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3 장

 

3

 

 

 백두고원에는 봄빛이 짙어 어디를 둘러보나 울창한 밀림의 연두빛바다가 거창한 생명감을 풍기며 장엄하게 설레이고있었다. 그러나 그속으로 깊이 들어가니 얼마전 여기를 휩쓴 미친 바람의 흔적인 꺾어져 맥없이 내리드리운 나무가지며 뿌리를 쳐들고 모재비로 쓰러진 거목의 처참한 자태가 드문드문 눈에 띄였다. 

리명수를 지나 청봉숙영지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두손을 올리고 주변의 숲을 둘러보시였다. 송진내가 연하게 섞인듯한 락엽수들의 싱그러운 냄새며 락엽썩는 시크무레한 냄새가 밀림속에 진동했다. 

그이께서는 길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언덕받이에 쓰러진 강대나무에 눈길을 멈추시였다. 여러가닥의 우불구불한 뿌리들을 험상하게 쳐들고 락엽속에 쓰러진 강대는 넘어질 때 곁의 어린 봇나무를 후려쳐 가지들을 꺾어놓고 찢어놓아 그 상처들에서 흘러내린 진물이 희끗한 껍질을 적시고있었다. 

그이께서 시름겨운 안색으로 조용히 뇌이시였다.  

《자연에 분 바람도 이만저만이 아니였군…》 

박경섭은 그이께서 예술계에 불어친 불길한 바람에 대하여 상기하셨다는것을 인차 느꼈다. 

《사적지들이 피해를 입었겠소.》 

그날 초대소에서 서부상으로부터 백두고원을 흽쓴 모진 바람의 횡포에 대하여 전해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상이 떠나가자 인차 량강도당의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아 바람피해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인민경제 여러부문의 피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고하였으나 백두밀림속에 있는 사적지들의 형편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좋지 못한 안색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시였는데 박경섭은 그이의 심중에 어떤 격랑이 일어났는지 짐작되여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튿날 그이께서는 박경섭에게 그러지 않아도 백두산쪽에 가보고싶었는데 함께 가자고 하시였다.

그이를 모신 직승기는 비행중 어디에도 내리지 않았다. 도소재지인 혜산도 지나 보천보까지 곧바로 날아와 내렸다. 

그이께서는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내내 말씀이 없었다. 줄곧 한가지 생각에만 골똘하고계시는듯 했다. 

지금 사적지에 다 와서 저토록 참혹하게 허리부러져 쓰러진 강대까지 보시게 된 그이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박경섭은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청봉숙영지로 들어가는 길은 다행히도 깨끗이 쓸어져있었다. 

어느 누구의 알뜰한 솜씨인지 파도무늬의 비자루자리까지 나있는 길바닥에는 락엽 한잎 떨어져있는것이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오후의 해빛이 송림속으로 환하게 흘러들어 표식비의 빨간 글자들이며 구호목들의 힘찬 글발들까지도 바라보였다.

태고연한 정적속에 묻혀있는 사적지안에는 인적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따금 가까운 어디에서 딱따구리가 구새먹은 나무를 쫏는 소리만 공기를 흔들뿐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샘터며 작식터, 천막자리, 구호목들을 돌아보시였다. 어디에도 피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이의 안색이 비로소 약간 밝아지는듯했다. 

박경섭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런데 두석대의 구호목들에서 해빛과 비바람탓인지 글발들이 퇴색해지고 흐려져있었다. 어떤 글자들은 우로부터 흘러내린 송진에 덮였는가 하면 나무가 갈라터져 가로 그은 획들이 잘라진것도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아쉬워 그런 글자들을 거듭 쓸어만져보시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서 실눈을 짓고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어느정도 알아보이겠는가 가늠도 해보시였다. 

문득 뒤쪽에서 거치른 목소리가 울렸다. 

