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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2
흥성거리는 거리의 인도로 물결쳐가는 사람들과 전차정류소에 서있는 손님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흘끔흘끔 돌아봤다. 강세룡은 모자를 벗어쥐고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건늠길을 건너갔다. 비장한 그늘이 비낀 그의 얼굴과 정신없는 걸음걸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것이다. 전차정류소의 손님들속에서 두 처녀가 그를 알아보고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우리 부위원장동지야…》 《차도 안타고 어딜 저렇게…》 《무슨 불상사가 생긴게 아니야?》 《가서 물어볼가?》 《가만있어, 꿱하면 어찌자구…》 강세룡은 당중앙위원회의 접수실가까이에 이르러서야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고 그 건너쪽에 늘 줄지어있던 차들이 없는것을 보고 비로소 오늘이 일요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우두머니 서서 당중앙위원회의 창문들을 바라보다가 맥없이 돌아섰다. 그리고는 발길이 가는대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갔다. 한시간후 그는 모란봉 최승대옆의 으슥한 숲속에 머리를 싸쥐고 앉아있었다. (철룡의 말이 옳을수 있다. 다는 아니지만 옳은 소리가 많다. 가슴이 떨렸지만 그 애 소리를 그르다고 할수 없었다.…) 아직도 가슴이 선뜻한 도끼날에 수없이 찍히운듯 못견디게 저려나고 온몸에 전률이 일었다. 목에서 피줄이 뛰는 소리가 머리속에 쿵쿵 메아리쳤다. (제 형을 그렇게 조겨댄단 말인가. 저 애가 언제 저렇게 무서운 놈이 됐는가? 제 형을 그렇게 분석적인 눈으로 보아왔단 말인가…) 문득 자기곁에서 일하는 일군들속에서도 철룡이처럼 자기를 보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명준이도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인지 모른다. (나는 여태 아래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겠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자기 말과 결론은 언제나 정확하며 아래사람들은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여 철저히 집행할 의무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습관되여왔다. 동생에 대해서는 더했어. 그 애는 내덕에 자라났으며 남부럽지 않게 지내왔기때문에 제 형을 고맙게 여기고 친부모처럼 따른다고 생각했지. 간혹 불평조의 말을 하거나 나하구 의견이 맞지 않아 얼굴색이 달라지고 가로달아나는 때도 있었지만 그건 다 행복앞에서의 어리광이려니 하고만 생각했다. 그 애한테 그런 반감이 숨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 참 기막힌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명준부국장을 비롯한 아래일군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철룡이와 비슷한 의견을 품고있을것 같은데 그것을 입밖에 내비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철룡이만이 오늘 그것을 터뜨렸어. 그 애는 내 친동생이니까 제일 가슴아팠을게고 또 동생이기때문에 말하기도 헐했을것이다. 말덕에 피해를 입을 걱정이랑 없을테니까… 그 애가 한 소리들은 모두 다른 일군들로서는 맞대놓고 말하기 힘든것들이다. 사실 이런 사고가 있기전에 누가 그 절반만한 소리라도 했다면 내가 가만 있었겠는가? 평소에 지내봐서 그들은 내가 어떤 위인인가를 잘 알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의견을 말하지 못했을수 있지. 배명준부국장도 그랬을것이다. 그때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일축해버렸던가? 의견도 의견이지만 원래 배명준이… 그 사람을 소심하고 배심도 없는 사람으로 탐탁치 않게 여겼기때문에 언제나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웃나라의 지진에 대한 소리만 나오지 않았던들 그의 의견을 여겨들었을는지도 몰라. 나는 그 소리를 듣자 대뜸 불쾌해졌다. 그가 나를 설복하고, 내 신념을 꺾으려고 별의별 당치 않은 조건까지 다 끌어다붙이며 구실을 만든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그래서 왈칵해졌다. 종당에는 그가 국가적리익의 견지에 서지 못하고 자기보신을 위해 그런 의견을 제기한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지금에 와서 결과를 놓고보면 과연 누가 진심으로 국가적리익을 생각한것으로 되는가. 아, 내가 언제부터 아래사람들을 이렇게 얕보게 됐는가…) 강세룡은 수풀속에 벌렁 드러누웠다. 얼기설기 뒤엉킨 나무가지들사이로 파란 하늘이 쳐다보였다. 비자루로 쓸어놓은 자리가 나있는듯한 얇은 구름 몇장이 어디로인가 시름없이 떠가고있었다. 하늘도 저 구름도 어릴적 고향의 버들방천에 드러누워 바라보던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것 같다. 거기에는 무궁한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청신하고 고결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예나 다름없이 가득차서 설레이는듯하다. 