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5 장 

1

 

 

자욱한 안개가 소리없이 파도쳐오고 보슬비가 엇비스듬히 흩날렸다. 비물이 번들거리는 질쩍한 대통로에 흐르는 승용차들은 대낮인데도 거의 모두 전조등을 간단없이 껌뻑거리고 다급한 경적소리를 짤막짤막하게 울리기까지 하였다. 

그들이 탄 승용차는 그런 불빛과 소음의 혼잡속을 누비며 거리를 달리였다. 

로영무는 묵묵히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숨막히게 밀려드는 재빛 안개의 파도와 자욱한 보슬비의 장막속에 묻히여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들의 흐름은 물에 비낀 산발들의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저 멀리 에펠탑도 허리부러져 날아나듯 아래부분만 흐릿하게 바라보인다. 

까를로븨 바리에서 지체되여 빠리에 예정보다 이틀 늦어 도착한 참관단은 호텔에 들지 못하였다. 

우리 대표부가 미리 예약해두었던 1등호실에 약속된 시간에 손님들을 넣지 못하자 호텔측이 방들을 내달라고 요구하여 부득이 응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1년에 3 000만명이상의 외국관광객을 수용하는 이 나라의 긴장한 호텔사정을 고려할 때 그런 요구에 등을 돌린다는것은 무례한 일이였던것이다. 

참관단은 우선 우리 대표부의 검소한 숙소에 거처를 정하였다. 조국에서 온 유명한 영화연출가들을 맞이한 대표부성원들은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란 조금도 없이 사람 그리움에 시달려온 외로운 섬사람들처럼 떠들썩하게 반기며 너나없이 시중을 드느라고 명절기분이 되여 뛰여다녔다. 

총대표가 직접 호텔들과 관광회사들에 전화를 걸어 1등급의 호실들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안내인을 다시 교섭하였으나 어디서나 며칠 기다려달라는 대답뿐이였다. 

사람좋은 총대표는 친선단체들과 문화교류기관들에도 미리 절충해놓았으니 안심하라고 하며 그사이 대표부에서 로독이나 풀다가 정 조급해나면 근처의 거리에 나가 빠리공기를 맛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대표부에서 프랑스어에 제일 능하다는 송동무의 안내로 우리 차를 타고 시내구경에 나선것이였다. 

오후에는 날이 개였다. 

그들이 실업자행색인 후줄근한 표정의 사람들과 첨단류행을 따르는 쌩쌩한 젊은이들, 각가지 피부색의 관광객들이 한데 뒤섞여 붐비는 번화가 몇을 돌아보고 몽마르뜨르거리에 이르니 석양녘이였다. 거기는 비교적 아늑한 감을 주었다. 

그들이 거리를 산책하다가 목이 칼칼하게 말라들어 작가예술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한 다방으로 들어가는데 가로수밑에 네댓점의 정물화를 전시해놓고 서성거리던 번대머리로인이 반겨 웃으며 다가왔다. 중세기의 침침한 유화에 나오는 도승같은 인상이면서도 영특한데가 있어보이는 로인이였다. 

로인은 정물화를 가리키며 로영무에게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송동무가 저따위 눅거리그림장사는 빠리에 얼마든지 있다고 하며 주춤거리는 그의 팔굽을 건드렸다. 

1시간이 좀 지나 그들이 다방에서 나올 때 가련한 그 로인은 또다시 앞을 막아섰는데 이번에는 동양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로영무가 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로인은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서울에서 왔는가고 물었다. 

강철룡이 평양에서 왔다고 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로인은 반색을 띠며 야릇한 탄성을 지르더니 무슨 일로 빠리에 왔는가, 여기에 며칠이나 묵는가고 묻고는 만약 관광하러 왔다면 자기가 안내인으로 봉사할 용의가 있다고, 관광회사 고용의 안내인들보다 반액의 값으로 고용되겠노라고 자청해나섰다. 최승진은 동정의 부드러운 눈길로 거리의 미술가를 여겨보았고 강철룡은 차거운 경계의 눈빛이였다. 

