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6 장

3

  

창문유리에 검푸른 어둠이 비꼈다. 환자가 갑갑하다고 하여 열어제껴놓은 창가림자락이 아래로 무겁게 드리워 방열기에서 나오는 화기에 보일듯말듯 흐느적이고있었다. 

구석쪽 원탁우에 놓인 촉수낮은 탁상등의 갓에 검은 머리수건까지 씌워놓아 방안에는 희미한 빛이 흘렀다. 

혼수상태에 빠져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은 눈에 띄게 파리여 꺼져들어간 눈확이며 볼에 불길한 그늘이 서리였다. 

잠간 눈을 붙이라고 하며 간호원을 떠밀어내보낸 다음 윤희는 상두대우에 흩어져있는 연출대본원고들을 정돈해놓고 침대발치에 붙여놓은 나무걸상에 앉아 남편의 얼굴만 지켜보았다. 그 녀자의 얼굴에는 절망감도 비감도 없었다. 그저 망연자실한듯 해쓱하면서도 무엇에 대해서인가 매우 채심하고있는 얼굴이였다. 되는대로 주어입은 색이 바랜 세타며 낡은 치마가 입원실의 절망적인 공기속에서 그 녀자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더 두드러지게 하였다. 

윤희는 저도 모르게 볼을 싸쥐고 타는듯한 눈으로 남편의 얼굴을 여겨보았다. 평소에 그처럼 다감다정하던 얼굴에서는 생명의 표정이라고 할만한것을 찾아볼수 없었다. 무서운 동통의 여파가 아직도 밀려오고있는지 입술이 약간 이그러져있을뿐 얼굴은 완전히 화석처럼 굳어져보였다.

그러나 눈물을 떨구거나 한숨을 내쉬지도 않았다. 가슴을 움켜쥐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본능의 일깨움에서였던지 자기의 사소한 부주의나 절망이 남편을 죽음의 심연이 소용돌이치고있는 낭떠러지밑으로 떨어뜨릴수 있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절망의 낭떠러지끝에 데롱데롱 드리운 남편의 생명을 두팔로 부둥켜안고 몸을 한껏 뒤로 젖히며 끌어당기고있는 자기 모습이 상념속에 언뜻 그려지기까지 했다. 귀중한 생명을 낭떠러지밑으로 끌어내리려는 병마의 악착스러운 힘과 그것을 우로 끌어당기는 자기의 검질긴 힘의 균형속에서 남편의 숨결이 간신히 이어지고있는것만 같았다. 때문에 한순간도 락심하여 맥을 놓을수 없었으며 억척같이 마음을 버티고 초긴장속에서 남편의 병구완을 하게 되였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남편의 얼굴만 지켜보고있어도 커다란 중하를 이겨내고있는 사람처럼 이마와 젖가슴에 비지땀이 내배였다. 

처음 병원에 와서 얼마동안 윤희는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입원실에 노상 붙어있는 담당의사며 간호원, 과장과 기술부원장 등 의료성원들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약간의 시련도 있겠지만 종당에는 완쾌되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의료성원들의 극진한 정성에서 남편이 조국에 얼마나 필요하며 귀중한 존재인가 하는 철없는 자랑으로 가슴이 부풀기까지 했었다. 

남편의 병세가 좀 가라앉자 자기의 입원이 김정일동지께 보고되지 않았을가 몹시 마음을 쓰면서 그 여부를 알수도 짐작할수도 없는 윤희에게 이것저것 묻기까지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연출대본을 써나가군하였다. 

한기석은 전염성이 없는 병인데도 환자곁에 붙어있기 께름직한지 틈만 생기면 무슨 구실을 만들어 간호원실이나 다른 방에 나가있거나 병원밖에 나가 돌아쳤다. 윤희는 그러는것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차서가 아니라 천성적으로 살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리는 빛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남편이 휘갈겨쓴 초고를 직접 정서하기도 하고 불러주는것을 여백에 써넣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 윤희는 원고의 글줄들에 남편의 사색뿐아니라 숨결이며 더운 피까지 흘러들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참으로 원고는 글을 써놓은 창백한 종이장들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혈맥과 신경으로 남편과 이어져있는 그의 생명의 한부분이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남편을 쉬임없이 사색케 하고 흥분시키고 열정에 북받치게 하는 삶의 원천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을 될수록 눈에 띄지 않는곳에 감추려고 했으나 이제는 베개곁이나 머리맡의 상두대우에 잘 보이도록 놓아두고 누가 함부로 치우거나 건드리지 않는가 마음을 쓰게 되였다. 

최종적인 협의진단이 끝나고 담당의사가 오래 망설인끝에 조용히 불러 남편의 병명을 말해주었을 때 윤희는 자기운명에 철추가 내려진듯 눈앞이 캄캄해져 벽을 짚고 간신히 몸을 주체하였다. 이튿날부터 담당의사며 간호원, 과장의 눈치를 훔쳐보게 되였다. 그들의 얼굴에서 신심과 희망, 투지의 빛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나 서글픈 동정의 빛만 엿보였다. 주사를 놓아주고 약을 먹이는것도 동정심과 의무감때문인것만 같았다. 

