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4 장 

1

 

 

촬영소안에 놀라운 소문이 펴졌다. 분장실의 장미혜가 운수직장의 화물자동차에 치워 병원에 실려갔다는것이였다. 

식당앞에서 공무동력직장의 선반공한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강철룡은 급정거하는 자동차의 마찰음과 처녀의 비명소리가 뼈속으로 파고들어 온몸이 쩡 저려나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미끄러지는 차바퀴의 고무타는 냄새까지 페부에 스며드는듯했다. 

그는 정신없이 운수직장으로 뛰여갔다. 운수직장장은 장미혜와 관련되는 운전수를 불러들였는데 그의 말은 돌아가는 소문과 같지 않았다. 

처녀는 병원에 입원한 한기석에게 문병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슨 생각에 골똘했던지 어느 건설장의 대형화물자동차가 달려오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건늠길로 들어섰다는것이였다. 자동차는 급정거했으나 기겁하여 쓰러진 처녀는 바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차체밑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그 운전수는 차바퀴가 높지 않았더라면 결단이 났을것이라고 하며 자기가 까무라친 처녀를 병원에 실어가 주사도 놓고 약도 먹인 다음 집에 실어다 눕혀놓았다고 하며 무릎이 조금 벗겨지고 상처하나 나지 않은것을 보면 하늘이 도운게 분명하다고 롱말까지 하면서 껄껄 웃어댔다. 

철룡은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이 사고에 한기석의 이름이 비쳐든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한기석은 호텔지하식당에서의 일이 있은 다음 무슨 속심에서인지 갑자기 기관지염이 도졌다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거기서 무슨 연출대본을 쓴다는 말도 들려왔었다. 단순한 부주의일가. 그한테 가서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닐가… 

철룡은 퇴근시간보다 일찌기 촬영소에서 나와 장미혜네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아빠트의 계단을 둘씩 건너뛰여 3층으로 뛰여올라가 처녀의 집문을 두드렸다. 문은 안으로 걸려있었는데 아무리 손기척을 하고 불러도 응대가 없었다. 굳게 닫겨있는 문에는 랭랭한 외면의 기운이 서려있는듯했다. 착잡한 의혹과 불안이 가슴에 갈마들었다. 

옆집 할머니가 문을 빠끔히 열고 놀란 눈으로 내다보았고 밖에서 들어오다가 문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래층에서 윤희가 올라와서 얼마전까지 미혜가 방에 누워있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손기척을 하며 처녀를 두세번 불러보았다. 

역시 응대가 없었다. 그러자 윤희는 의아한 눈으로 철룡을 쳐다보았다. 

《깊은 잠이 들었겠지요. 깨나면 왔다갔다는 말을 하겠어요.》 

《…》 

《어머니도 멀리 료양가셨는데 크게 상했더라면 어쩔번했어요. 천행이지요 뭐.》 

그날 철룡은 그 어떤 운명적인 타격이 뒤통수를 후려친것 같아 거리를 정신없이 헤매다가 어슬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형네 아빠트뜨락에 들어섰을 때 현관에서 배명준이 어깨가 축 처져 맥없이 걸어나왔다. 그는 뜨락을 걸어나오다가 머리칼이 성긴 정수리를 손으로 만져보더니 무엇을 잊은 사람처럼 황황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손에 모자가 쥐여있는것을 보고 어색하게 시무룩 웃으며 그것을 머리에 올려놓았다.

잠바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침울한 얼굴로 걸어들어오던 강철룡은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대범해져 군대식으로 손을 맨머리에 붙이고 경례를 하며 빙긋 웃어까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배명준은 사람좋은 웃음을 입가에 그리였다. 

《허, 연출가선생, 오래간만입니다.》 

마음이 선량한 이 설계가는 언제나 《부》자를 떼놓고 철룡이를 연출가라고 부르는것으로써 예술에 대한 자기의 동경과 존경의 심정을 표시하는것이였다. 그는 철룡이가 자기 상급의 동생이라는데서보다 예술가라는 의미에서 그와 친해지고싶어하는것 같았다. 