로영무가 송동무의 의견을 물으니 그는 로인의 아래우를 훑어보다가 그와 몇마디의 이야기를 나누고나서 괜찮은것 같은데 총대표와 의논해보자고 했다. 

그 말뜻을 전혀 모르는 로인은 투명한 갈색눈에 불안한 빛을 띠고 이사람저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최승진이 그중 리해성이 있어보이는지 그를 향하여 가슴에 손을 얹으며 서글프게 웃어보였다. 

그들은 로인과 래일 오전 9시 다시 이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다방앞을 떠났다. 

로인은 이튿날 아침 약속한 바로 그 장소에 깨끗한 옷차림으로 의젓하게 서있었는데 인사할 때 자신을 비웃는듯한 회의적인 미소를 머금고 실패한 화가 앙드레 뻬르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는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길건너편 상품광고판앞에 가냘프게 생긴 금발의 처녀가 이쪽을 지켜보며 서있다가 신경질적으로 홱 돌아서 저쪽 골목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처녀는 누구이며 어째 이쪽을 지켜보았는지 알수 없었다. 

로인은 자기 딸이라고 일행을 안심시키고는 인차 실무적인 표정으로 돌아왔다. 

로영무네는 그를 데리고 다방으로 들어가 참관 방향과 대상, 안내해설에 대한 보수 등을 의논하고 계약을 맺었다.

대표부의 송동무로부터 참관단의 기본목적이 프랑스문학예술의 과거와 현재를 료해하자는것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뻬르망은 빠리에 와서 유흥시설이나 도박장, 뒤골목의 매춘부들이나 찾는 외국의 경박한 관광객들을 상기했던지 저으기 놀라며 존경과 감동어린 눈으로 세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참관기간이 20일정도라는 말을 듣자 그는 부지의 절벽에라도 부닥친 사람처럼 입까지 짝 벌려보였다. 

프랑스의 문학예술이 어떤것인데 그것을 20일동안에 맛보겠다는것인가 하는 놀라움이였다. 뻬르망은 거만한 표정으로 노트르담 대사원만 알자고 해도 몇달은 묵어야 한다고 말했다. 

잠자코 있던 최승진이 문학예술이 만들어낸 력대의 걸작품들을 다 료해하자는것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전반적인 추이와 경향, 각종 조류와 류파들의 발생발전과 사멸 그리고 현대예술류파들의 동향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진다고 설명해주었다. 이어서 인간의 미의식발전의 전위라고 할수 있는 미술을 기본으로 하여 설명해준다면 프랑스문화의 동향을 연구하려는 참관단의 목적이 쉽게 달성될수 있으리라고 덧붙였다. 

뻬르망은 그 말에 비로소 참관단의 지적능력이 가늠되는지 머리를 끄덕이며 20일이면 괜찮다고 동의해나섰다. 

그들의 참관은 에펠탑의 관망대로 올라가 빠리시가를 부감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들은 어느 동남아세아나라에서 온듯한 한무리의 대학생 참관단속에 어울려 관망대에서 빠리시가를 바라보았다. 

빠리시가는 쎄느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드골광장으로부터 별빛모양으로 뻗어나갔다는 여러 갈래의 대통로들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관광안내도에서는 빠리시가가 전자기구의 회로도와 같은 복잡한 도형을 그리고있었는데 탑에서 바라보니 가까이에서는 공원과 극장, 궁전의 정원, 각양각색의 벽체들과 원주들, 우미한 아치들과 현란한 창문들이 어지럼증이 나도록 원무를 추며 돌아가는듯 했고 멀리에서는 뾰족하고 둥글고 넙적하고 톱날모양이기도 한 천태만상의 지붕들이 파도가 흐릿한 연무속에서 넘실대는듯했다.

로영무는 전에없이 멀미를 느껴 두손으로 쇠란간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앙드레 뻬르망은 의기양양해서 몇오리 안되는 불머리를 날리며 소리쳤다. 

