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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3
요즘 로영무의 집에는 시집간 딸 정아가 이따금 찾아왔다. 가극극장 성악배우인 정아는 아버지가 외국에 가고 없어 적적하게 지내는 엄마를 동무해준다고 와서 자고갔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색이 좋지 못했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속이 너른 성녀는 남편의 사랑이 극진하고 첫아기를 낳은 다음 성량이 풍부해져 안팎으로 활짝 피여난 딸의 생활에 무슨 변이 생기겠는가 대범하게 생각하고 인민반사업에 몸을 잠그었다. 그의 집에는 며칠에 한번씩 인민반아주머니들이 모여들어 촬영소와 영화문학창작사 건설장들에 지원물자들을 마련하여 보내느라고 벅적 떠들어대였다. 세대주가 어디로 가고 없는 집에 아낙네들끼리 모이면 모두 제세상이나 만난듯이 활기에 넘쳐 떠들어대기 마련인데 그 보다는 건설장의 기세가 인민반에 옮겨지고 거기에 성녀의 성미까지 작용하여 모두 그토록 웃고 떠들고 야단들인것이였다. 그들이 마련하여 보내는 지원물자들이란 로동장갑, 로동화, 세수수건, 손수건 그리고 사이다, 사탕과자, 랭차 등 간식류들이였다. 아낙네들은 인민반장이고 제일 년장자인 성녀를 가족지원대 대장으로 내세워 《대장동지》, 《대장형님》 혹은 《대장어머니》라고 불렀으며 성녀는 회계가 빠르고 약삭바른 윤희를 《참모장》으로 삼았다. 한번은 건설장 전투속보에 가족들의 지원사업을 소개하면서 《건설자들에게 친근한 박성녀대장어머니》, 《랭차도 좋지만 지성이 더 고마운 윤희참모장아주머니》라고 크게 붙이여 모두 처녀애들처럼 배를 그러안고 웃어대였다. 촬영소와 영화문학창작사건설은 로영무가 인솔하는 참관단이 외국으로 떠난 다음 얼마 안있어 시작되였는데 두 대상이 다 새로운 부지에 건설하는것이 아니고 이미 쓰던 건물들을 아주 허물어 버리고 그자리에 새로 짓거나 개건확장하는것이여서 유리한 점도 있지만 말째고 어려운 점이 더 많은 공사였다. 촬영소에서는 영화제작단에 망라되지 않은 모든 성원들이 건설에 떨쳐나섰고 수도와 지방의 예술단체들에서 지원대들이 달려왔다. 신문이나 방송으로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는데 그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영화애호가들을 흥분시켰다. 열렬한 축하와 성원의 심정들을 담은 편지들이 매일 촬영소로 날아들었다. 오래간만에 차례진 자기의 휴가를 바쳐 건설장에 달려오는 국가공무원들과 군관들도 있었다. 동해안의 여러 수산사업소들에서는 지원물자로 랭동한 수산물을 기차방통으로 보내여주었고 량강도의 한 림산사업소에서는 문과 문틀을 만드는데 써달라고 미끈한 통나무들을 실어보내였다. 건설장의 방송차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지원로력과 지원물자들의 도착정형을 방송하여 건설자들의 기세를 돋구었다. 기쁨과 흥분, 감격으로 들끓는 이러한 건설의 거세찬 선풍속에서 영화예술인아빠트의 가족들은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 같아 마음편히 집안일만 돌볼수 없었다. 그래서 인민반마다 모임을 가지고 지원사업에 떨쳐나섰는데 차차 판이 커져 《대장》이며 《참모장》까지 내게 되였다. 그날은 건설장에 국수를 가져가기로 하여 태반의 녀인들은 일찌기 국수집에 나가 국수누르는 일을 도왔으며 성녀와 윤희는 부엌에 남아 육수물을 만든다, 국수꾸미를 갖춘다 부지런히 일손들을 놀렸다. 창문들을 열어놓았으나 부엌천정밑에는 뽀얀 김이 서려들고 집안에는 구수한 고기국냄새가 가득찼다. 성녀와 윤희는 문득 둘사이에만 오가는 정이 가슴에 젖어들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온다는데… 예정보다 늦어져서 무척 기다렸겠지?》 《…》 《나는 령감생각이 나면 지도만 들여다봤다니까. 여기서 빠리가 어디요. 게다가 애급까지 가서 우리 나라 영화상영주간 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온다니 그 먼길에서 별고없었는지… 떠날 때 뭘 선물로 사오라구 부탁하지 않았나?》 《아니요…》 《바보…》 《그럼 형님은 …》 《난 향수를 사오라구 했어. 빠리향수를… 무역부문 부인님네들처럼 상점에랑 가서 냄새를 피우며 돌아다녀보자구.》 《정말?》 《왜 아닌것 같애?》 