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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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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는 그 어떤 수치심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총총히 층계를 뛰여올랐다. 어찌하여 자기 일생은 이렇게 운명지어졌는가? 그는 처녀시절 동무들이 시가갈 때면 수집은 마음으로 자기도 저들처럼 나이 두세살 우의 상대의 품에 안기게 되리라, 이 세상 하늘밑 어디에선가 그런 상대가 매일아침 세수도 몸단장도 하고 일터에서 구슬땀을 뿌리며 일하거나 어느 학당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있을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었다. 무릇 녀성들이 처녀시절에 다 그러하듯이 윤희는 행복에 대한 끝없는 공상으로 마냥 가슴이 부풀어있었으며 자기 용모와 성품, 자질로 보아 그렇게 못될 까닭이 없다고 남몰래 생각했으며 한껏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다. 동무들은 리상적인 남성과의 결혼이야말로 녀성의 행복의 기초라고 말들 했으며 윤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꿈에도 한번 생각해본적 없는 상대, 나이 썩 우이고 게다가 희귀한 직업에 개인생활이 불우한 사람에게 끌리게 되다니… 이름있는 영화연출가의 생활이 담보해줄수 있는 괜찮은 생활조건때문인가. 그의 명예를 후광으로 삼아 동년배들한테 돋보여보자는 어리석은 허영심때문인가. 생활에서 늘 쓸쓸한 구석이 엿보인 그에 대한 동정심때문이였던가? 영화연출가 최승진… 그 비슷한 사람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본적이 없는 윤희는 자기와 그의 결합을 늘 사랑이란 원래 년령차이나 속된 여론의 비난쯤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크고 열광적인 감정이기때문이라고 자기위안해 왔었는데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알수 없었다. 그저 분명한것은 자기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면 최승진이라는 사람을 알수도 없었을것이라는것이였다. 그를 영화계로 떠민것은 려객사업소 지령원인 사촌오빠와 몇해전 교원으로 있던 인민학교의 교장이였다. 배우처럼 잘 생긴 사촌오빠는 보기드문 영화광이였다. 그는 평양시내 모든 영화관들의 영화상영 일람표를 매달 수첩에 적어놓고 어느 영화나 빠짐없이 보았고 누구를 설복하거나 비판할 때에도 영화의 내용을 빌어 열을 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영화라면 오금을 못쓰는 위인이였다. 어디서 무슨 좋은 영화를 돌린다는 소문만 들어도 전화를 거듭 걸어 알아보고는 장난군아이들처럼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사업소를 빠져나가 보고와서야 안착되여 다시 손에 일을 잡는것이였다. 그래서 직장에서 비판무대에 오른적도 한두번 있었다. 어떤 비판이나 봉변도 그의 영화열을 식혀낼수 없었다. 그는 영화와 아주 인연을 끊어버리겠다고 결의도 하고 진심으로 속다짐하여 자중하고있을 때에도 시내의 어느 맥주집에서 얼굴을 익힌 한 촬영소 배우와의 편지거래는 몰래 가지였다. 그는 촬영소의 한 말석배우와 안면을 익힌것을 무상의 행복으로 여겨서 그에게서 짤막한 회답편지라도 받으면 사랑의 편지를 받은 총각처럼 흥분하였으며 그것을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남몰래 거듭거듭 읽어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자기생활의 무미건조함과 자신의 번민에 대하여, 최근 나온 작품에 대한 소감과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토로하는 장문의 편지를 써보내였다. 영화에 대한 그의 이런 열중은 아무한테도 고백안했지만 자기가 영화예술인, 더 까밝히면 영화배우의 천분을 타고났다고 믿는데서 오는것이였다. 