토스레옷바람으로 뛰여다니던 어릴적, 가슴에 찰랑거리던 맑고 깨끗하고 순박한 동심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구슬픈 애수가 가슴에 흘러들어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철룡이는 냄새라고 하면서 내 체취를 비난했다. 그런 냄새가 역해서 그 처녀도 외면하고 영영 떠나가버렸다고 했다. 어릴적엔 내자신이 그런 냄새를 얼마나 싫어했던가. 부자놈한테는 부자놈의 체취가 있었다. 순사놈한테는 순사놈의 체취가 있었다. …특수한 존재인체 냄새를 피우면서 군중을 얕보는건… 이건 정말 우리 사회제도의 본질과 원리에도 맞지 않는것이다. 주체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새 세대들한테는 그런 냄새가 질색일것이다. 새 세대들은 그런 냄새에 더 민감할수 있다. 아마… 아마… 배명준부국장이나 다른 사람들도 그 냄새때문에 마음속으로 나한테서 점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점점 모르고 지낸 셈이다. 나는 둔감해졌다. 고독해졌다. 심장이 완고하게 굳어져 지층의 변화에까지 둔감해졌어…) 산너머 어디서인가 뜨락또르의 동음 비슷한 소리가 울려오더니 직승기 한대가 최승대우를 스칠듯이 날아넘어왔다. 요란한 동음에 하늘이 허물어져내리는듯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나무우듬지들이 설레였다. 직승기는 가루개쪽으로 곧추 날아가더니 새로 선 텔레비죤탑우를 천천히 선회하였다. 강세룡에게는 그이를 만날수 있는 행운이 사흘뒤에야 차례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주시였는데 거기에는 서영림과 박경섭이도 앉아있었다. 강세룡이 방에 들어서자 박경섭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이께서는 그냥 앉아있으라고 손짓하시고는 강세룡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강세룡은 그이께서 권하시는 안락의자에 앉지 못하고 응접탁의 끝쪽에 놓인 포의자에 조심스럽게 앉고는 모자를 벗어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응접탁곁으로 걸어나오시여 그와 마주앉으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듣고싶었습니다.》 강세룡은 고개를 깊이 떨구고 나직이 말을 시작하였으나 인차 흥분하여 목소리가 떨리였다. 《저는 당앞에 국가앞에 엄중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저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타매하며 번민했던 모든 생각들을 다 털어놓았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격해지기도 하고 절망에 빠져 비명조로 울리기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방안에 흐르고 김정일동지께서는 담배를 두대째 피워무시였다. 《배명준동무한테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 동무는 벌써 몸서리치는 사고를 예감하고 불안해져서 저한테 여러번 제기했습니다. 하루는 집에까지 찾아와서 제기했습니다.》 《집에까지… 그게 언제입니까?》 하고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물으시였다. 《7월 20일경입니다.》 《7월 20일경 배명준동무가 동무네 집에 찾아갔다는게 사실입니까?》 《예… 제 안해도… 촬영소에 있는 동생도 그걸 기억하고있습니다.》 《동무네는 도대체 어찌자는겁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우 좋지 못한 안색으로 책상에 가서 여러장의 편지를 들고와 그에게 주시였다. 《읽어보십시오. 밑줄을 그은데부터… 배명준동무가 당에 무어라고 제기했는가 보십시오.》 강세룡은 두손으로 편지를 받아쥐고 빨간 원주필로 밑줄이 그어진데부터 읽어내려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 편지장이 빨각거리고 글줄들이 물결치여 눈에 잘 잡히지 않았다. 《…이 엄숙한 시각에 당적량심으로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강세룡동지가 지하암석층의 운동과 변화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저는 기술실무일군으로서, 전문가로서 응당 그에게 사실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물러섬이 없이 끝까지 설복했어야 할것입니다. 그러는것이 주인다운 립장이고 태도일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위원장동지가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한다고 불쾌해져 신경질적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때 저의 속심을 량심적으로 고백하면 나는 의견을 제기했으니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라는것이였습니다. 이것이 과연 당의 신임으로 중책을 맡은 당원의 립장이겠습니까. 저의 인테리적인 나약성과 기분주의가 이런 몸서리치는 사고를 빚어냈습니다. …사고가 터진 그날, 침수된 도갱속에서 단둘이 마주쳤을 때 저는 강세룡동지한테, 부위원장동지때문에 이런 사고가 났다고 소리쳤습니다. 병원에 들어와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니 량심의 가책으로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습니다. 그 암담한 순간에 저는 량심도 없는 비렬한이 되였던것입니다. 