《정말 그러구싶어요?》 《그렇지 않구!》 성녀는 익살스럽게 그를 흘겨보더니 허물어져내리듯 퍼더버리고 앉으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글쎄 예전에 한 동무가 모스크바에 갔다가 빠리향수란걸 사왔는데 냄새를 맡아보니까 우리 은방울꽃향수보다 더 좋은줄 모르겠어. 내 코가 메서 그런지… 우리 령감은 성미가 어째 그런지 젊어서부터두 내가 외국제 화장품같은걸 부러워하면 무섭게 야단질을 했어… 당신은 속물이 아니라 연출가, 예술가의 안해란말이요. 우리는 조국이 가난한만큼… 조국이 부유한만큼… 이런 기준으로 살아야 한단말이요! 이러지 않겠나. 한번은 뾰로통해져 아니 조국이 어렵다구 개인들도 어디 다 어렵게 삽디까. 세상에 조국의 수준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조국은 거들지 말고 더 잘살수 있는 재간이 없으면 솔직히 그렇다고나 해요… 이랬더니 소리를 친다는데 난 기절할번했다니까.》 《뭐라고요?》 윤희는 눈이 올롱해서 성녀를 쳐다봤다. 《그런건 부럽지 않아. 조국의 수준보다 넘게 가지고있는 부란 다 비량심적인게다, 더러운게다, 알기나 아는가? 이러구서 문을 쾅 닫구 나갔는데 일주일이나 나하구 말을 안했어. 곁에두 안오구… 그래서 생 버릇이 떨어졌다니까. 하하하…》 웃어대는 성녀의 눈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윤희는 그런 생활신조며 주장이 너무 지나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으나 로영무연출가며 성녀아주머니의 생활세계에 호기심이 끌리고 그들의 량심에 자기 마음을 은근히 비쳐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리고 시형처럼 어려운 로영무연출가와 푸접이 좋고 성미가 콸콸한 이 성녀아주머니의 부부관계, 애정생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것일가. 이 녀인도 남편앞에서 교태나 어리광을 부릴가, 하는 생각이 가슴속으로 기여들었다. 윤희는 제김에 숫저워 그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때 심술궂은 바람의 장난으로 창문이 버럭 열리며 무엇을 후려쳤는지 부엌천정밑에 늘였던 파란 빨래줄이 아래로 떨어지고 거기에 빨아널었던 하얀 밥보자기가 너울너울 날아내려 윤희의 어깨에 걸렸다. 창문이 빨래줄을 치는 바람에 문틀의 삭은 못이 부러졌던것이다. 성녀는 빨래줄의 끝매듭에 끼여있는 못대가리를 쥐여보더니 혀를 찼다. 그리고는 복도의 낡은 걸상을 창문밑에 놓고 부엌창고에서 공구함을 꺼내와서 알맞춤한 못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늘색 뼁끼칠을 한 공구함속은 여러칸으로 되여있는데 각종 규격의 못들과 톱, 망치, 집게, 나사틀개, 뻰찌, 전기부속품… 없는것이 없었다. 윤희는 부러운 눈으로 그것들을 들여다보다가 연출가선생이 살림살이에 이렇게 깐깐한분인가고 물었다. 성녀는 응대를 안했다. 목수처럼 어느새 두세개의 못을 입귀에 문 그는 창문밑의 걸상에 올라가서 못이 부러진 자리를 망치로 똑똑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뒤로 젖힐사하며 실눈을 짓고 무엇인가 겨냥하는듯하더니 입귀에서 못을 뽑아 문틀에 대였다. 마치질 세번으로 못은 알맞춤히 박혔다. 윤희는 그 솜씨가 너무 희한해서 빨래줄끝을 올려주며 언제 목수재간을 다 배웠느냐고 물었다. 성녀는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번에는 다른 재간을 보라는듯이 걸상에서 껑충 뛰여내려 윤희의 목을 안고 웃어댔다. 그러다가 부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우긴 어디서 배워… 저절로 그렇게 됐지. 저절로…》 갑자기 그 녀자의 눈에 눈물이 어리며 목소리가 떨리였다. 《나는 저 령감한테 집안일을 시키지 못하겠어. 여느 기술자들을 보면 배운 지식이나 기술을 한동안 그냥 써먹어도 되는것 같은데 이건 매번 창작이야 창작… 첫날부터 마감날까지 새것을 내놔야 돼 새걸 또 새걸… 그러자니 늘 불안이 따르고 모험이 앞서는 길을 걸어야 해. 개척자의 길이지… 주인공의 운명을 생각하다가 혼자 웃고… 울고… 새벽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왔다갔다하구… 실지 살아있는 사람이면 또 모르겠어. 