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2 장

 

8

 

 최승진은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가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얼굴이 파리하게 깎인 윤희는 늙은이들처럼 흰 보자기로 머리를 건숭 동이고 복도로 나갔다. 집안에는 괴괴한 정적이 흐르고 복도마저 어둑해서 도무지 사람사는 집 같지 않았다. 그는 장난이 세찬 아이가 복도바닥에 널어놓은 잡동사니들을 소랭이에 주어모으고 며칠 걸레질도 안해 먼지가 뽀얗게 오른 바닥에 물걸레를 놓기 시작하였다. 좀전에 그는 집안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세찬 장난질로 말썽만 부리는 아이가 괘씸하여 엉치를 모질게 때려주었다. 아이는 바스라지는 소리로 울어대다가 아버지곁으로 기여가 엎어져 잠이 들고말았다. 

윤희는 지난밤에 무서운 꿈을 꾸었다. 건설로동자들이라고 하는 체격이 우람한 사람들이 방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와 집을 내라고 소리치며 화분이며 경대 등 가장집물들을 밖으로 내동이쳤다. …꿈이였으나 이때까지 이 집을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고 또 알뜰히 거두지도 못한것 같으면서 서늘한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속죄하는 심정으로 물걸레질을 두번세번 극성스럽게 해나갔다.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윤희는 그 꿈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못하였다. 환자를 더 자극할가봐서였다. 

남편은 지하철도건설장에 갔다온 다음부터 밤잠을 전혀 자지 못하였다. 피진 눈으로 천정을 멍하니 쳐다보며 무슨 생각에 골똘하기도 하고 자정이 지난 깊은 밤중 몽유병환자처럼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무엇인가 찾느라고 바스락거리였으며 그러다가는 옛날에 받은 편지묶음같은것을 터쳐놓고 년하장이며 친지들의 편지같은것을 골라내여 읽어달라고 하였다. 어떤 때에는 낡은 사진첩을 펼쳐놓고 외국에 려행가서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는 쓸쓸한 얼굴로 끝없는 생각에 잠기는것이였다.

어느날 남편은 촬영소가 영화제작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을 보상하기 위해 작품을 개작하려고 할수 있는데 그러는 경우에도 그 일을 자기가 아니라 로영무나 한기석에게 맡길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해동안 자기한테는 작품을 맡기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무엇인가… 윤희는 자기를 불행에 빠뜨린 영화에 대한 그 검질긴 미련에 화가 동하기도 하고 그의 신세가 측은하게도 여겨졌다. 어제아침 그는 쓰레기를 버리려 밖에 나갔다가 리명선을 만났다. 그 녀자는 수수한 나들이옷에 부인용가방을 들고 현관에서 나오다가 윤희를 띄여보고 반겨 인사하며 남편의 병문안을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공로보장자들의 경로동직장에 들어갔는데 가벼운 로동을 하니 밥맛이 나고 신경을 쓰는 일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여 좋다고 하였다. 

윤희는 남편이 리명선이처럼 되여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공훈예술가의 명예같은것은 필요도 없었다. 마음고생만 안하면 되였다. 설사 남편이 아주 사회보장에 넘어 저렇게 방에 내내 누워있어도 섭섭하게 하거나 노엽히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직장에 나가 꽝꽝 벌어서 세상 누구 부럽지 않게 보살피리라 마음먹었다. 

옆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에 손님이 찾아온듯 하였다. 

윤희는 그 소리가 여간 부럽지 않았다. 요새는 누구도 그의 집으로 저렇게 찾아와서 다정하게 문을 두드려주는이가 없었다. 인민반장이 두세번 와서 문만 열고 용건을 말하고는 돌아섰으며 성녀아주머니가 한번 문병왔다갔을뿐이다. 