저는 십여년동안 강세룡동지와 함께 일해오면서 그가 이런 방대한 건설을 맡아 지휘할수 있는 의지와 수완과 재능을 가진 일군이라는것을 여러 기회에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과오를 범한 저로서 외람된 제기이지만 지하철도가 완성될 때까지라도 그를 현위치에 그대로 세워주시기를 청원하는바입니다.…》 강세룡은 단재를 들쓴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숨이 막혔다. 그가 고개를 들수 없어 편지지만 뒤적거리는데 김정일동지께서 노기섞인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보십시오. 사태의 진상을 솔직히 밝힌다면서 자기가 부위원장동무의 집에까지 찾아갔던 사실은 빼놓았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사고와 관련하여 제기할것이 있다고 해서 한 동무를 내려보냈댔는데 그 동무한테도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실은 빼놓았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그런 청원서까지 써보냈습니다. 이건 도대체 뭡니까.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놓고 책임질 문제는 책임져야 하지 않습니까. 조직적으로 누가 어쩌지도 않는데 먼저 앞질러서 책임이요 해임이요 하고 이러는건 도대체 뭡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후에 따끔하게 비판을 줘야 할일이지만 부위원장동무, 배명준동무의 인간적인 심정만은 리해되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생각되는바가 없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안색으로 박경섭이도 돌아보시였다. 《이런 심정을 지닌 동무가 집에까지 찾아왔을 때에는 그의 마음속에 부위원장동무를 돕자는 진심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겠는데 어째서 그토록 외면해버렸습니까? 아래일군의 제기를 그토록 묵살해버린 자신을 두고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관료주의이니 주관주의이니 독단이니 하는 일반적인 분석으로는 그 원인을 똑바로 찾아낼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데는 구체적인 사상감정과 심리가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한 당학교 강좌장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그 동무는 관료주의도 깊이 따져보면 그 원인과 표현이 다 시대적인 성격을 띤다고 했습니다. 해방직후의 관료주의는 일제의 사상잔재와 사대주의, 교조주의 영향에 근원을 두고있었다면 일제의 사상잔재가 청산되고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시기에 나타난 관료주의는 다른 사상에 근원을 두고있다고 했습니다. 언제인가 수령님께서 관료주의에 대하여 사상과 방법의 종합적표현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우리 일부 일군들은 관료주의적작풍에 대하여 비판을 받으면 방법에 대해서는 검토해보나 자기 사상감정에 대하여서는 반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어는 사상이 넘쳐나서,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이 지나쳐서 관료주의까지 부리게 됐다고 생각하는 위인들도 있습니다.》 강세룡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였다. 《저도 이번에 사고를 저지르고나서 오래간만에 자신의 사상감정을 랭혹한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였습니다. 부국장동무의 제기를 일축해버린것은 전적으로 제 사상감정에 병이 들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판인지 어느새 남들의 충실성이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였습니다. 쩍하면 의심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부국장동무가 그런 의견을 제기하는것도 소심성때문이라고, 심장이 허약하고 신념이 흔들렸기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얼마나 얕보았으면… 저는 정말 인간이 아닙니다.》 《자기를 너무 허무적으로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자기를 그렇게 부정한다고 결함이 고쳐지는건 아닙니다. 동무는 지금 자기 한생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를 겪고있는 때인것만큼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강한 의지로 자기를 지탱하며 어째 그렇게 되였는가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찾아 심각한 내부투쟁으로 극복해야 다시는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게 아닙니까.》 강세룡의 눈에 물기가 핑 어리였다. 《사람들을 함부로 얕보고 의심하는건 우선 동지적이 아니고 인간적이 아니지요. 건전한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유럽문화를 돌아보고온 영화연출가들이 나한테 와서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인간성을 부정하고 말살하는 퇴페적인 자본주의문화가 지구의 서반구쪽에서 휩쓸어오고있다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빈부의 차가 심하고 돈있고 권세있는놈들이 돈없고 권세없는 대중을 무시하고 멸시하는것이 하나의 사회적풍조로 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누구를 멸시할수 있게 하는 사회적근원이 없습니다. 