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6 장

1

 

온 예술계가 들끓고있었다. 

영화는 물론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지어는 교예에서까지 전에없던 창작적앙양이 일어나고있었다. 

민족가극극장을 비롯한 수도의 거의 모든 예술단들에 가극창작의 선풍이 몰아쳤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친히 그 모든 예술단체들에 나가 가극창조를 지도하시였는데 여태 범재로 묻혀있던 작곡가와 연출가, 무대미술가와 배우들이 갑자기 재능이 활짝 피여나 형상창조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서게 되였다. 시민들속에서는 친애하는 그이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파다하게 퍼졌으며 아침출근길이나 저녁밥상둘레에서도 그 이야기들이 화제에 올라 사람들을 목메이게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대극장무대에서 예술인들과 함께 밤을 지새며 가극창조를 지도하시다가 아침해가 뜬 다음 댁으로 돌아가시였다. 그이께서 여러 작곡가들의 수천편의 작품들을 지도하고계신다. 그이께서는 절대음감을 지니고계신다. 그이께서는 독서하실 때 한꺼번에 글줄 넉줄씩 읽어나가신다. 병석에 누워있는 전신불수의 로작가에게 희귀한 보약과 전축, 보청기를 보내주시였으며 어느 배우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신랑신부가 드리는 술잔을 소탈하게 드시고 그들의 행복을 축하해주시였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로부터 전설인지 알수 없었다.

평양주재 한 외국통신기자는 본사에 다음과 같이 타전하였다. 

《이 나라에서는 지금 문예부흥을 련상시키는 전대미문의 예술운동이 벌어지고있다. 이것은 분명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탁월한 령도자의 출현과 관련된다고 보아진다. 조선사람들은 그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고 부르고있다!》 

최승진은 이런 사회적분위기속에서 열정에 넘쳐 《꽃파는 처녀》의 연출대본을 작성하고있었다. 

《꽃파는 처녀》를 맡고싶다는 그의 열망에 누구보다도 기뻐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연출대본작성에서 철저히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살려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으며 연출가의 손에서 아직 대본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제작단을 무어주도록 배려하시였다. 

한기석과 강철룡이 부연출로 임명되였으며 음악, 미술, 조명, 효과, 의상, 장치, 소도구 등 창조성원들이 선정되였고 벌써 의상들이 도안되고 장치물들과 소도구들이 제작에 들어갔다. 이에 더욱 고무된 최승진은 먼 북방의 회성에까지 가서 야외촬영장소를 선정하고 왔으며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합숙에서 밤을 새면서 연출대본을 완성해나갔다. 그는 새사람으로 태여난듯 전에 없던 생기와 의욕에 넘쳐 아침이면 랭수마찰을 하고 조기체조에 참가했으며 하루종일 방에 붙박혀 펜을 달리다가도 저녁시간이면 부연출들과 떠들썩하게 장면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연출가의 이런 모습은 부연출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어느날 강철룡은 구두를 벗어버리고 운동화에 잠바바람으로 제작단에 나타났다. 

몇몇 녀배우들이 그런 갑삭한 차림새에 눈길이 끌려 어쩌자고 운동화까지 신고 나타났느냐고 물으니 철룡은 부연출한테는 이따금 륙상선수와 같은 기질도 필요하다고 하며 벙글거렸지만 그의 결심과 잡도리가 엿보여 누구나 가슴이 후더워졌다. 

어느날 식당아주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로영무한테 승진선생이 이틀전부터 식사를 전혀 들지 못하는데 식찬이 맞갖지 않아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였다.

로영무는 밤을 팬탓이겠지 하고 심상하게 여겼는데 하루는 최승진이 매우 불쾌한 얼굴로 그를 찾아와 소화불량이 생겼다면서 아무래도 병원에 좀 갔다와야 할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학병원에 가서 위투시, 여러가지 실험검사를 받고 와서 만성위염이라는것이 확진되였다고 하면서 여간 기뻐하지 않았으며 그 진단으로 새 생명을 받아안기라도 한듯 희열에 넘쳐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병원에 갔다온 이야기랑 하였는데 저녁녘에는 석양의 부드러운 해빛에 잎사귀들을 반짝이며 설레이는 창밖의 정원수를 내다보다가 매우 다감한 눈빛으로 로영무를 돌아보았다. 