《거기 영화계에서는 요새 일이 잘됩니까?》 

《예… 끓고있습니다.》 

철룡은 그의 눈구석에 서늘한 기운이 어려있는데 주의가 갔다. 

《형한테 왔댔습니까?》 

《예…》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닙니까?》 

《무슨 일이야 허허허…》 

그는 허거프게 웃었다. 그 웃음이 심상치 않았다. 

철룡은 미혜때문에 그늘이 드리웠지만 졸장부가 아니였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집으로 들어가서 자기방으로 가지 않고 부엌간으로 먼저 들어갔다. 널다란 부엌칸에서 봄배추를 씻던 이쁘장하고 눈에 기지가 반짝이는 형수가 너무 반가와 입을 딱 벌려보이더니 달려와서 물젖은 손으로 그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아이구 방랑자, 며칠만이요…》 

철룡이는 형수한테서 손을 떼서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방에 있는 형을 생각해서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착 돌아왔습니다.》 

《맘대로 큰소릴 치라요. 장령동지는 목욕중이야요.》 

철룡의 형은 공병근무대좌로서 십여년전에 군대에서 제대됐지만 형수는 이 괴짜인 시동생앞에서만 롱삼아 남편을 《장령동지》라고 불렀고 자기는 《부관》이라고 말하군하였었다. 형의 전우들중에 장령이 여러명 있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목욕해요?》 

형수는 대답대신 눈을 감았다뜨며 머리를 까딱거려보였다. 

《이자 들어오다 배명준아저씨를 만났는데 기색이 심상치 않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저씨가 뭐라고 그래요?》 

《아니요. 눈빛이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물었더니 그저 웃더구만요.》 

《퇴근해서 얼마 안됐는데 그 아저씨가 찾아왔더구만요. 한참후에 아웅다웅 론쟁이 붙더니 선량한 아저씨가 졌어요. 

아마 사무실에서 퇴방을 맞고 가정적환경에서 오손도손 얘기하면 통할줄 알고 찾아온것 같은데 마감엔 바로 그걸 가지구 몰아세우지 않아요. 사업문제를 가정에까지 끌구왔다구… 

자기보다 나이가 우인분을 그렇게 몰아대니 보기 참 딱하더군요. 중단시키자구 과실그릇을 들고 들어가 두분가운데 놓는데도 그치지 않구 꾸중해요. 너무 속상해 삼촌이라도 왔으면 했어요.》 

《무슨 문젠데요?》 

《설계지뭐…》 

한때 설계기사로 근무한적 있는 그 녀자는 손가락에 물을 찍어 솥뚜껑에 략도를 그려보이며 설명했고 철룡은 형수와 머리를 맞붙이고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엿들어봐도 무슨 소린진 딱히 모르겠지만 지하철도갱도를 이렇게 파게끔 설계가 된것 같아요. 

형은 그걸 직선으로 펴라고 해요. 막대한 자재가 더 든다고… 그이는 무엇때문인지 더 직선으로 펴면 위험하다고… 그 소리를 되풀이하면서 자꾸 설복하려고 했어요.》 

《누구 말이 옳은것 같아요?》 

《모르지요. 형은 동무의 그 소심성이 국가에 어떤 손실을 주는지 아는가고 소리치지 않겠어요.》

《아저씨는 준박사학위에 부교수학직까지 가진분인데 형이 뭘 안다구…》 

《구체적인 기술문제는 몰라두 원칙은 있다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바로잡자는거겠지요.》 

《기술을 모르는데 원칙은 무슨 원칙…》 

《목욕하고 나오면 맥주랑 내놓을테니 좀 마시면서 삼촌이 차근차근 말해줘요. 나한테서 들었다는 기미는 보이지 말구요.》 

《어이구, 장령동지가 이 잠뱅이 말을 듣기나 하겠수다.》 

《형제지간인데 그만한 말도 못하겠어요? 그냥 저러다간 아래사람들한테 돌리우고말겠어요.》 

목욕칸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철룡은 형수와 갈라져 급히 가운데 방으로 올라갔다. 