원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또 그런 사상감정을 고취하는 문화적인 조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동무는 그런… 그런 과오를 범하게 됐습니까? 어디서 영향을 받았습니까?》 그이께서는 안타깝게 말씀하시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믿었던 일군들한테서 이런 과오를 발견하게 되면 정말 분해집니다. 괴롭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것 같으면서… 그런 사상감정을 조장시키는 경제적토대도 없고 정신문화적영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상감정은 우리가 건설하는 사회의 총체적인 원리와 목적에도 배치되는것입니다. 우리 혁명의 출발점과 종국적인 목적에도 어긋나는것입니다.》 강세룡은 또다시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식은땀을 찍어내였다. 《어떤 동무들은 당에서 특별히 신임하여 중책을 맡기면 인차 자기한테 그런 자격이 있어서… 자기가 자격자여서 응당한 신임을 받은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격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동무들은 당조직과 군중에 의거하여 신중하게 일하지만 자격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엄중한 과오를 범하기 쉽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자기를 남들보다 아주 뛰여난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자기 사고, 자기 판단, 자기 감각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보다 뛰여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습관되면 저도 모르게 당조직이나 군중의 의사를 소홀히 대하거나 아주 무시해버리기 일쑤이기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례외없이 군중우에 군림해서 자기한테 부여된 당권이나 행정권으로 전횡을 부리면서 사람들의 창발성을 억누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당정책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척도로 해서 일하게 되고 결국에는 당도 몰라보게 됩니다. 이건 거의 철칙입니다.》 강세룡은 머리를 무겁게 숙이였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 그런놈입니다.》 응접탁모서리에 비방울같은것이 떨어졌다. 강세룡은 그것을 팔소매로 훔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난날 응당 할 일을 한 저한테 공로가 있다고 큰 훈장도 달아주고 공부도 시키고 발전도 시켜 중책을 맡겨주니 이런놈이… 이런 어리석은놈이 됐습니다.》 《그걸 압니까?》 그이께서 무겁게 말씀하시였다. 《…》 강세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동무는 자기한테 맡겨진 행정권을 어디에다 쓰라는겐지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 《창발성을 억누르라고 준줄 압니까?》 그이의 준절한 음성이 방안공기를 선뜩 얼어들게 하였다. 《…》 이윽고 강세룡이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는 눈언저리에 물기가 번쩍거렸지만 된매를 맞고 속이 후련해진 사람처럼 얼굴빛이 좀 밝아졌다. 《일전에… 촬영소에 있는 동생이 찾아와서 저를 부옇게 몰아주었습니다. …형은 자기보다 뛰여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총명분자라고 눌러버리지 않느냐고. 저한테선 젠척하는… 특수한 존재인척하는 역한 냄새가 난다고 몰아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먹이 떨렸지만 할 소리가 없었습니다. 허…》 그는 주눅이 좋게 빙그레 웃어까지 보였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도 미소가 어리는듯하였다. 《형제지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건 괜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강세룡은 갑자기 얼굴을 뒤로 젖힐사하며 흐느끼듯 숨을 헉 들이켰다. 순간에 그는 얼굴을 뒤로 젖힐사하며 흐느끼듯 숨을 헉 들이켰다. 순간에 그의 얼굴빛이 더 컴컴하게 꺼졌다. 《저는 가정에서도 구실을 쓰게 못했습니다. 동생한테 짝이 생겼는데 처녀의 환경을 의심해서 제가 끝끝내 반대했기때문에 그 사랑도 깨지고말았습니다. 동생 가슴에도, 그 처녀 가슴에도 상처를 입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안색이 신중해지시였다. 《어디 있는 처녀입니까?》 《촬영소에 있는 장미혜라는 처녀입니다.》 《촬영소에?》 하고 그이께서 박경섭을 돌아보시였다. 처음 듣는 사연에 어정쩡해진 박경섭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말씀드렸다. 《장미혜라고 분장실에 있습니다. 분장미술가입니다.》 《그 처녀 어머니가 촬영소에서 나오게 되자 제가 환경을 의심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박경섭이 또 말씀드렸다. 