《몇해전만 해도 볼품이 없던 저 나무가 언제 저렇게 아름답게 자랐는가? 우리는 예술가라면서 자연의 변화도 모르고 지낸다니까. 로동무, 저런 풍만한 자연미를 배경으로 한번 기념사진을 같이 찍지 않겠소?》 

자연과 생활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며 그것을 한껏 즐기고싶어하는 벗의 심정토로를 들었을 때 로영무는 느닷없이 가슴이 섬찍해졌다. 그가 이 며칠사이 무서운 병마에 대한 공포에 떨었으며 그래서 병원에도 뛰여가지 않았는가싶은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튿날 병원으로부터 총장실로 그가 불치의 병이므로 입원시켜야 되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것은 청천벽력같은 기별이였다. 

총장한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로영무는 어찌하여 병마는 한창 피여나 원숙기에 이른 재사일수록 서둘러 앗아가려고 영악하게 접어드는가싶으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그이께서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라시랴싶은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최승진도 같은 심정인지, 의사들의 소심성이며 무능을 비웃으면서도 총장과 주영도비서를 찾아가 영화를 다 만들기전에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테니 당에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병원으로 떠나갔다. 입원하여 수정작업을 계속한다고 연출대본도 가지고갔다. 그는 대학병원에 며칠 입원해있다가 림상경험이 많고 의료진이 강한 군대병원으로 옮기였는데 그후 병세가 가라앉는듯 하다가 폭발적으로 악화되였다. 병원에서는 부인이 와서 곁에 있으면서 간병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촬영소로 보내왔다. 

그이튿날로 촬영소안에 이런 소문이 퍼졌다. 윤희가 의료진의 그 요구에 어떤 우려가 숨어있는지 모르고 그저 어정쩡해져 병원으로 떠나갔으며 그를 병원접수실까지 데려다주고온 성녀가 저녁에 남편앞에서 생떼같은 사람이 그렇게 되였다고 눈물을 보였는데 로영무연출가가 난생처음 성이 독같이 나서 방정맞게 굴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자연에는 바야흐로 가을빛이 짙어가 저녁마다 느껴지는 선기와 푸르싱싱하던 가로수들의 잎사귀에 점점이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빛은 전에없이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애끓게 하였다. 락엽들이 산야에 흩날리고 앙상해진 나무가지들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면 부득불 여름장면들의 촬영을 중지하고 다음해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실무적인 사정이 다른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촬영소는 최승진의 병치료를 돕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취하는 한편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제작단사업을 림시로 로영무에게 맡겨 촬영준비를 다그치도록 하였다. 

부연출 한기석은 병원에 가서 연출가곁에서 연출대본완성을 돕고 강철룡은 로영무를 도와 대본이 완성되면 인차 봄, 여름 장면촬영을 시작할수 있도록 그 준비를 하여나갔다.  

로영무는 이전의 가책도 있어 최승진을 돕자고 배우들에게 원작을 깊이 연구시켰으며 촬영가, 미술가, 작곡가, 조명사, 효과사, 연화사 등 영화의 종합적형상에 참가하는 모든 자매예술부문성원들과의 사업을 전에없이 엄격한 요구성으로 해나갔다. 모두가 그의 닥달을 당했다.

어느날 그는 효과록음실에서 영화에 들어갈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우뢰소리, 문소리 등 효과음들을 들어보다가 그 록음테프들이 수십편의 영화제작에 참가한것들이여서 음색이 선명하지 못한것을 알고 당장 효과음들을 새롭게 록음해올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효과록음사들은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찾아 먼 산간의 자연속으로 떠나갔다. 

제작단의 촬영준비에서 제일 큰 난문제는 주인공 꽃분이의 역을 맡길 배우를 선정하지 못한것이였다. 중요한 배역이여서 요구가 비상히 높은데다가 대상이 16∼18살정도의 처녀여야 하는것만큼 녀학생들이나 비전문가들속에서 찾아야하기때문에 난관이 더 컸다. 

로영무의 머리속에 그려진 표상에 의하면 꽃분이는 그지없이 순박하고 아름답고 순결무후한 정신미를 가졌으며 다감다정하면서도 의지가 강하고, 그런면서도 모진 세상의 비바람에 시달려 이른 서리를 맞은 한떨기꽃처럼 처량한 인상을 풍기는 어린 처녀였다. 수도와 지방의 예술부문학교들과 예술단체들이며 중학교와 전문학교, 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전국적판도에서 찾아보았으나 완전무결하게 적합한 대상은 없었다. 강철룡이 어디 가서 겨우 골라온 몇명의 대상들은 아름답기는 하였지만 모두 하나같이 생기발랄하고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이는 오돌찬 처녀들이였다. 우수에 젖어 구슬프게 빛나는 눈, 이른서리를 맞은 메꽃과 같이 처량한 인상을 풍기는 모습은 없었다. 

