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제 2 장

  

5

 

 

그날 로영무는 심장발작이 가라앉자 인차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이따금 거리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에 창문살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며 천정으로 서서히 기여가군하였다.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로영무는 멍한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제는 다 드러나겠구나… 이 일을 어찌는가… 저 젊은 색시는 어떻게 나올것인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도록 한번도 배신을 몰랐던 그들의 우정은 아득한 옛시절, 류랑극단의 처량한 사연속에서 움튼것이였다. 

30년대말의 황혼속에 세상이 더욱 어두워져갈 때 동해바다가 어느 소란한 포구에 《예우극단》(예우-예술의 벗 )이라고 자칭하는 한 류랑극단이 초라한 행장을 풀고 한달째 묵고있었다.

애국문화운동의 여파인지, 미지의 다른 원인때문인지 한때 세상에 갑자기 회오리친 연극바람은 도처에서 크고작은 소인극단들을 수많이 발족시켰다. 그것들은 처음에는 자기고장에서 공연하다가 담도 커지고 돈도 생겨 군계와 도계를 넘어, 지어는 국경을 넘어 멀리 만주광야에까지 나가 돌아쳤는데 먼 려로의 갖가지 수난속에 인차 망해버려 고향으로 고스란히 돌아갔거나 산지사방으로 흩어져버리기도 하고 쇠진해진 패끼리 하나로 합쳐 다시 징소리를 울리며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당시에 와서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과 자금난, 궁핍, 막연한 지향으로 하여 거의 모두 자취를 감추었으며 남아있는것들이란 류랑걸식의 무리나 다름없었는데 《예우극단》도 그런 무리중의 하나였다. 

예우란 극단 단장 강성우의 예명이였다. 

극단성원은 15명밖에 안되였는데 다시 재기하여 세상을 들썩하게 한다는 예우의 호기에 찬 소리에 속아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였다. 개중에는 류랑의 길에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의 랑만과 방랑인의 야릇한 애수에 인이 배겨 떠나지 못하는 축들도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류랑의 길에서 서로 만나 사귀고 형제처럼 가까와진 까닭에 그 의리를 저버릴수 없어 시작도 끝도 모르는 길을 따라다니는것이였다. 왜 연극에 뛰여들었는가, 왜 그토록 신명이 나서 연기를 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을 표현의 본능과 결부시켜 의사표시, 감정토로의 열망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가슴에 쌓인 울분을 터뜨려 울고 소리치면 구경군들도 같이 눈물을 쏟는데 그러고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또 가는곳마다에서 만사람의 환대를 받게 되기때문에 그 재미에 연극을 한다는것이였다. 

예우는 조선팔도를 돌아다닌 광대의 후예였는데 한때 곡마단을 따라다니며 기합술도 놀았다는 사람이였다. 그는 무식하여 우륵이나 김삿갓, 쉑스피어가 누구인지는 잘 몰랐지만 무서운 연극애호가였다. 화술이 좋고 흉내내는 재간이 비상하여 그것을 밑천으로 감독을 겸하고 경리까지 맡아보았으며 이따금 효과사노릇도 하였다. 그는 체구가 우람하고 주먹이 드세였는데 완력이 정의보다 더 은을 내는 세월이여서 그 덕에 극단을 손아귀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는 한 패당의 우두머리격으로 놀았다. 밥값이 떨어져 단원들이 모두 의기소침해지면 《떡메로 내 배를 두드리면 될거 아니야!》 하고 소리치며 벌겋게 피진 눈을 부라리였다. 그것은 빈소리가 아니였다. 사실 참기 어렵게 궁색해지면 장마당같은데서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유리병을 깨뜨려 땅바닥에 깐 다음 예우가 웃도리를 훌렁 벗고 그 우에 누웠으며 단원들이 떡메로 그의 배에 올려놓은 석판을 내리쳤다. 얼마후 그가 껄껄 웃으며 털고일어나면 사람들은 유리쪼각들이 배긴 시뻘건 잔등을 보며 혀를 차다가 한 단원이 내민 밑짚모자에 호주머니의 푼전을 털어넣어주었던것이다. 그런 일은 이따금 있었다. 

