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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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성읍에서 십리가량 떨어져있는 상현리는 나지막한 야산들에 둘러싸인 양지바른 마을인데 군당에서 말한것처럼 그렇게 뒤떨어진 구석은 아닌것 같았다. 야산들에 과일나무들이 규모있게 심어져있고 포전들도 반듯하게 정리되였으며 산기슭을 따라 문화주택들도 적지 않게 들어앉아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초가집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데다가 시내가의 버들방천이며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우물터와 구새먹은 정자나무, 연자방아간자리, 지붕들에 열린 박이며 처마밑에 드리운 마늘타래, 귀를 간지럽히는 참새들의 우짖음소리와 황소의 영각소리 등으로 옛농촌의 운치를 어지간히 간직하고있는 동네였다.

로영무한테는 산촌의 그 서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흥분과 사색, 불안, 착잡한 걱정으로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싶이 했으나 피로를 몰랐고 촬영지에 오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듯 눈빛과 말에서 열기를 풍기며 창조성원들을 리 려관과 농가들에 신속히 분숙시킨 다음 지체없이 촬영준비를 하도록 엄격히 요구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말이 수다스러운 협동농장 부기장을 따라 마을과 그 주변 산과 골짜기들을 돌아보고 들길에 내려서 나란히 걷다가 쨋쨋한 해빛과 청신한 공기에 취하고 산촌의 가을풍경에 끌려 저도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되였다. 

그는 해빛이 눈을 찔러 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야산이며 버덩을 다시 둘러보다가 저 마을앞 시내가 버들방천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거기 키높은 버드나무의 까치둥지우에서 까치들이 야단스럽게 우짖으며 날아들고있었다. 

부기장아바이는 코에 건 구식안경알을 번뜩이며 그의 표정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저것들이 참 명물이거든요. 외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저렇게 야단들입니다. 저희들한테 온 손님인것처럼…》 

《예…》 

로영무는 산촌의 서경이 마음에 들었고 이전에 여기로 현지정찰나왔던 최승진이도 이 길을 밟았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엿본듯 부기장이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들은 다르거든요. 초여름에 왔던 연출가선생도 저 까치둥지에 맘이 끌려 그림까지 그려갔습니다. 늘 봐서 그런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로영무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림을 그렸습니까?》 

《그림뿐이겠습니까. 여기 달구지길, 산등성이, 나무, 바위돌이랑 돌아보며 숱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인차 영화찍으러 온다고 저 까치둥지랑 다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예…》

《사람이 좋습디다.… 여기 촌에서야 대접할게 있어야지요. 떠나기 전날 우리 집에 모셔다가 뜨끈한 순두부를 대접했더니 어릴적 고향 생각이 난다시면서 얼마나 맛스럽게 들겠습니까. 후-후- 불면서… 허허허… 그 선생은 안옵니까?》 

《…》 

《그럼 딴데서 왔습니까?》 

《…》 

《인차 오신다고 했는데…》 

로영무는 자기가 대신으로 왔다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괴로운 말을 하고싶지 않아 걸음을 떼였다. 부기장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다가 말없이 따라왔다. 

부기장의 말과 대본의 내용들을 머리속에서 대조해본 그는 최승진이 여기 자연의 일방적인 서경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형과 대상물들에 철저히 기초하여 장면들을 구상하였다는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아, 얼마나 진지했는가!) 

문득 재능에 진지성까지 겸비한 예술가 최승진의 모습이 위압적으로 떠오르며 목이 칼칼하게 말라들었다. 경쟁심비슷한 충동과 함께 분발하고 또 분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길같이 일어 걸음마저 기운차게 옮겨지게 되였다. 그는 부기장의 안내로 윤차녀할머니네 집을 찾아갔다. 

그 집에 꽃분이네가 들어있었다. 윤차녀는 오래동안 머슴을 산 할머니인데 손자가 온실분조장이였다. 

로영무가 그 집 뜨락에 들어서 주인을 찾자 윤차녀할머니가 반겨달려나와 인사하고는 손님을 가운데방으로 안내하였다. 