행복한 사회의 품속에서 인생의 불행이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난 세대들속에서 그런 존재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것 같았다. 

어느날 로영무자신이 직접 배우선발의 길에 나섰다. 그는 우선 수도의 모든 극장들을 샅샅이 뒤져볼 작정을 하고 평양예술단, 청년예술단, 국립극장, 평양교예단, 사회안전부연극단을 걸쳐 인민군협주단에 이르렀다.

인민군협주단 단장은 매우 욕심스럽게 생긴 대좌였는데 로영무의 용건을 듣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기네한테는 그런 적임자가 없다고 잘라말하였다. 그는 몇해전 영화에 한두명 찬조출연시켰다가 아주 떼운 일이 있다면서 좋지 못한 소리까지 하였다.

로영무가 작품의 중요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하자 대좌는 잠시 무슨 궁리인가 하다가 능청스럽게 웃어보이며 한가지 교환조건을 내놓았다. 그 교환조건이란 자기네가 대합창을 하나 준비하는데 무대배경에 환등대신 대담하게 영화화면을 비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면서 그것만 잘 도와주면 미인부대인 무용부의 어린 처녀들을 몽땅 로영무앞에 내세우겠다는것이였다. 

로영무는 껄껄 웃으며 동의했다. 지휘자출신인 대좌는 농민적인 투박한 말씨를 하나의 치레로 여기는지, 넨장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하면서 무대로 나가보자고 하였다. 

무대에서는 대합창이 한창 련습중에 있었다. 드넓은 무대의 앞부분에는 관현악 반주성원들이 빼곡이 들어앉아있고 그 뒤에 2백명은 넘어보이는 합창대가 층층으로 서있었다. 무엇을 억세게 내리누르는듯한 지휘자의 팔놀림에 따라 관현악이 잦아들며 대합창이 폭풍처럼 터져나왔다. 그 소리는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다가 부드럽게 날아도는듯하더니 피아노의 열정적인 탄주소리가 환희의 선풍처럼 장내를 휩쓸었다. 

객석의 통로에 대좌와 나란히 서있는 로영무는 머리가 핑 도는듯하였다. 대좌는 손으로 무대를 가리키며 저 합창대뒤의 배경에 밀림이 설레이고 유격대원들이 눈보라속을 행진해가는 영화화면을 비치자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대합창은 《밀림이 설레인다》라는 작품을 새롭게 편곡한것인데 협주단의 야심작이라고 했다. 

로영무가 실눈을 짓고 무대쪽을 바라보다가 영화화면을 비치면 오히려 조잡해지지 않겠느냐고 하자 대좌는 그런 의견도 있지만 우선 해볼 결심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 대극장에서 창조하고 있는 혁명가극 《피바다》의 무대장치는 완전히 립체적인것이라고 하면서 녀무용수들을 경사진 대에 눕혀 백두산을 부각하는것과 같은 대담한 시도도 한다고 했다.

이때 지휘자의 손이 허공을 찌르고 모든 성부의 배우들이 목청껏 소리를 내질러 합창이 장쾌한 환성으로 번지여 극장을 들었다놓았는데 그것은 협주단의 전투적인 기백과 진취성을 시위하는것 같았다. 

로영무는 대좌가 내세운 무용부의 어린 처녀들속에서 두명을 점찍어두고 거기를 떠났다. 그는 음악무용대학을 걸쳐 날이 어두워져서 대극장에 도착하였다. 

대극장둘레의 외등들에는 명절전야처럼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그는 배우들과 관리일군들이 드나드는 후문으로 극장안에 들어가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량감이 느껴지는 그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은 갖가지 음악소리로 가득차있었다. 련습실, 휴계실, 의상실, 분장실, 그 어디에서나 음악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피아노소리에 어울려 박력있게 터져오르는 소합창, 목관악기의 구성진 소리와 현악기들의 흐느낌소리, 녀성고음의 열정적인 부르짖음… 소리의 세계에 들어선 로영무는 번창한 도시에 처음 온 산골로인처럼 얼떠름해졌다. 그는 누구를 찾아 어디로 갔으면 좋을지 몰라 복도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이문 저문을 열고 기웃거렸다. 