누가 머리에서 궁리해서 종이에 써놓은 사람을 가지고 제살붙이처럼 여기면서 마음을 쓰거든… 이거야 참… 예술가란 남다른 심장을 지닌 사람이야… 의지가 강하구 심장이 다감하구 담이 크구 농사군처럼 부지런한 사람이야 할수 있는 직업이지. 게으름뱅이는 못해. 남들이 누리는 락을 다 누리자고 맘먹으면 하루도 못해… 이런걸 알게 되니까 남편한테 집안일을 시킬수 없게 됐지… 예술가의 안해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활력이 강해야 해…》 윤희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마늘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또 랑군생각인가? 오늘 온다는데 맘을 푹 놓고 있을게지. 그다지나 쯧쯧…》 윤희가 량볼이 화끈거려 눈길을 쳐드니 부뚜막에 기대여선 성녀가 웃음어린 얼굴로 여겨보고있었다. 《요새는 더 환하게 피여나서 최선생이 오면 정말 좋아하겠어… 옛날 소설책에도 애간장을 태우며 기다리는 님이 있으면 눈빛이 영글어지고 얼굴이 꽃처럼 피여난다고 써있더니 그 소리가 맞다니까. 에그 그저 우리 령감이 불쌍하지. 먼데 갔다와도 방구석에서 기다리는건 이런 쭈룩살이로친네니까 얼마나 재미없겠어.》 《형님, 그런 소리말아요. 요새 얼마나 환해졌는지 알아요? 열살은 더 젊어진것 같아요.》 《내-가? 아이구 귀신이 곡하겠다. 하하하…》 성녀는 놀라서 펄쩍 뛰는 시늉을 했지만 그런 소리를 듣는것이 여간 기쁘지 않은지 크게 웃었는데 그의 눈에 청춘의 생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때 출입문이 열리고 누구인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났다. 성녀는 움쭉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그의 딸 정아가 애기를 안고 나타난것이였다. 《휴일도 아닌데 어떻게 시간을 냈니?》 《극장에서 휴식을 줬어요. 그새 련습에 지쳤다구…》 정아는 복도에 따라나간 윤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성녀는 더위에 얼굴이 빨갛에 익은 외손녀를 얼른 받아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아는 따라들어가서 양복저고리를 벗어 벽에 걸고는 금수강산이 수놓인 벽장보밑에 허물없이 다리를 퍼더버리고 앉았는데 아련한 얼굴에 피곤이 잔뜩 실려있었다. 《힘드니?》 《그저… 가극창조가 시작되면 늘 그렇지요뭐.》 《<피바다>를 가극으로 한다면서?》 《작품이 좋아 모두 밤가는줄 모르고 련습해요.》 《음…》 성녀는 고일명을 닮아 도드라질사한 아기의 이마며 목에 땀이 내밴것을 보고 핀잔의 소리를 했다. 《날이 더워지는데 무슨 옷을 이렇게 껴입혔니? 양말까지 신기구… 머리는 이게 뭐냐. 파마까지 해서 꼬불꼬불한게…》 성녀는 아기를 방바닥에 눕혀놓고 양말이며 옷을 벗기면서 계속 나무람하였다. 《솜털같은 요런 머리칼에 전기고데를 대는게 끔찍하지 않더냐. 차림새를 보면 이거야 어디 조선애냐. 서양인형이지. 시체 젊은것들은 아기를 제 치장감으로 여긴다니까.》 그 소리에 정아는 심드렁해서 대꾸했다. 《그렇게 단장시켜야 좋아하니 별수 없지요. 흥 취미두…》 《시어머니가?》 《엄마는 우리 집 제왕이 누군지 모르세요?》 《그럼 고일명선생이? 원 세상에… 손녀차림새까지 마음을 쓴단말이야?》 《어찌나 극성스러운지 금이야 옥이야 하는것까지 다 귀찮아요.》 방안에 따라들어갔던 윤희는 복도로 도로 나왔으나 모녀의 심상치 않은 말소리때문에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됐다. 너무 사랑해서 그런다면 어찌겠니. 취미에 맞추려마.》 《맞추지요. 그 고상한 취미에… 제힘에 그 고집을 어떻게 당해요. 집에서 그러는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요즘엔 온 극장에 엇서서 론쟁해요… 이제 일이 나요.》 《아니 무슨 일로?》 《모르지요. 동무들 보기 막 부끄러워요. 다른 극장에 옮겨앉던지 해야지…》 《대체 무슨 일이냐. 나도 좀 알자꾸나.》 《엄마는 들어두 몰라요… 다른 작곡가들이 창작한 곡들을 다 아니라지요. 극성이 없다고, 모두 좋다는데… 어제는 리문학선생하구 대들판 론쟁을 했어요. 돌아가는 소문은 리문학선생한테 무식쟁이라고 소리쳐 울리기까지 했대요.》 《잘-한다… 남들이 다 좋다는걸 왜 그런다니?》 《집안을 망하게 하고싶어 그러지요. 