《리명선입니다. 금년초에 촬영소에서 나갔습니다.》 《어째 내보냈습니까? … 좋습니다. 그 문제는 딴문제입니다. 후에 이야기합시다.》 그이께서는 시선을 돌려 강세룡을 지켜보며 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자기 과오의 원인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더 깊이… 어제 거기 당위원회에서 부위원장동무 학습정형을 알려왔는데 1년에 소설책 한권 보지 않았고 영화도 얼마 보지 않았더구만요.》 강세룡은 얼굴빛이 거멓게 질리며 괴로운 한숨을 내쉬였다. 《동생도 조겨댔지만… 저는 영화나 문학예술을 구경거리로 알며 정말 하찮게 여겨왔습니다. 영화를 하는 동생까지 얕보았습니다. 요즘 당에서 문학예술에 관심을 돌리는것도 거기가 복잡한데니까 포섭하느라구 그러는줄 알았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거의 아연해진 안색으로 그를 지켜보시였다. 《책임적인 자리에 있는 부위원장동무가 그렇게 생각했단말입니까?… 예?… 수령님께서 여가가 많아 촬영소에 나가 당정치위원회를 열고 영화문제를 토의하신줄 압니까. 우리가 할일이 없어 영화나 문학예술을 붙잡고 이러는줄 압니까. 아무리 도시와 공장들을 번듯하게 건설해도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가 허약하면 나라가 절대 부강해지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국민들의 정신도덕상태가 허약해지고 썩어문드러져 흔들리고 망해가는 나라가 한둘인줄 압니까. 부위원장동무네가 하는 눈에 보이는 건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설이… 문학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사상상태를 똑바로 세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정신문화건설이 어떤 의미에서는 몇배 더 중요하고 또 어렵습니다.》 그이의 음성은 흥분에 떨리였다. 《영화 한편 만드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데 책임적인 자리에 있는 부위원장동무가 그걸 한낱 구경거리로 본단말입니까. 사고를 칠수밖에 없습니다. 부위원장동무는 체구도 좋고 공로도 있고 직위도 있지만 사상정신적인 속대가 굳건하지 못하니 보시오, 어떻게 됐습니까? 아래일군들에 대한 사상관점이 똑바로 섰더라면 그런 사고를 쳤겠습니까.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상정신적인 지주가 굳세지 못하면 골조가 허약한 건축물이 웬만한 지진에도 허물어지는것처럼 다… 다 허물어지고맙니다! 이번 사고는 매우 교훈적인것입니다.…》 강세룡은 고개를 숙이며 코물을 들이켰다. 《교훈으로… 피의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세포에서부터 자기비판을 해올라왔더라면 더 좋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이윽고 강세룡은 그이께 인사드리고는 돌아서 기운차게 걸아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사라진 문쪽을 지켜보며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그이의 어깨가 조용히 오르내리는듯하였다. 어디에서 바스락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강세룡은 이 방안의 공기속에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것을 남겨놓고 사라진듯하였다. 시간의 흐름마저 멎어선듯한 고요속에서 박경섭은 그이의 뒤모습만 지켜보았다. 서영림은 안경을 벗어 닦으며 의아해하는듯한 눈으로 그이며 박경섭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 그들쪽으로 돌아서시였는데 매우 밝은 안색이였다. 그이께서는 시원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과오는 범했지만 솔직하오. 나는 저런 동무들을 사랑하오… 전국 모든 단위들에서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영화의 주인공과 자기를 비교하며 사업과 생활을 반성해보고 영화의 주인공들을 따라배우는 사회적운동을 벌려야 하겠소.》 박경섭은 그이의 말씀을 받아쓰고 서영림은 격동된 얼굴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그이께서 문득 화제를 돌리시였다. 《그 한기석이라는 동무는 요즘 어떻게 일하고있습니까?…》 《비판도 성실하게 하지 않았고 우울하게 지냈는데 주영도동무한테 찾아와서 다시 자기비판하고 요새는 부연출사업도 괜찮게 하고있는것 같습니다.》 《어느 부문에서나 그런 병집은 헐하게 고쳐지지 않는데 잘 도와줘야 하겠습니다. 창조사업과정을 통해 자신을 철저히 혁명화하도록… 그리고… 나도 좀 생각해봤는데 그 동무의 결함과 관련하여 다른 측면에서 고려해볼 문제도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지난 시기 연출가와 부연출사이에 남아있던 도제관계와 비슷한 요소를 깨끗이 가셔내며 연출가는 물론 지도일군들이 부연출들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떤 동무들은 연출가로 발전시키며 어떤 동무들은 희망에 따라 일생동안 부연출로 있으면서 자기 경지를 개척하도록 하고 창조사업에서 공로가 크면 명예칭호도 수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동무들도 사업에서 성수가 나지 않겠습니까.》 박경섭은 그이의 다심한 배려에 가슴이 후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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