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수국수장의 바탕그림을 그린 가서일

(7세기 전반기)


 

622년에 만든 천수국수장은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수예품으로서 일본 나라현 법륭사옆에 있는 중궁사라는 절에 보관되여있다.

천수국수장은 원래 사방 약 3m되는것이 두폭 있었는데 지금은 낡아서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그 몇쪼박을 모아 약 1m가량 되는 액틀속에 넣어 보관하고있으며 그밖의 작은 쪼박들도 전해지고있다.

천수국수장의 쪼박들을 보면 거북잔등에 글자를 수놓은것인데 옛 문헌 《상궁성덕법왕제설》에 그 전문이 수록되여있다. 거북잔등에 새겨진 명문은 400자로 되여있는데 죽은 사람의 계보와 함께 자수품의 제작경위를 밝히고 그 제작자의 명단이 적혀있다. 명문에 의하면 천수국수장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고려 가서일(고마노 가세이), 동한 말현(야마또노 아야노 마겐), 한노 가기리(아야노 가고리) 등이고 감독자는 경부 진구마(구라베노 하다노 구마)이다. 그런데 이들은 다 조선계통의 사람들이였다.

이 그림을 그리는데서 중심적인 역할을 논 고려 가서일은 고구려사람이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라고도 하면서 고구려 혹은 고마라고 불렀고 일본에 초빙되여간 고구려사람들의 성씨를 흔히 고마라고 불렀다는것이 옛 문헌기록에 의하여 확인되였다. 따라서 고마노 가세이란 이름은 고구려의 가서일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또한 야마또노 아야노 마겐과 아야노 가고리 역시 그때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의 성씨를 아야라고 부르고 일본의 야마또(나라현)지방에 자리잡고 사는 조선사람들을 야마또 아야라고 불렀던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이들이 모두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감독을 맡았던 구라베노 하다노 구마도 역시 조선사람이였다. 구라베란 일본 조정의 창고(구라)를 맡아보는 직무를 의미했고 하다란 성씨이며 구마는 이름이였다.

수예품 천수국수장의 바탕그림은 이처럼 가서일을 비롯한 조선사람들이 그린것이다.

이 수예품이 나오게 된것은 622년에 야마또왕정에서 실권을 쥐고있던 성덕태자가 죽은 후 그 슬픔을 누를길 없었던 그의 안해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성덕태자는 추고녀왕을 대신하여 권력을 쥐고 국정을 다스리던 인물이였다. 그의 죽음은 야마또왕정에서 슬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눈물속에 잠겨있던 안해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자기 남편이 《천수국》에 올라가면 살아있는것과 같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안해는 자기 어머니인 추고녀왕에게 사람이 죽으면 《천수국》으로 간다고 하니 《천수국》을 그림으로 그려 남편과 가까이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딸의 요청을 받아들인 추고녀왕은 당시 야마또에서 활동하던 가서일을 불러들여 자기 딸을 위해서 그 유명한 《천수국》을 그려줄것을 부탁하였다.

가서일은 그림이 방대한것만큼 혼자서는 빠른 시일안에 그릴수 없다고 하면서 동료들을 모아주면 인차 그릴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추고녀왕은 즉시 령을 내려 《천수국》을 그리기 위한 화원집단을 꾸리게 하였다.

가서일은 완성된 그림을 들고 추고녀왕에게 갔다. 어머니로부터 그림을 받아쥔 성덕태자의 안해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는 그림을 오래 보관하고싶었다. 당시 그림은 비단천우에 채색을 한것인데 몇년이 못 가서 퇴색될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곧 궁녀들을 불러들여 그림우에 색실로 수를 놓게 하였다.

천수국수장이란 이름은 이렇게 되여 생겨나게 되였다.

이 수예품에 고구려적색채가 진하게 비낀것은 바탕그림을 그린 가서일이 고구려사람이기때문이였다.

그림의 고구려적색채는 바탕그림내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인물들의 옷차림인데 저고리를 보면 통깃에 길이가 허리아래까지 내려덮이고 소매와 깃, 도련에는 다른 색갈의 천을 덧대여 장식하였으며 저고리는 끈을 달아 마주잡아매게 하였다.

이것은 고구려무덤벽화에서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 나라 강서군의 수산리벽화무덤의 서쪽벽에 그린 두명의 녀인들이 입은 저고리의 깃과 도련, 소매끝에 다른 색갈의 천을 달아 장식한것 등은 신통히도 천수국수장의 인물들이 입고있는 저고리와 꼭같다.

옷차림뿐아니라 천수국수장에 있는 토끼와 달, 봉황, 련꽃, 인동초무늬, 집 역시 고구려무덤의 벽화들에서 볼수 있는 그대로이다.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같은 시기의 고구려무덤벽화들인 진파리 제1호무덤과 진파리 제4호무덤, 강서무덤의 벽화를 그대로 옮겨놓은듯 하다.

이밖에도 넓다란 폭에 문양이나 다른 그림들로 구획을 짓고 거기에 여러가지 주제내용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그것이 하나의 종합적인 내용에 복종되도록 한것과 그림을 그리는데서 산점투시화법에 의거하고있는것도 역시 고구려무덤벽화창작에서 널리 쓰인 수법들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천수국수장의 그림내용과 수법은 고구려의것과 같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하기에 일본의 학자들속에서는 천수국수장에 있는 인물들과 가옥, 문양들이 고구려의 무덤벽화에 있는것과 같다고 이야기하고있다.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수예유물인 천수국수장의 바탕그림을 그려놓은 가서일은 고구려의 발전된 회화예술을 시위한 재능있는 미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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