그 방은 꽃분이네가 든 방이였다. 

꽃분이 어머니와 꽃분이, 순희는 벌써 그 집식구가 다 된듯 둘러앉아 당콩깍지를 바르고있었다.

작달막하고 단단하게 생긴 윤차녀는 칠순이 넘었으나 총기가 밝은데다가 구변도 여간 좋지 않아 로영무와 마주앉자 손자자랑부터 엮어내렸다. 손자가 도량이 커서 자기한테 차례진 새 문화주택을 제대군인 분조원에게 넘겨줬기때문에 이런 낡은 집에서 그냥 산다고 하며 어떤 때는 손자가 마음을 너무 크게 써서 속상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큰 일을 맡아보는 손자한테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자기가 마당도 쓸고 집안도 거두기때문에 집주제가 이렇게 루추하니 나무람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로파의 말과는 달리 집안은 분망한 가을철의 농촌집치고는 깨끗하게 거두어져있었다. 알른알른 윤을 내여 얼굴까지 비쳐 어른거리는 장판바닥이며 사슴이 뛰놀고 학들이 날아내리는 하얀 벽장보도 눈길을 끌었지만 창턱에 주런히 피여있는 각가지 메꽃들은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꽃들은 창턱에 줄지어 세워놓은 대여섯개의 병마다 두세가지씩 꽂혀있었는데 어떤것은 망울이 졌고 어떤것은 꽃잎을 방싯 벌리고있었다. 

로영무가 너무도 희한하여 웬 꽃을 이렇게 많이 피웠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자기가 마음이 젊어지고싶어 그랬노라고 하며 입을 싸쥐고 웃다가 손님의 지체가 느껴졌는지 정색해서 꽃을 피우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달포전에 소식이 왔습꼬마. 여기 와서 꽃동산을 맨들어놓구 영화를 찍는다구… 부기장아즈바이 무슨 소리를 하지 않았슴등? 에그 글쎄 김정일선생님 그분이 책임비서한테 전화를 하셨다지 않습꼬마, 꽃동산을 맨들자믄 꽃이 많이 드는데 거기서 꽃을 댈수 없겠는가… 그래 우리 마을에서 맡아 집집마다 꽃을 피우게 됐습꼬마.》 

로영무는 가슴이 뭉클해져 윤차녀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고맙습니다.》 

《고맙기사… 김정일선생님 그분이 걱정하시는 일인데 어떻게 가만앉아있겠슴둥. 저 꽃을 피우느라구 아나 어른이나 정말 정성을 다했습꼬마…》

뙤창으로 비껴드는 락조의 부드러운 빛이며 밖에서 흘러드는 구수한 곡식냄새, 흙냄새에 한데 어울려 방안에 흐르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정든 향토의 속삭임처럼 가슴에 젖어들었다. 

《그분을 만나뵈운적이 있슴둥?》 

《예…》 

《에구 불버라… 저 꽃을 피우면서 잠두 아니와서 하루밤에두 몇번씩 일어나 꽃병곁으루 가게 됐습꼬마. 늙은게 주책이 없이 이러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와서는 늘 거기 매달려 마감에는 내가 야단을 쳤습꼬마. 눈독이 들문 꽃이 피지 못한다구… 남정들이 담배두 피우지 않았습꼬마. 담배독이 들가봐… 온 식솔이 닷새구 열흘이구 못본척하구있으니까 글쎄 저 명물이 어느새 저렇게 망울이 지구 꽃잎까지 벌어졌습꼬마.》 

로영무는 동화세계에 잠겨드는듯하여 시정에 젖은 부드러운 눈길로 꽃들을 여겨보았다. 

