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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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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창유리들에 나무잎사귀같은 무늬들을 그렸던 성에도 녹아내린지 오래고 따스한 해빛이 창문에 가득차서 쏟아져들어와 방안은 여느때없이 훤했다. 엇비스듬히 흘러드는 그 해빛속으로 날아오르는 담배연기가 봄날의 희부연 안개처럼 그물거렸다. 주영도는 정숙이 깃든 아늑한 자기 사무실에 있었지만 몸을 주체하기 어렵도록 세차게 회오리치는 선풍속에 든듯 두팔을 벌려 책상가녁을 꽉 붙잡고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둑하게 흐려졌다. 웬일인지 가슴이 심란해졌다. (왜 내가 이럴가?) 그러나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는 재털이에 놓인채로 있는 담배가치를 들었다가 피우는것을 그만두고 불을 꺼버리고는 손님용 안락의자에 가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최승진과 여러 예술인들의 집을 찾으신 때로부터 어언 두달이 지나갔다. 그 두달은 온 촬영소가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진 나날이였다. 그이께서는 한주일에도 몇차례씩 촬영소로 내려와 여러 예술영화들의 창조사업을 보살펴주시는 한편 《광풍》의 개작을 직접 지도하시였다. 최승진은 이에 고무되여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합숙과 실내촬영장에서 쪽잠을 자면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촬영을 계속해나갔다. 로영무도 그와 침식을 같이하면서 영화개작에 자신의 지혜를 아낌없이 보태주었다. 그리하여 어제까지의 《광풍》은 《나의 길》이란 제명으로 개작완성되였다. 오늘아침 총장과 부총장들이 두 연출가와 함께 《나의 길》을 가지고 당중앙위원회로 올라갔다. 그이께서 부르시였던것이다. 촬영가와 주요배우들도 따라갔다. 그들은 모두 흥분되여 먼저 타라고 서로 떠밀며 승용차들에 오른다, 필림통들을 싣는다, 방에 잊고온 문건들을 가져온다 하며 떠들썩하게 떠나갔다. 그들이 떠나가자 촬영소의 공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긴장해졌다. 영화가 어떻게 평가될것인가 하는 불안감때문이였다. 주영도비서도 그런 불안감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으나 김정일동지께서 지도하여주신만큼 영화가 잘되였을것이고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에게는 다른 근심이 더 컸다. 영화는 개작되였지만 최승진과 로영무의 엄중한 사상적병집, 이번에 드러난 온 촬영소의 사상적결함은 어떻게 고쳐나가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사실 그는 이번에 영화예술인들속에서 낡은 사상을 반대하는 투쟁을 한달이고 두달이고 석달이고 날자에 구애되지 않고 심각하게 벌려 오래 묵은 잡사상의 때를 말끔히 벗겨내리라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일은 그의 결심대로 되여가지 않았다. 우선 박경섭의 주장으로 예술부서들이 거름생산에 참가하던것이 중지되였으며 창조과제를 맡은 예술인들은 예술창조에만 전념하게 되였다. 예술인들의 사상상태에 대한 자료는 종합되여 보고되였건만 해당부서에서는 낡은 사상을 극복하기 위한 실제적인 투쟁을 조직하라는 아무런 지시나 의견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박경섭에게 문의하니 작품이 개작완성된 다음 총화를 잘하자고 하면서 그러면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결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오늘아침 떠날 때 보니 최승진이나 로영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흥분에 들떠있었는데 자신들의 과오와 사상적결함들에 대하여는 까마득히 잊고있는것 같았다. 그러한것들을 문제시했던 자기를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일군으로 여기지 않는가싶은 불쾌감까지 들었다. 주영도는 무거운 마음으로 창가로 걸어가서 뒤짐을 지고 흐릿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가까운 구내길로 대여섯명의 녀배우들이 활기에 넘쳐 걸어가고 그 뒤로 한기석이 검은색 코트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아래만 보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겨가고있었다. 주영도는 웬일인지 그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한기석의 조부는 지난세월 제일 가난하고 비천한 품팔이군이였으며 여러해전에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한때 아시아는 물론 구라파에까지 이름을 떨친 배우였고 연극연출가였으며 인민예술가에 연극영화대학의 교수였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그의 아버지의 재능과 공로를 여러번 치하하신적이 있다. 한기석은 아버지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 그는 해방후 인민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과 대학을 거쳐 영화계에 들어선 새 세대의 예술인이다. 