얼굴이며 목이며 온몸이 어찌나 세차게 문질러댔는지 벌겋게 익은 형이 불룩한 배에 목욕수건을 휘감은채 빤쯔바람으로 우람진 몸을 육중하게 흔들며 복도를 지나 가운데방으로 들어섰다. 

벌거벗은 형을 오래간만에 처음 보는 철룡은 자신의 육체적왜소감과 함께 앞을 막아선 우람한 육체가 풍기는 중량감과 정력에 기가 눌려 얼결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강세룡은 동생의 인사에 반응하여 턱을 쳐들사하고 느슨하게 웃어보였다. 그의 젖은 머리와 번들거리는 어깨에서는 김이 문문 피여오르고 시뻘겋게 된 살찐 가슴팍에서는 기름기에 물방울들이 돌돌 굴러내렸다. 

철룡은 형의 어깨밑과 허벅다리에 길쭉한 반창고들이 붙여있는것에 눈길이 가자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그는 형이 이전에 목욕을 하다가 전쟁때 상처자리를 잘못 건드려 염증으로 몇달 고생한 다음부터 목욕할 때마다 거기에 반창고를 붙인다고 조카가 하던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방금전에 장령동지요 뭐요 기지에 찬 말재간을 부리던 형수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달려들어와서 하불만한 타올수건으로 남편을 감싸주고는 날랜 솜씨로 어깨며 가슴팍의 물기를 훔쳐주고 어깨밑과 허벅다리의 반창고를 조심조심 뜯어보았다.

강세룡은 동생앞이라 일부러 그러는지 퉁명스럽게 일렀다. 

《거긴 괜찮어… 대전하구 양구를 좀 보라.》 

불쑥 튀여나온 도시들 이름에 철룡이 어리벙벙해져있는데 형수는 그 뜻을 인차 깨닫고 반쯤 돌아선 형의 등뒤로 날렵하게 옮겨섰다. 형의 벌건 잔등 어깨박죽밑에 반창고가 길쭉하니 붙어있고 그 아래 허리부분의 등골곁에 반창고 한개가 더 붙어있었다. 형수가 어깨 박죽밑의 반창고를 살살 떼자 길게 패인 검푸른 상처자리가 드러났다. (철룡은 형의 잔등에 그런 상처자리가 있는것을 처음 보았다.) 

《대전은 괜찮아요…》 

《양구는…》 

상처자리마다에 부상당했던 고장이름을 붙인것은 형수의 기지인것 같은데 그것들이 부부사이만 은어처럼 통하는것을 볼 때 철룡은 형에 대한 은근한 자랑과 함께 이들의 남다른 정에 대하여 새롭게 느꼈다. 

형이 웃방에 올라가 잠옷을 걸치고 나오고 형수가 맥주상을 차려가지고 들어와 오래간만에 마주앉은 형제사이에 놓았으나 철룡은 아까 부엌에서 한 약속을 까마득히 잊고말았다. 

그는 형수가 고뿌에 철철 넘치게 따라주는 맥주를 얼굴을 약간 뒤로 돌리며 몇모금으로 나누어 마셨고 형은 단숨에 두고뿌를 쭉 들이켰다. 

《어- 시원하다! 일전에 그쪽 병원에 갔다가 한기석이를 만났구나. 참 좋은 친구야. 례절도 바르고 우정이 무언가도 알거든,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보고 뛰여오더구나… 퇴원하면 한번 데려오너라.》 

《병원엔 어째 갔댔어요?》 

《음, 거기 우리 사람이 입원해있어서…》 

형수가 형제지간에 오래간만에 마주앉았는데 좀 재미나는 이야기랑 하라고 하며 팔굽을 슬쩍 건드리고 나간 다음에야 철룡은 아까 부엌에서 한 약속을 상기하고는 헛기침을 톺으면서 맥주고뿌에 눈길을 떨구었다. 형한테 싫은 소리를 전혀 하고싶지 않았다.

