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2 장

 

6

  

각본이 고쳐지자 민심의 외면을 당해 관객이 없어지고 극단은 밥벌이도 못하게 되였다. 

류랑민의 떼처럼 행색이 후줄근해진 예술의 벗들은 락동강가의 어느 읍거리에 이르러 숙소를 정하려고 려관과 려인숙들을 찾아다니였으나 어디에서도 자리가 없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 

예우가 궁리끝에 정은주를 데리고 교섭에 나섰다. 그는 읍거리에서 1류급이라는 2층집려관으로 찾아갔다. 

그 려관주인은 키가 훤칠하고 강마른 얼굴에 은테안경을 낀 작자였는데 예우의 사정말을 들으며 은주에게 몇번인가 눈길을 돌리더니 극단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단장은 그날밤 울화병때문인지 덜컹 앓아눕게 되였다. 극단은 려관에서 묵으면서 그의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어느놈이 그의 트렁크를 마스고 얼마안되는 극단의 자금 전액을 털어갔다. 예우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어느놈 작간이냐고 절망적으로 부르짖었고 단원들의 얼굴에는 순간에 암담한 그늘이 비꼈다. 그들은 신경이 날카로와져 서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결백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두셋씩 짝을 무어 서로 호주머니들을 뒤지고 짐들을 털어보는 구차스러운 놀음을 벌렸다. 로영무와 최승진, 정은주도 한짝이 되여 같은 놀음을 했다. 자신의 결백성이 증명되자 최승진은 로영무를 조용한데로 끌어내여 단장이 의심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로영무는 얼굴이 컴컴해져 대답을 못하였다. 

당장 려관비를 낼 돈이 없었다. 그래서 눅거리 려인숙으로 옮겨가려는데 려관주인이 나타났다. 

그는 예우에게 자기 려관에서 이런 수치스러운 사건이 생긴것만큼 자기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하며 려인숙으로 옮겨갈것 없이 숙식비는 후에 물기로 하고 그냥 있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기도 소시적에 연예에 바람이 나 소인연극에도 관여해본적이 있어 전혀 문외한이 아니고 예술가의 생활고가 어떤것이라는것쯤은 다소 리해하고있다고 했다. 그 호의를 받아들여 려관에 그냥 눌러앉아 어물어물 뭉개는 사이에 열흘이 지나갔다. 려관비만 해도 엄청난 량으로 루적되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누워 끙끙 앓음소리만 내던 단장은 벌떡 일어나 외상밥을 더는 먹을수 없다고 하며 어서 떠나 공연을 시작하자고 했다. 극단이 떠나려고 행장을 꾸릴 때 단장은 려관주인을 만나 보름안으로 빚진 돈을 송금해주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려관주인은 안경알을 번뜩이며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기왕 서로 안면을 익힌 사이인데 이번에는 자기가 신세를 좀 질수 없겠느냐고 하였다. 그는 자기 려관에 일손이 딸려 그러는데 두사람이면 더욱 좋고 안되면 한사람이라도 남겨두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며 너무 궂은일은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인질을 남겨두고 가라는 소리라는것을 인차 알아차린 예우는 기막혀서 입만 쩝쩝 다시였다. 

려관주인은 단장의 침묵을 동의로 여긴다는듯 한걸음 더 내짚으며 남자보다도 부엌일도 할수 있고 장부정리도 할수 있는 녀자를 남겨두었으면 더욱 감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적임자는 정은주밖에 없었다. 다른 녀자들은 모두 역을 맡고있어 떨궈두면 공연을 할수 없었다.

단장은 최승진의 량해부터 구하고싶었는지 제일먼저 그에게 려관측의 요구를 이야기하고는 에둘러서 역이 없는 녀자를 떨궈둘수밖에 없게 되였다고 하였다. 최승진은 대뜸 얼굴빛이 해쓱해지며 구원이라도 청하는듯 로영무를 돌아보았다. 로영무는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단장의 설명을 듣자 당자인 정은주는 자기밖에 남을 사람이 없다는것을 인차 깨닫고 제 입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홀몸으로 려관에 남는것을 께름하게 생각하는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의 작품을 공연해주었고 자기를 받아들여 보살펴준 극단을 위해 비로소 한몫 맡아하게 되였다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는것 같았다. 