그의 언행과 외모에서도 새 세대의 청신한 기운이 풍기였다. 때문에 주영도는 언제나 그와 이야기하거나 같이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것이였다. 주영도는 한시간후 한기석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한기석은 인차 달려왔다. 그는 무엇때문인지 매우 불만스러운 얼굴이였다. 이전과는 달리 자리를 권하자 안락의자의 한쪽끝에 스스럼없이 앉는다. 《연출가동지들이 당중앙위원회에 올라간 다음 섭섭한 생각이 없지 않아 그래서 찾아올가 했습니다. 우리 부연출들도 오늘같은 때 한두명 따라올라가 뒤구석에라도 앉아 배우면 안됩니까. 언제봐야 최승진연출가와 로영무연출가에게만 특전이 차례지지요. 앞으로도 내내 이러면 저희들은 언제 자랍니까?》 《…》 주영도는 아침에 최승진이와 로영무를 불러올릴 때 마음속으로 한기석이도 올려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제편에서 내놓고 그런 제기를 하니 이 친구가 너무 뻔뻔스럽지 않는가하는 어렴풋한 느낌까지 든다. 《제 생각이 잘못된것입니까.》 《잘못되기야…》 《그런데 어째 절 그런 눈으로 봅니까?》 《허, 이 동무가… 내가 동무를 어떤 눈으로 봐야 되오?》 《예?》 《동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말이요.》 《그건 어떻게 하는 말씀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요… 이전에 동무가 제기한 그 문제는 사실과 맞지 않더군. 그런 문제에서는 심중해야 되오. 똑똑히 확인도 해보고 …》 《무슨 문제말입니까?》 《최승진동무가 버렸다던 녀성문제말이요.》 《그 문제요? 여론을 듣고 수위로 있던 그 로인을 찾아가봤습니다. 찾아가서 확인했습니다. 56년도에 먼 지방에서 한 처녀애가 찾아와 승진연출가 딸이라고 한건 사실인데요… 로영무연출가가 그 애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고 했는데요…》 《그건 다 사실이요…》 주영도는 로영무에 의하여 해명된 문제들을 대충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로영무동무한테는 알아보지 않았지?》 《예…》 《왜 그랬소?》 한기석은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졌다. 《아니 그럼 제가 나쁜 심보로 그런것 같습니까?》 《동문 도대체 무슨 소릴 하오?》 한기석은 억이 막혀 목까지 메여버린듯 주영도의 얼굴만 똑바로 지켜보았는데 어느덧 그의 눈에 물기같은것이 맺혔다. 《좋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할 말은 좀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비서동지한테 의견이 있습니다. 왜 박경섭동지한테 그걸… 제가 반영한걸 다 공개했습니까? 그래서 비서동지한테 좋을건 뭡니까. 촬영소에서 생긴 문제야 촬영소안에서 고쳐야지요. 비서동지가 그래 연출가 하나쯤 손아귀에 틀어쥐고 고쳐놓지 못하겠습니까. 최승진연출가가 그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큰 존재입니까. 만약 사실이였다면 연출가동지도 구원하기 어렵고 또… 또… 비서동지도 책임져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수습하자고… 수습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래두 전 비서동지가 리해하는줄로 알았습니다. 좋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습니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어떤 비판을 해도… 받겠습니다!》 주영도는 사고방법은 틀려먹었지만 그한테 속이 깊은데는 있지 않는가싶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으나 자기를 슬그머니 그 어떤 공모자로 만드는것 같아 버럭 소리쳤다. 《그만하오!》 오후 3시가 좀 지나 당중앙위원회에 올라갔던 총장일행이 촬영소에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는 총장, 예술부총장 그리고 최승진이와 로영무를 비롯한 예술인들의 얼굴들은 모두 하나같이 기쁨과 흥분에 불깃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주영도는 뜨락으로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총장은 그의 손을 잡으며 격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김정일동지께서 영화를 잘 고친데 대하여 치하하시였다고 했다. 언제 달려나왔는지 한기석이 기쁨에 겨워 최승진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연출가동지, 축하합니다. 이제는 됐습니다. 정말 만세라도 부르고싶습니다!》 주영도가 한기석의 노죽에 놀라 그를 빤히 여겨보는데 최승진이 흥분에 불깃해진 얼굴을 뒤로 젖힐사하며 크게 웃었다. 《하하…고맙소!》 총장도, 예술부총장도 모두 세상시름을 다 던듯 환희로 설레였다. 주영도도 기쁘기는 하지만 웬일인지 그 환희에 한데 어울릴수 없었으며 저도 모르게 한옆으로 비켜서게 되였다. 그들이 어딘지 모르게 경박한 사람들인것 같고 환희에 들뜬 그 기분들이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졌다. 이제 또다시 오작을 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그는 성급하게 담배를 꺼내 입귀에 물고 침울한 얼굴로 성냥불을 켰다. 되돌이 목록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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