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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해학과 풍자로 지배계급을 조소한 신윤복 (1758∼?)
신윤복은 봉건지배계급을 풍자조소하는 풍속화를 많이 창작하여 우리 민족의 회화발전에 이바지한 이름있는 풍속화가였다. 그는 자를 립부, 호는 혜원이라고 하였으며 도화서 화원으로서 첨사벼슬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지니고있던 신윤복은 당시 화단에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진보적인 화가들에게서 현실을 보고 대하는 사실주의적창작방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김홍도, 리인문, 김득신과 함께 18세기말∼19세기초 이름있는 미술가로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신윤복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도시생활을 취급하고있다. 김홍도가 농촌생활상을 위주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면 신윤복은 도시생활형상으로서 당시 사회의 각이한 계층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알수 있게 하는 훌륭한 인물화들을 많이 창작하여 중세회화사를 풍부히 하고있다. 사실주의적수법을 지향한 그의 작품들에서는 부패타락한 봉건통치배들과 승려들을 비롯한 사회기생충들의 위선과 패륜패덕행위를 신랄히 비난, 조소하고있으며 하층인민들의 생활을 다방면적으로 형상하여 그들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있다.
당시 지배계급의 색정적이며 비도덕적인 생활을 전면에 그린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는 자기의 붓으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각이한 생활을 보여주었으며 작품들에서 심각한 사회계급적모순을 예리하게 해부하였다. 대표적인 그림들로서는 《주막》, 《배놀이》, 《봄놀이》, 《가야금타기》를 들수 있다. 그림 《주막》은 먼길을 오가던 길손들이 드나들던 주막집 안뜰을 부감도형식으로 실감있게 펼쳐보이고있는 작품이다. 잘 정돈된 가장집물들과 부엌세간들이 가쯘하게 갖추어진 집안에서 곱게 단장한 주막집녀인이 먼저 들어와앉은 손님에게 술을 따르려고 하는데 뒤늦게 뜰안에 들어선 량반들이 그들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고있는것을 부뚜막옆에 서있는 하인인듯 한 사나이가 의아쩍은 표정으로 지켜보는것을 형상하고있다. 그림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화가의 예리한 관찰에 기초함으로써 봉건적신분제도가 서서히 무너져가고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예술적형상으로써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그림 《봄놀이》는 무위도식하는 량반들의 생활을 반영하고있는 그림으로서 량반들이 기녀들과 뒤뜰에서 풍악을 울리며 즐기고있는 유흥광경을 형상하였다. 화가는 피둥피둥하게 살진 두 량반과 그들을 섬겨야 하는 기녀들과 악공들 그리고 술상을 나르는 노비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대조시킴으로써 량반들의 부화사치한 생활을 폭로하고있다. 이러한 그의 그림들은 이 시기 량반사대부들의 문인화풍과는 대조되는것으로서 관료배들의 불만을 자아내였다. 신윤복의 이런 그림은 봉건사회말기 회화에서의 근대적요소의 발현인 동시에 화가의 비판적사실주의경향의 반영이였다. 신윤복의 이러한 현실비판정신은 신분질서가 무너지는 도시생활의 단면과 봉건지배층의 퇴페적인 생활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들도 잘 그려내도록 하였다. 신윤복은 생활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에 기초하여 정확하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선묘, 밝고 담박한 색채를 리용하여 계층별인물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성격, 그 내면세계를 진실하게 형상하였으며 묘사대상의 형태적특징을 선명하게 강조하여 화폭마다에 풍부한 정서와 감정이 넘쳐나게 하였다. 이러한 화법은 당시 도화서의 다른 화가들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것이였다. 색정에 빠져있는 량반계급의 생활을 담은 그림들에는 두세쌍의 남녀들이 만나는 향락적인 생활들이 선택되여 그려지고있다. 이러한 형상에 적중하게 계절은 봄과 가을을 선택하였고 남녀가 유흥을 즐기기에 좋은 야밤풍경으로 그리고있다. 또한 련못, 깊은 산속, 강변, 어스크레한 골목, 담장옆, 우물 등을 설정하고 진달래와 국화 같은 꽃으로 계절을 알게 하고있으며 주제에 알맞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 성격을 그려내고있다. 신윤복의 화풍은 김홍도의 그림에 비추어볼 때 형상면에서 일련의 차이를 보이고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윤복의 화풍이 녀성적인데 비하여 김홍도의 화풍은 보다 남성적이라는것이다. 우선 등장인물선택에서 김홍도는 농민, 야장공, 어부, 행상, 나무군 등 근로하는 인민들 즉 남자주인공들이 위주라면 신윤복은 녀기, 무당, 규방녀인이거나 량반, 한량, 부유한 계층 등을 기본주인공으로 하고있다. 또한 선묘에서 김홍도는 주로 굵고 힘있는 선으로 대상을 묘사하였다면 신윤복은 녀성들의 모습에 맞게 섬세하고 류창한 선묘와 화려하고 밝은 색채로 안온한 분위기를 살리였다. 배경에서 김홍도는 주되는것을 살리기 위하여 배경을 생략하였다면 신윤복은 자연풍경을 등장인물들의 내면세계와 시간을 보조적으로 설명해주는 수단의 하나로 리용함으로써 화면의 정서를 더욱 살리고있다. 색채도 녀성들이 좋아하는 색을 많이 썼다. 그리고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음률이 강한 음을 내는것 같은 여운을 주고있으며 악기인 경우에도 장새납, 장고 등 주로 야외에서 쓰는 악기가 위주로 형상되였다면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가야금을 비롯하여 주로 실내에서 쓰는 현악기가 위주로 되고있다. 이와 같이 신윤복은 김홍도나 김득신과도 다른 독특한 화풍으로 우리 나라 회화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기였다. 그는 작품들에서 부패한 봉건통치배들의 패륜패덕이 성행하던 당시의 사회형편을 진실하게 반영한것으로 하여 지배계급들의 미움을 받게 되였으며 도화서에서 쫓겨나게 되였다. 이처럼 화가 신윤복은 꾸준한 탐구와 사실주의적창작태도로써 당시 근대적으로 발전하는 우리 민족회화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