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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자신보다 더 우리는 그대를 믿노라, 당이여! 그대가 우리를 우리보다 더 믿고 사랑했기에
우리자신보다 더 우리는 그대를 아끼노라, 당이여! 우리의 숨결이 그대 숨결에 닿아있기에 우리의 혈맥이 그대의 심장으로 뛰고있기에…
ㅡ서정시 《우리 당》중에서ㅡ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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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도 부엌간도 대낮처럼 환했다. 윤희는 단란한 가정살림의 아늑한 고요를 한껏 즐기며 동자질을 하다가 저도모르게 마음이 끌려 천정의 형광등을 빤히 쳐다보았다. 반년전만 하여도 대통로들과 대동강유보도의 가로등이나 동상과 기념비들의 장명등으로 켜져 수도의 야경에 운치를 돋구던 형광등불빛은 어느새 대도시를 은백색의 휘황찬란한 불빛바다로 만들고 시가유축의 영화예술인아빠트에까지 들어와 그의 집부엌도 이렇게 밝아진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는 조국이 보내주는 그 희한한 불빛은 윤희의 가슴속에 한가득 흘러들어 마음의 구석구석을 환히 밝혀주는듯했다. 그는 행복감에 겨워 미소를 머금고는 가볍게 돌아치며 동자질을 계속하였다. 둥실한 어깨며 청춘이 약동하는 봉긋한 젖가슴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게 몸을 감싼 연한 미색세타에 흰 모직양복치마를 받쳐입고 그우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그 녀자는 아직 생활의 쓴맛 단맛에 때묻지 않은 새색시같았다. 윤희는 희고 매츨한 손으로 늄밥가마꼭지를 약간 쳐들고 머리를 갸웃하며 확 피여오르는 밥김냄새를 맡아보고는 얼른 손을 귀에 가져갔다. 얼굴에 끼얹힌 밥김때문인지 볼에 연한 홍조가 피여올랐다. 그는 인차 돌아서서 랭장고문을 열고 파며 닭알, 고기 등을 조리대의 칼도마우에 꺼내놓았다. 그것은 시사회와 최종합평회를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낮에 식료상점에 가서 사온것들이였다. 윤희는 연출실의 다른 연출가들이나 배우들도 축하하자고 밀려들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런 경우 남편이 옹색을 당하지 않도록 술과 맥주도 몇병 사왔는데 그것으로 모자라지 않을가싶은 불안도 없지 않아 두손을 앞치마속에 감추고 오도카니 서서 찬장안에 세워둔 병들을 눈어림으로 세여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질풍처럼 휩쓸어드는 불길한 생각에 입술이 파랗게 질리였다. 지난밤 남편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 2시경 윤희가 잠결에 까닭없이 가슴이 서늘해져 서재로 황황히 올라가니 남편은 어스름속에서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피우며 침대머리에 앉아있었다. 왜 주무시지 않는가고 묻자 놀라서 그를 쳐다보며 어서 내려가 자라고만 일렀다. 윤희는 그런 남편을 어둠속에 홀로 둬두고 자기만 내려가 잘수 없었다. 남편의 성공과 기쁨은 그의 성공이고 기쁨이였으며 남편의 실패와 번민은 그의 실패, 그의 번민으로 되여야 했다. 남편의 모든것이 그의것이였다. 윤희는 가늘게 새여나오는 한숨과 함께 남편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한손을 꼭 잡아쥐여 자기 가슴앞으로 끌어왔다. 최승진은 안해에게 손을 맡긴채 한숨섞인 나직한 목소리로 영화연출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직업같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속을 제일 많이 썩이는 고달픈 직업인것 같다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을 더 느끼게 된다고 했다. 《한 예술가가 자기 경지를 개척해나가자면 한평생 쉬임없이 땅을 뚜지는 근면한 농군처럼 말이요, 하루도 쉬임없이 탐구에 탐구를 계속해야 되오. 그러자니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희생시켜야 하거든. 나를 보라구. 이번 작품을 걷어안은 다음 언제 한번 당신과 살뜰한 시간을 지낸적이 있나, 극장이나 식당에 한번 같이간 일이 있나. 창조하는건 예술이지만 개인생활은 전혀 예술적이 아니란 말이요. 당신한테야 내가 얼마나 재미없는 남편이겠소.》 