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민족미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조석진

(1853∼1920)
 

 

화가 조석진은 호를 소림이라고 하였으며 군수의 벼슬을 지냈다.

조석진은 아버지를 일찌기 여의고 이름있는 미술가였던 할아버지 조정규의 집에서 자라면서 그림을 배웠고 장승업의 제자로 있으면서 그에게서 근대적화풍을 많이 본받았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꾸준한 성품을 소유한 조석진은 도화서 화원으로 들어가서 미술가로서의 기량을 더욱 높이 쌓았다.

화가 안중식과 함께 이웃나라에 가서 세계미술에 대한 견문을 넓히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5조약》을 강압적으로 날조하자 그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책동하는데 맞서 조석진은 민족미술을 지키기 위하여 1910년에 서울에 미술후비양성기관인 《서화미술원》을 내오고 거기서 학생들에게 우리의 민족미술전통과 우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사업을 정력적으로 진행하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애국자들과 량심적인 지식인들이 교육, 출판, 국문운동을 맹렬히 벌리고있었다.

조석진은 미술로써 우리 인민들에게 애국주의적감정을 심어주고 그것을 적극 살려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려는 의도에서 학교사업에 자기 한몸 다 바치였다.

그후 그는 1918년에 조직한 《서화협회》 발기자의 한사람으로서 제2대 회장이 되여 민족미술을 지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는 애젊은 시절부터 재능을 발휘하여 수많은 미술작품을 창작하였다.

그의 작품들인 《잉어》, 《잉어와 송사리》, 《갈대와 기러기》, 《국화》, 《풍경》, 《포도와 다람쥐》, 《가을》 등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그가운데서 《잉어》와 《잉어와 송사리》, 《갈대와 기러기》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석진이 창작한 《잉어》를 보시고 잘 그린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잉어》는 물속에서 자유로이 헤염치는 크고작은 여러마리의 잉어떼를 그린것인데 움직이는듯 한 화면구성과 생동한 세부묘사, 고유한 필법을 훌륭히 구현하였다.

물속에 떠있는 탄력있고 살찐 잉어의 가벼운 움직임과 지느러미 등 질감을 잘 나타냈다.

특히 매 잉어들의 비반복적인 동작들이 매우 생동하게 형상되였는데 여러마리나 되는 잉어들의 형태와 운동에서 같은것은 하나도 없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점잔을 빼고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까불면서 돌아치는 움직임이 매우 세밀하게 그려졌다.

《잉어와 송사리》도 19세기말 우리 민족의 회화발전수준을 보여주는 성과작의 하나이다.

그는 이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많은 탐구와 노력을 기울이였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프랑스와 네데를란드, 로씨야를 비롯한 다른 나라 그림들의 기본묘사기법인 명암법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는 조선화의 고유한 기법을 고수하면서 서양화기법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사색을 깊이있게 진행하였다.

그 이전시기까지 우리 회화분야에서는 명암기법을 잘 쓰지 않고 주로 단붓질에 의한 몰골기법을 위주로 하면서 채색을 안받침하는것이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었다.

조석진은 조선화기법에 서양화들의 명암기법을 일정하게 배합시키면 더 큰 형상적효과를 거둘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실천에 옮긴 그림이 바로 《잉어와 송사리》이다.

풀을 헤치며 달려나오는 살찐 잉어의 몸뚱이는 조선화의 기본표현수단인 선을 뚜렷이 살리면서 여기에 명암기법을 배합하여 립체감이 두드러지게 형상한것이다. 송사리떼를 노리는 잉어의 부릅뜬 눈, 벌럭이는 아가미, 불그스레한 빛갈이 도는 반점이 있는 고기비늘은 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산 잉어의 모습 그대로이다.

멋모르고있던 송사리들은 난데없는 잉어의 출현으로 겁을 먹고 바위밑의 깊숙한 풀숲으로 피해 달아나고있다.

그림에는 《호량일취》(다리우에서 물고기노는 모양을 바라보는 기분)라는 글이 씌여져있어 그림의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준다.

그림 《갈대와 기러기》에서는 화면의 왼쪽아래에서 오른쪽우로 올리뻗은 갈대를 경계로 하여 웃쪽에 목을 길게 뽑고 갈밭에 내려앉으려는 4마리의 기러기의 동적인 모습과 갈밭에 앉아 털을 다스리며 울어대는 정적인 2마리의 기러기를 펼쳐보이고있다.

여기서 넓은 공간의 짙은 가을빛과 각이하게 움직이는 기러기들의 형상에는 당시 민족의 위기와 그속에서 창작활동을 한 화가의 심정이 그대로 비껴있다.

민족미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조석진은 1920년에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략탈정책에 항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화가이기 전에 애국자였던 조석진은 일제의 야만적인 민족말살책동으로 하여 모든것이 여지없이 파괴되여가던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민족미술을 굳건히 지키고 그 발전을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친 애국적화가의 한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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