극단은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가며 공연하였으나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으며 관객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예우는 말이 적어졌으며 내내 무슨 궁리엔가 골똘하다가 하루는 로영무한테 아무리 생각해봐야 려관주인이 의심스럽다, 그놈이 돈을 훔친것 같은데 단서를 잡을수 없다면서 단숨을 거칠게 몰아쉬였다. 그러다가 울화병으로 또다시 앓아눕게 되였다. 

최승진은 려관에 두고온 정은주때문에 몹시 불안해하였으며 날이 갈수록 초조해져 어서 돈을 벌자면 모험이기는 하지만 원각본대로 공연을 하는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예우를 길가의 초라한 려인숙에 남겨두고 극단을 이끌고 경찰의 눈이 덜 미치는 먼 산간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공연하였다. 

어느날 밤 그들은 농민들이 꾸려놓은 야외가설무대에서 공연하였다. 무대좌우앞과 량옆에 광솔불을 황황 피워 조명으로 삼고 객석 여기저기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하는 공연이였지만 무대앞에 빼곡이 모여앉은 백여명 관중들과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 배우들은 동해기슭포구에서의 첫 공연때와 같은 생신한 열정과 흥분으로 연기를 하였다. 

어느놈이 밀고한것인지 바스라지는 말울음소리와 함께 4명의 기마경찰이 어둠속에서 날아나와 관중석으로 뛰여들었다. 놈들은 군도를 뽑아 위혁적으로 휘두르며 사람들을 짓밟아버릴 기세로 돌아쳤다. 서슬푸른 군도날이 번개불처럼 번뜩이였다. 사람들은 날뛰는 군마들의 발통에 짓밟히고 칼에 찔리울가봐 질겁하여 아우성치며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경찰들은 말에서 내려 무대로 뛰여오르더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거나 얼이 나가 엉거주춤 얼어붙어 서있는 배우들을 칼등으로 후려치고 발길로 걷어차서 꼬꾸라뜨리였다. 그리고는 무대에 불을 질렀다. 수천리 이동공연의 길에서 마를대로 마른 장치물들은 화약처럼 불길을 끌어당겼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무대가 하나의 커다란 우등불처럼 활활 불타오르고있을 때 상관인듯한 경찰놈이 한켠에 몰켜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배우들쪽을 향해 조감독과 무대감독이 어느놈이냐고 소리쳤다. 로영무와 최승진이 나서자 놈은 그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자정이 지나 주재소에까지 끌려간 그들은 짐승우리처럼 짚검불이 푹신하게 깔린 구류장에 떠밀려 들어갔다. 둘은 절망에 빠져 악취풍기는 짚검불속에 구겨박혀 버스럭거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이벽 저쪽에서 웬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귀에 익은 예우의 신음소리였다. 

이튿날아침 경관 두놈이 들어와 그들을 심문하였다. 예우의 경력과 각본의 출처, 공연활동에 대하여 이것저것 따져묻고는 신수가 멀쩡한놈들이 제 죽을줄도 모르고 단장놈이 시킨다고 해서 그따위 불온연극을 공연했다고 주먹으로 따귀를 후려쳤다. 로영무와 최승진은 처음에는 얼떠름해져 얻어맞기만 하다가 놈의 말로 미루어보아 진상이 이렇게 전도된데는 무슨 까닭이 있는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단장은 처음부터 경찰의 요구에 순응하려 했고 그가 앓아누운 기회를 타서 자기들이 원각본대로 공연했다고… 그러자 한놈이 옆방으로 갔다. 사이벽을 통해 예우의 함성이 울려왔다.…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감독이고 그 애들은 내가 시킨대로 했을뿐이다. 죄없는 애들을 때리지 말라! 그가 어찌나 확신적으로 부르짖었는지 옆방에 갔던놈은 돌아와서 악에 받쳐 로영무와 최승진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어대며 다시 살인범을 두둔하겠는가고 소리쳤다.

로영무는 살인범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선뜩 얼어들었다. 예우가 살인을 했다면 죽은자는 누구이며 그가 왜 이런짓을 했을가. 그는 최승진이와 함께 밤새워 의논해봤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저 가슴만 화들화들 떨릴뿐이였다. 