《빠리!… 빠리!… 이것이 빠리입니다. 2천년 력사의 문화가 여기에서 숨쉬고있습니다.》 

시정에 잠긴듯 실눈을 짓고 도시를 둘러보는 로인의 눈가에 이슬같은것이 반짝이였다. 

그는 팔을 내뻗쳐 좌우로 휘두르며 저 사원과 궁전들의 지붕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그의 말을 통역하는 송동무까지도 로인이 가리키는 지붕들을 주의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얼핏 보아도 저 지붕들의 바다에서 뾰족한 지붕과 둥근 지붕들을 쉽게 가려볼수 있습니다. 나머지 지붕들은 모두 저 두가지 지붕들의 시대적 변형들입니다. 뾰족한 지붕과 둥근 지붕… 이것은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과거 프랑스문화의 2대 조류를 상징하고있기때문입니다. 뾰족한 지붕은 꼬지끄양식이고 둥근 지붕은 루네싼스양식입니다.》 

앙드레 뻬르망은 옛 건축물들은 당대의 종교, 철학, 인생관, 미감, 생활풍습을 건축구도의 선과 벽화, 부각, 조각, 무늬 등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반영하고있어 시대정신과 문화를 상징하는 기념비나 다름없다, 때문에 문화와 예술의 발전추이를 알자면 건축예술부터 보아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그는 우선 세손님을 씨데섬의 노트르담대사원을 비롯하여 쌍도니수도원교회, 샤르드르성당과 엘리제궁이며 루브르궁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꼬지끄식과 루네싼스식 건축예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고색이 짙은 빠리거리들은 상상했던것보다는 어둑해보였으며 번영하던 시절의 생명력이 쇠진해버린듯 어디에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생기가 덜하였다. 탁한 공기와 사람들의 혼잡, 포도가 내뿜는 열기때문에 세사람은 인차 땀에 젖어 피로를 느끼군하였다. 그러나 이 공기속에서 한평생 살아온 뻬르망한테는 피로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로인은 참관대상으로 가는 도중에는 어린애처럼 호기심이 잔뜩 살아올라 조선의 자연과 도시들, 문화사에 대하여 많은것을 물었으나 일단 목적지에 이르면 독실한 신자처럼 표정이 경건해지거나 거만해져 건축예술의 오묘한 조화에 신비성을 부여하며 시적인 어투로 해설하는것이였다. 

그리고 세사람의 눈치를 자주 흘끔흘끔 훔쳐보았는데 그때마다 그의 투명한 갈색눈동자에서는 자기 해설의 반향에 대한 순수한 관심뿐이나라 빠리문명에 접한 동방예술가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파문을 엿보려는듯한 집요하고 얄궂은 그 무엇이 번뜩이였다. 

그것은 세사람이 판이한 반응을 보였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로영무가 진지하게 보고듣고 느끼려 했다면 강철룡은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심취된 표정이였고 천성적인 친화력때문인지 뻬르망로인과 아주 친숙해져 팔을 끼거나 손을 잡고 다니게쯤 되였다. 

최승진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어떤것을 보아도 늘 무표정이였고 해설도 뒤쪽에 서서 흥심없이 들었으며 이따금 강철룡을 못마땅하게 여겨보는것이였다. 조국에서 받아온 비판과 자기 사상적약점때문에 대리석과 화강석의 예술에 유혹되지 않으려고 애써 경계하는것인지, 건축예술에 아무런 흥미도 못느끼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통역원 송동무와 뻬르망까지도 이따금 그에게 의아한 눈길을 던지였다. 