형한테 불만을 품고 돌아간것이 분명한 배명준이 야속스럽게 여겨지고 그를 동정하여 자기를 꼬드기는 (벌써 취기가 돌아서인지 그렇게 생각되였다.)형수가 얄밉기까지 하였다. 

(조국에 피를 바친… 한두방울도 아니고 저렇게 여러번 부상당해 동이로 바친 형한테는 남을 꾸짖을 자격이 있다. 도덕적권리가 있다. 직책상의무에서뿐아니라 공민적인 권리로서… 그렇다. … 그렇다! 선량한 아저씨여. 우리 형이 피투성이가 돼서 포연속에서 딩굴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 구라파에 류학가서 빠다와 가쯔레쯔를 먹으며 희귀한 저서랑 읽으면서 지적인 향락을 한껏 맛보지 않았는가. 누가 옳은지 모르겠지만 형이 좀 지나쳤다 해도 당신은 리해해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 이건 동생이라고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숱한 전사들의 유골을 품고있는 조국땅도 이런 말을 하고싶을게다… ) 

《너 왜 그러니?》 

철룡은 당황하여 얼굴을 쳐들었다. 그는 자기 눈시울이 젖은것을 느끼지 못했다. 

《약골이라구야…》 

《…?》 

《벌써 뗑해져 어머니 생각이라도 한게 아니야?》 

《아-니요.》

《마셔… 요새 일은 잘되느냐?》 

한마디 물음이였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따뜻한 정이 풍기였다. 

철룡은 놀란 눈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형은 여태 인사치레의 말을 제외하고는 그의 예술창조사업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인적이 별로 없었다. 형은 말로써는 문학예술의 중요성을 인정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도시를 건설하거나 공장을 세우는 일에 비하면 매우 차요적인것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언제인가 그는 《영화가 안나온다고 달리던 기차가 멎는건 아니야.》하고 우스개소리처럼 말했는데 여기에 그의 본심이 드러나있는것 같았다. 

그는 자기 동생이 사회의 가장 《차요적기관》인 촬영소에서 연출가도 아니고 부연출로 있는것을 은근히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철룡은 형이 자기를 《길을 잘못 든 동생》으로 여긴다는데 일찌기 습관되여있었다. 그런 형이 오늘은 자기 예술창조에 따뜻한 관심을 돌려준것이다. 여간 기쁘고 감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도 형한테 따뜻한 말을 해주고싶었다. 

《형, 이제는 년세도 있는데 힘들지 않아요?》 

《나야 뭐 힘들거 있니, 수고야 저 땅밑에서 일하는 군인건설자들이 하지… 자, 들어…》 

《형, 절대 무리하지 말아요.》 

《나는 끄떡없다.… 정 내가 그렇게 걱정되면 속이나 좀 썩이지 말아라…》 

《나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나니? 네가 장가드는걸 보지 못하고 가는게 한이라고 하셨는데 허 참 내가 형구실을 못했구나…》 

철룡은 취기때문인지 몸에 번열이 나는것 같아 잠바를 벗어 옆에 밀어놓았다. 

《야, 오늘저녁엔 시간도 푼푼한데 좀 터놓구 말해보지 않겠니? 나는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데 그 미해인지 미혜인지 하는 처녀생각을 가슴에서 쑥 뽑아버리는게 어떻니?》 

《예?》 

《일전에 왔을 때 뜯어보니 그저 그렇더구나. 반반하게는 생겼지만 깔끔한게 어디 정붙일데라구 있더니.》 

철룡은 눈길을 떨군채 잠자코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집에 누워있는 미혜를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나두 련정이란게 어떤겐지 전혀 모르는건 아니지만 쑥 뽑아버려… 내 동생인 네가 그런 처녀한테 쩔쩔매는게 어이가 없구나.》 

《그 동무가 어째서요?》 

《글쎄… 그만뒀으면 좋겠다. 내가 잘못했어. 군대에서 제대돼 왔을 때 너를 촬영소에 보내지 않는건데… 아프리카에 건설대표단으로 가는통에 그렇게 됐거던… 촬영소에 안갔더라면 그런 꽃에 홀리우지 않았을게 아니냐. 자, 마시자.》 

철룡은 입맛이 없어져 맥주를 한모금만 마셨고 형은 한고뿌 다 들이키더니 무슨 열이 북받치는지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것 같았다. 