한번은 시내의 게시판들에 영화배우모집광고가 나붙었는데 그는 즉시 안면있는 그 배우에게 편지를 띄웠으나 회답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예비지식도 없이 며칠 휴가를 받아가지고 몰래 촬영소로 배우시험치러 갔다. 눈치빠른 윤희는 오빠의 휴가목적과 행처를 인차 알아냈는데 그는 자기의 리상세계에 가서 어떤 랭대와 모욕이라도 당하고 왔는지 얼굴빛이 거멓게 질리고 기상이 험해져서 별치않은 일을 가지고도 식구들에게 역증을 터뜨렸으며 한달이 지나가도록 영화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바툼한 키에 성미가 내성적이고 근엄하게 생긴 윤희네 학교 교장은 진지한 영화애호가였고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영화평론가였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새로 나온 영화를 선참으로 보았으며 그 영화에 대한 제나름의 견해를 세워놓고야 안착되여 일하는 사람이였다. 그뿐아니라 거의 모든 영화에 대한 자기 소감과 론평을 써서 영화예술사에 보내군하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편집부는 단 한편의 그의 글도 실어주지 않았으며 의견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회답편지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어느날 한 녀교원의 결혼식에 모인 교원들이 취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는 침울한 얼굴로 잠자코 듣고있다가 촬영소가 인민대중의 반영을 외면하고있기때문에 현실주제의 문제작을 내지 못한다고 하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뒤자리에 앉은 젊은 교원들은 그 소리를 듣고 《동 끼호떼야… 동 끼호떼…》 하고 귀속말로 수군거리며 키득거렸다. 그때 윤희는 남자교원들의 어깨너머로 교장을 측은하게 지켜보았다. 그후 교원들속에서 돌아가는 말은 그가 영화에 원망을 품고 아예 인연을 끊은것 같다고도 하고 그런것이 아니라 무슨 궁냥에서인지 퇴근해 집에 가서 독학으로 영화연출공부를 한다고도 하였다. 영화는 그를 외면했으나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짝사랑처럼 눈물겹도록 뜨겁고 검질긴것이였다. 영화에 대한 교장의 이런 짝사랑과 사촌오빠의 열광이 윤희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주리라고는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는데 그야말로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해 봄날 학교옆 좁은 골목길에서 영화장면을 촬영하게 되였던것이다. 봄볕에 얼굴이 까맣게 탄 부연출 한기석이 교장을 찾아들어와 찬조출연할 인원이 필요한데 인물이 말쑥한 녀교원 한명과 학생 5, 6명을 골라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순간을 계기로 음성화되였던 교장의 영화열이 밖으로 터져올랐다. 그는 한평생 기다렸던 귀인을 만나기라도 한듯 뛰여일어나 부연출의 손을 덥석 잡아흔들었으며 그 자리에서 구역교육과에 전화를 걸어 허가를 얻은 다음 영화촬영을 보장하기 위한 교원협의회까지 열고 찬조출연인원들을 선발하였다. 녀교원들중에서는 윤희가 뽑히고 2학년과 3학년에서 각각 3명의 아이들이 불리워왔다. 교장의 영화열에 천진한 아이들의 호기심까지 겹치여 온 학교가 영화의 회오리바람속에 들어 대경사를 만난듯 떠들고 웃어대고 설레였다. 찬조출연자들이 촬영한 장면은 간단한것이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녀선생과 아이들이 뒤골목길의 어느 울담밑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쪽잠이 든 왜정때의 장면이였다. 촬영은 날이 어둡자 시작되였다. 윤희는 부연출이 시키는대로 헐어빠진 치마저고리를 갈아입고 누데기같은 옷차림의 두 아이를 량옆에 꼭 끼고 울담밑에 쪼그리고 앉아 쪽잠이 든 시늉을 했고 다른 아이들도 그옆에 붙어누웠다. 학교공부가 끝난지 오랜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골목길에 몰켜든 숱한 아이들이 왁짝 끓어번지는 가운데 교장이 지리교수용 지시봉을 휘저으며 촬영장소둘레를 왔다갔다하면서 아이들이 밀려나오지 않게 엄하게 단속을 하는가 하면 떠들지만 말고 예술이 어떻게 창조되는가 잘 봐두라고 이르기도 했다. 