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7 장

1

 

20여일이나 걸린 물막이전투가 끝나자 강세룡은 물이 다 찐 썰렁하고 질쩍한 도갱을 따라 돌아다니며 수재로 인한 손실부터 가늠해보았다. 막대한 물자들이 류실되였거나 물에 젖어 못쓰게 되였고 침수구역에서 미처 끌어내지 못했던 숱한 건설기재들이 흙탕물의 세례를 받아 녹이 쓸고 페품이나 다름없이 되여버렸다. 거기에 10여명의 대원들이 병원으로 실려간것이며 공사기일을 지연시킨것까지 합치면 국가에 입힌 손실이란 막대한것이였다. 김정일동지의 담력에 떠밀려 물막이를 제때에 시작하였으니망정이지 도갱을 폭파하였더라면 국가에 얼마나 더 큰 손실을 주었으랴싶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강세룡은 지하수가 터져나왔던 분출구쪽으로 자주 가서 사고의 기술적원인을 밝혀내려고 애썼으며 설계도와 도갱의 굴진방향도 대조해보고 발파에서 사용된 폭약량이 암질에 따르는 분량을 초과하지 않았는가도 여러모로 따져보았다. 모든것이 기술적요구에 맞았다. 도갱은 한치의 어김도 없이 설계대로 굴진되였으며 폭약도 어느 발파에서나 정량을 초과해 쓰지 않았다. 터진 물주머니도 발견못한것이 아니라 설계에 이미 밝혀져있는것이였다. 단지 도갱이 그옆을 너무 가까이 스쳐지나간것이 유일한 위험요소였다.

강세룡은 사고의 원인을 밝혀가는 과정에 건설지휘체계에 빈틈이 없었으며 모든 공사단위의 전체 성원들이 기술적요구대로 일했다는것을 알게 되였지만 이전처럼 기쁘지도 흐뭇하지도 않았다. 이 사실이 엄청난 재난의 화근으로 된듯싶으면서 그 유일한 위험요소속에 자기를 떠밀어넣은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문득 침수된 도갱속에서 배명준부국장이 절망적으로 부르짖던 소리가 량심을 쳤다. 

《그때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안생깁니다.》 

그는 이때까지 상기하지 않으려고 애써왔지만 그때란 어느날의 일을 념두에 둔것인지 불을 보듯이 환히 알고있었다. 

그때… 그때란 배명준이 도갱의 굴진방향에 수정을 가하자고 제기했던 때를 말하는것이다. 그때 배명준은 도갱이 물주머니에서 좀더 떨어진데로 지나가도록 굴진방향을 약간 우회시키자고 제기했었다. 

강세룡은 비준된 설계에 수정을 가한다는 소리에 대뜸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인내성있게 그의 설명을 들었다. 

배명준은 설계가 작성되던 당시보다 지층조건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 론거로서 거듭된 발파의 세찬 울림으로 암석층에 크고작은 균렬이 수많이 갔을것이라는것과 지각의 자연적인 운동 등을 렬거했다. 때문에 설계가 작성당시에는 옳은것이였지만 지금은 일부 구간에서 지층의 현실적조건에 맞지 않을수 있다는것이였다. 

이제 다시 굴진방향을 우회시키면 건설속도를 계획대로 보장할수 없을뿐아니라 세멘트와 강재를 비롯한 자재가 엄청나게 더 들수 있었다. 국가적인 리익의 견지에 서지 못하고 자기 일개인의 보신을 위하여 안전치만 추구하는 그의 소심성때문에 국가에 손실을 줄수 없었다. 

강세룡은 좋지 않은 얼굴로 그의 의견을 일축해버렸다. 배명준은 숙어들지 않았다. 그는 같은 론거들을 렬거하며 물주머니와 도갱사이의 암석층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면서 검질기게 설복하려들었다. 하루는 집에까지 찾아와서 설복하다가 불쑥 이웃나라에서 터진 전대미문의 지진의 영향까지 거들면서 자기 의견을 주장하였다.

