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8 장

1

 

교외의 자동차길을 따라 평양쪽으로 달리는 승용차안에서는 농촌가을의 정취와 풍년수확에 대한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벌어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후 박경섭을 데리고 교외 몇개 농장의 가을걷이형편을 돌아보고오시는 길이였다. 

뒤좌석에 편안히 앉아계시는 그이께서는 벼와 강냉이, 과일 등의 흐뭇한 수확을 두고 박경섭이며 운전사와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상 밝은 미소를 띠고계시였다. 

가로수에서 날아떨어지는 단풍이 든 락엽들이 앞차창유리에 붙어 한들거리다가 어디로인가 훠 날아가군하였다. 

그이께서 화제를 돌리시였다. 

《현지에 나간 <꽃파는 처녀>제작단에서 무슨 제기된 문제가 없습니까?》 

《예… 아직은…》 

《주인공역이 제일 걱정되거든, 나이가 어린데다가 처음 출연하지… 참 마음을 놓을수 없단말이요.》 

꽃분이역을 맡은 손영실은 량강도 두메산골 태생이고 나이는 17살,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군인민위원회 지도원… 처녀는 중학교 졸업반에서 선발되여 촬영소배우양성반에 들어와 배우수업을 하고있었는데 인민학교와 중학교때 예술소조공연무대에 몇번 서본 경험이 있을뿐이였다.

손영실은 모색이 아련한데다가 웃을 때 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눈꼬리와 입가에 보일듯말듯 구슬픈 빛을 띠였는데 아마 그것이 꽃분이와 비슷한 인상을 풍겨 선발되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꽃분이분장을 할 때 짚신을 거꾸로 신었다는게 사실인가요?》 

《다시 알아봤는데 사실입니다.》 

《허… 야단이군. 완전히 새 세대요. 짚신을 어떻게 신는지도 모르니까 20년대, 30년대 농촌처녀의 생활세계를 어떻게 리해할수 있겠소. 나이는 겨우 17살인데 반세기전에 산 처녀의 눈물겨운 생활을 형상해야 된단말이요. 참 어려운 과제요. 작품의 성공여부는 주인공의 연기형상에 결정적으로 달려있는데 그 동무가 잘못하면 다 허물어지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연출대본완성과 촬영준비단계에서 빈틈이 없도록 지도를 아끼시지 않았고 필요한 모든 조건을 보장해주시고 촬영현지로 떠날 때에는 작품토론때문에 늦어진 연출가를 비행기까지 태워 보내시였다. 그러나 제작단이 먼곳에 가있는 지금 새라새로운 걱정이 자꾸 들며 도무지 마음을 놓으실수 없었던것이다. 

박경섭이도 불안이 한두가지 아니였지만 말은 다르게 나갔다. 

《로영무연출가가 연기지도를 잘하기때문에 문제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떠나기전에도 손영실에게 특별히 힘을 집중하여 준비시켰습니다. 그리고 촬영지에 나가 농촌생활체험도 시키기로 했습니다. 연기지도는 승진동무가 잘한다고 했지만 로영무연출가는 자기식대로 우수한데가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말씀이 없으시였다. 두 연출가를 비교한 그의 말이 가버린 전사에 대한 아픈 추억을 불러일으켰던것이다. 

저 멀리에 수도의 불빛바다가 내다보였다. 생기를 띠고 반짝거리는 그 하나하나의 불빛들은 끝없는 사연을 속삭이고있는듯했다. 승용차가 시내에 들어서자 그이께서는 내내 차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흘러가는 거리의 풍경만 내다보시였다.

가로수들의 락엽이 점점이 떨어진 인도로는 벌써 가을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형광등불빛이 환한 리발소며 꽃방, 식료품상점, 차집안에서도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였다. 가로수의 그림자속에 숨어서 누구인가를 기다리는 처녀의 모습이며 아빠트의 으슥한 모퉁이에 마주서있는 청춘남녀들의 그림자들도 언뜻언뜻 흘러지나갔다. 

승용차가 보통교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운전수에게 차를 좀 천천히 몰라고 이르시였다. 

흐르는듯마는듯한 보통강의 수면에 유보도의 가로등불빛들이 거꾸로 비껴들어 현란하게 번쩍거리는 빛의 주랑을 그리였는데 그 량쪽 유보도로는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청춘남녀들이 쌍을 지어 거닐고있었다. 잔디밭의 돌의자들에 앉아있는 청년들, 수양버들밑에서 걸어나오며 떠들어대는 젊은이들, 잔디밭에서 서로 쫓거니 쫓기거니 돌아치는 조무래기들, 한 중년의 남자가 아기를 안고 안해와 어깨곁고 나란히 걸어오다가 강쪽으로 돌아서서 물결을 바라본다. 가로등의 불빛이 물결우에 부서지며 수많은 불꽃들이 튀는듯한 기묘한 조화를 부리는가 하면 다리로 지나가는 전차우에서 전광이 펑긋거릴 때마다 가까운쪽 검푸른 수면으로 은백색번개가 날아지나간다. 