로영무는 조감독이고 배우에 조명사를 겸하고있었는데 연극창조와 공연뿐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에서 예우를 떠받들어나갔으며 그의 비위에 맞추려고 하였다. 그가 예술에 조예가 깊거나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였다. 그의 호기와 배심과 완력이 아니고는 극단을 단합시켜 이끌어나갈수 없었기때문이다. 로영무는 극단에서 그의 오른팔이였으며 그림자처럼 되여있었다. 

예우극단은 포구의 루추한 려인숙에 거처를 정하고 한달째 재기할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예우와 로영무를 비롯한 몇사람은 려인숙의 어둑한 뒤골방에서 각본을 꾸미느라고 머리를 짜냈으며 나머지 예술의 벗들은 나루에 나가 정어리를 배에서 염장터까지 날라들이는 일을 하며 밥값을 벌기에 바빴다. 각본은 좀처럼 잘 꾸며지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낮을 이어 열을 올려 토론도 하고 언쟁도 하였다. 예우는 속이 상하여 줄담배를 피우다가는 이따금 방구석에 세워둔채로 있는 단기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였다. 한때 도소재지의 하늘에도 펄럭인적있는 단기의 푸른 삼각기폭은 담배연기속에 후줄근하게 드리워있었는데 어느 명필이 거기에 일필휘지로 휘갈겨 써준 《예우》라는 두 글자도 그들을 지켜보며 한숨을 짓는듯했다. 그런데 어느날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금강산의 어느 암자에 와서 은둔생활을 하며 병치료를 받던 한 극작가가 얼마전에 별세하였는데 그 미망인이 남편의 유고를 팔 의향을 표시했다는것이였다. 

단장은 너무 기뻐 무릎을 철썩 내리치고는 로영무더러 당장 찾아가서 흥정해보라고 했다. 그는 각본이 괜찮으면 값을 후하게 치르더라도 사오라고 하며 자기 회중시계를 떼주었다. 그리고 극단이 초라하게 보이면 저쪽에서 얕보고 터무니없이 값을 높이 부를수 있다고 하며 그닥 낡지 않은 자기 파나마모까지 꺼내주었다. 150리 길을 단숨에 걸어 금강산암자에 이른 로영무를 맞이한것은 슬픔에 젖은 아름다운 미망인이 아니라 헐어빠진 학생복에 베감투를 쓴 끌끌한 청년이였다. 암자의 아담한 방에 안내된 로영무는 의젓하게 앉아 파나마모자로 부채질을 하며 찾아온 사유를 말하였다. 청년은 작고한 극작가의 제자노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는 최승진이라 불러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스승의 미망인은 외동딸과 함께 며칠전 서울 친정으로 떠나가고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하여 자기만 여기에 홀로 남았노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고인이 병치료를 받으며 여러군데서 돈을 많이 빌려쓴데다가 또 장례비도 꾸어썼기때문에 미망인이 그 채무를 벗자고 빈한한 가산을 다 팔았고 나중에는 유고까지 팔 생각을 했다는것이였다. 최승진은 스승의 유고를 내놓으며 재능을 알아못보는 세상이라고 탄식하였는데 그의 눈에 핑 어리는 물기가 로영무의 가슴을 찔렀다. 로영무는 유고를 주의깊이 두번이나 읽었다. 한 어부의 딸이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죽은 다음 선주놈의 작간으로 빚값에 몸이 팔려 일본으로 끌려가다가 도망쳐 선주놈을 복수하고 바다물에 뛰여들어 투신자살했다는 이야기를 2막 4장으로 엮은 중막물이였다. 세상에 흔히 있는 이야기를 담은것인데 작가의 재능으로 하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뚜렷하게 두드러지고 갈등이 첨예하며 어촌의 생활세태가 순수한 향토적인 정서로 생동하게 그려져있었다.