그 소리에 분격이 왈칵 터져올랐다. 이웃나라, 국경바깥의 지진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소리쳤다. 그는 항변했다. 지상에는 엄연히 국경이 그어져있지만 깊은 지하에 깔린 암석층들은 태고적부터 하나로 이어져있기때문에 그 여파가 미쳐올수 있다고 했으며 그 지진때 자기네 아빠트의 복도벽에 금이 갔다는 소리까지 했다. 

강세룡은 입안이 떫어나 더 말하지 않고 보드라운 머리칼이 성글어진 그의 대머리만 측은하게 여겨보았다. 그 반들거리는 대머리밑에 역겨운 소심성이 가득차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마감에는 나이와 더불어 더 심해진듯한 그의 심장병을 생각하며 은근한 동정심까지 품었는데 상대가 끝내 굽어들지 않자 신념이 그렇게 흔들려서야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고 꾸짖었고 사업문제를 가정에 들고왔다고 좋지 못한 소리까지 했다. 

그러자 배명준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것이다. 

강세룡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자기, 바로 자기자신이 이런 실책을 범했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손상된 명예와 자부심 그리고 피를 말리우고 살을 깎아내는듯한 죄책감에 모대기면서도 신경을 날카롭게 세워 사고에 대한 상급기관들의 반응에 마음을 몹시 썼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그날 책임문제는 후에 따로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물막이가 끝나 며칠이 지나도록 상급당조직이나 검열기관들에서 찾지도 않았고 사고원인을 규명하려 누가 내려오지도 않았다. 

사고가 터진 그날 배명준부국장이 침수된 도갱속에서 한 소리로 보아 병원에 가있는 그가 벌써 모든 사실을 죄다 보고하였기때문에 상급기관들에서 사고원인과 책임져야 할 당사자에 대하여 알고도 남음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세룡은 처벌이나 해임을 각오하고있었던만큼 설사 그랬다 해도 두려운것은 아니였다. 그저 배명준과 자기네 둘사이가 좀 쓸쓸하게 여겨질뿐이였다.

배명준은 재난의 첫날에 심장마비가 와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아직도 퇴원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의 허약한 심장이 그날의 무서운 충격을 감당해낼수 없었던것이다. 문병갔다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병원에 가서도 심장에 몇번인가 발작이 일어나 혼수상태에 빠지군하였는데 어떤 때는 헛소리로 부위원장동지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의 가슴속에서는 원한이 끓어번지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강세룡은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어 두번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환자와 단 몇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다. 한번은 그가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고 다른 한번은 의사가 겨우 진정이 된 환자에게 충격을 줄수 있다면서 입원실에 들여놓지 않았던것이다. 

세번째로 다시 문병가려다가 그만두고말았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를 만나면 부득불 사고에 대한 불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수 없을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사과의 말을 해야되겠는데 이제 와서 그러는것이 좀 무엇하게 여겨졌다. 그의 원한과 감정을 눅잦히려는 낯간지러운 일로 생각되였다. 

궁지에 빠져도 그런 낯간지러운짓은 할수 없었다. 그가 문제를 원칙적으로 날카롭게 제기할수 있게끔 놓아두고싶었고 자기는 사고의 책임을 몽땅 걸머지고 정정당당하게 처벌을 받고싶었다. 죽을지언정 비굴해질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느때나 조금도 다름없는 열정으로 구분대들의 수해복구작업을 도와주었으며 아래일군들의 사업에서 칭찬해줄것은 후하게 칭찬해주고 비판할것은 엄하게 비판하고 웃을 일이 생기면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속은 새까매서 상급당조직의 부름이 있기를 기다렸다. 

어느 일요일. 