거리와 유보도의 그 모든 풍경이 개인적행복을 한껏 누려보지 못하고 떠나간 예술가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그새 최승진동무네 집에 가본 일이 있습니까?》 

《가보지 못했습니다.》 

박경섭은 가책에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젊은 아주머니가 아이들만 데리고 어떻게 지내는지… 아주머니는 편집실에 넣었다지요?》 

《예… 촬영소에서 잘 돌봐준다고 해서 안심하고있었습니다.》

《곁에서 아무리 잘 봐준다고 해도 의지하며 살던 남편이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고 외롭겠습니까. 우리 오늘 좀 들려보지 않겠습니까?》 

보통교를 도로 건너간 승용차가 영화예술인아빠트앞에 이른것은 10여분후였다. 

아빠트의 창문들에서는 밝은빛이 환히 흘러나왔는데 높은 층의 어느 한 집에서는 결혼식이라도 벌렸는지 떠들썩한 웃음소리, 박수소리, 손풍금소리까지 흘러나왔다. 

박경섭이 먼저 차에서 내리는데 한 젊은 녀인이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울어대는 사내아이를 업고 현관에서 나와 차앞으로 황황히 지나갔다. 녀인의 잔등에 업힌 아이는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발버둥치며 쉬여버린 소리로 엉엉 울어댔다. 녀인은 아이의 엉치를 철썩철썩 때리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가자, 가자, 가자는데 왜 울어? 울겠니, 울겠어?》 

그래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발버둥치며 울어댔다. 미심쩍은 생각에 그 정상을 지켜보던 박경섭은 너무 아연해져 그이께 말씀드리는것도 잊고 녀인을 뒤쫓아갔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져내리고 옷차림을 아무렇게나 한 그 녀인이 바로 윤희였던것이다. 

아빠트모퉁이로 돌아간 윤희는 아이를 맨땅에 내려놓고 신경질적으로 밀쳐버리며 소리쳤다. 

《어서 가봐!》 

박경섭이 다가가며 왜 이러느냐고 묻자 윤희는 비로소 그를 알아보고 얼굴을 싸쥐고 반쯤 돌아서서 흐느껴울었다. 

《아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니… 아니예요… 저것이 글쎄 펀펀히 자댔는데… 글쎄 꿈에 아버지를 봤는지… 갑자기 아버지한테 가자구 생떼를 쓰지 않아요. 암만 얼려야 말을 들어야지요.》 

땅바닥에 퍼더버리고앉은 사내놈은 쿨쩍거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뒤로 벌렁 넘어져 발버둥질쳤다.

박경섭은 너무 기막혀 뒤채기는 아이며 엄마를 번갈아 돌아보다가 얼른 어린것을 안아올렸다. 

그러자 아이는 더 기승을 부려 울부짖으며 자기를 감싸안은 낯선 팔에서 빠져나가려고 죽을내기로 버드럭거리면서 주먹으로 그의 가슴이며 턱밑을 마구 때렸다. 그 자그마한 육체의 항거가 어찌나 방자하고 세찬것인지 박경섭은 몸의 균형을 지탱할수 없어 비칠거리기까지 하였다. 

《이녀석, 이놈, 왜 이래? 가만… 가만 있어!》 

《아부지- 아부지-》 

어린것의 탁 쉬여버린 울부짖음소리는 가슴을 도려내는듯했다. 아이는 꿈속에서 분명히 아버지가 어디엔가 살아있는것을 보았으며 그리로 가자고 발버둥치는것이였다. 

무슨 말이면 이 어린 넋이 아버지가 세상에서 영영 없어졌다는것을 납득할수 있겠는가. 박경섭은 당황해졌다. 그는 기막히기만 하고 가라앉았던 비분이 되살아올라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속에 없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치지 못하겠니? 못하겠어? 저 한길에 내다 던져버리고말가부다!》 

《아버지를 찾는 아이를 욱박지르면 어찌오. 나한테 주오.》 

언제 따라오셨는지 김정일동지께서 두손을 내미시였다. 

《이녀석이 떼질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리 주오.》 

윤희는 김정일동지께서 찾아오신것이 너무도 뜻밖이고 현실같지 않아 그저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쥐고 눈물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그이만을 지켜볼뿐이였다. 

그이께서는 두팔로 아이를 받아서 가슴에 꼭 껴안더니 시원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착한 애를 모두 공연히 울리는구만… 아버지가 보고싶다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얼마나 보고싶으면 네가 이렇게 울겠니…》 

아이는 비로소 자기 편역을 들어주는 인정에 설음이 북받치는지 더 섧게 울다가 흑흑 느끼며 머리를 그이의 가슴에 꼭 붙이였다.