늘 제집처럼 드나들던 한기석부연출도 발길을 끊었다.… 사람들은 촬영소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남편을 원망하여 그한테서 멀어진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출입문에는 늘 정적이 서려있었다. 그 정적의 의미를 생각하면 구슬퍼지고 가슴이 얼어드는듯하였다.

옆집에서 응대를 안하는지 또다시 문두드리는 소리… 《계십니까-》 하는 구성진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가 자기 집문앞에서 울리는것 같아 윤희는 손등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출입문쪽을 내다보았다. 

또다시 문두드리는 소리… 분명히 자기 집문이 울리는듯하였다. 윤희는 반신반의하며 맥없이 걸어나가 문을 열어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확 불어들어왔다. 

문밖에 박경섭이 서있고 그 뒤에 눈에 영채가 돌고 범상치 않은 기품의 젊은분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서계시였다. 

윤희는 너무 놀라 주춤 물러서며 머리의 보자기를 벗어쥐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아주머니.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문병오셨습니다!》 

윤희는 너무 놀랍고 당황하여 그이께 어떻게 인사를 드렸는지도 몰랐다. 

그는 복도로 달려들어가 소랭이며 비자루를 치우고 도로 나왔다. 

《아이, 집이 루추해서…》 

복도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부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려는듯 웃음어린 안색으로 우리는 위생검열온것이 아니라고 롱말을 하시였다. 

《연출가동무는 어떻습니까?》 

윤희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이 모든것이 꿈만 같고 가슴이 뛰고 목이 메여올라서였다. 

남편은 부엌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온돌방아래목에 누워있었다. 그는 두툼한 명주이불을 가슴아래까지 덮고 벽쪽으로 돌아누워있었는데 뒤더수기의 더부룩한 머리카락이 땀에 축축히 젖어있었다. 그곁에는 네활개를 벌리고 쌔근쌔근 자고있는 아이…  

윤희가 먼저 방으로 뛰여들어가 남편을 깨우려는데 뒤따라 들어오신 김정일동지께서 말리시였다.

《둬두십시오. 깊은 잠에 든것 같은데… 깨우지 마십시오.》 

《밤잠을 전혀 자지 못해서 새벽에 수면제를 좀 썼더니…》 하고 윤희는 얼굴이 빨개져 그이를 쳐다보며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얼른 이불장안에서 방석 두장을 꺼내 방바닥에 펴놓고는 그이께와 박경섭에게 자리를 권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주인이 옹색해하지 않도록 사양함이 없이 방석우에 앉으시였다. 윤희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안절부절못하다가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와 웃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덞어진 앞치마를 벗어 의롱속에 던져넣는다, 깨끗한 자케트를 우에 걸친다, 머리를 바로 다듬는다 황황히 돌아치다가 화끈거리는 볼을 쓸어만지며 얼굴을 거울에 언뜻 비쳐보고는 아래방으로 내려왔다. 

어느새 깨여났는지 아이가 그이의 품에 안겨 태평스럽게 하품을 하고있었다. 

윤희는 너무 놀라 그이앞으로 다가가서 아이를 안아오려고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말리시며 여전히 웃음어린 얼굴로 말씀하시였다. 

《둬두십시오. 세대주가 자는데 아이라도 안아보고 가야지요. 좀 편안히 앉으십시오.》 

녀인은 구석쪽에 앉았으나 아이가 그이의 옷을 더럽히면 어쩔가싶어 조마조마한 얼굴로 어린애만 지켜보았다. 