가극단의 총장, 예술부총장, 연출가, 어느 누구도 자기 방에 없었다. 지나가는 배우들을 물어봐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딱히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련습실에 나갔으리라는 막연한 대답뿐이였다. 모두 자기 창조세계에 깊이 빠져있어 다른 사람들의 행처에 대해서는 모르는것 같았다. 

그는 3층, 4층으로 올라가 찾아보다가 돌아섰다. 층계는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아득한 옛시절의 농촌처녀로 분장한 한무리의 녀배우들이 아래로부터 우르르 밀려올라오는가 하면 왜놈군복차림의 배우들이 우로부터 밀려내려왔다. 또 그 뒤를 따라 얼굴에 분장을 진하게 한 화려한 무용복차림이 녀배우 몇이 층계에 끌리는 치마자락을 걷어쥐고 사뿐사뿐 걸어내려왔다. 

로영무는 그런 배우들과 마주칠 때면 방해가 될가봐 길을 비켜 벽에 붙어서군했다. 그 배우들은 로영무를 어느 관리부서의 전공아바이쯤으로 여기는지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단지 한두명의 무용수가 그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가 2층복도에 내려서는데 뒤에서 누구인가 반겨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요?》 

돌아보니 가극연출가 리문학이였다. 이마가 훌렁 벗어지고 코날이 높이 선 그는 구라파사람과 같은 인상이여서 지난날 영화에 미군역으로 찬조출연한 일도 있어 로영무와 가까운 사이였다. 

리문학은 색이 바랜 밤빛 구식쟈케트를 우에 걸치고있었는데 그 호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턱을 쳐들사하며 느슨하게 웃어보였다. 

《허, 이거 무슨 바람이 불어 촬영소귀신이 대처에까지 나왔소?》 

로영무도 롱말로 응수했다. 

《선보려 왔네!》 

《뭐? 선보려?》 

《선보려…》 

《또 이 뻔대를 데려가자는 수작이군. 여보게, 이젠 싹 그만두겠어. 손자애들한테 위신이 없단말이야 . 장성급쯤이면 몰라두…》 

《허허허.》 

로영무는 유쾌하게 웃다가 엄지손가락으로 눈굽을 찍어내고는 얼굴빛이 진중해지며 찾아오게 된 사연을 말하였다. 

리문학이도 정색해져서 듣더니 가극창조에 망라된 인원들은 다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좌우간 찾아보게. 모처럼 왔다가 섭섭하게 그냥 돌아가겠나. 먼저 4층에서부터 내리훑어볼가.》

리문학은 그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 무용련습실로 안내하였다. 

한쪽벽이 거울로 된 넓은 방안의 윤이 알른알른한 쪽무이바닥우에 눈처럼 흰 무용의상으로 단장한 수십명의 무용수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앉아있었는데 무용수들과 대조되게 새까만 양복차림을 한 40대의 남자무용지도원이 그들속을 왔다갔다 거닐며 신경질적인 어조로 꾸짖고있었다.

로영무는 리문학의 뒤를 따라 들어가 출입문곁의 장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지도원이 그들쪽을 흘깃 돌아보고는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꿈… 꿈이라는 소리를 내가 몇천번이나 했는가, 동무들은 현실속의 안개가 아니라 꿈속의 안개… 말하자면 꿈나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몽롱한 의식의 흐름이란말이요. 그런데 아직도 률동이 부드럽지 못하오. 감정이 장작개비, 장작개비란말이요. 팔, 다리, 발끝… 다 같아. 얼굴표정도 꿈꾸는듯 몽롱해져야겠는데 감정이 장작개비, 장작개비란말이요.》 

로영무는 언제인가 대극장에 《장작개비지도원》이라는 《폭군》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어 바로 이 친구였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여겨들었다. 

무용수들은 그의 닥달에 습관이 된듯 모두 심드렁한 얼굴로 들었고 한두처녀는 가슴아래에 드리운 옥패를 가지고 손장난까지 하였다. 

《이제 한번 해서 안되면 다시 되돌아서 개별훈련으로, 개별훈련으로 들어가겠소, 일찌기 퇴근해서 제볼장을 볼가 하는 생각은 싹 그만두라구, 안되면 열흘이구 보름이구 밤을 패야 돼… 안개… 몽롱한 안개… 꿈꾸는듯한 얼굴… 어머니의 정신세계에 완전히 잠겨들어가야지 머리속에 티끌만한 잡생각도 있어서는 안돼…》 

로영무는 평상시 녀성들속에서 어느 누구만을 여겨보는것과 같은 무례한짓을 안하는 성미였지만 직업상의 요구로부터 앉아있는 무용수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였다. 그러다가 왼쪽 맨끝에 앉아있는 어린 무용수에게 마음이 끌렸다. 아련한 얼굴모습, 구슬픔이 어린듯한 눈매… 

리문학이 벌써 무슨 눈치를 챘는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였다. 