조명빛이 눈부시게 비쳐들고 름름하고 의젓하게 생긴 중년의 연출가가 다가와서 찬조출연자들의 자태를 살피더니 무엇을 봤는지 아연해지는듯한 기색이였다. 그는 직업적이 아닌듯한 눈길로 윤희를 빤히 여겨보다가 홱 돌아서 담배를 피워물고 몇모금 성급히 빨았다. 윤희는 심상치 않은 그 거동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윽고 연출가는 촬영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그가 최승진이였다. 촬영은 일분도 걸리지 않아 끝났다. 윤희가 의상을 바치러 갔을 때 촬영기옆에서 교장과 무슨 얘기를 나누고있던 부연출이 촬영이 아주 잘됐다고 칭찬하고는 직업적인 눈으로 그를 지켜보더니 연출가의 주목을 끈 개성적인 미모를 가진 동무가 이런 구석진 학교에 묻혀있기는 아깝다고 하였다. 그리고 웬일인지 한숨을 내쉬였다. 교육자의 영예감에 가슴이 부풀어있던 윤희는 그런 말이며 한숨소리에 모욕감이 들어 반발하고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자제하며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돌아섰다. 그러나 그 한마디 말은 교장에게서 놀라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갈증만난 사람이 물그릇에 매달리듯이 부연출의 팔목을 덥석 잡으며 그럼 저 선생을 촬영소에 보내면 배우로 받아주겠는가고 물었다. 이튿날 교장은 당자의 의향은 물어도 보지 않고 사촌오빠를 찾아와 의논하고 구역교육과에 뛰여갔으며 사촌오빠는 땀을 철철 흘리며 촬영소에 두세번 다녀왔는데 분명히 그들은 자신들의 성취못한 소원을 윤희를 통해서라도 실현해보고싶은 심정인것 같았다. 한달반 후 구역에서 윤희를 촬영소에 보내여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오자 그는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 안가겠다고 버티였다. 그러자 사촌오빠는 처음에는 천하에 이런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듯 흰자위가 다 드러나도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으며 다음에는 며칠을 두고 열기띤 목소리로 설복하였다. 교장도 같은 설복을 하였다. 그의 설복에 의하면 교원은 한학급의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지만 영화배우는 온 나라 인민들, 아니 온 세계의 수백만 사람들에게 고상한 인륜도덕과 사회적정의를 가르치고 연기의 매혹적인 감화력으로 량심과 선행, 영웅성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교사이라는것이고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의미에서는 영화배우와 교원은 동업자나 다름없다는것이였다. 그리고 구석진 구역의 이름없던 이 학교에서 영화배우가 배출된다면 그것은 우리 학교의 영예이고 구역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 절절한 말에 윤희는 그만 마음이 움직이고말았다. 한달후 그는 촬영소 배우단에 입직하였고 몇달간의 배우수업과정에 자신에게 영화배우로서의 남다른 소질이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으며 거기에 어려서부터 앓던 관절염이 도져 편집실로 옮겨앉게 되였다. 편집원들은 모두 녀성들이고 내내 편집기앞에 앉아있었지만 돌아가는 소리에 여간 민감하지 않아 촬영소와 그 가족들속에서 벌어진 이런 저런 소식들과 풍문들이 모두 편집실에 흘러들었으며 총장과 부총장들, 연출가와 촬영가, 배우들에 대한 인물평도 종종 입에 올랐다. 그들은 연출가 최승진에 대하여서는 남다른 존경과 동정심을 가지고 이따금 이야기했는데 연출가들가운데서 녀성을 제일 존중하는것이 그라는것이였다. 특히 영화화면에는 한번 얼굴도 내밀어보지 못하고 뒤에서 묵묵히 영화제작에 헌신하는 《뒤스타프》의 녀성들에 대해서는 극진히 보살펴준다는것이였다. 방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손수 문을 열어 자기네를 먼저 들여보내고 따라들어간다느니 층계나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것을 띄여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들어다준다느니… 이러루한 소행에 대한 이야기들이였다. 