《거 누구요?》 

고요를 뒤흔든 그 소리에 박경섭이 화닥 놀라 뒤돌아보니 샘터옆에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새까만 로인이 나무삭정이들을 한아름 안고 서있었다. 이쪽을 빤히 지켜보던 로인은 비로소 그이를 알아본듯 뒤로 주춤 물러서기까지 하였다. 로인의 품에서 삭정이들이 흘러떨어졌다. 

로인은 정신없이 달려와서 그이의 손을 스스럼없이 덥석 잡아쥐고 허리를 굽혔다.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새 앓지 않았습니까?》 

《이게 꿈이 아닙니까. 예?》 

로인은 허옇게 센 눈섭을 치켜올리며 그이를 쳐다봤는데 그 우묵한 눈에 따뜻한 정기가 일렁이였다. 

《여기도 돌아보고 아바이도 보고싶어 왔습니다. 혹시 어디로 가시지 않았는가 했는데 계시는구만요.》

《이 청봉귀신이 가문 어디루 가겠습니까.》 

로인은 격정에 사무쳐 채머리를 떨기까지 하였다. 

그이께서도 반가움에 겨워 락엽들이 붙어있는 로인의 솜옷팔소매를 쓸어만지며 몇순간 말씀을 못하시였다.  

다정한 말들이 더 오간다음 그이께서는 로인에게 안내되여 다시 숙영지를 돌아보시였다. 

사령부의 천막자리까지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며 로인에게 물으시였다. 

《요전 바람에 이 천막이랑 무사했습니까?》 

로인의 얼굴에 일종의 자랑과 회심의 미소같은것이 어리였다. 

《무사하지 않구요. 원 무슨 바람인지… 내 평생 이 아근에서 살아왔지만 그런 미친 바람은 처음입니다. 갑자기 앙-하고 불어대더니 와지끈 와지끈 들부셔대는데 세상이 어떻게 되는줄 알았습니다. 그 바람통에 사람들의 깊은 속마음도 알게 됐습지요.》 

로인은 그때 보천보병원에 입원해있었는데 청봉사적지가 다 들부셔지는것 같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들락날락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병원에서 뛰쳐나서 종주먹을 부르쥐고 리명수쪽으로 뛰여 올라왔다고 했다. 

《아니, 여기엔 누가 없었던가요?》 하고 그이께서 저으기 놀라며 물으시였다. 

《있기야 있었지만 어디 맘을 놓을수 있습데까. 구호목 한대라도 넘어지면 어쩝니까… 한 십리 뛰여와 숨이 차서 길바닥에 쓰러졌는데 털털이 한대가 쌍불을 켜구 달려왔지요. 이젠 살았구나 하구 뛰여일어나 두손을 쳐드니 차가 멎어섰는데 안을 보니 앞자리엔 넥타이까지 맨 점잖은 어른이 앉아있고 뒤자리엔 나들이 차림을 환하게 한 내인하구 사내아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우리 리명수마을 잔치집에 가는 일행이 틀림없었습니다. 그집 몇춘되는분이 도에 있다가 군에 가즈 배치돼왔다더니 그분이 틀림없구나 이렇게 생각하구 사정이야기를 하면서 좀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른은 사적지에 다른 사람들도 있겠는데 왜 이런 밤에 길을 떠났느냐 어서 돌아가라고 하다가 내가 정 부탁하니 타라고는 했지만 얼굴색은 그닥 좋지 못합디다. 내인은 눈이 올롱해서 아이를 제곁으로 와락 잡아끌며 옷이나 털구 오르라구 하지 않습니까. 새침해서… 나때문에 잔치집에 가는 흥이 다 깨져 그러는것 같았습니다. 바람에 날려 몇번 딩굴다나니 내 옷주제가 흙투성이 돼서 말은 아니였지만 그렇게 나오니 속이 욱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찌겠습니까. 빨리 가야는 되겠구 해서 올라갔는데 내외가 다 어찌나 랭랭한지 미안하다는 말에도 응대를 안하고 내내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내리고말았지요. 핑게를 대고… 차가 윙 떠나자… 내 난생처음 남의 뒤에 대고 침을 뱉어봤습니다. 그때 분하던 생각을 하문… 이 사적지가 저한테는 아무 상관도 없는건가. 뉘덕에… 무슨 덕에 제따위가 밑에 바퀴를 달고 다니게 됐는지도 모르는 후레자식… 내 어디 사사용무로 차신세를 지자는거냐. 웬만한 사람같으문 저희네가 다 내리더라도 차를 내줬을게다… 이렇게 된욕을 하며 길을 걸으니 허허… 속에 불이 황황 일구 기운이 우쩍우쩍 나서 숨이 찬것두 모르겠습디다.》 

