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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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항에 나가 영화예술인들과 함께 로영무네 일행을 바래여주고 시내로 돌아오는 박경섭의 마음은 기쁘면서도 은근히 불안하기도 하였다. 체스꼬일정은 비교적 안심이 되나 프랑스일정에는 걱정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이제 저들이 가게 될 낯선 대륙, 피부색과 풍습과 언어가 다를뿐아니라 사상과 사고방법이 판판 다른 세계, 그 생소한 문화권에서 세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그것은 짐작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누구보다도 최승진이 걱정스러웠다. 그러지 않아도 서구문화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 그가 거기 문화에서 더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가싶은 우려도 없지 않았다. 강철룡은 세관검열을 받을 때 몹시 덤비여 트렁크를 바닥에 떨구기까지 하였는데 먼 려로에서 꼭 무슨 재구를 칠것만 같았다. 

그날 박경섭은 당중앙위원회로 돌아와서 로영무네 일행이 떠난것을 김정일동지께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그이께서는 집무실에 계시지 않았다. 

그는 김정일동지를 만나려고 애썼다. 

로영무네가 떠나간것도 보고드리고 새로 제작된 두편의 예술영화와 1편의 기록영화, 3편의 과학영화를 그이께 보여드리고 지도를 받고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개인적인 욕심이고 김정일동지께서 보살펴야 할 전반적인 사업분야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문제였다. 며칠후 박경섭은 그이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북부공업지대를 현지지도하고계신다는것을 알았으며 당보에 실린 그 현지지도기사를 읽게 되였다. 

거의 20일이 지나 현지지도에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 소회의실에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을 모아놓고 우리 나라 강철공업과 석탄공업, 산간지대농업의 실태와 그에 대한 당적지도에서 나타나고있는 심중한 결함들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박경섭은 제일 뒤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북방의 해볕과 바람에 타서 검실검실해진듯한 김정일동지의 얼굴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을 몹시 뉘우쳤다. 

(영화예술에 좀 관심을 돌려주신다고 별의별 작은 문제까지 다 지도를 받고싶어했다. 얼마나 주제넘고 또 얼마나 천진란만한가…) 

박경섭은 그이를 찾아가지 않았다. 

며칠후 그는 당중앙위원회청사의 복도에서 인민군장령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시는 김정일동지와 마주치게 되였다. 

박경섭은 머리를 숙여 그이께 인사를 드리고 복도벽쪽으로 비켜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겨웃으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아니, 어째 그렇게 피합니까?》 

박경섭은 가슴을 힘차게 울려주는 그 물음에 당황해져 어줍게 웃어보였다. 장령들도 미소를 머금었다. 

《영화예술계는 요즘 어떻습니까. 별일이 없습니까?》 

《예…》 

얼결에 이런 대답이 나갔다. 

《일이 잘돼서 별일이 없습니까. 침체해서 그렇습니까?》 

《새 영화들이 여러편 나왔습니다.》

《언제 나왔습니까?》 

《한 20일이 됩니다.》 

《나는 전혀 모르고있었습니다. 어째 나한테 알리지 않았습니까?》 

《너무 분망하신것 같아…》 박경섭은 대답을 얼버무리였다.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내 겸손해졌는가요? 나는 일욕심이 많고 보채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오늘 그 영화들을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 장령들을 데리고 복도 저쪽으로 멀어지시자 박경섭은 너무 기뻐 자기 방으로 뛰여들어가 영화촬영소들에 전화를 걸었다. 

그이께서는 새벽 1시가 지나서야 영사실로 들어오시였다. 예술영화부터 돌렸다. 

전압의 장애가 아니겠는데 실내장면을 찍은 몇개의 화면들의 밝기가 고르롭지 못했으며 어떤 화면들의 귀퉁이에서는 까만 반점같은것들이 날아돌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를 보시다가 곁에 앉은 예술영화촬영소 총장에게 촬영소의 기술설비들이 이제는 낡지 않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총장은 좀 낡았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 과학영화까지 다 보시고나서 소감과 의견까지 말씀하시고나니 5시가 거의 다 되였다. 박경섭이와 촬영소들에서 온 일군들은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팔목시계를 보고 저으기 놀라와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너무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박경섭을 따로 남게 하신 다음 오늘 예술영화촬영소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박경섭은 아침일찍 출근하여 예술영화촬영소 총장을 전화로 찾았다. 교환수의 말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영도비서는 방에 있었다. 

박경섭은 그에게 오늘 김정일동지께서 촬영소로 나가실 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당적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사업때문에 시간을 내시지 못하였다. 박경섭은 이튿날 오후에야 그이를 모시고 촬영소로 나갈수 있었다. 

승용차는 촬영소쪽으로 내달리다가 좁은 콩크리트다리에서 시내의 대통로들에 물을 뿌리는 한대의 살수차와 어기게 되였다. 