그리고 영화창조사업에 그처럼 진지하고 심각하고 헌신적으로 대하는 예술가는 드물것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새 영화제작에 접하면 리발과 목욕을 새로 하고 배우작업을 하게 되거나 편집원과 나란히 앉아 영화편집을 하게 되면 의례히 옷에 향수를 연하게 치고 나온다고 하였다. 안해가 사망한 다음에도 그 습성에 구김살이 가지 않아 덞었거나 구겨진 옷을 입고 배우들앞에 나타난것을 보지 못했노라고 했다. 부인이 사망하다니! 윤희는 웬일인지 가슴에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연출가 최승진의 예술적개성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면 흔히 로영무라는 연출가와 비교하여 이야기하군하였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로영무가 버들방천곁을 유유히 감도는 시내물의 서정적인 흐름이라면 최승진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지는 폭포였다. 로영무가 고요하고 깊은 호수라면 최승진은 격랑을 일으키는 바다였다. 로영무가 후끈한 화기를 은근히 풍겨주는 화독이라면 최승진은 불찌를 날리며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 로영무가 따스한 보슬비라면 최승진은 시원한 소나기였다. 편집실의 녀성들은 예술적개성이 판판 다른 그 두사람이 거의 30년간 한번 금이 간일도 없이 우정을 유지해오고있는데 그것이 사실일가 아니면 영화계에서의 자기들의 위치와 체면때문에 감정을 깊이 묻어두고 사는것일가 하고 궁금해도 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최승진의 인간미와 인격을 알게된 윤희는 마음속으로 그를 존경하여 복도나 촬영소구내길에서 어찌다 마주치게 되면 머리를 약간 숙여 인사하고 옆으로 피해서 지나치군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윤희가 최승진이와 어기고 몇걸음인가 걸어가다가 얼결에 뒤돌아보니 그가 쓸쓸하고 괴로운 얼굴을 외로 돌리는것이였다. 자기 뒤모습을 몰래 지켜본 눈치였다. 어째 저럴가? 두렵기도 하고 가슴이 활랑거리며 볼이 확 달아올랐다. 그후에도 같은 일이 몇번인가 거듭되였다. 어느날 최승진이 편집실에 들어와 편집실장아주머니와 나란히 앉아 신진연출가가 촬영현지에서 찍어보낸 필림을 편집해주다가 급한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편집실장아주머니가 편집대우에 널려진 필림을 정리하고 걸상에 걸려있는 그의 양복저고리를 벗겨 옷걸개에 걸려다가 두번째 단추가 다 떨어지게 된것을 보고 윤희더러 바느실이 있으면 달아주라고 이르고는 어디로인가 나가버렸다. 편집실에는 윤희 혼자뿐이였다. 그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으나 양복저고리를 들어안았다. 그가 단추를 다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달고 입으로 실을 막 물어끊는데 최승진이 들어왔다. 윤희는 대뜸 얼굴이 발개져 그에게 양복저고리를 황황히 내밀며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단추가 떨어져서…》 최승진은 빼앗듯이 양복저고리를 나꾸채서 어깨에 활 걸치더니 노한 얼굴로 그를 보며 나무리였다. 《시키지도 않는 일을… 다시는 이러지 마오!》 그리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윤희는 놀라서 크게 뜬눈으로 그가 사라진 문쪽만 지켜보며 파랗게 질린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저러는가. 《뒤스타프》의 녀성들을 그토록 존중한다던 사람이 나한테만은 왜 저렇게 무례하고 몰인정하고 가혹한가,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 일이 있은후 최승진은 윤희만 보게 되면 외면하거나 먼발치에서부터 피하여가는것이였다. 그때마다 윤희는 가슴에 고드름이 달리고 그 어떤 반발심이 쇠꼬챙이처럼 솟구쳐올라 견딜수 없었다. 그는 단 둘이 조용히 만날 기회만 생기면 내놓고 따져보리라 별러왔다. 