로인은 허거프게 웃었으나 박경섭은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분격에 가슴이 떨렸다. 그가 누구인가고 따져묻고싶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계셨기때문에 중도에 끼여들수 없었다. 또한 다른 자책감도 가슴에 파고들어… 자신이 맡은 영화부문에서는 혁명력사를 외곡한 작품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로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새벽녘에 헐헐 여기까지 오니 바람은 더 기승을 부려 나무가지들을 우지끈 꺾어버리는데 세상에 참… 이런 귀인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내렸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웬 젊은이 열대여섯이 우리 관리원하구 벅작 떠들며 뛰여다니면서 저 구호목들에 받침대를 덧대고있는게 아닙니까. 알고보니 리명수생필공장 로동자들이였습니다. 내 그것들이 너무 고와 볼을 쓸어만져주구 엉치를 쳐줬수다.》

김정일동지께서 즐겁게 웃으시였다. 

《그 동무들은 어디 이 근처에서 일하고있었던가요?》 

《아니지요. 집에서 자다가 바람소리에 놀라 일어났는데 여기 걱정이 나 서로 만나 의논끝에 뛰여왔답니다.》 

《예…》 

《말은 또 얼마나 그럴듯하게 하겠습니까. 저 구호목들은 나라의 국보이다.… 우리 마음을 받들어주는 기둥이 아닌가… 이러는데 나는 그만 젊은것들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말았습니다.》 

로인은 그때의 격정이 되살아올라 거쿨진 손등으로 질쩍해진 눈굽을 씻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된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로동계급의 심정이 역시 다릅니다.》 

《예, 정말 그렇습니다. 이번 바람통에 사람들 깊은 마음속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생각이 깊어지시는듯 눈길을 들어 숙영지 저쪽 우중충한 숲의 우듬지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파란 하늘밑에 검푸른 파도를 이룬 그 우듬지들은 쏟아져내리는 해빛에 한껏 미역을 감으면서 장엄하게 설레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령부천막옆 너럭바위에 앉아 로인과 한참 이야기를 더 나누고나서 박경섭이더러 차안에 두고온것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그것은 로인에게 주시려고 평양에서 가져온 털모자였다. 

털모자는 로인의 머리에 약간 큰감이 있었으나 앞이 좀 쳐들리게 눌러쓰니 체소한 몸에 한결 풍채를 돋구는것이였다.

로인은 뜻밖의 선물에 너무 기뻐 철없는 어린애로 된듯 털모자를 몇번 고쳐 써보고는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두손으로 그이의 손을 싸쥐고는 고개를 깊이 숙여 절하였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아바이, 청봉을 부탁합니다!》

그이께서는 차를 타고 삼지연까지 오시면서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로인의 이야기에서 큰 충격을 받으신듯하였다. 

그날밤 그이의 숙소 창문에서는 늦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x

 

 

이튿날 역시 쾌청한 날씨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산을 답사하시기 위하여 아침일찍 숙소를 떠나시였는데 도당비서를 비롯한 도와 군의 책임일군들이 호위안전원 여러명을 데리고 우르르 따라나섰다.  

그이께서는 모두 돌아가서 일들을 보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는데 도당비서외에 박경섭의 간청으로 안전원 두명만 데리고가는것이 겨우 허락되였다. 