누가 그러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문학선생은 화김에 옛날 조립식건설을 반대한 종파들과 비겨서 규탄했대요.》 《아유 끔찍해라… 아버지가 돌아와서 이 일을 알면 펄쩍 뛰겠는데 어찌겠니… 아버지한테 절대 말하지 말아라. 나하구만 의논하자… 나하구만…》 윤희는 부엌쪽으로 소리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형님은 저렇게 사는것이 행복할가? 집안의 모든 대소사… 시집간 딸의 고민까지 걷어안고 살면서 그 어떤 보람은 느낄수 있겠지만… 불행감은 없을가? 녀자의 행복, 안해의 행복, 주부의 행복이란 무얼가…) 윤희는 성녀의 생활을 따르고싶어도 도저히 그렇게 할수 없을것 같았다. 그보다 속도 너르지 못하고 몸도 약하고 일손도 걸싸지 못해서… 그는 남편이 외국을 떠나간 다음 밤이면 방안에 홀로 누워 자기 생활과 행복을 두고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우선 외로와 견딜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는 남편한테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수 없는 녀자가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출입문이 열렸다. 몸에 꼭 맞는 작업복에 붉은 머리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이쁘장한 처녀가 복도에 들어서며 숨이 턱에 닿아 부르짖었다. 《직일관동지가 저보구 알리라구 했어요. 연출가동지들이 오늘 돌아오시기때문에 건설장에 나오지 말구 집에 계시라구 했어요!》 배우양성소 양성생인 손영실이라는 나어린 처녀였다. 방에서 나온 성녀가 반색을 띠며 소리쳤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처녀는 한 말을 곱씹어했다. 《집에야 언제 들어오겠다구, 여기저기 들려 인사도 하구 사무실에랑 들리고나면 밤중에나 들어오겠는지…》 《아니예요. 비행장에서 곧장 집으로 온다고 했어요.》 《그거야 여기 사람들 생각이지, 내가 령감성미를 몰라서… 건설장에 갔다와도 넉근해… 그래 무슨 배역을 맡았나?》 《저희들이야 언제…》 《내가 연출가라면 하나 제꺽 시키겠어… 이렇게 복도에 서있는데두 우리 집이 다 환해지는구나.》 처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윤희는 성녀가 남편이 온다는데도 그렇게 딴전을 부리는것이 못마땅하여 눈을 내리깔고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설음같은것이 치밀어올라 목구멍이 꽉 메였다. 그이를 부르면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옆에서 듣는것 같아 팔짱을 끼는척하며 젖가슴을 싸안아 지그시 눌렀다. 민흥동의 영화문학창작사 건설장은 뭉게쳐 오르는 흙먼지구름, 기계들의 동음,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한벌 깔려 붐비는 사람들의 웨침소리로 하나의 전투장을 련상시켰다. 지난날 어느 체육단이 썼다는 낡은 3층짜리 건물은 벽체만 앙상하게 남았는데 모든 층의 창구들은 황갈색의 먼지구름을 뭉게뭉게 토하고있었다. 기중기들이 벽돌이며 몰탈을 들어올려 그 창구들에 갖다대면 먼지투성이의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 안으로 끌어들였다. 건물둘레에서는 사람들과 불도젤들이 한데 어울려 창구들이 토해놓은 버럭들을 밀어내가고 뒤쪽의 언덕받이에서는 굴착기들이 땅을 파헤치고있었다. 한쪽에서는 모래와 자갈을 실은 화물차들이 경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차례를 다투고있는가 하면 다른쪽에서는 미끼샤들이 모든것을 부스러뜨리는듯한 굉음을 내며 왁살스럽게 돌아갔다. 온 건설장이 그 어떤 거창한 기운에 충만되여 우들우들 떠는듯하였다. 성녀가 이끄는 가족지원대는 둔덕진곳에 쳐있는 봉사천막에 간이식당을 펼치고 건설자들에게 국수대접을 하였다. 불도젤과 기중기, 미끼샤와 같은 중기계부문의 운전공들이 맨 선참으로 몰려와 국수를 들었는데 모두 맛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 운전공아바이는 천막에서 나오다가 출입구곁에 벙글써 웃으며 서서 행주치마에 손을 닦고있는 성녀에게 잘먹었다고, 옥류관국수에 못지 않다고 인사했다. 