흥정은 로영무가 말없이 회중시계를 상대편의 손에 쥐여주고 최승진이 얼굴이 벌개지며 그것을 호주머니에 밀어넣는것으로써 끝났다. 밤이 깊어 혼자 떠나기 싫은데다가 최승진이 자꾸 자고가라고 해서 로영무는 암자에서 하루밤 묵기로 마음먹고 그와 나란히 누웠다. 심산의 괴괴한 정적을 흔드는 산골 물소리에 잠들지 못한 두 청년은 서로 자신을 소개하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최승진이 영무라는 그 이름에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것 같다고 하며 그것이 본명인가 아니면 예명인가고 묻자 손님은 솔직히 말해주었다. 세상의 비운속에 자기 가슴에도 영원히 가실줄 모르는 안개가 끼였는데 그래서 예명을 영원한 안개, 영무라고 지었노라고… 그러자 그도 세상에 살판치는 악에 지지 말고 계속 이기며 나가라고 작고한 스승이 자기를 승진이라고 불러주었노라 말하였다. 

이야기가 오고가는 과정에 두 청년사이에는 애틋한 정이 통하였고 로영무는 이 청년이 연극에 아주 조예가 깊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알아보니 일본에 건너가 고학으로 영화를 공부하다가 학비벌이가 너무 고달파 단념하고 돌아온 청년이였다. 뜻이 꺾이운 최승진은 원산에서 일정한 일자리도 없이 전전하면서 부두에서 품팔이로동도 하고 가정교사노릇도 하면서 입에 풀칠이나 하고있는 가긍한 처지였다. 그는 예우극단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새벽녘에는 자기를 받아줄수 없느냐고 물었다. 

로영무는 모색이 남아답게 준수하고 지식도 있고 기품도 단정해보이는 청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단장과 의논하고 극단에 받도록 힘써주겠노라고 하며 같이 손잡고 연극을 해보자고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각본은 단장의 마음에도 들었다. 각본이 생기자 의기저상되였던 극단에 생기와 활력이 되살아났다. 예우는 곰팽이 낄 지경이였던 단기를 꺼내 려인숙 지붕우에 높다랗게 띄우고 연극창조를 시작했다. 그들이 려인숙의 길다란 밥상에 둘러앉아 탁상훈련을 하는데 최승진이 찾아왔다. 예우는 그를 여간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그에게 무대감독자리를 주고 그의 입단을 축하하여 한상 차리기까지 하여 모두 눅거리 탁배기에 얼근히 취하기까지 했다. 그가 극단에 들어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여러가지 심상치 않은 일들이 생겼다. 그는 예우가 만들어놓은 과장된 연기들을 모두 류랑극단의 구습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신파기라고 비난하고 사실주의적연기체계를 세워야 한다면서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하나하나 고쳐놓기 시작했다. 예우는 자존심이 상하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햇병아리같은 녀석이 무엇을 안다고 지껄이는가, 그 《사실주의》인지 뭔지 하는건 고추가루를 치지 않은 국수나 물을 탄 술처럼 슴슴한것이라고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로영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우가 그 성미에 최승진을 훌 내쫓을수도 있고 옥신각신 론쟁이 커지면 제편에서 시끄럽다고 어느 곡마단같은데로 떠나가버릴수도 있는것이였다. 그는 너희들이 내말을 안들으면 떠나가버리겠다고 으른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예우가 없으면 극단은 흩어지고만다. 

그는 최승진을 조용한데로 끌어내여 제발 예우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하였다. 

고학생활에서 터득한것인지 교제술이 어지간히 있고 신축성도 있는 최승진은 예우를 잘 구슬려 노여움을 가라앉히고는 신파기가 지내 세지 않은 대목들은 그대로 살려두었다. 