그이를 모신 일행이 건창을 에돌아 무두봉에 이르러 한쉼 쉬고나서 백두산에 오르니 정오가 다 되여 훨씬 낮아진듯한 파란 하늘복판에서 화염덩어리같은 해가 눈부시게 이글거리고있었다. 숨이 차오르고 눈이 부시고 얼굴살갗이 시원하면서도 따가운 기운에 말라드는듯했다. 

바람 한점 없었다. 사화산의 대분화구는 누리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구만리대공에 불줄기를 뿜어올렸던 태고적의 장엄한 모습과 기상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시간이 정지된듯한 신비로운 정적속에 영원한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천지의 거울같은 수면에는 파란 하늘이며 그 둘레의 깎아지른듯한 벼랑들이 모두 거꾸로 비껴들어 천지밑에 하늘이 열려있고 하늘우에 천만산악이 두둥실 떠있는듯한 신비경이였다. 장군봉, 천지의 푸른 기슭… 그 어디에나 항일대전의 발자취가 찍힌채로 고스란히 간직되여있고 눈보라처럼 휩쓴 백병전의 함성이며 기관총의 자지러지는 총소리가 간간이 울려와 태고연한 정적을 흔드는듯하였다. 아름다움과 장엄함과 웅대함의 극치를 이룬 대자연의 절경과 여기에 어린 항일대전의 기상과 절세의 애국자, 만고의 령장 장군님의 위대성으로 하여 백두는 오늘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솟아 이토록 숭고하고 장엄한 감명을 불러일으키는것이 아닌가…

박경섭은 가슴이 벅차올라 단숨을 헐헐 몰아쉬고 따라온 두 안전원도 이마의 땀을 씻으며 그이쪽만 지켜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봄외투 앞섶을 열어헤친채 한손을 허리에 돌리고 천지를 내려다보시였다. 천지의 수면이 발산하는 빛발과 선기의 작용으로 불깃하게 혈색이 피여오른 그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시였다. 

박경섭이 곁으로 다가가자 그이께서는 영채가 도는 눈길로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여기로 몇번이나 왔댔소?》 

《다섯번째입니다.》 

《많이 왔댔구만. 감정이 어떻소?》 

박경섭은 그이를 모시고 여기로 온 감격이 너무 벅차서 선뜻 대답드리지 못하고 어줍게 웃어보였다. 

《참 조화입니다. 언제나 여기로 오르기만 하면 목이 터지게 소리치고싶거든요. 매번 그렇습니다. 저뿐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어른들이나 청년이나 소년단원들이나… 그래서 모두 정신없이 만세도 부르고 아-야-오-와- 모두 나가는대로 아무 탄성이나 정신없이 내지르게 됩니다. 한번은 일본에서 온 총련대학생들을 봤는데 그 동무들은 그냥 왕왕 울면서 수령님 만세도 부르고 조국 만세도 부르더니 두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면서 목소리를 합쳐 웨쳐댔습니다. <우리는 조선사람들이다->, <백두산의 아들딸이 되자->, <만세-> 이러는데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다 눈물이 글썽해졌습니다.》 

박경섭은 눈을 슴벅이였다. 

그이께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장군봉쪽을 돌아보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그럴수 있지. 여기서 조국이… 조국강산이 시작되는게 아니겠소.》

어디서 날아왔는지 메새 한마리가 머리우의 하늘을 날아돌며 은방울을 굴리는듯한 소리로 우짖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실눈을 짓고 그 새를 쳐다보시였다. 

《저걸 보라구. 얼마나 곱소. 우리를 반기는거요. 우리를 안내하자고 나온 대자연의 사절인지도 모르지. 허허…》 

새는 한자리에 떠서 재빛날개를 바르르 떨다가 어느새 곤두박히듯이 천지쪽으로 날아내려갔다. 

그이께서는 장군봉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도당비서와 박경섭은 몇걸음 떨어져 그이의 뒤를 따랐다. 