이제는 연출가 최승진의 명성이나 나이따위는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복잡하고 분망한 생활의 흐름속에서 그런 기회는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고 그대신 넉달후 최승진이 출장간 다음 그의 집에서 생긴 뜻밖의 화재로 하여 행인지 불행인지 모든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풀리고말았다. 그날 윤희는 시내의 백화점에 갔다오다가 영화예술인 아빠트의 어느집 창문에서 시꺼먼 연기가 꾸역꾸역 피여나오는것을 보고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불이다- 화재요-》 하고 새되게 부르짖는 소리가 가슴을 선뜩 에이였다. 윤희는 모든것을 잊고 현관쪽으로 달려가 물바께쯔며 소랭이들을 들고 모여든 아낙네들과 한데 어울려 불이 난집으로 뛰여들어갔다. 화재는 세대주가 쓰는 방에서 일었는데 때마침 달려온 아낙네들이 휘뿌리는 물벼락에 인차 꺼지고말았다. 동네아낙네들이 숨이 턱에 닿아 헐썩거리면서 구석쪽에 서있는 이쁘장하면서도 당돌하게 생긴 처녀애에게 욕설도 퍼붓고 혀를 차며 여러가지 동정의 말도 하였다. 처녀애는 올롱해진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변명도 하고 맹꽁이같은 대답질도 하였다. 윤희는 그 오가는 소리들속에서 이것이 연출가 최승진의 집이며 처녀애가 그의 딸이란것을 알았다. 화재는 처녀애가 아버지의 옷을 다린 다음 다리미의 전기를 끄는것을 잊고 그냥 쪽잠이 들었기때문에 생긴것이였다. 동네아낙네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도 윤희는 웬일로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처녀애를 도와 방을 치웠다. 걸레로 방바닥의 물을 훔치던 처녀애가 책상밑에 떨어진 자그마한 사진액틀을 들어 팔소매로 몇번인가 닦더니 그것을 탁상등밑에 세워놓으면서 아버지가 적적하면 들여다보는건데 이것만 못쓰게 만들었다면 집에서 쫓겨날번했다고 혼자소리로 종알거렸다. 윤희가 사진쪽에 눈길을 돌리자 책상우를 닦던 처녀애는 그에게 경계의 눈길을 흘깃 던지였다. 《보지 말아요. 이건 아버지 비밀이야요.》 《응?… 비밀?》 윤희의 놀라움과 호기심에 처녀애는 좀 우쭐해졌는지 어른들한테는 한두가지 비밀이 있는건데 자기는 아버지의 비밀을 다 안다고 자랑했다. 《글쎄 들어봐요. 한번은 아버지 오랜 친구인 작가선생님이 와서 아버지하고 밤깊도록 술을 마시며 하는 얘기를 엿들었는데 이 녀자가 우리 아버지 첫 애인하고 거의 같이 생겼다나요. 첫사랑은 깨지기 쉽고 그대신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니까요…》 그 처녀애는 제법 인생의 신비와 고뇌를 죄다 꿰들고있기라도 한듯 이마에 보일듯말듯 주름살까지 지으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윤희는 처녀애의 머리우로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만 아연해져 비명을 지를번했다. 그것은 람루한 옷차림의 두 소년을 량옆에 꼭 껴안고 뒤골목의 울담밑에 기대여 쪽잠이 든 녀교원의 사진이였다. 비참상이 강조되도록 분장을 진하게 했던탓인지 처녀애는 사진속의 녀교원이 자기앞에 서있다는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정신없이 합숙으로 달려온 윤희는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가슴을 부여안고 소리없이 울기도 하였다. 여기를 떠나 어딘가 멀리로 도망쳐가 숨어버리고도싶고 미지의 그 첫 애인을 대신하여 그에게 위안과 기쁨도 주고 힘도 보태주고싶었다. 모순되는 감정과 번민의 모대김속에 두석달이 지나갔다. 최승진은 날이 갈수록 그를 점점 더 멀리하려고 애썼으나 윤희의 다감한 감정은 그 인위적인 거리감에서 자기를 귀중히 여겨주며 아껴주려는 불같은 마음을 낱낱이 느낄수 있었다. 그 인간됨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괴로운 마음을 더는 참을수 없게 되였다. 윤희는 옛 교장을 찾아가 상대의 이름만은 밝히지 않고 그사이 있은 모든 사연을 다 털어놓고 자기 심정까지 고백하였다. 교장은 담배를 연거퍼 피우며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천정의 한점을 지켜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이건 신중한 운명문제요!… 론리로는 설명할수 없는 문제지…》 그리고는 그 상대가 누구인가고 따져물었다. 윤희의 대답을 듣자 교장은 소스라쳐 놀라며 그를 돋보는 눈길로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었다. 