윤희는 어리광부리듯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소리 말아요. 고생이 락이란 말도 있지 않아요.》 《고생이 락이라…》 《한가지 물어도 좋아요?》 《음…》 《그럼 어째 젊어서 이런 고생스러운 길에 들어섰어요? 세상에 하많은 직업가운데서 어째서 이런 길에…》 《그건 좀 복잡하고 심중한 문제요. 후에 죄다 이야기해주지.》 《또 한가지… 이런 길에 들어선걸 지금에 와서 후회하게 되나요?》 《아니 여태까지 단 한번도 후회한적은 없소. 그저 당신이 곁에 오니 마음이 좀 약해져 하소연했을뿐이요. 다른 사람에겐 한번도 고생타령을 한적이 없소.》 《여보, 솔직히 말씀해줘요. 이번 작품이 자신없어요?》 최승진은 1년남짓하게 걸려 다부작 광폭예술영화 《광풍》을 창작하였다. 문화성과 촬영소는 영화예술계의 한 기둥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의 재능과 능력을 믿고 막대한 자금과 물자를 투자하고 유능한 인민배우, 공훈배우들을 다 들이밀고 수백수천의 찬조출연인원들과 군중들을 동원했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중앙의 신문과 방송기자들이 찾아왔었고 영화계의 여론은 이 영화제작이 우리 나라 영화사에 하나의 사변으로 기록될것이라고 했다. 최승진은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였다. 《글쎄 뭐라고 할가… 나는 오늘밤 다시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장면 한장면 죄다 더듬어봤소. 어떤 대목은 두번 세번…》 《그럼 잘됐는지 못됐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자기가 낳아키운 자식을 밉게 보는 어머니가 있소? 연출가도 누구나 다 그렇단말이요. 게다가 나는 남달리 주관이 센 사람이 아니요. 시사회를 앞둔 지금에 와서는 내 감각, 내 판단을 전혀 믿을수 없게 되였소.》 《어제 부연출아저씨가 와서 잘됐다고 하던데요.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어요. 쉬라요. 다 잊고 푹 쉬라요.》 윤희는 지난밤 그토록 불안해하던 남편의 말들이 떠오르자 다리맥이 풀려 두손으로 볼을 싸쥐고 오도카니 앉아만있었다. 출입문쪽에서 손기척소리가 나는것 같더니 문이 열리며 시원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니 이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한가?》 이웃현관에 사는 연출가 로영무의 안해가 투명한 비닐보자기에 푸르싱싱한 부루를 싸들고 들어왔다. 윤희는 반색을 하며 달려나가고싶었으나 인차 마음을 돌릴수 없어 그저 어정쩡한 얼굴로 일어섰을뿐이다. 박성녀는 그의 얼굴빛을 흘깃 훔쳐보고는 비닐보자기의 부루를 구석쪽의 소랭이에 말없이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막내동생이나 며느리의 집에라도 온듯 대견해하는 눈빛으로 부엌안을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알뜰하게는 거두었구나. 저 찬장안엔 저게 뭔가? 에이구 술에다 맥주병까지. 원 손두 크구나. 온실농장에 있는 친척이 저걸 보내왔길래 승진선생 생각이 나서… 이 겨울철엔 저것두 귀한게라구. 내가 다 손질했으니 한번 찬물에 헤워 밥상에 올려놓으라구.》 인정미도는 그의 말투며 푸르싱싱한 부루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기운으로 부엌간에 생활의 화기가 한결 더 도는듯했다. 윤희는 못내 고마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저 《아니. 정말…》 하고 입안의 소리를 몇마디 하였다. 《내 오기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나?》 《그저 공연히…》 《영화걱정을 했지?》 《…》 《어쩐지 그러는것 같아 동무나 해줄가 하고 낮에 두번 찾아왔댔는데 없더구만.》 《식료상점에랑 갔댔어요.》 《음…》 성녀는 남정들처럼 부엌간으로 들어오는 문턱에 턱 걸터앉더니 어조를 훈시조로 바꾸어 말했다. 《이거 보라구. 내가 우리 령감하구 30년을 같이 살면서 터득한 인생철학이란게 뭔지 아나? 안팎이 다 영화풍에 춤을 추다가는 집안이 망태기가 된다는거네. 망태기가 돼. 저 령감이 글쎄 왜정때 이팔청춘에 꽃같은 나를 맞아들여서는 첫날밤에 한다는 소리가 영화를 하자면 세가지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거야. 굶어죽을 각오, 페병에 걸려 앓아죽을 각오, 매맞아죽을 각오, 하하하… 이렇게 세가지 죽을 각오를 꼽는데 제가 무슨 대연출가라도 될것처럼 그 기상이 얼마나 대단하겠어. 이 머저리는 그때 그 기상에 놀라 눈이 화등잔만해져서 숨을 죽이고 그 세가지 각오를 하나하나 캐여물어봤지. 