이때였다. 대기속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변화가 느껴졌다. 그것은 공기와 딛고있는 땅이 전률하는듯한 느낌이였다. 

《아니 저걸…》 박경섭의 뒤를 따르던 안전원의 놀란 목소리였다. 

어느새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수 없는 젖빛 안개가 물매급한 비탈을 따라 폭포처럼 천지로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천지우에서 날아예던 이름모를 새들이 피타는 소리를 내지르며 병풍같은 절벽들의 품속으로 급기야 날아들어 숨어버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놀라운 변화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거울같은 천지의 수면이 잔주름을 잡으며 희끗희끗한 물갈기를 날리고 우-우-웅 하는 굉음같은 바람소리에 하늘땅이 진동했다. 모래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순간에 그 무슨 불가항력적인 의지에 휘여잡힌듯 정신이 팽팽하게 긴장되면서도 얼뜨름하게 흐려졌다. 

박경섭은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하여 많이 들어왔으며 한번 체험한적도 있어 더럭 겁이 났다.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지만 그 어떤 지향성있는 결심도 내릴수 없는 혼란과 마비상태에 빠져 마음만 조마조마해졌고 아우성치는 바람을 등지고 허리를 굽히면서 그이쪽만 바라보게 되였다. 그러나 흩날려가는 자욱한 안개가 앞을 가리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한 뫼부리들도, 벼랑도, 천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인가 격류를 이루어 흘러가는 안개바다가 모든것을 삼켜버렸다. 문득 자기 혼자 안개속에서 허우적이고있는듯한 고독감이 엄습해들었다. 

도당비서가 뛰여왔다. 

《위험합니다. 모시고 내려갑시다!》 

그 순간 하늘이 허물어져내리고 산악들을 통채로 들었다놓는듯한 굉음이 터져오르며 시퍼런 불채찍이 눈을 후려쳤다. 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멍멍해졌다. 칠흑같이 캄캄한 눈앞에서 노란 실연기가 그물거리는듯하는데 안전원들의 다급한 부르짖음소리가 모기소리만큼 가늘게 들려왔다. 

《번개가… 여기선 발밑에서 번개가 쳐요-》 

《위험합니다. 쇠붙이를… 쇠붙이를 다 버리십시오.》 

박경섭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식은 땀이 내배였다. 그는 도당비서를 따라 김정일동지께로 정신없이 뛰여갔다. 안전원들도 뒤따랐다. 

그이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올리고 반석처럼 끄떡없이 서서 천지우에서 거창하게 사품치는 안개바다를 바라보고계시였다. 

《내려갑시다. 번개가 위험합니다.》 하고 박경섭은 다급히 부르짖었다. 

그이께서는 흔연한 얼굴로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번개말이요? 이자 그 번개는 장군봉곁에서 쳤소. 괜찮소.》 

이때 또다시 시퍼런 불길이 안개속을 누비며 폭음이 울리더니 저쪽에서 돌사태가 와르르 허물어져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일동지께서 신이 나서 껄껄 웃으시였다. 

《저건 달문쪽이요. 굉장하군… 백두산이 자기 위용을 시위하는거요. 우리가 벌써 내려가면 산이 섭섭해하지 않을가. 헛허허…》 

그이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박경섭은 가슴이 가라앉으며 불안감이 가셔지는듯했다. 안전원들도 빙그레 웃었다. 

《저걸… 저걸 보라구!》 하고 그이께서 환성을 터치며 한손을 들어 천지우를 가리키시였다.

거기서는 거대한 안개기둥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하늘로 엇비스듬히 날아올랐다. 그 안개기둥은 용을 쓰듯 구불구불 휘여져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허리를 쭉 늘이며 아츠러운 회파람소리와 함께 아득한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어마어마한 회오리를 일으켜 온 안개바다를 빨아올렸다. 장군봉은 물론 천지둘레의 모든 산악들을 넘어 안개가 폭포처럼 쏟아져내려 사품치다가 어마어마한 회오리에 말려들어 빙빙 돌아가면서 그 안개기둥의 가늘어지는 꼬리를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무시무시한 회파람소리, 거창하게 굼닐며 돌아가는 안개바다, 모든것을 쓰러뜨릴듯이 불어치는 질풍… 온 누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듯하였다. 박경섭은 안개바람에 떠밀려 허우적거리다가 그이의 팔을 붙잡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붙잡아주며 통쾌하게 웨치시였다. 