예우는 흐뭇해졌고 다시 성수가 나서 장치물들을 만든다, 소도구, 대도구들을 장만한다, 어업조합 어부들속에서 찬조출연자들을 모집해온다 열이 올라 뛰여다녔다. 예우가 고안해낸 1막 1장의 무대장치는 그 사실성과 생동성으로 하여 놀랄만한것이였다. 막이 열리면 배경에서는 푸른 바다가 철썩이는데 십여명의 람루한 옷차림의 어부들이 바다가에 한줄로 늘어서서 어부가를 처량하게 부르며 그물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펼쳐진다. 예우는 그 그물에 종이로 만든 가짜고기가 아니라 펄펄 뛰는 진짜 바다물고기가 걸려올라오게 하자고, 이런게 진짜배기 《사실주의 》라고 흥이 나서 주장하였다. 로영무와 최승진은 그것이 자연주의적인것이라고 여겨져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으나 동감을 표시했다. 

보름후, 포구와 린근어촌의 여기저기에 어업조합창고에서 예우극단이 연극 《포구의 눈물(부제-철썩이는 파도) 》을 공연한다는 광고가 나붙었다. 첫 공연이 시작되는날 정오, 근처의 중학교 악대가 나팔을 불며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악대의 앞에서는 높다란 고깔모자를 쓴 로영무가 단기를 높이 추켜들고 걸었고 그 뒤에서 가슴에 꽃송이를 붙인 여러명의 배우들이 징과 북을 치며 걸어갔다. 그 배우들에게 옹위되여 걸어가는 예우는 거리로 달려나온 구경군들에게 파나마모를 벗어 흔들어보이면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온 거리가 들썩해졌다. 

공연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자 어업조합창고앞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극장》안은 표를 먼저 사고 들어온 사람들로 립추의 여지가 없었다. 

막이 열리고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며 배경에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갈매기 울음소리, 기슭을 들부시는 파도소리가 울려나오자 관중들은 갑자기 기침들을 깇으며 술렁거리다가 숨을 죽이는듯 잠잠해졌다. 바다기슭에 한줄로 늘어서서 그물을 당기는 어부들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어이차 어이차 

그물을 당기세 어이차 

오복이네 새색시 어이차 

청어만 찾는다 어이차  

 

어이차 어이차  

그물을 당기세 어이차  

세거리집 할머니 어이차  

청어만 달란다 어이차

어이차 어이차  

그물을 당기세 어이차  

 

 그물에 달려올라오는 산 청어들이 푸들쩍거리며 은빛을 뿌리자 장내에는 야-야- 탄성이 터져올랐다. 

어부의 딸 진주가 아버지를 삼켜버린 바다를 향하여 초혼의 부르짖음소리를 터칠 때와 그가 빚값에 끌려갈 때 관중들은 여기저기서 흐느껴울었다. 그리고 도망쳐온 진주가 어업회사 사장놈의 집에 불을 지를 때에는 모두 일어나 환성을 터뜨리며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그가 사장놈의 졸개들에게 쫓기다가 바다물에 몸을 던질 때는 너무 기막혀 가슴도 두드리고 얼굴을 싸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공연은 성공적이였다. 로영무는 그것이 자기와 최승진이 새로운 연기체계를 조심스럽게 도입한 결과라고 생각했으나 예우는 그물에 산 청어를 걸어놓은 효과가 커서 관중들을 처음부터 틀어쥘수 있었다고 만족해하였다. 공연에 대한 소문은 삽시에 널리 퍼져서 백여리밖에서도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예우의 호주머니속으로는 구리돈과 종이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들었다. 한달후 극단은 서울로 올라갔는데 예우의 주장으로 크게 짠 나무통에 바다물과 함께 청어를 넣어가지고 떠나갔다. 