강세룡은 휴식일이지만 오후까지 지하건설장을 돌아보았다. 2시가 지나 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거리의 십자로에서 길이 막혀 멎어서서 교통안전원의 통과신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얼결에 앞에 서있는 전차의 뒤꽁무니차창을 쳐다보다가 차창유리안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웬 이쁘장한 처녀와 눈길이 마주치게 되였다. 그 처녀는 언제인가 동생이 집으로 데려왔던 장미혜였다. 처녀는 첫눈에 그를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눈인사도 없이 머리를 외로 돌려버렸다. 곁에 서있는 오돌차게 생긴 처녀가 이쪽을 돌아보고는 미혜에게 무엇이라고 묻는것 같았다. 그러나 미혜는 아무 대답도 안했고 이쪽에 등을 돌리며 아주 돌아서버렸다. 오돌차게 생긴 처녀는 더욱 호기심이 드는지 웃음어린 눈으로 이쪽을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강세룡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장미혜라는 저 처녀가 자기에게 일정한 원한을 품고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뒤따라 동생 철룡이도, 배명준부국장도 자기에게 원한을 품고있을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속이 번거로와졌다. 

집에 돌아오니 문이 채워져있었다. 아이들도 어디로 나갔는지 없고 안해도 상점으로 나갔는지 없었다. 집안이 전에없이 한산하게 느껴졌다. 

그는 침실로 들어가 의복을 입은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한손으로 눈을 싸쥐고 잠자코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슴속이 끝없이 공허해졌다. 어슴푸레 잠이 들려는데 문소리가 났다. 누구들인가 응접실로 황황이 들어오는것 갔더니 수군수군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안해와 철룡이였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들어온것 같았다. 

《부국장동지한테 문병갔다가 그분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이런 소릴 절대 옮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부국장동지가 해임될것 같다고 했어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설계가 잘못 됐기때문에 그런 사고가 났다고, 설계를 담당한 자기한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했대요.》 

《그러니까 형은 무사하게 되겠구만요.》

《글쎄요. 그랬으면 다행이겠는데… 부국장동지가 참 안됐어요. 고의적으로 그렇게 설계했겠어요? 잘한다는게 그렇게 됐겠지요. 참 안됐어요. 눈물을 짓는 그 아주머니를 보니 정말 속이 좋지 못했어요. 녀자들이 끼여들어 도와줄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정말 보기 딱했어요. 곁에서 도와서 풀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형은 뭐라고 그래요?》 

《아무 말도 없어요. 나가서는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와선 입을 다물어 사고가 생긴것도 며칠후에야 알게 됐어요. 집에 들어와 무슨 소릴 하는 성민가요.》 

《형이 들어오면 그 아주머니가 한 소리를 죄다 말해보라요. 형이 뭐라고 하는가? 어째 형은 무사하고 부국장인 그가 다 책임져야 하는가요? 여기엔 무언가 있습니다. 좋지 못한 무엇이 있습니다.》

《뭐라구요? 좋지 못하다니, 누가 좋지 못하다는거야요?》 

《아주머니. 언젠가 배명준부국장이 이 집에 와서 설계때문에 형하구 론쟁한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니… 언제 그런 일이 … 난 생각 안나요.》 

《저는 생각납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부국장이 돌아간 다음 나이든 사람을 아이처럼 몰아준다고 불평하던 일까지 생각납니다.》 

《난 생각 안나요. 생각 안나요!》 

눈물에 젖은 안해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생각 안나요?》 

《그럼 그랬다고 하자요. 그렇지만 그 일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어쩐지 나한테는 그때 부국장이 벌써 이런 사고를 예감하고 설계를 고치자고 제기했고 형은 그 의견을 묵살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터무니없는 억측이야요. 어째 그렇게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해요. 둘도 없는 친동생이라면서… 아니 왜 웃어요? 그렇게 쓰겁게… 형이 잘못되는게 고소한가요?》

《아주머니, 형이 그랬다면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자격을 잃었으면 자리를 내놔야 합니다. 애꿎은 사람을 희생시키지 말고… 남의 선한 마음을 리용해서 살아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죽을 때가 되면 죽을줄도 아는것이 인간적인 처사이지요.》 

《뭐라구요? 어릴적부터 데려다가 애지중지 키웠더니 아이, 무서워… 언제부터 제 형한테 그런 앙심을 품었어요?》 

《앙심이 아닙니다. 아주머니한테도 할 소리가 있습니다. 형을 저렇게 만든데는 아주머니 책임도 있습니다. 누가 집안에서 형을 <장령동지>로 만들었습니까?》 

《더… 더… 더 말해봐요. 아니 이러지 말고 회의처럼 주석단을 꾸려놓고 거기 앉아서 형수를 내리패봐요. 어서… 어서요!》 

강세룡은 더 이상 듣고있을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며 기침소리를 내였다. 

