듯하게 수리해놓고 수산협동에 들어가 어로반장으로 일하며 가정살림을 떠메고 나갔다. 어머니한테는 의지가 생겼다. 어느덧 그늘이 드리웠던 집안에 생기가 돌고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여났다. 아이들은 삼촌이 일을 끝내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바다가까지 달려나가 마중하군하였다. 어린것들한테는 그 총각삼촌이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던것이다. 삼촌은 수산협동에서 성수가 나서 일했다. 조합은 전화의 피해로 령세해졌지만 작은 배들과 낡은 어구들을 수리해가지고 먼 수역에까지 나가 어로전을 벌려 복구건설이 한창인 공장지구의 후방공급사업에 괜찮게 보탬을 주고있었다. 제대군인어로반장은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어로전에 참가하였으며 사람들의 앞장에 섰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어느날 새벽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로수역에 늘인 그물을 살펴보려 사돌배를 저어 바다로 나갔는데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갑자기 일어난 풍랑에 배가 뒤집혔는지, 무슨 불상사가 생겼는지… 저 집이 우리 군에 이사왔을 때 구구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몇해가 지나서 수산조합관리위원장이 우리 림산에 출장왔다가 저한테 인사하러 들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있은 동무입니까?》 《예… 이야기끝에 그의 실종에 대해 물었더니 한참 망설이다가 모든 흔적으로 보아 우리 수역에 잠입했던 간첩선에 랍치되여 남으로 끌려간게 분명하다는게 아닙니까.…<당위원장한테 찾아가서 갑자기 일어난 풍랑에 배가 뒤집혀 행방불명이 된것으로 말해주자구, 둘이서 짜구 랍치돼갔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기로 했지요. 당위원장두 같은 심정이였습니다. 그후 친척들한테 의지해살라고 내륙지방 여기로 이사시켰지요.> 환갑이 넘은 관리위원장아바이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제손을 꼭 잡고 그런 사람이 끌려갔다고 적이 됐겠는가 … 이 사실은 비서동무 혼자 알구 애들이랑 잘 보살펴달라구 부탁했습니다. 애들은 남부럽지 않게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달포전 영진포에 갔다오더니 일이 생겼습니다. 거기 누구한테선가 그때 그 어로수역에 한달이상 풍랑이 없었다는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군당에 거듭 찾아와서 삼촌문제를 해명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어제는 저한테 찾아와서 신경이 약해졌는지 눈물까지 보이면서 그가 어디로 도주했는가, 랍치돼갔는가, 그랬으면 그랬다고 진실대로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런 사실을 터놓아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 어린 딸이 벌써 영화배우까지 됐는데 뭣이 모자라서 이러는가고 좋지 못한 소리까지 해서 돌려보냈는데 그래놓고보니 저도 속이 좋지 못했습니다. 촬영소 딸이 어머니를 달래는 편지까지 써보냈다는 말이 도는걸 보면 그 동무도 이 일을 아는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안색이 심각해지시였다. 《… 행방불명이 아니라 랍치돼간게 사실입니까?》 《저희들도 따로 알아봤습니다. 사실입니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맥없이 놓고 안락의자에 가 앉아서 눈을 감으시였다. (아, 아버지가 없는 그 어린 처녀한테 삼촌문제까지!…) 거창하게 설레이는 바다, 기슭을 들부시는 파도… 바다가에 옷자락을 날리며 서서 달빛어린 수평선쪽을 끝없이 바라보는 녀인의 구슬픈 자태가 떠오르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련민과 쓰리고 아픈 마음에 가슴이 터져나가는듯하시였다. 