앙드레 뻬르망은 세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정치적판단기능을 마비시키고 넋을 앗아가려는 심산인듯 빠리문화의 측변과 종심에로 그들을 종횡무진으로 끌고다니면서 점점 열을 올려 해설하였다. 빠리문화의 젖줄기 쎄느강의 유유한 흐름, 각이한 시대의 건축미를 자랑하며 그 우를 줄달음쳐 지나간 다리, 다리… 어느 다리에나 붐비는 각양각색의 구식과 신식의 승용차들, 씨데섬과 함께 쎄느강의 운치를 돋구는 쌍 루이섬의 서정미, 력사를 부르짖는 앙리4세기마상, 마드레니교회, 도리니떼교회, 부르봉궁, 룩쎈부르그궁… 에드월광장과 꽁고르뜨광장을 이어놓은 샨제리제대통로의 혼잡한 야경, 거리바닥에 반사되여 용암의 흐름처럼 보이는 자동차불빛들의 끝없는 대하… 아득한 문화의 종심을 가진 이 세계는 자기의 사상과 철학,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기협잡과 패륜패덕, 첨단류행을 걷어안고 와글와글 끓어번지며 쎄느강처럼 어디로인가 서서히 흘러가는듯했다. 

로영무는 가는곳마다에서 저도 모르게 최승진에게 다심한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 

최승진은 참관도중 얼굴이 컴컴하게 질려 담배를 자주 태웠으며 중세기적신앙심의 절정인듯 하늘을 찌르며 아득히 치솟은 첨탑을 쳐다보며 입술을 질근질근 씹는가 하면 대리석원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침울하게 눈을 번뜩이며 돌아서는 때도 있었다. 

로영무는 순간순간에 포착한 그런 모습들을 통하여 벗의 가슴속에 알수 없는 격랑이 일고있다는것을 짐작하였다. 

그들은 숙소에 돌아오면 고역에 시달린 사람들처럼 땀과 먼지에 더러워진 몸을 씻고는 자리에 쓰러졌다.  

어느날 로영무는 숙소의 자기호실에서 밤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참관인상을 정리하며 꼬지끄식과 루네싼스식 건축양식을 비교하면서 문예부흥, 인문주의운동의 의의를 두고 끝없는 생각에 잠기였다. 

불을 끈채 안락의자에 몸을 묻고있는 그의 눈앞에는 뾰족지붕이며 첨탑, 대리석주랑들과 둥근 지붕들의 환영이 간단없이 어른거렸다.

꼬지끄식건축양식의 높이 치솟은 첨탑, 뾰족지붕, 그것을 떠받든 돌기둥들, 역시 뾰족한 아치형인 창문들과 출입문들의 가녁을 따라 뻗어올라가 예각으로 맞물린 줄기찬 장식선들은 통일적인 조화를 이루어 땅에서 하늘로 힘찬 기운이 솟구쳐오르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꼬지끄양식의 그 《상승효과》에는 불행이 숙명인 지상을 떠나 저 하늘로 승천하고싶은 인간의 불타는 갈망, 영원한 행복과 안식이 약속된 《천당》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 반영된것이였다. 거기에는 자연이나 인간생활의 그 어떤 면모도 사실적으로 반영된것이 없었다. 인간의 정신력이 기하학적선에 의하여 추상되여있을뿐이였다. 

뻬르망로인은 동적이고 힘찬 선들의 집대성인 꼬지끄식건축예술이야말로 추상예술의 세기적본보기이고 시조라고 강조하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그리고는 새 루네싼스양식에 의하여 꼬지끄양식은 밀려났지만 완전히 패하여 사멸한것이 아니였다고 열을 내여 소리쳤다. 

꼬지끄의 생명력은 아주 없어진것이 아니라 승리한 새 건축양식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내부에서 작용하여 건물의 전체적인 인상에 변형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그는 새 루네싼스양식으로 건축된 앙와리드례배당같은 건물의 전체적인 인상에서 《상승효과》가 느껴지는것이 바로 그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뿐아니라 꼬지끄의 생명력은 수세기동안 잠복해있다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현대세계를 풍미하는 혁신적인 예술조류의 시원을 열어놓았다고 강조하였다. 빼르망은 어째서 낡은 꼬지끄의 생명력에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는가? 미리 어떤 음흉스러운 목적을 세우고 우리를 거기에로 한걸음한걸음 이끌어가는것이 아닌가. 