잠잠해졌다. 발자국소리가 다가오더니 사이문이 빠끔히 열렸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안해가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너무 아연해져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아니, 언제 오셨어요?》 

《철룡이… 그 애를 들여보내오. 당신은 저 아래방에 내려가있구.》 

《왜 그래요? 자기도 속상해서 한 소릴 가지구…》 

《들여보내오!》 그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렸다. 

안해는 순종하여 돌아섰다. 

강세룡은 방에 들어온 동생에게 벽쪽의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일렀다. 

철룡은 그 말에 인차 응하지 않고 해쓱한 얼굴로 형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모두숨을 내쉬고는 의자쪽으로 갔다. 

동생이 의자에 앉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쪽으로 무겁게 걸어가 뒤짐을 지고 바깥을 한참 내다보다가 아까 거리에서 장미혜라는 그 처녀를 만났다고 했다.

《나를 보더니 외면하더구나.》 

《…》 

《기분이 좋을수야 없겠지. 내가 반대한다는 이야기랑 들었을테니까…》 

《난 그런 소릴 안했습니다. 제가 느꼈겠지요.》 

《느꼈다? 똑똑한 처녀니까 스스로 느낄수도 있겠지.》 

《그 동무 말은 이젠 하지 말아주십시오. 다 끝난지 오랩니다.》 

《아주 남남이 됐냐?》 

《…》 

《그렇게 됐다니 속이 좀 별랗구나.》 

《형 소원대로 됐지요.》 

《나삐 생각하지 말아라. 너를 위해서 그랬다… 그렇게 됐다면 이젠 딴 마련이 있어야겠구나.》 

《무슨 마련이요?》 

《장가를 가야 할게 아니냐.》 

《장가요? 영영 가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반감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소리냐?》 

《아닙니다.》 

《그럼 왜 그래?》 

《제가 무슨 타고난 행운아라고 이제 또 두번째 짝이 앞에 척 나타나겠습니까. 사랑이란 죽음처럼 한번밖에 없다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음… 나두 예전에 그런 소릴 들은적이 있는것 같다. 그 대렬참모한테선가 누구한테서… 그땐 련애쟁이들이 푸는 개똥철학이라구 생각했지.》 

《형, 다른 얘기가 없으면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용서하십시오.》 

《정 급하지 않으면 좀 앉아있거라. 너한테 물을게 있다.》 

강세룡은 침대로 돌아와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침울한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우리야 형제지간이 아니냐.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라고 할수 있지. 너하구 나하구 사이에 무슨 간격이 있어서야 되겠니?》 

철룡은 눈을 내리뜨고있었다. 그의 눈섭이 보일듯말듯 씨룩거리였다. 

《솔직히 말해봐라. 너는 그때 우리 집에서 왜 나갔느냐? 그때는 일이 바빠서 합숙으로 나간다구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어째 발길질을 그렇게 드물게 하느냐? 지나가며 지나오면서두 들릴수 있구 명절이나 휴일에는 얼마든지 올수 있는건데 아예 발길을 끊었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 그때 정말 일이 바빠서 합숙에 나갔느냐?》 

《물론 꼭 그런건 아닙니다. 좀 생각해보십시오. 장가들 나이도 썩 지난놈이 형네 집에 얹혀사는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형수가 아무리 잘해줘도… 그저 그뿐입니다. 다른 리유는 없습니다.》 

《너는 대답을 회피하는구나. 그런 리유뿐이라면 어째 설명절날에조차 우리 집에 안오느냐? 나하구 멀어졌지? 그렇지? 나두 목석이 아닌이상 느낄건 다 느껴. 너는 내가 싫어졌지? 나한테 원한을 품고있지? 이 형이 왜 그토록 싫어졌는지, 미워졌는지 그걸 좀 말해라.》 

《형… 아까 형수하고 하는 말을 다 들은 모양인데 그만두지 않겠어요? 난 오늘은 형님 마음을 괴롭히고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눈앞이 캄캄해있을 형님한테 저까지 아픈 소리를 하겠습니까?》 

《남이 다 됐구나! 그럼 가봐라. 자식…》 

그 소리에 철룡은 심각한 눈빛으로 형을 돌아보았다. 