놈들은 심심풀이나 하는듯 이따금 어슬렁어슬렁 걸어들어와 로영무와 최승진에게 뭇매를 안기였으며 사흘후에는 그들을 끌어내여 옆방에 떠밀어넣었다. 

예우는 벽기둥에 비끄러매인채 짚검불우에 두다리를 퍼더버리고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오른데다가 피투성이까지 되였고 옷은 험상궂게 찢어져 벌겋게 피진 살이 드러나보였다. 그는 눈을 지그시 내리뜬채 아무리 불러도 응대를 안했는데 밤이 깊어서야 물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두 젊은이를 돌아보며 왜 내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놀았는가고 나무람하며 한숨을 내쉬였다.… 

《너희들은 인차 놓아줄게다. 너희들은 나를 신파쟁이고 사실주의를 모른다고 비웃었댔지. 망할자식들… 이제 인간세상에 나가면 인차 벌이를 바꾸라구. 예술을 하면 망해. 아직 미련이 있어 흩어지지 않는 애들이 있으면 내 말을 전해 다 흩어져 제 고향으로 가라구… 그리구 어디 가서나 누구 가슴에든 연극바람을 불어넣지 말라구 이르게… 나는 너희들을 얼려 끌고다니면서 숱한 고생을 시켰구 신세를 망쳐놓은데다 살인까지 쳤으니 죽어 마땅하다.》 

《어째 그랬습니까, 누구를 죽였습니까?》 하고 최승진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예우는 고개를 떨구고 대답을 안했다. 아무리 물어도 입을 굳게 닫아매고있었다. 

닷새가 지나 놈들은 그들을 놓아주었다. 

그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문쪽으로 나오다가 다시 돌아서 예우에게로 달려갔다.

예우는 눈을 내리뜨고 비감에 젖은 석쉼한 목소리로 일렀다. 

《그 려관에 들리지 말구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게. 내가 손을 댄건 그 안경쟁이 려관주인놈이야. 승진이는 남아답게 그 계집하구 헤여져. 내 말을 알아듣겠나?》 

로영무는 순간에 어떤 배신이 있었는지 가늠되였다. 가슴이 벌컥 뒤집혀지는듯하였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최승진을 돌아보았다. 

벗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눈물을 뿌리며 부르짖었다. 

《은주… 은주가 어쨌다는겁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예우는 거칠게 소리쳤다. 

《왜 계집처럼 눈물을 보여! 망할자식. 나는 할 소리를 다 했어. 가라! 썩 물러가!》 

제정신이 아닌 최승진은 홱 돌아서 복도로 달려나갔다. 예우는 사실을 까밝혀 말하기 괴로와 그토록 험하게 소리친것 같았다. 

로영무는 머리를 깊이 숙여 그에게 절을 하고 돌아섰다. 그가 복도를 따라 허둥지둥 걸어나오는데 뒤쪽에서 황소울음같은 노래소리가 터져올랐다.  

 

어이차 어이차

그물을 당기세 어이차  

오복이네 새색시 어이차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영별의 통곡소리였다. 

로영무와 최승진은 사흘동안 걸어서 은주가 인질로 잡혀있던 려관으로 찾아갔다. 최승진이 예우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은주를 꼭 만나 진상을 알아봐야 하겠다고 우겼던것이다. 

그들은 울담밖에 숨어서 처녀가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처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려관은 문을 닫아버린것 같았다. 

어슬녘에 부엌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어디 갔다가 들어오다가 그들을 띄여보고 와뜰 놀라며 멎어섰다. 

로파는 종주먹으로 승진의 가슴을 치며 왜 이제야 왔는가고 하면서 눈물부터 앞세웠다. 그리고 기막힌 이야기를 하였다. 계약된 날자가 지나 열흘이 가고 보름이 지나도록 사람도 오지 않고 돈도 부쳐오지 않고 무슨 기별조차 없게 되자 처녀는 몹시 불안해져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때가 많았다. 려관주인은 년장자의 아량과 친절을 보이며 처녀에게 자주 위로의 말을 하였다. 처녀는 마음속으로 고맙게 여기는것 같았고 낯선 고장 낯선 사람들속에 자기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간후 소식조차 감감한 승진이와 극단을 은근히 원망하는것 같았다. 

려관주인은 처녀를 2층 자기 방에 불러올려 장부책을 같이 정리하며 밤늦도록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로파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이따금 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인방문앞에 다가가 안에서 나는 소리를 엿들었다. 