로영무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꼬지끄양식에 비하면 루네싼스양식은 훨씬 인간적이였다. 중앙의 둥근 지붕, 그 량옆에 사람의 어깨모양으로 펼쳐진 지붕의 부드러운 선, 시원하게 넓은 창문들, 사람의 건강미를 상징한듯한 튼튼하고 안정감을 주는 원주들… 건물의 규모도 인간의 사용목적에 맞게 정했으며 내부구조도 쓰기 편리하게 구상되였다. 건축에 인간의 아름답고 합리적인 비례의식이 반영된것은 하나의 문화사적진보이고 혁신이 아닌가. 낡은 꼬지끄양식이 승천과 천상의 행복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환상을 반영했다면 이 새 양식은 지상생활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실제적요구를 반영한것이다. 어째서 낡은 양식이 밀려나고 새 양식이 승리하여 선풍처럼 대륙을 휩쓸었는가. 아마도 이것은 억지스럽고 불편하고 자기를 누르는것은 멀리하고 편리하고 유용하고 친근한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본성과 관계된것이 아닌가. 바로 그런 본성에서 종교적구속으로부터 인간개성을 해방하려는 인문주의사상도 움트고 문예부흥의 바람이 분것이다. 루네싼스, 문예부흥의 거창한 흐름… 이 흐름의 원동력으로 된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인간개성을 종교의 지나친 구속에서 해방하려는 인문주의사상이다. 예술조류와 사상, 사상과 예술조류… 새 예술조류는 새 사상의 안받침에 의하여서만 발생발전하며 예술전반을 활짝 꽃피울수 있다. 저 청동의 인간상들과 대리석주랑들은 무언으로 그것을 확언하고있지 않는가… 

어딘가 바로 가까운데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깊은 밤중이 정적을 깨뜨린 그 소리는 파괴적인 굉음처럼 어둠속에 공명되면서 가슴을 흔들었다. 

로영무는 놀라서 두리번거리였다. 옆호실문이 세차게 여닫긴 소리같았다. 그 호실에는 최승진이 들어있었다. 복도에서 멀어지는 다급한 발자욱소리… 머리속이 찡 저려나며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듯한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찔렀다. 그는 황황히 일어섰다. 

숙소의 후원은 외등불빛에 환했다. 

철책곁의 장의자에 웬 그림자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최승진이 틀림없었다. 잠들지 못하고 무슨 생각엔가 모대기다가 시원한 공기속으로 달려나온것인가. 그가 가까이 갔는데도 최승진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장의자등받이에 이마를 박은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있었다. 

로영무는 너무 놀라와 말없이 곁에 앉으며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여보게, 어디 괴로운가?》 

그는 결패스럽게 돌아앉았는데 얼굴은 괴로움에 이그러지고 눈에서는 시퍼런 섬광이 번쩍이였다.

《로형, 마음같아선 당장 돌아갔으면 좋겠소.》 

《그건 무슨 소리요?》 

《이게 시기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속이 괴롭소. 이 사람들한테는 문화유적들이 고스란히 다 있소, 다 있어… 시기별로, 문화조류별로… 박물관에서처럼 정연하게… 제것뿐만 아니요. 저 애급상형문자탑을 보오. 남들이 바친것도, 남한테서 빼앗아온것도 굉장할거요. 여기에 우리 조선문화재도 있다는 소릴 들었댔소. 우리 선조들은 뭘 했는가? 사화당쟁에 혈안이 돼서 서로 잡아죽일 내기를 하고 음풍영월이나 일삼았으니까 국력이 약해져 계속 침략을 당해 남한테 얻어맞고 짓밟히고 불살리우구… 옛날엔 찬란했던 문화의 유산하나 똑똑히 지켜냈는가…》 

로영무는 그의 의분이 리해되면서도 너무 허무감에 빠지지 않는가싶은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벗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게 롱조로 말했다. 

