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황룡사벽에 그린 소나무로 유명해진 솔거 (8세기)
소나무는 늙어도 자기의 푸름을 잃지 않는다. 소나무의 푸름처럼 자기 화법을 력사에 남긴 솔거, 새까지 날아들게 소나무를 생동하게 그려 력사에 이름을 남긴 솔거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의 경력과 활동에 대하여 자세히 전해지는것은 없으나 《삼국사기》, 《동사류고》, 《지봉류설》을 비롯한 옛 력사책들에 단편적으로 수록된 글을 통해 그 일단을 엿볼수 있다. 솔거는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이여서 이른새벽부터 늦은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하였지만 솔거의 집안은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런 가난속에서 솔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 어려서부터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았다. 솔거에게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남다른 취미와 재간이 있었다. 사실 살림만 구차하지 않으면 남들처럼 그림공부를 마음놓고 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거는 산에 나무하러 가면 붓대신에 산에 흔한 칡뿌리를 캐여 바위우에다 그림을 그려보군 하였다. 이렇게 그림그리는 련습을 하느라 해가 넘어가는것도 모르고있다가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또 밭에 김을 매러 가면 호미끝으로 땅바닥에다 그림을 그려보군 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는 부모들은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이렇게 솔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고 인내성있게 그림그리는 련습을 하는 과정에 주위에서 보고 느낀 자연현상에 대하여 생동하게 표현할줄 아는 능력을 키우게 되였다. 솔거의 꾸준하고 인내성있는 노력은 마침내 훌륭한 결실을 가져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의 이름난 화가 솔거는 벽에 소나무를 어찌나 잘 그려놓았던지 날아가던 새들이 그것이 진짜소나무인줄로 알고 거기에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솔거가 그린 황룡사의 《로송》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전해져오고있는지… 당시 신라에서는 불교를 크게 장려하고있어 가는 곳마다 절이 많았다. 황룡사는 그 규모와 크기에 있어서 그때로서는 신라에서 손꼽히는 사찰이였다. 이곳에 있던 중들은 자기들의 절을 더욱 화려하게 하고싶은 마음에서 화가로 유명한 솔거에게 벽화를 그려줄것을 요청하였다. 이 청을 받은 솔거는 그동안 자기가 닦아온 화법과 재능을 다 발휘하여 장구한 세월에 부대끼며 늙어온 소나무를 실감있게 그려냈다. 소나무형상에서 거부기잔등같이 터져있는 껍질의 묘사는 수백년동안 자연풍파를 꿋꿋이 이겨내며 자라온 로송의 름름한 기상을 그대로 내뿜고있으며 이슬을 머금은듯이 빛을 뿌리는 새파란 솔잎은 금시라도 향긋한 솔향기를 풍겨주는듯싶다. 그림이 완성되자 그것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솔거가 그린 이 명화를 두고 재미있는 일은 그후에 벌어졌다. 그것은 황룡사에 그려진 소나무가 어찌나 실감이 있었던지 날아가던 까마귀와 수리개 그리고 제비와 참새들이 거기에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서 떨어지군 하였던것이다. 《황룡사벽에 그린 소나무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가 떨어진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는 바람에 솔거의 그림솜씨는 더욱 명성을 떨치게 되였을뿐아니라 이로 하여 황룡사도 더욱 유명해졌다. 《해동죽지》라는 옛 문헌에는 솔거의 신비한 화법에 대한 시가 실려있는데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기에 그을어 벽체는 낡았건만 먹기운은 아직도 살아있어 솔가지는 푸르싱싱 구름에 닿았어라
까마귀와 수리개들 날아들어 앉으려다가는 미끄러지네 하늘도 바람을 보내여 솔바람을 일으켜주는듯
세월이 흐르는 속에 해빛과 눈비에 그림이 퇴색되는것은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것은 황룡사에 있는 중들에게 있어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들은 온갖 수단을 다하여 벽화를 보존하려고 하였지만 퇴색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안타까움에 모대기던 중들은 여러차례에 걸치는 의논끝에 채색을 다시 하기로 락착지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색을 마련하고 성의를 기울인다면 옛날의 화법을 살리지 못하겠는가!》 중들은 마련한 색감을 가지고 지성을 다해 벽화를 다시 그리였다. 그런데 그들이 황룡사벽에 채색을 다시 한 다음부터는 벽화를 향해 날아드는 새들을 한마리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이때 중들은 《과연 솔거의 화법은 사람의 손으로 따를수 없는 신비한 화법이였구나!》라고 하면서 솔거가 그린 그림에 채색을 다시 한것을 두고 몹시 후회하였다. 물론 솔거가 그렸다는 황룡사의 벽화가 후에 외래침략자들에 의하여 불에 타 없어져 그 면모를 다는 알수 없으나 진지하고 꾸준한 탐구심으로 마련된 조선화의 기법이 어느 경지에 이르고있었는가 하는것을 충분히 가늠하게 한다. 그가 유명한 화가로 되기까지의 수많은 일화들가운데는 안해의 그림에서 교훈을 찾고 더욱 분발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림그리기에 달라붙으면 끼니를 건느는것은 물론 잠도 잊어버리는것이 솔거의 특징이였다. 