한시도 쉬임없는 파도소리는 밤마다 어린것들의 여린 마음을 얼마나 자극했겠는가… 어머니가 홀로 자식들을 키우자니 서러운 일, 속탄일은 얼마나 많았으랴… 문득 배우선발때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나어린 처녀의 아련하면서도 구슬픔이 밴듯한 얼굴인상은 이런 슬픔이 그려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담배가치에 불을 붙이시였다. 파르스름한 담배연기가 라선을 그리며 날아오르고 촬영소에 나가 본 영화화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꽃분이의 연기수준이 한결같지 못한것, 넘치던 감정이 움츠러들기도 하고 아주 잦아버리기도 한 까닭이 비로소 느껴지시였다. (어린 마음에 그런 고민을 누르며 연기형상을 하자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만큼 한것도 용치… 기특해…) 이튿날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출근하자마자 권위있고 능력있는 한 전문기관에 랍치된 어로반장의 운명에 대하여 알아볼것을 의뢰하시였다. 닷새후 그이께서 새벽까지 대극장에서 일을 보시고 집무실로 돌아오니 놀라운 회보가 들어와있었다. 적들이 바로 그날 우리 수역에서 해적행위를 한것은 사실이나 끌어간 사람들중에서 그런 어로공은 찾을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럼 랍치된 사람이 어디로 갔소?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이께서는 곁에 와있던 박경섭에게 흥분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그는 얼굴빛이 심중해졌다. 《참 이상합니다. …》 《이상할건 아무것도 없소. 명백하오. 나한테는 명백하오. 남쪽수역에서 피살됐소. 그런 사람이 조국과의 인연을 순순히 끊고 끌려가자고 했겠는가. 무섭게 저항했을거요.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싶소. 이건 한 사람의 정치적생명과 관련되는 문제요.》 그이께서는 또다시 수산부문과 해운부문, 해군사령부의 해당기관들에 그 실종사건의 조사를 의뢰하시였다. 이틀후부터 수산과 해운 부문에서 여러가지 조사보고가 올라왔는데 모두 믿을만한것이 못되였다. 그러나 해군사령부의 해당 기관이 보고한, 여러해전에 페기된 순찰정의 항해일지에서 찾아냈다는 자료는 주목할만한것이였다. 그 순찰정은 사건이 있은 날로부터 보름이 지나 위도 38˚와 37˚사이의 공해를 항해하다가 파도우에 떠있는 사람의 잔등같은것을 발견했다. 접근하여 건져보니 파도에 부대껴 넝마처럼 된 작업복저고리였다. 옛 순찰정의 정장은 매우 다감한 군관이였던지 이런것까지 적어넣었다. 색갈은 밤색, 탄알에 구멍이 숭숭 뚫림, 근처의 수역에서 모종의 사살행위가 있은것이 분명함, 감시를 강화할것! 그이께서는 설마한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전화로 군당책임비서를 찾아 처녀의 어머니한테 어로반장이 그때 어떤 색갈의 작업복을 입고있었는지 알아보라고 이르시였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그이께서는 갑자기 가슴이 타드는듯하여 일을 손에 잡지 못하시였다. 매우 불안하고 초조한 안색으로 방안을 거니시는가 하면 의자에 앉아 담배를 연거퍼 피우며 회답을 기다리시였다. 한시간도 퍽 더 지나 전화종이 울렸다. 군당책임비서였다. 밤색이라고 했다. 곁에 있던 박경섭이 흥분하여 웨쳤다. 《그의 작업복입니다! 이제 무엇을 더 의심하겠습니까?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에 앉으며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기를 천천히 씻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보증서겠습니다.… 촬영소에도 알려주고 군당에도 통보해주시오.》 