《나만 자꾸 말하는데 넌 왜 아무 소리도 없느냐?》 

《전 형님이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터놓고 말해야 알겠니? 신원도 명백치 않은 가정이더구나. 오죽하면 그 처녀 어머니를… 그런 유명한 녀배우를 내보냈겠니?》 

《내보낸게 아니라 스스로 년로보장에 넘어갔습니다.》 

《스스로? 넌 참…》 

《신원이란건 무슨 소립니까?》 

《그걸 몰라서 묻니? 좀 정신이 들어라. 그 처녀 어머니는 해방직후 미군이나 남조선괴뢰우두머리놈들과도 관계가 있었구 우리한테로 들어온 동기도 명백치 않아…》 

《누가 그런 소릴 했습니까? 그건 비방이고 중상입니다. 다 해명된 문제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너를 아껴주려는 사람들이 한 말이다.》 

철룡은 그 소리에 형이 병원에서 한기석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이 오가지 않았는가 싶으면서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한기석이 그랬습니까?》 

《뭐라구? 애꿎은 동무를 걸고들지 말아라.》 

(아니다. 이건 거짓이다. 그 자식이 무엇이라고 했을게다. 나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미혜한테도 뭐라고 지껄였을수 있다. 그래서 미혜는 고민에 빠져 차가 들이닥치는것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한기석이 뭐라고 했지요?》 

《너 왜 이 모양이야. 사람 말을 믿지 못하구!》 

거칠게 울리는 형의 목소리에 철룡은 주눅이 들어 눈을 내리떴다. 

《그리구 그 처녀는 곱구 똑똑은 하지만 발그라지구 고집두 세구, 속에 없는 소리두 괜찮게 하구 못쓰겠더라.》 

《형!… 형… 아직은… 제 있는데선 그 동무를 그렇게 험하겐 욕하지 말아주십시오. 다른데선 아무 소릴 해두…》 

철룡은 한손으로 이마를 싸쥐며 애원하고 간청하듯이 절절하게 말했다. 

《알만-하다… 물론 괴롭겠지… 나는 이런 소릴 하기 헐한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날이 지나노라면 네가 정신을 차리겠지 하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게 벌써 4년째가 아니냐. 그렇지? 처음에는 너희들이 사랑놀음에 빠져 제정신없이 돌아갔구 그 다음에는 서로 흡진갑진하며 고민한 세월이다. 남아장부한테 4년이란 얼마나 큰일을 할수 있는 세월이냐. 대학들 학제에도 4년짜리가 많아. 그만한 시간이면 한 과학기술부문을 통달할수 있기때문이야. 

그전에 우리 대렬참모녀석이 사랑에 빠져 몹시 고민한적이 있는데 그때 한 유식한 중좌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실제의 상대가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놓은 환상을 사랑하는것이다. 종교놀음처럼… 그건 신앙심처럼 허황하기 짝이 없는것이다.… 하구 말이야. 일리가 있는 소리거든. 미신이야. 미신… 이제라도 네가 그 미신을 털어버리면 일이 다 잘된다. 우리 위원회에만 해두 타자수, 교환수, 기요원… 인물이 좋구 성품이 좋구 성분이나 환경도 나무랄데 없는 처녀들이 얼마든지 있다. 자기장래를 두고 깊이 생각해봐라.》 

철룡은 머리를 수굿하고있을뿐 대답을 안했다. 

《이 세상에 나만큼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런 녀자는 우리 가정에 들어오지 못한다. 네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옛날사람들처럼 의절까지는 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혈맥이 통하는 친동생으로 여기기는 힘들것 같다.》

철룡은 무서운 반발심이 터져올랐으나 말은 다르게 나갔다. 