그들이 탄 렬차가 경원선에 들어서서 서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을 때 최승진은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산천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쉑스피어도 자기의 비극들을 지방공연에서 세련시켜가지고 런던으로 쳐들어갔다고… 

서울은 시골에서 올라온 극단을 쌀쌀하게 랭대하여 누구도 예술의 벗들에게 극장을 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석진 뒤골목의 소학교 강당을 간신히 빌어 첫 공연의 막을 올렸다. 

무대가 밝아지고 바다기슭에 한줄로 늘어서 그물을 당기는 어부들의 구성진 노래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어이차 어이차  

그물을 당기세 어이차

 …

 

노래가락에 맞추어 욱욱 기운을 쓰는 어부들의 손에 끌려올라오는 그물속에서 싱싱하게 산 청어들이 푸들쩍거리며 비린내를 풍기자 시원한 바다바람이 장내에 회오리치는듯했다. 바다생선이라고는 좀처럼 입에 대보지 못하는 서울 뒤골목의 빈민들인 관중은 너무 희한하여 모두 목을 빼들고 무대를 바라보는가 하면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했다.… 첫 공연에서 청어 여러마리를 죽였다. 그러나 이 엉뚱한 공연소식은 이튿날로 서울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청어를 거의다 죽인 나흘만에야 예술의 벗들은 본정통에 자리잡은 한 이류극장의 무대를 빌릴수 있었다. 거만한 극장측은 호기심과 시골사람들을 보면 조롱하고싶어 못견디는 대처 시정배들의 얄궂은 심보로 그런 혜택을 베풀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중은 편견을 모르고 공정하여 막이 내린 다음에도 떠날줄 모르고 오래도록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관객들이 다 나간 다음 무대를 거두며 바삐 돌아치던 로영무는 최승진이 웬 처녀와 무대뒤에 마주서있는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져 주춤거렸다. 극단생활을 통하여 녀성들과의 접촉에 습관되였지만 그처럼 놀라게 된것은 처녀가 인상적인 미모를 가졌기때문만은 아니였다. 그들이 너무 가까이 마주서서 주위분위기는 까마득히 잊고 이야기에 열중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산뜻한 쎄라복차림의 그 처녀는 손에 말아쥔 잡지끝으로 입을 가리우고 무엇인가 조용조용 속삭이고 최승진은 심중한 눈빛으로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고있었다. 

로영무가 돌아서려는데 최승진이 그를 불러세우고는 처녀를 소개해주었다. 처녀는 《포구의 눈물》을 유고로 남긴 그 극작가의 외동딸인데 이름은 정은주라고 하였다. 처녀는 반겨웃으며 공연에서 아버지의 넋과 숨결을 느꼈다고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시하였는데 그 행동거지가 여간 세련되고 우아하지 않았다. 처녀한테서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부드럽게 해주는듯한 청신하고 유순한 그 무엇이 풍기였다.

그날밤 려관방에 누워서 최승진은 정은주와 자기는 이미부터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고백하였다. 로영무는 이때까지 내내 스스럼없이 지내오면서도 그런 사연을 비밀에 붙이고 한마디 해주지 않은 벗에 대하여 은근히 노엽게 생각했다. 최승진은 잠자코있는 친구에게 처녀는 며칠전 어머니마저 사망하여 의지할데 없는 신세가 되였다면서 그를 데리고 떠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자 로영무는 노여움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련민이 북받쳐 이튿날 예우에게 그들의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예우는 그날 정은주를 만나보고 얼굴이 컴컴하게 질려 담배만 연거퍼 피우다가 저런 녀자가 들어오면 집안이 무사치 못해 하고 입안의 소리로 중얼거렸다. 로영무한테는 그 소리가 인생풍파를 다 겪은 사람의 선견지명처럼 느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예우는 한숨을 내쉬더니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젠장 모르겠다, 데리고 떠나자고 하였다. 