《제작단에는 주영도비서가 가서 손영실동무에게 직접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주영도동무를?…》 《그럼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아니… 아니… 연출가가 말해주었으면 좋겠소. 요새 나는 연출가에 대해서 줄곧 생각해왔소. 연출가는 처녀의 어머니가 감기같은걸 앓고있는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이런 엄청난 문제가 있었단말입니다. 연출가와 배우사이에 … 그만큼 거리가 있었소. 배우의 가슴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색색의 감정을 계발해내자니 얼마나 힘들었겠소》 《연출작업에 청산리정신을 구현하여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워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는데 로영무동무가 아직도 낡은 연출수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약점을 느끼면서도 저희들이 잘 돕지 못해 이렇게 되였습니다.》 《연출가가 이 소식을 직접 말해주도록 합시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계기로 될지 알겠소… 그리고 어머니를 평양으로 아주 데려옵시다. 마음고생을 많이 해왔는데 이제는 자식들과 함께 한껏 락을 누리며 살수 있도록 … 그 동무가 앞으로도 아무 근심걱정없이 창조사업을 할수 있도록 해줍시다.》 창문에 새벽빛이 희읍스름하게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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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생차는 속도를 늦춤이 없이 시내물가로 뛰여들었다. 마치도 밑에서 폭발이 일어난듯 싯허연 물갈기가 차체량쪽으로 날아올랐다. 차는 물을 가르며 내달리고 일렁이는 수면에서는 해빛이 부서져 숱한 불꽃들이 날름거리는듯하였다. 로영무는 안전띠를 붙잡고 그 불꽃들의 눈부신 반짝거림을 내다보고있었다. 괴로운듯하면서도 심각한, 그러면서도 격정이 물결치는 얼굴이였다. 이른아침 군당에 불리여나가 친애하는 그이의 전화를 받고오는 지금 그는 자기를 뒤에서 떠밀어주는 거대한 힘을 가슴벅차게 느낌과 함께 모진 가책으로 심장이 비틀려지는듯 아파났다. 철룡이한테서 손영실의 어머니가 앓는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째 그처럼 스쳐버렸던가… 촬영 한곬으로만 마음이 내달렸기때문인가. 자기 혈육들중의 누가 앓는다는 소리를 들었더라면 어쨌겠는가, 손영실은 내가 아니고 남이며 그의 어머니는 더더욱 남이기때문인가… 이런 사람한테 누군들 가정사정이나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고 싶겠는가… 우리의 친애하는 그이… 그이께서는 인민이 곧 친혈육으로 되여있기때문에 한 전사의 근심이 곧 자신의 근심으로, 한 어머니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으로 된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심려하시고도 응당한것으로 여기며 로영무라는 이 허울만 있는 인간한테 나무람하는 말씀 한마디 없으시였다. 로영무는 그 말씀이 없는 공간에서 그이의 웅심깊은 마음과 인격을 느끼며 온 심혼을 뒤흔드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 어떤 성격의것인가를 몸서리치게 느꼈고 자기 사람됨됨이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듯하였다. 그리고 크나작으나 이와 비슷한 잘못이 자기 한생에 여러번 있지 않았는가싶은 느낌과 함께 자기 생활을 깊이 숨어서 은근히 조종한 그 무엇인가를 뒤집어엎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막혔다. 차가 내가의 둔덕진 길에 치달아오르자 그는 운전수한테 세우라고 소리쳤다. 