《형, 사실은 언제부터도 한번 터놓고 말하고싶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형에 대한 자랑을 안고 자랐습니다. 조국전쟁의 영웅인 형에 대한 자랑으로 늘 우쭐해서 돌아치며 아무데서나 남한테 짝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적에 주먹싸움을 해도 이겼습니다. 에익 이따위 시시한, 어린애같은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내가 변해그런지 형이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형은 이전과는 퍽 다른 사람으로 됐습니다.》

강세룡은 비웃는듯한 얼굴로 물었다. 

《너 보기엔 내가 어떻게 변했느냐?》 

《형은 자기를 너무 과신합니다.》 

《과신한다구?》 

《그래요, 과신하오!》 동생의 목소리는 갑자기 도전적으로 울리였다. 

《무얼 보구 그렇게 말하느냐?》 

《나는 형이 밖에 나가 방대한 건설사업은 어떻게 지휘하는지 그건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압니다. 형이 언제 한번 이 집안사람들의 의견이나 감정을 존중해준적이 있습니까. 물론 이건 지나친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게 됐느냐 생각해보십시오. 이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화분을 어디다 놓을 때에도 형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형수가 쓰는 경대도, 아이들의 책상도 형의 마음에 드는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형이 다른데 옮기라고 했는데 옮기지 않으면 대뜸 좋지 못하게 생각합니다. 경대야 형수가 쓰는건데 형수가 쓰기 편리한 자리에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책상도 같지요.… 이건 정말 소소한 문제이지만 나는 이런 소소한 문제를 통하여 형이 어떤 사람으로 되였는가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거냐?》 하고 강세룡은 눈을 쪼프릴사하고 동생을 노려보았다.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좀 기분 나쁘더라도…》 

《좋다, 말해라.》 

《말하겠소. 형수나 아이나 이 집안식구들은 모두 형 한사람의 마음에 들게 생활해야 돼요. 이 집에서 살 때 나도 역시 같은 처지였소. 새옷을 만들어입을 때마다 형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형이 싫어할가봐 명절날에도 동무들을 집에 데려오지 못했구… 그러나 그런건 다 참을수 있었습니다. 형이 내 사랑을 반대해나섰을 때는 정말 참기… 참기 어려웠습니다. 왜 그토록 반대했습니까? 이제는 내스스로 그 동무에 대한 감정을 다 털어버렸기때문에 이전보다 말하기 한결 헐합니다. 형은 처음엔 그 동무의 환경을 운운하면서 반대했습니다. 그것까지는 리해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기 의사에 따르지 않는다고 기를 쓰고 반대해나섰습니다. 나를 형도 몰라보는 불손한놈으로 여기며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형의 반감은 그 처녀보다 나한테 더 컸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더 이상 참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에서 나갔지요… 형, 난들 왜 모든것이 나무랄데 없는 배우자를 택하고싶지 않겠소. 그러나 운명인지 그런 처녀가 앞에 나타난걸 어떻게 합니까. 나도 타산도 있고 생각도 있어서 그 처녀를 택했는데 형은 내 생각이나 감정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그렇게 속에서 내려가지 않으면 이제라도 그 처녀를 데려오려무나.》 

《오란다고 올것 같소. 안옵니다.》 

《그건 왜? 자존심때문에…》 

《자존심따위라면 괴롭지도 않겠소. 그 처녀는 형의 반대의사를 느꼈기때문에 물러간게 아닙니다. 스스로 떠나가버렸습니다. 영영 떠나가버렸습니다. 환멸을 느끼고… 막말로 말하면 우리가 그 처녀를 차버린게 아니라 그 처녀가 우리를 차버렸습니다.》 