《아주머니. 세대주 눈이 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더운물찜질이랑 하니 인차 좋아졌습니다.》 

《예… 촬영소에선 누가 찾아왔더랬습니까?》 

윤희는 갑자기 가슴에 쌓였던 설음이 터져올랐으나 입술을 꼭 다물고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예…》 

《입맛은 있어합니까?》

《예,… 무얼 해놓아도 들지 않습니다.》 

윤희는 쟈케트단추를 공연히 비틀며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이전에도 눈이 이렇게 된적이 있었습니까?》 

《피곤하면…》 

그이께서는 근심스러운 안색으로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약은 어떤걸 썼습니까?》 

《병원에서 준 약을… 비타민제라고 했습니다, 진정제, 수면제도…》 

《전문병원에 안가도 일없겠습니까?》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눈길을 돌려 이즈음 소박한 사람들이 생활향상의 징표로 여기는 이불장과 재봉침, 경대, 라지오 등을 둘러보시다가 창문의 밑부분에 가리운 옥양목창가림에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실로 수놓은 나비며 들꽃이며 토끼들을 유심히 여겨보시였다. 

들꽃과 토끼 둘레에는 도안을 그렸던 흔적인 연필자리가 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는데 그 창가림의 자수들은 주부가 보금자리를 아늑하게 틀고 재미나게 살아보자고 정성을 기울인것임에 틀림없었다. 재봉침과 경대, 이불장안에도 갖가지 꽃들을 수놓은 장식보가 덮여있었다. 그 어느것에서나 행복한 부부생활을 열망하여 집안을 알뜰히 꾸리려고 애써온 주부의 지성과 손재간이 엿보였다. 

그것들을 묵묵히 여겨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남편이 엄중한 과오를 범하고 쓰러진 지금 이 젊은 녀인은 얼마나 크나큰 불행감을 느끼랴싶으면서 가슴이 못내 쓰려나시였다.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녀인에게 동정이 갔다. 

그이의 눈길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녀인은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손으로 입을 싸쥐였다. 녀인의 어깨가 조용히 물결쳤다. 

《아주머니…》 하고 그이께서 부드럽게 부르시였다.

윤희는 대답을 못하였다. 

최승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누워 이마살을 괴롭게 찌프렸다. 

박경섭이 그의 팔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승진동무… 승진이…》 

최승진은 눈을 떴다. 그는 벌겋게 충혈된 멍한 눈으로 김정일동지며 박경섭이며 안해를 둘러보다가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자기눈에 비친 현실을 꿈속의 허상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승진이!》 하고 박경섭이 소리쳤다. 그는 비로소 무엇이 느껴지는지 화닥 놀라 일어나앉았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눈을 성급히 비비고나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듯 다시 그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승진동무, 우리가 보입니까?》 하고 그이께서 조심스러운 얼굴로 그를 지켜보시였다. 

《예…》 

그는 이게 꿈이 아니냐는듯 박경섭을 돌아보았다. 박경섭은 의미있게 웃어보였다. 

《예, 좀 낫습니다. 어떻게 저의 집에까지…》 

《문병이나 하자고 왔습니다. 이번에 마음을 몹시 쓴 모양이구만.》 

《면목이 없습니다…》 

최승진은 고개를 맥없이 떨구었다. 그의 머리칼이며 얼굴이며 목, 어디에서나 생기가 가셔져 온몸이 후줄근하게 처져보였다. 

박경섭이 그 맥빠진 자태에 화가 울컥 치미는지 주먹을 들었다가 제무릎에 소리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안타깝게 일렀다. 

《여보,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한마디라도 씨원한 소리를 하기는 커녕…》 

그의 눈에 물기가 번쩍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좋지 않은 안색으로 박경섭을 돌아보시였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최승진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쥔채 바위돌로 굳어진듯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깊이 숙여진 얼굴밑장판에 비방울같은것이 몇방울 소리없이 떨어져 번들거렸다. 그것은 뼈속에서 슴새여나온 골수의 방울처럼 부옇게 흐려진것이였다. 

《승진동무…》 하고 그이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최승진은 잘 듣지 못한듯 인차 응대하지 못하다가 얼굴을 무겁게 쳐들었다. 