《사람두 원… 여기 와서 조상들한테 주먹질을 해서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누긋하게 먹구 참관을 잘해보세나.》 

《그렇게 마음먹는데 안되오. 영 안되오.》 

로영무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휴- 리해되네. 우리 세대야 정말 선조들한테서 물려받은게 얼마 없지. 해방후 모든것을 빈터에서 시작했다니까, 빈터에서… 그러나 얼마나 많은것을 이룩해놓았는가. 우리는 마땅히 여기에서 긍지감을 느껴야 하네.》 

《언제나 그렇게 균형잡히게 생각할줄 아는 로형이 부럽소.》 

《허허… 빈정대는건가. 자네야 나를 늘 절충주의자로 보고있지. 내가 그렇다면 자네는 뭔지 아나? 극렬분자네, 극렬분자, 허허허…》

《로형!》 진정이 밴 절절한 목소리였다. 

《나는 내가 뭔지 통 모르겠소. 조국에서 나는 서구숭배… 그것때문에 호되게 비판받았소. 고민도 했소. 터놓고 말하면 내가 진짜 서구숭배주의자라면 자기가 숭배하는 세계에 왔으니까 기뻐해야 될거 아니요. 제 고향집에 온것처럼… 한데 그렇지 못해, 나는 매일밤 얼마 자지 못하오. 괴롭소. 참관을 하면 부럽고 반발심도 나고 울분도 터지고… 왜 이런가? 여기 문화에 눌려서 이런가? 눌려서… 매일밤 자지 못하고 우리것과 비교해보게 되오. 우리것이 나으면 기쁘고 못하면 분하고… 한데 여기 예술을 모방했단말이요. 나는 도대체 뭐요? 어떤 인간인가? 로형한테는 내가 뭘로 보이오? 허무주의자인가 뭔가…》 

그의 눈에 물기가 떨었다. 

《여보게, 진정하라구…》 

로영무는 그의 손을 잡아쥐였다. 손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손가락마다에서 맥이 뛰는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산산 쪼개져 손가락들로 내려와 괴롭게 고동치는듯했다. 

《무슨 그런 소릴 하나. 서구숭배야 어디까지나 잔재지… 진정으로 말하는건데 나는 의분도 비판도 개탄까지도 애국심에서 나오는거라고 믿네. 자네는 애국자야.》 

《과분한… 말이요…》 

그는 코물을 들이켰다. 속으로 우는것 같았다.  

《나는 여기 오니 조국이 더 잘 알려… 우리한테서 무엇이 대단히 좋은가. 무엇이 아직 모자란가… 더 똑똑히 알리네.》 

《로형, 나는 말이요. 감정때문인지 참관과정에 한가지 의문이 생겼소. 여기 저 문화가 종당에는 민족을 어디로 내달리게 했는가. 이 민족은 한때 숱한 나라와 민족들에게 몸서리치는 재난을 들씌우는 죄행까지 저질렀소. 그 범죄의 정신적인 씨앗이 저 문화속에 숨어있지 않았는가, 저속에 배태되여 자라나지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소.》 

로영무는 숱진 눈섭을 찌프릴사하고 희붐한 허공을 묵묵히 내다보았다.

《학자들의 해석은 이런데… 예술은 근로자들이 창조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착취자들의 기호에 맞는, 그들을 위한 문화였다고… 여기에 원인이 있지 않을가?》 

《그건 일반적인 평가요. 그 예술적요인을 제 눈으로 찾아보면 수치스러운 잔재도 쑥 뽑아질것 같소. 이번 기회에 맘껏 사색하고 탐구하게 날 보살피지도 건드리지도 말아주오.》 

로영무는 그의 손을 다시 뜨겁게 잡아쥐였다. 

불이 꺼진 숙소의 창문들이 멀고 가까운데서 껌뻠거리는 네온싸인과 장명등의 불빛을 반사하여 빨갛고 노랗고 불그무레한 색으로 쉬임없이 번쩍이였다. 

철책 저쪽에서 웬 술취한녀석이 웩-웩-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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