주인은 떠나간후 감감 무소식인 극단에 사기군, 협잡군 놈팽이들이라고 험담을 퍼붓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 돈 몇푼때문에 이러는게 아니요. 그까짓 몇푼 안되는 숙식비를 못받는다고 우리 려관이 망하겠는가. 돈을 물기 싫으면 그만두더라도 사람이야 찾아가야 할게 아닌가. 은주양을 남겨두는것으로 나를 속이고는 아주 가버린게 가증스럽단 말이요. 어디에 수소문해봐도 그자들의 종적을 찾을길 없소. 아마 다른 도로 넘어간것 같소. 악당들, 돈 몇푼과 사람을 바꾸다니… 처녀는 주인의 그런 소리를 듣다가는 참지를 못하고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그렇게 험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제 소식이 있을게라고… 그러면 주인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내가 우리 려관에 무슨 악극단이요 무슨 극단이요 곡마단이요 하는 놈팽이들을 적게 쳐봤다고… 다 같구 같소. 애잡짤한 류행가나 련애극으로 행실이 방정하던 유부녀들 가슴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가정불화나 일으키구 처녀들을 꾀여 신세를 망쳐놓는게 그 패당들이 하는짓이란말이요. 남사당패같은 그것들이 지나간뒤에 추문이 생기지않는 고을이 있는가. 그것들은 하나같이 믿을만한 족속이 못되오. 은주양이 서울서 그것들을 따라떠난건 정말 경솔한 행동이였소. 아마 부모님들이 생존해계셨더라면 한사코 말렸을게요.… 그리고 주인은 지난 때 이렇게 된 경우 인질로 남은 녀자를 음식점이나 술집에 팔아넘기는 일도 있었다고 하면서 그렇게 한 사람들을 비난하였다. 주인은 권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돌려 서울로 올라가든지 여기서 살아갈 마련을 하든지 하오. 내가 주선해드리겠소. 만약 서울로 올라갈 의향이면 로자도 드리겠소… 은주는 대답을 안했다. 

로파는 여기까지 엿듣고 문밖에서 물러났다. 그날밤 은주는 로파곁에 누워 오래도록 몸을 뒤채기며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 밤에도 처녀는 2층으로 불리워올라갔다. 그후부터는 불리워도 올라가고 제발로도 찾아올라갔다. 어느날 밤 로파는 어지러운 꿈에 시달리다가 가슴을 찢어발기는듯한 흐느낌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은주가 곁에 엎드려 흐느낌소리를 삼키고있었다. 무슨 일인가고 아무리 어깨를 흔들며 물어봐도 대답을 안했다. 