《나도 맥을 놓고있는 동무를 보니 마음이 썩 좋지 못합니다. 과오를 범했다고 맥을 잃고 쓰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잘못된 영화야 어떻게나 고쳐놓고봐야지.》 

《예?》 

그는 놀라움과 의혹에 찬 눈으로, 아니 완전히 얼빠진 사람의 눈으로 자기 무릎이며 가슴노리를 공연히 더듬더듬 더듬었다. 

그이의 양복소매단추를 가지고 놀던 아이가 갑자기 발장난을 하며 캐득캐득 웃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품에 꼭 껴안으시였다. 

《다른 연출가를 붙여 영화를 고칠수도 있겠지만 나는 승진동무가 기운을 내서 일어나 영화를 훌륭하게 고쳐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심정입니다. 나는 사실 오늘 이 한마디 말을 하고싶어 찾아왔습니다.》 

《제가요?… 제가요?》 

《동무가 고치지 않고 누가 고치겠습니까?》 

《고치면 될가요?》 

《창작에서 범한 과오는 창작을 통해 고쳐야 합니다. 이건 우리 당의 일관한 방침입니다. 승진동무, 작품을 대수 고쳐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세상에 소리칠수 있는 명작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명작으로!…》 

《예? 명작으로요?》 

그것은 환성이 아니였다. 가슴을 아프게 파고드는 신음같은 부르짖음이였다.

《사실은…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삼키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을 뒤로 젖힐사하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 밝은 웃음소리로 방안에 따듯한 화기가 도는듯하였다. 

《죽기는 왜 죽겠습니까. 앞으로 세계적인 명작들을 많이 만들면서 보람있게 살아야지요. 보람있게!… 나는 이번에 그 영화를 세번네번 봤습니다. 영화가 총체적으로 잘못되기는 했지만 …보면 볼수록 연출가의 야심이라고 할가… 세계적인 영화수준보다 높이 치솟아오르려는 기백이 뚜렷이 느껴졌습니다. 그 기백만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승진은 머리를 쳐들고 얼이 빠진듯한 멍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다음순간 그의 눈에 생기가 확 불타오르고 볼편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은 영화가 잘못되자 그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던 자기의 깊은 의도와 진심을 알아주시는데서 오는 격정의 파문이였다. 

그는 갑자기 한손으로 눈을 싸쥐고 코물을 들이켰다. 

박경섭도 눈언저리가 벌개졌다. 

《뜻은 컸지만 실패했단말이요. 그게 분합니다!》 

그이의 음성에서는 열기가 확확 풍기였다. 

《왜 실패했는가? 영화문학의 결함이 근본원인이지만 연출은 어떻게 했습니까. 프랑스식연기형상을 해야 프랑스영화와 견줄수 있는가. 이딸리아식정서를 폭발시켜야 이딸리아영화를 누룰수 있는가, 아니요 아니…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식으로 해야 합니다! 조선사람의 고유한 정신미를 조선사람의 정서와 구미에 맞게 독창적으로 형상해야… 그래야 영화는 물론 모든 예술이 크나큰 감화력을 가지고 우리 인민의 사상정서교양에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 어느 나라 예술도 우리의 예술을 모방하거나 따라잡을수 없는 높은 경지에 뛰여오를수 있습니다!》

《전 그걸 망각했습니다.!》 

최승진은 소년처럼 눈물을 빗씻었다. 

《그렇습니다. 사상성과 민족성이 모호한 예술은 얼이 빠진 예술입니다.》 

최승진은 회오의 한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싫은 소리를 한가지 더 하겠습니다. 요즘 로영무동무한테 말도 안한다는 반영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 

최승진의 이마에 식은 땀이 내배였다. 

《어째 심장들이 그렇습니까. 한평생 같이 일해오면서… 옹졸하다고 할지, 랭담하다고 할지…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연출가들이라는 동무들사이가 그래가지고야 영화예술인대오가 어떻게 단합되겠습니까. 좀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로영무연출가를 만났는데 그는 몹시 뉘우치고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흉금을 터놓는 뜨거운 말들이 계속 오고갔다. 