성녀는 너무 기뻐 얌전을 빼며 머리를 깊이 숙여 답례하였다. 그리고는 어디서 지원나왔느냐고 물었다. 운전공아바이는 담배를 피워물면서 막내녀석이 영화광인데 어디서 듣고왔는지 이런 건설이 시작됐다고 떠들어대서 휴가를 바쳐 지원나왔노라고 했다. 건설장의 로력혁신자들도 천막에 불리여와 국수대접을 받았고 담차고 대바르게 생긴 건설장책임자의 뒤를 따라 문화예술부문의 일군들도 찾아왔다. 그들은 천막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우리한테도 한그릇 주지 않겠느냐고 롱말을 건네였다. 그들속에 촬영소총장이 끼여있는것을 띄여보자 성녀는 윤희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족한 얼굴로 돌아설 때 윤희의 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속삭이였다. 《여기로 와… 꼭 와… 총장동지가 여기 와있지 않어. 내가 우리 령감 성미를 모르겠나…》 성녀네가 그릇들을 대충 닦아치우고 그냥 돌아설수 없어 건설자들속에 나가 운반조들의 외바퀴밀차에 모래를 한참 퍼담아줄 때였다. 갑자기 선전차의 음악이 그치더니 방송원의 힘찬 목소리가 울리였다. 《건설자동지들, 건설자동지들… 당의 배려로 프랑스와 애급에 나갔던 우리 영화예술인참관단이 방금… 방금… 여기 건설장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기로, 우리한테로 곧바로 달려온 그들의 심정, 영화창작의 첫 공정인 영화문학의 터전에 어서 한삽의 자갈이라도 다져넣고싶어 달려온 공훈예술가 로영무, 공훈예술가 최승진, 패기만만 한 젊은 부연출 강철룡동지들의 열화같은 심정…》 윤희는 그다음 말을 듣지 못했다. 건설장으로 들어오는 길가의 선전차곁에서 문화예술부문의 일군들이며 총장에게 인사하는 세사람을 띄여봤기때문이다. 윤희는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남편의 모습만 조명의 각광속에 든듯 환하게 두드러져보였는데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며 미소어린 의젓한 얼굴, 바람에 날리는 넥타이에서 윤이 흐르는듯했다. 그가 자기 남편이면서도 함부로 범접할수 없는 신성한 존재처럼 돋보였다. 이윽고 그들은 총장이며 건설장책임자에게 안내되여 공사장을 돌아보았다. 최승진은 누구한테서인가 가족들이 여기 와있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걸어가면서 이따금 이쪽저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무엇엔가 발이 걸채여 넘어질번도 하였다. 성녀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였다. 《원 소경이라니까. 제 색시도 못찾는걸 보라구. 흠, 우리 령감은 찾지도 않아. 우리 소릴 쳐볼가? 여기 있수다- 하고…》 그러다가 성녀는 무슨 장난기가 들었는지 모래 한줌을 쥐여 윤희의 동실한 어깨며 팔소매에 툭툭 쳐주었다. 그가 흠칫 놀라 물러서자 팔을 꼭 붙잡았다. 《가만… 가만있으라구. 너무 말쑥해. 이래 놔야 그새 수고 많았구나 하고 밤에랑 더 살뜰하게 안아줄게 아니야. 하하하…》 한참후 건설장을 다 돌아보고 나오던 로영무와 최승진은 자갈무지옆에서 안해들을 만나자 전혀 먼데로 갔다온 사람들같지 않게 흔연한 얼굴로 다가와 모두 잘 있었느냐고 하였다. 윤희는 건설장의 숱한 사람들이 자기네를 여겨보는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울렁이였다. 그는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싶었다. 그래서 모래무지뒤로 돌아가니 남편도 따라왔다. 《그새 집에서는 별일이 없었소?》 은근한 정이 풍기는 그 한마디의 말에 남편의 더운 입김과 습관된 체취속으로 안겨드는듯하여 윤희는 미소어린 고운 눈을 다소곳이 내리떴다. 《네… 가서 고생은 안했어요?》 《아니… 내내 호강만 했소.》 《집에 안들렸지요?》 《아니…》 《성녀형님이 집보다 건설장에 먼저 들릴거라고 우겨서 여기로 나왔어요.》 《허, 꼭 맞혔구만… 비행장에서 박경섭동지는 집으로 곧장 들어가라고 했지만 건설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디 그럴수 있어야지.》 《빠리가 어때요?》 《빠리? 집에… 집에 가서 죄다 이야기하지. 그런데 어깨에랑 웬 흙이 이렇게 묻었소? 일은 혼자 한것 같구만.》 《성녀형님이 그랬어요.》 《그건 왜?》 《집에 가서 말해요.》 