《경섭동무, 왜 이럽니까? 취하지 않았소? 핫하하… 취할만도 하지, 얼마나 장관이요! 얼마나… 아, 얼마나 장엄한 기상인가!》 

박경섭은 안개에 눅눅하게 젖은 얼굴을 훔치며 숨을 헉헉 들이긋고 안전원들은 정신없이 소리쳤다. 

《야-》 

《아-》 

안개바람에 그이의 머리칼이 날리고 봄외투자락이 기폭처럼 나붓기였다. 얼마후 하늘 여기저기에 파란 구멍이 뚫리고 파도치는 천지의 물결우에 가녁이 터슬터슬하게 찢어진 하얀 안개쪼각들이 유유히 떠돌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번쩍이는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시다가 주먹을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흔드시였다. 

그리시고는 돌아서 장군봉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올라가시였다. 

그이의 봄외투자락이 안개바람에 날려 한옆으로 밀리며 새깃처럼 푸드덕이였다. 짙어졌다가 설피여지군하는 안개의 조화로 그이의 자태가 부옇게 흐려지는가 하면 뚜렷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때는 하반신이 안개의 흐름속에 아주 묻혀버리기도 하였다.

박경섭은 그이께서 주먹을 쳐들어 흔드신 그 의미를 도무지 알수 없었으나 그저 막연한 흥분으로 가슴을 울렁이며 부지런히 뒤따라 올라갔다. 

문득 자기가 늘 애독했던 《백두산》의 한구절이 떠오르며 목이 메여올랐다.

  

너 백두야

조종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 

 

문득 얼굴에 산뜩산뜩한 촉감이 느껴졌다. 속눈섭에도 무엇인가 한없이 부드럽고 상쾌한것이 사뿐 내려앉는듯하며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면서 어른거렸다. 

박경섭은 손등으로 눈을 빗씻었다. 손등에 물기가 묻어났다. 내가 울고있는것인가… 눈앞에서 하얀 반점같은것들이 너울거리기 시작하였다. 

놀라서 하늘을 쳐다본 그는 너무도 희한한 광경에 그만 입을 하 벌리고 넋없이 굳어져버렸다. 꿈속에서처럼 어느새 파랗게 개인 하늘에는 해빛이 눈부신데 무엇인가 소담한 반점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수없이 날아내리고있었다. 눈송이들이였다. 순식간에 수만수억으로 불어난 그 눈송이들은 끝없는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쫓거니 쫓기거니 하며 소리없이 날아내리면서 한없이 상쾌한 기운과 그윽한 정서로 백두의 절경을 장식하는것이였다. 

박경섭은 환희에 넘쳐 두손에 눈을 받아 얼굴에 마구 문지르다가 그이곁으로 뛰여갔다. 

김정일동지께서도 한손을 앞으로 내밀어 눈을 받으시다가 기쁨에 겨운 얼굴로 그를 돌아보시였다. 

《경섭동무, 어떻소, 어때?》 

《이건 그냥 축하의 꽃보라같습니다.》

《백두산이 우리한테 베푸는 마지막 례절이요, 인사요!》 

《정말 장관입니다.》 

《얼마나 좋소. 나는 백두산에 오르면 언제나 새 기운이 북받치고 혁명을 하고싶은 의욕이 백배해지오!》 

그이께서는 하늘을 그러안으시려는듯 두팔을 쳐드시였다. 

《아,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그이의 눈에 물기가 떨었다. 그이의 머리며 봄외투어깨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이슬로 녹아 불꽃처럼 타오르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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