그이께서는 아이의 잔등을 부드럽게 다독여주시다가 잔등을 돌려대는 박경섭에게 업혀주시였다. 

박경섭이 아이를 업고 걸음을 뗄 때에야 윤희는 현실감에 돌아온듯 《아니…》 하고 소리치며 달려나가려고 했다. 

그이께서는 그 녀자의 팔소매를 붙잡으시였다. 

《가만있으십시오. 겨우 울음을 그쳤는데…》 

박경섭은 아이를 업고 아빠트뒤켠의 공지를 가로질러 저쪽 어스름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너무 울어 목이 다 쉬고 지쳐버린 아이는 진정이 되여 인차 잠에 노그라떨어진듯하였다. 

윤희는 갑자기 입을 싸쥐고 오열을 삼키였다. 그이께서는 흐려진 안색으로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윤희를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가서 한시간 남짓하게 앉아있으면서 가정생활형편도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이를 아버지와 같이 당에 충직한 예술가로 키우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다른 속상한 일이나 부탁할 문제가 있으면 서슴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하시자 윤희는 없다고 말하였으나 문득 설음이 북받치는듯 속눈섭에 이슬기가 맺히고 숨결이 빨라졌다. 

그이께서 아무 문제나 좋으니 말할것이 있으면 다 하라고 다시 말씀하시자 그 녀자는 망설이다가 드디여 입을 열었는데 그것은 뜻밖의 간청이였다. 자기를 남편이 맡았던 《꽃파는 처녀》제작단에 넣어줄수 없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남편의 뒤를 잇고싶어하는 갸륵한 심정에 목이 메여올랐으나 그이께서는 대범하게 웃어보이시며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치하하시고는 촬영소에 알아보고 소원을 꼭 풀어주겠노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시였다. 

승용차가 다시 보통교에 들어섰을 때 깊은 생각에 잠겨 내내 말씀이 없던 그이께서 문득 조용히 물으시였다. 

《심정이 저렇다는걸 몰랐댔소?》

《처음에는 편집을 맡기자는 론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영무동무가 굳이 반대해나서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왜 반대했습니까?》 

《편집을 하게 되면 시시각각으로 자극을 받아 계속 슬픔에 빠질것 같아… 그래서 반대했습니다. 저도 담화해봤습니다.》 

그이께서는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시였다. 

《물론 슬픔에 잠길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지성을 다해서 편집하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지금 편집을 맡은 동무가 없으면 윤희에게 맡기도록 촬영소에 의견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차안에 침묵이 흘렀다. 

《경섭동무… 승진동무가 영화에 출연한적은 없던가?》 

《예?… 단역을 맡아 한두번 출연한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한번 돌려서 저 애한테 아버지를 보여주는게 어떨가… 산 아버지모습을… 저 애가 아버지 얼굴을 영영 모르고 자란다면 그건 참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요. 그런 애 마음에는 남달리 언제나 빈구석이 있게 되오.》 

《예… 승진동무가 기록영화에도 나온적이 있습니다.》 

《그럼 그 필림들을 모두 복사해서 아주머니한테 줍시다. 저 애가 좀 크면 이따금 돌려보여서 아버지모습을 가슴에 똑똑히 새겨넣도록…》 

박경섭은 눈굽이 저려나 턱을 끌어들이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그리고는 마른침을 삼키였다. 

《승진연출가의 뜻대로 영화를 세계적인 명작으로, 티끌만한 흠도 없는 걸작으로 만들어야겠소. 제작단 전체 성원들이 최대한의 열정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주옥처럼 빛나게 형상해내야 하오. 그러자면 로영무연출가가 잘해야겠는데… 할수 있겠지…》

박경섭은 그이께서 마음을 놓으실수 있도록 시원한 대답을 드리고싶었지만 목이 답답하게 막히며 말이 나가지 않았다. 문득 한기석을 비판한 다음 주영도비서가 인간 로영무를 두고 한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때 주영도는 로영무가 다른것은 다 제쳐놓고 년장자로서도 응당 한기석을 꾸짖고 철룡이와 미혜의 관계에도 관심을 돌려야 옳겠는데 지난날 거의 외면하다싶이하면서 전혀 비치지 않았다고 나무리였다. 

《랭담하다고 할지 로쇠해졌다고 할지… 사람이 이래가지구서도 기량만 높으면 예술을 할수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저는 좀 걱정이 됩니다.》 

그때는 로영무에 대한 주영도의 이런 소리가 과격한 성미에서 오는 지나친 비난이 아닌가싶어 스쳐버렸었다. 

승용차는 미끄러지듯이 내달리고 박경섭은 차창밖을 묵묵히 내다보았다. 

가로수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그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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