《서영애라고 무용학교 전문부출신이요. 19살에… 아버지는 도시경영사업소 로동자요. 우리 극장 난방관을 고쳐주었소…》

서영애라는 그 어린 무용수도 무슨 기미를 느꼈는지 올롱한 눈으로 그들쪽을 바라보다가 리문학이 눈을 찡긋해보였는지 수집게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무용수들은 지도원의 구령에 따라 일제히 일어나 자기 자리들을 잡더니 깃을 펴고 쓰러진 학들처럼 한쪽무릎을 꿇고 쪽무이바닥에 엎드렸다. 

구석쪽에 놓인 립체록음기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는듯한 소고소리가 잦은가락으로 들썩하게 울려나오다가 멎더니 꿈나라로 이끌어나가는듯한 몽롱한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실려 방바닥에 엎드렸던 무희들이 팔을 흐느적이며 피여오르는 안개처럼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음악이 고조되였다. 무희들은 어느덧 두겹 세겹으로 원을 그리며 넓은 방안을 미끄러지듯이 돌아갔다. 윤이 흐르는 칠흑같은 머리들에 두른 장식띠의 반짝거림, 꿈꾸는듯한 얼굴, 얼굴들, 어깨에서 팔로 흘러내려 손밑으로 휘늘어진 하르르한 숄의 나붓김, 치마폭에 드리워 금빛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옥패, 쪽무이바닥에 스치는 치마자락들의 야릇한 소음… 

무희들은 얼음판우에 미끄러져가듯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그들의 머리우로 숄들이 실안개와도 같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무용은 물결처럼 설레이고 안개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람에 밀려가는 실안개처럼 가볍게 가운데로 몰켜드는가 하면 산산이 흩어지고 다시 몰켜들어 회오리치다가 흩어지면서 원을 그리였다. 

《장작개비지도원》은 흩날리는 숄들의 안개에 묻혔다가 풀려나오군하면서 한손을 높이 들어 무엇인가 알뜰살뜰히 쓸어만지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허리를 구부정하고 열에 떠서 속삭이였다. 

《좋아… 좋지… 그래… 그래… 안개… 안개… 부드럽게 더 부드럽게…》 

그의 손에 쓸어만지운듯 하나같이 다소곳이 내리뜬 눈들, 우아하게 쳐들린 팔들의 흐느적임, 알릴듯말듯 아기자기하게 벌려진 손가락들이 기묘한 놀림, 음악의 가락에 실려 둥둥 떠가는듯한 어깨선들의 잔물결, 장식머리띠의 반짝거림, 옥패들의 살랑거림…

로영무는 문득 예술단체들에서 받았던 인상들이 하나로 종합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영화뿐아니라 예술의 모든 부분에서 얼마나 폭넓은 사업이… 이건 거창한 흐름이야!) 

몇순간이 지난 뒤에야 그는 상념에 잠기는 바람에 자기 눈이 서영애를 놓쳤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황황히 무희들을 둘러보았다. 

서영애는 가운데로 몰켜들어 돌아가며 분수처럼 숄을 날려올리는 무희들속에서 언뜻 나타나는가 하면 숨박곡질을 하듯 순간에 사라졌다가 흩어지는 안개속에서 문득 자태를 드러내군하였다. 그러다가 두 연출가앞을 미끄러져 지나갈 때면 숄을 휙 들어 새침해진 얼굴을 가리워버리군하였다.… 

옥상의 루각으로 나온 로영무는 흥분을 못이겨 성급히 담배를 피워물었다. 

뒤따라 나온 리문학이 유쾌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 처녀한테 끌렸던 모양이지?》 

《괜찮긴 한데… 더 골라보구.》 

《원 젠장, 욕심두, 그러다간 하늘에까지 올라가겠네. 옥황상제가 거느린 선녀들속에도 저런 처녀는 없을거네.》 

《이자 그 무용이 가극 <피바다>에 들어가는 무용인가?》 

그들은 란간에 기대여앉았다. 