윤희는 무서운 배신감을 느꼈다. 사나와지고싶었다. 그들에게 왜 포기하는가, 왜 단념하는가, 이러고도 당신들이 의사인가고 험한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고싶었다. 아니 그들의 손을 잡거나 옷자락에 매달려 혹은 발밑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리며 제발 구원해달라고 빌붙고싶었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남편의 체면이 깎일가봐 그리고 자기는 예술가의 안해라는 자각때문에 참았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다가 문득 오진이 아닐가 하는 의혹이 한가닥의 샘줄기처럼 암담한 마음속에 흘러들었다. 오진의 근거를 꼽아보니 얼마든지 있었다. 더우기나 남한테 악한짓이라고는 한일도 없는 사람이 무슨 벌로 그런 몹쓸 병에 걸렸겠는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크게 위안해주는 근거였다.

윤희는 남편의 운명에 덮씌워진 그 저주로운 병명에 무섭게 반발하여 어느날 새벽에는 담당의사를 찾아가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담당의사는 그의 눈길을 피하여 희붐하게 밝아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그럴수도 있다고, 가족들이 정 원한다면 다시 실험검사를 할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의 침울한 목소리가 망상에 부푼 가슴에 찬서리를 끼얹으며 피할길없는 진실을 일깨워주는듯하였다. 

윤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돌아서 나왔으나 마음만은 숙어들지 않았다. 그는 문병오는 사람들을 통하여 의학서적들을 빌려다가 의사나 간호원 몰래 밤새워 읽어보았다. 며칠후 다시 진행된 실험검사결과도 역시 같은것이였다. 그날저녁 담당의사는 병원에 있어봤댔자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여러가지로 사죄의 말을 한끝에 차라리 환자를 집에 데려가서 먹고싶다는것도 먹이고 아이들과 같이 있게 하면서 약을 쓰는편이 본인한테나 가족들한테도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하였다. 

윤희는 남편의 생명이 의학과학의 혜택밖에서 신음하고있으며 그것을 붙안고있는것은 자기혼자뿐이라는것을 이미 깨닫고있었지만 그런 소리에 노여움이 터져올라 눈물을 뿌리며 고집스럽게 반대하였다. 

어느날 고향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올라온 어머니가 입원실에서 하루밤을 같이 새며 동무해주고는 비여둔 딸집으로 떠나가면서 중매군처럼 뛰여다니며 결혼을 성사시킨 사촌오빠와 옛 인민학교의 교장을 두고 미치광이, 범이나 콱 물어가라고 쌍욕을 퍼부었다. 

그때 윤희는 눈물을 쏟으며 어머니를 달래였다. 

《엄마, 난 행복했어요. 짧게 살았지만… 정말 사랑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교장선생님한테 고맙다는 말은 못해도 절대 욕될 소리는 하지 말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딸의 갸륵한 마음이 대견하여 치마자락으로 코물을 닦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였다.

《얘야, 기운을 내자. 강심을 먹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라…》 

윤희는 그 말에 귀가 번쩍 트이였다. 그렇다. 세상에는 기적이라는것이 있지 않는가. 그는 어머니를 보내고나서 이번에는 있을수 있는 기적을 꼽아보았다. 새 치료법이 나올수도 있고 특효약이 발명될수도 있다.… 기적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었다. 그래서 굳세게 가다듬은 마음으로 버티고서서 그중의 어느 한 기적이라도 찾아들기를 기다려왔다. 

하루는 집에 있는 이머니가 문병오는 성녀형님편에 갈아입을 옷을 보냈는데 무슨 정신에서인지 화려한 단풍잎무늬가 듬성듬성 배긴 자주빛세타와 흑곤색치마를 보내였다. 윤희도 제정신이 아닌지라 그 옷을 갈아입고 마루를 닦는데 남편이 천정을 쳐다보며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당신은 색갈이 수수한걸 입어야 돼. 지내 요란한걸 입으면 아름다움이 옷에 묻혀버려… 나는… 나는… 저 그 연한 미색세타랑 좋더구만… 우유빛에 가까운거…》 

헛소리같았지만 윤희는 얼른 그 옷을 벗어버렸다.… 

의자에 앉아 남편의 얼굴만 지켜보던 윤희는 모포밑에 손을 넣어 그의 발목을 쓸어만져보았다. 살갗이 말라들어서인지 나무뿌리처럼 꽛꽛해진 발목에서 미열이 느껴지고 맥박까지 감촉되였다. 맥박은 발목에서뿐아니라 발등이며 발가락에서도 느껴졌다. 그것은 비록 고르롭지 못하고 겨우 알리는것이였지만 병마와 싸우는 심장의 화답이였다. 

윤희는 기쁨과 감사의 정에 목이 메고 설음같은것이 왈칵 북받치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발목이며 발등을 쓸어만졌다. 