이튿날 새벽녘에 로파는 잠결에 가슴이 선뜩하여 눈을 떴다. 바람처럼 문짬으로 새여들어왔는지 웬 사나이의 그림자가 그를 굽어보고있었다. 떠나간후로 소식이 감감하던 극단의 단장이였다. 예우는 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은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곁에 있는 은주의 잠자리가 비여있었다. 로파는 화들화들 떨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예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주인은 방에 있는가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홱 돌아서 복도로 뛰여나갔다. 로파는 심상치 않은 그 기상에 기겁하여 따라나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예우는 로파를 와락 뿌리쳐버렸다. 복도바닥에 나동그라진 로파는 2층쪽으로 사라지는 발자욱소리를 들으며 절망적으로 널마루를 허비면서 덜덜 떨었다. 이윽고 2층에서 미닫이 문이 열렸다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온 려관이 교교한 정적속에 잠겨들었다. 로파는 밤고양이처럼 2층으로 살금살금 기여올라가 불빛이 새여나오는 주인방의 문짬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우가 잠옷바람인 주인의 멱살을 틀어쥐고 벽쪽으로 밀고가며 훔친 돈을 내놓으라고 회파람같은 소리로 을렀다. 주인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여 부들부들 떨며 훔치지 않았노라고 발명질을 하였다. 처녀는 반대쪽 벽에 붙어서서 바들바들 떨고있었는데 예우가 칼쥔 손을 번쩍 쳐들자 몸을 날려 그의 팔에 매달렸다. 그가 분김에 살인죄를 짓지 않도록 말리자고 그랬는지, 주인을 동정해서 그랬는지… 어쨌든 예우는 그바람에 주인의 멱살을 놓았고 험하게 이그러진 얼굴로 처녀를 돌아보았다. 가련한 처녀는 그의 눈총을 이기지 못하여 뒤걸음질쳤고 예우한테서는 화냥년이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순간에 주인이 장우의 꽃병을 들어 예우의 뒤통수를 향해 뿌려던지며 강도야! 하고 소리쳤다. 멱따는듯한 그 소리가 려관을 들었다놓았다. 로파는 층계를 정신없이 뛰여내려오며 사람 살리라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얼마후 방들에서 옷을 대충 주어입고 뛰여나온 손님들이 2층으로 우르르 밀려올라갔을 때 로파도 그들속에 끼여있었다. 미닫이문 한짝이 떨어져 넘어진 방바닥에 주인만 너부려져있었는데 놈의 가슴노리에 칼이 박혀있었다. 로파가 늘 닦아 놓군하던 과일칼이였다. 자개무늬 아롱진 그 칼자루가 보일듯말듯 떠는듯한 느낌을 받은것은 몇순간이 지난 뒤였다.… 놈은 인차 병원에 실려갔고 사처에 수사망이 무시무시하게 펼쳐진 가운데 순사며 형사들이 려관으로 달려들어 조사를 들이댔다. 로파는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흉측한놈을 징벌한 의로운 사람을 돕고싶었고 불쌍한 처녀한테도 죄가 돌아가게 하고싶지 않아서였다. 한데 그날 중낮이 다 되여 읍내에는 새벽녘에 웬 처녀가 락동강 기슭의 매바위에서 강물에 떨어져들어갔다는 소문이 쫙 퍼졌고 사흘뒤에는 예우가 어느 시골길에서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었다. 그래서 험악한 세상은 처녀에게 살인공모혐의까지 뒤집어씌웠고 항간의 입빠른 사람들이 퍼붓는 온갖 험담과 욕설에 그의 순결은 걸레짝처럼 어지러워졌다.

날자를 따져보니 그것은 예우가 병이 도져 길가의 려인숙에 떨어진 며칠후에 일어난 일이였다. 로파는 그 새벽 은주가 어째 락동강으로 곧장 달려나가 강물에 몸을 던졌는가 까밝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약한게 속히웠지 하고 눈물을 쏟으며 주인놈은 빗찔리워 숨이 되붙을것 같은데 그것을 알면 원귀로 된 처녀의 령혼이 언젠가는 려관으로 다시 찾아올것이라고 했다. 

얼이 나가 락동강 기슭으로 달려나간 그들은 아직도 처녀의 마지막 비명이 날아도는듯한 매바위에 올라서서 하염없이 강물만 굽어보았다. 깎아지른듯한 바위벼랑밑에서 검푸른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려가고있었다. 태고연한 적막속에서 물소리만 구슬프게 주절거리는데 허리를 구부정하고 강심을 넋없이 굽어보던 최승진이 갑자기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저게… 아, 저게 뭐요?》 

그 순간 로영무도 물속에서 허연 그림자가 뒤채기는것을 보았다. 

《은주-》 

최승진은 비명비슷한 소리를 터뜨리며 강물속으로 날아들어갔다. 이윽고 사품치는 물속에서 떠오른것은 시신이 아니라 물때오른 누데기였다. 어느 상류의 빨래터에서 떠내려온것인듯 싶었다. 최승진은 한번 물우에 솟구쳐올랐다가 절망으로 심장마비가 온듯 밑으로 맥없이 가라앉으며 물살에 둥둥 떠내려갔다. 

로영무에게 끌려 물가로 나온 그는 자기를 놓아달라고, 락동강 칠백리기슭을 다 뒤져서라도 은주의 시신을 찾아 묻어주고 떠나겠노라고 울부짖었다.… 

56년 8월 어느날 로영무가 점심시간이 되여 집으로 나가는데 촬영소정문 접수실모퉁이에서 가냘프고 가무잡잡한 처녀애가 달려나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로영무선생님이 아닌가고 물었다. 영화에 자주 출연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는데 습관된 그였지만 처녀애의 촌티흐르는 모색이며 그 어떤 애끓는 갈망으로 타는듯한 눈을 보고는 무심히 지나칠수 없었다. 처녀애는 은밀한 사연이라도 안고온듯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깃 돌아보고는 정은주라고 아느냐고, 정은주가 자기 엄마라고 하였다. 