《형, 어찌겠어요. 너무 노여워하지 말아요.》 

《참 답답하구나.》

 

×

 

달빛이 창문에 어린 탓인지 방안은 희푸르스름해진것 같았다. 식구들이 모두 깊은 잠에 들어 집안은 괴괴하다. 복도건너쪽방에서 형이 늘 태평스럽게 코를 골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단잠에서 깨여난 강철룡은 침대를 삐걱거리며 돌아누워 형네 방쪽에 귀를 기울이였다. 

형이 아주 녹초가 되여 깊이 잠에 들었는지 그쪽에서는 버스럭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철룡은 도로 반듯이 누웠다.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중책을 걸머지고 시름이 큰 형한테 내가 너무 걱정을 끼치는게 아닌가… 웬만한 사람같으면 지루해나고 또 화김에 너맘대로 하라고 내팽개쳤겠는데 형은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어. 지난 4년간 변함없이 꾸준히 반대해왔지. 마주앉을적마다 되풀이되는 같은 말로 설복하고 또 설복했어.… 진심이 아니면 이렇게 할수 없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형의 의사를 따를수 없어. 미혜!…아, 미혜!) 

그는 왈칵 터져오르는 울음을 막으려고 몸을 뒤채여 베개잇을 깨물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미혜는 우리 공화국의 품속으로 와서 인민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를 다녔고 대학전문부를 졸업했다. 그는 여기서 소년단을 거쳐 민청생활을 했으며 그 과정에 정치적인 뼈가 자라고 굳어졌다. 형의 생각이 옳은것이라면…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 교육과 우리 소년단 민청생활경력은 한 인간의 신원을 담보해줄만한 가치도 없단말인가. 그의 어머니 신원이 진짜 정치적으로 의심되고 깨끗하지 못한것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이 딸의 사회정치적인, 인간적인 가치를 낮추는 근거로 되여야 하는가. 그것으로 해서 사랑이나 결혼같은 문제에서까지 그를 하대하고 천시하고 외면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런 감정을 인간적인것으로, 공정한것으로 볼수 있는가. 자식의 과오로 부모가 사회적비난이나 추궁, 제재를 받는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의 문제를 자식이 책임질수는 없는것이다. 

태여나기전이나 젖먹이때에 부모들한테 있은 일로 그 자식을 하대하거나 경원하거나 적대시한다면 그 감정을 옳은것으로 볼수 있는가. 없다… 그것은 인간리성이 발전하지 못했던 중세기, 봉건시대사람들의 감정과 비슷한것이다. 

슬프게도 그런 사람은 멀리 국경밖에 있는것이 아니다.… 내옆에도 있다. 형이 바로 그렇다. 

나만 아니라 누구한데도 명백할 이런 문제를 형은 왜 깨닫지 못하는가. 과거에 자신이 피를 바쳐 조국을 사수하는데 크게 공헌한 형이… 형 전우들의 말을 들어봐도 전쟁시기나 전후시기 그처럼 사리에 밝고 정의감이 강했다는 형이 아닌가. 그런 형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오는가. 

누구 말처럼 인간심리란 배수뽐프의 운동처럼 단순한것이 아닌 모양이다. 형은 자신이 세운 공훈으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으로 됐을수 있고 주위사람들의 존경과 그리고 혹 있었을지 모르는 부하들의 아첨으로 그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졌을수 있다. 지나친 자부심이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바뀌여지기는 쉬운일이다. 

그래서 형도 자기 생각은 다 옳고 자기 말은 다 옳다고 확신하게 됐으며 자기 의사를 따르지 않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지어는 사상적으로 의심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한번 아니라고 한것은 끝까지 아니라고 한다. 

자기도 제한된 개인인 이상 무엇을 잘못 생각할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말을 심사숙고하여 검토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 반성능력이 없는 이런 굳센 의지가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가. 만약 나라의 모든 책임적자리에 이런 사람들이 앉아있다면 우리 사회는 그 사람들의 두뇌만큼밖에 발전하지 못할것이다. 