(여보, 기운을 내요. 제발 기운을 내세요. 하늘이 허물어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락망하지 말아요.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홀로 살아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 버리지 말아요…)

남편이 이마살을 괴롭게 찌프리더니 한손으로 가슴우의 모포를 더듬더듬 쓰다듬었다. 그의 갈라터진 입술에서 가느다란 속삭임소리가 흘러나왔다. 

《윤희… 윤희…》 

윤희는 간절하게 할 말이 있는가싶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나 환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의 속눈섭이 알릴듯말듯 떨리고 이마에 피줄이 살아올랐다. 

그는 분명히 어떤 녀자이름같은것을 겨우 들리는 소리로 부르고있었다. 

《은주… 은주…》 실안개같이 흘러나온 그 소리는 윤희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흐려지는 의식속에서 자기와 어느 누구의 이름이 헛갈린것인지, 림종을 앞둔 혼몽한 의식속으로 지난 생활의 잊지 못할 그 누가 찾아온것인지… 

윤희는 순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기 이름과 련결된 존재, 은주라고는 누구일가? 녀자이름같은데 도대체 누구일가? 

불안과 공포, 신경과민에 제정신이 아닌 윤희한테는 착잡한 억측이 갈마들다가 이것이 혹시 애타게 기다려온 기적을 잡을수 있는 실마리가 아닌가싶은 생각이 뇌리에 번개쳤다. 남편을 살리자면 은주가 누구인지 꼭 밝혀내야 했다. 그렇다고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흔들어깨울수는 없고 곁에는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었다. 

한기석을 찾아 간호원실로 나간 윤희는 문밖에서 문병온 로영무와 마주쳤다. 

몹시 지친 기색인 로영무는 상대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멎어서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떻습니까?》 

윤희는 대답없이 벽에 붙여놓은 장의자에 가서 앉았다. 

로영무는 의아해서 곁에 와 앉았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병세는 그저 그래요. 선생님… 은주라고 몰라요?》 

《예?》

로영무는 대뜸 얼굴표정이 근엄해져 그를 빤히 여겨보았다. 

《은주라고 누군가요?》 

《그런 이름을 어디서 들었습니까?》 

《애아버지가 헛소리로… 누군가요? 누군가요?》 

로영무는 억이 질려 말문이 막혔다. 

《선생님이야 한평생 같이 지냈는데 모르겠어요? 누군가요?》 

로영무는 절망의 극단에 이른 이 젊은 녀자가 그 사연을 알게 되면 어떤 감정을 터뜨릴지 몰라 은근히 두려워 달래기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지나간… 아득한 시절의 일이지요. 우연히 헛소리가 나간것 같은데 먼 옛날부터 승진동무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그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도 전 죄다… 죄다 알아야겠어요. 선생님…》 

윤희의 타는듯한 눈이 그를 지켜보았다. 

로영무는 얼굴을 뒤로 젖힐사하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 무엇을 더 감춘단 말인가. 

이야기를 듣고있는 젊은 녀인의 얼굴에서는 놀랍게도 오랜 인생의 체험자 로영무가 우려하는 괴로움이나 얄궂은 시기심의 그늘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윤희는 처음에는 얼굴이 해쓱해서 들었는데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놀랍게도 기쁨에 겨워 어쩔바를 모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로영무도 따라일어났다. 

《저이한테 알려야겠어요.》 

《안되오. 흥분하면 병세가 나빠지오.》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나아져요. 꼭 나아져요!》 정신없이 속삭이는 윤희의 눈에서는 눈물까지 떨어졌다. 

《선생님, 그를 여기로 부르면 어떨가요?》 

《뭐요?》 

《그가 살아있다는걸 알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혹시… 혹시… 무슨 변화가 생기지 않을가요?》

로영무는 남편만 소생시킬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그 녀자의 마음에 목이 메여 더 말도 못하고 말리지도 못하였다. 

윤희는 그가 붙잡기라도 하는듯 홱 돌아서 남편한테로 총총히 들어갔다. 

이윽고 방안에서 조용한 부름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 여보… 정신을 차려요…》 

로영무는 방싯 열려진 문을 꼭 닫아주고는 간호원실을 지나 복도로 나가 격정을 못이겨 한동안 왔다갔다 거닐었다. 그리고는 복도벽에 기대였다. 

(나도 좀 있다 들어가자… 아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저 젊은 녀자 가슴을 저토록 크게 만들었는가. 남편의 죽음을 예감한것이 아닌가?)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어려 번쩍이였다. 

바로 그때였다. 

복도에서 다급한 발자욱소리가 울리며 간호원이 뛰여오고 한기석이 숨이 턱에 닿아 따라왔다. 

간호원은 곧바로 환자실로 들어가고 한기석이 김정일동지께서 오시였는데 원장실로 안내되시였다고 했다. 그리고는 로영무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이였다. 

《현관에 들어서며 어떠냐고 물으시니 원장이 아주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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