박경섭은 무심히 그것을 지나쳐버렸는데 뒤좌석에 앉아계시는 김정일동지께서 불쑥 물으시였다. 

《시내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가 어떻게 되여 이런 교외에까지 나와 돌아다닙니까?》 

《…》 

박경섭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 살수차운전수의 집이 교외에 있을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로동행정시간안에 운전수가 자유주의를 부려 어느 협동농장이나 닭공장 같은데 물자 구입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일수도 있지만 그런 사정을 어떻게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더 캐여묻지 않으시였다. 

승용차가 촬영소가까이에 이르자 살수차의 사연은 저절로 밝혀졌다. 촬영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주택지구옆으로 내뻗은 도로가 여느때없이 깨끗이 쓸어졌고 그우에 물까지 뿌려져있었던것이다. 촬영소정문앞에는 물이 너무 많이 뿌려져 포장도로가 질쩍하여 차바퀴밑에서 짜르르… 하는 소리까지 났다. 

물이 뿌려져 먼지 한점 일지 않고 공기마저 시원해진 촬영소뜨락에는 명절옷차림을 한 녀배우들과 영화예술인들이 두줄로 늘어서서 설레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영화예술인들속에서 박수소리가 터져오르고 한 나어린 녀배우가 달려나와 그이께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는 이슬이 흐르는 싱싱한 생화묶음을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어린 녀배우에게 인자하게 웃어주시며 꽃다발을 받으시였다. 박경섭이 그이께서 넘겨주시는 꽃다발을 받아 차안에 놓는데 총장과 주영도비서, 부총장들이 그이앞으로 모여들어 인사를 드리였다. 그리고는 그이를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응접실도 전에 없이 깨끗이 꾸려졌다. 안락의자들의 팔걸이와 등받이에 덮여있는 하얀 꽃무늬카바며 화분대들에 놓인 오죽과 백송화분들에서 풍기는 신선한 기운이 정갈하고 아늑한 방안의 운치를 한결 돋구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안락의자에 앉지 않고 응접탁곁의 포의자에 앉으시여 미소어린 얼굴로 곁에 서있는 총장을 쳐다보시였다. 

《총장동무, 어째 명예위병대를 세울 생각은 못했습니까?》 

《예?…》 

총장은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한듯 당황한 눈길을 박경섭과 주영도쪽에 돌렸다. 

《어째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요란하게 영접합니까? 시내에서 살수차까지 불러오고 환영대렬을 세운다, 꽃다발을 안겨준다… 오래간만에 왔기때문에 이럽니까?》 

총장은 얼굴이 벌겋게 되여 그저 어줍게 웃어보이기만했다. 

《나는 일하러 왔습니다.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수령님께서 오실 때에는 최대의 정성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한테는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전사일따름입니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 수령님께 충실하는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총장이 눈길을 아래로 숙이는데 주영도비서가 난처한 립장에서 그를 건져주려는듯 한걸음 나섰다. 

주영도는 진정이 번쩍이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바라보며 절절하게 말씀드렸다. 

《너무 나삐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이건 우리 촬영소 전체 당원들과 영화예술인들의 진심입니다. 그… 저… 살수차로 말하면 시 도시경영사업소에서 세포비서로 있는 조명직장장 형이 보내준겁니다. 오전에 동생한테 볼일이 있어 왔다가 오신다는것을 어떻게 알게 되여 보내주었습니다. 우리가 부탁한 일도 없는데 촬영소로 들어가는 길에서 먼지가 너무 인다면서 보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거두시였다. 

《동무들의 심정이 고맙습니다. 조명직장장 형 일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시고는 안락의자에 옮겨앉으시였다. 

총장과 주영도를 비롯한 촬영소일군들도 안락의자들에 자리를 잡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최근에 새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니 조명상태가 원만하지 못하고 필림현상수준도 높지 못한것 같다고 하시며 애로되는 문제들이 있으면 내놓고 토론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총장이 먼저 일어섰다. 그는 전쟁전 평화시기와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우수한 기술설비들이 갖추어져 큰 애로가 없다고 전제한 다음 문제는 기술부문의 종업원들이 설비들을 높은 수준에서 가동시키지 못하고있으며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데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 책임적인 얼군들이 이런 부족점들을 제때에 포착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모두 당면하게 급한 예술창조에만 매달려 영화제작의 후시부문에는 관심을 적게 돌렸습니다. 우선 저한테 책임이 큽니다.》  

부총장들도 그와 비슷한 말들을 한다음 자신들의 무책임성에 대하여 장황한 자기비판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직책상임무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얼굴모습과 개성도 다른 그들이 판에 박은듯이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하는데 저으기 놀라 처음에는 의아한 안색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차츰 표정이 심중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배우단으로 가시였다. 넓지 못하고 어둑한 방에서 화술연습을 하고있던 십여명의 배우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애로되는 문제들이 있으면 말하라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대하여 그들도 역시 총장이나 부총장들과 같은 자기 비판조의 말만 하였다. 