《나는 네 소리를 통 모르겠다. 그 처녀가 도대체 무엇에… 무엇에 환멸을 느꼈단말이냐?》 

《냄새입니다. 냄새때문이요.》 

《뭐라구? 그건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냐?》 

《자기 냄새를 자기가 느끼오? 못느끼지요. 나도 형네 집에서 살면서도 그 냄새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처녀는 두번 와보고 그 냄새를 예민하게 느꼈습니다. 역하게 느꼈습니다.》

《무슨 냄새란말이냐?》 

《…》 

《야, 냄새… 냄새 하지만 말구 빠개놓으란말이야!》 

강세룡은 정신없이 소리치면서 분격에 부들부들 떨었다. 

동생도 못지 않게 소리쳤다. 

《형, 왜 큰소리요? 다 말하겠소. 특수한 존재인체하는 그 냄새요! 이 사회에서 특수한체하는… 조국을 지키는데서 공로를 세우고 당의 신임을 받자 다른 사람들은 얕보게 되였소. 자기만이 당적원칙에 설줄 알고 자기만이 국가적리익의 견지에 설줄 안다고 생각하게 되였소. 자기만이… 자기만이… 내 말을 막지 마오. … 자기만이 옳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 판단은 다 그르거나 부족하고 미숙한게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자기 건설사업만 중요하고 내가 하는 일은 하찮게 여겼소. 문학예술 전체를 그렇게 봤소. 나는 참기 어려웠소. 형은 이 동생 사랑까지도 못난놈의 들뜬 련애질로 비속하게 여겼소.》 

《다 말해라. 네 속을 다 털어놓아.》 

《형이 내앞에서 그랬다고 인정하지 않으리라는걸 잘 아오. 그러나 혼자 생각해보시오. 자기보다 뛰여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소총명이 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 대해선 신경이 허약하다고, 인테리적근성을 털어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요? 형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감정에만 복종되기를 바랬고 그러지 않는 사람은 싫어했고 더 나아가서 미워했소. 내보기엔 형한테서는 자기를 반성해보는 능력이 점점 약해졌소. 언제 한번 나도 잘못 생각할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본적이 있는가요? 없었을거요. 형은 처음 완고하고 강한 의지때문에 자기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었을뿐아니라 아래사람들의 숱한 창발성을 눌러버렸을거요.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아마… 그래서 이번 사고도 생겼을거요. 그런데 배명준이 그 아저씨가 책임을 져요? 해임돼요?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부국장이 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형한테 무엇인가 제기했다가 부옇게 몰려서 돌아가던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때 형수도 너무 안돼서 형을 나무랬습니다. 만약에 그때 부국장이 이런 사고를 예감하고 찾아온것이라면… 나나 형수는 그 내막을 잘 알수 없지만… 또 이 세상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지만… 형이야 잘 알지 않겠소… 만약 그래서 찾아온것이였다면… 정말 … 정말 량심이 없지. 형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 되였는가말이요? 나는 형한테 이때까지 형한테… 의견도 있고 불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은근한 자랑을 품고…나한테 큰일을 하는 형이 있다. … 이런… 이런 자랑을 품고…》 

철룡은 고개를 떨구고 끅끅 느껴울었다. 

강세룡은 캄캄하게 질린 얼굴로 창문쪽을 멍하니 내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몹시 섭섭한 얼굴로 조용히 일렀다. 

《울기는 왜 울어? 너는 제 형을… 그래도 형인데 너무 험하게 모는구나.》 

강세룡은 잠시 말을 그쳤다. 

《배명준이… 그 사람이 병원에서 그렇게 한다는건 모르고있었다. 나때문에 사고가 생겼다는건… 그건 네 말이 옳은것 같다. 책임을 지고 해임된다면 내가 해임돼야 해…》 

사이문 저쪽에서 누구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고 애처로운 신음소리같은것이 터져올랐다. 형수의 울음소리였다. 

강세룡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며 뛰여일어났다. 

《그치오!》 

갑자기 휑뎅그렁해진듯한 집안에 쥐죽은듯한 고요가 닥쳤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