왜 굶어죽어야 하는가? 영화가 안되면 수입이 없으니 입에 풀칠도 할수 없다는거야. 왜 페병에 걸려야 하는가? 생활이 고달프고 가난하니 몸이 약해져 페병에 걸리기 일쑤라면서 라운규선생도 페병에 죽었다는게 아니겠어. 왜 맞아죽어야 하는가? 영화에 민족적색채가 진하게 풍긴다든가 독립사상이라도 좀 내비치면 사상범으로 몰려 경찰에 잡혀가 뭇매를 맞을수 있다는거야. 휴- 그 소리가 가슴에 못으로 박혔어. 그 소릴 들은 다음부터 신세가 고달파질 때마다 영화를 버리고 하다못해 리발소를 차리든지 넝마장사를 하던지 살아갈 궁리를 하자고 울며불며 애걸복걸했지만 끝내 저 령감을 영화에서 떼내지 못했지… 해방직후엔 또 뭐라구 했는지 아나? 집안일에서 내 손을 빌자는 생각은 아예 걷어치우라는거야. 자기한테 남편이 있거니 하고 생각일랑 말구 혼자사는 녀자처럼 집안일을 맡아달라는거야. 그때만 해도 한창 젊은 나이이고 시샘도 좀 할 때라 해방이 돼서 신수가 좀 훤해지니 어떤 바람쟁이년한테 정분이 난게구나 이런 옥생각이 덜컥 들어 왕왕 울면서 들이댔지. 어느년한테 정분이 났는가? 그게 어느년인가? 이름을 대라구 야단을 치니까 저 령감이 하는 소리가 정 이름을 알고싶으면 대주겠다면서 자기가 정분이 난 그 녀자 이름은 <영화>라는게 아니겠나. 예나 지금이나 자기 첫째 사랑은 영화구 당신은 두번째다 하구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아무데나 가고싶은데로 가라구 으르는게거든. 두번째 사랑… 그 소릴 들으니 정말 기막히구 섧더구만, 그래서 그땐 더러 응석도 부릴 때라 눈물을 한말이나 줴짰어.》 풍상고초의 흔적이 력연한 성녀의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성녀는 치마자락을 들어 그 눈물을 닦고는 허거프게 웃었다. 《저 아바이도 그때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나를 꼭 안아주며 이렇게 달래였어. <여보, 나라에서 남사당패나 다름없던 우리 영화인들을 얼마나 잘 보살펴주고있소. 이젠 끼니걱정이야 아주 잊게 되지 않았소. 정말 채심해서 장군님 은덕에 보답해야겠소. 영화창작에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쳐야겠소. 내 그래 그러니 너무 섭섭해마오.> 이런 말까지 듣고보니 남편이 있거니 생각지 말라던 저 아바이 말이 전혀 그른건 아니더란 말이우. 다른 집들을 봐두 정말 진짜배기 예술가의 안사람은 다 두번째 사랑이라니까. 진짜예술가의 첫째 사랑은 예술… 예술이야. 이런 판에 안사람까지 예술에 맘이 팔려 속을 썩이면 집안일은 망태기야. 예술인집두 사람사는 집인데 살아가는 걱정이 왜 없겠나. 그 걱정을 다 도맡아서 집안살림살이도 알뜰하게 꾸려나가구 아이들도 잘 키우구 해서 바깥분들이 예술밖에 다른 잔걱정에 맘을 쓰지 않게 하는게 예술을 돕는게 아니겠나. 아무 기업소에나 후방부가 있는것처럼 우린 후방부서야. 이보라구. 천하에 영화처럼 아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온세상 사람들 말밥에 오르고 시비에 걸리는게 어디 있겠나. 영화 한편이 나오면 며칠새에 소문이 짜 돌고 눈이 있어 볼줄 아는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한다니까. 어느 연출가가 만들었다, 어느 배우가 잘한다 못한다, 어느 배우네 집에 어떤 흉측한 일이 생겼다, 늘 이런 시비와 칭찬과 비난속에 사는게 우리지. 한번은 우리 아바이가 졸작영화를 냈는데 글쎄 그 영화가 돌아간 온 나라각처에서 비난이 터져올랐어. 함북도와 량강도, 자강도 산골에서까지 비판편지가 올라왔는데 우리는 1년이상이나 그런 편지를 받았다니까. 이러니 세상앞에 자기를 다 드러내놓고 사는게나 같지. 그래서 난 밖에 나가서는 언행을 여간 조심하게 되지 않아, 한평생 그랬지… 가만 내가 왜 이렇게 넉두리질만 하고 앉았어?》 성녀는 움쭉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동자질을 한참 도와주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윤희는 밖에까지 따라나가 그를 바래웠다. 현관의 외등밑에서 헤여질 때 성녀는 그의 환한 모습에 눈이 부신듯 우습강스럽게 실눈을 짓고는 아래우를 훑어보고 정담아 잔등을 쓸어만져주었다. 《아이구, 그렇게 차리니 새색시같구나. 밝은색으로 입으니 나이에도 어울리구 보기 좋은데 뭐가 무서워 나들이나갈 때는 늘 어두운 색으로 입고 다니나?》 윤희는 자기와 남편 나이의 차이를 느끼게 되여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말았다.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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