로영무는 차를 먼저 보내고 고르롭지 못한 농촌길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갔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아침의 신선한 해빛이 눈을 찔렀다. 걸음마다 어슴푸레해지는듯한 눈앞에 한생의 일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최승진이와 처음 만나던 일… 한평생 계속된 우정… 시기심의 발작… 작품을 맡았다가 내놓은 일… 그는 괴롭게 한숨을 내쉬였다. 철룡이와 미혜의 관계를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한기석의 속심과 비행을 알면서도 체면이 깎일가봐 외면했었다. 리명선이 좌절감을 토로하며 떠날 때는 왜 호되게 꾸짖어 붙잡아두지 못했던가… (왜… 어째… 정은주의 소식은 전하지 못했던가. 시끄러운 말밥에 오를가봐 두려웠지… 수옥의 편지가 오는것도 부담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승진이가 내 경우라면 당장 달려와 알렸을것이다. 후에 무슨 화를 당하겠는가는 아랑곳없이 우선 심장이 시키는대로 했을것이다. 그는 심장을 설설 끓이며 불같이 살았다. 그래서 파란곡절도 겪고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률이 더 컸다. 그는 어쨌든 예술가였다. 아, 나는 무엇인가… 남의 아픔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 울타리를 쳐놓고 그속에서 소심하게, 비겁하게 살아온 속물이 아니였는가. 사람들의 관계속에 뛰여들기를 저어하고, 생활의 격류속에, 조국의 벅찬 현실속에 뛰여들어 함께 숨쉬지 못하고 늘 가녁에 비켜서 바라보기만한 관조자가 아니였던가… 나는 겉보기에 괜찮은 인간이고 예술인 같았지만… 실속은 뜨겁지 못한… 아니… 랭담한 리기주의자가 아니였던가, 여태 나는 자신의 허점을 깊이 느끼지 못했고 자기 정신적초상을 여겨보려고도 하지 않았어… 아, 김정일, 저 정신적거인의 태양열같은 사랑이 아니였던들 이런것을 느끼기나 했겠는가, 하루 살아도 불같이 살자, 달처럼 태양빛을 반사만 하는 차거운 위성이 되지 말자, 큰 심장, 불같은 심장, 청춘의 열정이 아니고는 저 위대한 천재의 뜻을 따를수도 받들어나갈수도 없다!) 로영무는 해빛이 눈부신 하늘가를 바라보다가 시내물쪽으로 허둥허둥 걸어갔다. 내물은 무엇이라고 조용조용 속삭이며 흘러내리고있었다. 해빛이 물속까지 비쳐들어 알릴듯말듯이 흐르는 모래들이 진귀한 보석가루처럼 반짝이였다. 그는 찬물을 욕심스럽게 퍼올려 세수를 하였다. 머리속이 찡 저려들며 마음이 좀 개운해지는듯하였다. 그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돌아서는데 누구인가 앞을 막아섰다. 그늘진 얼굴… 한기석이다. 어디엔가 앉아있다가 다가온듯 하였다. 《어디서 전화가 왔습니까? 저에 대해서 묻지 않았습니까?》 《아니네… 가자구, 가서 말하지…》 로영무는 부옇게 흐려진 눈으로 자기 아들벌이 되는 그를 지켜보았다. 《나도 말이네 이전에는 느끼지도 못했던 흠이 자꾸 떠오르네. 해빛이 밝아지면 보이지 않던 티도 다 드러나는 법이거든, 허허…》 그의 눈에 물기가 떨었다. 그가 한기석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는데 저 웃쪽에서 강철룡이 뛰여내려왔다. 댓걸음앞에서 멎어선 철룡은 놀란 눈으로 연출가를 지켜보며 숨을 헐썩거리였다. 《어째 걸어옵니까? 차는 먼저 보내고… 무슨 일입니까?》 《가자구, 가서 말하지, 꽃분이는 어디 있는가?》 《저-기… 저기서 연기련습을 했습니다.》 철룡이 가리키는쪽 버들방천곁에 꽃분이가 순희와 나란히 서있었는데 처녀는 벌써 무엇을 느꼈는지 한손을 볼에 대고 이쪽을 오도카니 지켜보았다. 로영무는 처녀에게 할 말을 생각하니 가라앉았던 격정이 다시 터져오르며 목부터 메여올랐다.… 말보다 먼저 그 아름다운 존재를 해빛이 눈부신 창공높이 추켜올리며 웨치고싶었다. (우리는 어떤 품에서 예술을 하느냐! 얘야, 세상을 향해 웨쳐라. 나를 보라고… 우리를 보라고!…) 그는 처녀한테로 뛰여갔다. 내내 상념속에서 앞을 막고있던 안개며 유리판이며 담벽이 산산 부서져 허공에 흩날리는듯한 환각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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