《할머니네 집에 든 이 세 동무들이 한식솔이 되여 영화에 나옵니다. 그런데 신식사람들이 돼서 옛날 내인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았는지 잘 모릅니다. 이 동무들한테 물동이 이는 법이랑 매돌질하는거랑 집에서 한약을 달이는 법이랑 좀 배워주실수 없겠습니까?》 

《그게사 못하겠습꼬마.》 

《세월이 많이 흘러 더러 잊지 않았습니까?》 

《에그, 여섯살때부터 손에 익힌 일인데 그걸 잊겠습둥?》 

이튿날아침 장미혜가 윤차녀할머니네 집에 찾아와서 꽃분이를 분장시킬 때 지나가던 아낙네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퇴마루에 빼곡이 올라서서는 숨을 죽이고 그 구경을 하였다. 그들은 처녀의 모색이 점점 달라지자 너무 놀랍고 신기하여 혀를 차기도 하고 키득키득 웃기도 하였다. 장미혜가 꽃분이의 머리에 탐스러운 머리태를 달아주고 그 끝에 자주빛 갑사댕기까지 들여 아득한 옛날의 시골처녀로 만들어놓자 아낙네들은 살같이 흐른 세월이 앗아가버린 자신들의 꽃나이시절이 떠올라 아릿한 향수에 목이 멘듯 한마디 말도 못하였다. 

누구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에그, 저 갑사댕기… 신통해라…》 

《형님 머리태두 그때사 저랬겠지?》 

《어쨌던지…》 

《저런 머리태에 동백기름을 바르구 장거리에 나가문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범의 꼬리 풀리는 소리같은 휘파람이 홱홱거렸다니…》 

《에그, 망측한 소리… 가슴이 발칵 뒤집힌다!》 

성미가 괄괄한 북방의 아낙네들은 서로 어깨도 치고 옆구리도 찌르면서 깔깔 웃어댔다. 

그때 부엌문이 열리고 로영무가 물동이를 옆에 낀 윤차녀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로영무는 꽃분이를 불러내여 할머니가 물을 긷는것을 보고 그대로 련습해보라고 하였다. 

윤차녀는 집앞의 우물터로 나가 바닥이 말라버린 우물에서 드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려 동이에 부어넣는 시늉을 몇번 해보였다. 그리고 동이를 머리우에 이고 집으로 조심조심 걸어들어왔다. 

퇴마루의 아낙네들이 마당으로 우르르 밀려내려와 그것을 구경하였다. 

로영무는 마당복판에 꽃분이와 나란히 서서 눈을 쪼프릴사하고 윤차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차녀는 한손으로 동이손잡이를 잡고 눈을 아래로 내리깐채 한결같은 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들어왔는데 얼굴이 새색시처럼 새침해서 구경하는 아낙네들이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그러다가 나이 지숙한 로영무의 심각한 얼굴빛에 눌려 인차 웃음을 거두었다. 

로영무는 허리를 굽힐사하고 꽃분이에게 속삭이였다. 

《걸음이 저렇게 한결같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동이에서 물이 철렁거려 밖으로 흘러넘칠수 있거든. 보라구, 할머니는 걸어가지만 동이는 오르내리기는커녕 미끄러져가는것 같지 않아… 저렇게 머리에 이여나르는걸 민속학에서는 두상운반이라고 하는데 세계 수많은 민족들이 태고적부터 쓴 운반법이야. 그래서 본능처럼 몸에 배여있었지. 옛날 녀인들은 일부러 배워주지 않아도 아이적부터 물동이랑 매돌이랑 척척 이여날랐어…》 

꽃분이는 두손으로 저고리고름을 만지작거리며 타는듯한 눈으로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윤차녀의 동작은 여러번 거듭되였다. 매번 판에 박은듯이 같은 동작이 되풀이되였는데 한번은 손끝으로 동이밑굽가녁을 슬쩍슬쩍 쓸며 걸어오는것이였다. 

로영무는 그 기계적인 손놀림을 발견하자 전기에라도 닿은듯 몸에 전률이 일었다. 아이적에 본 물긷는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안겨들어서였다. 그러나 어째 손을 그렇게 놀리는지 알수 없었다. 

로영무는 윤차녀를 멈춰세우고 그 까닭을 물었다. 