윤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와 눈물에 젖은 얼굴을 황황히 씻었다. 

이윽고 방쪽에서 그이의 대범하신 웃음소리와 박경섭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 집안에 소생의 선풍이 휘몰아치는듯했다. 

윤희는 문득 이런 경사의 날에 철없이 울고만있는 자기를 발견했고 주부가 할일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펄쩍 놀라 눈물을 닦고는 찬장문을 열어보았다. 소주 한병과 닭알 두알이 있을뿐 아무것도 없었다. 어쩐담…식료상점에 뛰여갔다올가, 성녀형님한테 달려갈가… 가슴을 바글바글 끓이며 맴돌이치는데 방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복도로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희는 너무 섭섭하고 아연하여 정신없이 복도로 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들을 좀 구경하자고 하시며 웃방을 걸쳐 서재를 돌아보시고는 다시 복도로 나와 박경섭의 곁에 엉거주춤 서있는 최승진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영화를 빨리 수정합시다. 우리도 힘껏 도와주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손잡고 영화예술을 추켜세워봅시다.》 

최승진은 두손으로 그이의 손을 싸쥐고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였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윤희는 박경섭이 밖에 나오지 말라고 떠밀었으나 현관앞에까지 따라나가 승용차에 오르시는 그이께 고개를 깊이 숙여 절을 하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니 아래방에서 아이만 기여다니며 놀고있었다. 남편은 웃방에도 서재에도 없었다. 

세면장에서 수도물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물을 푸-푸- 뿜으며 세수하는 소리가 났다. 

윤희는 세면장문을 열어봤다. 최승진은 물이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기운차게 머리를 문질러대고 있었다. 물살에 머리칼이 흩날리고 휘뿌려지는 물보라가 벽을 적시였다. 

《여보, 여보!》 

《…》 

남편은 대답없이 물을 푸-푸- 기운차게 내뿜으며 왁살스럽게 세수를 하였다. 

《여보, 정신있어요? 감기 들겠어요!》 

《감기라구? 나한테 감기가 접어들것 같소?…》 

그리고는 물에 젖은 얼굴로 안해를 돌아보며 격정을 터뜨렸다. 

《여보, 봤지, 다 들었지? 아하, 어떤분이요!》  

그는 주먹을 쳐들어 흔들었다. 

《저런분이 가까이 있는데 맥을 놓고 쓰러지다니. 나는 정말 바보요. 천치요. 여보, 저런 스승의 슬하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소! 면도칼을 갖다주오. 촬영소에 나가봐야겠소.》 

윤희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아래입술을 꼭 깨물었다.

밖에서 아낙네들이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나고 출입문이 열리는것 같더니 성녀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니, 이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하나?》 

 

x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몇몇 예술인들의 집을 더 찾으시였으며 촬영소의 책임일군들과 예술영화 《광풍》을 빨리 고치고 영화예술전반을 추켜세울데 대하여 밤깊도록 의논하시였다. 

그이께서 당중앙위원회로 돌아올 때 시내의 주택지구들은 모두 어둠속에 잠들고있었으나 영화예술인아빠트의 창문들마다에서는 불빛이 환히 쏟아져나오고있었다. 

불이 꺼진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그쪽을 바라보던 박경섭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저걸 보십시오. 모두 잠들지 못하고있습니다. 충격이 큰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차를 세우고 길가로 나가 더 생동하게 빛나는듯한 그 불빛들을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박경섭이 곁으로 다가왔다. 

《모두 흥분해서 잠들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다감한 동무들이니까… 이제는 일이 잘 펴일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허리에 올리며 미소를 지으시였으나 아무런 응대도 안하시였다.

잠들줄 모르는 창문들의 불빛 하나하나가 안아주고싶도록 반가우면서도 영화예술의 병집이 한두번의 충격이나 일시적흥분으로 가셔질수 없는 심각한것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어서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시였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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