《참모장이 됐다면서?》 《아이, 그건 공연히… 장난삼아 그렇게 부르는거예요.》 건설장을 들었다놓던 선전차의 음악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모래무지 저쪽에서 로영무가 뛰여와 다급히 부르짖었다. 《승진동무… 나오셨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전차곁에서 문화예술부문일군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보고를 들으며 벽체만 우중충하게 솟은 건물쪽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로영무와 최승진 그리고 뒤따라 강철룡이 뛰여가서 인사를 드리자 그이께서는 반겨웃으며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였다. 모래무지곁에 가지런히 서있는 성녀와 윤희는 그이께서 자기들의 손을 잡아주시기라도 하는듯 격정이 북받쳐 손에 손을 맞잡고 그이쪽만 바라보았다. 그이께서는 무엇이라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다가 주먹으로 최승진의 가슴을 툭툭 건드려보더니 손을 허리에 붙이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둘러선 일군들도 모두 따라웃었다. 그러나 최승진은 웃지 않았다. 그는 먼 외국의 하늘밑에서 그리움에 사무쳤던 정이 지금 눈물로 되여 끝없이 솟구쳐오르는지 손수건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는데 해빛에 눈이 불꽃처럼 빛나고있었다. 윤희는 그만 코마루가 저려나고 눈앞이 부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그가 아릿해진 눈을 슴벅거리는데 박경섭이 이쪽을 돌아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것 같았다. 윤희는 옷매무시를 바로잡는것도 잊고 성녀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뛰여갔다. 발이 땅에 닿는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몸이 화끈한 대기속으로 날아가는것 같았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고막에 쿵쿵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반가운 안색으로 인사를 받고는 가족들이 이렇게 건설을 지원하고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치하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쉬운듯한 표정까지 지으며 롱말을 건네시였다. 《국수가 그렇게 맛있었다는데 우리는 한발 늦었단말입니다. 어떻게 말았는데 모두 옥류관 국수맛보다 낫다고 합니까?》 윤희는 그렇게 후한 칭찬의 말씀까지 하여주시니 더욱 송구스러워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눅이 좋은 성녀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드리는것이였다. 《옥류관국수보다야 어떻게… 일덕이겠지요. 모두 땀을 쏟으며 걸싸게 일하니까 아무걸 가져와도 그렇게 맛스럽게 듭니다. 다- 일덕이지요…》 《일덕이라… 그거 참 좋은 말입니다. 일덕이거나 국수덕이거나 어쨌든 건설자들이 좋아하니 저도 기쁩니다.》 로영무와 최승진은 안해들이 무슨 실수라도 할가봐 조마조마한 얼굴로 서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원하게 웃으며 그들쪽을 돌아보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는 세대주들을 데리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포로해가지고말입니다. 아무리 건설이 중요하다 해도 이런데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집에서 아이들도 기다리겠는데… 나도 래일쯤 갔다온 이야기를 들을가 합니다.》 그이의 뒤쪽에 서있는 박경섭이 어서 떠나라고 눈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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