극단은 남하하여 령남지방을 순회하면서 공연하였다. 그 길에서 최승진과 정은주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졌는데 범상치 않은 일도 더러 생겼다. 그것은 예우가 극단의 다른 녀배우들보다 정은주를 드러내놓고 편애하기 시작한것이다. 예우는 각본을 필사할 일이 생겨도 정은주를 불러 시켰고 그의 화술련습도 자기가 직접 맡아서 보아주었다. 그에게 배역은 주지 않고 려관교섭이나 극장교섭을 갈 때마다 늘 데리고 다녔는데 아마 그런 가인을 옆에 세워놓고 말하면 극단의 풍격도 올라가고 자기 지체도 돋보이게 된다고 여기는것 같았다. 교섭상대들은 정은주에게 정신이 팔렸는지 까다롭게 굴지 않고 헐하게 응해나서군하였다. 

단장은 어느 고을 식당에서 그들을 위하여 약혼식을 차려주었으며 그자리에서 말없이 술을 지독하게 마시고는 쓸쓸한 얼굴로 밖에 나가 오래동안 혼자 앉아있었다.

정을 붙일 보금자리도 없이 끝없는 방랑의 길을 헤매는 자기 신세가 갑자기 슬퍼진 모양이였다. 완력가이고 성미가 드센 예우가 그런 감상적인 기분을 드러낸것은 첫 일이였다. 

그후 극단안에 심상치 않은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최승진이 무엇때문인지 예우를 하찮게 얕보면서 무대형상문제에서는 단장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사람들앞에서 내놓고 반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단장은 여느 사람들앞에서보다 정은주가 있는데서 그런 반대에 부딪치면 참을수 없는 모욕을 당한듯 얼굴이 퍼렇게 질려 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이튿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또다시 새 공연지를 향해 정처없는 길을 떠나갔다. 그들은 거리에서 거리로, 시골에서 시골로 옮겨가며 공연을 계속했다. 비록 산 청어 대신 나무를 깎아 만들고 그우에 은지를 붙인 가짜 청어를 썼지만 그사이 배우들의 연기술이 늘어 공연은 점점 잘 되여갔고 관중들의 반향도 컸다. 예우극단의 징소리는 령남땅의 크고작은 도시들과 산촌들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울리였고 공연을 보고난 사람들은 가슴들에 쌓이고 쌓인 원한을 터쳐 어느 원쑤놈을 복수하기라도 한듯 속이 후련해져 기뻐하는가 하면 자기네가 당한 억울한 일들이 상기되여 흐느껴울면서 공연을 보았다. 그래서 어디서나 예술의 벗들을 옛날의 농민군이나 의적떼처럼 반겨맞아 환대했으며 그들이 다른 고장으로 옮길 때면 장치물들과 대도구, 소도구와 의상 궤짝들을 지고 따라나서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예우극단이 어느 번창한 도시에 들어서자 그곳 경찰서장이 단장을 불러 너희들은 어디서 떠났는데 어디까지 갈 작정이냐고 따져물었다. 단장은 그때 어느 신파극의 대사가 머리에 번개친것인지 벙긋 웃어보이고는 죽은 백성들의 령혼속에서 떠나 산 백성들의 마음속으로 가는길이라고 했다. 미신을 믿는 서장은 자기앞에 버티고 서있는 이 거인이 과연 이 세상의 사람인가싶어 부릅뜬 눈으로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황황히 상급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연극내용을 아래와 같이 고치라, 어부의 딸은 빚을 갚기 위해 일본에 돈벌이 가는것으로 할것, 사장의 집에 불을 지르게 할것이 아니라 많이 벌어온 돈을 악한에게 도적맞히고 절망끝에 투신자살하게 할것, 어느 고장에 가거나 주재소에 공연신청을 내고 립회순사의 참석하에서만 공연할수 있다, 이상 명령을 어길 때에는 제국의 치안유지법으로 너희들을 다스린다. 

경찰이 제시한 수정안은 도급에 있는 어느 우둔한 관리의 고안이거나 권력에 매수된 서푼짜리 어용작가의 즉흥적인 착상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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