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국사와 김대성

(?∼774)

 

 

경상북도 경주시의 토함산 중턱에 있는 불국사는 조선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름있는 절의 하나이다.

바로 이 불국사에 유능한 조각가이며 건축가인 김대성의 넋도 깃들어있다.

불국사는 원래 6세기 전반기에 세워졌는데 8세기 중엽에 불교가 장려되면서 크게 확장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751년부터 불국사를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 이 일을 책임진 사람이 바로 김대성이였다.
그가 어느때 출생하였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그에 대한 자료는 《삼국유사》에 단편적으로 실려있다.

그의 출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있다.

모량리의 가난한 녀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아주 넓어 이름을 대성이라고 하였다.

대성의 어머니는 성품이 온화하고 부지런하였는데 먹을것이 없어 품팔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한동네에 살던 부자 복안의 집에서 1년기한으로 품팔이를 하였는데 그 대가로 몇이랑의 밭을 받게 되였다. 대성의 어머니는 살림살이가 늘어날것이라고 기뻐하면서 농사를 지을 준비를 착실히 하고있었다.

이때 흥륜사에 있다는 중이 대성이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와 《하나를 주면 만을 얻는 법, 복안이 준 땅을 절에 희사하면 반드시 래세에서는 잘살수 있다.》고 하면서 또 지금 시주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질것이라고 하였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대성의 어머니는 귀가 솔깃하여 땅을 절에 시주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이가 갑자기 죽었는데 이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의 부르짖음이 있기를 《모량리의 대성이가 지금 너의 집에 환생하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문량이 놀라서 모량리에 사람을 보내여 알아보니 과연 하늘의 부르짖음이 있을 때 그 집 아들 대성이가 죽었다는것이였다.

이로부터 문량의 부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가 7일이 지나서야 왼손을 폈다. 그런데 손바닥에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야사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유명한 건축가 김대성이 재상 김문량의 아들로 출생한것만은 명백하다.

그는 경덕왕때 관리로 등용되였고 그후 사찰을 짓는데서 두각을 나타내였다.

신라통치배들은 불국사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구조물들을 세우는데 관심을 돌렸다.

당시 불국사에는 종루(종을 다는 건물)와 경루(불경을 보관하는 건물)가 없었으며 더우기 탑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구조물들을 세우기 위해 김대성에게 이 일을 맡겼던것이다.

김대성은 751년에 이 공사의 책임을 맡고 자기의 지혜와 재능을 다 바치였다.

당시 김대성이 계획한 불국사의 건물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대체로 현재의 불국사건물 그대로라고 볼수 있다.

불국사는 8세기 중엽에 웅장하게 건설되였는데 임진조국전쟁시기 왜놈들에 의하여 70여채의 목조건물이 불타버렸다. 그러던것이 18세기에 다시 일부 목조건물들을 제자리에 복구하였다. 그것이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다. 불에 타지 않은 주추돌석축, 계단, 탑, 돌등은 신라때의것이며 그우에 지어놓은 목조건물은 리조때의것이다.

불국사는 당시 건축학적으로 가장 세련된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우리 민족의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김대성은 불국사와 함께 장수사, 석불사 등도 책임지고 건설한 재능있는 건축가이며 석굴암의 조각도 창작한 뛰여난 조각가로서 미술사의 한페지를 빛나게 장식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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