《내가 그랬는가?》 윤차녀는 동이를 내려 옆에 끼고 의아해하다가 인차 눈을 곱게 흘기였다. 

《에그, 별게 아니꼬마, 물을 부어넣을 때 바람이 쌔게 불믄 동이배까지 적시기 쉽습꼬마. 그게 물방울이 돼서 밑굽에 맺히는데 털어버리지 않음 떨어져 저고리를 적시우꼬마. 바람질이 심한 날에 저고리까지 젖으문 어째 그리 싫던지…》 

《아-》 로영무는 환성을 터뜨렸다. 꽃분이도 방긋 웃었다. 

로영무는 꽃분이에게 물동이를 이게 하고 윤차녀더러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꽃분이가 머리우에 물동이를 댕그랗게 올려놓고 마당으로 아장아장 걸어들어올 때 선들바람까지 불어와 등뒤에 휘늘어진 머리태끝의 댕기가 나풀거리고 보드라운 머리칼이 날리며 이마를 덮었다. 윤차녀는 좀 우쭐해져서 처녀의 앞뒤로 돌아가면서 또아리며 동이를 살펴보는가 하면 갑자기 고집스러운 눈이 되여 걸음새를 찬찬히 여겨보았다. 구경하는 아낙네들은 제가 그런 동작에 나선듯 얼굴빛이 긴장되기도 하고 들뜬 기분이 되여 술렁거리기도 했다.

《아이구 신통해라…》 

《조런거 며느리루 삼았으문…》 

로영무는 아낙네들의 그런 속삭임소리를 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진실답지 않는데가 있는것 같아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윤차녀에게 어떤가고 물었다. 

할머니는 잘한다고 칭찬했으나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였다. 

그래서 틀린 점이 있으면 일러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꽃분이를 불러세웠다. 

《어째 눈길이 그럴가? 그양 앞만 봐서는 못쓴다니. 아래로 숙여야지. 그래야 동네 자란들이 얌전하게 보오… 그전에 나는 눈때메 얼마나 미움을 샀는지 모르오. 내가 머슴을 살던 지주 안깐년은 눈길을 꼿꼿이 쳐들구다니믄 속이 살았다구 눈총을 쏘았소. 일하다가 옆을 돌아보문 뉘기한테 정분이 들었거나 허파에 바람이 들어 헷눈을 판다구 줴박았소. 그러다나니 물길을 때두 늘 눈을 아래로 깔구 댕겼다니.》 

꽃분이가 할머니의 말대로 눈길을 아래로 숙이고 걷자 처녀의 싱싱한 생기가 완전히 감추어졌다. 어디선가 뽀르르 달려나온 감장강아지가 흰점이 배긴 꼬리를 한들거리며 그의 발길에 묻어 돌아갔다. 꽃분이는 그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듯 한결같은 걸음으로 걸어왔다. 

물동이를 인채 아래로 내리깐 아련한 눈길,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둥실한 어깨, 무심결에 동이밑굽가녁을 쓸어보는 가무잡잡한 손, 기운 저고리, 기운 치마, 고달픈 운명에 순종하여 가락맞게 옮겨지는 발, 발, 총이 끊어진 짚신을 신은 처량한 발… 

한손으로 허벅다리를 짚은채 허리를 구부정하고 온 주위력을 집중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연출가의 눈에서는 불길이 황황 타번지는듯하였다. 

(비슷하지만 저건 아직… 아직 진실하고는 거리가 있어… 비운에 시달리는 어린 넋의 고달픔… 슬픔이 덜 풍겨… 내적체험이 없이 그저 할머니동작을 모방하고있지 않는가…)

로영무는 가슴이 바작바작 타드는듯하였다. 

정지문앞에까지 가서 동이를 내려 옆에 끼고 돌아서던 처녀가 벌써 무엇을 느꼈는지 이쪽을 기웃이 여겨본다. 겁먹은듯한 눈이다. 

로영무는 처녀의 마음을 늦춰주고싶어 말라든 입술에 미소를 띠며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괜찮아… 한번 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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