《그렇네… 어머니의 꿈장면에 들어가는 환상무용이네. 어머니가 저 무용속에서 아들을 만나네. 환상무용… 처음 들어보는 소리지?》 

《대단하구만.》 

《요새는 저렇게 맨 대단한것뿐이네. 이전에야 가극에 저런 환상무용을 넣을걸 생각이나 했댔소. 김정일동지께서 가극을 지도해주시면서 그야말로 혁명이… 혁명이 일어났네. 가극의 노래들을 몽땅 절가로 하네. 절가로…》

《독창도?》 

《물론 독창도… 형상해보니 정말 훌륭해. 부르기 헐하고 듣기 좋으면서도 극성이 아주 강조되네. 반복구로 가사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그리고 방창이 대담하게 도입되고있네. 방창의 역할이란 대단하거든. 주인공의 심리를 개방해줄뿐아니라 정황설명, 세월의 흐름까지 다 말해줄수 있단말이요. 이건 완전히 우리 식의 독창적인 가극이네. 가장 인민적이고 가장 혁명적인 가극이네.》 

로영무는 그런 소리를 듣자 고일명에 대한 우려때문에 얼굴빛이 흐려졌다. 그는 외국에서 돌아온 날 안해한테서 정아가 집에 찾아와서 했다는 이야기를 죄다 들었던것이다. 

리문학이 그의 얼굴을 흘깃 훔쳐보았다. 

《여보게. 왔던김에 일명이를 만나고가게…》 

《다 들었네…》 하고 로영무는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였다. 

《자네들이야 사돈간이 아닌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얼굴이 가매서 돌아가는 정아가 보기 안됐어.》 

《아직도 그냥 그 고집인가?》 

《내놓고 고집을 부리지는 않지만 창조사업에 적극성이 없네. 합창곡이나 무용곡이라도 좋은걸 써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무슨 배심에서인지. 노상 찌뿌둥해서 외토리로 돌아가네. 만나라구.》 

《내버려두라구. 온 극장에 맞선 위인이 나한테라구 숙어들겠나. 코가 깨지든 이마가 터지든 다 제탓이지…》 

《참 답답한 일이거든… 구라파사람들도 틀에 박힌 19세기 고전가극에 염증을 느끼고 무엇인가 새것을 요구하는데 저 사람은 그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든…》 

이때 검은색샤쯔에 회색넥타이를 맨 고일명이 옥상으로 나왔다. 그는 단단하고 반들거리는 이마밑에 침울한 눈을 빛내이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리문학은 사돈끼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고일명은 담배를 피워물며 심각한 눈빛으로 로영무를 훔쳐보았다. 

《그새 잘 있었소?》 하고 로영무가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먼데 갔다왔다는걸 알면서도 인사하러 가지 못해 미안하오.》 

《일이 바쁜데 뭘…》 

《헝, 일이 바빠서가 아니라 궁지에 빠지다나니 인사를 차릴 마음의 여유도 없구려.》 

《사람이 살아나가느라면 이런 저런 일이 생길수 있지… 다 들었소.》 

《저 리문학이 뭐라고 하지 않았소?》 

《걱정하더군…》 

《걱정?… 저 사람은 창작실안의 론쟁을 온 극장에 퍼뜨려놓았네. 모두 저 사람 말을 듣고 당정책을 반대하는 종파놈처럼 나를 조겨댔네. 음악에 문외한인 리문학은 그렇다치고 서부상이 그러는데는 정말 아연해지네. 어떻게 된 노릇인지. 완전히 범이… 범이 됐어. 내가 언제 절가전체를 부정했는가? 독창만은 절가로 하면 극적인 감정을 강하게 표현할수 없다고 했을뿐이네. 저들이 그런다고 내가 자기 예술적신념을 포기하겠는가. 움츠러드는척 하면 되는거지.》 

그리고는 턱을 쳐들사하고 구슬픈 얼굴로 대동강쪽을 내다보다가 시적으로 읊조리였다. 

 

나는 무희가 아니여니  

남의 장단에 춤출것도 없어라 

 

로영무는 엄엄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분격을 터뜨렸다.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린가? 대중이 좋다는걸 왜 반대하는가말이요?》

《흠, 리문학이처럼 나를 조겨대고싶소? 너무 흥분을 앞세우지 말고 좀 기다리오. 이제 무대에 올려놓고 형상해보면 내 말이 옳았다는것이 판명될거요. 나는 확신하오.》 

고일명은 돌아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로영무는 그 기상에 너무 아연해져 한동안 그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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