이런 동지들이 국가주권기관이나 당지도기관을 선거할 때 선거위원회가 자기네한테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선거표 한장만을 준다는데 대하여 주의를 돌린다면 그리고 당규약에 공로와 직위에 관계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는것을 명심한다면 우리 당이 무엇을 몹시 경계하는가를 알게 되고 좀 신중해지지 않을가…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보통사람들보다 썩 높은 자리에 놓고 생각하는데 습관됐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자신을 사회에서 우위적인 특수한 존재로 늘 여기고있으며 그런 자감을 조금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형은 말했다. 그런 처녀는 우리 가정에 들어올수 없다…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것도 흔연하게… 어제저녁만 아니라 나를 설복할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계통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것으로 봐서 우연히 튀여나온 소리가 아니다. 격한김에 욕하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자기 사상감정을 제일 집중적으로 제일 솔직하게 드러낸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 나빴고 반발심이 무섭게 터져올랐다. 왜… 왜 그랬던가? 미혜하구 갈라지라는 강박으로 들렸기때문에?… 아니… 아니… 그것만은 아니다. 그런 요구와 강박에는 늘 습관돼있지 않았는가… 무슨 냄새를 맡았기때문이다. 

제일 싫은 냄새… 특수한 존재연하는 그 냄새를 맡은것이다. 

그런 처녀는 우리 가정에 들어올수 없다.… 이 말에선 그 역한 냄새가 물씬물씬 풍긴다. 

나도 은연중에 전염돼 사람들속에서 그런 냄새를 풍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놓구보면 미혜도 바로… 바로… 그 냄새가 역해 문을 열어주지 않고 나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철룡은 전기에라도 닿은듯 와뜰 놀랐고 일어나앉아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렇다. 그 냄새때문이다. 나를 따라 우리 집에 와 형을 만났을 때 그 냄새를 맡았을게다.… 나를 미혜와 갈라놓은것은 결국 그 냄새이다. … 형이다! 나는 형과 감정상으로, 정서적으로 타협할수 없다. 이 냄새속에서 뛰쳐나가자. 좀 고생스럽더라도 합숙으로 나가자.) 

그는 침대에서 내려 팔짱을 끼고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아, 형, 형은 이 동생을 그처럼 진지하게 책임적으로 사랑해왔지만 결국 나를 어떤 불행에 빠뜨렸소?) 

눈물이 끓어올랐다. 

그의 발자국소리를 들었던지 사이문이 찌국 열리며 잠옷바람의 형수가 들어왔다. 잠내 풍기는 고운 얼굴이다. 

《어째 깼어요?》 

《아주머니! 오늘저녁부터 내 밥은 짓지 마십시오. 촬영소합숙에 나가있겠습니다.》 

《일이 바빠요?》 

《아주 나가있겠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은…? 아이고- 형님 말에 신경이 곤두섰군… 신경… 신경… 인테리들은 신경이 문제라니까.》 

《…》 

철룡이 아무런 응대도 안하자 형수는 걸상에 걸터앉아 얼굴빛이 정색해져 창문쪽을 내다보았다. 

《무엇이 못마땅해서 나가겠다고 그래요? 지나치긴 했지만 다 걱정해서 한 소린데 그렇게 노여워요? 밤중에 주무시다가 또 걱정이 돼서 지하철에 나갔어요. 아직도 안들어왔어요. 한평생 저렇게 살아요. 저러는데도 뒤에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성미가 어떻다, 작풍이 어떻다, 사람이 어떻게 백이면 백가지가 다 원만하겠어요. 나는 뭐 의견이 없는줄 아세요? 하지만 저 변함없는 책임성을 존경해서 안해가 아니라 정말 부관처럼… 부관처럼 받들어요. 정 나가고싶으면 어찌겠어요…》 

형수의 눈에 이슬기가 반짝이였다. 

철룡은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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