화법을 련마하고 한폭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솔거의 열화같은 정열과 피타는 노력은 자라서 장가를 가고 이름있는 화가로 널리 알려졌을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날 점심참에 안해는 그림을 그리느라 몹시 쇠약해진 남편에게 몸보신에 좋다는 고기국을 대접하려고 정성껏 음식상을 차리였다. 남쪽벽에 화판을 세우고 아침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솔거는 이날도 점심을 들라는 안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그림그리기에만 열중하였다. 안해는 남편이 이제나저제나 붓을 놓고 점심을 들기를 기다리며 밥상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화판에서 붓을 뗄줄 몰랐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가 하도 답답하고 지루했던 안해는 심심풀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붓을 들고 남편이 쓰는 채색감을 찍어가며 뒤벽에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안해가 자기가 그리고싶은 그림을 다 그리고 붓을 놓고 앉아있을 때에도 솔거는 점심생각을 잊고있었다. 이미 정성들여 끓인 고기국이 다 식은지 오래되여 안해는 그대로 들라고 할수 없었다. 그래서 저녁참으로 다시 덥혀들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온종일 그림에 열중하던 솔거는 저녁노을이 뙤창에 비쳐오는무렵에야 비로소 배가 출출함을 느끼였다. 그래서 붓을 깨끗이 씻고 채색감을 치우려 하는데 마침 밥상이 방안에 놓여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에라 출출한김에 한술 뜨고보자는 생각에 붓을 그대로 놓고 밥상으로 다가가서 마주앉으려고 하였다. 머리를 숙이며 밥상에 마주앉는 순간 솔거의 눈앞에서는 불이 번쩍 일었다. 《어이쿠!》 하며 뒤로 벌렁 주저앉은 솔거는 얼얼한 이마를 문대며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기 이마를 친것은 벽이였고 마주앉으려던 밥상은 벽에 그려진 그림이였다. 그만 얼굴이 붉어진 솔거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자기의 몰골을 안해가 보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였다. 안해의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솔거는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집안의 안팎일을 도맡아보며 남편의 뒤시중을 해가는 아녀자가 그린 그림이 이처럼 훌륭한데 비하여 자기의 그림이 제자리걸음을 하는것 같아 한없이 부끄러웠던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솔거는 더욱 분발하여 화법을 부단히 련마하고 또 련마하였다고 한다. 솔거는 일생 많은 그림을 그렸다. 특히 경주에 있는 분황사의 《관음보살상》과 황룡사의 벽화, 단속사의 《유마상》들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것이 황룡사벽에 그린 늙은 소나무였다. 푸름을 잃지 않는 늙은 소나무와 함께 솔거 역시 기묘한 기법으로 력사에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고있는것이다. 솔거는 력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초상을 그려 후세사람들에게 보여준 공적있는 미술가였다. 솔거는 평시에 단군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그릴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그림을 그리던 여가시간이나 또 잠을 자는 저녁시간에도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피곤에 몰려 잠들었던 솔거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흰구름이 내려오는데 흰옷에 수염을 짙게 드리운 준수하게 생긴 늙은이가 솔거를 향해서 다가오는것이 아닌가! 그 늙은이는 솔거에게 바로 자기가 고조선을 세운 단군이라고 하면서 너의 소망을 들어주려고 3천년동안이나 하늘에 있다가 내려왔노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솔거에게 신비스러운 붓을 주었는데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던 솔거는 그만에야 잠에서 깨여났다. 솔거는 그날부터 꿈속에서 만나본 단군의 초상을 그리는데 자기의 정열과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당시 솔거가 그렸다는 단군의 초상그림수는 이루 헤아릴수 없다고 하였다. 이 하나의 사실만 놓고보아도 솔거가 단군의 초상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를 잘 알수 있다. 고려시기의 유명한 작가인 리규보는 자기의 저서에서 당시 집집마다에 걸려있는 단군의 초상그림중 절반은 솔거가 그린것이였다고 평하였다. 이것은 고려시기까지만 하여도 솔거가 그린 단군의 초상그림들이 많이 전해지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시기에 단군말살책동을 악랄하게 벌린 후과로 단군의 초상이 수많이 없어졌지만 20세기초까지만 하여도 황해남도에 있는 구월산의 삼성사라는 절에는 솔거가 그렸다는 단군초상의 원화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솔거는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모습을 후대들에게 보여준 화가였다. 이처럼 솔거는 풍경화나 인물화(초상)나 할것없이 다 잘 그리였을뿐아니라 조선화기법에 능통한것으로 하여 그가 그린 그림들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정이 그대로 체현되여있으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자아내였다. 황룡사의 소나무로 유명해진 솔거, 그는 우리 겨레의 사랑받는 화가로서 후기신라시기는 물론 그 이후시기에도 우리 민족미술발전에 기여한 이름있는 미술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