연출실과 촬영실에서도 같은 소리들이 되풀이되였다. 

실내촬영장에서는 농촌문화주택 방안에서 분조회의가 열리고있는 장면을 찍고있었다. 

연출가와 촬영가만 가까이로 다가오시는 그이께 인사를 올리고 배우들과 장치, 분장, 조명 성원들은 형상작업과 하던 일들을 계속하였다. 

얼굴이 칼칼하게 생긴 촬영가가 촬영기를 통해 방안장면을 내다보다가 부촬영이 내미는 로출계를 여겨보았다. 그러더니 실내 촬영장의 높다란 천정을 향해 소리쳤다. 

《13호- 13호-여-13호 조명기- 자는가-?》 

천정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화답하였다. 

《왜 그래요-?》 

《켜라구-》 

천정의 오른쪽구석으로부터 눈부신 백광이 쏟아져내려 방안을 환히 비쳤다. 

촬영가는 로출계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천정을 향해 또다시 소리쳤다. 

《13호-낮추라-광도를 좀 낮추라- 낮추라- 좀더… 좀… 더…》 

한장면의 촬영이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3호조명기를 맡았던 조명사를 가까이로 부르시였다. 

천정으로부터 사다리를 타고 원숭이처럼 날래게 기여내린 작달막한 조명사는 삐딱하게 눌러썼던 모자를 벗어쥐고 그이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의 한쪽 볼에는 검댕이같은것이 묻어있고 작업복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작달막한 체구에 날렵하게 생긴 그는 무급배우도 못되는 자기같은 존재가 어떻게 되여 이런 부름을 받게 되였을가싶어 반짝이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다가 총장이며 부총장들쪽을 돌아보기도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나이며 고향, 받은 교육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총장이 그를 대신하여 말씀드렸다. 

《금년에 27살입니다. 고향은 자강도 랑림인데 아버지가 오랜 벌목군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높은 나무로 잘 올랐는데 그 재간이 우리한테 와서 한몫 보게 됐습니다. 처음엔 공무동력전공으로 있었는데 재간이 좋아 조명직장으로 돌려놨습니다. 천정밑에 매단 조명등들이 고장이 생겨도 이 동무가 올라갑니다. 천정밑에서 거미처럼 날래게 기여다니면서 제꺽제꺽 고쳐놓습니다.》 

그리고 빙긋이 웃어보였다. 

《조명사도 예술급수를 받지요?》 

김정일동지께서 흐린 안색으로 잠시 천정을 쳐다보다가 총장에게 물으시였다. 

《예, 받습니다.… 동무, 몇급이던가?》 

총장이 그에게 물었다.  

《전공로임을 받습니다.》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조명직장에 온지 몇년이나 됩니까?》 

그이께서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십년입니다. 제가 공부를 못해서… 공부를 해서 꼭 조명사자격을 받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시오… 촬영할 때는 늘 그렇게 천정에 올라가있어야 합니까?》 

《예… 조명기들이 자꾸 고장이 생기구 또 제대로 말도 듣지 않아 올라가있어야 합니다.》 

《겨울에도?》 

《예…》 

《천정 바로 밑인데 춥지 않습니까?》

전공은 눈길을 어딘가 그이의 뒤쪽에 돌렸다가 주저하며 대답하였다. 

《예… 좀 춥지만 옷을 든든히 껴입고 올라가기때문에 괜찮습니다.》 

그이께서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니 부총장들속에 주영도비서가 긴장된 낯빛으로 서있었다. 

《촬영이 오래 걸리면 몇시간씩 올라가있어야 하겠습니다?》 

《예…》 

《야간촬영할 때 존다든지 하면 떨어질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앉아있을 자리에 발판을 깔아놓습니다. 일없습니다. 쉴 때면 꼭 발판에 돌아와 쉽니다.》 

《발판에서 멀리 떨어진 조명기에 나갔다가 거기서 오래 머물게 되면 어쩝니까?》 

《거기서 졸았다간… 뼈도 못추립니다.》 그리고 제가 한소리가 우스운지 씩 웃어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안색이 매우 심중해지시였다. 세상사람들은 자막에 이름 한번 오르지 못하고 뒤에서 묵묵히 영화창조에 이바지하고있는 이런 숨은 근로자가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리라는 생각이 들며 그가 측은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게도 여겨졌다. 

《총장동무, 조명기구들을 빨리…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과학기술수준이 높기때문에 기술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면서 발전된 공업의 도움을 좀 받는다면 조명기구들을 능히 원격조종화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내촬영장을 떠날 때 그이께서는 전공의 손을 잡아쥐며 따뜻하게 이르시였다. 

《쉴 때에는 꼭 발판으로 돌아와야 하오.》 

전공의 손바닥은 날가죽처럼 꽛꽛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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