일찌기 락동강에 뛰여들어 세상을 하직한줄로만 알았던 옛 류랑극단의 가인, 정은주의 딸이 이렇게 찾아온것으로 보아 그 엄마도 어디엔가 이 하늘밑에 살아있지 않을가싶은 예감에 로영무는 주춤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처녀애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최승진선생님을 꼭 만나보고싶은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 최승진은 현지촬영에 나가고 없었다. 그러한 사정보다도 다른 위구심이 무섭게 가슴을 틀어잡아 로영무는 처녀애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내내 독신으로 지내다가 갓 결혼한 최승진의 가정에 이 일이 알려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수 없어서였다. 그는 최승진이 어떤 위인이라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최승진은 온 심혼을 바쳐 사랑했고 자기를 헤여날길없는 비탄에 빠뜨렸던 그 존재가 이 하늘밑에 살아 숨쉬고있다는것을 알기만 하면 모든것을 뿌리치고 달려갈것이였다. 그의 가정파탄은 불을 보듯이 명백했다. 

그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옛추억으로 가슴이 못견디게 쓰려나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어보다가 승진이와 은주가 약혼했던 해와 처녀애의 나이를 마음속으로 몰래 맞추어보았다. 처녀애는 그 비참한 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여러해 지난후에 출생한것으로 보아 승진의 딸이 아닌것이 분명하였다. 그 사실이 로영무에게는 웬일인지 섭섭하게도 여겨지고 다행으로도 생각되였으며 락동강에 몸을 던졌던 그 수난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숨이 지지 않은채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가다가 가까운 기슭에 붙어 어떤 귀인의 손에 구원될수도 있고 노를 저어가던 나루배의 사공이 건져올렸을수도 있었으리라고 상상하니 신비적인 기적을 곧잘 창조해내는 생활의 우연에 의하여 살아날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은주에게 이런 딸이 있는것으로 보아 그후 어떤 대상과 혼인이 이루어졌거나 모종의 정사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니 시기심비슷한 이상야릇한 감정에 가슴이 쓰려났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 우연의 도움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싶었다.) 승진의 자리에 들어서서 이애의 아버지로 될수 있었던 사람은 과연 어떤 위인일가… 

정은주의 딸 수옥은 로영무네 집에서 하루 쉬면서 그 집식구들과 가정분위기에 다소 친숙해진 다음에야 좀 기를 펴며 활발해지는것 같았다. 이틀이 지난 다음 로영무는 밤에 조용한 서재에서 나어린 손님과 다시 마주앉아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게 되였다. 처녀애는 이번에는 자기고장에 많이 피는 갖가지 메꽃이며 엄마가 방역준의로 일하는 목장형편 등에 대하여 졸졸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는 작은 가슴에서 명주실처럼 조심조심 풀려나오는듯했고 인생의 로숙한 경험자는 그 실끝을 꼭 잡고 당겼다늦췄다 하면서 이야기의 실꾸리를 살살 풀어내여 모든것을 알아내였다. 

처녀애는 자기 엄마와 이름있는 연출가 최승진과의 사이에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다는것을 일찍부터 알고있었다. 

엄마는 일상생활에서 영화구경을 싫어했는데 한번은 학교마당에서 최승진의 이름이 자막에 나오는 예술영화를 보다가 도중에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딸이 방안을 장식하느라고 찬장유리안이며 사이문에 붙여놓은 영화예술인들의 사진중에서 유독 최승진의 사진만 뜯어서 부엌아궁이에 밀어넣었던것이다. 처녀애가 이런 단서를 쥐고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것을 보면 정은주는 자기 개인생활에 대하여 딸한테 입을 굳게 다물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로영무는 예우극단의 파멸까지만 이야기해주고 그 시절 최승진과 정은주가 남다른 사이였을수 있다고 애매하게 말하면서 이제 다 크면 엄마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 그러니까 저는… 누구 딸인가요? 그것만 솔직히 말씀해줘요.》

자기를 지켜보는 처녀애의 구슬프고 애끊는 눈길에서 로영무는 그가 이름있는 연출가의 딸이 되고싶은 엉뚱한 허영심때문에 찾아온것이 아니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어느모로 보나 수옥은 아버지를 찾자는 자식의 본능뿐아니라 가정환경이 불행할수록 자기 신원을 똑똑히 밝혀놓고싶어하는 시체청년들 공통의 심리와 자각으로 찾아온것이였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더 난처한 질문들이 나올것 같았다. 로영무는 담배연기로 앞에 연막을 치고 무엇이라고 대답할것인가 궁리하다가 말머리를 돌려 엄마의 생활에 대하여 두루 물어보았다. 