《최승진이!… 공훈예술가… 그야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예술가가 아니요. 나는 그가 만든 영화들을 죄다 보았소. 크고 뜨거운 심장을 지닌 사람만이,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을 소유한 예술가만이 그런 작품을 창조할수 있소. 나는 그의 인간됨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소. 그리고 애정에 그쯤한 년령차이가 무슨 대수겠소. 예술가에겐 영원한 청춘이 필요한것이고 두 운명의 결합이 영화창조에 리로울것도 자명한 리치요. 그리고 또… 진실로 애정에 기초한 결합이라면 개명한 현대인들중에는 비난하거나 시비할 사람도 별로 없을것이요. 그러나 … 그러나 일생의 문제인것만큼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오. 오빠하고도 의논하고 부모님들의 의사도 거역해서는 안되오.》 교장은 결국 대답을 회피하는것이였다. 사촌오빠는 그의 이야기를 듣자 펄쩍 놀라며 애초에 너를 촬영소에 보낸것이 잘못이였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촌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이 일을 알면 당장 달려와 머리끄뎅이를 잡아 집으로 끌어갈것이라고 했다. 그는 얼굴빛이 대뜸 사나와져 씨근거리며 최승진에게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하였다. 《흉측한놈,남의 집 딸을 어떻게 꾀였으면 이지경이 됐는가.우리를 얕보고 수작질을 했겠지. 어디 보자! 예로부터 영화인들의 생활이 복잡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럴줄은 몰랐다.내 다시는 영화를 안보겠다.》 윤희는 얼굴빛이 해쓱하게 질려 항변하였다. 《오빠.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정말이예요.아니예요!》 《듣기 싫다!》 교장의 회피와 오빠의 험구는 역작용을 놀아 그의 가슴속에서 최승진에 대한 감정을 활활 타번지게 하였다.윤희는 부모와 친척들의 반대로 결혼은 못해도 그를 존경하는 예술가로서 지성껏 도우리라 속다짐하였다.그리고 이렇게 결심한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것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무렵 공교롭게도 최승진이 시름시름 앓다가 구역병원에 입원하였다. 위궤양이라고 하였다. 윤희는 매주 일요일마다 병원으로 찾아가 병문안하였는데 하루는 신선한 과일을 사들고 들어가다가 병원 정문에서 사촌오빠와 마주치게 되였다. 성미 드센 그가 최승진에게 무슨 행패질이라도 하고 나오는 길이 아닌가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오빠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담장밑으로 윤희를 끌고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최승진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라면서 《사람은 점잖더구나…》 하고 말하였다. 윤희는 그 한마디에 설음이 터져올라 오빠의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눈물을 한껏 쏟았다. 오빠는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는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쳤다. 《에익, 나두 모르겠다!》 그는 그날로 교장선생을 찾아가 밤새껏 의논하였으며 며칠뒤에는 둘이서 교외농촌의 부모님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무슨 감언리설로 풍습에 완고한 늙은이들을 설복시켰는지 반승낙을 받아가지고 왔으며 최승진이까지 만났다. 최승진이 부모님들을 찾아가 옛 풍습대로 방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할 때 윤희는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길 없어 외로 돌아서 흑흑 느껴울었다. 