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농민생활도》로 유명해진 우진호

(1832∼?)
 

 

우리 나라 회화사의 갈피에는 평민화가로 민간화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화가도 있다.

그가 바로 19세기 우리 나라의 재능있는 풍속화가였던 우진호였다.

우진호는 1832년 개성 반송골에서 미곡전의 막벌이군을 하던 사람의 서자로 태여났고 자는 양수, 호는 송파라고 하였다.(후에 이름을 우수관이라고 고쳤다.)

비천한 신분을 가진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열중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화가로서의 자질을 련마하였다.

《중경지》에서는 우진호를 가리켜 《그림을 잘 그린 화가로서 특히 인물화를 잘 그리였다.》고 하였으며 또 어떤 자료에는 《그는 젊어서부터 수렵도와 신장도, 인물화를 많이 그리였는데 그림들을 얼마나 많이 그리여 벽에 걸어놓았는지 동네처녀들이 그 집에 놀러 가지를 못했다.》고 하였다.

또 《산수화나 화조화도 다 잘 그리였으며 표충비각의 퇴색한 단청도 그가 그린것》이라고 하였다.

우의 자료들에서 보는것처럼 우진호는 젊어서부터 개성지방에서 활동한 평민출신민간화가로서 인물, 풍경, 화조 등 다양한 묘사대상을 그린 재능있는 사람이였다. 우진호는 수요자들의 요구에 따라 자기가 그릴수 있는 정도의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그려주고 그 과정에 점차 기량이 높아져 마침내 손꼽히는 민간화가로 될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반송골의 후미진 골짜기와 언덕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농민들의 년중 생산활동과 세태풍속을 직접 보아왔고 그들과 함께 자랐다.

이러한 생활체험은 그후 그가 농촌생활에서 벌어지는 객관적현실을 실감있게 묘사할수 있게 하였고 진보적세계관형성의 기초를 마련할수 있게 하였다.

우진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자기의 호를 《송도》에서의 《송》자와 반송골의 언덕을 의미하는 《파》자를 결합하여 《송파》라고 한것에서 잘 나타나고있다. 그의 이러한 호는 푸르른 소나무가 우거진 개성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상징하고있다. 고향에 대한 뜨거운 애착은 그의 그림에서 특유한 자연풍경과 인물, 지어는 아담하게 꾸려진 초가집담장에 이르기까지 농촌의 특색을 그대로 표현하고있는데서도 나타나고있다.

초기에는 단청무늬, 수렵도, 신장도와 같은 그림들을 그리던 우진호는 점차 당대 사회의 근로하는 인민들의 생활속에서 묘사대상을 찾아 근대적인 화법으로 창작한 새로운 그림들을 내놓았다.

그는 남달리 건장한 체구에 힘이 센것으로 하여 52살나던 1884년에는 별선군관(궁성호위군사)으로 뽑히였으나 얼마 있지 못하고 파직되여 행상으로 떠돌아다니였다.

하급군인생활과 행상살이를 하는 과정에 그는 사회적모순을 직접 목격하고 많은것을 알게 되였으며 농민들의 생활을 더 잘 그려낼수 있는 귀중한 체험을 쌓게 되였다. 그의 이러한 사회계급적립장과 태도가 그림들에 그대로 반영되였다.

그의 그림들은 12폭 병풍으로 된 《농민생활도》(개성력사박물관에 전시)와 10폭, 7폭으로 된 《농민생활도》(조선미술박물관 전시) 등 몇점만이 전해지고있다.

그의 미술창작활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0폭과 12폭으로 된 《농민생활도》이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미술박물관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우진호의 《농민생활도》를 보시고 그때 벌써 우리 화가들이 평민들의 사상을 대표하는 계급적립장에 서있었다고 교시하시였다.

당시 회화분야에서 《농민생활도》는 실학사상의 영향밑에 인민들의 생활에 낯을 돌리고 그들의 소박한 사상감정과 생활을 반영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기 인물주제화에 그 기초를 두고 새롭게 형상되였다.

《농민생활도》는 농민들이 씨를 뿌리고 낟알을 걷어들이며 겨울에 사냥할 때까지 년중 생활을 계절별로 구체적으로 묘사한것으로서 여기에는 당대 사회계급적관계와 생산관계의 면모가 집대성되여있다.

사회의 기본생산자대중인 농민들의 생활과 량반지주계급의 부패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그린것으로 하여 《농민생활도》는 당시 사회계급적관계를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다.

이 그림들은 병풍식으로 되여있는데 그림의 내용구성을 보면 정월대보름날 달맞이구경을 하는 민속풍속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밭갈이, 김매기, 가마니짜기, 마당질, 나루배, 사냥 등 년중 농촌생활의 주요한 측면들을 농업생산공정에 따라 보여주고있다.

작품들은 18세기의 《농민생활도》의 구도와 화법 그리고 한 화면에 농민과 량반, 지주를 등장시킨 측면에서는 비슷한것 같지만 예리한 계급적안목에 기초하여 폭넓고 실감있게 그린것으로 하여 특이하다고 볼수 있다.

또한 18세기 《농민생활도》에서는 큰 부자집을 중심으로 농민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리상화하여 묘사하였다면 우진호의 《농민생활도》에서는 당시 우리 농촌 그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민족적색채가 짙은 농가와 농촌풍경을 방불하게 재현하였다.

우진호의 《농민생활도》의 매 화폭의 웃부분에는 일하지 않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는 부자들의 라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그 아래부분에는 부지런히 일하는 농민들의 근면한 생활을 그려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을 대조적으로 일목료연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 생활을 계급적관계속에서 반영하였다.

《농민생활도》의 한폭인 《마당질》에서는 걷어들인 낟알을 털어내느라 일손이 바쁜 농민들과 높은 대청마루에서 긴 담배대를 물고 그를 감시하는 지주의 판이한 모습을 형상하였다.

《가마니짜기》에는 머슴들이 담장밑에서 새끼를 꼬며 가마니를 짜는 모습과 번듯한 기와집 방안에 푹신한 방석을 깔고앉아 부채질하며 졸음을 달래는 늙은 지주의 라태한 모습이 또한 대조적으로 그려져있다.

우진호의 《농민생활도》에 형상된 그림들은 그 내용이 매우 통속적이고 인상적이며 그 형상이 꾸밈없고 진실한것이 특징이다.

그림에 반영된 인간성격들에는 근로하는 인민들에 대한 화가의 동정심과 착취계급에 대한 비판정신이 담겨져있다.

우진호는 직업적인 도화서의 화원은 아니였으나 자기의 작품을 통하여 불평등한 사회현실과 계급적대립관계를 인민들이 즐기는 미술형식으로 진실하게 반영한 비판적사실주의화가로서 19세기 후반기 우리 민족의 회화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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