이튿날 로영무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수옥이가 없었다. 

안해는 낮에 저자보러 간사이 문짬에 쪽지편지를 끼워놓고 없어졌다고 했다. 도망치듯이 가버린것이였다. 단정하면서도 각이 진 글씨로 또박또박 쓴 그 쪽지에는 인사도 없이 떠나는것을 용서하라는 말이 적히고 놀라운 구절이 있었다. 《선생님은 까놓고 말씀하지 않았지만 저는 다 알게 되였어요. 제가 그 선생딸이 아니라는것도 엄마 잘못으로 그 선생과 헤여지게 되였다는것도 그리고 또 엄마의 잘못으로 제가 이 세상에 태여났다는것도…》 

그날 로영무는 저도 모르게 최승진의 집으로 정신없이 달려가게 되였다. 

화창한 날이였다. 

최승진은 안해와 어깨를 붙이다싶이 가지런히 서서 자기네 보금자리인 집앞의 꽃밭에 물을 주고있었다. 

둘은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는것인지 물을 주다가는 서로 돌아보며 밝게 웃었고 그러다가는 꿀벌이 날아든것인지 허리를 구부정하고 꽃밭속을 들여다보느라고 먼발치에 벗이 와 서있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로영무는 단층집의 열려진 뙤창안에서 흐느적이는 연분홍색 휘장쪽에 시선을 돌려 생각깊은 눈으로 그것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남편이 어느 녀배우를 편애하여 각별한 관심을 돌려준다는 따위의 소리만 들어도 얼굴색이 달라지는 그의 안해의 발작도 두려웠고 옛 약혼녀가 살아있다는것만 알면 어떤 가정불화도 마다하지 않고 당장 달려갈수 있는 승진의 불같은 심장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이 남의 집 부부싸움의 말밥에 오르는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기가 경솔하게 처신하여 벗의 가정에 불화라도 생겨 여론화되면 지체있는 사람이 그따위 중재자노릇을 했다고 사회적인 비난을 받을것 같았다. 

로영무는 집에 돌아와 안해와 장시간 의논하였다. 안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펄쩍 놀라며 가까운 사이에 어찌 그런 일을 알려주지 않을수 있는가고 하였다. 로영무는 그가 이 일을 알면 지금 촬영중인 영화창작에 엄중한 손실을 줄수 있다는 말로 안해를 우선 눅잦혀놓고 앞으로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알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둘만 아는 비밀로 묻어주자고 설복하였다.  

7년이 지나서 수옥이한테서 긴 편지가 왔다. 그는 지난날의 철없는 소행에 대하여 사과하고는 자기가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인민학교 교원이 되였으며 얼마전에 결혼까지 하였다고 알렸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밤에 어머니가 한평생 숨겨온 자신의 수난에 대하여 죄다 털어놓고 이야기해주었다고 썼다. 

《저는 어머니를 붙안고 거듭거듭 용서를 빌며 울었어요. 어머니도 울었어요. 선생님, 저의 아버지로 되신분은 어머니를 구원해준 사공의 아들이였어요. 아버지는 왜놈들한테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객사했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요새 시름시름 앓고있는데 자기들의 생활에서 걱정이 있다면 그뿐이라고 하소연비슷하게 썼다. 

수옥은 셈이 들어 자신의 인격과 리성에 제약되였는지 그때 예우극단이 약속된 기간에 돌다왔다면 어머니가 그런 불행에 빠지지 않았을것이며 일생의 운명도 달라졌을것이라는 말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후에는 소식이 없었다. 

… 

박경섭과 주영도가 최승진이 버린 녀성에 대하여 갑자기 물었을 때 로영무는 놀라움과 울분과 한꺼번에 소용돌이쳐오르는 추억때문에 비명이라도 터치고싶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심장이 비틀려지는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