윤희는 남다른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최승진이를 점점 더 깊이 리해하게 되였으며 이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많은것을 새롭게 느끼게 되였다. 우선 그는 결혼전에 자신이 은근히 두려워했고 부모들과 처녀동무들이 말없는 가운데 우려했던 나이차이를 생활에서 왕왕 잊어먹게 되거나 전혀 느낄수 없었던것이다. 신기한 일같았지만 따져보면 그 까닭이 명백했다. 남편이 된 최승진, 그 사람에게는 20대 청춘시절의 열정과 기백이 그대로 살아 약동하고있었으며 지어는 10대전의 동심까지 넋속에 살아남아 숨쉬고있었다. 그래서 윤희는 남편을 통하여 명성높은 예술가, 중년의 사려깊은 남성만을 느낀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열정이 굼틀거리는 청춘시절의 그, 순박하고 천진란만한 철부지시절의 그까지 느끼였으니 부부생활은 권태와 무미건조함을 몰랐고 때때로 허리부러지는듯한 웃음을 터쳐 이웃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도 되였다. 최승진은 젊은 안해의 과거생활뿐아니라 남들의 과거와 현재생활에 대하여서도 저속한 호기심을 내비치는 때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윤희도 남편의 지난 생활을 캐고들려 하지 않았으며 자기와 모색이 비슷하다는 그의 첫 애인에 대하여서도 이따금 호기심이 동했으나 묻지 않았다. 먼 동해의 농촌에 사는 최승진의 친척들은 대체로 그에 대해 노여움이나 원망을 품고있었다. 그가 친척들의 대사에 한번 얼굴을 내민적이 없고 그만한 지체에 있으면서 동생벌되는 아이들에게조차 전혀 관심을 돌려주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런 노여움이 담긴 편지가 날아들면 남편은 얼굴이 어둑해져서 자책감에 잠기다가도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 고향에서는 나를 무슨 대통령이나 대신쯤으로 여기는것 같소. 영화자막에 이름 석자가 크게 나니까… 우리 한번 어떻게나 휴가를 내여 고향에 가보자구.》 그때마다 윤희는 얼굴빛이 심각해져서 자기가 채심해서 고향친척들에게 편지라도 자주 써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영화인들의 부정한 생활에 대하여 항간에 돌아간 이런저런 풍설과는 달리 최승진에게는 막역하게 친근한 녀자동무란 한명도 없었다. 집으로 찾아오거나 그와 생활적인 뉴대를 가지고있는 친구들이란 모두 촬영가나 배우, 작가나 미술가들뿐이였다. 직업상의 동료들, 사업상의 동지들뿐이였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영화나 자매예술에 대한 이야기와 떠들썩한 론쟁들을 벌리였고 그러다가도 새 인공위성의 발사와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면 미래의 인간생활, 미래의 영화에 대하여 공상하면서 21세기나 22세기에 가서 영화보다 더 앞선 새 예술형식이 나타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발생발전한 20세기에 소설이나 회화예술이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것처럼 먼 미래에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영화예술의 생명력은 영원할것이라고들 하였다. 남편 최승진은 서둘러서 사는 사람같았다. 그는 한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두개, 세개의 영화창작을 공상하였으며 조국의 모든 부문에서 벌어지는 사변들을 영화화하고싶어했다. 로동자들의 생활, 농민들의 생활, 인테리들이 생활… 조국애, 영웅주의, 동지애, 륜리도덕 문제에 대하여서도 탐구해나갔다. 작가들은 자기 체질에 맞는 제재만을 골라잡아 영화를 만드는 로영무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미식가라고 하였으며 제재에 관계없이 모든것을 영화로 만들어보고싶어하는 불면불휴의 정열가 최승진에 대하여는 식성이 좋은 대식가라고 롱조로 말하였다. 이러한 사람과의 결혼이 윤희에게 차례진 행복의 기초였다. 그는 이 기초우에 행복의 탑을 높이 쌓아올려 한껏 행복해지고싶었다. 처녀시절의 공상대로 뛰여나게 행복한 녀성이 되고싶었다. 되돌이 목록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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